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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 대사와 농부의 지혜 이야기 | 명당 찾기 방법 정리

  1. 옛날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던 이야기입니다.
  2. 태조는 무학 대사를 왕사로 임명했어요.
  3. 왕사는 임금의 스승이자 정치 조언자였어요.
  4. 조선은 불교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유일한 왕사였어요.
  5. 무학 대사는 고려 말기에도 왕사였지만 사퇴했어요.
  6. 조선 태조가 새 도읍지를 찾으라고 하자 무학이 살펴봤어요.
  7. 계룡산, 천안, 수원, 과천 등을 돌아봤어요.
  8. 그는 한강이 흐르는 뚝섬에 마음이 들었어요.
  9. 한양이 새 도읍지로 딱 맞다고 생각했어요.
  10. 그런데 노인 농부가 무학을 미련하다고 불렀어요.
  11. 무학은 자신이 무학임을 알고 공손히 인사했어요.
  12. 노인은 무학이 새 도읍지를 찾는다고 했어요.
  13. 노인은 서북쪽 심리를 살펴보라고 했어요.
  14. 무학은 신비한 일이 일어난 후 한양에 도착했어요.
  15. 한양은 산으로 둘러싸인 명당이었어요.
  16. 태조와 무학은 도성 위치를 두고 논쟁했어요.
  17. 무학은 풍수지리로 인수봉을 포함하자고 했어요.
  18. 정도전은 산이 너무 크다며 반대했어요.
  19. 태조는 하늘의 뜻을 믿고 인수봉을 제외하기로 했어요.
  20. 성을 쌓은 후 군궐 위치도 논의했어요.
  21. 무학은 인왕산을 주산으로 주장했어요.
  22. 정도전은 부각산을 주산으로 하자고 했어요.
  23. 남향이 조선에 가장 적합하다고 무학이 주장했어요.
  24. 결국 경복궁은 부각산을 주산으로 남향으로 지어졌어요.
  25. 조선 전체 도시 설계도 남향을 기준으로 했어요.
  26. 무학은 자신의 주장 대부분이 배척된 후 탄식했어요.
  27. 하지만 남지 조성만은 끝까지 주장했어요.
  28. 남지는 화기와 기운을 조화롭게 하기 위해 만들었어요.
  29. 이후 조선은 오랜 기간 번영했어요.
  30. 남지는 일제 강점기 때 매립됐어요.
  31. 2008년 숙례문 방화 사건이 일어났어요.
  32. 남지 매립이 좋은 기운을 약화시켰다는 말도 있어요.
  33. 복구 후 숙례문이 다시 복원됐어요.
  34. 오늘날 서울의 이름은 신라 설라벌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어요.
  35. 또 다른 이야기에선 설 우울이 변해 서울이 됐다는 주장도 있어요.
  36.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원한다면 창작동화도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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