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없이도 행복한 은퇴 생활, 작은 월세방의 비밀 공개!
70대 할머니의 고단한 삶 이야기
나는 올해 70살이 넘었어. 평생 일했지만 퇴직금 받을 만한 직장은 못 다녔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장, 마트, 식당, 학원, 청소까지 안 해본 일이 없어. 월급은 많아야 180만원 정도였는데, 아이 키우고 생활비 쓰다 보니 돈을 모을 수가 없었지.
남편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결혼해서 독립했어. 지금은 작은 월세방에서 혼자 살고 있지. 처음엔 아들이랑 같이 살았는데, 아들이 결혼하면서 신혼부부랑 같이 사는 게 힘들까 봐 따로 나왔어.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방을 구했는데, 서울에서는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야.
국민연금으로 매달 50만원이 나오는데, 이건 10년 넘게 다닌 공장에서 내준 덕분이지. 거기에 모아둔 돈 300만원 정도가 있었지만, 병원비나 혹시 모를 일을 위해 아껴 써야 했어. 한 달 생활비는 80만원으로 살아야 했는데, 월세 내고 나면 50만원으로 식비, 공과금, 모든 걸 해결해야 했지.
처음에는 막막했어.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기도 했지. 하지만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어. 경로식당을 찾아갔는데,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다들 나 같은 처지라 금방 익숙해졌지. 하루 한 끼라도 해결할 수 있으니 큰 도움이 됐어.
소일거리도 해볼까 했는데, 나이 때문에 쉽지 않았어. 무릎이랑 허리도 안 좋아서 8시간씩 서 있는 일은 무리였지. 그래서 그냥 아껴 쓰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어. 옷은 더 이상 사지 않고, 시장에서 5,000원짜리 티셔츠 하나 사면 몇 년을 입었지. 반찬은 할인하는 걸 사거나 김치랑 밥만 먹을 때도 많았어. 고기는 거의 못 먹었지.
그래도 이렇게라도 살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가끔 공원에 나가서 걷는 게 유일한 여가 활동이야. 벤치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고 햇볕 쬐고 있으면 그럭저럭 시간이 가. 예전에는 해외여행 가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지.
가장 걱정되는 건 건강이야. 병원비가 너무 무서워. 큰 병이라도 걸리면 버틸 재간이 없지. 이러다 정말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얼마 전부터 무릎이 더 아파지기 시작했어.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병원비가 부담돼. 예전에는 파스 하나 사서 버티면 됐지만, 이제는 그것도 효과가 없는 것 같아. 내 몸은 점점 약해지는데, 돈 벌 방법은 없고 생활비는 점점 빠듯해져.
며칠 전부터 무릎이 심상치 않았어.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쑤셨고, 아침에 일어나면 다리가 뻣뻣해서 한참을 주물러야 했지. 파스도 이제 별 효과가 없었어.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병원비가 겁났지. 진료비 몇 만원은 낼 수 있지만, 혹시라도 정밀 검사나 수술이 필요하면 어쩌나 싶었어. 나는 그럴 돈이 없었지. 결국 참기로 했어.
그러다 시장에서 장을 보다 넘어졌어. 무릎을 짚었는데 힘을 제대로 못 주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지. 사람들이 와서 부축해줬는데 너무 창피했어. 괜찮다고 하면서 급히 일어나 걷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이제 정말 큰일이다' 싶었지. 그날 저녁부터는 무릎이 더 아팠어.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찌릿찌릿한 통증이 올라왔지.
결국 병원에 갔어. 접수비랑 검사까지 해서 2만원이 들었지. 의사 선생님이 관절이 많이 달았다고 하셨어. 약을 처방해 주셨는데, 물렁뼈가 거의 다 달았다고 하더라고. 연골 주사를 맞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주사 한 대에 5만원이 넘는다고 했어. 약값까지 하면 한 달에 10만원은 그냥 깨질 판이었지. 지금 내 생활비로는 불가능했어. 나는 약국에서 가장 싼 약만 사서 돌아왔지.
무릎이 이렇게 아픈데 소일거리라도 찾아야 하나 싶었지만, 나이 많은 사람을 써주는 곳이 있을까 싶었어. 마트 캐셔나 주차 관리 같은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다들 오래 서 있어야 해서 힘들 것 같았지. 청소 일자리도 알아봤지만, 무거운 걸 들거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해서 한 달만 해도 무릎이 완전히 망가질 것 같았어.
그나마 기대했던 건 아들이었어. 아들한테 돈을 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지만, 가끔 반찬을 챙겨주거나 병원에 같이 가주거나 명절 때 용돈이라도 줄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아들은 결혼한 이후로 점점 멀어졌어. 한 달에 한 번 전화 오는 것도 힘들었고, 손주가 태어난 이후로는 더 바빠졌지. "엄마, 우리도 애 키우느라 힘들어. 나중에 챙겨 드릴게요."라는 말만 들었어.
한번은 병원비가 걱정돼서 아들에게 "이번 달에 조금만 도와줄 수 있겠니?"라고 했더니, 아들은 "우리도 대출 갚느라 빠듯해."라며 말을 흐렸지. 그 말을 듣고 더는 말하지 않았어. 그 후로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기로 했어. 그게 마음이 편했지. 어차피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아들에게 서운한 감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아들 인생이 우선인 걸 알기에 어쩔 수 없었어.
이제 정말로 돈을 더 아껴야 했어. 반찬 가지 수를 줄이고 전기장판만 틀고 겨울을 났지. 예전에는 친구들이랑 시장 통닭이라도 시켜 먹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사치였어. 친구들 모임도 자연스럽게 안 나가게 됐지. 나만 유독 아끼며 사는 것 같아서 서럽기도 했어.
젊었을 때는 이렇게 살 줄 몰랐어. 나도 남들처럼 편한 노후를 보내고 싶었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 병원 갈 때마다 돈 걱정을 해야 하고, 친구들을 만날 때도 눈치가 보이고,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흘러갔어. 나는 여전히 아침이면 공원으로 나갔어. 거기서 햇볕을 쬐고 벤치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지. 그렇게라도 해야 무료한 시간을 견딜 수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공원에서 알던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보고 말을 걸었어. "요즘 많이 안 보이시던데, 편찮으세요?" 나는 그냥 웃으며 "조금 바빴어요."라고 둘러댔지. 하지만 할머니는 내 다리를 보고 눈치를 챘는지 "우리 동네 경로당에서 침 맞아 주는 곳 있어요. 한번 가 보세요."라고 했지.
나는 고민했어. 경로당에는 가고 싶지 않았지. 아직은 그곳에 어울릴 만큼 늙었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거든. 하지만 다리가 아픈 건 사실이었어. 결국 용기를 내서 경로당을 찾았어. 거기서 침을 맞고 다른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 다들 나처럼 살아가고 있었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었지.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어. 병원비는 앞으로도 계속 부담이 될 것이고, 아들에게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했지. 나는 경로당에서 침을 맞고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어.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도 웃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싶었지.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어. 병원비 걱정은 계속됐고, 생활비는 점점 빠듯해졌지. 나는 어떻게든 더 아끼는 방법을 찾아야 했어.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돈을 쓰지 않는 삶을 실천했어. 경로식당을 매일 갔고, 집에서는 최대한 불을 켜지 않았어. 여름에는 선풍기 한 대로 버티고, 겨울에는 두꺼운 옷을 껴입었지. 전기장판도 가장 약한 단계로만 틀었어. 반찬은 김치 하나면 충분했고, 가끔 시장에서 할인하는 달걀을 사서 한 끼를 해결했지. 옛날에는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마트에서 과일이라도 사 먹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사치였어.
어느 날 아들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어. 나는 반가운 마음에 급히 전화를 받았지. 그런데 첫마디가 "엄마, 나 부탁이 있는데."였어.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 아들은 전세금을 올려 줘야 하는데, 혹시 내가 보태줄 수 있냐고 물었어. 나는 잠시 말을 잃었어. 내 사정을 뻔히 알 텐데 어떻게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
하지만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 내가 나중에 꼭 갚을게. 이번에만 좀 도와줘."라고 말했어. 나는 단호하게 말했지. "엄마한테 그런 돈 없어." 아들은 한숨을 쉬더니 "알았어. 그냥 물어본 거야."라며 전화를 끊었어.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어. 눈물이 밀려왔지. 아들은 내가 어떻게 사는지 알지? 그런데도 돈을 빌려 달라고 했고, 거절하자 너무나 쉽게 전화를 끊었어. 나는 그 순간 확실히 알았어. 더 이상 아들에게 기대할 것도 바랄 것도 없다는 걸.
그 후로 나는 혼자서 살아가는 방법을 더욱 단단히 다졌어.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내 힘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지. 몸이 아프면 그냥 참고, 병원 가는 건 최대한 밀었어. 먹는 것도 더 줄였고, 시장에서 버려진 채소가 있으면 주워 와서 손질해 먹었지. 가끔 공원에서 사람들이 손주들을 데리고 나오는 걸 보면 부럽기도 했어. 나도 손주를 보고 싶었지만, 아들 부부는 나를 찾지 않았지. 처음엔 연락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체념했어. 나도 내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나는 공원에서 걷고, 경로식당에서 밥을 먹고, 경로당에서 침을 맞으며 하루하루를 보냈어. 그렇게 몇 년이 흘렀지. 어느덧 나는 80살이 넘었어.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았어. 주름진 얼굴, 흰머리가 가득한 내 모습이 낯설었지. 젊었을 땐 이렇게까지 늙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하지만 세월은 어김없이 흘렀지. 나는 깊이 한숨을 쉬었어. 이제 남은 삶은 얼마나 될까. 내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거야. 더 젊었을 때 돈을 조금이라도 모아둘 걸. 은퇴 이후의 삶을 미리 준비할 걸. 그렇게 아껴서 뭐 하냐고, 늙으면 다 부질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어. 늙었을 때 돈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지.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었어. 나는 그냥 이렇게 살아야 했어. 그저 아프지만 않기를, 내 몸이 조금이라도 버텨 주기를 바랄 뿐이었지. 나는 작은 월세방에서 만족하며 살아. 아주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버틸 수는 있으니까. 공원을 걸을 수 있는 다리가 있고, 하루 한 끼라도 먹을 수 있는 경로식당이 있으니까.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래도 오늘 하루는 무사히 보냈구나 싶어 감사하기도 해.
하지만 여러분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 젊었을 때는 은퇴 후가 막연하게 느껴지겠지만, 막상 닥치면 너무나 현실적이야. 돈이 없으면 병원도 갈 수 없고, 생활비 걱정에 잠도 오지 않아. 자식도 결국 자기 삶을 살아가지. 결국 남는 건 나 혼자뿐이야. 그러니 부디 여러분은 미리 준비하길 바라. 나처럼 늙어서 후회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