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개념미술', 조셉 코수스와 함께 5분 만에 완벽 이해!
사진기 발명 이후, 예술은 어떻게 변했을까?
사진기가 나오면서 그림은 더 이상 '똑같이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게 됐어. 그래서 화가들은 그림 안에 다른 의미를 담거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려고 노력했지. 이게 바로 현대 예술의 시작이야.
이제는 그냥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어려워졌어. 대신 "그림이란 뭘까?", "보는 건 뭘까?" 와 같이 예술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화가들이 인기를 얻게 됐지.
하지만 이런 흐름 때문에 대중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왜 가치가 있는지 납득이 안 가는 작품들이 많이 생겨났어.
아무것도 없는 하얀 그림?
극단적인 예로,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배경만 있는 그림도 있어. 어떤 사람들은 이걸 사기라고 비난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림이 꼭 무언가를 똑같이 따라 그릴 필요는 없다는 걸 보여주는 도발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칭찬하기도 했지.
소변기가 예술이 된다고?
이런 그림은 그래도 '그림'이니까 예술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건 그림도 아니고, 조각이라고 보기도 애매한 그냥 평범한 소변기야.
하지만 마르셀 뒤샹이라는 예술가가 이걸 예술 작품이라고 주장했고, 그 주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이 소변기는 예술 작품이 됐어.
뒤샹이 이 작품을 내놓았을 때는 이미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위대한 예술이라고 불리기 어려워졌던 시기였어. 그래서 "그림이란 무엇인가?", "조각이란 무엇인가?" 와 같이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중요해졌지.
뒤샹은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의 노력이나 혼이 담기지 않은 제품조차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 거야. 어쩌면 그는 예술의 지위와 의미 자체를 비웃었던 걸지도 몰라.
아이디어가 예술을 이끈다! 개념 미술
뒤샹과 비슷한 생각을 이어받은 움직임이 바로 개념 미술이야. 개념 미술은 개념(아이디어)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술을 말해.
예술가 솔 루윗은 이렇게 말했어. "예술가가 개념적인 형태의 예술을 사용한다는 것은 모든 계획과 결정이 사전에 이루어지며 그 실행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아이디어가 예술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개념 미술은 예술가의 뛰어난 기술보다는 지적으로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생각해. 그래서 작품이 감정적으로는 중립적일 때가 많아. 하지만 그렇다고 지루하다는 뜻은 아니야. 오히려 강렬한 감정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새롭게 느껴질 수 있지.
루윗은 벽에 드로잉을 그리는 지시 사항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내놓기도 했어. 벽에 직접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언어적인 표현을 제시한 거지.
만약 현대 예술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면, 굳이 물리적인 형태가 없어도 언어적인 표현만으로도 충분히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거야.
개념 미술의 목표는 관람객에게 지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야. 우리는 보통 아름다운 것을 보며 감동을 느끼지만, 개념 미술은 예술과 사물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거지.
철학과 예술의 만남: 조셉 코수스
또 다른 개념 미술가 조셉 코수스는 현대 미술을 철학과 연결지었어. 그는 20세기에 철학은 끝나고 예술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지. 왜냐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철학적인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유롭게 예술적인 생각을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야.
과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지식이 쏟아지면서, 사람들은 굳이 특정한 철학적 결론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게 됐어. 코수스는 이런 상황에서 철학은 생산적인 동력을 많이 잃었고, 대신 사람들의 영적인 욕구를 채우는 활동으로 예술이 기능하기 시작했다고 봤어.
코수스는 전통적인 예술이 이전 시대의 선입견에 의해 정의되었다고 말했어. 예를 들어, 그림을 그려야 예술로 인정받았던 것은 이전까지 사람들이 계속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이지.
하지만 뒤샹 이후로 예술은 이런 과거의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주장했어. 이제 예술은 과거의 작품들과 얼마나 비슷한가로 정의되지 않고, "이것이 예술이다"라고 선포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로서 존재하게 된 거야.
즉, 이제는 작품의 형태보다는 그것이 예술의 본성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고 어떤 새로운 것을 말했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는 거지. 형태적인 아름다움이나 감정적인 만족은 다른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술 고유의 영역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탐구가 되었다는 거야.
삶과 닮은 예술, 개념 미술
코수스는 개념 미술을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탐구라고 봤어. 쉽게 말하면,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지에 대한 탐구인 거지.
모든 현대 미술은 어느 정도 개념 미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 왜냐하면 모든 현대 미술은 예술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야.
코수스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하나이면서 세 신 의자'야. 물체로서의 의자, 그 의자를 찍은 사진, 그리고 의자의 사전적 정의가 함께 있어. 과연 이 셋 중 진짜 의자는 무엇일까?
이 작품은 예술 작품이 원본에서 멀어진 사진이 되거나, 물질성을 잃고 언어로만 존재하게 될 때 그 성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거야.
코수스는 특히 사전적 정의가 적힌 출력물이 얼마든지 버려지고 새것으로 교체될 수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어. 이를 통해 그는 예술과 제작의 관계를 질문하고 있어.
전통적으로 예술은 제작 과정에 의존했지만, 코수스는 예술 작품이 개념적인 형태로 존재한다면 더 이상 제작 과정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했어. 누가 어떻게 제작했든 상관없이, 의자의 사전적 정의는 그저 의자의 사전적 정의일 뿐이라는 거지.
이런 다양한 실험과 질문들이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촉발하는 것이 바로 코수스가 말한 현대 예술의 새로운 기능이야.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개념 미술은 우리의 삶과 가장 닮아 있는 예술일지도 몰라. 우리의 삶도 어떤 질문을 품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