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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일본 vs 실패한 한국, 운명을 갈라버린 결정적 순간!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한국과 일본, 왜 이렇게 갈라졌을까? (1부)

시작이 반이다! 근데 인류 역사에 딱 두 번의 중요한 시작이 있었대.

  1. 1차 산업 혁명 때: 이때 우리는 좀 실패했어. 뒤늦게 한강의 기적으로 따라잡긴 했지만...
  2. 지금, 4차 산업 혁명: 이걸 서양에선 '대분기'라고 부른대. 정보와 인공지능을 쓰는 시대인데, 우리가 아직 좀 삐딱하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이게 지금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과제인데, 이걸 제대로 안 하면 또 실패할 수 있다는 거야.

오늘 우리는 서울대 김태유 교수님과 함께 왜 일본은 문명을 잘 받아들여서 강대국이 되었고, 우리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특히 임진왜란 때는 우리가 앞섰던 것 같은데, 300년 뒤엔 일본이 세계적인 나라가 되었는데 우리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이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해.

임진왜란 이후, 300년의 격차

  • 조선: 300년 동안 당파 싸움만 했지 뭐...
  • 일본: 300년 동안 뭘 했길래 갑자기 강대국이 된 걸까? 심지어 우리가 백자 만드는 기술까지 알려줬는데 말이야.

결정적인 순간: 아편전쟁과 청나라의 실패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아편전쟁에서부터야.

  • 당시 중국: 차, 비단, 도자기를 유럽에 많이 팔았는데, 유럽은 중국에 팔 게 없었어. 그래서 중국으로 돈(은)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지.
  • 영국: 이 무역 불균형을 해결하려고 아편을 중국에 팔기 시작했어.
  • 결과: 중국은 아편 때문에 망가지고, 결국 영국과 아편전쟁을 하게 돼.

놀라운 사실: 당시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청나라가 작은 영국에게 졌다는 거야. 무기 차이 때문이었지. 영국은 철로 만든 증기선과 최신 총을 썼는데, 청나라는 목선과 화승총을 썼거든.

청나라의 양무운동 vs 일본의 메이지 유신

아편전쟁 패배 후, 청나라는 '무기가 나빠서 졌다!'고 생각하고 양무운동을 시작했어. 서양 기술을 배우려고 노력했지.

  • 양무운동 (1861년 시작): 서양 기술을 사들이고 기술자도 초빙했어. 사람들은 청나라가 강대국이 되었다고 생각했지.
  • 메이지 유신 (1868년 일본): 일본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

그런데 16년 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겨버린 거야. 이게 뭘 의미하냐면, 청나라의 양무운동은 실패했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성공했다는 거지.

왜 실패했을까? '동도서기' vs '화혼양제'

조선, 청나라, 일본 모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방식이 달랐어.

  • 조선 (동도서기): 동양의 도(道)에 서양의 기술을 접목하자. (우리 것 98%, 서양 것 2% 느낌)
  • 청나라 (중체서용): 청나라의 몸체(체제)에 서양의 용(기술)을 쓰자. (체제는 그대로, 기술만 도입)
  • 일본 (화혼양제): 일본의 혼(정신)에 서양의 재능(기술)을 합치자. (혼만 빼고 다 바꾸자!)

핵심은 '얼마나 바꾸느냐'였어.

  • 조선: '위정척사'를 외치며 서양 문물을 거의 배척했어. (하나도 안 받아들임)
  • 청나라: 기술 도입을 했지만, 체제를 바꾸지 않으려다 '변법자강운동'이 실패했지.
  • 일본: 혼만 빼고 다 바꿨어. 상투도 자르고 옷도 갈아입고, 모든 것을 서양식으로 바꿨지.

일본의 '대양론'과 요시다 쇼인

일본은 페리 제독의 흑선(군함)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 "서양 오랑캐를 제압하는 올바른 방법은 서양 기술을 배워서 제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 요시다 쇼인: 서양 기술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고, 제자들에게 '대양론'(서양을 배우자는 것)을 가르쳤어. 그의 제자들이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지.

한국의 '병인양요'와 잘못된 판단

반면 우리는 프랑스와의 병인양요에서 이겼어. 하지만 이겼다고 해서 안심하고 오히려 서양 문물을 더 배척하게 되었지.

  • 양헌수 장군: "우리 총은 100보 나가는데, 서양 총은 500보 나간다"고 보고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겼다고 주장했어.
  • 흥선대원군: '척화비'를 세우며 "서양과 화친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라고 했지.

결론적으로, 같은 충격을 받았지만 일본은 변화를 선택했고, 우리는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려 했다는 거야.

다음 시간에는 이 차이가 왜 생겼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 깊이 이야기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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