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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솔로 28기 영자♥영철, 유산·두 번째 이혼…'돌돌싱'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영철 영자 커플 이혼, 영자님께 드리는 이야기

28기 영철 영자 커플이 다시 이혼했대. 재혼했다가 또 이혼했으니 이제 두 분 다 '돌돌싱'이 된 거지.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야. 특히 영자님은 임신까지 했다가 유산까지 했다고 하니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미 새로운 가족을 꿈꿨을 텐데, 결혼도 끝나고 아이까지 떠나보낸 상실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거야. 영자님은 충분히 위로받아야 마땅해.

그런데 말이야, 이런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영자님은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봐야 해. 왜 인생에서 이렇게 큰 실수를 비슷한 방식으로 두 번이나 하게 된 건지 말이야. 첫 번째 결혼이 끝난 뒤 뭘 깨달았고, 그 깨달음이 두 번째 배우자를 고르는 데 어떻게 반영됐는지 냉정하게 봐야 해. 이걸 깨닫지 못하면 다음에도 또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거든. 사람만 바뀌고 사건의 구조는 그대로일 수 있다는 거지.

결혼 한 달 만에 상담소에 간 이유

이 커플은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부부 상담소에 나왔어. 청첩장 받은 친구들이 "신혼 생활 어때?"라고 물어볼 시점에 말이야. 신혼집 보호 필름도 다 떼지 않았을 수 있는 때에 벌써 상담소를 찾은 거야. 문제는 '신뢰'였어.

영철님이 방송에 나오면서 인터넷에 여성 관련 댓글과 루머가 많이 퍼졌다고 해. 방송에서 공개된 댓글 내용은 꽤 충격적이었어. "바람피우고 상관녀랑 동거하다 헤어진 사람이 재혼한다", "또 바람나지 않기를", "이혼 판결문 잘 숨기자" 같은 내용이었지. 심지어 "나는 더 자세히 알지만 말하지 않겠다", "방송에 나오는 걸 보니 관종의 결정체다" 같은 댓글도 있었다고 해.

배우자의 과거를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누구라도 불안할 수밖에 없어. 특히 영자님은 첫 결혼에서도 알지 못했던 사실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잖아. 그래서 저런 댓글을 보는 순간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을 가능성이 높아.

영철님 루머 vs. 영자님의 선택 능력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를 잘 잡아야 해. 영철님 루머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알 수 없어. 댓글을 쓴 사람이 진짜 관계자인지, 아니면 방송에 나온 사람을 상대로 자극적인 이야기를 지어낸 건지도 알 수 없지. 그러니까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사실처럼 단정해서는 안 돼.

반대로 영철님에게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영철님이 책임을 져야 해. 거짓말을 했다면 거짓말에 대한 책임을, 중요한 과거를 숨겼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

하지만 영철님의 잘못을 100번 확인한다고 해서 영자님의 배우자 선택 능력이 저절로 성장하는 건 아니야. 댓글에서 사람들이 영철님을 욕한다고 해서 영자님의 다음 결혼이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잘못은 상대방의 영역이고,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어떤 방식으로 내렸는지는 내가 점검해야 할 영역이야. 이 둘을 구분해야 해.

음악과 자아, 그리고 아마추어 밴드

솔직히 말하면, 방송에서 본 영철님 모습만으로는 남자답다거나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지는 못했어. 비판하려고 마음먹으면 28기 내용만으로도 영상 몇 편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특히 '아마추어 음악 밴드 보컬을 만날 때 주의할 점'이라는 주제로 말이야.

물론 음악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위험한 건 아니야. 음악을 하면서도 성실하고 겸손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지. 그런데 음악은 술과 비슷해서 사람을 취하게 만들 수 있어. 무대에 서서 조명을 받고, 사람들이 자기 노래에 반응하고, 노래가 끝난 뒤 박수를 받으면 자기 존재가 평소보다 훨씬 크게 느껴질 수 있거든. 낮에는 직장에서 엑셀 파일 만지던 사람이 밤에는 밴드의 프론트맨이 되는 거지. 자아가 취하기 좋은 환경이야.

그래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음악에 취해야 해. 그리고 취한 상태를 제어하려면 음악적인 연마가 필요해. 예를 들어 기타리스트도 노래를 제대로 소화하려면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잖아. 기술을 연마할수록 음악 세계가 얼마나 거대하고 정교한지 알게 되고, 자기 실력의 한계를 확인하면서 겸손해질 수 있지.

그런데 일부 아마추어 직장인 밴드 보컬들은 이런 훈련의 밀도가 낮을 수 있어. 악기 다루는 사람처럼 손가락 움직임이나 음 하나를 끊임없이 교정하지 않고도 마이크 잡고 노래할 수는 있거든. 그래서 연습과 도취를 혼동하기 쉬워. 노래를 몇천 시간 불렀다고 해서 그게 전부 연습은 아니야. 정확한 피드백 없이 코인 노래방에서 도파민에 취해 몇천 시간 동안 놀 수도 있다는 거지.

연습이라면 음정, 발음, 호흡, 프레이징을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잘못된 습관을 교정해야 해. 그런 과정 없이 잘못된 방식으로 천 시간 동안 노래하면 실력이 천 시간만큼 느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안 좋은 버릇만 강화될 수 있어. 자신감은 커졌는데 실력은 그대로일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무대에서는 조명을 받고 박수까지 받으니 실제 실력보다 자아만 훨씬 커질 수 있지.

영철님이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하지 않을게. 다만 영자님은 배우자를 선택하기 전에 이 취미가 그 사람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확인했어야 해. 밴드 활동이 건강한 주말 취미인지, 인간관계가 생활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이성 멤버들과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결혼 후에도 부부 생활과 충돌하지 않을 수 있는지 파악했어야 한다는 거지. 누군가에게 음악은 자아를 다듬는 수련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아를 부풀리는 펌프가 될 수 있어.

영자님의 선택과 판단: 첫 번째 결혼에서 배운 것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영자님께 피드백을 드리고 싶은 부분은 '선택과 판단'이야. 첫 번째 결혼과 재혼 사이에 유의미하게 발전한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야.

영자님은 첫 결혼 당시 시댁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 결혼했다고 해. 나는 여기서부터 이해하기 어려워. 결혼은 두 사람만 좋아한다고 완성되는 이벤트가 아니잖아. 특히 한국에서 결혼은 서로의 가족과 생활 방식, 경제 관념, 책임 구조까지 연결되는 일이야.

시댁이 부자인지 가난한지를 확인하라는 게 아니야. 집이 몇 평인지 보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 가족이 서로에게 어떤 말투를 사용하는지, 갈등이 생기면 대화하는 사람들인지, 중요한 사실을 숨기는 사람들인지, 부모와 성인 자녀 사이에 건강한 경계가 있는지 확인해야 해. 배우자가 자기 부모 앞에서도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봐야지.

한 번 방문했다고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것과는 완전히 달라. 하다못해 몇십만 원으로 주식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찾아보고 최소한의 공부를 하고 매수하잖아. 그런데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비즈니스를 하면서 상대방 가족에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몇십만 원짜리 주식을 살 때보다 자기 인생 전체를 거는 결혼에서 실사를 덜한 거야. 이건 사랑의 눈이 먼 게 아니라 실사팀이 출근하지 않은 거지.

많은 사람이 영자님을 착한 사람으로 보고 피해자라고 생각해. 물론 착한 사람도 피해자가 될 수 있어. 상대가 중요한 사실을 숨겼다면 영자님이 착하든 영악하든 피해를 본 건 맞지. 그런데 '착하다'는 평가만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착한 것과 사람을 볼 줄 아는 것은 다른 능력이야. 선한 의도를 가진 것과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도 다르고.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해서 남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건 아니야. 세상은 착한 사람에게 자동으로 안전모를 씌워주지 않아.

영자님은 세상에 "나는 나쁜 의도가 없으니 알아서 저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라고 말하는 상태에 가까워 보여.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알아서 날 잡아먹으세요"라고 자신을 열어 놓은 상태인 거지.

영자님, 세상은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야.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추악한 곳이지. 따뜻한 사람도 있지만, 타인의 신뢰와 외로움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어. 중요한 건 세상을 무조건 믿을 것이냐, 모든 사람을 의심할 것이냐가 아니야. 두 면이 모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거야. 내가 깨닫고 성장하면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있어. 듣기 좋은 말보다 반복되는 행동을 보게 되고, 불편한 신호를 사랑으로 포장하지 않게 되지.

삶이라는 오픈월드 게임에서 내 실력이 늘었기 때문이야. 프로 게이머들은 아무것도 없는 화면에서 위험을 먼저 보고, 적이 나타나기도 전에 어디서 공격이 들어올지 예측하잖아. 반대로 현실에서 착하고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라도 게임 실력이 형편없다면 게임에서는 계속 질 수밖에 없어. 게임은 그 사람의 선한 마음을 보고 상대 팀의 공격력을 낮춰주지 않아. 착한 사람도 미니맵을 보지 않으면 갱을 당해.

롤은 그래도 티어별로 매칭이라도 해주지만, 세상은 티어별로 매칭해주지 않아. 세상은 초보자 보호 서버가 아니야. 관계 경험이 부족한 사람 앞에 사람을 속이는 데 능숙한 사람이 나타날 수 있어. 오늘도 세상에는 '승냥이'들이 낮은 티어의 먹잇감을 찾아 돌아다녀. 상대가 착하다는 이유로 멈추지 않아. 오히려 거절하지 못하고, 확인하지 않고 사람을 쉽게 믿어주는 성향을 먹잇감의 특징으로 볼 수도 있지.

그런데 영자님은 첫 결혼과 재혼 사이에 이 '게임'을 읽는 능력을 유의미하게 높이지 못한 것으로 보여.

첫 번째 결혼의 상처와 '치료' 방식

첫 결혼 당시 영자님은 전 남편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했어. 영자님이 알지 못했던 빚이 있었다는 거지. 결혼에서 채무는 사소한 정보가 아니야. 앞으로 함께 살아갈 사람의 생활과 계획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핵심 정보인데 말이야. 그런데 전 남편은 "말을 안 한 것이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결혼을 앞둔 사람에게 반드시 알려야 할 사실을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면, 단순히 침묵했을 뿐이라고 빠져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상대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핵심 사실을 숨긴 것 역시 기망이 될 수 있어. 은행에서 소득만 말하고 기존 채무는 숨긴 뒤 "제가 거짓말은 안 했습니다. 물어보지 않으셨잖아요"라고 하면 통하겠어? 결혼은 은행 대출보다 훨씬 큰 신뢰를 요구하는 거야.

전 남편과 이혼한 뒤 영자님은 "앞으로도 누군가를 만나면 비슷한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이성과의 만남 자체를 단절했다"고 말했어.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 대한 '치료'였다고 했지.

여러분, 문제가 보이시나요? 상처를 받은 직후 일정 기간 사람을 만나지 않고 쉬는 것은 필요할 수 있어. 하지만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 자체가 곧 치료는 아니야. 운전하다 사고가 났다고 평생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당장은 또 사고가 나지 않겠지. 그렇다고 운전 실력이 좋아진 건 아니잖아. 그냥 도로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를 경험하지 않았을 뿐이야.

이성과의 만남을 끊어 안전하다고 느꼈을 수는 있어.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사람을 보는 눈이 성장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야. 왜 전 남편의 빚을 결혼 전에 확인하지 못했는지, 상대가 불편한 질문을 피할 때 왜 더 깊게 묻지 못했는지, 가족과 생활 환경을 왜 확인하지 않았는지 돌아봤어야 해. 사람을 무조건 끊기보다, 결혼 같은 큰 결정은 하지 않은 채 다양한 사람을 천천히 만나 볼 수도 있었어. 말과 행동의 차이를 관찰하고, 상대가 불편해하더라도 필요한 질문을 하는 훈련을 했어야 해. 사람을 만나되 결정을 늦추는 법을 배웠어야지. 감정이 생겨도 확인이 끝나기 전까지 인생의 열쇠를 넘기지 않는 법을 배웠어야 해. 그런데 그런 과정이 충분히 보이지 않아.

재혼에서의 신뢰 문제와 경제적 투명성

그리고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혼에 이르게 되었어. 영철님과 재혼했지만, 영철님에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했지. 저런 댓글까지 봤으니 더욱 신뢰가 흔들렸을 거야. 그래서 영자님은 영철님에게 이혼 조정서나 과거 이혼 관련 서류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어.

정당한 요구야. 이미 구체적인 루머가 퍼지고 있으니 배우자가 과거를 투명하게 설명해야 앞으로의 신뢰를 만들 수 있지. 그런데 이 요구는 결혼 후가 아니라 결혼 전에 했어야 해. 계약서에 도장 찍고 입주까지 끝낸 뒤 등기부등본을 떼보는 것과 비슷하잖아.

영철님이 만약 서류 공개를 거부하면서 "왜 나를 믿지 못하느냐"고 말했다면, 영자님은 이렇게 말했어야 해. "신뢰는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이다. 나에게 너를 믿으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근거를 보여줘라. 이것은 너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관계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확인이다." 이 정도의 요구를 굳건하게 유지할 수 있었어야 해. 상대가 서운해하거나 사랑을 의심해도 물러나지 말아야 했지.

사랑과 검증은 반대말이 아니야.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투명하게 확인해야 해. 하지만 추측건대 영자님은 이 포지션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어. 정확한 대화 내용은 두 사람만 알겠지만,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신뢰 문제로 상담 방송까지 나왔다는 것은 결혼 전에 이 문제가 충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보여. 근본적인 확인 없이 해명과 감정적인 진정만 반복하면 신뢰는 회복되지 않아. 의심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하실로 내려가 몸집을 키울 뿐이야.

영자님에게 필요했던 것은 "이번만 믿어보자"는 결심이 아니었어. 확인할 것을 확인하고, 확인되지 않으면 관계를 멈출 수 있는 기준이었지.

경제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야. 영자님은 영철님이 얼마를 벌고 어디에 얼마를 쓰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결혼했다고 해. 첫 결혼에서 몰랐던 빚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면, 재혼에서는 경제적인 투명성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항목이었어야 해. 채무가 있는지, 밴드와 취미 생활에 얼마를 사용하는지, 저축과 보험, 노후 계획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결혼 후 생활비는 어떤 방식으로 부담할 것인지 확인했어야 해.

돈 이야기를 하면 사랑이 훼손되는 게 아니야. 돈 이야기를 피한 채 결혼하면 나중에 사랑이 돈 때문에 훼손될 가능성이 커져. 결혼은 감정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생활은 숫자로 굴러가. 월세와 관리비는 두 사람의 사랑에 감동해서 할인해주지 않아. 카드 명세서는 운명적인 만남을 존중해서 결제를 미뤄주지 않아.

첫 결혼에서는 몰랐던 빚이 문제였고, 재혼에서는 상대의 소득과 지출을 충분히 모른 채 결혼했어. 등장인물은 달라졌지만, 의사 결정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여.

이번 일이 다행일 수도 있는 이유

자,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영철님이 정말 이상한 인간인지 아닌지만 따지는 것이 영자님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영철님의 책임을 확인하는 것은 필요해. 하지만 영자님의 미래를 바꾸는 핵심은 거기에만 있지 않아.

내가 볼 때는 오히려 이번 일이 이 정도에서 끝난 것이 다행일 수도 있어. 영자님은 며칠 전 입장문에서 영철님과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고, 경제적인 부분도 각자 부담했기 때문에 별도로 정리할 재산이나 금전 문제는 없다고 밝혔어. 그렇다면 적어도 법적, 경제적인 피해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거지. 감정적으로는 큰 상처를 받았고 유산이라는 고통까지 겪었지만, 채무와 재산 분쟁까지 남은 것은 아니라는 거야.

내가 왜 이 정도라서 다행이라고 말씀드리는지 이해해야 해. 영철님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별개의 문제야. 하지만 영자님의 사람 보는 방식과 결혼을 결정하는 과정을 보면, 영철님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람을 만날 가능성도 점검해야 해. 공동 명의나 대출을 요구하는 사람, 사업이나 가족 문제를 핑계로 돈을 요구하는 사람, 처음에는 다정하게 행동하다가 재산이 얽힌 뒤 태도를 바꾸는 사람. 그런 사람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믿었다면 돈이나 재산까지 탈탈 털려도 이상하지 않았을 수 있어. 최소한 영철님에게 돈까지 털린 것은 아니잖아.

내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이해가 될까? 이건 영철님을 칭찬하는 말이 아니야. 이번 사건이 법적, 경제적으로 더욱 큰 재앙이 되기 전에 끝났을 가능성을 보라는 거야.

반복되는 삶의 패턴과 '세계선'의 변화

정리해 볼게. 여러분, 제가 여러분께 강조해 드린 바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내가 접속한 무의식의 위상이 반복해서 경험되는 하나의 장이라는 거야. 내 안에 정리되지 않은 패턴이 있으면 사람과 장소가 바뀌어도 비슷한 사건이 반복돼.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두 번째는 운이 없었다고 말해. 그런데 등장인물은 바뀌는데 결말의 구조가 같다면, 이제 바깥의 사람만 볼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선택 장치'를 봐야 해.

왜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 상대를 믿는가? 왜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필요한 질문을 하지 못하는가? 왜 관계가 끝난 뒤에는 모든 만남을 끊고 다음 관계에서는 같은 검증을 또 생략하는가? 이런 질문을 해야 해.

반복해서 발생하는 동일한 사건이 보인다면, 제가 말하는 의미에서는 그것이 칼 융의 동시성이자 카르마이고, 영화 '매트릭스'로 치면 '데자뷰'야. 매트릭스에서 검은 고양이가 똑같이 두 번 지나가면 시스템 안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신호잖아. 우리 삶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면, 또 운이 없었네 하고 지나갈 일이 아닐 수 있어. 우주가 여러분에게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거야. "사람은 바뀌었지만 네 선택 방식은 그대로다." 그런데 이 신호를 무시하면 같은 일이 반복돼. 세계선이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야.

인생의 세계선은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고 자동으로 바뀌지 않아.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이름이 달라진 것은 세계선의 변화가 아니야.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과 불편한 신호 앞에서 행동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진짜 세계선이 바뀌는 거야.

어제 영수님 리뷰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다음 차원의 그림자라는 인식을 가져야 해. 첫 결혼에서 발생한 채무 문제와 재혼에서 발생한 신뢰 문제는 표면적으로 다른 사건이야. 하지만 두 사건 모두 결혼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핵심 정보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다는 동일한 구조를 공유할 수 있어. 첫 결혼에서는 채무를 몰랐고, 재혼에서는 수입과 지출을 제대로 몰랐고, 과거와 관련된 신뢰 문제도 결혼 전에 끝까지 정리되지 않았지. 겉으로 보이는 그림자는 다르지만, 다음 차원에서 바라보면 비슷한 입체가 만든 그림자일 수 있다는 거야. 그래야 '여집합'이 보여. 상대가 말해 준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왜 특정 부분은 말하지 않는지 보게 되는 거지. 말과 말 사이에 틈이 보이고, 설명 속에 여백이 보여. 그리고 바로 그 틈과 여백에 변화의 문이 있어.

안타깝게도 영자님은 첫 결혼과 재혼 사이에 이러한 변화가 충분히 보이지 않았어. 사람을 만나지 않는 방식으로 상처를 피했지만, 사람을 보는 눈을 훈련하지는 못했지. 첫 결혼의 상처는 기억했지만, 그때 놓쳤던 신호를 다음 관계의 기준으로 바꾸지는 못했어. 그래서 또 상처받았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이 또 다른 깨달음의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이번에도 나는 '나쁜 남자'를 만났다는 결론으로만 끝내면 변화하기 어려워. 하지만 내 삶에서 반복되는 원치 않는 위상이 무엇인지 확인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져.

앞으로의 관계를 위한 조언

앞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면 관계의 속도를 늦춰야 해. 좋아하는 감정과 결혼해도 된다는 판단은 다른 거야. 채무와 소득, 지출과 재산은 "나를 믿어 달라"는 말로 대신하지 말고 직접 확인해야 해. 상대의 가족과 생활 환경도 봐야 하고. 불편한 질문을 했을 때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확인해야 해. 확인을 요구할 때마다 화를 내고 사랑을 의심하며 죄책감을 준다면, 그 반응 자체가 중요한 정보야.

그리고 결혼하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보다, 현재 반복해서 보여주는 행동을 봐야 해. 깨달음은 단순히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야.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해. 깨달았다고 말하면서 다음 사람에게 또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고 결혼한다면, 깨달은 것이 아니야. 진짜 깨달음은 행동을 바꿔.

내 상태가 변하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선택이 변하고, 선택이 변하면 경험하는 세계도 달라져. 그렇기에 영자님은 이번 일을 단순히 실패한 재원으로만 남겨서는 안 돼. 첫 결혼과 재혼을 나란히 놓고 냉정하게 복귀해야 해. 두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보였던 신호는 무엇이었는지, 어떤 순간마다 확인을 포기했는지, 무엇이 두려워 필요한 질문을 하지 못했는지, 사람 갖고 싶은 마음이 사실을 보는 눈을 가리지는 않았는지 살펴봐야 해.

자기 잘못을 본다는 것은 상대방의 책임까지 대신 짊어진다는 뜻이 아니야. 상대의 책임은 상대에게 돌려주고, 내가 바꿀 수 있는 영역을 정확하게 가져오는 일이야. 영철님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영철님의 몫이고, 영자님이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결정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앞으로 영자님이 바꿀 수 있는 몫이야. 피해를 받았다는 사실과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어. 영자님은 분명 상처받았어. 동시에 이번 일을 통해 성장해야 해. 성장이 없다면 상처는 고통으로만 끝나. 하지만 성장이 있다면 이 고통은 다음 삶을 지키는 데이터가 될 수 있어.

이 부분을 꼭 천천히 묵상해 보시기 바라. 정말 중요한 부분이야. 왜 내 삶에서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지 깨달아야 해. 깨달으면 변해. 내 상태가 변하면 같은 사람이 다가와도 더 이상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아. 예전에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강요가 통제로 보이고, 믿음이라고 생각했던 무모함이 자기 포기로 보이기 시작해. 그 순간 세계가 달라져.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야. 새로운 내가 그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에 달라지는 거야.

영자님이 이번 일을 통해 인식의 차원을 다음 단계로 올릴 수 있기를 바라. 자신은 '돌돌돌돌돌돌싱'이라는 말이 농담으로라도 등장하지 않도록, 다음 관계를 서두르기 전에 자기 안의 선택 구조부터 충분히 들여다보셨으면 좋겠어. 그리고 언젠가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때는 눈을 감고 믿는 사랑이 아니라 눈을 뜨고도 믿을 수 있는 사랑을 선택하시기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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