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의" 잘못 알았네! 불교용어 속 숨겨진 진짜 진실 (고광스님 1강)
스님, 왜 절에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부처님은 대체 뭘 깨달았다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고광 스님이라고 해요. 충청북도 단양에 살고 있어요. 86년도에 스님이 되어서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공부했고, 선방에서 수행도 하고 미얀마에서도 수행하는 등 여러 가지 경험을 해봤어요.
왜 스님이 되기로 결심했을까?
사실 저는 어릴 때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어요.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불교로 개종을 하셨어요. 절에서 가져오신 불경들을 보면서 저는 너무 궁금했어요. '대체 절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길래 어머니가 저렇게 열심히 책을 읽으실까?' 하고요.
어머니가 출근하신 뒤 몰래 불경을 읽어봤는데,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더라고요. '어떻게 3천 년 전 사람이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어서 제 인생을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출가를 결심했죠.
불교 공부,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대학교에서 불교학과를 다니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 안 되는 이야기들만 나왔어요. '부처님은 대체 뭘 깨달았길래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 앞뒤도 안 맞고...' 답답했죠.
더 이상한 건, 학교에서는 사성제, 팔정도 같은 기초 교리를 배웠는데, 선방에 가니까 배운 걸 다 버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모르니까 따라갔어요. 몇 년 동안 선방에 다니다 보니 기억력이 점점 사라지고 멍청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부처님은 분명 세세하게 말씀하셨는데, 왜 나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걸까? 이거 잘못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매번 수행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엔 제대로 해보자!' 하고 다짐했지만, 끝나고 나면 다 잊어버리고 원상태로 돌아오는 걸 반복했어요.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진짜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아서
그래서 다시 부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을 제대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부러 대학원 선학과에 가서 참선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지도 교수님께서 "왜 왔냐? 여기는 논문 쓰는 데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정말 막막했지만, 어떻게든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본어도 공부하고 한 학기를 보냈는데, '이 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가한 지 20년쯤 되었을 때, 이제 40살이 되니 앞으로 계속 절에 있어야 할지, 나가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이대로 가다가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고, 나가서 뭘 할 수 있을지도 막막했죠.
솔직히 말하면, 20년 동안 승려 생활을 한 제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가서 사는 게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도피하듯 미국으로 가게 됐어요.
미국에서의 만남,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
미국에 갔는데, 우연히 만난 거혜 스님이라는 분이 제 인생을 바꿔놓으셨어요. 이 스님은 우리나라에 남방 불교를 처음 소개하신 분인데, 처음에는 정말 마음에 안 들었어요. 새벽 예불 때 혼자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시거나, 더운 날씨에 웃통을 벗고 다니시는 모습이 이해가 안 갔죠. 남방 스님들께 탁발을 많이 해 오셔서 먹고 싶은 것만 골라 드시고 나머지는 버리거나 청소하시는 분께 주는 모습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저런 스님이 다 있나?' 싶었죠.
그러다 우연히 스님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었어요. 돌아오는 길에 11시간 동안 스님과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제가 궁금했던 것들을 이것저것 물어봤죠. 그런데 스님은 제 질문에 너무나 상세하고 친절하게 대답해주셨어요.
그때까지 저는 선배 스님들께 깨달음에 대해 물어보면 "네가 신심이 부족해서 그래!"라고 윽박지르거나, "삼천대천 세계가 다 불법인데 뭘 그런 걸 묻냐!"는 식으로 얼버무리셨거든요. 그런데 거혜 스님은 제가 수행하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시며 "너는 이때 이걸 잘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어요.
그때 다시 수행에 대한 열정이 타올랐어요. '아, 여기에 길이 있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죠. 포기하려고 갔던 곳이었는데, 스님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어머니를 모시며 깨달은 진실
얼마 후, 미국 절의 주지 스님이 돌아가시면서 저에게 절을 부탁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거혜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미얀마로 가서 수행하겠다는 마음이 굳어졌었죠. 거혜 스님께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쭤봤더니, "주지는 나이 들어서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수행에 대한 마음이 있을 때 안 하면 못 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바로 미얀마로 떠났어요.
그런데 미얀마에서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어요. 돌아오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요양원에 계셨죠. 어머니의 눈빛을 보니 오래 사실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옆에서 모시기로 결심했죠.
어머니를 모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고, 식사도 일일이 챙겨드려야 했죠. '이게 정말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3년이 지나도 돌아가시지 않았고, 저는 17년 동안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어요.
어머니를 모시면서 제 궁금증은 더욱 커졌어요. 어머니가 아프셨을 때 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들을 해봤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어요. 오히려 환자를 잘 살피고 문제점을 파악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했어요.
'내가 믿고 있는 불교가 정말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큰 스님들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전혀 효과가 없었던 거죠. '내가 믿는 관세음보살, 부처님은 능력이 없는 분인가? 그렇다면 굳이 계속 믿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용어의 올바른 정의, 그것이 길을 열어주었다
그래서 저는 다시 경전을 보기 시작했어요. 목표를 향해 가려면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향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니까야를 읽었는데, 어떤 부분은 이해가 되지만 어떤 부분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가고 앞뒤가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두 번째로 한역 아함경을 읽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한글 번역본도 이해가 안 돼서, 그냥 한문으로 된 원문을 소리 내서 계속 읽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부처님의 용어 정의를 발견하기 시작했어요. '아, 번역에도 규칙이 있구나!' 하고 깨달았죠. 제가 알고 있던 불교 상식과는 다르게, 부처님이 설명하신 사성제, 팔정도, 12연기 같은 개념들이 너무나 달랐어요.
그래서 부처님이 단어를 어떻게 정의했는지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죠. 지금 우리가 쓰는 한문과 천 년 전에 번역될 때 쓰였던 한문은 의미와 용법이 다르다는 것을요. 당시의 언어로 이해해야 경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귀의'의 진짜 의미
오늘 강의하려고 하는 '귀'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보통 '돌아가 의지한다'고 번역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죠. '돌아갈 기자'와 '부인을 뜻하는 부자'가 합쳐진 글자인데, 옛날 중국에서는 결혼하면 남자가 처가에서 몇 년 살다가 여자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돌아간다'는 의미가 생겼어요. 또 여자의 입장에서는 남자를 따라가는 것이기에 '쫓아간다'는 의미도 있죠.
그래서 '귀'라는 단어에는 '돌아간다'는 뜻과 함께 '쫓아간다', '투항한다', '순종한다'는 뜻도 있어요. 인도 산스크리트어 '나마스'가 '상대방에게 투항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게 불교에서는 '나무'로 번역되어 '귀의'와 연결되는 거죠.
'나무 아미타불'이라고 할 때, '나무'는 아미타불에게 순종하겠다는 의미이지, 돌아가서 의지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던 거예요.
나는 정말 부처님께 귀의했는가?
저는 수십 년간 승려 생활을 했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부처님께 제대로 '귀의'한 적이 없었어요. 부처님의 논리에 수긍하고 따르기 위해 출가한 것이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출가한 것이었죠. 부처님이 가르치신 것과는 다르게, 모든 것을 해결해주실 거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었던 거예요.
부처님은 경전에서 그런 말씀을 한 적이 없으셨는데도 말이죠. 저는 다른 사람이 정리해 놓은 불교를 통해 공부했고, 그것은 부처님이 가르치신 불교가 아니었어요.
아함경을 읽으면서 제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죠. 사실 제가 바로잡은 것은 많지 않아요. 이미 알고 있던 개념이었지만, 용어를 잘못 정의해서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었을 뿐이에요.
용어의 올바른 정의로 삶을 바꾸자
용어에 대한 바른 정의를 가지고 부처님의 법을 보면, 안 보였던 것이 보이기 시작해요. 전혀 어렵지도 않고, 고민할 것도 없어요.
부처님은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으셨고, 그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전하셨어요. 그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면 6년보다 훨씬 빨리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요. 실제로 부처님의 첫 제자들은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죠.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무엇을 깨달았는지 알아내는 데는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어렵지 않아요. 어렵다면 이상한 거예요.
컴퓨터가 서로 대화하기 위해 '프로토콜'이라는 약속을 사용하는 것처럼, 부처님도 용어를 사용하실 때 그 나름의 정의와 규칙이 있었어요. 저는 그 규칙을 지키지 않고 제 식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헤맸던 거죠.
이 '프로토콜'만 바로잡으면 불교는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어요. 그러면 삶이 완전히 달라져요. 욕심이 사라지고, 싫어했던 사람도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죠. 인생의 최고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돼요.
우리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부를 때, 정말로 부처님께 귀의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건지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