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아내의 하루 운전기사! 💰 노후에 깨달은 진짜 사랑 이야기 (감동 실화)
어느 토요일 아침, 시작된 이야기
토요일 아침, 친구들은 캠핑, 낚시, 골프를 즐기러 나갔지만 나는 정장을 입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출근 카드를 찍고 있었어. 왜냐고? 우리 부서 이사님이 자기 차를 아파트 주차장에 갖다 놓으라고 했거든. "김대리, 오늘 내 차 좀 집에 가져다놔. 집 주소 알지? 열쇠는 조수석 글로브 박스 안에 있어." 금요일 밤, 일 마치고 나온 이사님의 이 한마디가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렸지. 혼잣말로 "내가 노예냐?"라고 중얼거렸지만,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어.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고 웃었지.
그런데 아침에 갑자기 전화가 왔어. "오늘 와이프가 차 쓸 거야. 경비실 맡기지 말고 직접 전달해 줘. 차 앞에서 전화해." 차 열쇠 건네주는 게 뭐 대단한 정성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내가 택배 기사도 아니고 그냥 '머슴'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
차를 몰고 이사님 댁 아파트에 도착했을 땐 이미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 고급차라 크고 무거웠고, 정신없이 몰다 보니 두통까지 올라왔어. 전화했지. "사모님, 차 갖고 왔습니다." 그런데 차가운 목소리로 딱 한마디 하더군. "잠깐 기다리세요." 휴. "네." 사모님,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겨우 삼켰지.
기다리면서 괜히 주변을 둘러봤어. 이 동네 참 잘 살더라. 흔한 고급 빌라들 사이로 조용한 정원이 있었고, 나무 그림자가 흙바닥에 늘어져 있었지. 그때였어. 멀리서 한 여자가 걸어왔어. 정확히는 '흘러왔다'고 해야 할까? 치마 끝이 허벅지 중간을 간지럽히는 그 길이, 슬리퍼인데도 발끝에 힘이 실린 그 걷는 모양새, 햇살이 부드럽게 감싼 어깨와 목선 아래로 매끈하게 드러난 팔목… 숨이 막혔어.
그녀가 가까이 다가와 물었지. "남편이 보냈어요?" "네."라고 대답했지만 목소리가 떨린 건 착각만은 아니었을 거야. "운전 좀 도와달라고 말 안 했어요?" 한 박자 멈춘 뒤 그녀는 문을 열고 뒷좌석에 앉았어. "타요. 좀 멀리 가야 했어요." 뒷좌석이었어. 조수석도 아닌 뒷좌석에 아주 태연하게 명령하듯이 말이야. "어디로 가면 될까요?" "황원한 의원이요. 시흥동이 있어요. 내비 찍고 가요. 시간 좀 걸릴 거예요." 목소리는 나긋했지만 시선은 거울을 통해 나를 뚫고 지나갔지.
운전을 시작하자마자 그녀는 눈을 감았어.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지. 시선이 자꾸 뒷좌석으로 향했어. 치마 아래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다리가 길었어. 탄력이 있었고 섹시했지. 땀이 흘렀어. 햇살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욕망이 목덜미를 당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야. 이 여자가 저 못생긴 배 나온 이사님의 아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어. 그렇게 매끄럽고 야한 여자가… 차는 천천히 동네를 빠져나가고 있었어. 이상했어. 오늘따라 유난히 도로에 소음이 많았고 엔진 소리도 평소보다 더 크게 들렸지. 내 심장 소리 때문이었을지도.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 여자를 한번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게 모든 시작이었지.
운전은 한 시간 넘게 걸렸어. 그녀는 그 긴 시간 내내 눈을 감고 있었고, 나는 100미터 너머로 다리선이 드러난 치마 자락을 외면하지 못했어. 차 안은 조용했어. 창밖 풍경은 변했지만 내 머릿속은 정체된 채 단 하나의 생각만 맴돌고 있었지. '이 여자 왜 이렇게 야하지? 내가 미친 건가? 상사의 아내인데.' 뒷좌석에서 그녀가 살짝 몸을 움직이는 순간, 치마 자락이 허벅지를 따라 몇 센티 더 흘러내렸어. 순간적으로 시선을 뺏긴 내 눈을 그녀가 알아챈 건 아닐까,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지.
도착하자 그녀는 미동도 없이 말했어. "잠깐 약 좀 받아올게요. 기다려 줘요." 그녀는 내리면서도 시선을 주지 않았어. 운전석에 남겨진 나는 손등에 소금을 뿌린 듯 따끔했어. 그게 수치인지 흥분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기묘한 감정이었지. 약 봉투를 들고 돌아온 그녀는 문득 이런 말을 꺼냈어. "여기서 호텔까지 가줘요. 친구 좀 만나야 해서." 차를 돌리는 순간 무언가 무너졌어. 이건 업무가 아니었어. 이건 신부름도 아니었지. 그냥 내가 이 여자의 하루 일정을 위한 기사가 되어 가는 기분이었어.
호텔 앞에서 그녀는 말했어. "30분이면 나올게요.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요." 딱 그 말만 남기고 그대로 들어가 버렸지. 나는 핸들을 붙잡고 아무것도 못 한 채 앉아 있었어. 창밖으로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졌고, 나는 다시 고개를 떨군 채 속삭였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진짜 이게 뭐야?"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한참 후 그녀가 나왔을 땐 어깨에 다른 백이 하나 더 들려 있었어. 그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지. "고마워요. 덕분에 편하게 다녔네. 근데 김대리 나이 어떻게 되지?" 잠깐 머뭇하다 대답했어. "저 45입니다." 그녀가 멈춰 섰어. "동갑이네. 난 당신보다 나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 한마디에 마음속에서 이상한 균열이 생겼어. 이름도 사적인 대화도 없던 그녀가 갑자기 동갑이라는 말을 꺼내며 미소지었다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오래 머릿속에 남았지.
돌아가는 길, 그녀는 다시 조용히 눈을 감았고, 나는 100미터 너머 그녀를 보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결국 몇 번이나 그 허벅지 위로 다시 내려앉은 치마 자락을 훔쳐보고 말았어. 차를 집 앞에 대자 그녀는 문을 열며 말했어. "수고했어요. 다음에 또 부탁할 일 있을 수도 있어요." 그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 그녀의 말투엔 명확한 여운이 있었고, 그 여운은 분명 사람을 끌어당기는 기류를 품고 있었어. 그날 밤 혼자 있는 방 안에서 자꾸만 그녀의 다리와 동갑이라는 말이 맴돌았어. 같은 나이, 같은 시대를 통과한 두 사람. 하지만 한 사람은 상사의 아내, 한 사람은 그 아래 직원. 그 틈 사이로 무언가 야한 바람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 같았어. 이미 아주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던 거지.
며칠이 지났어. 그녀는 아무 연락이 없었지. 그래서였는지 더 생각나더군. 운전석에서 본 그녀의 다리, 눈을 감고 기대던 그 몸의 곡선, 그리고 동갑이라는 그 한마디까지. 가슴 한 구석이 묘하게 간질거렸어. 그런데 그 주 금요일, 갑자기 상사님이 자리를 비운다며 말했어. "이번에 출장이 좀 길어졌어. 한 열흘쯤. 자는 두고 갈 테니까 와이프가 필요하다고 하면 좀 도와줘." 또 그 여자였어. 그녀를 도와야 한다는 말이 반갑다니, 자신이 싫어졌지.
토요일 오후 전화가 왔어. "서지윤 씨." 익숙한 목소리. "오늘 저녁 시흥동 좀 가져요. 친구 만나러." 오늘도 운전사인가 하면서도 "네" 하고 차를 몰았지. 도착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조수석 대신 뒷좌석에 앉았어. 짧은 검은 원피스였어. 긴팔이었지만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실루엣. 앉자마자 다리를 꼬았고, 그 순간 치마가 다시 허벅지를 타고 올라갔어. 차 안은 말없이 흘러갔어. 라디오도 켜지 않았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공기가 묘하게 떨리고 있었지.
그녀는 중간에 입을 열었어. "오늘은 좀 오래 걸릴지도 몰라요. 외롭거나 심심하면 근처 카페라도 들어가 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어. 하지만 솔직히 카페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어. 괜히 입만만 텁텁해질 것 같았고 커피 맛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그 앞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그녀 쪽을 힐끔거리다 그 여자를 쫓아 들어갔어. 바로 뒤를 따르진 않았어. 잠시 머뭇거리다 호텔 로비 소파에서 15분 정도 기다렸지. 그리고 일부러 올라갔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심장은 쿵쿵 뛰었어. 3층 복도, 열린 문. 살짝 열린 틈 사이로 보인 실루엣은 서지윤 씨였어. 어떤 남자의 품에 안겨 있었지. 낯선 남자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있었고,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어. '이게 무슨 짓이지?' 그 말이 목에 걸렸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어. 그녀가 나를 봤어. 놀라면서도 곧 차분해졌지. 그리고 천천히 문을 닫았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나는 입술을 깨물며 자꾸만 한 가지 상상만 되풀이하고 있었어. 그 남자 대신 내가 저 자리에 있었으면. 그녀가 사라진 뒤 나는 그대로 호텔 뒤편 벽에 기대서 있었어. 목이 말랐고 가슴이 조여왔지. 몇 분이 흘렀는지도 모른 채로 돌아왔어. 시동을 걸지도 못한 채 그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지. 정확히 30분쯤 후 그녀가 호텔 정문 쪽에서 걸어 나왔어. 멀리서도 느껴졌어. 표정은 무표정했고 눈은 차갑게 잠겨 있었지.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조수석 문을 열고 탔어. 늘 뒷좌석에 앉던 그녀가 이번엔 제 옆에 말없이 앉아 있었지. 창밖을 보며 팔짱을 끼고 앉은 그녀.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어.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어. 차 안은 조용했어. 정적은 꽉 막힌 것처럼 무거웠고 엔진 소리조차 불편하게 크게 들렸지. 그렇게 서로 한마디도 없이 그녀의 집 앞으로 돌아왔어. 차가 멈추자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문을 열고 내렸어. 그녀가 집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미동도 하지 못했지.
그리고 그날 밤, 서지은 씨에게 메시지가 왔어. "김대리, 오늘 본 건 말하지 마요. 원하는 거 들어 줄게요." 이게 협박인지 유혹인지 모를 그 한 문장이 내 안에서 문을 열어 버렸어. 그녀의 문자를 받은 그날 밤, 핸드폰 화면을 몇 번이나 껐다 켰는지 몰라. "오늘 일 말하지 마요. 원하는 거 들어 줄게요." 그 문장에 숨이 멎는 듯한 전율이 흘렀지. 지워야 했어. 잊어야 했어. 하지만 마음은 반대로 움직였지. 그다음 날 나는 메시지를 보냈어. "그날 말씀하신 원하는 거요. 오늘은 초대로 받고 싶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노골적인지 나도 잘 알고 있었지. 그녀는 오래 답이 없었어. 그리고 늦은 오후, 단 세 글자가 도착했지. "오세요." 심장이 크게 내려앉았고 두 손에 땀이 고였어. 거울을 보고 셔츠를 갈아입고 숨을 길게 내쉰 후 그녀의 집 앞으로 향했어. 배를 누르지 않았어. 문은 열려 있었지. 집안은 조용했어. 불도 어둡게 켜져 있었고 창문엔 얇은 커튼이 흔들리고 있었지. "들어와요." 그녀는 소파 옆에 기대서 있었어. 얇은 니트 아래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났고 무릎 위로 훌쩍 올라간 슬립 차림.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나 역시 더는 돌아서지 않았어. 가까이 다가가 입술을 맞췄지. 그녀는 놀라지 않았어. 입술 끝에 아주 약하게 웃음기가 스쳤어. 손끝이 그녀의 어깨선을 따라 움직였고 니트는 바닥으로 흘러내렸지. 숨소리가 뜨거워졌고 공기는 빠르게 달아올랐어. 그녀는 소리 내지 않았고 나는 더 깊이 빨려 들어갔지. 침묵 속에서 서로를 파고들며 무너졌어. 한 번이 아니었어. 멈추는 타이밍을 서로 놓쳐 버렸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명확히 선을 넘었어. 숨이 천천히 가라앉고 소파에 걸터앉은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어.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것 같아요. 근데 후회하진 않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어. 대신 그녀의 손등 위로 조용히 손을 얹었지. 그녀는 손을 빼지 않았고 방안은 다시 조용해졌어. 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지.
그날 이후 며칠은 조용했어. 그녀도 연락이 없었고 나 역시 일부러 먼저 묻지 않았지. 하지만 머릿속은 그날의 장면으로 가득했어. 그녀의 입술, 낮게 깔린 숨소리, 아무 말 없이 허락되던 그 밤. 그건 단순한 충동이 아니었어. 몸이 아닌 감정의 일부가 어딘가 잘려나가 그녀에게 붙은 듯한 기분이었지. 그 주 금요일,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어. 받으니 그녀였지. "김대리, 남편 아직 출장 중인 거 알죠? 차 좀 같이 써야 할 일 생겼어요." 그 말이 전부였지만 그 말로 충분했어. 다음날 오후, 나는 다시 그녀의 집 앞에 있었어. 이번엔 초인종도 누르지 않았고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지. 그녀는 안쪽 소파에 앉아 있었고 나를 보고도 일어나지 않았어. 슬리퍼를 신은 발끝이 소파 아래에서 살짝 보였고 옅은 미소가 입가에 머물러 있었지. 나는 말없이 안으로 들어가 그녀 옆에 앉았어. 그녀는 천천히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내 손등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지. 그 어떤 말보다 그 터치 하나가 더 많은 걸 말해줬어. 우리는 또다시 말없이 서로에게 기대었고 그날 밤도 그렇게 흘러갔지. 이제 우리는 이미 익숙한 무엇이 되어 있었어. 초대도 벗는 동작도 포개지는 순간도 점점 망설임이 사라져 갔지. 하지만 문제는 몸이 익숙해질수록 마음은 더 혼란스러워졌다는 거야. 그녀가 자고 있는 얼굴을 보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지금 이 순간이 끝나면 나는 대체 어디로 돌아가야 하지?'
그날 새벽, 나는 조용히 그녀의 집을 나왔어. 문을 닫을 때 내 손이 마지막으로 문꼬리에 머물렀지. 그게 무언가 놓아버리는 감각처럼 느껴졌어. 그녀에게 가는 길은 이제 너무 익숙해졌어. 초인종을 누르지 않아도 됐고 차를 세우는 위치도 신발을 어떻게 벗고 들어가는지도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지.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고 그날도 어김없이 그녀는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집안은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었고 거실 TV에선 조용한 드라마가 흘러나오고 있었지. 그녀는 소파에 반쯤 누워 있었고 베개를 끌어안은 채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어. "오늘은 좀 피곤해서 그래요. 그냥 같이 TV나 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보지도 않았지. 나는 소파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앉았고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어. 드라마 대사만이 방안을 채우고 있었고 그녀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걸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지. 나는 소파를 조금 끌어당겨 그녀 쪽으로 몸을 틀었어. 손등이 그녀의 팔에 스쳤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어. 그런데 인내 몸을 일으켜 와인잔을 들고 일어나며 말했어. "김대리는 내가 뭐라고 생각해요?" 그 말은 누군가에게 묻는 듯하면서도 사실 자기 자신을 향한 혼잣말 같았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어. 대답하는 순간 지금이 조용한 벽이 완전히 무너져 버릴 것 같았거든. 그녀는 말없이 주방 쪽으로 걸어가 잔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천천히 안방 문을 열었어. 나는 거실 조명 아래 홀로 남겨진 채 텅 빈 와인잔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대로 소파 등받이에 기댔지. 그날 우리는 아무런 접촉 없이 하룻밤을 보냈어. 그녀는 사라졌고 나는 그 자리에 남겨졌지.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커피잔을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어. "몸이 좀 안 좋아요. 오늘은 그냥 조용히 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말에 덧붙일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지.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그녀가 조용히 한 마디를 남겼어. "문은 다음에도 열려 있을 거예요." 그 말이 다정한 약속인지 냉정한 통제인지 분간되지 않았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문을 닫았어. 그 문이 조금 무겁게 느껴졌지.
그녀에게서 며칠 동안 연락이 없었어. 초인종도 눌러보지 않았고 문이 열려 있을 거란 확신도 더는 들지 않았지. 나는 기다렸고 기다린다는 사실이 점점 나를 억울하게 만들었어. 우리는 잠깐 서로를 안고 기대고 숨을 섞은 사이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런 말들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갔지. 토요일 오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괜히 시간만 죽이고 있었을 때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어. "오늘은 어려울 것 같아요. 몸도 피곤하고 그냥 다음에 봐요." 단정한 문장이었고 그 안엔 미련도 미안함도 없었지. 그러나 그 문장이 나를 무너뜨리기 시작했어. 그녀가 말한 다음이 정말 나를 위한 다음일까? 아니면 대체 가능한 누군가의 몫일까? 답을 알기 위해 나는 호텔 주차장을 서성였어. 아무 계획 없이 아무런 자격도 없이 그저 서 있었지. 그리고 또 한 그녀를 봤어. 이번엔 분명했어.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였고 그 누군가는 나보다 훨씬 젊고 웃는 얼굴이 너무 가벼워 보였지. 그녀는 그의 팔에 손을 얹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어. 저 멀리 안에서 아주 천천히 사라졌지. 숨이 막혔어. 가슴에 불이 붙은 듯 화를 억누를 수 없었어. 바로 전화를 걸었지. 그녀는 잠시 후 받았어. "네. 김대리." 그 목소리가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나는 더 참을 수 없었어. "저는 당신이랑 진짜 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녀는 조용히 말했어. "우린 그냥 서로 필요한 걸 나는 거예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그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그 말을 부정하고 있었지. "그럼 왜 그날 나한테 문 열어 줬어요? 왜 아무 말 없이 손잡고 같이 잤어요?" 내 목소리는 떨렸고 그녀는 한숨 섞인 말로 마무리했어. "김대리 감정 섞이면 그 순간부터 위험해져요." 나는 전화를 끊었어. 방 안에 불도 켜지 않았고 그녀가 안겨 있던 소파 위에 앉아 깊게 숨을 들이켰지. 그제야 알았어. 나는 지금 질투하고 있었던 거야. 그건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은 감정이었지.
이사님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회사 메신저 창으로 조용히 흘러 들어왔어. 출장 일정이 예정보다 앞당겨졌다는 말에 나는 순간 핸드폰을 먼저 들여다봤지. 그녀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었어. 잠잠했던 며칠, 질투와 후회로 끓던 마음은 한순간에 얼어붙었지. 그녀는 다시 누구의 아내로 돌아가 있었어. 그리고 며칠 뒤, 회사 단체 회식 자리가 잡혔어. 이사님과 지윤 두 사람이 함께 온다는 말에 나는 괜히 숟가락을 세 번쯤 닦았던 것 같아. 그녀는 변한 게 없었어. 너무나 완벽하게 변해 있었지. 단정한 원피스에 단정하게 묶은 머리, 조용한 미소. 그 미소가 며칠 전 호텔 로비에서 젊은 남자와 웃던 그 미소와 같은 얼굴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어. 이사님 옆에 앉은 그녀는 늘 그렇듯 웃었고 가볍게 대답하며 잔을 채웠지. "김대리 님 여기 앉으세요." 내 쪽을 향해 가볍게 손짓한 그녀의 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맑았어. 그 자리가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 틈이었다면 버티기 쉬웠을 텐데. 나는 그녀 옆에 앉았고 그녀는 내가 앉는 그 순간에도 하나도 흔들리지 않았어. 말없이 술잔만 들이켰고 어느 순간엔 이사님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어. "요즘 우리 집 앞에 자주 오는 것 같던데 거기 뭐 숨겨진 맛집이라도 있나?" 그 한마디에 손끝이 얼어붙었지. 지우는 재빨리 웃음을 지으며 끼어들었어. "거기 떡볶이 집 하나 괜찮은 거 있어요. 김대리 님이 저번에 추천해 줘서 갔다 왔죠." 너무 자연스러웠어. 내가 감정을 들킬까 봐 떨고 있을 때 그녀는 모든 상황을 완벽히 컨트롤하고 있었지. 회식 자리는 나만 불편했고 나만 애써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어. 그날 밤 혼자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생각했어. '지금까지 우리가 한 건 정말 감정이 아니었을까?' 아무도 없는 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려 애썼어. 하지만 그 이름은 이미 내 안에서 내 것이 돼 버린 지 오래였지.
사무실 복사기 앞에서 마주친 이사님의 얼굴은 전보다 조금 더 낯설었어. 미소는 여전했지만 그 속에 깃든 눈빛이 낯설었지. "김대리, 블랙박스 관리 잘하지? 우리 차 요즘 주차장에 긁힌 흔적 있더라고."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이었지만 심장이 세게 울렸어. 그 말 뒤에 깃든 의심이 내 마음속에서 소리를 내며 부풀었지. 그날 이후 나는 차키를 잡을 때마다 두 번 세 번 더 살폈고 지윤의 집 골목을 지날 때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곤 했어. 숨을 죽이고 모른 척하고 그렇게 며칠을 버텼지. 하지만 그녀는 달랐어. 어느 저녁, "오늘 와요." 단 네 글자의 메시지를 보낸 그녀는 이전보다 더 짧은 치마를 입고 현관에서 나를 맞이했어.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와인을 꺼냈고 나는 말없이 따라 마셨지. 그 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단지 손이 먼저 움직였고 숨이 엉켜들었고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듯 천천히 그리고 격하게 얽혔지. 하지만 그 끝은 예전과 달랐어. 모든 게 끝나고 난 후 그녀는 등을 돌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어.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 가볍게 던지는 말. 그러나 그 안엔 어딘가 위험한 냉기가 숨어 있었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어. 정말 그만둬야 하는 건지 지금 이 순간을 더 이어가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녀는 담배 연기를 창 밖으로 흘리며 무심히 말했어. "내가 김대리 흔드는 거 알아요? 근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요?" 나는 웃을 수 없었고 울 수조차 없었어. 그저 그녀의 등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지. 그 순간 내가 이 여자한테 잡혀 있구나. 정확히 그렇게 느꼈어. 밖에선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고 안에서는 더 차가운 침묵이 이어졌지.
그녀에게서 문자가 온 건 이사님이 다시 출장 떠난 날이었어. "오늘 저녁 잠깐 와 줄 수 있어요?" 다른 말은 없었지. 심장만 크게 올렸고 나는 핸드폰을 쥔 채 오래 망설였어. 하지만 결국 나는 또 그 문 앞으로 향했지. 예전처럼 열려 있을까? 잠시 서성였지만 이번엔 닫혀 있었고 내가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누르자 그녀는 문을 열었어.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도 있어요."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말이 생각보다 너무 차분해서 되려 불안해졌지. 현관을 지나자 익숙한 거실 풍경. 조명이 약간 어두워져 있었어. 식탁엔 와인 두 잔이 미리 따라져 있었고 그녀는 천천히 잔을 건넸지. 우리는 말없이 마주앉아 와인을 마셨고 그녀는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어. "당신이 원한 거 그동안 다 해줬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투는 이상하리만치 담담했고 나는 그 담담함이 더 무섭게 느껴졌지. "그럼 오늘은 마지막으로 저 불러 준 거예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어. 대신 잔을 비우고 조용히 불을 껐지. 어둠이 방안을 천천히 덮었고 우리는 다시 서로의 숨소리로만 대화했어. 그 밤은 어딘가 마지막이라는 긴장감 속에서 더 조심스럽고 더 뜨거웠지. 하지만 끝내고 난 뒤 그녀는 곧장 이불을 끌어올렸고 나는 등을 돌리고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았어.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고 침묵이 마치 대사처럼 길게 이어졌지. 새벽, 그녀는 먼저 일어나 조용히 말했어. "이젠 나한테 기대면 안 돼요."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묻지도 않았어. 대답을 들어도 내가 원하는 말은 듣지 못할 테니까.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으며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어. "다시는 오지 말까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문잡이에 손을 얹고 말했어. "문은 이제 내가 잠글 거예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한 채 나는 조용히 그 집을 나왔어. 문이 닫히는 소리는 그녀와 나 사이의 끝처럼 낮고 묵직하게 울렸지.
하지만 이상했어. 그날 이후 아무리 멀리 가도 그녀의 체온이 몸 안에서 식지 않았어. 끝났다고 믿고 싶은 밤, 그녀의 숨소리가 귀가에서 되살아났지. 그 문은 닫혔지만 나는 아직도 그 안에 머물러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