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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1] 내던져진 것일까요?(2)

한국중앙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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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한기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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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사무엘상 3장 19절부터 21절까지 우리 다 같이 읽겠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부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아멘.

는 그 소설에서 이야기를 서술해 가는 여러 방식들이 있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전지적 작가 시점입니다.

작가가 소설 속에 등장 인물에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를 모두 관장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이지요.

여기서이 전지적이라고 하는 말은요.

무제한적이고 전권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마치 신이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총괄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과도 같은 거지요.

그런데이 소설에서의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하는 건 소설이 전개되는 순서 또 그 테두리에 한정되지요.

다시 말하면 그 소설이라고 하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봤을 때 여러분 전지적 하나님 시점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어느 때나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자유자재하시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동시적으로 존재하시면서 역사하시지요.

아멘.

따라서 하나님은 어떤 제한도 제약도 없으십니다.

아멘.

사랑하는 교,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전지적 하나님 시점으로 생각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아멘.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다고 하는 것조차 우리는 다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지요.

아멘.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삶을 나의 시점이 아니라 전지적 하나님의 시점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처럼 확실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나의 시점이 아니라 전지적 하나님의 시점으로 봐야 될 것입니다.

아멘.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의 말기는 영적인 아흑기였고 정치적인 혼란기였습니다.

그들의 우상숭배 그리고 불순종 때문에 말씀과 이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가 드물어지게 됩니다.

당시에 사사였고 대제사장이었던 엘리는 육적으로 노세했고 영적으로 무감각했습니다.

이렇게 타락하고 부패한 아기가 바로 사사시대 말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무엘이 태어나게 됩니다.

어찌 보면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이 불확실한 시대적 상황 속에 사무엘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사무엘은 그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불안한 존재로 살아가야 됐는지도 모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런 시대에 태어났던 사무엘의 인생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고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요? 어쩌면이 사무엘의 상황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배경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점점이 시대가 다양하게 발전해 가면서 예측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불확실성은 점점 높아지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늘 불안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과연 나의 존재가 과연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도 점점 흔들릴만큼 이런 시대적인 상황과 환경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고 살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을 통해서 과연 우리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오히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우리의 삶에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아멘.

사무엘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시대와 상황 가운데 살아간다 할지라도 결코 흔들림 없이 확고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지난주에 우리가 사무엘의 출생의 이야기를 통해서 한 가지를 분명히 확인했지요.

사무엘은 그런 불투명한 상황 속에 내던져진 무책임하게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다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멘.

여러분, 사무엘상 1장을 좀 다시 보실까요? 사무엘의 출생의 이야기를 어 파악하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맥락이죠.

5절과 6절에 보시면 영퍼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 등장해요.

5절 뒷부분에 보시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심이 6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심으로 여러분 사무엘의 출생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지금 영거퍼 두 번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는 내용이죠.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거예요.

즉 한나가 지금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 있는 건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태를 닫으신 거였어요.

하나님께서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여러분.

그런데 자, 1장 뒷부분을 좀 보실까요? 19절.

19절 뒷부분을 보시면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함에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세요.

그리고 한나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지요.

아 여러분 지금까지 엘가나와 한나가 아이를 낳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겠냐 말이에요.

근데 아이가 생기지 않았어요.

이유가 뭐였냐면 하나님이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거든요.

근데 이날은 엘가나와 한나가 동치물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생각해 주셨어요.

그리고 한나가 임신을 한 거예요.

아, 그러니까 여러분 이런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상황에 어쩌면 사무엘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던져진 불안한 존재라고 여겨질지 모르지만 사실 사무엘의 출생은요.

하나님의 주도적인 개입과 역사가 있었다는 거죠.

아멘.

우연히 실수로 무책임지하게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하나님은 사무엘을 보내셨다는 거예요.

아멘.

사랑하는 교, 우리의 불확실한 존재, 불안한 존재를 극복할 수 있는이 실존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가 뭘까? 그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셨다는 겁니다.

아멘.

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인생에 관해 생각할 때마다이 부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멘.

나는 내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낸 존재라는 거 말입니다.

아멘.

존재의 근거가 확실해지면은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의 근거가 분명해지면은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상황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니까 마치 불안한 존재로 살아가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또 하나 문제가 뭐냐면 그렇게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상황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불안을 해결해 보겠다고 자꾸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가는 거예요.

이거면 확실할 거야.

이거면 불안이 해소될 거야.

이거면 두려움이 없어질 거야.

그러면서 자꾸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간다는 거죠.

우린 경험해 봐서 알아요.

이거면 될 거 같아서 손에 쥐었는데요.

그걸로 안 된다는 걸 이내 우리가 깨닫게 되죠.

아멘.

이 정도면은 두려움이 없이 확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막 발보둥치면서 그걸 딱 붙들었어요.

근데 우리는 곧 알게 돼요.

그게 우리를 확실하게 하지 못한다는 걸 말입니다.

아멘.

이런 무의미한 시도를 멈춰야 됩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의 존재 근원이 되시고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 나는 하나님이 내 존재 기원이 되신다.

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성경을 찾아볼까요? 이사야 44장입니다.

1절, 2절을 보시면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래요.

2절 보세요.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나 두려워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세요.

여러분 1절에서는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 이렇게 하나님 백성들을 부르셨는데 2절 마지막에는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르나 이렇게 여수른이라고 하는 표현을 쓰세요.

여러분이 여수론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보다 더 시적인 표현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야고와 이스라엘을 이렇게 일반적으로 호칭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애칭으로 부르시는 거예요.

여수나 이런 표현은 애칭인 거예요.

그러니까 그만큼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아끼시고 소중이어시고 각별히 사랑하신다는 의미를 담는 거예요.

여수르나.

예.

우리도 왜 그런 어 거 있잖아요.

왜 그 부모들이 애들을 부를 때 엄마가 기분 좋을 때 부르는 거하고 기분 나쁠 때 부르는 거하고 달라요, 여러분.

예.

물론 여러분 억양도 있지만 호칭이 다르다니까.

예를 들면 여러분 기분 좋을 때는 이름만 불러 아주 부드럽게.

어 근데 기분 좀 나쁘면 성을 붙여.

성을.

누구누구 이렇게 많 그런 거 있잖아요, 여러분.

어.

그러니까이 여순이라고 하는 표현이 그만큼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각별히 아끼신다는 그런 애칭인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렇게 호칭하시는 이유가 있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 이게 창조했다는 말이에요.

여러분 부모님이 여러분 맞는 거 아니에요.

실수로 우연히 계획도 없이이 이런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철저히 계획하셔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하나님께서 지으셨어요.

아멘.

그래서 그 뒤에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었다.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우리의 생명을 잉태하신 분이 누구시라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가 사무엘의 출생에서도 살펴봤지만 하나님의 허락,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아멘.

여러분 잊지 마세요.

여러분 한 분 한 분은요.

하나님이 계획하셔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들어 주셨어요.

아멘.

그리고이 땅에 태어난 거예요.

그래서 이사야 43장에서는이 표현을 뭐라고 반복했어요? 내가 너를 지명했다.

내가 너를 불렀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신 거예요.

아멘.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는 바로 그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소명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멘.

누가 뭐라고 해도 여러분의 조건과 상황과 형편이 아무리 열악해도 세상이 우리를 줄세우는 가치에 여러분 낄 수 없을만큼 우리는 그렇게 보잘 것 없이 여겨진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평가한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교에 속지 마세요.

그 기준에 길들여지지 말고 그 시선과 그 기준에 여러분 주눅들지 마세요.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하나님이 만드셔서 여러분을 보내셨고 부르신 거예요.

아멘.

여러분 이거보다도 확실한 자신감이 어디 있어요? 아멘.

그러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겠다고 발부둥치면서 살지 말고요.

우리의 가장 확실한 근거 있는 자신감이 되는 하나님을 통해서 저는 여러분이 모든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여러분의 존재 확실한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

늘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보내심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또 하나 우리는 무책임하게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이 보내진 존재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소명이 있다.

소명이 있다.

여러분,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다 하나님의 소명이 있어요.

아멘.

그래서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건 하나님의 소명이 있다는 거예요.

아멘.

또 하나님이 보내셨다는게 무슨 의미일까? 여러분 다시 오늘 본문 돌아보시겠어요? 그렇게 사무엘이 태어났어요.

그리고 젖을 뗐고 한나가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처럼 그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지요.

그리고 나서 19절.

오늘 본문 3장 19절을 보세요.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어요.

자, 하나님께 드려졌어요.

그 하나님이 드려졌어요.

그리고 사무엘이 자라면서 사무엘에게 나타나는 모습이 하나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돼요.

여러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졌다.

이런 뜻이에요.

아멘.

자, 이게 무슨 의미냐? 자, 먼저 21절을 보세요.

21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셨어요.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다.

이렇게 돼 있죠.

여러분, 사무엘상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고 또 사무엘을 찾으시고 그 사무엘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등장하잖아요.

그 이후에 그 이후에 하나님이 다시 사무엘에게 나타나셨다.

이런 의미인데 여기 다시라고 번역된이 단어는 두 번째 나타나셨다.

이 말이 아니고 영어 성경을 보니까요.

컨티뉴라고 하는 단어를 썼어요.

이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계속해서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나타나셨다는 거예요.

어떻게요? 말씀으로.

말씀으로.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자, 정리해 보면 사무엘이 자라면서 사무엘에게 한 가지 나타나는 모습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에게 말씀하신 거지요.

그리고 사무엘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 하나님 말씀을 선포했는데 놀랍게도 사무엘이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이 어긋남이 없이 그대로 다 이루어지게 된 거예요.

아멘.

자, 이게 무슨 의미냐? 20절.

단에서부터 부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단에서부터 부활세바 즉 이스라엘 저녁이 이스라엘 저녁 그니까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아 사무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구나라고 알게 됐다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제가 지난주에도 시대적인 배경을 오늘도 설명을 드렸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에 계속되는 불순종과 우상숭배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시는 거예요.

말씀으로 나타나셨는데 그 말씀의 계시와 이상이 점점 드물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때 사무엘이 태어났지요.

하나님의 소명이 있었어요.

그건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어요.

근데 소명만 있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그 시대에 계속해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고 사무엘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근데 놀라운 건 그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다 이루어지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 사무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구나라고 하는 걸 알게 됐다는 거죠.

아멘.

그럼이 말씀은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동안은 그동안은 이상과 계시의 말씀으로 나타내지 않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하나님이 보내신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신 그 사무엘을 통해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행하시겠다는 거죠.

아멘.

바로 그것이 사무엘이 그 시대에 태어나서 해야 될 역할이었던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이 보내셨다는게 무슨 말일까? 우리가이 시대에이 상황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존재라는게 무슨 의미겠어요? 첫째, 하나님의 소명이 있다는 것과 더불어, 둘째, 하나님의 사명이 있다는 거예요.

아멘.

사명.

아멘.

하나님이 부르셨어요.

이유가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보내셨어요.

이유가 있는 거예요.

아멘.

자, 여러분 생각을 해 보세요.

하나님이이 모든 우주 만물을 지금도 살아 계셔서 섭리하시고 주관하시죠.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계획하셔서이 땅에 보내 주셨어요.

아멘.

그럼 당연히 이유가 있지 않겠냐 말이에요.

아멘.

하나님이 실수로 보내셨겠어요? 하나님이 그냥 보내셨겠어요? 아니에요.

모든 우주 만물을 철저히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뜻대로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획하셔서이 땅에 보내셨다는 건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셨다는 건 이유가 있으신 거예요.

아멘.

그걸 사명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하나님의 소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 주셨어요.

그리고 더불어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는 하나님의 사명이 있습니다.

아멘.

저는 늘 여러분에게 사명을 강조하잖아요.

여러분의 자녀들을 양육할 때, 지도할 때, 즉 꼭 제가 사명을 제가 강조하잖아요.

저는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 관해 고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저는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이유는 제가 좀 전에 말씀드린 것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이 보내셨다면 이유가 없을 리가 없어요.

근데 우리는 이걸 놓치고 살아요.

그래서이 시대는 점점 사명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요.

그거하고 비스무리하게 비전, 꿈 이런 단어는 많이 사용해요.

그리고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건 꽤나 좀 이렇게 뭔가 좀 어 괜찮은 인생인 것처럼 보여지고 아 난 비전이 있어.

난 꿈이 있어.

그러면 막 대단한 인생처럼 여겨져요.

근데 희한하죠.

사명이란 표현을 쓰지 않아요.

제가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 아시지만 내가 생각을 많이 하잖아.

내가 고민해 봤어요.

아니 왜 왜 사명이라는 단어는 안 쓰고 이것과 비스무리하게 꿈과 비전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는 걸까? 왜 점점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사명이라는 표현이 없어져 가는 걸까 제가 고민했죠.

어,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이에요.

왜 왜 사명이라는 표현을 안 쓸까? 사명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 있는 거예요.

아멘.

이게 무슨 말이냐면 꿈, 비전, 소망 이런 표현들은요.

내 계획, 내 의도, 내 소원 이런게 끼어들 여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근데 사명 그러잖아요.

알아요? 다들 압니다.

예.

이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부여하셨다.

즉 절대자 하나님이 계시고 주관자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맡기신 일이다라고 하는 의미를 다 알고 있는 거예요.

아멘.

그러니까 이제 사명이란 단어 안 쓰는 거예요.

그렇게까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고 하나님을 믿기는 믿지만 그렇게까지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고 하나님을 믿기는 믿지만 그렇게까지 사명이란 단어를 쓰면서까지 하나님이 부여하신 역할을 할 생각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여지를 갖고 내가 원하는 거, 내가 되고 싶은 거,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비스무리하게 꿈과 비전이라는 단어로 포장해서 나에게 없는 힘을 하나님께 빌려서 나에게 없는 수단들을 하나님께 빌려서 그거 해 보겠다는 거예요.

왜이 시대가 사명이란 단어를 안 쓸까? 사명이 무슨 말인지를 알고 있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명을 주셔서 우리를 부르셨고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부여하셨어요.

보내셨다는 건 이유가 있는 거예요.

아멘.

사랑하는 교명을 위해서 하십시오.

아멘.

사랑하는 교회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을 지도할 때 반드시 사명으로 지도하십시오.

아멘.

이 이 대목에서 다소 불편할 수 있으나 묻고 지나가겠습니다.

단도 직입적으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왜 사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사십니까? 여러분은 왜 사십니까? 다시 말해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명을 알고 계십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사명을 위해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가장 원하는 일이 사명입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일생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사명입니까? 정말 그 사명을 위해 여러분의 존재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습니까? 그 사명을 위해 살기 위해 여러분의 열정을 다 하고 있습니까? 시간을, 건강을, 물질을, 경력을 여러분의 모든 조건들을 사명을 위해 사용하고 계십니까? 사명 제일 중요합니다.

아멘.

어찌 보면 한참도 내다볼 수 없는 불투명한 시대적인 상황에 하나님이 사무엘을 보내셨다는 거 불안하기 짝이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소명과 더불어 하나님이 그를 그 상황에서 쓰시려고 하셨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는 거예요.

사명.

그리고 하나님은 그 사무엘을 하나님의 사명대로 쓰십니다.

계속해서 말씀으로 그에게 나타나셨고 사무엘은 그 말씀을 계속해서 선포했으며 하나님은 모두가 사무엘이 하나님의 선자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그의 입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들을 그대로 다 이루십니다.

아멘.

누가 봐도 사무엘은 선지자였습니다.

아멘.

사명.

지금도 듣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명으로 사십시오.

아멘.

제가 지난주도 그랬지만 아이 그러니까 사무엘은 이런 시대 이렇게 하나님이 해서 다 이렇게 하니까 사명이라는 거지.

아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사명이겠어요? 사명이야.

뭐 신학교를 가거나 무슨 뭐 목사님이 되거나 선교사님이 되거나 아 그러니까 사명인 거지 뭘 나한테까지 뭘 사명을 자꾸 이렇게 얘기하고 목사님 자꾸 분위기 그렇게 만들지 마세요.

여러분이 그런 표정으로 나를 보는 거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자 디모데후서 1장을 찾으세요.

디모데후서 1장.

디모데후서 1장 9절 다 같이 시작.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혼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아멘.

여러분이 디모데서 1장 9절 한 구절 안에 우리의 존재에 관한 설명이 다 들어 있어요.

다 들어 있어요.

자,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자, 여러분 저를 보세요.

저를 보세요.

자, 여러분 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으시죠? 아멘.

자,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신 거죠.

아멘.

다 그렇게 믿으시죠? 자, 그럼이 1장 9절의 말씀은 구원받은 우리에게 해당이 돼요, 안 돼요? 돼요.

돼요.

배당됩니다.

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그 구원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이라는 거예요.

콜 콜링.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거.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았다는게 무슨 의미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소명하셨다는 거예요.

부르셨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보내진 존재예요.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하나님이 뭐가 있어요? 소명이 있어요.

콜링.

영어 성경에 콜이라고 하는 동사를 썼어요.

콜링.

그다음 보세요.

또 하나.

그런데 그렇게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여러분 구원은 은혜로 받잖아요.

그렇죠?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잖아요.

은혜로 구원받아요.

그리고 은혜로 구원 받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직 자기의 뜻.

여러분, 제가이 자기 뜻이라고 하는 말이 구원과 관계된 말일 수도 있어요.

제가 영어성 찾아보니까 근데요이 단어가요 퍼포즈라는 단어예요.

목적 목적 그 이런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어요.

즉 우리를 부르셨어요.

콜링하셨어요.

여러분 그 콜링은 우리의 계획, 우리의 의도 또 우리의 삶과 상관없이 분명한 하나님의 퍼포스,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거예요.

아멘.

사명 말입니다.

사명.

그리고이 소명과 사명을 은혜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자, 여러분, 사명은 특정 불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게 아니라는 거 아시겠죠? 여러분, 사명은 여기 있는 목사에게만 있는 거 아니라는 거 아시겠죠? 저에게도 하나님의 소명이 있는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소명이 있고 저에게 하나님의 사명이 있는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사명이 있습니다.

아멘.

외면하면 안 돼요.

모른 척하시면 안 돼요.

어, 이렇게 분명히 들었으니까 이제 모른 척도 못 하지, 여러분.

응.

그죠, 여러분? 이렇게 들었어요.

분명히 다 들었습니다.

분명히 여러분.

어.

어.

어.

제가 증인입니다.

여러분이 증인이고 소명과 더불어 사명이 있어요.

아멘.

여러분의 자녀들도 마찬가지.

제가 늘 여러분에게 입보르처럼 강조했지만 제발 여러분 제발 우리 교회 교우들 가정의 부모님들은 우리의 자녀들을기를 때 그 저 돈 잘 버는 일 해라.

야, 그거 배우면 추직 잘된다더라.

그런 거 말고 그런 거 말고 그 자녀들을 위해 부모들이 힘껏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이 너를이 땅에 보내 주셨고 하나님이 너를 콜링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너에게 하나님의 사명이 있어.

아멘.

그 사명 위에 살자.

사명 위에 살아야 돼.

이렇게 지도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하나님의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마세요.

아멘.

그리고 하나님은요.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여러들을 다 통칭해서 은사도 주셨어요.

아멘.

사무엘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죠.

근데 희한한 건 하나님은 사무엘에게는 나타나시는 거예요.

말씀을 하시고 그 말씀을 들었던게 사무엘이었어요.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게요?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신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요.

사명을 딱 맡겨 놓으시고 우리로 알아서 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하나님은 사명을 주셨잖아요.

그러면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다양한 많은 조건들 통칭해서 은사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세요.

재능, 기능, 기질, 성격, 성향 이런 모든 것들을 아니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이 땅에 보내셨다면 그 목적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미 다 우리에게 주셨어요.

자, 로마서를 찾아보세요.

로마서이 또 은사 얘기하고 막 이러면 어떤 특별한 사람들, 어떤 특출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사명과 더불어 자 12장 6절을 보세요.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

이렇게 돼 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은사를 주셨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받은 거잖아요.

그렇죠? 근데 이걸 은혜로 주셨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아까 소명과 사명도 은혜였죠.

그렇죠? 소명과 사명도 은혜였어요.

그다음에 은사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거예요.

근데 받은 은사가 먼저 각각 이렇게 되죠.

각각.

여러분이 각각이라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은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즉 모두에게 다 주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하나님은 사명과 더불어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은사도 주셨어요.

각각.

그러니까 모두에게 다 주셨어요.

근데 다 주셨는데 각각 어떻게 주셨대요? 다르게 주셨대요.

아, 그러니까 하나님이 은사를 모두에게 다 주셨거든요.

근데 하나님이 은사를 모두에게 다 주시지 않았어요.

모두에게 다 주셨는데요.

모두에게 다 주시지 않았어요.

헷갈리시죠? 그러니까 각각 주셨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셨다는 의미에서 모두에게 다 주신 거예요.

안 주신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다르게 주셨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모든 은사를 다 주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모두에게 각각 주셨다는 의미에서 모두에게 다 주신 거고 그런데 한 사람에게 모든 은사를 다 주시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모두에게 다 주시지 않았단 말이에요.

이 무슨 말이겠어요? 하나님은 여러 번 한 분 한 분을 향하신 분명한 계획을 세우셨고 사명을 부해서이 땅에 보내셨어요.

그리고 다 각각의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부여하신 그 목적들을 그 사명들을 감당하게 하셨어요.

여러분 여러분 한 분 한 분은요 특별한 분들이에요.

아멘.

그런 거 있잖아요.

왜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렇게 보내신게 아니라고요.

요즘 말로 여러분의 존재는 유니크합니다.

아멘.

굉장히 특별한 각각의 어 각각의 특징을 갖고 있는 각각의 은사 다른 은사를 갖고 있는 각각의 다른 사명을 감당하는 유니크한 분들이에요.

아멘.

그러니까 하나님이 저에게만 사명을 주시고 목사인 저에게만 은사를 주신게 아니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도 사명을 주셨고 여러분에게도 은사를 주셨어요.

아멘.

어, 난 잘 모르겠는데 모르는게 아니고요.

알려고 안 한 거예요.

뭔 말인지 아실 텐데? 여러분이 이제부터라도이 말씀을 토대로 아,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존재다.

아멘.

난 불안하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나는 소명이 있고 사명이 있다라고 하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사명과 여러분의 은사의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알려 주시고 반드시 사용하세요.

아멘.

제가 여러분 말씀드린 적 있었던 닉부치 여러분 잘 아실 거예요.

아마 한 번쯤 다 어 영상이나 이런 거 보셨을 것 같은데 이제 테트라 아멜리아 신드롬이라고 하는 병을 선천적으로 이제 갖고 태어났잖아요.

그래서 양팔이 없고 그리고 한쪽 다리가 없고 이제 한쪽 발이 있긴 한데 그걸 사실 뭐 발이라고 말하기 좀 그렇잖아.

그냥 발가락 두 개만 이렇게 붙어 있는 그런 상황.

그러니까 이제 누가 봐도 인생을 살아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그러니까 이런 거죠.

세상도 불확실한데 본인의 존재도 불확실한 거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암물하고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이겠냐고요.

그때시하는 건 그분이 전 세계를 다니면서 희망을 전하잖아요.

아멘.

그분이 강연을 할 때 이렇게 한다고 그래요.

제가 영상을 봤는데 강연하면서 이렇게 강연장에 들어올 때 넘어진대요.

그러면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이 다 안타까워 한대요.

어 어떻게 그러면서 막 안타까워 한대요.

그러면 이게 넘어져서 이분이 이렇게 얘기한대요.

여러분 우리는 걸어가다가 이렇게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넘어져 있으면 안 됩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세요.

다시 일어나세요.

나는 100번이라도 다시 시도할 겁니다.

이렇게 얘기한대요.

그리고 어떻게 하나 봤더니 팔고 다리가 없으니까 이말을 땅에 대고 비비면서 힘겹게 땀을 흘리면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보는 사람들이 다 애초로워하면서 막 울기도 하고 막 그런대요.

근데 그렇게 해서 막 어렵게 딱 잃었으면요.

다 같이 환호를 한대요.

그때 닉부이 지체가 이렇게 얘기한대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요.

저에게 특별한 은사와 능력을 주셨어요.

넘어졌다가 잃어서기만 해도요.

이렇게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요.

저도 일어서는데 여러분이 못 일어설 것이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얘기한대요.

그분에게 무슨 은사가 있다고 여겨져요, 여러분? 남들 다 있는 것도 없어요.

오히려 하나님,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나게 했습니까? 왜 내 건 다 가져갔습니까? 이렇게 말을 해도 우리가 보기에 타당하다고 여겨지지 않아요.

근데 놀랍지요? 하나님이 내게 은사와 능력을 주셨대요.

은사가 없는게 아니에요.

관심이 없는 거예요.

사명을 모르는게 아니에요.

알려고 안 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예요.

그 누구라도 이렇게 닉브지처럼 아무리 선천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다 할지라도 여러분 그 존재 속에 하나님의 소명, 하나님의 사명, 하나님의 은사가 있습니다.

아멘.

사랑하는 교, 저는 여러분들이 아무리 힘겹고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을 봐도 야, 나는 왜 이래? 나는 왜 이거밖에 안 될까 싶은 마음이 든다 할지라도 절대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소명이 있고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아멘.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가 있고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마세요.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사명과 하나님의 은사의 마음을 두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려 몸부림치게 되면 하나님은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실 겁니다.

아멘.

이제 결론인데 자 그럼 여러분 소명이 왜 중요하고 사명이 왜 중요할까요? 왜 도대체 한기룡 목사는 맨날 사명 얘기하고 소명 얘기하는 걸까요? 하막 이제는 듣는 것도 부담되고 또 그 얘기냐고 싶고 더더군다나 애들을 생각하면 더 앞이 캄캄하고 왜 왜 저렇게까지 사명 얘기를 하는 걸까? 자 보세요.

우리는 무책임하게 내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다 그랬잖아요.

아멘.

여러분 그거 다 믿으시죠? 아멘.

아멘.

그럼 그 말은 우리의 생명을 누가 주셨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셨어요.

자, 그러니까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죠.

사명은 누가 주셨나요? 하나님이 주셨어요.

은사는 누가 주셨나요? 하나님이 주셨어요.

이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그렇죠? 자, 하나님이 주셨어.

생명도 하나님이 주셨고 사명도 하나님이 주셨고 은사도 하나님이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 받았어요.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으니까 받았어요.

사명을 주셨으니까 받았어요.

은사를 주셨으니까 받았어요.

아 그러면 원래 우리 거였어요? 그 말은 아니죠.

원래 우리께 아니었다는 거예요.

생명도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누구시라는 거예요? 하나님.

하나님이 사명도 주셨어요.

원래 내 거 아니었어요.

또 그 사명을 감당할수록 하나님이 은사도 주셨어요.

내 거 아니었어요.

다 우리는 생명을 포함해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이 주셨고 우린 받았어요.

자, 그럼 누가 주인이에요? 자, 하나님이 주인이시죠.

그럼 우린 뭐예요? 청직이라고 하세요.

자, 우린 뭐예요? 청직이.

자, 보세요.

메스터는 하나님이세요.

생명도 주셨어요.

사명도 주셨어요.

재능도 주셨어요.

다 주셨어요.

우리는 매스터가 주신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직이 매니저예요.

여러분,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제가 왜 이토록 사명을 강조할까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주인이 아니지요.

자, 주인이 계세요.

이 무슨 말이겠어요? 식당을 하거나 카페를 하거나 가게를 하거나 주인이 노상 붙어 있지 않아요.

매니저에게 맡기죠.

근데 희한한 거는 영업을 마감하고 꼭 주인이 들러요.

컴퓨터로 확인하죠.

그날의 수익을 지출을 뭐 해요? 문 닫을 때 와서 뭐 해요? 결산.

결산.

제가 왜 여러분에게 이토록 사명을 강조하는지 아세요? 우린 우리 생명이 내 건 줄 알아요.

내가 사는 줄 알아요.

아니요.

하나님이 주신 거를 우린 청지기로 사는 거예요.

자, 그럼 주님이 오셔서 뭐 하시겠어요? 결산하세요.

그게 주님의 재림이에요.

마태복음 25장에 주인이 종들을 모아놓고 다섯 개, 두 개, 한 개 나눠줬잖아요.

그리고 오랜 후에 주인이 다시 돌아왔어요.

그리고 뭐 했어요? 결산했어요.

여러분 놀랍지요?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한 그 결산이 그 종들의 마지막 운명을 결정했어요.

여러분, 결산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결산이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결산이 그렇게 단순한게 아닙니다.

결산이 우리가 이렇게 넉넉한 대로 우리가 이렇게 마음대로 살만큼 결산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우린 청직이에요.

그래서 그 주인께서 다시 오셔서 결산하시는 거예요.

내가 너한테 생명을 줬지.

내가 너를 은혜로 불렀다.

내가 너에게 이런 사명을 맡겼고 그거 감단하도록 이런 조건을 줬어.

너 어떻게 살았냐? 너 뭐 하고 살았어? 너 무엇을 위해 살았냐? 자, 결산하자.

결산하자.

그게 주님의 재림이에요.

그날 어떠시겠어요? 사랑하는 교분 그날 괜찮으세요? 근데 우리가 주인 되신 하나님을 놓치고 그분께서 맡겨 주신 사명도 놓친 채 더 그분이 다시 오셔서 결산하신다는 걸 까맣게 입고 삽니다.

마치 난 예수님 믿었으니까요.

난 천국가요.

난 교회 나왔잖아요.

그걸로 될까? 내 맘대로 적당히 대충대충 살고 싶은 대로 세상 돌아가는 대로 살다가 나는 천국 가면 되지요.

난 예수님 믿으니까 난 교회 다녔는데요.

그렇게 안 된다니까요.

여러분 다시 말해 정말 하나님을 믿는 믿음.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라고 하는 그 믿음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그분이 맡겨준 일을 위해 산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예요.

아멘.

그러니까 마태복음 25장에 그 달란트 비유가 있는 거예요.

저는 우리가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 마태복음 25장을 찾아보세요.

그렇게 다 나눠 주고 다 나눠 주고 주인이 멀리가 있다가 오랜 후에 돌아와서 이제 종들을 만나는 거예요.

그게 결산이잖아요.

결산할 때 보면 주인을 만나서 결산하면서 다섯 개 받고 두 개 받은 사람이 했던 말과 하나 받았던 사람이 했던 말이 좀 달라요.

여러분, 마태복음 25장 20절 먼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이제 주인이 오랜만에 돌아온 거예요.

그리고 그 주인을 만나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이에요.

제일 먼저.

20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내가 다섯 개 남겼습니다.

이렇게 얘기해요.

내게 다섯 개 주셨는데 내가 다섯 개 남겼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자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또 어떻게 했냐면 이렇게 얘기해요.

22절.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 내게 두 달란트 주셨는데 보소서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아 똑같아요.

두 달란트를 주셔서 제가 두 개를 남겨라고 얘기를 해요.

근데 하나 받은 사람은 뭐라고 얘기하냐? 24절 보세요.

한 달한테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아서 거두고 해치지 않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이렇게 얘기를 해요.

여러분 저를 보세요.

다섯 개 받고 두 개 받은 사람이 오랜 후에 돌아온 주인을 만나서 처음 했던 얘기하고 한 달한테 받았던 사람이 했던 얘기하고 분명히 차이가 있어요.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차이는 바로이 차이예요.

자, 다섯 개를 받은 사람과 두 개를 받은 사람은 주인이 돌아왔어요.

오자마자 그 주인을 만나서 하는 얘기가 뭐예요? 주인님, 제게 다섯 개 주셨잖아요.

다섯 개.

다섯 개.

이 얘기부터 해요.

두 달한테 받은 사람도 주인님 제게 두 개 주셨어요.

두 개.

두 개 주셨잖아요.

두 개.

이 얘기부터 해요.

근데 하나 받은 사람은 그 얘기를 안 해요.

자.

이 말만 들어도요.

그 종들이 주인이 돌아오는 날까지 어떻게 살았는지가 분명하게 보이잖아요.

어떻게 살았는지가 이런 거예요.

주인이 오자마자 하는 얘기가 주인님 제게 다섯 개 주셨지요.

이 얘기부터 한다는 건 무슨 말이겠어요? 주인이 준 그 다섯 개가 그 주종 종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했던 거예요.

그게 이럴테면 이런 거야.

그것만 보고 살아온 거야.

거기에 목숨 걸고 살아온 거예요.

마치 이런 거죠.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이 오면 제일 먼저 그 얘기부터 하는 거예요.

왜? 그게 자신의 일생에서 제일 중요했거든요.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였어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어차피 땅속에 묻어두고 살았잖아.

안중에도 없이 살았어요.

관심도 두지 않고 살았어요.

그러니 주인을 만나면 그 얘기가 나오겠어요? 오히려 핑계거리를 찾는 거죠.

오히려 자기 잘못이 없다고 회피하려고만 하는 거예요.

이 차이예요.

이 차이.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뭐 때문에 사십니까? 여러분의 일생에 제일 중요한게 뭡니까? 주님 다시 오셨을 때 주님 저한테 이거 맡겨 주셨는데요.

저 이거 위에 살았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을만큼 정말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점이 정말 여러분의 인생의 가장 최고의 목적이 정말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이유가 주인께서 맡겨 주신 사명입니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만약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우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인 겁니다.

결산.

그래서 사명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린 하나님의 소명이 있고 사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으면 아무리 세상이 불확실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요? 헤쳐 나가야 될 이유가 있고 다시 일어설 이유가 분명하고 다시 달려갈 이유가 확실하니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거나 흐트러지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멘.

근데 그 목적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비틀거리는 거예요.

이제부터 소명과 사명을 기억하고 사세요.

아멘.

그리고 다시 한번 또 주님의 이름으로 간곡히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지도할 때 제발 제발 사명대로 살도록 지도하세요.

아멘.

결산이 있습니다.

우린 청지기입니다.

그래서 소명과 사명으로 사는 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교회 여러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흔들림 없이 소명을 위해 사명을 위해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주님 다시 오셔서 결산할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자.

이런 칭찬을 듣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M.

영상 정리

영상 정리

이 스크립트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소명과 사명, 그리고 은사를 주셨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우리가 무책임하게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시고 부르신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거죠. 특히 사무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그의 출생과 삶을 주도하셨음을 강조하며,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획하시고 부르셨음을 확신하라고 격려해요.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생명, 은사, 재능—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청지기임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임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사도 주셨다고 설명해요. 이 사명과 은사를 모르거나 무시하면, 결국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 결산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전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에 충실히 살아가야 하며, 자녀들을 지도할 때도 이 사명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잘했다"고 칭찬받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부터라도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사명을 확실히 붙잡고 살아가자는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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