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자란 누구? 이재철 목사가 밝히는 교회 몰락 속 진짜 사명 핵심!
사명자란 누구일까? (중학생 눈높이 설명)
왜 교회가 텅텅 비게 되었을까?
옛날 유럽은 거의 다 기독교 나라였어. 성당도 엄청 크고 멋있는데,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거야. 마치 관광지처럼 구경만 하고. 개신교도 마찬가지야. 요즘 교회들도 주일날 가면 사람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아.
왜 이렇게 됐을까? 간단해. 복음(예수님 이야기)보다 교회를 먼저 내세웠기 때문이야. 교회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존재하는 건데, 순서가 뒤바뀌어서 교회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해지니까 복음이 수단이 되어버린 거지. 그러니 생명력을 잃고 몰락하게 된 거야.
유럽이랑 미국, 똑똑한 사람들은 왜 다를까?
유럽에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개신교 신자가 많은데, 미국에서는 가톨릭 신자가 더 많대. 왜 그럴까?
- 유럽: 옛날 유럽은 가톨릭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걸 장악했었어. 그러다 보니 권력과 결탁하면서 타락했지. 똑똑한 사람들은 이런 모순된 상황을 보고 "이건 틀렸어!"라고 생각하게 된 거야.
- 미국: 미국은 개신교도들이 세운 나라잖아. 처음부터 권력을 잡고 있었지. 반면에 가톨릭 신자들은 사회에서 좀 소외된 계층이었어. 그래서 미국에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권력 가진 개신교보다는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는 가톨릭에 더 마음이 갔던 거지.
결국 사람들은 어디가 진짜 예수님의 정신을 따르는지 끊임없이 평가한다는 거야.
미국에서 큰 교회랑 불교가 왜 같이 뜰까?
미국에선 2천 명 이상 모이는 큰 교회(메가처치)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그런데 동시에 불교도 인기가 많아지고 있대.
이유는 뭘까? 세상적인 것만 쫓는 교회에 대한 반감 때문이야. 불교는 "눈에 보이는 건 다 허무하다"라고 말하잖아. 이런 불교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눈에 보이는 것만 쫓는 교회에 대한 반작용인 거지.
왜 서양 똑똑한 사람들은 티베트 불교랑 달라이 라마에 빠질까?
불교에 빠진 서양 똑똑한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에게도 관심을 많이 보여. 그런데 불교를 깊이 들어가 보면, "무(無)"를 말하면서도 결국 절을 짓고 돈을 모으는 등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게 돼.
이건 뭘 의미할까? 진짜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야. 진짜를 보여주지 못하니까, 다른 종교의 문턱을 넘나들며 "혹시 여기엔 진짜가 있을까?" 하고 찾아 헤매는 거지.
한국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으로 가는 이유는?
한국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으로 많이 넘어가는 현상은 왜 일어날까? 이건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해. 서구 교회가 몰락한 이유가 바로 '선 예수 후 교회' 순서를 뒤바꿨기 때문이잖아.
한국 개신교도 목회자들의 욕심 때문에 '선 교회 후 복음' 순서로 바뀌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거라고 볼 수 있어.
왜 한국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욕먹을까?
'개독교'라는 말은 가톨릭까지 포함하는 게 아니라 개신교를 비하하는 말이야. 이렇게 욕먹는 이유는 성경 말씀에서 너무 멀어졌기 때문이야.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교회가 이상하게 보인다는 건, 우리 이야기라는 거지. 성경이 말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 교회가 말씀에서 멀어지면 세상은 교회를 외면해. 교회는 세상 힘이 아니라 '거룩함'의 힘을 가져야 해. 거룩함은 세상과 구별되는 건데, 이걸 잃고 세상 힘만 쫓으면 사람들은 떠나가.
- 세상 어디에나 진짜를 찾는 사람은 있어.
- 우리는 예수님의 진짜 생명과 진리를 보여주는 '사명자'로 살아야 해.
사명자는 어떤 사람일까?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은 먼저 '행하셨어'. 가르치신 것보다 먼저 행하신 거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도 다 행하신 거지.
사도행전은 예수님처럼 '먼저 행하는 사람들' 이야기야. 사명자는 예수님이 행하신 것처럼 행하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되는 거야.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았어'. 자기 욕심을 위해 말씀을 왜곡하거나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는 거지. 사명자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왜곡하지 않는 사람이야.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옥토밭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야. 땅을 갈아엎고 돌멩이와 가시를 뽑아내는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좋은 밭이 된 거지. 사명자는 말씀에 대한 철저한 '자기 부인'을 통해 만들어져.
바울은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길인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갔어.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았지. 왜냐하면 말씀을 드러내는 길이라면 어떤 길이든 주저하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야.
세례 요한은 자기 인생길을 '메시아를 예비하는 사명의 삶'으로 가득 채웠어. 사명자는 자신의 인생을 영원한 사명의 삶으로 채워가는 사람이야.
'사명'이라는 단어는 '봉사'라는 뜻이야. 식탁을 차리는 사람처럼, 대가 없이 헌신하고 겸손하게 섬기는 삶이 바로 사명이야.
나무 가지가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교회 직분도 마찬가지야. 세상은 높은 사람이 위에 있지만, 교회는 낮은 사람이 더 위에 있는 것처럼 섬기는 자리야. 사명자는 누군가의 밑거름이 되어주고 섬기는 사람이야.
사명자는 자신의 전공과 직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섬김의 밑거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야. 내가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를 위해 섬기는 것, 그것이 사명자의 삶이야.
- 베드로: 천대받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물며 사람들의 이중성을 깨닫게 하고, 짐승 가죽을 벗기는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세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보여줬어.
- 바울: 핍박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해 사람들의 삶을 기쁨과 성령으로 채웠어.
- 포도원 품꾼 비유: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품삯을 받았을 때, 더 많이 받은 사람은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나누는 마음을 가졌어. 하나님의 나라 정신을 구현하는 그리스도인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사람이야.
결론적으로 사명자는:
-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 (고린도전서 10:33)
- 좁고 좁은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구현하며 살아가는 사람 (마태복음 7:13-14)
이것이 바로 사명자의 삶이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삶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