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포기한 도시? 구룡성채 3만명, 이 지옥에서 살아남은 비밀!
홍콩 구룡 성체: 법도 없고 규칙도 없었던 도시 이야기
옛날 옛날 홍콩 한복판에 경찰도 안 들어가고, 집 지을 허가도 없고, 세금도 없고, 의사 면허도 필요 없는 동네가 있었어. 축구장 네 개 만한 땅에 14층짜리 건물 350개가 빽빽하게 붙어 있었는데, 무려 3만 3천 명이 살았대. 서울보다 80배나 좁은 땅에 말이야!
이 동네가 왜 이렇게 됐냐면, 1898년에 영국이랑 중국이 맺은 조약 때문이야. 그 조약에 딱 한 줄 때문에 95년 동안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땅이 생겼고, 사람들은 거기서 자기들끼리 우물을 파고, 전기를 끌어오고, 학교를 옥상에 짓고, 어묵 공장도 돌렸어.
오늘은 바로 이 구룡 성체 이야기를 해줄게. 어떻게 생겼고, 안에서 누가 뭘로 돈을 벌었고, 왜 1993년에 4,700억 원이나 들여서 부쉈는지, 그리고 이 이야기가 강남 한복판에 있는 어떤 동네랑 왜 똑같은지까지 말이야!
숫자로 보는 구룡 성체
- 땅 크기: 축구장 4개보다 작은 2.6헥타르 (여의도 공원의 10분의 1)
- 건물: 350동 (최고 14층)
- 사람 수: 33,000명 (1제곱 킬로미터당 125만 명! 서울의 80배!)
- 사업장: 8,500곳 (상가, 공장 등)
- 특이점: 건물 높이는 최고 14층. 왜냐하면 바로 옆에 카이탁 공항이 있어서 비행기가 날개로 건물 옥상 안테나를 칠까 봐 그랬대. 무법 도시였지만 유일하게 지킨 규칙이 비행기 항로였던 거지.
- 우체부: 딱 한 명! 1,700가구와 8,500개 사업장에 편지를 돌렸대. 주소가 없어서 머릿속에 지도를 넣고 다녔다고 해.
어떻게 이런 동네가 생겼을까?
이 모든 숫자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려면, 건물 말고 종이 한 장부터 봐야 해.
- 원래는 요새: 옛날에는 중국 송나라 때 소금 관리하던 곳이었고, 1847년에는 청나라가 성벽을 쌓아 요새로 만들었어. 영국이 홍콩을 가져가면서 중국이 그걸 감시하려고 코앞에 세운 거지.
- 조약의 한 줄: 1898년, 영국이 중국한테 홍콩 주변 땅을 99년 동안 빌리기로 했어 (신계조차 조약). 근데 이 조약에 "구룡성 안에서는 청나라 관리가 계속 관할권을 행사한다"는 한 줄이 들어간 거야.
- 영국 vs 중국, 책임 회피: 영국은 "우리 땅이야!"라고 했지만, 경찰을 보내거나 법을 적용하면 중국이 외교 문제로 삼을까 봐 손을 안 댔어. 중국은 "우리 땅이야!"라고 주장했지만, 영국 땅이라 관리인을 보낼 수도 없었지. 이렇게 둘 다 자기 땅이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땅이 95년 동안 유지된 거야.
생각해 봐. 네 동네에 경찰서도, 구청도, 세무서도 없는데 불법도 아니야. 그냥 아무도 안 오는 거지. 그럼 어떤 사람들이 모이겠어?
일본군 점령과 피난민
- 성벽 철거: 1941년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하면서 구룡성 성벽을 헐었어. 공항 활주로 넓히는 데 돌이 필요했거든. 그래서 '성체'라고 불리지만 정작 성벽은 없어진 거지.
- 판자촌 시작: 1945년, 중국 본토에서 내전이 터지자 피난민들이 홍콩으로 쏟아져 들어왔어. 갈 데가 없던 사람들이 성벽 없어진 옛 요새 터에 판자집을 짓기 시작했지.
- 영국의 불간섭 결정: 1948년에 홍콩 정부가 이 사람들을 내보내려 했는데 폭동이 났어. 중국 쪽에서는 "우리 땅인데 왜 영국이 손대냐!"고 했고, 영국은 결국 "안 건드린다"고 결정했어. 이때부터 홍콩 정부의 공식 입장은 '불간섭'이 된 거야.
삼합회와 어둠의 도시
- 삼합회의 지배: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 동네의 실질적인 정부는 삼합회였어. 아편, 도박, 매춘업소를 운영했고, 경찰이 안 들어오니까 홍콩 전체 마약 유통의 거점이 됐지. 사람들은 이 동네를 '어둠의 도시'라고 불렀어. 골목이 좁고 건물이 붙어 있어서 낮에도 해가 안 들어왔거든.
- 경찰의 첫 등장: 1973년부터 74년까지 홍콩 경찰이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서 마약 단속을 했어. 이때부터 삼합회의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지.
- 최소한의 서비스: 1970년대 후반부터 홍콩 정부가 상하수도, 우편 같은 최소한의 서비스를 조금씩 넣기 시작했어. 하지만 건축법은 여전히 적용되지 않았어.
우리가 아는 구룡 성체의 모습 완성
그다음 10년 동안 우리가 사진으로 보는 그 모습이 완성돼.
- 무허가 건물: 건축가도 없고, 도면도 없고, 검사도 없었어. 땅 주인이 누군지도 애매하니까 그냥 먼저 짓는 사람이 임자였지. 옆 건물에 벽을 대고 올리고, 옆 건물 계단을 빌려 쓰고, 옆 건물 옥상 위에 또 올렸어. 그래서 350동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한 덩어리였지.
- 좁은 골목과 불편함: 건물 사이 골목은 1미터도 안 됐고, 위층에서 물이 새고 전선이 늘어져 있었어. 배관은 벽 밖으로 다녔고, 안에서는 낮에도 전등을 켜야 했지.
- 물과 전기: 물은 처음엔 공공 수도에서 길어다 썼고, 나중엔 우물을 팠어 (무려 27개!). 우물물을 펌프로 옥상 물탱크까지 올리고 파이프로 각 집에 내려보냈지. 펌프 돌리는 전기가 많이 들어서 주민들이 시간을 정해서 돌아가며 썼대. 전기는 처음엔 몰래 끌어다 썼다가 1977년부터 정식으로 들어왔어.
- 옥상은 놀이터: 골목엔 해가 안 드니까 옥상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학교, 유치원, 노인들의 마작 장소였어. 옥상에서 옥상으로 걸어서 동네 반대편까지 갈 수 있었지. 14층 위에 또 다른 도시가 있었던 거야.
구룡 성체 안에서의 삶
상상해 봐. 1985년에 이 동네 8층에 산다고. 방은 3평 남짓이고, 창문을 열면 30cm 앞에 옆 건물이 보여. 아침 6시에는 물부터 확인해야 해. 옥상 물탱크에서 내려오는 물은 우리 층 차례가 오전이거든. 펌프 전기가 모자라서 층마다 시간을 나눴어. 그 시간에 물을 받아놔야 저녁에 씻을 수 있었지. 수도세는 없지만 건물 관리비에 펌프 전기값이 들어갔어.
엘리베이터는 하나도 없었고, 골목은 낮에도 전등이 켜져 있었어. 머리 위로 전선이랑 배관이 지나가고 위층에서 물이 떨어져서 맑은 날에도 우산을 들고 다녔대. 골목 끝 국수 공장에서 아침을 사 먹으면 바깥 홍콩 식당 반값이었고, 아이는 옥상 유치원에 데려다줬지.
이가 아프면 성체 바깥쪽 길로 나가면 치과가 줄지어 있었어. 면허 없는 의사들이었지만 바깥 치과보다 훨씬 쌌지. 옆집 아주머니는 여기서 틀니를 맞췄고, 바깥 동네 사람들도 버스 타고 여기까지 왔대. 밤이 되면 전등이 골목을 밝혔는데, 그 전기는 1977년부터 정식으로 들어온 거였고 그전엔 바깥 전봇대에서 몰래 끌어다 쓴 거였지. 이게 3만 3천 명의 평범한 하루였어.
구룡 성체에서 돈을 번 사람들
이 동네가 그냥 슬럼이 아니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여기서 돈을 벌었기 때문이야.
- 치과: 중국 본토에서 온 의사들이 홍콩에서 다시 면허 시험을 봐야 했는데, 구룡 성체는 면허가 필요 없었어. 그래서 성체 바깥 도로변에 치과가 줄지어 생겼고, 홍콩 사람들이 싸게 이를 뽑으러 왔지.
- 식품 공장: 어묵, 국수, 구운 돼지고기 등 홍콩 사람들이 먹는 음식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어. 위생 검사도 없고 임대료도 싸고 홍콩 시내까지 가까웠거든.
- 임대료: 허가가 없으니 건물값이 싸고, 건물값이 싸니 임대료도 쌌어. 홍콩에서 제일 싼 집이었지. 그래서 공장 노동자, 신규 이민자, 노인들이 살았어. 3만 3천 명 중 대부분은 범죄자가 아니라 그냥 홍콩에서 제일 싼 방을 찾은 사람들이었지.
- 세금 0: 세무서가 못 들어오니까 세금도 없었어.
결론적으로, 정부가 없어서 생긴 비용(면허, 검사, 세금, 건축 허가 등)이 빠진 자리에 사람들이 들어와 장사를 한 거야. 홍콩 바깥에서 그 비용을 감당 못 하는 사람들이 여기로 왔고, 그 비용만큼 싸게 팔았지.
구룡 성체의 끝
이 도시를 끝낸 것도 결국 종이 한 장이었어.
- 홍콩 반환 합의: 1984년, 영국과 중국이 1997년에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기로 합의했어. 이제 구룡 성체가 누구 땅이냐는 문제가 사라졌지.
- 철거 결정: 1987년, 홍콩 정부가 철거 계획을 발표했어. 주민 3만 3천 명과 사업장에 대한 보상금으로 당시 돈으로 4,700억 원 정도를 책정했지.
- 철거: 대부분의 주민은 보상을 받고 나갔지만, 일부는 보상금이 너무 적다고 버텼어. 1993년 3월 23일, 굴착기가 들어가서 13개월 만에 350동 건물을 모두 부쉈어.
- 공원 조성: 1995년, 그 자리에 공원이 생겼어. 청나라 때 관청 건물과 남문 터만 남겨두고 말이야. 지금은 조용한 중국식 정원이지만, 3만 3천 명이 살던 흔적은 안내판 몇 개뿐이야.
구룡 성체가 남긴 것
구룡 성체는 1898년 조약으로 태어나서 1993년에 죽었어. 95년 동안 존재했지만, 우리가 아는 도시 모습은 뒤에 40년이었고, 나머지 55년은 그 40년을 만든 '공백'이었던 셈이지.
신기하게도 이 도시는 없어진 다음에 더 유명해졌어. 철거 직전에 찍은 사진들이 전 세계 건축가들 사이에서 교과서가 됐고,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배경이 되기도 했어. 사이버펑크 장르에서 층층이 쌓인 도시가 나오면 거의 다 구룡 성체에서 영감을 받은 거야.
사람들이 구룡 성체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뭘까? 무법이었지만 무질서는 아니었기 때문이야. 우물을 나눠 쓰고, 전기를 시간 맞춰 쓰고, 옥상에 학교를 짓고, 우체부 한 명이 3만 3천 명한테 편지를 돌렸어. 정부가 없는 자리에 사람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든 거지. 그게 낭만이기도 하고 위험이기도 했어.
한국의 구룡 마을
놀랍게도 한국에도 이름부터 똑같은 동네가 있어. 바로 강남 구룡마을이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곳곳의 판자촌이 철거됐는데, 쫓겨난 사람들이 산자락에 모여 집을 지었어. 국유지와 사유지가 섞여 있고 무허가라 소유가 애매했고 주소도 안 나왔지. 이 상태로 30년 넘게 갔어. 강남 한복판 타워팰리스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데 말이야.
구조가 똑같지? 소유가 애매해서 아무도 책임 안 지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이고, 수십 년이 지나고. 구룡 성체는 조약 문장 하나가 만든 공백이었고, 구룡 마을은 국유지, 사유지, 무허가가 얽힌 공백이었던 거야.
끝나는 방식도 비슷해. 서울시와 SH 공사가 재개발을 확정했고, 원래 살던 가구 중 상당수가 이주를 마쳤어. 2029년 완공 계획이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야. 구룡 성체가 공원이 됐다면, 구룡 마을은 아파트가 되는 거지. 강남이니까.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보여줘.
- 규제가 빠지면 뭐가 생기는가: 규제를 없애면 시장이 알아서 한다고 하잖아? 구룡 성체는 그걸 95년 동안 실험한 곳이야. 결과는 둘 다였어. 싼 치과 진료와 싼 어묵이 생겼지만, 아편과 무너질 뻔한 건물도 생겼지. 결국 정부가 4,700억 원을 들여 그 실험을 끝냈어.
- 우리 동네에도 이런 땅이 있다: 네 동네에도 아마 이런 땅이 하나씩 있을 거야. 소유가 애매해서 수십 년 방치된 땅. 그 땅이 어떻게 끝나는지 보면 네 동네 앞으로 10년이 보일지도 몰라.
구룡 성체는 무법 도시가 아니었어. 법이 없는 게 아니라 정부가 없었던 도시였지. 그 자리를 3만 3천 명이 스스로 채웠고, 그게 너무 잘 돌아가서 결국 두 나라가 손을 잡고 부숴야 했어.
너희 동네에는 아무도 책임 안 지는 땅이 있니? 그 땅이 지금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