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 권사님의 30년 교회 청소, 마지막 고백에 눈물 쏟은 교인들
80세 김복순 할머니의 30년 교회 청소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80세 된 김복순이라고 해요. 어릴 때부터 교회 다니면서 평생을 교회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중에서도 마지막 30년 동안은 교회를 청소하는 일을 했어요. 오늘은 제가 그동안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용기 내서 처음으로 해보려고 해요.
왜 청소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사실 제가 청소 일을 30년이나 하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생계가 막막해졌는데, 그때 교회가 청소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셨거든요. 제가 쉰네 살 때였어요. 처음에는 몇 달만 하려고 했는데,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아직 학교 다니는 자식 셋이 있었으니, 한 달에 60만 원이라는 월급이 정말 소중했죠. 그래서 계속 일을 하게 됐어요.
새벽 4시 반, 30년의 헌신
매일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 교회로 향했어요. 아침 예배 전에 예배당은 물론이고 화장실까지 깨끗하게 청소해야 했으니까요. 겨울에는 얼어붙은 수돗물로 걸레를 빨면서 손이 트고 갈라지기도 했지만,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어요. 이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처음 10년은 그래도 몸이 잘 따라줬어요. 자식들도 하나둘 대학 졸업하고 직장 잡으면서 계속 일을 했죠.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고,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무릎 통증과의 싸움
그런데 예순다섯 살이 넘어가면서부터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매일 바닥을 닦고 쪼그려 앉아 일하다 보니 관절이 많이 상한 거죠. 의사 선생님은 수술을 권하셨지만, 수술비도 문제였고 무엇보다 쉴 수가 없었어요. 제가 쉬면 교회가 지저분해질 테니까요. 그래서 진통제를 먹으며 계속 일했어요. 아침마다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일어나는 게 일상이 됐죠. 무릎이 아파 눈물이 나올 때도 많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도
제가 청소하는 모습을 본 성도님들 중에는 그냥 지나치는 분들도 많았어요. 인사를 건네도 대답 없이 가시는 분들도 있었고, 어떤 날은 방금 닦은 바닥에 커피를 쏟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가는 분도 계셨죠. 그때마다 마음이 상했지만 표현하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제가 닦을게요."라고 웃으며 말했죠. 가끔은 제가 사람이 아니라 그냥 청소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보이지 않는 존재 같다고 할까요?
작은 친절들이 나를 버티게 해줬어요
하지만 감사한 일도 많았어요. 새벽 예배에 일찍 오시는 몇몇 권사님들은 저를 위해 따뜻한 차를 준비해주셨고, 담임 목사님도 늘 제 노고를 알아주시고 교회 행사 때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도 했어요. 그런 작은 친절들이 저를 버티게 해주었죠.
새로운 목사님과 변화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났을 때, 제가 일흔네 살 무렵이었어요. 담임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새로운 젊고 열정 넘치는 목사님이 오셨어요. 교회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하고 새 카페도 생겼죠. 그런데 새 목사님은 저에 대해 잘 모르셨나 봐요.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권사님, 나이가 많으신데 이제 그만 쉬시는 게 어떨까요?"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제가 어디서 쉬냐고요. 집이라고 해봐야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내는 반지하 단칸방이었는데, 제 월급이 그때 120만 원이었어요. 국민 연금은 30만 원 정도. 그걸로 어떻게 살라는 건지… 목이 메어 말도 못 하고 그냥 "네." 하고 대답했죠.
다행히 교회 재정 담당 장로님이 제 사정을 아셨는지 "복순 권사님은 우리 교회의 보물이십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제가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또다시 쓰러지다
그때부터 몸이 더 힘들어지기 시작했어요. 허리도 심하게 굽고 무릎은 더 심해져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찌릿찌릿한 통증이 왔죠. 하지만 계속 일했어요. 제가 일을 그만두면 다음날부터 먹고 살 길이 막막했으니까요.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도 싫었고, 그들도 각자의 가정과 자녀들을 키우느라 빠듯하게 살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3년 전, 갑자기 쓰러졌어요. 화장실 바닥을 닦다가 어지러움이 확 몰려와서 눈을 떠보니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더라고요. 뇌경색이었다고 해요. 다행히 크게 후유증은 없었지만,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고 하셨죠.
청년들의 따뜻한 마음
하지만 저는 태어나자마자 다시 교회로 향했어요. 교회가 지저분해질까 걱정됐거든요.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있었어요. 제가 없는 동안 청년들이 돌아가며 청소를 해 놓았더라고요. 그리고 교회 사무실에는 "복순 권사님, 빨리 돌아오세요.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붙어 있었어요. 그걸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30년 동안 묵묵히 청소만 했는데, 이렇게 저를 생각해 주는 분들이 있다니…
그래도 저는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몸은 예전 같지 않았지만, 천천히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노력했죠. 그런데 지난달, 또다시 쓰러졌어요. 이번에는 좀 더 심각했죠.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 나이에 더 이상 일하는 건 위험하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셨어요.
특별한 은혜
태어나고 교회에 갔더니, 당회에서 특별히 회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이 모여 저를 위한 특별 후원금을 마련해주셨대요. "권사님, 이제 편히 쉬세요. 우리가 매달 생활비를 보내 드릴게요. 30년 동안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신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고 싶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데 또다시 눈물이 흘렀어요.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이었죠.
마지막 출근, 그리고 은퇴
사실 제가 오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일이 제 마지막 출근 날이기 때문이에요. 30년 만에 처음으로 은퇴를 하게 된 거죠. 어제 밤에는 잠도 안 올 정도로 마음이 복잡했어요. 기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두렵기도 했어요. 제 인생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한 일이 없었거든요.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교회로 향하는 그 일상이 이제 없어진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요.
오늘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으면서 문득 생각했어요. 30년 동안 제가 얼마나 많은 먼지를 닦았을까?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버렸을까? 성탄절 장식을 몇 번이나 달았다 내렸을까? 계산해보니 성탄절만 30번이네요. 부활절은 31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했지만, 그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저를 보고 계셨다는 걸 믿어요.
어떤 날은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특히 무릎이 아픈 날이면… 하지만 예배당을 닦으면서 찬송가를 흥얼거릴 때면 저도 모르게 위로가 됐어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이 찬송을 부르면서 화장실 바닥을 닦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어떤 날은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 혼자 앉아 기도하기도 했어요. "하나님, 제 인생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남편이 일찍 떠나고 제가 이렇게 청소부로 살게 될 줄 몰랐어요. 하지만 감사합니다. 이렇게라도 일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그런 기도를 드리면 마음이 평안해졌어요.
예상치 못한 선물
청소부로 산 30년, 제 삶은 화려하지 않았어요.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한 것뿐인데, 그런 제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셨나 봐요. 교회 식구들이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어제 당회에서는 특별한 결정을 내려주셨대요. 제가 살던 반지하 월세방 문제로 고민이었는데, 교회에서 작은 임대 아파트를 마련해주셨다고 해요. "복순 권사님, 앞으로는 여기서 편히 사세요. 월세 걱정 없이, 추운 겨울에 곰팡이 핀 벽 보지 않고." 이 말씀을 듣는데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됐어요. 제가 살면서 이런 큰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사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그동안 성도님들이 제 처지를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제가 교회 일을 하니까 당연히 교회에서 주택도 제공해주고 넉넉히 살 거라고 생각하셨던 분들이 많았거든요. 어떤 분은 제게 "권사님은 복받으셨네요. 교회에서 일하시니."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죠. 그때마다 그냥 웃으며 "네. 맞아요."라고 대답했지만, 실제로는 월세 30만 원에 관리비 10만 원, 약값으로 25만 원이 나가고 남는 돈으로 겨우 생활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교회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제가 쓰러지고 나서야 당회에서 제 실제 생활 형편을 알게 된 거죠. 그제서야 놀라시며 서둘러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어요.
마지막 청소, 그리고 감사
내일이면 마지막 청소를 하게 됩니다. 교회 구석구석을 닦으면서 감사 기도를 드릴 생각이에요. 화장실 바닥을 마지막으로 닦으면서, 예배당 의자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그동안의 시간들을 떠올릴 것 같아요.
제가 청소부로 일하는 동안 우리 교회는 정말 많이 변했어요. 처음에는 작은 건물이었는데, 이제는 대형 교회가 됐죠. 성도 수도 100명에서 2,000명으로 늘었고, 목사님도 세 분이 바뀌셨어요. 그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고 같은 자리를 지킨 건 아마 저뿐일 거예요. 아침 일찍 와서 교회 문을 열고, 밤 늦게 남아 교회 문을 닫고… 그런 일상이 30년 동안 계속됐어요.
숨은 일꾼, 명예 권사
지난 주일에는 특별한 일이 있었어요. 담임 목사님께서 갑자기 예배 시간에 저를 앞으로 불러내셨거든요. "우리 교회의 숨은 일꾼 김복순 권사님을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그 순간 온 성도들이 기립박수를 쳐 주셨어요. 앞으로 나가는데 다리가 떨려서 손도 부들부들 떨렸죠. 그런데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분은 30년 동안 단 하루도 결근하지 않고 우리 교회를 청소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었던 건 이분의 헌신 덕분입니다. 오늘부터 우리 교회는 김복순 권사님을 명예 권사로 추대합니다. 그리고 특별 감사패와 함께 앞으로의 생활을 위한 특별 헌금을 드립니다."
너무 놀라서 말도 못 했어요. 그저 눈물만 흘렀죠. 그리고 예배가 끝난 후에는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성도님들이 와서 안아 주시고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어떤 청년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권사님, 제가 어릴 때부터 교회 오면 항상 계셨잖아요. 권사님 덕분에 교회가 항상 깨끗했어요. 그런데 한 번도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드렸네요.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눈물이 나왔어요. 30년 동안 누군가 저를 기억해주고 있었다니…
사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건 교회 어린이들이 만든 카드였어요. "복순 할머니 사랑해요. 교회를 깨끗하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할머니의 청소 솜씨는 세상에서 최고예요." 이런 글귀들이 적힌 카드를 받으니 평생 일한 보람이 느껴지더라고요.
새로운 시작
내일이면 이 모든 일상과 작별 인사를 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해요. 이제 아침마다 알람 맞추고 일어날 필요가 없다니. 무릎 아픈 채로 화장실 바닥을 닦지 않아도 된다니.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섭섭한지 모르겠어요. 아마 30년 동안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쉽지 않아서일 거예요. 오늘 밤에는 잠을 잘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일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그래도 이제는 웃으면서 은퇴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성도님들의 은혜 덕분이에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든세 살에 이렇게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다니, 하나님은 정말 놀라운 분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