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프유 브리프유 로그인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유튜브 영상의 자막과 AI요약을 추출해보세요

AI 채팅

BETA

새벽 4시 출근! 한국 경제 뒤흔든 '기인' 장기영 부총리의 기상천외 비화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장기영 부총리, 일 벌레에 가까운 열정으로 물가를 잡다!

지난 시간에 장기영 선생님이 금융계, 언론계를 거쳐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알아봤잖아? 이번 시간에는 그가 부총리가 돼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 특히 '물가 잡기'에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이야기해 줄게.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잠은 어디에?

장기영 선생님은 정말 독특한 분이었대. 마치 신화 속 인물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분이었지. 부총리가 되자마자 이런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는데, 관료들은 그의 일하는 방식에 적응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해.

  • 새벽부터 전화 폭탄: 그는 새벽 4시부터 일과를 시작했어. 기획원은 물론 다른 부처 직원들에게도 전화를 걸었지. 심지어 화장실에도 전화기를 달아놓을 정도였다니, 얼마나 부지런했는지 알겠지?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실례인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대.
  • 퇴근은 언제? 심야 회의: 일찍 시작하는 만큼 퇴근이 빠른 것도 아니었어. 일주일에 두 번씩 열리는 비공식 경제장관 회의는 퇴근 시간 이후에 열었지. 민간에 있을 때 보니 공무원들이 회의 때문에 만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건 정부의 잘못된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래. 물론 장관들을 좀 '길들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하네.
  • '녹실회의': 이 회의는 가죽 의자와 양탄자가 녹색인 회의실에서 열려서 '녹실회의'라고 불렸어. 장관들끼리만 모여서 공식 회의 전에 의견을 조율하는 자리였지. 이 회의는 보통 밤늦게까지 이어지다가 통금 시간 30분 전에야 끝났다고 해.
  • 365일 일하는 사람: 결국 장기영 선생님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1년 365일 내내 일하는 사람이었던 거야. 잠은 자긴 하는 건지 의심될 정도였지. 본인은 에너지가 넘쳐서 괜찮았을지 몰라도, 주변 직원들은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

회의는 동시에 여러 개, 정신없이 오가며!

회의 방식도 정말 특이했대.

  • 동시 다발 회의: 같은 시간에 두세 개의 회의를 동시에 열어놓고 이 회의실, 저 회의실을 정신없이 오갔다고 해.
  • 끊이지 않는 방문객: 회의 중간에도 장관실을 찾는 관료나 기자들이 끊이지 않았지. 장관실은 하루 종일 그를 만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해.
  • 핵심은 놓치지 않아: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회의 내용의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한 점이야. 본인은 괜찮았겠지만, 관료들은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정말 힘들었을 거야.

물가 잡기 총력전: '물가는 신앙'

이제 그가 부총리로서 펼쳤던 주요 경제 정책, 특히 '물가 잡기'에 대해 알아볼게.

  • 취임 당시 심각한 물가 상승: 장기영 선생님이 취임했을 때 물가 상승률이 엄청났어. 1963년에는 20%, 1964년에는 30%에 육박했지. 그래서 물가를 잡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였어.
  • 수요와 공급 불균형 해결: 물가가 오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물건은 부족한데 사려는 사람은 많았기 때문이야. 이걸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썼지.
  • 매일 아침 가격 체크: 그는 가격 동향을 매일 아침 5시에 전화로 체크했어. 쌀값, 채소값 등을 물어봤지. 그래서 관료들은 매일 새벽 4시에 시장을 돌며 가격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고 해.
  • '물가안정 새벽기도회': 아침 7시에는 국장과 실무자들을 모아 물가대책위원회를 열었어. 그는 "물가는 신앙"이라고 자주 말했기 때문에 기자들은 이 회의를 '물가안정 새벽기도회'라고 불렀대.
  • 수송대책위원회: 물건이 잘 운반되도록 해서 물건을 구하기 쉽게 만드는 위원회도 있었어. 예를 들어 연탄이나 시멘트 값이 오르면 기차에 더 많이 실어주는 식으로 말이야. 철도청 직원들이 자주 불려 가서 곤욕을 치렀다고 해.
  • '대한민국 경제호'에 나쁜 물 막기: '침수방지대책위원회'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건 마치 '대한민국 경제호'라는 배에 밀수나 암달러 거래 같은 '나쁜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자는 의미였대. 결국 물가를 잡기 위한 조직이었지.
    • 웃지 못할 에피소드: 그런데 위원회 이름 때문에 오해가 생기기도 했어. 치안국장이 이 위원회를 수해(홍수 피해) 대책 회의로 오해해서 소방과장을 대신 참석시켰다는 거야. 물가 잡는 회의에 소방과장이 참석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 가격 통제 정책: 쌀, 밀가루, 연탄 같은 생필품과 시멘트, 면사 같은 원자재 가격을 정부가 정해서 물가 상승을 막는 정책도 폈어.
  • 발로 뛰는 부총리: 장기영 선생님은 직접 발로 뛰며 물가를 잡으려고 노력했어. 쌀값이 오르면 큰 곡물상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정육업자들을 불러서 가격 올리지 말라고 호통치기도 했지. 심지어 커피값이 비싼 다방 주인에게는 값을 내리라고 하고, 안 그러면 트집 잡아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라고 지시하기도 했대. 결국 다방은 위생 검사 결과 영업정지를 당했고, 가격을 내리자 하루 만에 영업정지가 풀렸다고 해.

물가 상승세 둔화, 하지만 부작용도

이렇게 총력전을 펼친 결과, 물가 상승세는 둔화되었어. 1965년부터 1967년까지 3년간 물가 상승률은 10~13% 수준을 기록했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높지만, 당시 20~30%를 기록하던 상황에 비하면 크게 낮아진 거야.

장기영 부총리의 물가 잡기 과정은 관례에 얽매이지 않고, 파격적인 생각도 실행에 옮기며, 때로는 임기응변적인 방법을 쓰는 그의 일 처리 스타일을 잘 보여줘.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무리한 정책이 추진되면서 경제 관료들이 개별 품목 가격을 행정적으로 통제하려는 경향 같은 부작용도 있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해.

이번 시간에는 장기영 선생님의 기인다운 모습과 물가 잡기 총력전에 대해 알아봤어. 다음 시간에는 금리 현실화 조치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

최근 검색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