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사람과 거리두기! 감정 낭비 없이 나를 지키는 3가지 방법
이창훈 아나운서 이야기 정리
1. 뉴럴링크, 뇌에 칩 심는 거 해보고 싶냐고? 🤔
일론 머스크가 뇌에 칩 심어서 시력, 청력 회복하고 걷게 하는 뉴럴링크 얘기 많이 하잖아. 근데 나한테 누가 "너도 해보고 싶지 않냐?"고 물어봤어. 나는 "왜?"라고 되물었지.
이유는 뭐냐면, 내가 40년 가까이 보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보게 된다고 해서 큰 이득이 있을까 싶었어. 글자도 새로 배워야 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도 새로 배워야 하고, 제스처도 새로 알아야 하는데, 그걸 다 감수하면서까지 꼭 봐야 할 의미가 있을까 싶었던 거지.
그리고 나는 시각 장애인이라는 내 모습이 싫지 않거든. 이걸 굳이 바꿀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
2. 낯선 세계에 혼자 내려진다는 것 낯섦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존재
"인간은 적응하는 존재가 아니다. 낯섦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존재다." - 알베르 카뮈
1992년 봄, 여덟 살 소년이 경남 진주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어. 맹학교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였지. 이 소년에게 낯섦은 시각이 아니었어. 밥맛도 달랐고, 말도 달랐고, 주말도 달랐지.
누구에게나 처음 혼자 낯선 세계에 던져지는 순간이 있어. 기숙사일 수도 있고, 낯선 도시일 수도 있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직장일 수도 있지.
대한민국 최초 장애인 아나운서가 되기까지, 그 시작을 들여다보자.
3. 대한민국 최초 장애인 아나운서 이창훈 님 이야기
"최초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무게가 다르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길을 직접 만들어 오신 분."
이창훈 아나운서는 시각 장애라는 벽을 넘어 대한민국 최초로 장애인 아나운서가 됐어. 15년 전 KBS 공채로 합격했지.
"출발점이 화려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가장 막막했던 자리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
이창훈 아나운서의 시작은 진주에서 서울로 향하던 여덟 살 봄날이었어.
"생후 7개월에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고, 여덟 살에 교육을 위해 서울 맹학교 기숙사로 혼자 올라왔다."
부모님과 떨어져 말도 음식도 낯선 도시에서 처음 기숙사 문을 열었을 때, 가장 오래 붙들고 있었던 감정은 뭘까?
"어머니가 '한 달 있다 올게'라는 말을 했을 때, 연결된 실이 툭 끊어지는 단절의 느낌, 상실감이 크게 다가왔다."
대부분의 부모님은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아이와 함께 지내지만, 이창훈 아나운서는 부모님의 생업 때문에 혼자 서울에 있어야 했어.
"어렸을 때는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와 주시고 '너와 나의 공간이 끊어진 게 아니라 계속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를 주시면서 신뢰가 쌓였다."
지금도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고, 어머니는 진주에 계시지만 가끔 서울에 올라오신다고 해.
"보는 것은 분명 강점이지만, 나는 보는 감각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 말고 뭐가 좋을까 체감하는 게 없다. 그래서 뉴럴링크 같은 기술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한다."
"나는 시각 장애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싫지 않은데, 이걸 굳이 바꿀 필요가 있을까?"
이 말에 대해 진행자는 "단단한 자존감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 나의 정체성이 싫지 않다는 말씀이 큰 울림을 준다."고 했어.
"부재함에 집착하다 보면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의미와 효용성을 못 누리게 된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는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지식을 쓰고, 마음을 썼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감사함이 쌓인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면서 실제로 그런 일들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뇌가 그렇게 반응하고 사람들이 더 호감을 표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트럼펫 소리가 '빵' 하고 났을 때, '나만 하는 거네,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도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일찍 배웠다. 대학에 가서야 사람들에게 나의 필요를 직접 말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을 하면서 말을 어떻게 잘 전달해야 할지 훈련이 되었다. 대학교 때는 선배들의 조언과 결단력으로 나의 생각을 미리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불러주는 것은 나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다시 맺어진다."
"장애를 넘어 눈을 지칭해 줄 때 기쁨이 있다. 역설적으로 나를 배려하는 사람들도 배려받을 때가 필요하다. '과도한 배려는 관계를 배린다'는 말은 이런 의미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지만, 남 탓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무고한 사람인데 피해를 봤다'고 선포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장애는 다른 몸으로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불공평함은 구조적인 문제이고, 개인은 '균열'을 통해 균형을 맞춰나가야 한다."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은 '고인다'는 말이다. 썩어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말은 '담는다'와 '전달한다'이다. 무언가를 잘 담아야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목표는 재미와 의미다.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에서 의미를 만들고 재미를 찾자. 그리고 그 안에서 자유하고 싶다."
"늘 '새로고침'하는 삶을 살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정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나의 생각과 태도를 계속해서 바꿔나가야 한다."
"사람들은 변하고, 관계도 변한다. 그런 당연함 속에서도 나의 가치와 철학을 지키면서 균열 속에서 균형을 만들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해야 한다."
"긍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 감사와 긍정, 그리고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보지 않는 태도로 더 좋은 것들이 흘러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나의 약함이 누군가에게 어려움이 되지 않도록 나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4. 마지막 메시지
이창훈 아나운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준다. 낯선 세계에 처음 내려졌던 날, 말하지 못해서 어긋났던 관계,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서 혼자 기준을 세워야 했던 순간들.
"늘 새로고침." 이 말이 우리에게도 새로운 출발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