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 시어머니, 며느리 몰래 집 팔고 사라진 충격 이유! 노후 사연 공개
엄마,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성우는 텅 빈 거실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어. 손에 든 휴대폰이 떨렸지. 믿을 수 없었어. 소파, 식탁, TV, 심지어 가족 사진까지 모두 사라졌거든. 일주일 여행 다녀왔을 뿐인데 집이 텅 비어 있었어. 바닥에는 미안하다는 말도, 설명도 없는 쪽지 한 장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 엄마는 전화로 차갑게 말했어. "그 집은 팔았어."
30년을 살던 집을 팔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엄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새벽 4시 반, 옥분의 하루
새벽 4시 반, 옥분은 눈을 떴어. 20년 넘게 이 시간에 일어났으니까 알람도 필요 없었지. 부엌으로 갔는데, 어젯밤 서연이가 하기로 했던 설거지가 그대로 쌓여 있었어. 라면 그릇, 맥주잔, 컵들… 기름기가 말라붙어 있었지. 서연이는 피곤하다며 잠들어 버렸고, 결국 옥분이 새벽에 하게 된 거야. 늘 그랬던 것처럼.
뜨거운 온수를 틀어 기름진 그릇을 씻었어. 수세미로 문지르니 손이 빨개졌지. 설거지를 마치고 손을 씻었지만, 비린내는 지워지지 않았어. 생선 냄새는 피부 깊숙이 배어 있었고, 아무리 씻어도 남아 있었지.
며느리의 부탁, 그리고 옥분의 희생
사흘 전, 며느리 서연이가 옥분을 불렀어. "어머님, 잠깐 얘기 좀 할게요." 서연이의 목소리는 차가웠지. 옥분은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어. 매일 아침 식사 준비, 설거지, 빨래, 청소… 서연이가 퇴근했을 때 깨끗한 집을 만들어 놓는 게 옥분의 일이었지.
서연이는 학원 일이 너무 힘들다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된다고 말했어.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부탁했지. "저녁도 좀 준비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집에 오면 밥만 먹을 수 있게." 옥분은 입술을 깨물었어. 시장에서 하루 종일 서 있으면 다리가 붓고 무릎이 쑤셨거든. 집에 오면 다리를 뻗고 누워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지. 게다가 서연이도 돈을 벌고 있었잖아.
"알았어요." 옥분이 말을 끊었어. 서연이는 화난 듯 웃으며 말했지. "감사합니다, 어머님. 이제 저녁까지 챙겨 주시니 제가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겠어요."
그날부터 옥분은 시장에서 돌아오면 곧장 저녁 준비를 시작했어. 다리가 아파도, 무릎이 쑤셔도 앉지 못했지. 오늘 아침도 그랬어. 옥분이 저녁을 차렸지만, 설거지는 서연이가 하기로 했었거든. 하지만 서연이는 피곤하다며 자러 갔고, 결국 옥분이 새벽에 설거지를 하게 된 거야.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갔어. 30년 동안 끊임없이 담가온 손. 이제는 어떤 물에도 부드러워지지 않았지. 깨끗해진 싱크대를 보니 마음이 조금 나아졌어. 적어도 서연이가 아침에 화는 안 내겠지.
옥분은 계란 프라이를 하고 된장찌개를 끓였어. 지우가 좋아하는 메뉴였지. "할머니 밥이 제일 맛있어요." 지우의 말에 옥부는 흐뭇했어. 새벽에 일어나는 게 정신없이 바쁜 게 다 괜찮아졌지.
밥상을 차리고 메모지에 글씨를 썼어. "아침 다 해 놨어. 맛있게 먹어라." 옥부는 글씨를 잘 쓰지 못했어. 중학교밖에 안 나왔으니까. 하지만 마음은 담았지. 지우가 웃으면서 읽을 거라고 생각했어.
낡은 파란색 패딩을 입고 현관문을 나섰어. 복도가 차가웠고, 계단을 내려갈 때 무릎이 시큰거렸지. 밖으로 나오니 새벽 공기가 얼굴을 때렸어. 귀가 실렸고, 손을 호주머니에 넣었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어. 가로등 아래 옥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지. 혼자였어. 세상이 자고 있을 때 옥부는 깨어 있었지.
시장에서의 하루, 그리고 며느리의 전화
시장에 도착하니 새벽 6시 반이었어. 상인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었지. 얼음 냄새, 바다 냄새가 났어. 옥분의 가게는 시장 구석에 있었어. 작은 가게였지만 20년 동안 여기서 일했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프나 건강하나 여기 있었어.
옆 가게 만수가 손을 흔들었어. "오븐 씨, 또 일찍 왔네요. 아침은 드셨어요?" "집에서 먹고 왔어요." 거짓말이었지. 옥부는 아침을 안 먹었어. 가족들 밥 차리느라 시간이 없었거든.
옥부는 생선을 손질했어. 익숙한 칼질이었지. 비늘을 긁어내고 배를 갈랐어. 찬물에 씻으니 뼈 속까지 시렸지. 손가락이 굳었지만 멈추지 않았어. 이게 옥분의 삶이었으니까.
해가 떠오르고 시장이 밝아지기 시작했어. 사람들이 오고 갔지. 옥부는 생선을 팔았어. 웃으며 인사하고 거스름돈을 정확히 줬지. 친절했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무거웠어. 이유를 몰랐지. 그냥 무거웠어.
11시쯤, 핸드폰이 울렸어. 서연이었지. "어머님. 오늘 학원 오후 휴무예요. 강사 회의가 취소돼서 일찍 끝났거든요." 서연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밝았어. "그래서 지우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어요. 애들이 우리 집에 와요."
옥분의 손이 멈췄어. 칼을 쥔 손이었지. "그래서 말인데, 저녁 때쯤 오시면 안 될까요?" 서연이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지만, 뜻은 분명했어. 낮에는 오지 말라는 것. 아이들이 있을 때는 보이지 말라는 것. 왜일까? 옥부는 알고 있었어. 냄새 때문이라는 걸.
오후가 되자 이상했어. 생선이 빨리 떨어졌지. 평소 같으면 저녁까지 팔았을 텐데, 오후 3시에 벌써 바닥이 보였어. 도매상한테 전화했지만, 오늘은 트럭이 한 번 더 올 수 없었지.
옥부는 빈 상자를 보며 중얼거렸어. "어쩔 수 없네." 가게를 정리하고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집으로 향했지. 버스에 올라 창밖을 봤어. 해가 아직 높이 떠 있었지. 오후 3시 반. 이 시간에 집에 가는 건 처음이었어. 마음이 무거웠지. 집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디로 가겠어? 갈 곳이 없었지.
집 앞에 도착했어. 현관문 앞에 서니 안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어. 지우 친구들이었지. 음악 소리도 들렸어. 옥부는 한참 서 있었어. 문을 열어야 할까? 들어가도 될까?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어. 거실에 아이들이 있었지. 여섯 명쯤 됐어. 바닥에 앉아 과자를 먹고 있었지. 서연이는 소파에 앉아 웃고 있었어. 행복해 보였지. 옥분이 들어서자 순간 조용해졌어. 아이들이 돌아봤지. 서연이의 얼굴이 굳었어.
"어머님, 벌써 오셨어요?" 당황한 목소리였지. "응. 생선이 일찍 떨어져서." 서연이가 일어났어. 옥분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 "어머님, 방에서 좀 쉬세요. 피곤하시죠?"
방에서 쉬라는 말. 거실로 나오지 말라는 뜻이었지. 옥부는 고개를 끄덕였어. 뭐라고 말할 수 없었지. 목이 맸어. 신발을 벗고 복도를 지나 자기 방으로 들어갔어. 문을 닫았지. 침대에 앉았어. 방안은 조용했지만, 거실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어. 다시 시끌벅적해졌지. 옥분이 사라지니까 다시 편해진 거지.
옥부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어. 손이 떨렸지. 거실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어. "지우야, 할머니는 뭐 하시는 분이야?" "시장에서 생선 장사하셔." "아, 그렇구나." 짧은 침묵이 흘렀지. "그래서 아까 그 냄새…" 아이가 말을 흐렸지만, 다 들렸어. 옥분의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지.
손을 코에 가까이 가져갔어. 냄새가 났지. 비린내.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냄새. 욕실로 갔어. 불을 켰지. 수도를 틀었어. 뜨거운 물이 나왔지. 비누를 꺼내 손을 씻었어.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손등이 빨개졌어. 따가웠지만 계속 씻었지. 다섯 번, 여섯 번. 냄새가 지워지지 않았어.
거울을 봤어. 눈가가 붉어져 있었지. 눈물이 맺혔지만 흘리지 않았어. 꾹 참았지. 울면 안 됐으니까. 거실에서 들릴지도 모르니까. "나도 언젠가는 이 비린내를 벗고 싶다." 옥부는 거울 속 자신에게 속삭였어. 하지만 아직 그 의미를 몰랐지. 다만 한 가지는 알았어. 가슴 한쪽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시장에서의 아픔, 그리고 새로운 용기
다음 날 오후, 시장이 조용해졌어. 점심 시간이 지나면 손님들이 뜸했지. 옥부는 의자에 앉아 물을 마셨어. 옆 가게 만수가 김밥 한 줄을 건넸지. "요즘 표정이 안 좋던데 집에서 뭔가 있어요?" 옥부는 눈가가 붉어졌어. "며느리가 손녀 친구들 오는 날엔 늦게 오래요. 냄새나니까." 목소리가 떨렸지. "나 투명 인간 같아요."
만수는 조용히 들었어. "저도 비슷했어요. 제 아들도 미국 갔잖아요. 10년 전에." "나도 냄새나는 아비였나 봐요." 둘은 침묵했어. 같은 아픔을 아는 사람들의 침묵이었지.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요?" 옥분이 물었어. "잘못한 거 없어요. 우리는 열심히 살았어요. 가족 먹여 살리려고." 만수가 단호하게 말했지.
만수가 수첩을 꺼냈어. "옥분 씨, 이거 드릴게요. 생각 정리할 때 좋아요." 옥부는 수첩을 받아들었어. "만수가 말했지. "우리 나이엔 용기가 필요해요. 떠날 용기, 혼자 설 용기." 옥부는 놀랐어. "전 그럴 수 없어요." "나도 한 번은 떠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용기가 없었어요."
오후 4시, 손님 한 명이 왔어. "이모, 며느리가 효녀라면서요. 참 좋으시겠어요." 옥부의 손이 멈췄어. "네." 오징어를 받아들고 간 손님을 보며 중얼거렸지. "며느리가 효녀. 그게 효녀인가?"
손을 봤어. 비린내가 났지. 씻어도 씻어도 나는 냄새. 이 냄새가 나를 정의하는 건가? 나는 생선 장사하는 사람. 냄새나는 사람. 늦게 와야 하는 사람. 그게 나인가?
오후 5시, 마감 시간이었어. 만수가 왔지. "집에서 편히 쉬세요." 옥부는 쓸쓸하게 웃었어. "편히 쉴 수 있으면 좋겠네요."
옥부는 시장을 나섰어. 저녁 해가 기울고 있었지.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어. 나도 언젠가는… 말을 끝내지 못했어. 무엇을 언젠가 하고 싶은 건지 아직 몰랐으니까. 버스가 왔어. 창밖을 봤지. 집으로 가는 길. 하지만 집이 집 같지 않았어. 그냥 가야 하는 곳이었지.
저녁, 옥부는 김치찌개를 끓였어. 식탁을 차렸지. 성우가 퇴근했고, 서연과 지우도 식탁에 앉았어. 식사를 시작했지.
"어머님, 요즘 반찬이 맨날 똑같네요. 먹을 만한데. 좀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서연이 말했지. 성우가 끼어들었어. "엄마 음식 맛있는데, 매번 똑같으면 지루하잖아요."
옥부는 숟가락을 놓고 물을 마셨어. 목이 막혔지. 식사가 끝났어. 성우는 거실로 갔고, 서연도 일어났지만 설거지를 하지 않았지. "아, 너무 피곤해요. 나중에 할게요." 서연은 자기 방으로 갔어.
저녁 설거지는 원래 서연이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서연은 자주 밀었지. 그러면 그릇들은 아침까지 그대로였고, 옥분이 결국 하게 되는 거였어. 옥부는 한숨을 쉬며 주방으로 갔어.
서연이 세탁기 앞에 섰지. "어머님, 빨래 좀 따로 해 주세요." 옥부는 손을 멈췄어. "따로? 왜?" "어머님 옷에서 냄새가 좀 나서요. 생선 냄새가 저희 옷에 배더라고요." 특히 성우와 아이 셔츠요. 회사 갈 때 입는 건데 냄새나면 곤란하잖아요. 그리고 지우 교복도요.
옥부는 말이 없었어. 서연은 빨래 바구니를 두고 나갔지. 옥부는 혼자 남았어. 가족의 빨래에서도 옥부는 분리되었지. 물에 손을 담갔어. 그릇을 씻었지만,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어. 손에 벤 냄새. 아무리 씻어도 남아 있었지.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어. 성우는 신문을 보고 있었지. 옥부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어. 10분쯤 지났을까, 서연이 거실로 나왔지. "어머님, 소리 좀 줄여 주세요. 지우가 공부하는데 방해된대요." 옥부는 볼륨을 줄였어. "더 줄여 주시면 안 될까요?" 옥부는 또 줄였지. 이제 소리가 거의 안 들렸어. 서연은 다시 자기 방으로 갔지.
옥부는 텔레비전을 봤어. 아나운서의 입이 움직였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 화면만 보고 있었어. 소리 없는 화면, 움직이는 입. 성우가 말했어. "엄마, 일찍 주무세요." "응." 옥부는 텔레비전을 껐어. 자기 방으로 들어갔지. 침대에 앉았어. 손을 내려다 봤지. 빨간 손, 거친 손, 냄새 나는 손. 이 냄새 때문에 빨래를 따로 해야 한다고 했지. 가슴이 무거웠어.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가족이 아니라 일꾼이었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돈 버는 사람. 함께 앉아 밥 먹을 때도, 텔레비전 볼 때도 나는 방해였어. 냄새나는 사람, 시끄러운 사람, 불편한 사람. 그래, 나는 이 집에서 투명 인간이었구나.
옥부는 손을 주먹 쥐었어. 눈을 감았지. 가슴이 무거웠어. 창밖을 봤어. 어두웠지. 옥부는 이불을 끌어당겼어. 몸을 웅크렸지. 오늘 하루가 길었어. 너무 길었지. 옥부는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어.
옷장의 기억, 그리고 가족 사진
일요일 아침이었어. 서연이가 옥분의 방으로 왔지. "어머님, 오늘 옷장 정리할게요." 옷장이 열렸어. 서연이가 옥분의 옷들을 꺼냈지. 파란색 블라우스를 들었어. 옥분이 가장 아끼던 옷이었지. 성우 결혼식 때 입었던 옷이었어. 20년 전이었지.
"어머님, 이거 색도 바랬고… 사람들 눈도 생각하셔야죠." 서연이는 블라우스를 쓰레기 봉투에 넣었어. 회색 가디건도, 검은색 바지도. "냄새도 좀 나고요." "생선 냄새가 그 옷들 괜찮아요. 제가 새 옷 사 드릴게요."
서연이는 봉투를 묶어 현관에 두었어. 옥부는 혼자 남았지. 옷장이 텅 비었어. 현관으로 갔어. 검은색 봉투. 그 안에 20년의 기억들이 들어 있었지. "이게 나구나. 쓰레기 봉투 안에 옷들. 그게 나야."
저녁이었어. 옥부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였지. "엄마, 이 사진 언제 찍은 거야?" "지난주 놀이공원 갔을 때." 옥부는 손을 멈췄어. 우와, 예쁘다. 거실로 나갔지. 서연이가 액자를 들고 있었어. 옥부는 멈춰 섰어. 가족 사진이었지. 성우, 서연, 지우, 셋이 환하게 웃고 있었어. 옥부는 없었지.
"가족 사진은 자주 찍어 둬야 해." 서연이가 웃으며 말했지. 지우가 돌아봤어. "할머니, 예쁘게 나왔네." "응. 할머니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지우는 순수하게 말했지. 옥부는 기억했어. 지난주 일요일 성우가 물었었지. "엄마도 같이 갈래?" "너희끼리 가. 나 일 있어." 서연이 눈치를 보는 거였지. 서연이 직접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거든.
옥부는 주방으로 돌아갔어. 거실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지. 성우, 서연, 지우. 옥분 없는 가족. 눈물이 뚝 떨어졌어. 물에 섞여 내려갔지. 설거지를 마쳤어. 자기 방으로 갔지. 침대에 앉았어. 벽을 봤지. 옥부의 방엔 가족 사진이 없었어. 현관엔 옥부의 옷이 쓰레기 봉투에 담겨 있었고, 거실엔 옥분 없는 가족 사진이 걸려 있었지.
"나는 누구인가? 이 집에서 나는 누구인가? 지워져야 할 사람인가?"
집을 팔기로 결심하다
월요일 아침이었어. 옥부는 부엌으로 갔어. 설거지가 쌓여 있었지. 옥부는 멈춰 섰어. 평소 같으면 바로 했을 텐데, 망설여졌지. 한참을 서 있다가 수도를 틀었어. 아침 준비를 마쳤지. 현관으로 갔어. 쓰레기 봉투가 거기 있었어. 그대로 두고 집을 나섰지.
시장에 도착했어. 점심 시간에 만수가 김밥을 나눠 줬지. "옥분 씨, 수첩 써 보셨어요?" "아직은." "천천히 하세요." 만수가 자기 수첩을 꺼냈지. "저도 처음엔 뭘 써야 할지 몰랐어요. 그냥 오늘 기분이 어땠는지, 무슨 생각했는지 쓰는 거요."
옥부는 수첩을 꺼냈어. 한참을 생각하다 썼지. "오늘 아침 설거지가 싫었다. 손이 떨렸습니다. 내 옷이 쓰레기 봉투에 들어 있다. 거실에 가족 사진이 걸렸다. 나는 없다. 나는 이 집에서 누구인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가슴이 두근거렸지.
저녁이었어. 집에 도착했지. 저녁 준비를 시작했어. 평소처럼. 7시 정각에 상이 차려졌지. 서연이 식탁에 앉았어. "어머님, 오늘 생선구이 맛있네요. 간이 딱 맞아요." 옥부는 고개만 끄덕였지. 웃지는 않았어.
식사가 끝났어. 서연이 거실로 갔지. TV를 켰어. 옥부는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를 시작했지. 설거지도 이제는 자연스러워졌어. 거실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지. 옥부는 자기 방으로 갔어. 수첩을 꺼냈지. "오늘도 설거지를 했다. 저녁도 차렸다. 나는 웃지 않았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변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달라지고 있다."
옥부는 수첩을 덮었어. 창밖을 봤지. 달이 떠 있었어. 언젠가는 뭔가 해야 할 것 같았지. 무엇을, 어떻게, 언제. 아직은 몰랐지만,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옥부의 마음속에서는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
발목 부상, 그리고 가족의 무관심
화요일 아침이었어. 옥부는 시장으로 갔지. 평소처럼. 11시쯤이었어. 옥부가 생선 상자를 옮기고 있었지. 무거운 상자였어. 그때 발이 미끄러졌어. 옥분이 넘어졌지. 왼쪽 다리가 꺾였어. 발목이었지. 날카로운 통증이 왔어.
만수가 달려왔어. "오븐 씨, 괜찮으세요? 어디 다쳤어요?" "발목이." "병원 가셔야 해요. 발목이 많이 삔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저녁 준비해야 해요. 집에 가야 해요."
만수는 한숨을 쉬었어. 약국에서 파스를 사다 줬지. 5시가 되었어. 집에 가야 할 시간이었지. 옥부는 천천히 일어섰어. 걸을 수는 있었지만, 절뚝거렸지. 조심히 들어가세요. 옥부는 고개를 끄덕였어.
집에 도착했어. 옥부는 부엌으로 갔지. 절뚝거리면서.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꺼냈어. 도마 앞에 섰지. 서 있기가 힘들었어. 왼쪽 다리에 힘을 주면 통증이 왔지. 옥부는 이를 악물었어. 감자를 깎고 팔을 썰었지. 국을 끓였어. 냄비가 무거웠지. 시계를 봤어. 7시가 넘었지. 평소 같으면 상이 다 차려져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
7시 15분, 현관문이 열렸어. 성우가 들어왔지. "엄마, 다녀왔습니다." 옥부가 부엌에서 나왔어. 절뚝거리면서. "엄마, 왜 그래요?" "조금 삐끗했어." "많이 아파요?" "괜찮아. 저녁 거의 다 됐어." 성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지. 병원 가보라는 말은 없었어.
조금 후 서연이 들어왔어. "어머님, 저녁은요?" "지금 하고 있어." 옥부가 대답했지. "벌써 7시 20분인데요. 늦었네요." 서연의 목소리가 차가웠지. "다리를 좀 다쳐서." "다치셨어요?" 서연이 부엌 문 앞에 서서 팔짱을 꼈지. "많이 다치신 건 아니죠? 저녁은 하실 수 있으시고요?" "응. 할 수 있어." "그럼 빨리 차려 주세요. 성우도 배고파하고 지우도 학원 가야 해요."
옥부는 멈춰 섰어. 가슴이 답답했지. 다친 다리로 서둘러 요리하는데 걱정은커녕 빨리 하라고만 하더군. 옥부는 다시 움직였어. 절뚝절뚝. 7시 30분, 상이 차려졌지. 가족들이 식탁에 앉았어. 성우, 서연, 지우. 지우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지. 옥부가 절뚝거리며 국을 나르는 것을 보지 않았지.
식사가 끝났어. 서연이 거실로 갔고, 성우도 소파에 앉았지. 옥부는 그릇을 치우고 절뚝거리면서 부엌으로 날랐어. 설거지를 시작했지. 다리가 떨렸어. 거실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지. 옥부는 그릇을 닦으며 눈물이 났어.
설거지를 마치고 자기 방으로 갔지. 절뚝절뚝 침대에 앉았어. 발목이 많이 부어 있었지. 옥부는 수첩을 꺼냈어. "오늘 다쳤다. 시장에서 넘어졌다. 다리가 아프다. 성우가 물어봤다. 그게 다였다. 서연은 묻지도 않았다. 저녁을 차렸다. 다리로 설거지도 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나는 이 집에서 그냥 일하는 사람이구나. 더 이상은 못 하겠다."
옥부는 수첩을 덮었어. 다리가 욱신거렸지만, 마음은 조금 가벼웠어. 뭔가 끝이 보이는 것 같았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었어.
일본 여행, 그리고 가족의 결정
수요일 저녁이었어. 옥부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지. 거실에서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렸어. "여보, 이거 봐요. 일본 온천 여행 패키지인데 괜찮은데?" 서연의 목소리였지. "음. 언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이요."
옥부는 손을 멈췄어. 일본 일주일. "일주일이나 회사 휴가 낼 수 있어?" "이번 달 안 쓰면 없어져요. 당신도 연차 남았잖아요." "그렇긴 한데… 지우도 방학인데 딱 좋잖아요. 가족 여행 한번 가요." 서연의 목소리가 들떴지. "엄마 일본 가요? 온천 들어가고 싶어요." 지우의 목소리였지. "그래 좋지. 그럼 예약할까?"
옥부는 수세미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어.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로 나갔지. 성우와 서연이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어. "일본 가니?" 옥부가 물었지. 성우가 고개를 들었어. "아, 엄마. 네. 다음 주에 일주일 정도요."
옥부는 잠시 멈췄다가 물었지. "나도?" 순간 침묵이 흘렀어. 서연이 입을 열었지. "어머님, 집은 누가 봐요? 일주일이나 비우면 택배도 받아야 하고 화분에 물도 줘야 하고." 서연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리고 어머님 다리도 아프시잖아요. 비행기 타고 여기저기 다니면 힘드실 거예요. 저희가 다녀와서 사진 많이 보여 드릴게요."
결정된 것처럼 말했지. 옥부는 성우를 봤어. 성우는 화면을 보고 있었지. "성우야." 성우가 고개를 들었지만, 눈은 마주치지 않았지. "엄마는 집에 계셔야죠. 누가 집 봐요? 그리고 엄마 다리도 불편하시고." 성우의 목소리가 작았지.
"그래." 옥분이 말했어. "너희끼리 잘 다녀와라." "어머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서연이 환하게 웃었지.
옥부는 자기 방으로 갔어. 문을 닫았지. 침대에 앉았어. 가슴이 답답했지. "나도 가족인데." 거실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지. 일본 여행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 옥부는 수첩을 꺼냈어. 손이 떨렸지. "오늘 성우가 일본 간다고 했다. 일주일이라고 했다. 나는 빼고. 서연이 말했다. 집을 봐야 한다고. 내 집을 내가 주인인 집을. 나는 주인이다. 이 집의 주인. 하지만 나는 주인처럼 살지 못했다. 하인처럼 살았다."
옥부는 수첩을 덮었어. 침대에 누웠지. 천장을 봤어. 거실에서 여전히 웃음 소리가 들렸지. 옥분 없는 행복이었어. 다친 다리가 욱신거렸지. 가슴도 아팠지만, 가장 아픈 것은 마음이었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집주인으로서의 자각
목요일 아침이었어. 옥부는 시장으로 갔지. 다리는 여전히 불편했지만 나아지고 있었어. 점심 시간에 만수가 다가왔지. "옥분 씨, 요즘 이 동네 집값 들으셨어요?" "집값?" "네. 엄청 올랐대요. 제 조카가 부동산하는데요."
옥부는 숟가락을 내려놓았어. 손이 떨렸지. "6억, 7억. 그렇게 많이요?" "네. 옥분 씨 아파트 좋잖아요. 역도 가깝고 학교도 가깝고."
옥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머릿속이 하얘졌지. 오후 내내 옥부는 멍했어. 머릿속에서 숫자가 맴돌았지. 6억, 7억.
집으로 향했어. 걸으면서 생각했지. 내가 그렇게 큰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니. 남편이 죽고 나서 혼자 이 집을 지켰어. 20년 동안. 아파트에 도착했지. 엘리베이터 앞에 섰어. 건물을 봤지. 10층짜리 아파트. 남편과 함께 살던 집. 성우를 키운 집. 하지만 이 집은 누구 걸까?
현관문을 열었어. 거실을 봤지. 소파가 있었고, TV가 있었지. 하지만 이 집은, 이 땅은, 이 공간은 옥분의 것이었어. 법적으로 이 집의 주인은 옥분이었지.
옥부는 자기 방으로 갔어. 수첩을 꺼냈지. "오늘 만수가 말했다. 우리 아파트가 6억이 넘는다고. 나는 몰랐다. 이렇게 큰 재산을 가지고 있는 줄. 이 집은 내 거다. 남편이 사고 내 이름으로 된 집. 나는 20년 동안 이 집을 지켰다."
옥부는 팬을 멈췄어. 창밖을 봤지. 다시 썼어. "성우는 다음 주에 일본 간다. 나를 빼고. 서연은 내가 집을 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주인이다. 이 집의 주인. 하지만 나는 주인처럼 살지 못했다. 하인처럼 살았다."
옥부는 수첩을 덮었어. 거실로 나갔지. 가족 사진이 걸려 있었어. 옥분 없는 사진.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지. 시계를 봤어.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이었지.
죽음을 기다리는 가족, 그리고 새로운 시작
밤이었어. 옥부는 잠에서 깼어. 화장실에 가야 했지. 천천히 일어났어. 문을 열었지. 복도는 어두웠어. 조용했지. 성우와 서연의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어. 문이 살짝 열려 있었지. 목소리가 들렸어.
"여보, 어머님 돌아가시면 이 집 우리 거 되는 거 맞죠?" 서연의 목소리였지. 옥부는 멈췄어. 복도 한가운데서. 숨을 죽였지. "그럼 대출 갚을 수 있잖아요. 식당 빛." 서연이 말했지. "이억 갚으면 우리 정말 숨 좀 쉬겠죠?" 서연의 목소리는 밝았어. 계획을 세우는 목소리였지.
옥부는 벽에 손을 짚었어. 다리에 힘이 빠졌지. 숨을 쉴 수 없었어. 가슴이 조여왔지. "내 죽음을 기다리고 있구나. 내가 죽어야 행복한 거구나."
방안이 조용해졌어. 대화가 끝난 것 같았지. 옥부는 천천히 자기 방으로 돌아갔어. 발소리를 죽였지. 화장실도 가지 않았어. 그냥 방으로 들어갔지. 문을 닫았어. 조용히 침대에 앉았어.
수첩을 꺼냈어. 손이 떨렸지. "오늘 밤 성우와 서연의 방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죽으면 이 집으로 대출을 갚는다고. 식당 빛. 그 돈을 갚으면 숨쉴 수 있다고." 옥부는 팬을 멈췄어. 눈물이 났지. "나는 아직 살아 있는데. 나는 아직 숨쉬고 있는데. 그런데 벌써 내 죽음을 계산하고 있었구나."
옥부는 수첩을 덮었어. 침대에 누웠지. "유어."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어. 옥부의 입가에 미세한 떨림이 일었어. 분명한 건 뭔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거였어.
자유를 향한 여정
월요일 새벽 4시였어. 옥부는 이미 깨어 있었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어. 어젯밤 들었던 대화가 귀에 맴돌았지. 대출, 식당 빛, 숨쉴 수 있다는 말. 옥부는 침대에서 일어났어. 창밖을 봤지. 아직 어두웠어. 거실로 나갔지. 조용했어. 성우와 서연의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지. 짐 싸는 소리가 들렸어.
옥부는 부엌으로 갔어. 습관처럼 냉장고를 열었지. 아침을 차려야 할까? 여행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손이 냉장고 손잡이에 닿았지. 옥부는 멈췄어. 왜 내가 차려야 하지? 내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옥부는 냉장고 문을 닫았어. 자기 방으로 돌아갔지. 5시가 되었어. 성우 가족이 나왔지. 큰 캐리어를 끌면서. "엄마, 나 갑니다." 성우가 옥부의 방문을 두드렸지. 옥부는 대답하지 않았어. 침대에 누워 있었지. "엄마." 성우가 다시 불렀지. "응, 잘 다녀와." 옥부가 작게 말했지. "택배 오는 거 받아 주시고요. 집 잘 부탁드려요." 서연의 목소리였지. 옥부는 대답하지 않았어.
현관문이 열리고 닫혔어. 발소리가 멀어졌지. 집안이 조용해졌어. 옥부는 일어나 거실로 나갔지. 텅 빈 거실이었어. 아무도 없었지. 소파에 앉았어. 시계를 봤지. 5시 15분. 혼자였어. 완전히.
옥부는 창밖을 봤지.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어.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었지.
9시가 되었어. 옥부는 샤워를 했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어. 거울을 봤지. 70살의 여자가 서 있었어. 주름진 얼굴, 하얗게 센 머리, 작은 몸. 하지만 눈빛은 달랐어. 어제와는 다른 눈빛이었지.
시계를 봤지. 시장에 나가야 할 시간이었어. 옥부는 가방을 들었다가 내려놓았어. 오늘은 가게에 안 가는 날이었어. 70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옥부는 수첩을 꺼냈어. 펼쳤지. "나는 혼자다. 일주일 동안.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수가 말했다. 이 집이 6억이 넘는다고. 조카가 부동산을 한다고. 이 집은 내 거다. 법적으로 내 이름으로 되어 있다. 나는 주인이다."
옥부는 팬을 내려놓았어. "주인." 그 단어를 오랫동안 바라봤지. 옥부는 휴대폰을 들었어. 손이 떨렸지. 심호흡을 했어. 만수 이름을 찾았어. 통화 버튼을 눌렀지. 신호음이 울렸어. 한 번, 두 번.
"여보세요, 옥분 씨." 만수의 목소리가 들렸어. 밝은 목소리였지. "만수 씨, 부탁이 있어요." "무슨 부탁인데요? 말씀하세요." 만수가 다정하게 말했지.
옥부는 눈을 감았어. 그리고 말했지. "우리 집을 팔고 싶어요. 부동산하는 조카분한테 부탁할 수 있을까요?" 전화기 너머로 잠시 조용해졌지. 침묵이 흘렀어. 길게. "집을 파신다고요?" 만수의 목소리가 놀라움으로 떨렸지. "응." 옥부가 짧게 대답했어.
"옥분 씨, 무슨 일 있어요? 아드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만수가 조심스럽게 물었지. "아니요. 아무 일 없어요." "그럼 왜 갑자기?" 만수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지.
옥부는 창밖을 봤어. 파란 하늘이 보였지. "아들은 아세요?" "아직 몰라. 지금 일본 갔어?" "일본요? 일주일 여행 갔어. 나 빼고요." 옥부의 목소리가 담담했지.
만수가 한숨을 쉬었어. "옥분 씨, 제대로 생각한 거예요?" 옥부가 말을 이었지. "70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생각했어." 옥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지. "어젯밤에 들었어요. 아들이랑 며느리가 얘기하는 거. 내가 죽으면 이 집으로 대출 갚는데요. 식당 빛. 그러면 숨쉴 수 있대요. 만수 씨, 나는 아직 살아 있는데 숨쉬고 있는데." 옥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
만수가 작게 한숨을 쉬었어. "옥분 씨, 잘 생각하신 거예요." 만수의 목소리는 단호했지. "조카한테 연락해 볼게요. 잘하는 애예요. 옥분 씨 최대한 좋은 값 받게 해 줄 거예요." "고마워요, 만수 씨." "아니에요, 옥분 씨. 이제 옥분 씨 인생 사세요. 남 위해 사시지 말고요."
옥부는 눈물이 났어. 고맙다는 말이 목에 걸렸지. "알겠어요. 조금 있다 전화 다시 드릴게요." 전화가 끊어졌어. 옥부는 소파에 앉았어. 휴대폰을 손에 쥔 채로. 가슴이 두근거렸지.
한 시간이 지났어. 휴대폰이 울렸지. 만수였어. "옥분 씨 조카한테 얘기했어요. 오후 2시에 집으로 갈 거래요. 직접 보고 상담하고 싶대요." 만수가 말했지. "고마워요." "옥분 씨 조카한테 잘 부탁했어요. 금매지만 최대한 좋은 값 받게 해 줄 거예요." "그럼 얼마나 빨리 팔 수 있을까요?" 옥부가 조심스럽게 물었지. "요즘 그 아파트 찾는 사람 많대요. 일주일 안 해도 가능하대요." "일주일?" 성우가 돌아오는 시간이었지.
"만수 씨." 옥부가 불렀지. "왜요?" "정말 고마워요." "옥분 씨, 새로운 시작 응원할게요." 만수의 목소리는 따뜻했지.
전화를 끊었어. 옥부는 시계를 봤지. 11시였어. 2시까지 3시간이 남았지. 옥부는 집안을 둘러봤어. 거실, 부엌, 작은 방들. 20년을 산 집이었지. 남편과 함께 산 집. 성우를 키운 집. 옥부는 거실 한가운데 섰어. 벽에 걸린 가족 사진이 보였지. 옥분 없는 사진. 성우, 서연, 지우, 셋이서 웃고 있었지. 옥부는 그 사진을 오래 봤어. 웃지 않았지. 화나지도 않았지. 그냥 담담했지. 이제는 알았어. 이 집에서 옥부의 자리는 없었다는 걸.
시계를 봤지. 1시였어. 2시까지 한 시간이 남았지. 옥부는 소파에 앉았어. 수첩을 꺼냈지. "오늘 만수한테 전화했다. 집을 팔기로 했다. 부동산하는 조카가 2시에 온다. 일주일 안에 팔 수 있다고 했다."
옥부는 팬을 멈췄어. 눈을 감았지. 무섭지 않았어. 놀랍게도. 오히려 가슴이 뛰었어. 새로운 시작 같았지. 70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결정이었어. 옥부는 눈을 떴어. 창밖을 봤지. 하늘이 파랗게 펼쳐져 있었어. 세상은 넓었어. 생각보다 훨씬 더. 그리고 옥부는 이제 자유로워질 거였어.
2시에 민준이 왔어. 30대 중반의 남자였지. 집을 둘러보고 태블릿에 메모를 했어. "할머니, 시세는 7억이지만 금매로 6억 5천에 내놓으면 2, 3일 안에 팔릴 거예요. 매수자 나타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아요." 옥부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어. "용기 내셨어요? 대단하세요." 민준이 나갔지. 옥부는 혼자 남았어. 거실에 섰지. 조용했어. 시계 소리만 들렸지. 소파를 봤지. 성우가 신문을 보던 자리, 서연이 TV를 보던 자리, 옥분 없는 자리들. 부엌을 봤지. 새벽마다 밥을 하던 곳, 다리가 아파도 멈추지 않았던 곳. 복도를 걸었지. 어젯밤 이 복도에서 들었던 대화. "어머님 돌아가시면 이 집으로 대출 갚는다." 자기 방으로 갔지. 창문 앞에 섰어. 노을이 번지고 있었지. 붉은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어. 남편 생각이 났지. "여보. 우리 집이야." 30년 전 남편이 옥부의 손을 잡고 말했었지. "이 집에서 성호를 키웠어요." 남편이 떠났어. 20년을 혼자 살았지. 하지만 지금은? 옥부는 눈을 감았어. 눈물이 흘렀지. 뺨을 타고 내려왔어. 손으로 얼굴을 감쌌지. 어깨가 떨렸어. 한참을 울었지. 소리 없이.
눈물이 마르고 나서 눈을 떴어. 노을은 더 붉어져 있었지. 아름다웠어. 끝이면서 시작 같았지. 손을 내려다 봤지. 주름진 손, 거친 손. 이 손으로 70년을 살았구나. 이제는 나를 위해 살 거야.
밤이 되었어. 옥부는 침대에 누웠지. 눈을 감았어. 무섭지 않았어. 오히려 가슴이 뛰었어. 처음으로 미래가 기대되었어.
새로운 시작, 주문진에서의 삶
화요일과 수요일이 지나갔어.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지. 옥부는 자기 방에 숨어서 목소리만 들었어. "채광이 정말 좋네요. 거실이 넓어요. 애들 뛰어놀기 딱 좋겠어요. 여기서 살고 싶어요." 행복한 목소리들이었지.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목소리들이었지. 옥부는 침대 끝에 앉아 있었어. 손을 무릎 위에 모았지. 이 집에 새 주인이 온다는 게 실감 났지.
수요일 저녁이었어. 민준에게서 전화가 왔지. "할머니, 어제 본 중년 부부가 계약하겠대요. 현금 매수래요. 토요일 아침에 잠금 치르고 집 인도하면 된대요." 옥부는 숨을 멈췄어. 토요일, 4월 5일. "할머니." "응, 좋아." "내일 11시에 부동산으로 오실 수 있으세요?" "갈게."
목요일 오전이었어. 부동산에서 계약서를 썼지. 중년 부부가 왔어. 정중하게 인사했지. "좋은 집 감사합니다. 잘 살게요." 옥부는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지. 30년 전 남편과 함께 이 집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날이 떠올랐지. "여보, 우리 집이야."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 끝났어. 정말로.
집으로 돌아왔어. 소파에 앉았지. 가게도 정리해야 했지. 오후에 가게로 갔어. 문을 열었지. 익숙한 냄새가 났지. 진열대를 봤지. 카운터를 봤지. 20년 일한 곳이었지만, 이제는 필요 없었지. 옆 가게 주인이 들어왔지. "사장님, 정말 가게 정리하세요?" "네, 제가 인수할게요. 단골들도 있고 자리도 좋으니까." "얼마 드릴까요?" "천만 원만 주세요." 옆 가게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할게요." 간단한 계약서를 썼지. 천만 원을 받았어. 적은 돈이었지만 상관없었지. 이제 필요 없었으니까.
가게를 나왔어. 뒤돌아봤지. 마지막으로. "안녕." 작게 인사했지.
집으로 돌아왔어. 소파에 앉았지. 어디로 가지? 옥부는 눈을 감았어. 문득 기억이 떠올랐지. 오래 전이었어. 남편과 처음 주문진에 갔던 날이었지. 신혼 여행이었어. 바다를 봤었지. 파란 바다, 넓은 바다. 남편이 옥부의 손을 잡고 말했었지. "여보, 나중에 늙으면 바다 보이는데 살자." "둘이서." 옥부는 웃었었지. "그래요. 그러자." 하지만 남편은 먼저 떠났지.
옥부는 눈을 떴어. "주문진, 거기 가자. 혼자서라도 우리 약속을 내가 지킬게." 옥부는 휴대폰을 들었어. 주문진 부동산을 검색했지. 전화를 걸었어. "주문진에 바다 보이는 집 있나요?" "단독 주택이요? 계세요? 2억 정도 되는데 괜찮으세요? 비어 있어서 바로 입주 가능해요."
2억. 6억 5천에서 2억을 쓰면 4억 5천이 남았지. 괜찮았어. "내일 갈게요." "그럼 내일 10시에 주문진 버스터미널 앞에서 만나요." 전화가 끊어졌지. 가슴이 뛰었어. 내일 주문진에 간다. 오랜만이었지.
금요일 새벽 5시였어. 옥부는 일어났지. 씻고 옷을 입었어. 거울을 봤지. 70살의 여자가 서 있었어. 하얀 머리카락, 주름진 얼굴. 하지만 눈빛은 달랐어. 살아 있는 눈빛이었지.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어. 주문진행 버스를 탔지. 창밖을 봤어. 서울이 멀어지고 있었지. 세 시간이 지났어. 주문진이었어. 버스가 멈췄지. 옥부는 내렸어. 공기가 달랐어. 바다 냄새가 났지. 짠 냄새, 생선 냄새와는 다른 냄새였지. 깨끗한 냄새였지. 숨을 깊이 들이쉬었지. 가슴이 시원했지.
버스터미널 앞에 부동산 남자가 서 있었지. "할머니세요? 차 타세요." 해안 도로를 달렸지. 창밖으로 바다가 보였지. 옥부는 숨을 멈췄어. 바다였어. 파란 바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햇살이 바다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지. 반짝반짝 빛났지. 파도가 밀려왔다 부서졌지. 옥부의 눈에 눈물이 맺혔어. 오랜만이었지.
"할머니 괜찮으세요?" "네. 너무 아름다워서요." 차가 멈췄지. 낡은 단독 주택이 서 있었지. 작은 집이었지. 마당이 있었지.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지. "들어가 보세요." 문을 열었지. 거실이 작았지. 부엌도 작았지. 방이 두 개 있었지만, 창문이 컸어. 바다를 향해 열려 있었지.
옥부는 창문 앞으로 걸어갔어. 천천히.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지. 파도 소리가 들렸지. 철썩 철썩. 가슴이 벅찼지. 마당으로 나갔어. 감나무로 걸어갔지. 나무를 만졌어. 거친 껍질이었지. 따뜻했지. "가을이면 감이 주렁주렁 열려요." 부동산 남자가 말했지. 옥부는 웃었어. 진짜 웃음이었지.
"이 집으로 할게요." "정말요?" "네. 여기가 좋아요." 부동산 사무실로 갔지. 계약서를 썼지. 도장을 찍었지. 이어 두 번째 도장이었지. 하나는 끝이었고, 하나는 시작이었지. "비어 있어서 내일이라도 들어오실 수 있어요. 잠금은 내일 보내 주시면 돼요." "내일 들어올게요."
옥부는 해변으로 걸어갔지. 신발을 벗었어. 맨발로 모래를 밟았지. 파도가 밀려와 발목을 적셨지. 바람이 불었지. 옥부의 하얀 머리카락이 날렸지. 옥부는 두 팔을 벌렸어. 바람을 안았지. 시원했지. 자유로웠지. 남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 "여보, 해냈네. 우리 약속." 옥부는 웃었어. 눈물이 났지만, 슬프지 않았지. 행복했지.
옥부는 버스터미널로 갔지. 서울행 버스를 탔지. 주문진이 멀어지고 있었지만, 슬프지 않았지. 내일 돌아올 거니까. 내 집으로.
금요일 오후였어. 옥부는 짐을 쌌지. 옷을 꺼냈어. 가방 두 개에 다 들어갔지. 서랍을 열었어. 사진들이 있었지. 남편과 찍은 사진, 성우 어렸을 때 사진, 지우 태어났을 때 사진. 한참을 사진들을 봤지. 어린 성우가 웃고 있었지. 옥부의 손을 꼭 잡고 있었지. "엄마 사랑해요." 어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 사진을 가방에 넣었지. 수첩도 챙겼지. 그게 전부였지. 30년을 살았는데 가방 두 개였지. 이게 내 인생이구나. 하지만 슬프지 않았지. 이제는 새로 채울 수 있으니까.
휴대폰이 울렸지. 민준이었어. "할머니, 아드님, 가족 짐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옥부는 잠시 침묵했지. "이사찜 센터에 연락해서 참고에 보관해 주세요. 비용은 제가 낼게요. 주소는 아드님한테 제가 알려 드릴까요?" "아니요. 메모로 남겨 둘게요." "네. 그럼 제가 오늘 오후에 처리하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졌지.
옥부는 책상 앞에 앉았어. 종이를 꺼냈지. 한참을 빈 종이를 봤어. 뭐라고 쓸까? 팬을 들었지. "너희 집은 참고에 보관했어. 보관증은 부동산에 맡겼다." 팬을 멈췄지. 더 쓸 말이 있을까? 사실 옥부가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손녀딸 지우였지. 지우의 얼굴이 떠올랐지. 자기를 보며 웃던 얼굴이. "할머니 사랑해요." 어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 하지만 지우에게는 엄마 아빠가 있었지. 지우는 괜찮을 거야.
한참을 종이를 봤지. 아니야. 팬을 내려놓았지. 그게 전부였지. 늦은 오후에는 민준이 소개해 준 이사찜 센터에서 짐을 참고로 싣고 갔지.
밤이 되었어. 옥부는 침대에 누웠지. 마지막 밤이었지. 눈을 감았지. 내일이면 떠난다. 새로운 곳으로.
토요일 새벽이었어. 옥부는 4시 반에 눈을 떴지. 몸이 기억하는 시간이었지. 마지막으로 이 시간에 일어나는 거였지. 일어났지. 씻었지. 옷을 입었지. 마지막으로 집안을 돌아봤지. 거실을 봤지. 부엌을 봤지. 복도를 걸었지. 성우의 방 앞에 섰지. 문을 열었지. 텅 비어 있었지. 어젯밤 이사찜 센터가 다 가져갔으니까. 한참 빈방을 봤지. "잘 살아라, 성우야." 작게 말했지. 식탁이 있던 자리로 갔지. 메모를 꺼냈지. 그 자리에 메모를 펼쳐 놓았지. 성우가 들어오면 바로 보게.
8시였어. 휴대폰이 울렸지. 문자였어. 입금 알림이었지. 6억 5천만 원. 진짜 끝났구나. 주문진 부동산에 2억을 송금했지. 잔액을 확인했지. 4억 5천만 원이 남아 있었지. 이 돈으로 살 수 있었지.
9시였어. 민준이 왔지. 세입자 부부도 함께 왔지. "잠금 잘 받으셨죠?" 민준이 물었지. "네. 확인했어요." 옥부가 대답했지. 부부가 말했지. "저희는 월요일에 이사 들어올게요. 주말에 정리하고요. 비밀번호는 그대로 두셨죠? 나중에 저희가 바꿀게요." "네, 그대로예요." 옥부가 대답했지.
부부가 고개를 숙였지. "좋은 집 감사합니다. 잘 살게요. 행복하세요." "행복하세요." 옥부가 말했지. 민준이 택시를 불렀지. "할머니, 어디로 가실 거예요?" "주문진이요. 거기 이제 내 집이 있어요." 민준이 환하게 웃었지. "잘하셨어요, 할머니. 행복하세요." "고마워요."
택시에 탔지. 가방 두 개를 실었지. 차가 출발했지. 옥부는 뒤를 돌아봤지. 아파트가 멀어지고 있었지. 30년을 산 집이었지. 하지만 아쉽지 않았지. 이제는 자유니까. 차는 고속도로를 달렸지. 창밖으로 산이 보였지. 하늘이 보였지. 넓었어. 세상이 넓었어.
세 시간이 지났지. 주문진이었어. 택시가 멈췄지. 옥부는 내렸지. 집 앞에 섰지. 낡은 단독 주택, 마당의 감나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 내 집이었지. 정말로. 문을 열었지. 안으로 들어갔지. 창문을 열었지. 바람이 들어왔지. 바다 냄새가 가득 들어왔지. 파도 소리가 들렸지. 철썩 철썩. 옥부는 창가에 섰지. 바다를 봤지. 넓은 바다, 끝없는 바다. 웃었지. 진짜 웃었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유로웠지.
일요일 저녁이었어. 택시가 아파트 단지 앞에 멈췄지. 도착했지. 성우가 먼저 내렸어. 서연과 지우가 뒤따라 내렸지. "아빠, 피곤해." 지우가 하품을 했지. 작은 입을 크게 벌렸지. "조금만 참아. 집 가서 씻고 자자." 성우가 트렁크를 열었지. 큰 가방 세 개를 꺼냈지. 무거웠지. 팔이 저렸지. "할머니가 저녁 준비하고 계시겠다." 서연이 가방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지. "그러게. 엄마 김치찌개 먹고 싶다." 성우가 웃었지. 벌써 입에 침이 고였지. 일주일 만에 집이었지. 여행은 좋았지만 역시 집이 최고였지.
엘리베이터를 탔지. 3층 버튼을 눌렀지. 노란불이 켜졌지. 지우가 서연에게 기대 눈을 감았지. 긴 속눈썹이 떨렸지. "우리 지우 많이 피곤하구나." 서연이 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었지.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졌지. "할머니 보고 싶어." "그래, 있다 보자." 엘리베이터가 올라갔지. 2층, 3층. 문이 열렸지. 복도를 걸었지. 천천히. 가방 바퀴가 바닥을 굴렀지. 드르륵. 드르륵. 303호 문 앞에 섰지. 성우가 비밀번호를 눌렀지. 삑삑삑삑삑삑삑삑삑. 찰칵. 문이 열렸지. 조용했지. 이상하게 조용했지. 현관 불이 꺼져 있었지. 거실도 어두웠지. "엄마." 성우가 불렀지.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 대답이 없었지.
성우는 신발을 벗었지. 현관 바닥이 차갑게 느껴졌지. 양말을 신은 발이 얼었지. 안으로 들어갔지. 거실 벽에 스위치를 찾아 눌렀지. 불이 켜졌지. 성우는 그 자리에서 멈췄지. 숨이 멈췄지.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지. 거실이 텅 비어 있었지. 소파가 없었지. 식탁도 없었지. TV도 없었지. TV 선반도 사라졌지. 벽에 걸려 있던 가족 사진도 없었지. 아무것도 없었지. 바닥만 넓게 펼쳐져 있었지. 텅 빈 바닥이.
"뭐야?" 성우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지. 목소리가 떨렸지. 서연이 안으로 들어왔지. 거실을 봤지.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지. 하얗게 질렸지.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 성우는 복도로 뛰어갔지. 안방 문을 열었지. 텅 비어 있었지. 침대가 없었지. 옷장도 없었지. 화장대도 서랍장도 모두 사라졌지. 어머니 방으로 갔지. 침대도 없고 서랍장도 없었지. 벽에 걸려 있던 아버지 사진도 사라졌지. 성우는 가슴이 철렁했지. 다리에 힘이 빠졌지.
성우는 거실로 돌아왔지. 서연이 현관에 서서 지우를 안고 있었지. 지우는 엄마 품에 얼굴을 묻고 있었지. 서연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 성우는 거실을 다시 둘러봤지. 텅 빈 거실이었지. 그런데 식탁이 있던 자리에 뭔가 보였지. 하얗게 빛나는 게. 다가갔지. 종이 한 장이 바닥에 놓여 있었지. 성우는 무릎을 꿇었지. 종이를 집었지. 엄마 글씨였지. 또박또박 쓴 글씨였지. "너희 집은 창고에 보관했어. 보관증은 부동산에 맡겼다."
그게 전부였지. 두 줄이었지. 성우는 종이를 뒤집었지. 뒷면을 확인했지. 아무것도 없었지. 성우의 손이 떨렸지. 종이가 흔들렸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 성우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지. 떨리는 손으로 엄마 전화번호를 눌렀지. 연결음이 울렸지. 한 번, 두 번, 세 번. "여보세요. 엄마 목소리였지. 차분했지. 너무 차분했지. 평소처럼 담담했지."
"엄마,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성우가 소리쳤지. 목소리가 갈라졌지.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지. 파도 소리만 들렸지. 철썩, 철썩." "집이 텅 비었어. 소파도 없고 식탁도 없고 우리 짐도 다 없어. 우리 집은 다 어디 갔어?" "메모에 써 놨잖아. 창고에 보관했어."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 성우는 숨이 막혔지. 가슴이 조여왔지. "메모 하나만 놓고 가다니. 설명도 없이." 성우는 소리쳤지. "엄마가 지금 어디냐고 당장 집에 오라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지. 파도 소리만 들렸지. 바람 소리도 들렸지. "나는 이제 내 집에 있어." 엄마가 말했지. "무슨 소리야? 여기가 엄마 집이잖아." 성우가 소리쳤지. "그 집은 팔았어." 세상이 멈췄지. 시간이 멈춘 것 같았지. 성우의 입이 벌어졌지. 소리가 나오지 않았지. "뭐… 겨우." 소리를 냈지. 목소리가 떨렸지. "6억 5천에 토요일 아침에." 엄마가 말했지.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지. 머리가 하얘졌지. 귀에서 윙 소리가 났지. "엄마, 농담이지? 농담이지?" 성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 "아니. 진짜 미쳤어. 우리한테 말도 없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성우가 소리쳤지. 목소리가 울렸지. "너희는 여행가 있었잖아. 말해 봤자 소용 없고."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 "소용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말했으면 집 팔게 내버려 뒀겠어?" 성우는 말문이 막혔지. "엄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애 집인데 우리가 사는 집이잖아." "아니, 그건 내 집이었어. 내 이름으로 된 집." 엄마의 목소리가 단호했지. 성우는 다리에 힘이 풀렸지. 주저앉을 것 같았지. 벽에 손을 짚었지. 차가운 벽이 손바닥에 닿았지. "그럼… 그럼 엄마는 지금 어디 있는데?" 성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 "주문진 바다 보이는 집 샀어? 이게 작지만 좋아." 엄마가 대답했지. 형기증이 났지.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았지.
성우가 소리쳤지. "그럼 우린… 우린 어떡하라고? 지우는… 서연이는… 우린 어디서 살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지. 파도 소리만 들렸지. 철썩 철썩. 멀게 느껴졌지. "참고 보관료는 3개월 냈어. 그 안에 집 구해야 해." 엄마가 말했지. 성우는 외쳤지. "엄마." 엄마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지. "너희한테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할게. 나도 이제 내 인생 살아야겠어." 그 말이 성우의 가슴에 박혔지. 날카로운 칼처럼. 성우는 말이 나오지 않았지. 목이 맸지. "너희도 이제 알아서 살아." 엄마가 말했지. "엄마… 지우는… 지우는 할머니 없으면 안 돼." 성우가 울먹였지. "지우한테는 엄마 아빠가 있잖아. 너희가 키워. 잘 키울 거야." 엄마는 차갑게 대답했지. "뚝." 전화가 끊어졌지.
성우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멍하니 서 있었지. 손이 떨렸지. 온몸이 떨렸지. 다시 전화를 걸었지.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렀지. 연결음이 울렸지. 한 번, 두 번, 세 번.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또 걸었지. 또 걸었지. 똑같은 멘트만 들렸지. 성우의 손에서 휴대폰이 떨어졌지. 바닥에 떨어져 퉁 소리를 냈지. 화면이 깜빡였지.
"무슨 일이야?" 서연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지. 성우는 대답할 수 없었지. 그냥 서 있었지. 텅 빈 거실 한가운데서. 다리에 힘이 없었지. 무릎이 꺾일 것 같았지. 서연이 다가왔지. 성우의 팔을 잡았지. 성우는 천천히 서연을 봤지. 서연의 얼굴이 보였지. 창백한 얼굴, 불안한 눈빛. 성우의 입술이 떨렸지. "엄마가 집을 팔았대." 서연의 얼굴에서 피기가 완전히 사라졌지.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 "6억 5천에 토요일에." 성우가 말했지. "그럼… 그럼 우린?" 서연이 물었지. 성우는 고개를 저었지. "모르겠어. 짐은 참고에 있대. 3개월치 보관료 냈대. 그 안에 집 구하래."
서연이 비틀거렸지. 뒤로 휘청했지. 벽에 손을 짚었지. 겨우 중심을 잡았지. "미쳤네. 진짜 미쳤어." 중얼거렸지. "아빠." 작은 목소리가 들렸지. 지우였지. 서연 옆에 있던 지우가 천천히 성우에게 걸어왔지. 작은 발걸음이었지. 조심스러운 걸음이었지. "할머니는 어디 갔어?" 성우는 지우를 볼 수 없었지. 고개를 돌렸지. 눈물이 날 것 같았지. "할머니, 나 싫어해?" 그 말에 성우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 "아니야. 아니야. 지우야." 성우가 지우를 안았지. 꽉 안았지. 작고 따뜻한 몸이었지. 지우가 울기 시작했지. 작은 목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지. 흐느끼며. 보고 싶다고 했지. 성우도 울었지. 소리 없이. 어깨가 떨렸지. 눈물이 지우의 머리에 떨어졌지.
서연이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았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지. 온몸이 떨렸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지. 텅 빈 거실에 세 사람의 흐느낌만 울렸지. 다른 소리는 없었지.
1개월이 지났어. 성우는 투룸 월세를 구했지. 보증금 5천, 월세 70이었지. 이사를 했지. 참고해서 짐을 빼냈지. 이삿짐 트럭에 실었지. 새 집은 좁았지. 방 두 개, 작은 거실, 부엌. 가구를 들이니 꽉 찼지. 성우는 거실 소파에 앉았지. 좁았지. 답답했지. 서연이 부엌에서 나왔지. 얼굴이 어두웠지. "여보, 부엌이 너무 작아. 냉장고 놓으니까 돌아다닐 수가 없어." 성우는 대답하지 못했지. 지우가 방에서 나왔지. 울먹이는 얼굴이었지. "아빠, 내 책상은 어디 나?" "응? 거실에 놔야겠다." "거실에?" 지우의 목소리가 떨렸지. 성우는 가슴이 아팠지.
첫날 밤이었지. 지우를 재웠지. 좁은 방에서. 서연과 성우는 안방에 누웠지. 어둠 속에서 서연이 말했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성우는 대답할 수 없었지. 천장을 봤지. 낮은 천장이었지. 엄마가 없는 삶이 시작되었지.
아침이 왔어. 성우는 6시에 일어났지. 출근 준비를 했지. 부엌으로 갔지. 서연이 아침을 만들고 있었지. "지우 깨워야 하는데 내가 밥을 해야 하니까." 서연의 목소리가 지쳐 있었지. 성우가 지우 방으로 갔지. "지우야 일어나." 지우가 눈을 떴지. 천천히. "아빠." "응. 일어나서 씻어. 학교 가야지." 지우가 일어났지. 느리게. 성우는 가슴이 먹먹했지. 아침을 먹었지. 서연이 만든 된장찌개였지. 짰지. 엄마 것과 달랐지. "할머니 밥이 좋아." 지우가 울기 시작했지. "지우야." 서연의 목소리가 떨렸지. 성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
일주일이 지났어. 서연은 지쳐 있었지. 아침마다 지우를 깨우고 밥을 하고 청소하고 집안일을 했지. 저녁에는 지우 숙제를 봐줬지. 성우도 퇴근 후 설거지를 했지. 빨래를 넣었지. 하지만 힘들었지. 엄마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이제야 알았지.
2개월이 지났어. 성우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왔지. 문을 열었지. 거실이 어질러져 있었지. 부엌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지. "아." 서연의 목소리였지. 지친 목소리였지. 성우가 부엌으로 갔지. 서연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지. 깨진 그릇 조각을 줍고 있었지. "괜찮아?" "응. 미끄러워서." 서연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지. 성우는 서연을 안았지. "미안해." "왜 미안해? 당신 잘못 아니잖아." 하지만 서연도 울었지.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있었지.
같은 시각 주문진이었어. 옥부는 마당에 있었지. 감나무를 보고 있었지. 꽃이 피어 있었지. 작고 하얀 꽃들이. 가을이면 감이 열릴 거였지. 옥부는 웃었지. 바람이 불었지. 시원한 바람이었지. 바다 냄새가 났지. 옥부는 해변으로 걸어갔지. 아침마다 걷는 길이었지. 모래를 밟았지. 부드러웠지. 파도가 밀려왔지. 철썩 철썩. 햇살이 따뜻했지. 옥부는 벤치에 앉았지. 옆에 누군가 앉았지. 동네 할머니였지. "오늘도 산책 오셨어요?" "네. 날씨가 좋네요." "요즘 주민 센터에서 서예 강좌 한대요. 같이 다닐래요?" "서예요?" 옥부의 눈이 반짝였지. "네. 수요일 오전 10시예요." "좋아요. 갈게요."
옥부는 집으로 돌아왔지. 아침을 먹었지. 천천히. 창문을 열었지. 바다가 보였지. 설거지를 했지. 여유롭게. 거실을 청소했지. 좁은 집이라 금방 끝났지. 오후에는 마당에 나갔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지. 상추 씨를 뿌렸지. 흙을 만졌지. 부드러웠지. "할머니 뭐 심으세요?" 이웃집 할머니가 물었지. "상추요. 처음 해 보는 거예요." "잘하시네요. 나중에 우리 집 고추 모종 나눠 드릴게요." "고마워요." 따뜻한 대화였지. 옥부는 행복했지.
국민연금이 나왔지. 많지 않았지만 보탬이 되었지. 부족한 건 저축에서 조금씩 썼지. 급하지 않았지. 여유로웠지. 저녁이었지. 집으로 돌아왔지. 간단히 저녁을 먹었지.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지. 창문을 열었지. 바다를 봤지. 노을이지고 있었지. 아름다웠지.
같은 시각 서울이었지. 성우는 지우를 재우고 있었지. "아빠, 할머니 보고 싶어." 지우가 말했지. 작은 목소리로. "그래." 성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 "할머니한테 전화하면 안 돼?" "응." 성우는 고개를 끄덕였지. 하지만 전화할 용기가 없었지. 지우가 잠들었지. 성우는 거실로 나왔지. 휴대폰을 꺼냈지. 떨리는 손으로. 엄마 번호를 눌렀지. 연결음이 울렸지. 한 번, 두 번, 세 번. "여보세요. 엄마 목소리였지. 차분한 목소리였지." "엄마, 나야." 성우의 목소리가 떨렸지. "응."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침묵이 흘렀지. 파도 소리가 들렸지. 철썩, 철썩. "엄마, 나 지금 알았어. 엄마가 얼마나 많은 걸 해 줬는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성우는 울먹였지. "엄마 없으니까 진짜 힘들어. 서연이도 지쳐 있어. 지우도 매일 엄마 찾아. 엄마. 엄마 어디 있어? 나 한 번만 볼 수 있을까?"
잠시 침묵이 흘렀지. 주문진 청애로 17. 엄마가 주소를 말해 줬지. "고마워, 엄마." "이번 주말에 갈게." "응." 전화가 끊어졌지. 성우는 휴대폰을 쥔 채 울었지.
토요일이었어. 성우는 서연, 지우와 함께 차를 탔지. 주문진으로 향했지. 세 시간이 걸렸지. "주문진이다!" 지우가 소리쳤지. 바다가 보였지. 넓은 바다였지. 내비게이션이 안내했지. "목적지 근처입니다." 차가 멈췄지. 낡은 단독 주택이 보였지. 작은 집이었지. 마당에 감나무가 서 있었지. 문이 열렸지. 엄마가 나왔지. 옥부였지.
성우는 차에서 내렸지. 천천히. 엄마를 봤지. 엄마는 달라져 있었지. 얼굴이 환했지. 눈빛이 살아 있었지. "엄마." 성우가 다가갔지. 무릎을 꿇었지. 땅에 무릎이 닿았지.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눈물이 났지.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 알았어. 나 진짜 나쁜 자식이었어."
옥부는 가만히 서 있었지. "엄마 용서해 줘. 제발." 성우는 울었지. 소리 내서. 옥부가 성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지. "일어나. 엄마 일어나라." 성우가 일어났지. 옥부가 성우를 봤지. "성우야, 나는 너희를 용서 안 해." 성우의 얼굴이 굳었지. "하지만 미워하지도 않아." 옥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 "나는 이제 내 삶을 살 거야. 너희도 너희 삶을 살아. 엄마, 우리 각자 살자. 각자의 삶을." 옥부가 말했지. 성우는 고개를 숙였지. 대신 옥부가 말을 이었지. "가끔은 놀러 와. 지우도 데리고." 성우가 고개를 들었지. 옥부가 웃고 있었지. "할머니!" 지우가 달려왔지. 옥부가 지우를 안았지. "우리 지우 보고 싶었어." "할머니도 보고 싶었어요." 지우가 옥부의 품에 안겼지.
서연이 다가왔지. "어머님, 죄송합니다." 고개를 깊이 숙였지. 옥부가 고개를 끄덕였지. "들어와. 차나 마시자." 집 안으로 들어갔지. 작은 집이었지만, 따뜻했지. 창문으로 바다가 보였지. 옥부가 차를 내왔지. "엄마, 여기 좋네." 성우가 말했지. "응. 좋아." 옥부가 웃었지. "엄마 행복해 보여." "행복해." 옥부가 대답했지.
한참을 이야기했지. 성우는 요즘 어떻게 사는지 말했지. 힘들지만 열심히 산다고. 옥부는 들어줬지. 조언은 하지 않았지. 해가 기울었지. "우리 이제 가야 할 것 같아요." 서연이 말했지. "그래. 조심히 가." 옥부가 배웅했지. "엄마 다음 달에 또 올게." 성우가 말했지. "응. 와." 옥부가 웃었지. 차가 출발했지. 옥부는 손을 흔들었지. 차가 멀어졌지. 옥부는 집으로 들어갔지. 창문을 열었지. 바다를 봤지. 노을이지고 있었지. 아름다웠지. 옥부는 웃었지. 자유로웠지. 그리고 행복했지.
1년이 지났어. 성우는 한 달에 한 번 엄마를 찾아갔지. 지우와 함께. 가끔은 서연도 함께했지. 엄마는 잘 지내고 있었지. 주민 센터에서 서예를 배우고 텃밭을 가꾸고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지. 성우는 엄마가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자기도 조금씩 배워갔지. 지우를 돌보는 법, 집안일하는 법, 서연을 이해하는 법. 힘들었지만 해냈지. 가족은 각자의 삶을 살았지만, 가끔 만났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지. 옥부는 바다를 보며 생각했지. 이게 내 삶이구나. 늦었지만 찾았어. 그리고 지금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