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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자 여자들은 왜 분노하는가? | 다니엘 @Sound.Sound_Daniel | 라이프코드 팟캐스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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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누적 310만 시청 강연콘서트 - 라이프코드 철학의 본체 「공허의 시대」 풀버전 https://youtu.be/AhUrPzVC0oU 현대인들은 왜 무기력감과 공허감을 느끼는가? 돈을 좇으며 사는 삶은 정말 불행할까? 대한민국 사람들의 행복 지수는 왜 낮을까? 현대 젊은 남자들은 왜 분노할까? 여성들의 삶은 행복해졌을까?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궁극의 쾌락을 쫓는 사람들의 진짜 팟캐스트, 팟쾌스트 다섯 번째 이야기. 현대 세대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어려움에 대하여 Sound Sound 다니엘 @Sound.Sound_Daniel 님과 함께 심리학, 정신분석학, 실존주의 철학 등의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인생철학 #출산율 #남녀심리 #인문학 ======================== 00:00 인트로 01:00 현대인들이 공허한 이유 01:30 성장이 끝난 대한민국 03:00 ‘자기 중심적’ 문화의 시작 07:35 내가 먹을 파이가 없는 시대 09:00 실패의 경험이 없는 우리들 10:40 ‘존재론적 특별함’ vs ‘평범함’ 11:30 지나친 자기중심성의 폐해 12:08 성공은 운이다? 14:30 ‘욕망의 시대’의 문제점 15:30 유튜브 썸네일이 자극적인 이유 17:50 부자 유튜버의 실체 18:30 제대로 돈 버는 방법 20:30 경제적 자유를 좇았을 때의 문제점 21:20 의사는 돈을 많이 못 번다? 23:10 SNS에 넘치는 허상의 삶 24:25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 25:10 돈을 벌어도 행복이 무한정 늘지 앟는다? 26:45 소유 관점에서의 소비 27:55 포르쉐가 주는 행복 29:20 소유하는 것 vs 소유 당하는 것 30:50 모든 삶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 32:20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는 ‘일상’의 가치 32:50 ‘경제적 자유’를 목표로하는 삶 34:00 ‘돈’이라는 ‘신흥 종교’ 34:50 끌어당김의 법칙 37:50 돈을 내고 돈버는 방법을 배우는 이유 39:20 삶의 의미 40:10 창조적 가치, 경험적 가치 41:00 태도적 가치 43:13 모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치 46:25 무기력에서 탈출하는 방법? 47:30 목표를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51:20 무라카미 하루키의 루틴 52:15 직업 선택하는 법 57:00 일상의 가치 57:55 대한민국은 헬조선? 59:00 북유럽 국가가 행복한 이유 1:02:00 대한민국의 비교 문화 1:03:00 신뢰가 부족한 대한민국 1:04:25 공개적 권위와 공통의 신화 1:06:30 익명의 권위와 공개적 권위 1:10:00 아버지상이 부재한 시대 1:13:15 관계주의 문화의 문제 1:14:20 ‘불’과 ‘사교활동’ 1:15:20 한국의 지나친 사교활동과 비교 1:17:50 진화와 진보 1:21:30 진화 심리학 관점에서의 공허감 1:23:20 일부일처제가 생긴 이유 1:28:30 연쇄적 일부일처제 1:30:10 여성들의 행복 1:31:00 청년 세대들의 주체성 1:34:50 불행을 극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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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도 굉장히 낮고 혼인율도 낮아지고 연애도 안 한대.

짝을 못 찾은 수컷들의 폭력성은 어마어마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칼부림 같은 사건 있잖아요.

원초적인 곳으로 들어가면 원초적인 곳으로 들어가면 그런 부분에서 결핍을 느꼈던 가능성이 높아요.

번식을 할 수 없는 수컷들한테 도덕이나 윤리는 의미가 없는 거예요.

거의 디스토피아 세계에 가까워졌다.

유튜브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어요.

남자들이 얼마나 화나있는지.

왜냐면 기회가 없으니까.

성공이라는 건, 계급으로 딱딱딱 나눠지는 거예요.

사유재산 개념이 생긴 이후로 상위 1~5%만 독식할 수 있는 거고 우리는 어렸을 때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면서 자라왔는데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면서 자라왔는데 내가 먹을 파이가 없어 근데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의 삶이 행복한가? 저는 아니라고 봐요.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여성들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만 저는 그들에게 동정심이 많아요.

그 이유가 뭐냐면.

.

.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어려움들에 대해서 얘기 나눠보기 위해서 [Sound Sound 다니엘] 채널의 다니엘님을 모시고 한 번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바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과거 세대들에 비해서 좀 무기력한 감정, 공허한 감정들 이런 것들을 좀 많이 느끼고 있는데 어떤 이유들이 있을까요? 우리가 굉장히 공허해질 수밖에 없는 게 개인이 지위나 명성을 얻으려고 한다면 개천에서 용나는 게 많아지려면 어찌 보면 사회의 파이가 커져야 하잖아요.

국가가 성장을 해야 하는데 급속도로 성장하는 시기는 지났단 말이에요.

단순한 경제적인 논리로 우리는 어찌 보면 일본이 겪었던 전처처럼 잃어버린 30년의 초입에서 그거를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봤을 때는 요즘 보면 사업하시는 분들 보면 이제 동남아 가야 된다 이런 말 하시거든요.

그때 저도 동남아 여행을 최근에 갔었는데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진짜 90년대 한국의 모습을 보는 느낌 가게 같은 데를 가면 그 파트 타이머들이 30~40명이 있어요.

조그만한 가게에.

인건비가 엄청 싼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엄청나게 고용을 많이 하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인건비가 엄청나게 올라가고 기계로 대체되고 그런거를 보면 어느 정도 파이가 엄청나게 급성장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볼 수가 있고 많은 경제 전문가들 그렇게 예측을 할 텐데 과거에 한 4~50년 전으로 한번 되돌아가 보면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부모님 세대들은 자식들을 되게 많이 낳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한 명 한 명 특별하게 키우지 않았어요.

어찌보면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과정을 좀 보자면 옛날에 1970년대 독일 광부 파견이라던가 베트남 전쟁 이런 시기를 한번 살펴보면 그냥 한 명 한 명 산업의 역군으로서 사람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했단 말이에요.

인력 자원이었죠.

맞아요 맞아요 그 당시에는 사실 그게 필요했죠.

그리고 지금도 어찌보면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죠.

근데 1990년 정도 가까이 되면서 그런 문화적인 흐름이 바뀌었어요.

자식들 교육시키는 것부터 달라졌죠.

왜냐하면 저희 때는 아마 보통 자식들이 2명이었고 3명인 집이 조금 있었고 외동도 많았고요.

그러다 보니까 한 명 한 명 좀 귀하게 키웠다는 거죠.

특별하게 그때부터예요.

SNL 코리아 같은 걸 보면 그런 개그를 하잖아요.

옛날에 그 시작이 ‘X세대’예요.

그때 패션같은 게 엄청나게 개성이 있어지고 그래서 이렇게 인터뷰를 해보면 서울 사투리라고 하잖아요? 네, 서울 사투리라고 해가지고 ‘저는 이렇게 입는 게 기분이 좋거든요.

’ 하면서 그때부터 시작이 된 거예요.

그때부터 변화가 일어난 건데 제가 좋아하는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라는 작가가 있어요.

그 작가는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더라고요.

과거 1950년대, 60년대는 ‘리틀 미’ 그러니까 나를 작게 하는, 나를 낮추는 자기 겸양의 문화였다가 한 90년대 가까이 되면서 ‘빅 미’가 됐다는 거죠.

자기중심적 문화에요.

내가 짱인 거예요.

내가 우주의 중심이고 내가 잘나야 하는, 특별해지고자 하는 그런 욕망을 추구하도록 교육을 받은 거예요.

실제로 이에 관한 지표는 여러 가지 심리연구에서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서 1948년에서 1954년 심리학자들 연구를 보면 ‘자신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라는 질문에 그 당시에 48년에서 54년 사이에는 12%만 그렇다고 대답을 했어요.

근데 딱 그 X세대가 출연했던 89년도에 보면 남성은 80%가 난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여성은 72%가 엄청나게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심리학에 ‘자아도취 테스트’라는 게 있어요.

요즘 뭐 나르시시스트 이런 것처럼 뭐 여기 항목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다.

’ ‘나는 특별하고 기회가 되면 내 장점을 뽐내야 된다.

’ ‘누군가가 내 일대기를 써줘야 된다.

’ 이런 질문들 여러 가지가 있어요.

이 항목 중에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 라는 항목이 중위값이 20년 동안 거의 30% 정도 증가했습니다.

이런 연구에서도 좀 볼 수가 있고 또 여러 가지가 있어요.

심리학자들은 별걸 다 연구하거든요.

명성을 얻고자 하는 욕구죠.

그러니까 뭐 경제적인 것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과거 그때 1960년대, 1970년대를 보면 명성하고, 그러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이 있잖아요.

한 16개 정도 항목이 있어요.

뭐 거기에는 명성도 있고 경제력도 있고 우정도 있고 가족 간의 사랑도 있고 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명성이나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하는 그 순위가 명성이 15위였어요.

그러니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거죠.

거의 마지막이네요.

1~3등이 가족, 가정을 이루는 거 이런 것들이에요.

가장 최근에 제가 본 거는 2007년인데 지금은 더 심하겠죠.

젊은 청년들의 51%가 가장 중요한 걸 명성으로 꼽았다는 거죠.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거예요.

이거는 대중문화에서도 엄청 발견할 수 있는데 사실 아이일 때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건 애니메이션 같은 거예요 요즘은 디즈니나 픽사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처음으로 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겠죠.

저는 어렸을 때 제가 좀 즐겨봤던 애니메이션은 ‘아기 코끼리 덤보’라고 있어요.

귀여운 것 좋아하셨네요.

그거를 제가 4 ,500번은 봤는데 그거를 제가 4 ,500번은 봤는데 어렸을 때는 그런 걸 계속 반복해서 보잖아요.

제 기억으로는 그때만 해도 애니메이션들이 결국엔 가족 간의 사랑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스토리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거죠.

지금은 보면, ‘너는 특별해, 너는 뭐든지 할 수 있어.

’ ‘너를 믿어.

너는 다른 사람과 달라.

’ 약간 이런 것들이거든요.

뭐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대중문화에서 그런 흐름들을 볼 수가 있죠.

아이돌 산업부터 시작해서 이름이 뭐였지? 장원영씨 있는 데가 혹시 어딘지 아시나요? 아이브인가요? 거기 보면 컨셉이 나르시스트예요.

아 그렇죠.

아이돌 컨셉이 나를 낮춘다던가 이런 문화는 찾아볼 수가 없어요.

그런 것도 엄청 영향을 받을 거고 개인의 ‘존재론적인 특별함’을 주입시키는 이런 문화들이 있고요.

그 70, 80년대에는 걸스카우트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자기 겸양이나 겸손이었어요.

근데 지금은 나, 내가 중심인 문화로 많이 바뀐 거죠.

근데 중요한 건 이겁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면서 자라왔는데 막상 사회에 나오니까 내가 먹을 파이가 없어 왜냐하면 국가가 그렇게 성장하지 않으니까 사실 실상으로 유튜브에서 잘난 사람들만 봐서 그렇지 개천에서 용나는 건 더 적어진 거예요.

점점 없어지고 있죠.

옛날 세대는 오히려 내가 평범한 줄 알았는데 잘 됐어.

기대치가 이거였는데 기대치가 올라가 성과를 이렇게 내니까 오히려 그 면에서는 행복할 수 있죠.

근데 행복감이라는 거는 되게 단순하거든요.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내 기대치보다 성과가 좋으면 당연히 사람은 행복하겠죠.

근데 우리는 내 기대치가 이랬는데 특별할 줄 알았는데.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이거야.

나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 나와보니까 그거를 몇 번 겪다 보면 굉장히 공허해지고 무기력해질 수 있고 어찌 보면 저도 겪었던 거죠.

저도 부모님이 그렇게 키웠거든요.

엄청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제가 엄청 잘나고 이러는 줄 알았는데 이제 성인이 돼서 좀 여러 가지 도전을 했어요.

근데 다 박살이 났어요.

저도 우울증에 오래 시달렸었거든요.

약도 막 먹고 근데 그게 다 그거였던 거죠.

나는 진짜 특별한 줄 알았는데 이게 평범함의 수준도 안 되는 것 같아.

그러다 보니까 이게 몇 번 이렇게 딱 들이받다가 딱 막히니까 굉장히 힘들어지는 거예요.

말씀하신 거 들으니까 이런 특별함을 교육받은 세대들이 실패하는 경험을 되게 못해보고 자랐다는 생각이 좀 들기는 하네요.

그런 경험들을 애초에 많이 하지 않으면서 키우는 문화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한번 실패했을 때 ‘어? 난 특별한 줄 알았는데’ ‘실패해버리네?’ 하고 바로 좌절을 좀 쉽게 해버리는 경향이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좀 드네요.

맞아요.

요즘 그래가지고 요즘은 또 살짝 바뀌기 시작한 게 성균관대랑 KAIST에서 요즘 뭐를 하냐하면 실패 경험 자랑 대회를 한다더라고요.

모토가 뭐냐하면 대학기관에서 성공을 추구하면 안 되겠다.

애들이 실패했을 때 ‘회복 탄력성’이라고 하죠.

그거에 대한 역치를 높여줘야겠다 해서 10분 동안 자기 실패경험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저도 최근에 비슷한 걸 들었는데 아이를 키우는 부모한테 들었는데 요즘에는 아이들이 부모들이 ‘넌 잘할 수 있어, 틀리지 않았어.

’ ‘맞아 맞아.

’ 이런 교육만 시키니까 실패를 경험시켜주고 싶어서 그런 걸 가르쳐주는 커리큘럼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게임 같은 걸 하면서 자연스럽게 실패를 경험하고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경험들을 하는 그런 교육도 생기고 있다고 하던데 저도 20대 초중반에 전재산을 날리고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저 나름대로 사람들은 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힘들잖아요.

근데 저도 나름대로 실패를 겪어봤는데 그때 많이 뭘 깨달은 것 같아요.

그때 사실 더 어릴 때 겪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요즘은 생각을 해요.

요즘 다들 교육 받았던 ‘넌 특별해.

우린 다 특별해질 수 있고’ ‘우린 모두가 소중해.

’ 이런 것들이 오히려 자존감을 더 높여줄 수도 있을 거고 자신감을 더 많이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이 공허감이나 무기력감을 많이 느끼게 한다고 하면 ‘넌 평범해.

넌 아무것도 아니야.

’ 이런 생각들을 만약에 주입받으면서 살았다고 하면 그게 오히려 더 사람의 자존감을 낮출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근데 모든 문화에는 장단이 있는데 과거에도 당연히 단점이 있어요.

그 세대는 너무 ‘내’가 없어요.

너무 내가 없는데 ‘지나친’ ‘지나친’이라는 게 붙으면 뭐든지 안 좋아지는 거예요.

사실 모든 문화나 가치에는 객관적으로 우열이 없어요.

근데 그게 지나친 아니면 너무 부족한 이게 붙으면 우열이 생기는 거죠.

심리학적으로 지나친 자기중심성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자기중심성이라는 것도 분명히 건전한 측면으로 가야 해요.

이게 무슨 뜻이냐하면 저는 그런 말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저는 삶은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성장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게 뭐가 다르냐면 성공이라는 건 피라미드적으로 계급으로 딱딱딱 나눠지는 거예요.

사유재산 개념이 생긴 이후로 상위 1~5%만 독식할 수 있는 거고 근데 제가 지금까지 짧은 경험으로 봤을 때 나중에 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성공은 운이에요.

재능 플러스 운이에요.

근데 반면에 성장 같은 경우에는 그냥 어제보다 오늘 내가 플러스 1 하면 되는 건데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 재능하고 운이 따르는 사람들이 성공을 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기본적으로 무슨 뜻이냐하면 성장은 내가 통제를 할 수가 있다는 거고 성공은 통제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대부분의 그래도 성공한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해요.

운이다.

왜냐하면 저도 어떤 면에 있어서는 남들보다 어떤 성취를 거둔 게 있는데 제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운이에요.

도저히 내가 설명할 수가 없는 것들이에요.

그건 어떤 여러 가지 변수가 겹쳐져서 된 거예요.

예를 들어 유튜브 구독자 100만 200만인 사람도 있지만 저도 10만 가까이 되니까 저는 그것도 굉장한 성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구독자가 10만인 거지 저를 본 사람은 수백만일 거예요.

그거 자체가 저는 물론 저도 열심히 했고 마켓핏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어쨌든 운이에요.

그 시기나 이런 것들이 여러 가지가 맞아서 된 건데 그런 거를 이제 목표로 하다 보면 내 통제범위 밖으로 벗어나기 때문에 사람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어요.

난 특별한 줄 알았어.

그러면 그런 것들도 다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기본적으로 있을 테니까 ‘내가 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 엄마 아빠가 다 된다 그랬는데.

’ 사회에서 말하는 게 ‘넌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노력하면 다 통제할 수 있겠지.

’ 그런 생각이 이제 기본적으로 있으니까 실패를 맞닥뜨렸을 때 ‘내가 되는 줄 알았는데 안 되는구나.

’ 하면서 더 큰 좌절에 빠질 수가 있겠네요.

맞아요.

근데 특별하다고 교육 시키는 거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에요.

근데 저도 나중에 부모가 된다고 하면 그런 걸 가르치겠죠.

너가 특별해질 수 있지만 ‘네가 아무리 특별해져도 세계 최고는 아닐 수 있어.

’ ‘그거는 인정해야 해.

’ 이런 거를 좀 가르쳐 줄 것 같아요.

운이 좋으면 어릴 때 겪을 수도 있겠지만 저도 보면 그래도 좋은 부모님을 만났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면에 있어서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너무 자신감 넘치게만 키워서 많이 얻어 맞았죠.

많이 얻어 맞아가지고 근데 저는 사실 이거보다는 지위나 명성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욕망의 시대가 됐잖아요.

그게 최고인 시대 그 욕망의 시대가 되면서 가장 문제점인 것들이 몇 개 있어요.

욕망이 1순위인 시대가 되면 도덕적 가치가 뒤죽박죽이 되거든요.

우리가 원래 추구해야 하는 도덕적 가치가 ‘그러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 버려도 돼.

’ 라는 마인드가 사실 이 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미치는 거예요.

그거 자체가 근데 이거는 사회의 탓이냐 개인의 탓이냐 이렇게 물어볼 수 없어요.

사실 모든 구성원들의 탓이에요.

유튜브 운영자로서 제가 생각을 하면 저는 어쨌든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사람이고 교육은 어찌 보면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 존재하는 거기 때문에 그거에 위배가 되는 건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럼에도 내가 타협해야 하는 게 있는데 썸네일이에요.

왜냐하면은 사람들은 욕망이나 요즘 사람들은 특히 대한민국은 욕망이나 분노를 자극하지 않으면 클릭하지 않아요.

맞습니다.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내가 뭘 팔고 싶어도 이거를 끌어모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근데 그거는 누구의 탓이냐 하면 이거는 정의를 할 수가 없죠.

어쨌든 많은 대중들이 예를 들면 사실 지금도 조금 시들해졌다.

좀 잠잠해졌다고 하더라도 ‘월에 얼마 버는 법’ 이런 거 하면 잘만 만들면 조회수가 20만 30만씩 나올 수가 있는 거예요.

이게 다 도덕적 가치가 무너졌기 때문이에요.

그 순위가 무너졌다고요.

예를 들어서 약간 이런 모습이에요.

유튜브 콘텐츠를 만든다고 했을 때 나랑 정말 친한 친구가 있어.

근데 얘가 비밀이라면서 나를 믿어서 정말 조금 자극적이지만 자기만의 비밀을 털어놨어요.

근데 내가 이 썰을 풀면은 조회수가 한 50만 나올 것 같아요.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해버리는 거예요.

유튜브 생태계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요.

누구를 저격하고 쟤를 끌어내리고 왜냐하면은 모든 인플루언서들은 적이 있거든요.

저를 정말 좋아하는 팬이 천 명이 있다고 하면 저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도 천 명이 있는 거예요.

그런 유튜브 창작자들은 다 그런 역학을 알아요.

그래서 누군가를 욕하면 그 사람을 싫어했던 사람이 우르르 몰려드는 거예요.

근데 그게 다 도덕적 가치의 우선순위가 희미해져서 그래요.

내가 떡상하고 싶으니까 돈만 된다면 그냥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쓰레기 정보들만 넘쳐나게 되는 거죠.

결국에는 그 손해를 모든 구성원들이 같이 떠안는 거죠.

이런 거는 흔해요.

예를 들어 이런 말도 많이 하죠.

‘야, 금융사기 그냥 치는 게 낫지 않냐?’ 처벌이 훨씬 약하니까.

금융사기로 300억 땡기고, 근데 벌금이 80억이야 그러면 한 5년 살고 나와서 220억으로 하와이 가서 살면 되지.

이런 이야기 은근히 흔하게 한단 말이에요.

이게 다 도덕적 가치가, 우선순위가 희미해지다 보니까 그런 게 다 무너져 버리는 거예요.

저는 그런 걸 보면서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을 했고 결국에는 그냥 그거를 다 모든 구성원들이 나눠서 떠안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이 좀 착각을 하는 게 있는데 물론 욕망을 자극하는 콘텐츠 이런 거 조회수도 많이 나오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지만 그 실상을 보면 그거는 그냥 어찌 보면 그냥 패션이거든요.

그 딱 사람들이 한 번 클릭했다가 보고 마는 거예요.

사실 어찌 보면 되게 많잖아요.

그 사람들이 되게 많이 버는 것 같아도 저는 같이 일하는 스타트업 처음부터 동업을 해서 웬만한 크리에이터들의 수익 모델을 알거든요.

그 실상이 그렇게 좋지 않아요.

그렇죠.

포장은 되게 그럴싸하게 하지만 저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어떤 도덕적 가치를 좇으면서 일을 해야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어떤 일을 한다고 하는 걸 밥을 지어서 먹는 거라고 비유를 해보면 자, 너가 그냥 단지 배고파서 배를 채우려고 밥을 짓는다고 하면 너는 그냥 라면을 끓여 먹거나 아니면 도시락을 사 먹거나 되게 간단하게 해 먹을 거다.

대부분 그럴 거다.

근데 너가 만약에 친구를 초대해서 친구들이랑 같이 먹으려고 식사를 준비하면 조금 더 신경을 쓰지 않겠냐? 자, 더 나아가서 전 이걸 물어봐요.

엄마 밥은 다 맛있다.

엄마 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

저도 본가 가서 엄마 밥 먹을 때마다 맛있어.

그게 왜 맛있을 거 같냐? 가장 좋은 재료를 쓰려고 하고 재료도 많이 넣으려고 하고 항상 신경을 써서 만들어 준단 말이죠.

근데 저는 일이나 인생이나 그게 똑같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떤 일을 할 때 지금 그게 눈에 보여요.

단기적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들이 보여요.

저는 그런 걸 웬만하면 다 배제해요.

이거는 약간 내가 지금 배고파서 짓는 밥이랑 똑같은 거예요.

라면이랑 똑같은 거 근데 내가 그거 말고 다른 가치를 좇으면서 일을 하면 지금 당장 돈은 안 돼도 나중에 더 크게 돌아온다는 걸 겪어도 봤고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그건 역사가 증명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나중에 40, 50대 돼서 정말 잘 된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 결국 거의 다 도덕 실제론자예요.

다 도덕을 좇으면서 일을 했어요.

내가 지금 돈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나는 타인에게 뭔가 기여하고 싶어.

내가 진짜 이걸로 세상을 빛내고 싶어.

이런 것들을 좇았을 때 결국 돈이 되는데 욕망의 시대다 보니 이게 원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저도 항상 쉽지가 않더라고요.

인문학적인 걸 공부를 하다 보면 왜 그런 것들을 좇는 게 중요한지 알게 되거든요.

저는 사실 그래서 그런 걸 가르쳐요.

제가 월 천만 원 버는 법을 못 가르쳐서 안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그게 의미가 없으니까 근데 이제 자본주의에 살고 있고 ‘경제적 자유, 월에 얼마를 벌 수 있다.

’ 이런 것들을 많은 인플루언서들도 외치면서 그들도 스스로도 성장해 왔고 수많은 대중들이 그걸 목표로 하면서 본인도 ‘경제적 자유를 이뤄야겠다.

’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잖아요.

근데 돈이 많으면 좋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걸 좇는다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를 못할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왜 문제가 될까요? 근데 그게 생각하는 것보다 일단은 쉽지가 않고요.

이런 걸 말하고 싶어요.

요즘은 의사가 되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의사 진학반을 한다고 하잖아요.

근데 그거를 심리적 원근감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사가 생각보다 돈이 엄청 되는 직업이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어요.

저는 사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친척 중에 의사가 많기 때문이에요.

근데 의사는 돈을 보고 하면 안 되는 직업이에요.

근데 어른들의 책임도 있는 거죠.

그걸 잘못 가르치는 거예요.

의사만 되면 돈 많이 번다 하니까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고 가르치니까 원래 의사는 철저하게 도덕을 좇아야 하는 직업이에요.

그리고 그게 모든 거를 다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설명드리고 싶은 게 의사랑 일반적인 직장인이라고 봤을 때 생애소득의 관점에서 계산을 이거는 자세히 해봐야겠지만 제 생각에 진짜 많이 쳐줘도 병원장이 되지 않는 이상 의사는 또 돈을 늦게 벌기 시작하니까 제 생각에 생애소득이 한 20억 정도 차이 날 것 같아요.

그러면 20억을 가지고 너가 정말 그렇게 꿈에 그리던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느냐? 제 생각엔 택도 없어요.

저도 돈을 벌어보니까 그걸 알겠어요.

그 욕망에 심취 되어있던 때가 있을 거 아니에요.

지금도 분투하고 있고 근데 이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꿈꿨던 정말 그 부자의 삶을 살려면 정말 많이 벌어야 하는 거야.

적어도 한 100억은 있어야 될 거 같은데 세금 한 절반 날아가면 200억을 순수익으로 벌어야 되네.

그러면 나는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 좋은데 이거를 꾸준히 유지하려면 뭘 해야 될까? 그걸 좇으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10년, 15년, 20년 유지할 만한 뭔가 어떤 의미를 찾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거를 찾으면서 그래도 되게 재밌게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래, 내가 100억을 언제 벌지 몰라 그건 됐고’ ‘모르겠고, 그건 그냥 운이야.

’ 내가 지금 당장 의미를 찾고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거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이런 것들을 많이 이야기를 해줘요.

네가 지금 상상하는 게 생각보다 허상의 관념일 수도 있다.

한번 계산기를 두들겨 봐라.

근데 이제 SNS를 보면 사실 그런 허상의 삶들이 넘쳐나잖아요.

모두가 부자인 것 같고 다들 너무 잘 사는 것 같고 내가 꿈에 그리던 삶을 사는 사람이 핸드폰만 켜면 수두룩하게 있는데 그럼 저 사람들은 뭐가 특별해서 저런 건가? 그럼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 저 정도 돼야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런 착각을 많이들 할 것 같은데 근데 저는 어떤 부분은 되게 냉정한데 본인이 그걸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게 잘못이에요.

그리고 심리적 원근감을 가지지 않고 이거를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하나? 그거에 대해서 한 번, 두 번, 세 번만 생각을 해보면 생각보다 내가 상상한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거기에 매몰되는 건 자신이에요.

본인의 자유대로 쳐다봤겠지만 원래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는 거기 때문에 자기 책임입니다.

거기서 벗어나는 건 어찌 보면 어떤 부분에서 무지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걸 전혀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계속 매몰돼서 시간 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래도 돈 많이 벌면 행복할 것 같고 돈 많으면 좋을 것 같고 일반적으로 돈과 행복은 굉장히 비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쫓으면서 살 텐데 돈을 많이 벌었을 때와 돈과 행복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혹시 말씀해 주실 만한 게 있으실까요? 소득과 행복에 대한 거는 가장 유명한 게 ‘이스털린의 역설’이에요.

그러니까 한화로 따지면 한 8천만 원? 근데 이거는 많이 논파가 됐고 가장 최근 연구가 대니얼 카노먼이라고 행동 경제학자가 있는데 그게 좀 바뀌었어요.

한 1억 원 정도.

거기서부터는 이제 소득수준하고 비례하지 않는다.

근데 여기에 또 함정이 있는 게 그건 맞아요.

사람이 계속 남들보다 잘나지면 행복해요.

행복한데, 그게 왜 점점 행복이 줄어드냐하면 첫 번째로 내가 소득수준 1억이 되면 그 다음 이제 내가 꺾어야 될 대상이 점점 강해지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내가 소득이 3천만 원이었을 때는 조금만 더 해도 뭐 조금만 더 해도 계속 내가 적을 이길 수 있어.

적이라고 따지면 수많은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죠.

근데 1억, 2억 이렇게 갈수록 내가 그 단계를 계속 넘어가기가 엄청 힘들어지니까 그래프가 감소를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이거는 그냥 불문율이에요.

소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복도가 결정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돈을 되게 많이 벌어서 소비를 잘하면 많이 벌수록 계속 행복해져요.

그 중에 하나가 경험소비에요.

예를 들어 이런거죠.

게임기를 사도 아니면 뭔가 전시하고 싶어서 이게 아니라 내가 어떤 공간을 만들어서 친구들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게임기를 사.

그럼 이제 그 소비를 하면 행복도가 엄청나게 올라가는거죠.

이런 것들 그리고 내가 뭔가 교육을 받는다든지 스포츠를 배운다든지 이런 거 그리고 돈도 많이 벌 때 그 목적이 과시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뭔가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서 이런 목적이라면 다 괜찮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면 어느 순간 행복도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미 틀린 논제예요.

나름 의미가 있는 거예요.

나름 의미가 있는 건데 그거를 딱 알아야지.

그래프가 왜 계속 완만해지는지.

점점 계속 난이도는 어려워질 거고 그리고 앞으로 내가 돈을 좀 벌었을 때 소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한다면 저는 엄청 응원하죠.

근데 이런 거를 계속 배우면서 열심히 하라는 거죠.

제가 말한 가치를 좇는 게, 도덕을 좇는 게 왜 중요한가부터 시작해서 이런 거를 먼저 배우고 열심히 한다면 훨씬 더 유익하게 성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일반적으로는 돈을 벌면 좋은 차를 사고 좋은 가방을 사고 이렇게 소유 관점에서 보통 소비를 하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잖아요.

그러다 보면 돈을 많이 벌면 더 비싼 게 또 있고 갖고 싶은 게 또 생기고 계속 더 벌어야지.

더 벌어야지 저것도 가져야지 저것도 가져야지.

이게 소유 관점에서 소비를 하니까 그런 행복감이 이제 완만하게 증가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좀 드네요.

그거는 진짜 문제가 있죠.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가 문화권이 관계주의 문화권이에요.

그러니까 관계가 매우 중요한 거죠.

우리나라가 더 불행한 이유는 이런 게 엄청 심해서 그래요.

내가 어제보다 더 잘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쟤보다 잘 살아야 해.

그럼 이제 끝이 없는 거예요.

쟤보다 잘 살아야 해 쟤보다.

그러니까 아무리 GDP가 올라가고 우리나라가 성장을 해도 개개인은 다 불행감을 느끼는 거죠.

그리고 소유를 어느 정도 해본 사람들은 다 알 거예요.

근데 이게 사실 심리학 서적에 다 나와 있는 건데도 믿지 않는 거죠.

내가 누려보지 않았으니까 다 배부른 소리다.

그렇게 얘기를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거 같은데 근데 저만 해도 그래요.

저도 나이도 어리고 엄청 성공한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을 하지만 저도 뭔가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포르쉐를 엄청 사고 싶었어요.

그래가지고 그냥 저도 자동차를 좋아해요.

남자들은 차를 다 좋아하잖아요.

막상 뭐 억지로 굴리면은 이제 포르쉐를 굴릴 수도 있어요.

근데 그렇게 되니까 관심이 없어진 거죠.

진짜로 싹 관심이 없어졌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까 제가 그것 때문인 것 같아요.

뭘 깨달았냐하면 ‘사람이 진짜 어떤 가치를 좇는 존재구나.

’ 깨달았던 순간이 욕심이 없어지기 시작한 게 그런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기 시작한 게 뭐냐하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어찌 보면 존경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리스펙을 받을 수 있게 됐고 저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에 그거를 체감할 수 있어요.

근데 그러면서 제가 소유욕이 없어져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나는 포르쉐를 원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존경을 원했구나.

포르쉐를 통해서 나는 그때 존경을 받지 못했으니까 포르쉐를 통해서 이 수단으로 존경을 받고 싶었던 거예요.

근데 다이렉트로 존경을 받으니까 당연히 욕심이 사라지죠.

그래서 그때 딱 깨달았어요.

‘이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구나.

’ 저는 그냥 지금 엄청 커다란 차 타고 다니거든요.

지프, 저 그런 거 좋아해가지고 근데 되게 긁히고 옛날에는 기스 하나만 나도 부들부들 떨었어요.

근데 이게 제가 맨날 하는 말이 내가 어떤 물건을 샀는데 그것 때문에 에너지를 엄청 많이 쓰고 안절부절 못하면 그건 내가 소유한 게 아니다.

소유 당한 거다.

그러니까 사람도 똑같거든요.

인간관계도.

어떤 사람들은 예를 들어 불안 애착 유형인 사람은 연애할 때도 그 사람을 통제하려고 어떤 사람을 통제하고 막 사사건건 다 보고해 이러잖아요.

그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어찌 보면 통제하고 소유하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그 사람이 소유당한 거예요.

그것 때문에 그렇게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는데 내가 진짜로 소유하려면 그거에 별로 신경을 안써야 해요.

다 그런 거더라고요.

그런 거를 또 깨닫다 보니까 점점 더 내 분수에 맞지 않는 거는 그냥 쳐다도 보지 말아야겠다.

지금은 뭐 긁히고 이래도 ‘차가 그냥 차지.

’ 약간 이렇거든요.

그게 진짜 소유죠.

그런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근데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좋겠지.

’라고 생각하는 게 말씀하신 것처럼 다니엘 님은 ‘나는 존경을 좇 사람이었구나.

’ 라는 걸 알게 되어서 돈과 나는 상관없어.

나의 행복은 돈이 아니라, 좋은 차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존중을 받는 거야.

이런 것들은 이제 알고 그쪽으로 삶을 방향을 틀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 자체를 많이 생각해보지 않고 내가 뭘 원하는 사람인지 내가 뭘 좇아야 좋은 사람인지를 모르니까 일반적으로 그냥 ‘돈을 쫓아서 살아가면 좋은 거야.

’ 라고 생각으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네요.

근데 저는 돌아봤을 때 모든 사람의 삶에서 그런 의미는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회사를 아예 그만둔 게 1년밖에 안 됐어요.

다른 사업을 같이 하면서 다녔는데 제가 그때 회사를 다닐 때 어떤 느낌이었냐하면 어떤 감옥에 속박된 느낌이었어요.

감옥에 속박된 느낌이었고 거기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근데 그만두고 나서 하다 보니까 내가 더 자유로워졌냐? 아니에요.

새로운 감옥에 속박돼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엔 내가 뭘 느꼈냐하면 내가 감옥이라고 생각하면 감옥이고 내가 자유인이라고 생각하면 자유인이에요.

저는 어쩌면 옛날에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어떤 것에 속박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생각하기 사실 나름이거든요.

어떤 인식을 하기 나름인데 이제 그런 거에 깨달음을 얻는 거는 쉽지는 않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무나 다 할 수 있으면 사람들이 불안하다고 하고 공허하다고 하겠습니까? 근데 충분히 내가 어차피 하고 있는 일에서 내가 얻고자 하면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가치를 좇고 있는지 그래서 항상 저는 물어봐요.

당신은 어떤 가치를 좇냐고 그걸 한번 생각해보고 제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에서도 내가 어떤 가치를 좇는지에 대한 그런 걸 적어보라고 하고 생각해보라고 이런 대화를 좀 많이 나누는 편입니다.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일상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굉장히 중요하죠.

사실 우리의 삶은 일상으로 채워져 있으니까 그것들 속에서 의미를 찾고 거기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게 이제 가장 좋은 건데 사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일상에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들이 많으니까 맞아요.

일상에서 그런 내가 좋아하는 그런 가치들 내가 추구해야 되는 가치들을 좀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좀 드네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걸 가속화시키는 것들 중에 하나가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고 그걸 좇 사람들도 많아지는데 사실 우리는 그걸 달성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 사이에 괴리에서 많은 무력감이나 그 사이에 괴리에서 많은 무력감이나 그런 것들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경제적 자유를 목표로 해서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한번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는 경제적 자유라는 게 어찌보면 인플루언서 발로 생긴 거잖아요.

엄청나게 인기가 있었고 지금도 없진 않고 근데 보통 우리가 추구하는 메시지들 저는 크리에이터 비즈니스를 굉장히 바삭하게 알고 있는데 어찌보면 거의 종교 단체에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을 하는 게 그렇죠.

신흥 종교죠.

‘월 천만원 버는 법, 월 1억 버는 법’ 이게 사실 종교라는 게 별 게 아니라고 했잖아요.

사람들이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모이는 건 거의 다 종교라고 보시면 돼요.

종교가 영어로 religion이죠.

그게 ‘~에 연결되다.

’ 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연결이 되어 있다면 그거는 사실 종교 단체에 가까워지는 건데 그 하나의 믿음이 얼마나 강력하냐 정말 강력하면 진짜 종교가 되는 거고 약해지면 그냥 어찌 보면 커뮤니티가 되는 겁니다.

근데 어찌 보면 하나의 믿음이 없으면 사람들은 모이지 않아요.

숭배 대상이 바뀐 거지 옛날에 보세요.

옛날에는 종교적인, 도덕적인 법칙을 가지고 뭐라고 종교단체들이 해? ‘야 이거 믿으면 너 구원 받을 수 있어.

’ ‘천당 갈 수 있어’ 천당 갈 수 있어 하는데 지금은 어때요? ‘야 너 월 천만 원 벌면 구원 받을 수 있어.

’ 분당, 천당이 아니라 분당이라고 맨날 신부님이 옛날에 저한테 말씀해주셨거든요.

옛날에 기억이 나요.

그때부터 신부님이 뭔가 아신 거지.

재밌는 신부님이 있었어요.

‘너는 이거 월천만 원 벌면 구원 받아.

’랑 똑같아요.

마치 뭔가 구원을 주는 것처럼 사실 마케팅을 하는 경우가 많죠.

그거는 그렇게 긍정적이진 않죠.

특히 인플루언서 중에 잘 마케팅하면 돈을 제일 많이 버는 비지니스가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한 거예요.

저는 근데 끌어당기는 법칙을 절대 나쁘게 생각을 안 하거든요.

근데 거기는 거의 종교에요.

왜냐하면은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게 어찌 보면 심리학적으로 여러 가지 근거가 있는 내용이에요.

저는 그래서 부정적으로 보지 않아요.

그거 자체를 오히려 나쁠 거 없지 나쁠 거 없는데 거기서 말하는 게 그것도 경제적 자유랑 연결을 시켜요.

거기는 더 심해요.

‘너 100억 부자 될 수 있어.

’ 100억 부자가 됐다고 믿고 네 믿고 ‘나는 그냥 100억 부자야.

’ 약간 이런 건데 그건 원래의 취지랑 맞지 않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인지심리학에서 ‘심성 모형 만들기’라는 게 있어요.

심성 모형 만들기가 뭐냐하면 연구자들이 굉장히 재미있는 걸 발견했대요.

그게 뭐냐하면 어떤 간호사가 있고 소방관 어떤 직업에 있어서 엄청나게 직업군에서 많은 성취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공통점을 찾고 싶었대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연구를 했는데 별 차이점이 없는 거예요.

근데 딱 하나 차이점을 발견했는데 어떤 간호사는 애기들이 인큐베이터에 있잖아요.

거기에 수치 같은 게 모두 정상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딱 봤는데 이 간호사가 말하는 거예요.

‘이 애 좀 이상하다.

’ 검사를 해보면 얘가 진짜 이상한 거예요.

죽기 직전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계속 살리고 어떤 소방관이나 군인들도 똑같아요.

만약에 전시 상황이나 위급 상황에 됐는데 기가 막히게 반응을 해가지고 사람들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을 연구를 해보니까 얘네들은 밥 먹고 잠자는 시간 빼고 어떤 자기가 업무 상황에 있어서 계속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는 거예요.

계속 뭔가 그리는 거야.

간호사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생각하는 건강한 아이의 모습을 머리에 계속 그리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정말 이만한 차이도 발견을 하는 거죠.

그게 심성 모형 만들기예요.

머릿속으로 구체적인 상황을 계속 상상하는 거야.

그러면 그 역량이 엄청 뛰어나지고 순간 반응 속도가 엄청나지는 거예요.

그게 끌어당김의 법칙에 어느 정도 근거가 될 수 있는 이야기고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뭐냐하면 과학적으로 할 수 있는 거는 어떤 상황이 굉장히 구체적이어야 돼요.

그래서 거기서도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사람 모으는 사람들을 뭐라고 하냐하면 그냥 100억 부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너가 100억을 벌었을 때 모든 구체적인 상황을 계속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

근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내가 100억이 없고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근데 내가 어떤 일을 할 때는 구체적인 상황을 그리기가 쉽잖아요.

예를 들어 발표를 할 때 예를 들어 오늘 제가 팟캐스트를 촬영할 때도 머릿속으로 계속 그려볼 수가 있어요.

그거를 계속 하다 보면 그거에서 괜찮은 성취를 낼 수가 있죠.

이것도 어찌 보면 성공이 아니라 성장의 관점이겠죠.

여기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데 요즘은 경제적 자유라는 종교적인 믿음과 함께하면서 완전히 종교단체가 되어버린 거죠.

그리고 그냥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리고 그냥 사람들이 모였을 때 경제적 자유 그것 때문에 종교단체가 된 곳이 많아요.

그러니까 종교는 없어지지 않은 거죠.

숭배의 대상이 바뀐 거죠.

예를 들어 비트코인 같은 거 사업하시는 분들은 거기서 다 똑같은 믿음을 갖고 있어요.

‘리플은 오를 거다.

간다! 영차! 영차!’ 그러니까 종교랑 똑같은 거예요.

종교도 저 가톨릭 신자거든요.

성당에 가면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해요.

근데 도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지 다 ‘내 탓이다, 내 탓이다.

’ 계속 읊는 거예요.

그걸 보면 종교랑 똑같은 거죠.

그것도 결국은 뭐야? 의지할 데가 없으니까 그 사람들 돈도 엄청 많이 잃었고 한데 거기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별로 주는 콘텐츠가 없어요.

제가 알기로는 근데 단가가 엄청 비싸요.

회원비가 엄청 비싸죠.

저는 뉴스레터 같은 거 발행하고 하는 거 월에 2만 원밖에 안 되는데 왜냐하면 나는 하나의 믿음이 없거든 그러니까 단가를 세게 못하는 건데 거기는 왜 그 돈을 내냐하면 의지할 데가 필요해서 예요.

100억을 벌게 해준다는데 100만원 정도 쓸 수 있지.

그것도 별것도 아니고 한 번 들어가면 이제 내가 여기서 나오면은 더 잃을 것 같고 그리고 다 같이 잃었으니까 서로 의지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안 나오는 거예요.

월에 10만 원에서 20만 원, 30만 원 그냥 내는 거예요.

왜 미치겠으니까 나 혼자 있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거든.

그러다 보니까 제가 그런 걸 보면서 그건 건전하지가 않죠.

현실을 자각해야지.

뭐 하는 겁니까? 그런 사회문제들이 좀 생기는 거 같고 저는 성공을 추구하기 전에 이런 이야기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정신 분석 학자들을 많이 인용을 한다고 했잖아요.

근데 저의 심리상태나 정신건강에 가장 많이 도움을 준 건 로고테라피라고 정신분석학파 중 하나예요.

빅터 프랭클이나 에리히 프롬이나 이런 사람들이 필두로 해서 하는 건데 그 친구들은 뭐를 중요하게 생각하냐하면 삶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의미, 모든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것 모든 인간들은 나름의 그 과정상에서 의미를 찾으면 모든 걸 견뎌낼 수 있다.

그런데 빅터 프랭클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 게 나치 수용소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면서 거기 안에서 이 학파를 만든 사람이에요.

대단하신 분이네요.

그리고 나치 수용소에서 죽음을 견뎌내고 그리고 나치 수용소에서 죽음을 견뎌내고 거기서 긍정적으로 살았던 사람을 관찰하면서 인간이 진짜 이런 모습이 있구나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살 수가 있구나 그걸 발견하면서 만든 사람이거든요.

이 학자들이 생각하는 가치는 크게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창조적 가치예요.

행동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는 가치인데 쉽게 말하자면 이거예요.

지금 PD님도 일을 하시고 있는 거잖아요.

근데 본질적으로 생각하면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버는 거죠.

그래서 오늘 업무를 해서 월급은 한 달에 한 번 들어오지만 오늘 하루 일당을 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럼 창조적 가치가 실현이 된 거예요.

두 번째는 경험적 가치예요.

경험적 가치는 뭐냐? 말 그대로 경험이에요.

내가 돈을 벌어서 어떤 물질적인 것을 사거나 여행을 가.

예술 작품을 경험해.

뮤지컬을 봐.

어떤 새로운 경험을 얻은 거죠.

그래서 뭐 어떤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을 갔다 왔으면 경험적 가치를 누린 겁니다.

가벼운 성공 철학에서는 이게 두 가지만 가치로 취급을 해요.

근데 이건 정말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치의 절반도 안 된다는 거죠.

세 번째 가치가 태도적 가치예요.

태도적 가치가 뭐냐하면 인간이 운명론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때 이룰 수 있는 가치를 말해요.

예를 들어서 고통 같은 것 이 사람들은 고통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치라고 이야기합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의미를 찾을 줄 알아야 된다고 이게 왜 중요하냐면 직관적으로 설명을 해보면 우리가 직장을 갑니다.

근데 요즘 직장 가면 다 불만이 많아요.

돈을 너무 안 주고 상사가 어떻고 긍정적인 말을 하기보다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합니다.

인생은 고통이죠.

근데 그 이유가 뭐냐하면 창조적 가치랑 경험적 가치만 추구 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직장 내에서 겪을 수 있는 인간관계의 고통 그리고 노동 업무를 하면서 겪을 수 있는 고통들 거기에서도 나름의 배울 수 있는 게 있고 가치가 있는 거거든요.

근데 그거를 가치로 취급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생각을 해 보면 전 물어봐요.

행복하지 않다고 하면 네가 왜 행복해야 해? 불행할 이유도 없지만 행복해야 할 이유도 없어요.

그리고 왜 너의 직장생활이 평탄하기만 해야 해? 생각해 보면 아무 이유가 없어요.

인간을 지극히 동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어찌 보면 행복한 순간이 많은 편이지 인간처럼 늙어서 죽는 동물이 없어요.

대부분 잡아먹혀서 죽거나 못 먹어서 죽거나 노화로 죽는 동물이 거의 없다고요.

그래서 제가 물어본다니까요.

너가 왜 행복해야 하냐고 너는 왜 고통스럽지 않아야 하냐고 근데 이런 물음에 있어서는 많은 철학자나 성현들이 항상 이야기를 하죠.

근데 이것마저도 가치로 받아들이는 게 태도적 가치예요.

이런 태도가 없으면 정말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생을 마감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처음에 이야기 했던 ‘존재론적 특별함’을 강요받으면서 살았던 것과 비슷하게 연결될 수 있겠네요.

‘난 특별하니까 고통도 받지 않고 평탄하게 살아야 하는 존재야.

’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라왔으니까 더 많이 느끼게 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아까 말한 그 회복탄력성에 대한 교육도 되게 중요한 거고 어찌 보면 이 흐름과 비슷하게 가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부족한 거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태도적 가치라는 건 이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인간이라면 다 누릴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창조적 가치나 경험적 가치는 사유 재산이 생긴 뒤로 소수만 정말 풍족하게 누릴 수 있지만 ‘야 고통은 다 고통스럽잖아.

’ ‘이게 얼마나 좋은 가치야.

’ 이거를 배울 수 있는 어떤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하니? 그리고 이게 왜 중요하냐하면 간단한 질문으로도 이게 왜 가치있는지 증명이 가능한 게 정신의학 내담 기록을 저는 의사보다 더 많이 보거든요.

좀 이상한 거를 보는 걸 좋아해 가지고 거기서 정신과 의사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거죠.

‘너 삶에서 진짜 고통스러웠던 순간이나’ ‘불행했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 예를 들어서 가볍게 짝사랑에 실패했던 경험 부모와 다퉜던 경험, 친구들과 싸웠다가 화해한 경험 이런 것들을 다 지울 수 있다고 하면 너 지울래? 이렇게 물어보면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을 한대요.

그럼 이 말은 무슨 뜻이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고통에도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는 거죠.

이거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고통을 좀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제 삶에 정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저도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사람 대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정말 분노할 만한 일도 있거든요.

근데 전 그때마다 물어봐요.

내가 왜 이런 고통이 없어야 되지? 어찌보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러니까 삶은 어떨 때는 고통스럽고 어떨 때는 행복하고 그냥 이런 게 삶이라는 거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성장 관점에서 봐도, ‘회복탄력성’을 이야기 하셨는데 그 책에서 보면 힘들고 좌절스러운 순간을 극복했을 때 그 책에서 보면 힘들고 좌절스러운 순간을 극복했을 때 더 능력치가 향상되고 성장한다고 하더라고요.

고통의 순간과 실패의 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훈련이 되어야 하는데 경제적 자유만 맹목적으로 좇다 보면 ‘무조건 저 목표를 달성해야 해!’ 실제로는 그것을 달성할 확률보다는 그 과정에서도 달성하지 못할 확률들이 훨씬 많고 실패의 경험들이 훨씬 많을 텐데, 사람들이 좀 더 익숙해져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과정 자체가 우리 삶을 어떻게 보면 다 채우고 있는 거고 그 과정의 상당수가 실패와 고난과 고통인데 그 자체를 무조건 불행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과정에서 의미를 찾고 과정에서 치열하게 몰입하면서 뭔가를 했을 때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고 아까 끌어당김의 법칙 말씀하신 거랑도 연결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100억을 달성하려면 사실 뭔가를 해야 100억을 벌 수 있는데 머릿속에 100억을 달성했을 때 나의 모습을 상상하기 보다 아까 말씀하신 내가 간호사로서 지금 당장 할 일을 계속 고민하고 그걸 내가 해낼 수 있다라는 생각을 지금 하면서 내 업무를 해야 그 단계 단계를 밟아서 어떻게 보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한 그 성취의 단계까지 가는 건데 사람들의 생각이 위에 제일 마지막 단계에만 꽂혀 있으니까 그런 문제들이 더 발생하지 않나.

저는 이런 식의 설명을 좋아해요.

그거에 대해서 이런 거 많이 물어보거든요.

‘저 좀 무기력한데 어떻게 탈피해야 될까요?’ ‘저 불안한데 어떻게 할까요?’ ‘저 외로운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죠?’ ‘어떻게 피할 수 있죠?’ ‘어떻게 없앨 수 있죠?’ 저는 못 없앤다고 그래요.

근데 대신 이런 말을 합니다.

방금 했던 말도 하면서 인생을 어떤 하나의 음악으로 봤을 때 너의 인생의 완성도는 지금 그게 장조냐 단조냐는 상관이 없다.

장조는 어찌 보면 되게 신나는 느낌이 나고 따뜻한 느낌이 나지만 단조 음악 같은 경우에는 어두운 느낌이 나거든요.

근데 너의 지금 인생이 장조냐 단조냐는 상관이 없다는 거죠.

그리고 너의 악보가 미완성이든 완성이든 상관이 없다.

예를 들어 비창 같은 교향곡은 미완성 교향곡인데 지금까지도 굉장히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인식이 된단 말이죠.

평가를 받고 근데 그 인생이 똑같다는 거예요.

너가 너의 인생이 되게 미완성 같아도 굉장히 완성도 높은 인생이 될 수 있고 생각보다 단조 부분이 많아도 되게 듣기 좋은 음악이 될 수 있다.

그냥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게 좋을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고요.

그리고 사실 인플루언서들도 겉으로 보면 되게 화려해 보이니까 되게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잖아요.

그래서 저한테도 이런 걸 물어봐요.

어떻게 하면 그런 성취를 겪을 수 있나요? 하면서 그런 목표를 추구하고 싶어 하는데 저는 뭔가를 추구하지 말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어떤 물질적인 뭔가를 너를 행복하게 해주는 뭔가를 너무 과하게 추구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사실 저는 천주교신자인데 불교를 엄청 많이 공부를 해요.

저는 석가모니, 시타르타의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고 천재예요.

현대의 심리학이나 뇌과학에서 요즘에서야 증명하기 시작한 걸 그때 그냥 철학적 사유로 습득을 한 사람이에요.

거기서 말하는 게 뭐냐하면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자아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과하게 말하면 너는 사실 그냥 너의 DNA상에서 그냥 흘러가는 거다.

뇌과학 실험을 보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기 전에 이미 뇌는 움직여요.

어떤 일이 일어나면 나중에 사후 합리화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소개팅에 나갔는데 어떤 여성분이 소개팅에 나갔어요.

그 남자가 마음에 안 들고 들고는 이미 무의식 수준에서 5초 내에 결정이 돼요.

근데 예를 들어 그 남자가 박사고 담배를 핀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그 남자가 싫잖아요.

이미 본능적으로 싫은 건데 친구들한테 뭐라고 하느냐? 그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너무 공부만 한 것 같아서 싫다고 합니다.

근데 예를 들어 그 남자가 5초 내에서 마음에 들었잖아요.

그럼 담배는 나중에 끊을 수도 있고 너무 똑똑해서 좋다고 이야기를 하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의 사고방식입니다.

매 순간에서 무의식이 이미 판단을 했지만, 의식이 합리화를 하는.

근데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도 비슷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정신질환이라기 보다는 신경증이라는 단어를 정신분석학에서 많이 쓰는데 신경증에 걸린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 뭐냐하면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내 마음 상태에 대해서 너무 집착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나 지금 우울해.

’ 우울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거에 대해서 너무 과하게 생각을 하고 ‘나 행복하고 싶어.

’ 그래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지? 이것에 대해 너무 과하게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근데 그 신경증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냐하면 여기서 주는 해결책은 내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회에 있는 외부의 대상에 대해서 생각하는 거예요.

그 주관적 심리상태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벗어나는 거죠.

불면증도 똑같거든요.

빅터프랭클이 불면증을 극복하는 법에 대해서 굉장히 간략하게 알려줘요.

근데 그게 정답이에요.

저도 많이 겪어봐서 이 사람들이 왜 못 자냐? 왜냐하면 밤에 왜 못 자냐하면 자야 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근데 수면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몸이 이완되는 건데 내가 그걸 자려고 집착을 하면 이완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잘 수 있나요? 물어보면 자려고 하지 말라고 해요.

근데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렇다는 거죠.

내가 우울함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발버둥치면 더 우울하고 내가 행복을 계속 추구하고 행복하려고 하면 더 불행해진다는 거예요.

성취도 똑같아요.

자기 성취 이 사람들은 자기 성취나 자아실현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에요.

그게 뭔데 도대체? 그런데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달성하는 방법은 결국에는 내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들은 결국엔 그냥 어쩌다 보니까 모든 변수들이 얽혀서 만들어진 결과물이거든요.

수 없는 과정이 반복이 됐을 때 할 수 있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맨날 과정에서 반복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거야.

그러다 보면 운이 좋으면 그거를 달성 할 수도 있는 거죠.

그게 다 불교랑 이런 게 다 연관이 되어 있는 거예요.

특별한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뭔가를 하기보다 그냥 내가 오늘 그냥 해야 될 일 그냥 계속 하는 거예요.

대표적인 예가 사람들한테 제일 와닿을 수 있는 예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예요.

그 작가가 루틴이 어떻게 되냐하면 ‘하루키 루틴’ 이라고 굉장히 유명하거든요.

달리고 쓰고 달리고 쓰고.

새벽 3~4시에 일어나서 매일 6시간 글을 써요.

맨날 맨날 글을 쓰고 그게 자기 일과가 끝이에요.

낮에 점심을 먹고요.

그리고 달리기를 10km 하거나 수영을 1.

5km 해요.

그리고 씻고 와 가지고 간단하게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가 9시에 자요.

그런데 인터뷰어가 물어본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금욕적으로 사냐 하니까 하루키가 뭐라고 했냐면 ‘나는 내가 금욕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난 한 번도 내가 금욕을 지향한 적이 없다.

‘그냥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 사는 즐거움을 찾았을 뿐이다.

’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게 이거 다.

’ ‘근데 어쩌다 보니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습니다.

’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하면 계속 글을 씁니까?’ 하니까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썼습니다.

’ 그래요.

글 쓰는 게 재밌으니까.

근데 저는 대부분의 성공하는 사람들이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하고 성공에는 별다른 이유가 있다.

비법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 다 사짜라고 생각해요.

무슨 소리냐면 저도 그렇게 대답을 하거든요.

‘왜 지금 이 일을 하고 계시나요?’ 하면 나도 몰라요.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흘러온 거예요.

제가 지금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그렇게 될지 3~4년 전에도 상상을 못 했어요.

제가 그리던 모습이랑 달라요.

그냥 내가 나한테 주어진 걸 하루하루 하다 보니까 이렇게 흘러온 거지 어떤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에요.

굳이 사후 합리화 하면서 만들어내자면 만들어 낼 수 있죠.

내가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근데 사실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나도 모른다니까.

내가 어떤 결과물이 왜 생겼는지 아예 이유를 몰라요.

그 순간 하는 일에 집중하고 선택 하다보니 쌓이고 쌓여서 지금에 온거죠.

근데 그 과정 상에서 했던 것이 나름 괜찮았어요.

무슨 말하면 제가 개발자 생활을 한 3년 정도 했거든요.

저는 개발자가 왜 됐냐면 그 이미지를 동경 했어요.

개발자라는 이미지가 멋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문과 출신들이 개발자를 하는 경우가 없었는데 중2병이 있어 가지고 남들이 안 하는 걸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코딩을 배웠고요.

대단하시네요.

제가 3년하고 그만뒀거든요.

왜 그만뒀냐면 제가 과정상에서 도저히 의미를 못 찾겠는 거예요.

이미지는 좋았으나 직업 선택을 할 때 사람들이 동경하는 거랑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다르고요.

좋아 보이는 거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랑 다르더라고요.

이게 완전히 다른 거예요.

근데 보통은 직업 선택 할 때 동경하는 걸 선택하거든요.

저거 멋있어 보인다.

근데 그거는 오래 유지가 될 수가 없어요.

근데 저는 어쩌다가 교육을 하고 컨설팅을 하고 내가 공부를 해 가지고 누군가한테 알려주고 맨날 글을 보고 이런 거를 했는데 난 이게 맨날 반복인데 맞는 거예요.

지금 제 모습은 제가 동경하던 이미지가 아니에요.

제가 동경하던 이미지는 천재 해커 같은 거 였어요.

근데 내가 그렇게 되기 위해 내가 해야 되는 거 개발자로서의 과정 그건 어떻게 보면 사물을 탐구하는 일이잖아요.

더 깊게 탐구하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거긴 하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론 그러니까 전 그게 안 맞더라구요.

근데 난 사람을 대하는 일 사람에 더 관심있고 사람을 대하는 일이 맞고 저도 맨날 하루가 똑같거든요.

주 6일 근무 하고 근데 저는 그게 거기서 의미를 찾는 거예요.

어떤 즐거움 직업 선택 할 때 그래서 많은 고민하지 말라 그래요.

그냥 해 봐야 해요.

2~3년은.

근데 네가 그 과정에서 하는 모든 직업은 일정 수준 올라가려면 수없는 반복을 해야 되거든요.

똑같은 걸 계속해야 해요.

근데 그게 할 만하냐? 그걸로 판단을 해야 된다.

결국 해 봐야 되는 거지.

무슨 일을 하든 힘든 과정은 따라올 수밖에 없고 고통은 따라올 수밖에 없는데 그걸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말씀하신 대로 그걸 경험해보지 않으면 사실 모르잖아요.

다들 겉모습만 보고 ‘멋있어 보이네.

’하고 들어갔다가 대충하다가 그게 좋은지 안 좋은지도 애매한 상태에서 이직을 한다거나 다니엘님이 개발자가 안 맞다고 느낀 건 개발자 생활을 나름 최선을 다해서 몰입했기 때문에 ‘아 이건 내가 그리던 모습이 아니다.

’ 라고 깨달으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태도가 좀 필요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뭘 하든 나한테 그냥 주어진 일 있으면 그걸 최선을 다해 보고 몰입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찾을 수 있고 그러면 거기 맞춰서 내 인생의 방향이 내가 원하는 대로 조금씩 조금씩 옮겨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그리지는 않았지만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리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괜찮은 성취를 낼 수 있어요.

여러 가지 그 핏이 맞으면 그렇게 그냥 어찌보면 어떤 목표는 그렇게 달성이 되는 거예요.

따라오는 건데 그것만 그려놓고 이 밑에는 어떤 과정이든 난 상관없어 하다 보면 과정 자체에서 실패나 고통만 경험하게 되고 그래서 더 불만이 생기는 거죠.

그 블라인드 같은 어플만 봐도 회사이름 회사 이름도 산다면서요.

닉네임을.

그런 거만 집착을 하니까 어떤 회사에 들어가도 만족이 안 되죠.

네, 그 연봉 이런 거.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러고 있으니까 또 환경의 영향을 받고 하다 보니까 뭘 해도 만족 못 하는 거예요.

내가 매일매일 반복하는 계속 그거 해서 어떤 의미를 찾으면 그렇게 쌓다 보면 어떻게 운이 좋으면 더 엄청 잘될 수도 있는데 그거 내가 동경하는 거에만 엄청 집중을 하는 거예요.

일상의 가치를 사람들이 많이 깨달아야 될 것 같아요.

지난 팟캐스트에서도 철학 얘기 하면서 우리가 흔히 하는 경험들에서 특별함을 찾아야 된다.

그래야 우리 인생이 좀 더 풍부해지고 풍요로워진다고 얘기했는데 그런게 좀 많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어떤 목표보다는 이런 과정, 하루하루 매일에 대해서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자체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생각들이 필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멀리 있지 않은 거 같아요.

프랑스의 어떤 작가는 뭐라고 표현하냐면 보통 나라의 헌법에 행복 추구권이 있는데 그거부터 잘못됐다고 이야기를 해요.

행복은 원래 추구하는 게 아닌데 그 happiness 라는 어원이 to happen 이거든요.

그게 ‘~가 일어나다.

’라는 뜻이에요.

과정 상에서 그냥 어떤 즐거움 있다면 그게 행복인 거예요.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사실 모든 걸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과정에 집중을 하고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 얘기를 좀 싫어하거든요.

제가 최근에 좀 재밌는 걸 읽어가지고 저는 우리나라가 헬조선이라는 이야기를 엄청 싫어해요.

왜냐하면 그거는 통계적으로 사실이 아니니까 2023년 UN 산하 기관에서 항상 매년 세계 행복 지수에 대해서 연구를 해요.

그러면 2023년 기준으로 1등 핀란드 2등 덴마크 3등 아이슬란드 4등 이스라엘 요즘.

.

.

5등 네덜란드 6등 스웨덴, 7등 노르웨이 거의 다 북유럽 국가들이고 미국은 15위고요.

일본은 47위, 한국이 57위입니다.

근데 이걸 보면 한국이 헬조선이라서 행복지수가 낮을까?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한국의 시스템이 잘못돼서? 빈부격차가 심해서? 돈이 없어서? 이게 다 아니에요.

제가 오늘 다 이야기 한 것과 연결되는데 한국은 돈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정부부터 사회부터 개개인이 덕이 없어서 그래요.

도덕이 없어서 덴마크는 구성원들이 마치 종교처럼 따르는 어떤 법칙 있어요.

문화인데 ‘얀테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얀테의 법칙 한 열 가지 정도 있는데 그거를 정리를 하자면 이거예요.

‘너는 하나도 특별하지 않으니까 잘난 척하지 마.

’ 약간 겸양의 문화죠.

이거는 평범한 자든 부자든 다 똑같아요.

어떤 거를 과시하거나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고 거의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문화예요.

그래도 왜 행복지수가 높냐하면 국가에서 실직을 해도 복지가 되게 좋다고 알려져 있잖아요.

실직을 해도 다 챙겨 주고 하는데 또 마냥 부러워할 또 필요는 없는 게 결국 다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끄집어 내는 거거든요.

세금을 내야 하니까.

걔네들은 부자들만 세금을 많이 내지 않아요.

걔네들은 부자들만 세금을 많이 내지 않아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도 2~30%를 떼가요.

노르웨이는 석유를 발견해서 엄청나게 부자 국가인데도 엄청난 세율을 때리거든요.

근데 어쨌든 다 뺏어 가지고 나중에 나눠 주는 거죠.

그래서 그 친구들은 나중에 노후 걱정은 사실 없는 겁니다.

되게 부러워 보일 수 있지만 그렇게 만든다고 갑자기 모든 소득 계층한테 우리나라가 높은 세율로 걷는다고 하면 꽤 많이 반발할 것 같은데 제가 봤을 때 선진적인 문화인 거죠.

근데 충격적인 게 뭐냐면 북유럽국가 스웨덴을 제외하고 걔네들은 평균적인 저축률이 우리보다 낮고요.

그리고 가계 부채도 우리보다 높아요.

그리고 집을 사기는 커녕 다 월세로 살다 죽어요.

우리나라 보다 안 좋은 지표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거죠.

두 번째로 그 부의 불평등 지수란 게 있어요.

한국이 몇 위일 거 같아요? 양극화가 어느 정도로 심한 지에 대한 지수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되게 심하지 않을까요? 일반적인 생각은 되게 심하다고 느껴지는데 그게 오해인 거죠.

우리나라는 세계 13위입니다.

0.

606인데 1하고 가까워질수록 부의 불평등 지수가 높은 거예요.

우리나라가 13위이고 앞에 있는 건 허수들 이거든요.

그럼 사실상 5~6위 정도 되는거예요.

우리나라는 흔히 말하는 있는 놈들이 다 가진 사회가 아닌 거죠.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북유럽 국가들이 엄청 높아요.

그 지수가 엄청나게 거의 노르웨이 스웨덴 이런 데를 보면은 0.

86에서 0.

9거든요.

근데 한국하고 차이점이 뭐냐하면 첫 번째로 얀테의 법칙에 따라서 서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냥 비교를 하지 않고 과시적인 소비도 하지 않아요.

관심도 없어요.

그래서 스웨덴은 전세계 독서율이 1등이에요.

돈을 쓸 데가 없으니까 책 사서 있는 거예요.

근데 스웨덴의 대형서점에 가면 부자가 되는 법 같은 자기계발서 거의 없어요.

다 인문학 서적인가요.

인문학 서적 이런 것들 돈을 그나마 쓰는데도 저기 자연 가서 캠핑하고 이런 것들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물론 부자들도 과시하지 않아요.

부자들이 부자인 티를 안 내요.

집 안에 들어가면 가구가 몇십억 짜리인데도 겉으로 행색은 너무 허름하고 티를 내지 않아요.

얀테의 법칙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그게 미덕이다 보니까 티를 내지 않고 근데 평범한 사람들도 부자를 보잖아요? 그럼 아예 다른 DNA 라고 생각을 해요.

외계인이야.

외계인이야.

이런 식으로 취급을 하는 거예요.

내 통제 밖의 것이야.

그리고 두 번째는 이게 좀 큰데 이거는 전에 것은 어느 정도 개인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을 하고 왜냐면 비교하는 문화 같은 경우에는 모든 구성원들한테 책임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스스로 비교하는 거 싫다고 하면서 유튜브에서 욕망 자극하고 분노 자극하고 비교 자극하는 거 보면 클릭하는 사람이 몇 십만이면서 자기가 내가 비교 문화가 싫다고 할 자격이 있나? 인스타는 왜 안 지워? 왜 해? 왜 명품이라면 명품 오픈런 왜 하러 가? 어찌보면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건데 안 하는 거잖아요.

자기가 이겨내지 못 하는 거잖아요.

이미 스스로부터 비교 하고 있고 그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비교 문화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 전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데 두 번째는 이거는 사회적 문제예요.

스웨덴이나 북유럽 국가들은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서로에 대한 신뢰/신용이 엄청나게 깊어요.

왜 그러냐면 얘네들이 세금을 막 세율이 그렇게 높아도 내는 이유는 정부에서 정말 청렴하게 노후를 다 책임져 주기 때문입니다.

근데 이 신뢰의 문제는 정말 우리가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굉장히 부족하죠.

한국사회는 서로에 대해 서로 믿지 않습니다.

개인의 문제도 있고 국가의 정치인들의 문제도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아무리 성장을 해도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좀 생각합니다.

신용의 문제, 신뢰의 문제, 그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신뢰해요.

덕이 있는 거죠.

전 그래서 항상 말을 해요.

한국사회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덕이 없어서 불행한 거다.

믿음이 부족한 세상이군요.

이 부분은 개인인 제가 해결책을 낼 수 없는 거지만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주제겠죠.

물론 그 북유럽 국가는 우리보다 인구도 적고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개개인별로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건 분명 있어요.

비교하지 않고 과시적인 소비 하지 않고 이런 것들은 본인부터 해야 되거든요.

내가 이미 거기에 동조하고 있으면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제가 다니엘님 영상에서 봤던 것 중에 현대 요즘 젊은 세대들이 심리적으로 문제를 이유 중에 공통된 신화, 공개적 권위 이런 것들이 없는 것이 좀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 라고 말씀하신 게 있더라고요.

거기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러니까 종교적인 그런 구심점은 이미 죽었다고 하는데 그거에 대한 반발이죠.

저는 이렇게 표현을 해요.

공통의 신화라는 게 ‘아버지상의 부재’예요.

세계관을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제가 정신분석학적인 걸 많이 다루거든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정신의학하고 정신분석학은 달라요.

정신 의학계에서 정신분석학적인 지식을 차용하긴 하지만 정신분석학은 인문학 쪽이에요.

정신의학은 의사들이 쓰는 방법론이고 정신분석학적인 세계관은 좀 비이원론이라서 일단은 세계를 두 가지 성질로 나눠요.

보통은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나누고 어머니적인 것과 아버지적인 것을 나누죠.

과거에 굉장히 권위주의적인 관료주의 사회는 굉장히 아버지적인 것이 강한 사회예요.

강요가 많고 꼭 지켜야 되는 질서가 있고 그게 당연한 게 에리히 프롬 세계관에서 보자면 사랑의 기술 저자인데요.

어머니적인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에요.

그냥 생명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아버지적인 사랑은 훈육, 규율, 조건적인 사랑 아이도 이 두 가지 사랑을 적절히 받았을 때 사회인으로서 클 수 있겠죠.

어머니적인 사랑을 받으며 ‘나는 세상에서 살만한 존재야.

’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

’ 이런 생각을 받을 수 있고 근데 이제 어머니적인 사랑만 받으면 굉장히 철없는 자식으로 크겠죠.

내가 최고인 줄 알고 근데 아버지들은 사회인으로서 거기에 적응하는 법을 보통은 가르치는 거죠.

보통 아버지는 많이 엄하시잖아요.

이 부분은 안 된다고 하고 근데 지금은 되게 재밌는 게 분석 심리학 부성 콤플렉스 파트인가 거기서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굉장히 인문학적인 사유인데 그게 100년 전에 쓴 거예요.

100년 전에 쓴 건데 앞으로 아버지적인 힘이 약해지고 어머니적인 힘이 엄청 강해지면서 ‘아버지 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많이 강해질 것이다.

’ 라는 이야기를 해요.

요즘 사회가 지배하는 방식은 뭐냐면 ‘익명의 권위’랑 ‘공개적인 권위’라는 게 있어요.

요즘 사회는 ‘익명의 권위’가 지배합니다.

‘권위’라는 것 사람들을 지배하는 문화죠.

익명의 권위는 이런 거예요.

어머니들은 자식을 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르려고 할 때 이런 방식을 씁니다.

‘우리 아들 의사될 거지?’ ‘엄마는 아들 믿어.

’ 이런식이죠.

아버지는 어떻게 하냐면 ‘너 그냥 의사해.

’ ‘의사해 돈도 많이 벌고 좋아.

’ 직설적입니다.

그리고 뭔가 잘못을 하면 ‘야 너 이제부터 그거 하지 마.

아니면 다음에 이렇게 할 거야.

’ 이렇게 보상과 처벌을 이용하는데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도덕심을 이용해요.

이거는 뭔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거야.

그릇된 거야.

우회적으로 상대방을 조종으로 하는 거죠.

이건 문화적 흐름과 비슷해요.

여성계에서 문화를 바꾸고자 할 때 이런 거를 많이 씁니다.

보통은 단어를 많이 바꾸죠.

예를 들어 ‘미혼’도 ‘비혼’으로 바꾸고 ‘출산율’도 ‘출생률’로 바꾸고 근데 이게 다 어떻게 하는 거냐면 상대방의 도덕심을 자극해서 통제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딱 들으면 뭔가 굉장히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보이잖아요.

깨어 있는 사람 같고 ‘야 너 그럼 그 단어 쓰면 굉장히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도덕적이지 않은 거야.

’ 근데 남성적인 것으로 표현한다면 직설적으로 말하는 거예요.

‘결혼은 그냥 선택이지 뭐’ 비혼이란 단어를 만들기보다는 ‘야 왜 그런 식으로 말해.

’ 이렇게 말하는 건데 대부분의 문화적 흐름이 요즘은 그런 식으로 가는 거죠.

그러니까 물론 좋은 것도 있어요.

다양성을 존중하고자 하는 그런 흐름도 있지만 요즘은 거의 문화가 어머니적인 여성적인 것으로 많이 대중들 훈육하거나 조종하려고 하는 거죠.

나쁘게 말하면 조종이죠.

그 대신 이거와 더불어서 막 엄청나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됐지만 하나 딱 의지해야 되는 어떤 강력한 권위는 없어졌죠.

삶의 길이 너무 다양한 거예요.

삶의 길이 너무 다양한데 인간은 또 그렇게 되면 또 의존하고 싶은 대상을 필요로 해요.

근데 이제 종교 단체도 약해졌죠.

어찌보면 기독교라는 게 요즘 청년들은 거기에 반발감을 느낄 수 있는데 과거에는 그 종교에서 말하는 원칙이라던가 도덕 법칙들이 인간 삶의 엄청난 지지대가 됐었어요.

근데 그런 게 없어지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것에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기대기 시작했죠.

사실 대체 된 거예요.

종교 대신에.

모든 사람은 사실 종교가 있어요.

어찌보면 신이 없다고 믿는 것도 종교일지도 몰라요.

종교라는 게 별게 아니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를 믿고 있으면 그 믿음에 강도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지는 거지.

신이 없다고 믿는 것도 믿는 거예요.

왜냐면 증명되지 않은 명제니까.

누군가는 모든 사람들은 나름의 뭔가에 기대고 있어요.

근데 그게 지금은 정의 하기가 어렵죠.

그러다보니까 요즘 느낀 게 저는 가끔 농담으로 이런 얘기 하거든요.

전망이 좋은 직업을 물어보면 저는 철학자가 전망이 좋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철학이 있는 사람들 자기만의 원칙이 굉장히 강력한 사람들 왜냐면 사람들이 기댈데가 없어졌으니까 강력한 권위가 없다보니까 기댈 데를 찾는 거예요.

따지고보면 별거 없는 유튜버들 저도 똑같아요.

저 별거 없거든요.

근데 들어 보면 다 영향을 준 아버지상이 부족해요.

근데 들어 보면 다 영향을 준 아버지상이 부족해요.

없어요.

이 세상이 아버지상의 부재로 시달리고 있는 거예요.

근데 어떻게 보면 다양성이 늘어난 거잖아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도 늘어난 건데 그 선택지 중에 내가 강력하게 따라야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걸까요? 그렇죠 그렇죠.

그러니까 또 막상 자유를 주니까 원래 자유에는 항상 저는 사람들이 자유를 또 좋아하잖아요.

표현의 자유 이런 건데 항상 자유에는 개인의 책임이 따라 붙는데 저는 그 단어를 다 표현의 자유를 표현의 책임으로 바꾸고 선택의 자유도 선택의 책임으로 바꾸면 사람들은 자유를 지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또 이제 생각이 바뀌어서 따르고 싶은 뭔가가 있는 거죠.

보면 저도 그래요.

컨설팅 상담 같은 거 하면 우리 MZ세대라는 층은 자유를 바라는 세대가 아니었나? 근데 왜 나한테 답을 정해주기를 그렇게 바라지? 은근히 그냥 정답을 정해주세요.

인간의 본성인 거 같아요.

뭐가 부족하면 또 뭐를 쫓고 이게 너무 강해지면 저는 다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떤 것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결국엔 정반합을 다 거치기 때문에 어떤 것에 극단적으로 갔다가 다시 여기로 갔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조금씩 중앙값을 맞추는 거죠.

저는 어떤 것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데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는 강력한 아버지상이 없다.

그러다 보니까 자꾸 의지할 데를 찾는다.

결국에는 그걸 알아야 돼요.

가장 건전한 방식은 자기 스스로 내면의 아버지상을 만드는 거예요.

경험으로써 물론 롤모델을 참고 하면 좋겠지만 다양성의 시대에 이것도 맞는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고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모든 게 다 맞을 수 있지만 나한테 딱 맞는 무언가가 있을텐데 그걸 찾기가 쉽지 않으니까 또 누군가에게 기대려고 하는 거고 그걸 잘 찾을 수 있다면 정말 행운아일 거예요.

물론 저는 당연히 타인의 대해서는 존중해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개인이 스스로 살려면 그 원칙이 너무 다양해서는 안돼요.

자기만의 뭔가를 정해야죠.

어떻게보면 과거의 종교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시대에는 별 생각없이 그걸 쫓으면서 내 삶의 지침이다 생각하고 살면 됐으니까 오히려 그 시대에는 걱정이 없었을 수도 있겠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종교의 힘도 많이 약해졌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들다 보니까 절대자라기 보다는 내 삶의 기준 나의 삶에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 것들 좀 많이 찾아 헤매는 거 같고 그런 게 없으니까 무기력감에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죠.

그리고 아버지상 뿐만 아니라 제가 항상 말했지만 팟캐스트니까 문제를 삼는 거예요.

어떤 것도 큰 문제를 삼지 않지만 우리나라가 관계주의 문화권이라고 했잖아요.

관계주의 문화권에서는 어떤 게 굉장히 강해지냐면 이모데믹이라는 감정적인 전염 현상이 굉장히 강해져요.

어떤 감정이 한번 일어나기 시작하면 전염이 엄청 빨리 되는 거죠.

‘얘가 저거 안 하니까 나도 안 해.

’ 한국은 원래 그랬어요.

한국은 원래 모든 지표가 이렇게 엄청나게 등락이 심해요.

뭐 지금 출산율 문제라고 하는데 한번 하기 시작하잖아요? 위로 올라가는 거야.

원래 그런 거예요.

근데 이 점에서 우리가 조심해야 될 점이 하나가 있는데 너무 이제 관계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근데 이게 좀 당연 할 수 있는 게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건 많은 지인이 아니라 많은 동료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우리나라는 지인이 너무 많아요.

지인이라고 하면 그냥 되게 사적인 관계인데 업무나, 쟤가 무슨 일 하는지는 사실 잘 몰라 근데 그냥 피상적인 관계로 가득한 거죠.

근데 이거는 우리나라의 밤 문화와도 연결해 볼 수 있는데 인류가 불을 50만 년 전부터 썼습니다.

50만 년 전부터 그 전에는 불이란 게 없었기 때문에 해가 지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예요.

그냥 자야 해요.

캠핑 같은 거 혹시 가보셨어요? 캠핑 가면 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거든요.

굉장히 중요하죠.

해가 지면은 아무 것도 안 보여요.

아무것도 못하고 자야 하는 거야.

그때부터 불을 쓰기 시작하면서 뭐가 생겼냐면 불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가지고 그때 수렵 채집인들이 이제 사교를 하기 시작한 거죠.

근데 되게 신기한 건 그 50만 년 전 이라는 그 시기가 아버지라는 존재가 처음 등장한 시기이기도 해요.

남녀가 그 시간에 교류했을 수도 있죠.

그렇게 역사가 만들어졌군요.

불로서 우리가 사교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3.

5시간 정도 생겼어요.

근데 굉장히 신기하게도 세계에 우리가 보통 평균적으로 하루에 쓰는 사교활동 시간이 3.

5시간이에요.

똑같이 일치하죠? 근데 그거는 서구 쪽이고 한국은 밤 문화가 발달했죠.

3.

5 시간이 아니라 새벽 3~4시까지 놀아요.

그 뜻이 뭐냐면 평균보다 훨씬 많은 관계들이 생긴다는 거예요.

사교활동을 너무 많이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지인들이 너무 많이 생겨요.

회식문화가 발달하다 보니까 거기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면 이건 여러 가지로 연결될 수가 있죠.

쓸데없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니까 비교도 많이 하게 되고 감정적 전염도 많이 되고 얘가 부정적인 정서를 갖고 있으면 다 전염이 돼요.

자기 생각도 없어지고 집단에 맞춰서 생각하게 되는군요.

동료는 없고 지인만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항상 말씀 드려요.

그 인맥 관리라는 걸 할 때 지인은 사실 별로 필요가 없다.

지인은 별로 필요가 없고 동료가 중요하다.

이거는 진화학적으로도 어찌 보면 문제가 있어요.

지인이 너무 많은 건 진화 인류학자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로빈 던바라는 사람이에요.

굉장히 글을 재밌게써요.

학자 중에 글을 재밌게 쓰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데 책들이 재밌어요.

인간은 지금은 200명까지 늘은 거 같은데 평균적으로 아무리 에너지를 많이 써도 유효하게 유의미하게 유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규모가 150명이에요.

근데 그 중에서 그레이드가 나눠지는데 가장 친밀한 다섯 명 가족과 친구 한 명 정도 이게 중심지지 집단이에요.

이게 다섯 명이고 두 번째는 공감 집단이에요.

15명 조금 더 친한 친구 몇 명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 다음이 45명 친밀한 집단 여기서부터 지인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거죠.

근데 사람은요, 중심 지지집단과 공감 집단 앞에 있는 가장 친밀한 부류에 에너지를 70% 정도 써요.

원래 그게 정상이에요.

그게 정상이고 우리가 최대한 스트레스를 안 받는 범주에서 그렇게 진화한 건데 우리는 그런 피상적인 관계 너무 많으니까 오히려 나의 친한 사람들한테 못 쓰고 다른 데다가, 지인한테 70%를 쓰는 거지.

그러니까 행복할 수가 없죠.

피해만 많이 봐.

이런 관계주의 문화권의 가장 큰 폐단이 그거예요.

비교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면 내가 가진 것들이 원래라면 행복하게 느꼈어야 하는데 비교를 하다 보면 ‘내가 더 부족한가? 더 분발해야겠네.

’ 라는 생각도 들고 또는 내가 삶의 기준으로 삼고 싶은 것들을 내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집단에서 생활하다 보면 그걸 또 외부에서 찾게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걸 따라서 생각하다 보니까 내 기준도 없어지고 연쇄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 같네요.

진화학적인 본능하고 인간으로서 사회가 진보하잖아요.

그 방향이 달라서 거든요.

정확히는 진화학적인 본능이 진보를 못 따라가서 그래요.

현대인들이 비만을 겪게 되는 이유도 이것과 동일해요.

예를 들어 진화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단거를 추구하는 거는 본능적인 거예요.

근데 그게 왜 생겼냐? 수렵 채집 시절에는 단 걸 추구하는 게 유익했어요.

왜? 단 거를 먹을 수 있는 건 과일 밖에 없었고요.

기회도 많이 없으니까.

기회도 많이 없어요.

어쩌다가 사과를 발견하면 실컷 먹는 거야.

그러니까 무조건 단 걸 추구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간헐적으로 먹을 수 있고 건강한 자연식만 먹을 수 있을 때는 단 걸 추구하는 게 너무 유익했던 거죠.

근데 본능은 쉽게 변하지가 않아요.

왜냐면 진화의 단위는 수 천만년, 수백만 년이니까 그런데 진보, 사회 변화는 엄청 빠르게 일어나죠.

근데 지금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단 게 어때요? 도너츠, 초콜릿, 사탕.

그리고 너무 싸 손만 뻗으면 다 먹을 수 있어.

그게 도움이 안 되는 거죠.

사실 연락 문제도 똑같거든요.

인간이 애착감을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는 건 실제 만남이에요.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는 실제 만남이에요.

근데 지금 우리 어때요? 연락할 때? 맨날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씩 연락을 하죠.

카톡 몇 번 연락이 안 되면 애정이 식은 거 그것도 본능하고 다른 거예요.

이게 관계가 살쪄 있는 거죠.

스마트폰 연락은 도너츠, 초콜릿이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겠어요? 가끔 먹어야겠죠.

가끔 먹으면 도움이 되는 건데 그걸 계속 먹고 있으니까 현대인들 관계가 엄청 살쪄 있는 거죠.

근데 한국 어때요? SNS 사용율이 높아요.

세계에서 비교하면 관계도 살쪄 있는 거지.

그 신체적 비만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다 살쪄 있는 거예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이 뭔가 절대적인 경제지표나 불행할 이유가 없는데 이런 여러 가지 제가 설명한 이런 것 때문에 사람들이 사실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근데 어떻게 보면 자기 팔자 자기가 꼬는 것도 있어요.

사회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이런 환경 때문에 개인들이 영향을 받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당연한 건데, 저는 그 실존주의 정신분석학을 굉장히 좋아하고 제가 어떤 강의를 하거나 교육을 할 떄 거의 그 관점에서 해요.

그리고 한국에서 특히 유명한 조던 피터슨도 실존주의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을 대부분 갖고 있어요.

그가 인용하는 거부터 다 해 가지고 결국 개인의 책임이 50%예요.

당연히 환경에 영향을 받지 근데 거기서 내가 더 배우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은 엄청나게 필요한 거죠.

예를 들어 저는 핸드폰이 저기 있는데 구글 뉴스 기사에 언제부턴가 알고리즘이 자극적인 게 하나도 안 뜨고 책 추천 이런 거밖에 안 떠요.

제가 그거를 하려고 어떻게 했냐? 2~3년 동안 재미없는 것만 봤어요.

요즘은 다 알고리즘이 통합 돼서 내가 보는 것만 띄워 주잖아요.

그 짓을 2~3년을 하니까 얘가 이상한 걸 안 띄워 주고 내 관심사만 띄워주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건강해지려고 2년 동안 노력을 한 거죠.

그냥 안 봐요.

안 보면 얘가 안 띄워줘요.

그걸 계속 뛰워 준 이유는 네가 계속 보기 때문이야.

왜 그거 계속 쳐다보고 있냐는 거죠.

그게 싫다면서 과거에 비해서 그런 노력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지는 거 같긴 해요.

워낙 그런 잡음들이 많고 거대 기업에서 알고리즘으로 그들도 돈을 많이 벌려면 그걸로 우릴 유혹해야 그들도 돈을 벌 수 있는데 우리 개인이 힘든 노력을 해야 하는 건 사실인 거 같고 힘든 시기에 다들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까 진화 심리학 말씀을 하셔가지고 지금 현대인들이 공허함이나 무기력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데 본능적인 관점에서 우리 인간들은 어떨 때 공허하고 무기력감을 느끼는지랑 최근 현대인들이 느끼고 있는 거랑 연결될 여지가 있는지 이런 건 있어요.

남녀 모두 어떤 본능적인 부분이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오히려 사회가 너무 진보하면서 굉장히 인간이 동물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당연히 누려야 되는 것들 진화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가 지금 모든 행하는 이런 것들이 생존과 번식 때문인 거거든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거죠.

예를 들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도 이게 결국 나의 생존에 도움이 되니까 그리고 예를 들어 오늘 마이를 입을 때 한 두세 개 정도 고민하다가 입었는데 이것도 내 번식에 도움이 되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죠.

1차 원인은 아니지만 가장 근원적인 원인으로 봤을 때 그게 전제인 거니까 다윈주의적인 관점에서는.

근데 지표들이 그렇잖아요.

출산율도 굉장히 낮고 혼인율도 낮아지고 연애도 안 한대 다 안하죠.

근데 이거는 사실 당연한 거예요.

당연한 건데 이거는 뭐 제가 방송이나 여러 팟캐스트에서 이야기한 적 있는데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남자쪽이 힘든 이유는 일부일처제의 방식이 깨졌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굳게 믿잖아요.

지금 이 제도 상으로 결혼이 일부일처제고 그러다 보니까 연애도 일부일처제 방식으로 하고요.

왜냐면 결혼을 전제하고 만나다 보니까 보통 연애도 일대일로 하고 연애는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욕을 먹죠.

뭐 3대 1로 만나면 도덕적 지탄을 받죠.

사실 많은 진화 전문가들은 지금 일부일처제가 아니라는 거죠.

이 방식을 연쇄적인 일부일처제라고 하거든요.

그게 뭐냐면 ‘일부일처제가 왜 생겼는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잖아요.

과거에 오랜기간동안 사회는 남자들이 지배해 왔고 사회의 외부적인 일들은 그리고 남자들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기를 많은 여자를 거느리길 원한다고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어느 정도 사실이고요.

그러면 남자들이 지배했고 남자들은 많은 여자를 거느리길 원하면 일부다처제 사회가 돼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 일부일처제의 역사는 엄청나게 길어요.

생각보다 지금도 뭐 이슬람 국가가 아니면 그걸 고수하려고 하고 왜 그럴까 생각을 해 보면 일부일처제는 남녀간의 평등 이런 게 문제가 아니라 남자들간의 평등을 위한 협정이에요.

상류층 남성과 중하위층 남자들 사이 왜냐하면 일부다처제 국가가 되면 아주 다양한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한번 생각해 봅시다.

지금 일부일처제 국가예요.

남자 100명 하고 여자 100명 이렇게 있어요.

조건을 단순화 해봅시다.

왜냐면 일반화를 해야 하니까 100등인 여성은 100등인 남성과 결혼해야 해.

순위가 있다면 1등인 남성은 1등인 여성과 결혼 해야 해.

이렇게 원칙이 있다고 생각해 보죠.

근데 갑자기 이제 결혼하기 전에 일부다처제가 합법화 됐어.

그럼 어떻게되냐? 여성들도 일부다처제 국가가 된다고 해서 뭐 이런 말이 있잖아요.

평범한 남성이 남편이 되는 거보다 ‘강동원의 986번째 와이프가 되겠다.

’ 그건 사실이 아니고요.

모든 여성이 그렇지는 않아요.

근데 소수의 여성은 그렇게 생각을 해요.

왜냐면 나랑 똑같은 수준의 남편의 와이프가 되는 거 보다 ‘차라리 1등, 3등쯤 되는 남자의 두 번째 와이프가 될래.

’라고 생각하는 여성이 100명 중에 10명만 생겨도 10명이 갑자기 배신을 때리는 거야.

근데 꽤 많은 여성들이 그래도 이 사람 매력 있고 그냥 일대일로 만날래 하는 여성들이 많아요.

진화학적으로도 사람들이 진화학적 지식을 너무 왜곡되게 알아서 그렇지 어쨌든 남자보다는 여자가 수요가 많다는 거죠.

그것에 대한 10명이 배신을 하면 어떻게 되냐? 밑에 있는 10명이 위에 있는 남자들의 두 번째 와이프가 되면 일단은 우리가 그림을 한번 그려봅시다.

맨 꼴찌가 아니라 4~50등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쳐 볼게요.

그러면 밑에 있는 60등에서 100등 되는 여성이 만날 수 있는 남자의 수준이 올라가요.

주루룩 올라가겠죠.

그리고 밑에 있는 남자 10명은 짝을 못 찾아.

얘네들이 여기 있었어야 하는데 위로 올라가.

그러면 이게 조금 더 심화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많은 남성들이 내가 원래 만나야 하는 수준의 여성보다 낮은 급의 여성을 만나야 하고 꽤 많은 남성들은 짝을 아예 못 찾아요.

그러면 누군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대다수의 동물 중에서 수컷 5%만 짝짓기를 할 수 있는데 그게 뭐가 문제야? 문제가 되죠.

왜냐? 우리가 동물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인간 남성은 수컷이에요.

수컷은 대다수의 동물 중에서 암컷보다 폭력적입니다.

근데 왜 그게 폭력적으로 진화했냐면 남자들끼리 싸우려고 폭력적으로 진화한 게 아니에요.

번식 때문에 그래요.

짝짓기 때문에 인간도 똑같아요.

인간도 동물이니까 근데 그 엄청난 폭력성이 인류의 문명 사회에서는 도움이 안 되겠죠.

근데 그 수컷의 폭력성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배우자입니다.

배우자 한 명을 옆에다 붙여 주면 얘네들이 자식도 낳고 가정을 이루면 폭력성이 완화돼요.

그 가정을 책임지려 하고 그럼 사회 구성원 전체에 굉장히 좋은 영향을 주겠죠.

짝을 못 찾은 수컷들의 폭력성은 어마어마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칼부림 같은 사건 있잖아요.

제가 그 영상을 올린 다음에 칼부림 일어났는데 그때 댓글 엄청 달렸어요.

‘다니엘님 말이 맞는 거 같은데?’ 근데 그게 굉장히 그 원초적인 곳으로 들어가면 그 사람도 분명히 어떤 그런 부분에서 결핍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아요.

아예 번식을 할 수 없는 수컷들한테 도덕이나 윤리는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나마 우리가 지금 안전한 치안이 좋은 사회니까 그 정도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서로 죽이고 난리도 아니었을 겁니다.

근데 정말 많은 인간 수컷들이 폭력성으로 날뛰는 그런 디스토피아적 사회에서 살고 싶겠어요? 여성들도 그걸 원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상류층들이 협약을 맺은 거죠.

안 되겠다.

이건 우리가 독식해서는 이 사회가 유지가 안 되겠다 해서 규약이 맺어진 게 일부일처제 사회입니다.

한때 우리 기성세대는 결혼문화가 굉장히 보수적이었잖아요.

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드라마를 보면 29살 여성을 노처녀라고 해요.

요즘은 결혼 일찍 한 건데 근데 옛날에는 더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남자들도 똑같았어요.

일정 수준의 나이가 되면 부모가 점지해주는 짝이랑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게 일반적이었죠.

일찍 결혼을 해야 하고 그리고 정조관념도 굉장히 강했어요.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거겠지만 남성 또한 정조를 지켰어야 해요.

여성한테 조금 더 잣대가 심하긴 했지만.

근데 그런 모든 억압적인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일부일처제가 성립을 해요.

무슨 소리냐? 지금 현재는 자유연애 관념이 강하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엄청나게 잘 난 상류층 남성이라고 생각을 해 볼게요.

이렇게 자유연애 관념이 강하고 정조관념이 없고 부모가 맺어준 짝이랑 결혼하는 게 이상해 이런 사회에서는 저는 사실 꽤 늦은 나이까지 결혼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 어찌보면 진화학적으로 남성들이 바라는 거는 여성과의 성관계고 결혼을 하지 않아도 마음껏 성관계를 할 수 있거든 근데 내가 책임없이 쾌락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데 뭐하러 결혼하겠어요.

남자 연예인들 보세요.

결혼 늦게 하는 이유가 있어요.

상류층 남성일수록 결혼할 이유가 없고 여성들은 진화학적으로 번식기를 따졌을 때 20에서 25년이에요.

수많은 젊은 여성들의 번식기를 다 뺏어 가면서 다른 남성들의 기회를 다 빼았죠.

내가 40살에 결혼한다고 생각해 봤을 때 정말 잘난 남성이라면 40살에 결혼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다가 이제 완전히 내가 늙기 전에 딱 결혼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차피 내가 다른 여자를 만날 때는 다른 남자들은 그 기회를 놓치는 거니까 이게 일부다처제 사회에 가깝다는 거죠.

이런 보수적인 질서가 없으면 그러니까 일부일처제가 어느 정도 무너졌다는 거예요.

근데 제가 아까 말했죠.

일부다처제 사회에서는 디스토피아가 된다.

그래서 지금 거의, 특히 미국은 디스토피아 세계에 가까워졌다.

라는 분석이 많고 남성들이 불만이 엄청나게 많아진 거죠.

더 폭력적이려고 하고 왜냐면 기회가 없으니까 근데 지금 이 사회가 어느 정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유튜브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어요.

남자들이 얼마나 화나있는지 저는 그들을 이해하거든요.

그냥 역학상 당연한 거고 근데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되게 행복한가? 하면은 저는 아니라는 거죠.

언제부턴가 여성정책을 굉장히 활발하게 펼칩니다.

여성한테 혜택을 많이 주고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여성들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 게 저는 흔하게 말하는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동정심이 많아요.

그 이유가 뭐냐면 그들 중 90%는 자기 의견이나 생각이 아니에요.

시대 문화에 그냥 휩쓸린 거예요.

근데 그럼으로써 어떻게 됐냐? 내가 삶에서 어머니나 결혼 와이프로서의 선택지는 그냥 지워져 버린 겁니다.

어찌보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굉장히 좋은 행복 괜찮은 행복 중 하나인데 그냥 지워 버린 거예요.

그래서 여성들의 주체성이나 이런 것들을 엄청 강조하지만 사실 그들이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봐야죠.

모든 청년 세대들은 자기들이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대부분은 그게 자기 의견이 아니에요.

왜냐면 모든 청년 세대들은 그 전에 있던 보수적인 보수가 원래의 질서거든요.

사실 정치 성향은 좌우로 하는게 맞고 그냥 원래 있던 질서가 보수예요.

우리도 MZ 세대들도 나중에 보수가 됩니다.

원래 기존의 질서가 되니까 그거에 반하는 걸 하고 싶어 한단 말이죠.

그리고 인간이 되게 웃긴 게 50살이 넘어가면 자신이 행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를 하기 시작해요.

3배에서 5배 정도 어머니들은 이제 뭐라고 해요? 옛날 세대들은 자기가 누리는 행복이 분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식들한테는 자기처럼 살지 말라 그래요.

왜냐면 내가 못 했던 것이 생각이 나니까.

결국에는 거의 다 주입당한 거죠.

어떤 하나 선택지를 그냥 버리게 된 거예요.

전 그거에 대한 동정심이 있는 거예요.

진짜 주체적으로 산다는 건 뭐냐면요.

분석 심리학자들은 개인주의라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면 어떻게 표현하냐면 여러 가지 꽃밭에서 꽃밭에서 나는 향기를 다 맡은 다음에 거기서 몇 개를 꺾어와서 집에서 예쁘게 키우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우리가 진짜 주체적으로 살려면 우리가 지금 공유하고 있는 청년들이 공유하고 있는 시대 문화 말고도 그 전에 있던 문화유산들 보수적인 문화들을 어떤 감정도 없이 다 받아 들인 다음에 그 중에서 선택하는 게 진짜 주체적인 거예요.

선택지가 abcd가 다 있는 상태에서 고르는 게 주체적인 거지 나머지 abc는 잘못된 거라고 밀쳐놓고 선택지가 d밖에 없는데 d를 선택하는 건 주체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세뇌 당한 거죠.

그럴 수 있겠네요.

저는 많은 청년들이 그런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게 나한테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택지가 좁혀진 상황에서 내가 선택해야 하니까 제가 그래서 방송에서 주로 빅토리아시대의 문화나 그런 걸 가르치는 게 그 용도예요.

어떤 문화도 우열이 없다니까요.

그 시대에 적절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거예요.

옛날에 가부장적인 문화도 우열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아니고 선악도 없어요.

그때 한동안은 그게 굉장히 효과적인 문화였기 때문에 했던 거예요.

근데 그런 거에 대해서 이미 감정적으로 나쁘다고 하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권에 대해서 이미 지워 버리고 시작하는 거죠.

저도 어렸을 때부터 반항심이 강하고 기존의 질서에 대해서 그러다 보니까 생각해 보니까 나는 감정적으로 이미 그 전 문화를 배제한 사람인 거예요.

근데 요즘 대다수가 또 ‘옛날 건 나쁜거야.

’ 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니까 그게 나한테는 아닐 수도 있는데 ‘아니야! 그걸 선택하면 나는 너무 보수적이고’ ‘꼰대 같고 옛날 사람 같고’ ‘이건 틀린 거 같은데?’ 라고 제외해 버리니까 제가 이런 강의를 하니까 저한테 어떤 이야기를 했냐면 자기는 사실 생각하면 어렸을 때 그냥 어떤 남자를 내조하고 가정적으로 사는 게 꿈이었는데 옆에 친구들이 그게 잘못된 거라고 하다 보니까 그거를 지향하지 않았다.

근데 생각해 보면 그게 누구보다 자유롭지 못하게 사는 모습이 거 같아요.

내가 어떤 가정을 이루면서 사는 게 누가 봤을 땐 되게 자유롭지 못한 모습같지만 어떤 것에 그냥 안정을 추구 하면서 사는 사람이 안정을 추구하는 것, 그게 자유인 거예요.

사람마다 성향은 다르니까 자유는 겉으로는 모습하고 상관이 없는 거야.

한용운씨의 시에 이런 게 있거든요.

복종하고 싶은 대상이 있어서 복종하는 건 누구보다 자유인의 모습이라고 제가 그 구절을 되게 좋아해요.

우리가 항상 개인주의나 주체성을 추구하잖아요.

그래서 개인주의나 주체성이 뭔지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전 그런 면에 있어서 절대 젊은 여성들이 엄청난 수혜자라고 보기 힘들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지금 당장 표면적으로 봤을 땐 모르겠지만 나중에 봤을 때 그게 진짜 선택권을 많이 준 행위인가 그럼 감정에서 극복을 하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남자들도 무기력하고 여자들도 불행하고 모두가 힘들어하는 스스로 생각하려고 해야 해요.

스스로 생각하려고 해야 하고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근데 인간이 지금 지구를 지배하고 포식자잖아요.

‘인간이 왜 지구를 지배하게 됐는가?’라고 하면 그 학자들이 이야기를 하는 게 대다수는 우연이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게 있었다는 거예요.

지구를 지배하는 생명체는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그러니까 인간은 결국 뇌 때문에 지구를 지배하게 된 거예요.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자기 본능을 절제할 줄 아는 생명체가 어찌 됐든 살아남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그냥 앉아 가지고 사회가 변하기를 바래봤자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어요.

내가 더 다른 곳에 관심 갖고 개인 스스로도 정말 다양한 걸 배우고 감정 없이 받아들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거예요.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조금이라도 생기는 겁니다.

다양한 걸 공부하고 다양한 걸 경험하면서 그 과정에서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인가 원하지 않는 것인가 내가 내 삶에 절대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을 계속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끝으로 요즘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근데 저도 그 또래 사람들이라서 제가 막상 판 깔아주면 말 못 하겠더라고요.

설교 하라고 막상 하면 할 수 없는 다 힘든 시기에 살고 있고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니체라는 철학자가 위버멘쉬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그 니체의 저서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그때 충코님도 이야기를 했지만 위버멘쉬 개념이 철인이나 이런 개념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인간은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처음엔 낙타, 두번째 사자, 마지막에 아이거든요.

아이가 뭐냐면 니체같은 최고의 철학자는 글로써 증명되는 게 아니라 가장 많이 웃는 철학자가 최고의 철학자 라는 말을 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저는 어떤 미디어를 바라볼 때 심리적 원근감을 가지라고 하거든요.

어떤 문제들이 엄청난 문제인 거 같지만 우리가 어떤 원근감을 가지고 바라보면 미학의 세계에서 원근감이라고 하면 가까이 있는 건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거는 작게 보이는 거 잖아요.

미디어나 어떤 정보를 보는 것도 똑같아요.

우리가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면 되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도 생각해 보면 굉장히 흔한 문제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고 인류 대다수가 보편적으로 직면해 있는 문제들이다.

어떤 문제도 사실 크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거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성장하려고 노력한다면 전 누구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만 해도 내 주체성을 가지고 내 삶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힘들다는 것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걸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긴 시간 너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좋은 기회가 되면 초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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