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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외로웠던 천재 니체: 고독 속 빛나는 삶의 지혜 (오디오북)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니체, 세상의 끝에서 혼자였던 남자 이야기

사람은 갑자기 무너지는 게 아니래.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금이 가기 시작하는 거지. 그게 편지 한 통 때문일 수도 있고, 거절 한 번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린 시절 어느 조용한 오후 때문일 수도 있어.

오늘 이야기는 세상의 끝에 서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끝에서도 결국 혼자였던 한 남자, 프리드리히 니체에 대한 거야. 살아있을 땐 거의 아무도 그의 책을 읽어주지 않았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모두 버림받았고, 마지막 11년은 자기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살았대.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그의 글을 읽으며 울고, 다시 힘을 내고 있어.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버지의 죽음, 세상이 무너진 다섯 살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 아버지는 마을 목사였고, 부드럽고 조용한 분이었지. 피아노와 책, 가족을 사랑했고, 니체가 자신처럼 조용하고 경건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어.

하지만 평범했던 풍경은 너무 일찍 무너졌어. 니체가 다섯 살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자기 병에 걸렸고 정신도 점점 흐려졌지. 의사들은 '뇌 연화증'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으로 치면 뇌출혈이나 뇌종양 같은 병이었대. 결국 아버지는 3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다섯 살 니체는 아버지 관이 교회 마당으로 가는 걸 지켜봤어. 그 종소리를 평생 잊지 못했대.

그해 1월, 어린 남동생마저 아버지 뒤를 따라갔어. 한 해 사이에 아버지와 남동생을 모두 잃은 다섯 살 니체에게 세상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지. 그는 나중에 이렇게 썼어. "나의 가장 이른 기억은 죽음이었다."

집에는 엄마, 할머니, 두 이모, 여동생만 남았어. 모두 니체를 사랑했지만, 아무도 그의 질문에 답해주지 못했지. "왜 사람은 죽는 걸까?",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신은 정말 있을까?"

니체는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지 않았어. 혼자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고, 오래 생각했지. 사람들은 그를 '작은 목사'라고 불렀지만, 그 작은 목사의 마음속엔 이미 신에 대한 의심이 싹트고 있었다는 걸 아무도 몰랐어.

천재라는 이름의 무게

1858년, 14살 니체는 독일 최고의 명문 기숙학교 '슐푸르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어. 아침 5시 기상, 찬물 세수, 라틴어 미사, 하루 10시간 넘는 고전어 수업… 엄격하고 차가웠지만, 니체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지. 그리스어, 라틴어, 음악, 시… 뭐든 잘했거든.

선생님들은 "저 아이는 다르다. 언젠가 무언가가 될 것이다"라고 수긍거렸지만, 친구는 많지 않았어. 딱 세 명의 친구와 '게르마니아'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 시와 음악을 나눴지.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이미 의심하고 있었어. 신을, 아버지의 신을, 세상을 지탱한다고 믿었던 모든 질서를. 그는 공책 한구석에 이렇게 적었어.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모든 것을 언젠가 나는 스스로 부숴야 할 것이다."

1864년, 니체는 본 대학교에 입학했어. 어머니 바람대로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과 고전 문헌학을 공부했지. 하지만 그해 부활절, 집에 돌아온 니체는 어머니에게 말했어. "어머니, 저는 더 이상 성찬식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어머니는 울었고, 여동생은 소리쳤지만 니체의 결심은 돌이킬 수 없었어. 그는 신학을 버리고 오직 고전 문헌학에만 몰두했지.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 당대 최고의 문헌학자 리츨 교수의 가르침을 받던 중, 낡은 헌책방에서 그의 인생을 뒤흔드는 책을 발견했어.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그 책을 읽은 밤, 니체는 잠들지 못했어. "세계는 의지다. 그리고 그 의지는 고통이다." 쇼펜하우어의 문장은 니체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이었지. 그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어. "나는 그 책에서 나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날 이후 그의 눈빛은 달라졌어. 그는 이제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답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 된 거야. 그리고 1869년, 아직 박사 학위도 없었고 논문 심사도 받기 전이었는데도, 스위스 바젤 대학교에서 고전 문헌학 정교수 자리가 제안됐어. 24살, 독일 대학 역사상 가장 젊은 정교수였지.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불렀지만, 그는 알고 있었어. 천재라는 말은 언제나 외로움과 함께 온다는 것을.

취임 강의가 끝난 밤, 니체는 낯선 도시의 하숙방으로 돌아왔어. 창밖으로 라인강이 흐르고 있었지. 그는 촛불을 켜고 텅 빈 방을 바라보며 생각했어.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다."

바그너, 그리고 첫 번째 신

1868년 11월, 라이프치히의 한 저택에서 니체는 리하르트 바그너를 만났어. 당시 유럽 최고의 음악가였지. 니체보다 31살 많았고, 이미 전 세계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어. 바그너 앞에서 니체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지. 바그너의 음악은 니체가 어린 시절부터 갈망했던 모든 것이었거든. 광기, 황홀, 비극, 생명의 근원…

바그너는 긴 대화 끝에 니체를 바라보며 말했어. "나의 젊은 친구여, 당신에게서 나는 나 자신을 본다." 그 한마디에 니체는 처음으로 생각했어.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 후 몇 년간 니체는 주말마다 스위스의 루체른에 있는 바그너의 집을 찾아갔어. 바그너와 그의 아내 코지마(리스트의 딸이었던)와 함께 음악을 듣고 철학을 논하며 긴 저녁을 보냈지. 코지마는 니체의 이름을 일기장에 수도 없이 적었어. "오늘도 우리의 젊은 친구가 왔다. 그는 우리 집의 태양이다." 니체는 그곳을 평생에 한 번 얻은 고향이라 생각했고, '지상의 낙원'이라고 불렀어. 그는 편지에 썼지. "나는 이곳에서만 온전히 살아 있다. 그 밖에 모든 시간은 그림자일 뿐이다."

1872년, 그는 바그너에게 헌정하는 첫 번째 책 '비극의 탄생'을 출판했어. 그 책에서 그는 선언했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질서와 광기, 꿈과 도취. 이 두 힘이 부딪히는 곳에서 예술은 태어난다고. 그는 믿었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었기에 비극을 만들어 냈다고. 삶을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용기, 그것이 위대함이라고.

하지만 학계는 냉혹했어. "이것은 학문이 아니다. 몽상이다." 당시 가장 권위 있던 문헌학자 빌라모비츠-멜렌도르프는 조롱하는 논문으로 니체를 공격했지. 그의 강의실에는 학생이 두 명만 남았어. 니체는 그때 깨달았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언제나 혼자가 된다는 것을. 그는 노트했어.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시대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시대를 절대 사랑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철학자의 운명이다."

그리고 1876년, 바그너가 평생을 바쳐 준비한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초연이 열렸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귀족, 왕, 부호들… 갓비싼 드레스, 향수 냄새, 헛된 박수 소리…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니체는 숨이 막혔어. '이것이 내가 믿었던 그 사람인가? 이 사람이 내가 사랑했던 음악을 만든 사람인가?'

바그너는 어느새 황제의 품에 안긴 예술가가 되어 있었어. 독일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그리고 기독교적 구원의 그림자… 그의 새로운 오페라 '파르치팔'에는 성배와 십자가가 넘쳐났지. 그것은 젊은 날 니체가 사랑했던 디오니소스적인 바그너와는 정반대의 얼굴이었어. 니체는 견딜 수가 없었어. 그는 축제 중간에 조용히 짐을 쌌고, 숲속의 작은 마을로 사라졌어. 그곳에서 그는 홀로 산책하며 노트했지. "내가 사랑했던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에게 투사한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그의 글은 변하기 시작했어. 1878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바그너와의 결별 선언이었어. 책은 감정적이지 않았어. 차갑고 건조하고, 때로는 잔인할 만큼 명료했지. 그는 그 책을 바그너 부부에게 보냈지만, 바그너는 단 한 번도 답장하지 않았어. 코지마의 일기에서도 니체의 이름은 그날 이후 사라졌지. 그들의 우정은 그렇게 끝났어. 훗날 니체는 씁니다. "사람은 한번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에게서 멀어질 때, 그 이후로는 아무도 쉽게 믿지 못하게 된다."

병, 그리고 떠도는 자

1879년, 니체의 몸은 완전히 무너졌어. 끔찍한 편두통은 사흘씩 이어졌고, 한쪽 눈의 시력은 거의 사라졌으며, 다른 눈도 빠르게 흐려지고 있었지. 구토, 오한, 온몸의 통증… 어떤 날은 20시간을 누워 있어도 나아지지 않았대.

일부 학자들은 그의 병의 원인을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 위생병으로 참전했을 때 걸렸던 이질과 디프테리아에서 찾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매독 초기 감염을 이야기하기도 해. 진실은 오늘날까지도 확실하지 않아. 확실한 것은 하나, 그는 35살의 나이에 교수직을 내려놓았다는 것. 10년간 서 있던 강단에서 스스로 내려왔다는 것.

대학은 그에게 약간의 연금을 허락했지만, 많지 않은 돈이었어. 그는 그 돈으로 앞으로 10년을 살아가야 했지. 이후 10년, 니체는 집이 없는 사람이었어. 여름에는 스위스의 고산 마을, 겨울에는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떠돌아다녔지. 하숙방, 값싼 식당, 낡은 외투, 양말 한 켤레를 몇 번이고 기워 신고… 종이값을 아끼기 위해 연필을 끝까지 짧게 썼대.

하지만 바로 그 고독 속에서 그는 가장 빛나는 글들을 썼어. '즐거운 학문', '아침놀'. 그의 문장은 점점 가볍고 투명해졌지. 마치 알프스의 공기처럼.

1881년 8월, 실스마리아에서 산책하던 니체는 피라미드 모양의 거대한 바위 앞에서 걸음을 멈췄어.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벼락처럼 내려왔지. 영원 회귀. '모든 순간은 이 모습 그대로 끝없이 다시 돌아온다. 당신이 지금 살아내고 있는 이 한 순간이 똑같이 무한히 반복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할 수 있는가? 지금 이 고독을, 이 병을, 이 실패를 무한히 반복해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 니체는 몸을 떨었어.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속삭였지.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그 말은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기도였어. 앞으로 다가올 모든 상처를 미리 끌어안으려는 한 인간의 결심이었지.

루 살로메, 단 한 번의 봄

1882년 4월, 로마에서 니체는 한 젊은 여자를 소개받았어. 루 살로메. 러시아 출신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비범하다고 소문난 여성이었지. 그녀는 니체가 평생 꿈꿔왔던 모든 것이었어. 시성, 자유, 그리고 두려움 없는 정신.

니체는 자신의 친구 파울 레와 함께 그녀를 만났어. 세 사람은 긴 대화를 나눴지. 철학과 종교, 결혼과 자유에 대하여. 헤어지는 길에 니체는 살로메에게 말했어. "이 사람이네. 내가 찾던 사람이." 그는 그녀에게 말했지. "우리가 어느 별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웃었고, 그 웃음을 니체는 평생 잊지 못했어.

그해 여름, 니체와 살로메는 단둘이 소나무와 포도나무가 늘어선 숲길을 걸으며 오래도록 이야기했어. 그날 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아무도 몰라. 살로메는 그 순간을 평생 비밀로 간직했고, 니체는 훗날 그 산책을 '내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꿈'이라고 불렀어.

그는 곧 청혼했어. 처음에는 파울 레를 통해 살로메에게 전해 달라고 했지. "나는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 살로메의 대답은 '아니요'였어. 니체는 물러서지 않았어. 그는 직접 루체른까지 달려가 그녀 앞에 섰고, 호숫가의 작은 공원에서 다시 한번 청원했어. 그녀는 부드럽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지. "아니요. 저는 결혼하지 않습니다. 누구와도."

그해 겨울, 그들은 독일의 한 사진관에서 사진을 한 장 남겼어. 니체와 파울 레가 마차를 끄는 자세로 매달려 있고, 살로메는 그 마차 위에 작은 채찍을 들고 올라앉아 있는 사진. 그것은 살로메의 장난스러운 연출이었지. 세 사람은 그 사진을 찍으며 분명 크게 웃었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사진을 들여다본 니체는 묻지 못했어. 그 마차 위에 앉아 있는 것은 자신을 이끌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결코 붙잡지 못할 자유였기 때문이야.

훗날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에 이런 문장을 남겼어. "여자에게 갈 때는 채찍을 잊지 말라." 많은 사람이 그 문장을 여성 혐오라고 읽었지만, 어떤 이들은 그 문장에서 저 사진의 쓰라린 그림자를 읽었지.

그 겨울, 라이프치히에서 니체는 마지막으로 살로메에게 편지를 썼어. 열 장, 스무 장… 그는 썼다가 찢고, 썼다가 찢었지. 그녀는 답하지 않았어. 그는 방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갔어. 여동생 엘리자베스는 누이의 이름을 걸고 살로메를 모욕했어. "그런 여자 때문에 우리 가문을 더럽히지 말아라." 어머니는 울었어. "내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이 꼴을 보지 않으셨을 텐데."

그 순간 니체는 깨달았어. 자신의 가족마저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어머니와 누이 모두에게서 돌아섰고, 혼자, 완전히 혼자가 되었어. 그는 일기했어. "나는 더 이상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나의 혀는 지쳤고, 나의 심장은 너무 오래 뛰었다." 그 겨울, 그는 이가 다 빠진 듯 웃는 법을 잊었어.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어. 미친 사람처럼, 혹은 미치지 않기 위해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3년 2월,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한 여관. 니체는 열흘 만에 한 권의 책을 완성했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그는 나중에 고백했어. "그 책은 내가 쓴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나를 관통해 지나갔을 뿐이다." 열흘 동안 그는 거의 잠들지 않았고, 거의 먹지 않았어. 바닷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밤마다 그는 촛불 아래 연필을 움켜쥐고 앉아 있었지.

그 책 속에서 한 늙은 예언자,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와 시장의 군중 앞에 서서 외쳐. "나는 너희에게 초인(Übermensch)을 가르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그리고 또 한 번 그는 선언해. "신은 죽었다." 그 말은 조롱이 아니었어. 그것은 슬픔이었지. 인류가 수천 년간 기대어 왔던 따뜻한 거짓말이 이제 더는 우리를 지탱해주지 못한다는 고백. "우리가 신을 죽였다. 너희도 나도. 우리 모두가 그의 살인자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 자신이 신이 되지 않고서는 이 공허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

그는 또 써.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너는 네 안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삶의 이유가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삶의 방식을 견딜 수 있다." "너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너를 더 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책은 팔리지 않았어. 제1부는 겨우 몇십 권이 팔렸고, 제2, 제3부가 이어졌지만 제4부는 출판사마저 짓기를 거부해 니체는 자비로 인쇄해 겨우 일곱 명의 친구에게만 보냈어. 그는 서점 앞에 서서 자신의 책이 단 한 권도 놓여 있지 않은 진열대를 바라보았지. 그리고 스스로 웃었어. 쓸쓸한 웃음이 아니라 어딘가 자랑스러운 웃음이었어. 그는 편지했어. "언젠가 내 책을 읽을 사람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나의 독자는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이다."

심연을 들여다보다

1886년 '선악의 저편', 1887년 '도덕의 계보'. 1888년, 그는 폭포처럼 글을 썼어.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니체 대 바그너', 그리고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 한 해에 여섯 권이라니, 이미 인간의 속도가 아니었지. 그의 글은 날카롭고 빛났지만, 동시에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었어.

그는 '선악의 저편'에 이런 문장을 남겼어.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내가 심연을 오래 들여다볼 때,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본다." 그 문장은 어쩌면 예언이었어. 그 자신에 대한.

그 사이 가족은 그에게서 점점 멀어졌어. 여동생 엘리자베스는 반유대주의자 베른하르트 푀르스터와 결혼했고, 남미 파라과이에 '새로운 게르마니아'라는 아리안 백인 식민지를 세우겠다며 떠나갔지. 니체는 누이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어. "너는 내가 평생 싸워온 모든 것을 결혼한 것이다. 반유대주의자는 나의 형제가 아니다. 나는 너와 더 이상 형제가 아니다." 그 편지 이후 그는 누이와도 사실상 절연했어.

1888년 가을, 토리노. 그는 도시를 걸어 다니며 혼잣말을 했어. 거리에 마차꾼들에게 웃음을 건네고, 과일 장수에게 동전을 던지고, 하숙집 주인에게 자신이 왕족의 먼 친척이라고 말하기도 했지.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미 이상해지고 있었어. 그는 페터 가스트에게 썼어. "내 이름은 이제 디오니소스다." 그는 여동생에게 썼어. "나는 우주를 뒤흔들었다. 200년 뒤, 사람들은 나의 이름을 그리스도의 이름 위에 놓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은 그것이 과장된 농담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지.

토리노의 말

1889년 1월 3일 아침,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의 한 광장. 그날 아침은 맑았어. 겨울 햇살이 광장의 돌바닥 위로 길게 내려앉고 있었지. 니체는 하숙집에서 나와 거리를 걷고 있었어. 평소처럼 느리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때 광장 한가운데서 그는 한 장면을 보게 됐어. 한 마부가 지친 늙은 말을 채찍으로 내리치고 있었지. 말은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었어. 다리가 떨리고 있었고, 입에서는 하얀 거품이 떨어지고 있었지. 마부는 계속 소리쳤고, 채찍은 계속 내려갔어.

그 장면을 보던 니체는 걸음을 멈췄어. 그리고 한 순간, 아주 긴 침묵. 다음 순간 그는 달려갔어. 주변 사람들이 소리쳤지. 마부가 그를 밀어냈지만, 니체는 그 말의 목을 두 팔로 껴안았어. 그리고 울기 시작했어. 아이처럼, 아주 오래, 아주 깊게.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평생 기다려 온 사람처럼.

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새어 나왔다고 전해져. "나의 형제여, 어머니, 너를 어쩌면 좋니? 너를 어쩌면 좋니?" 그는 그 말을 놓지 않았어. 사람들이 끌어내려 했지만, 그는 마치 그 말에 자기 자신을 묻어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그 말의 목에서 울었어. 결국 그는 광장 바닥에 쓰러졌지. 하숙집 주인 다비데 피노는 그를 방으로 옮겼어.

니체는 이틀 동안 말이 없었어.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피아노 앞에 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 그날 그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부서졌어. 훗날 사람들은 그 사건을 이렇게 불러. 토리노의 말. 그리고 그 이후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정신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오지 못했어.

열 해의 침묵

토리노의 하숙집 주인이 니체의 오랜 친구 프란츠 오버베크에게 편지를 보냈어. "니체 교수님이 이상하십니다. 부디 와 주십시오." 바젤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오버베크는 하숙방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숨을 멈췄어. 니체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지. 반쯤 벗은 몸으로 울먹이듯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오버베크가 이름을 부르자, 니체는 그를 끌어안고 소리쳤어. "오버베크, 자네였구나! 나의 친구!" 그러더니 곧바로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지. 오버베크는 그날 밤 일기했어. "그는 내가 알던 니체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오버베크는 그를 기차에 태워 바젤의 정신병원으로 데려갔어. 그 후 예나의 정신병원으로 옮겨졌지. 의사들의 진단명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어. 매독에 의한 진행성 마비, 전두엽 치매, 혹은 유전적 뇌질환… 혹은 그 모든 것. 아버지가 36살에 돌아가셨던 바로 그 병이 아들에게도 내려온 것인지도 몰라. 정확한 원인은 오늘날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어.

그가 마지막 몇 달간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들은 '후세의 광기의 편지'로 불려. 그 편지들의 서명은 이렇게 바뀌어 있었지. '디오니소스, 십자가에 못 박힌 자'. 한 편지에서 그는 덴마크의 비평가 게오르크 브란데스에게 이렇게 썼어. "사랑하는 친구여, 자네가 나를 발견해 준 이상, 이제 나를 다시 잃어버리는 일은 기적이 아니면 불가능하네. 십자가에 못 박힌 자 올림." 그 편지를 받은 친구들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어.

1890년, 어머니 프란치스카가 그를 나움부르크의 집으로 데려왔어. 다 자란 아들을 아기처럼 다시 먹이고 씻기고 재웠지. 그 어머니는 평생 신을 믿었던 독실한 여인이었어. 그녀의 아들이 '신은 죽었다'고 외쳤다는 것을 그녀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녀는 매일 밤 그의 이불을 여며 주었고, 매일 아침 그의 얼굴을 닦아 주었어.

니체는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했어. 말도 거의 하지 않았지. 때로 그는 창가에 서서 오랫동안 하늘만 바라보았어. 때로는 거울을 보며 이렇게 묻기도 했지. "누구십니까? 당신은?"

1897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어. 그 집의 마지막 따뜻한 불씨가 함께 꺼졌지. 그를 돌볼 사람은 이제 누이 엘리자베스뿐이었어. 엘리자베스는 파라과이의 식민지 계획이 실패하고 남편 푀르스터가 자살한 뒤 독일로 돌아와 있었지. 그녀는 오빠를 바이마르로 옮겼어. 그리고 그곳에 '니체 아카이브'를 세웠지.

그녀는 오빠의 원고를 자기 마음대로 편집하기 시작했어. 출판되지 않은 단편들을 모아 오빠가 한 번도 쓰지 않은 책을 오빠의 이름으로 냈지. 그것이 바로 훗날 악명을 떨치게 되는 '권력에의 의지'야. 그녀는 반유대주의자였고, 독일 민족주의자였어. 훗날 나치에 동조하게 되며, 1934년 11월 아돌프 히틀러가 직접 바이마르 니체 아카이브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늙은 손으로 오빠의 지팡이를 총통에게 건넸지. 니체의 철학은 그렇게 왜곡되어 일생 동안 자신이 가장 혐오했던 사상과 손을 잡게 된 거야.

하지만 니체 자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어. 그는 이미 세상 너머의 사람이었지. 방문객들이 찾아오면 엘리자베스는 오빠에게 흰 가운을 입히고 소파에 앉혀 전시했어. 마치 살아 있는 조각상처럼. "이것이 나의 위대한 오라버니입니다." 니체는 자신이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지.

1900년 여름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 그의 여름은 유난히 덥고 길었어. 니체의 방 창문 너머로 보리수 잎이 흔들리고 있었지. 오후 햇빛이 방안을 천천히 기어 다녔어. 그는 며칠째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어. 폐렴과 뇌출혈이 함께 찾아왔지. 그날 후 니체는 조용히 숨을 거뒀어. 향년 55세. 그의 마지막 말은 전해지지 않아. 그는 말을 잃은 지 이미 11년이 넘었기 때문이지.

장례식은 조용했어.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았지. 그의 오랜 친구 페터 가스트가 관 앞에 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으로, 거룩하기를, 당신의 이름이여."

그는 고향 레켄으로 옮겨졌어. 그가 다섯 살에 떠나보낸 아버지의 무덤 바로 그 곁에. 반세기의 시간을 돌아 아버지와 아들이 다시 한자리에 눕게 된 거야. 그의 무덤 위로 바람이 불었어. 그가 평생을 걸으며 말을 걸었던 그 바람이. 너무 늦은 이해.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 니체가 죽은 뒤 세상은 천천히 그의 글을 읽기 시작했어. 20세기의 시인들이, 심리학자들이, 철학자들이 그의 글을 읽었지. 프로이트는 니체를 "역사상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깊이 안 사람"이라고 말했어.

하지만 그의 책을 가장 오래 붙들고 읽은 사람들은 유명한 학자들이 아니었어. 감옥에 갇힌 사람들, 전장에서 돌아온 사람들,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 신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 그들이 오래도록 그의 책을 읽었지. 그들은 이제 알아차렸어. 그가 홀로 너무 오래 전에 어떤 세계를 미리 살아내고 떠났다는 것을.

그가 남긴 말들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이 되었어.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너의 안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삶의 이유가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삶의 방식을 견딜 수 있다." "너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너를 더 강하게 만든다." "가장 조용한 말이 폭풍을 몰고 온다." "언젠가 날고 싶어 하는 자는 먼저 서는 법, 걷는 법, 달리는 법, 오르는 법,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나는 곧바로 배울 수 없다." "너 자신이 되어라. 지금까지 내가 행하고 생각하고 원했던 모든 것은 내가 너 자신이 되기 위한 그 여정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어.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어.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사랑받지 못했지. 우리는 그를 위대한 철학자라 부르지만, 그는 한 사람이었어. 다섯 살에 아버지를 잃고, 24살에 교수가 되고, 35살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44살에 한 마리 말을 끌어안고 무너진. 평생 사랑받기를 원했지만, 끝내 혼자였던 한 사람이었어.

그는 말했지. "가장 조용한 말이 폭풍을 몰고 온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어. 그의 삶은 작았지. 그러나 그가 남긴 파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퍼져가고 있어. 누군가가 무너지려 할 때, 누군가가 사랑에 실패했을 때,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미워할 때. 그의 문장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아주 오래된 목소리처럼.

사람은 때로 너무 늦게 알아차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 우리 곁에 있었던 사람,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 그 사람을 우리는 너무 자주 늦게 알아보지. 니체 자신도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기다렸어. 그러나 그 기다림은 그가 눈을 감은 뒤에야 끝이 났지.

그러니 어쩌면 오늘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신은 조금 다르게 살아야 할지도 몰라. 지금 곁에 있는 사람, 지금 하고 있는 말, 지금 느끼는 감정.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늦기 전에. 그것이 한 사람이 평생을 걸어 우리에게 남긴 가장 마지막 문장일지도 몰라.

1844년 레켄의 작은 목사에서 태어난 한 아이. 그 아이는 너무 일찍 아버지를 잃었고, 그 뒤로 평생 무언가에 기대려다 번번이 넘어졌어. 그러나 그 넘어진 자리에서 그는 끝내 한 문장을 집어들고 일어섰지.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오늘 당신의 하루가 아무리 무거웠다 해도, 이 문장 하나는 기억해 주길 바라. 당신의 오늘도 그의 말처럼 언젠가 당신을 더 강하게 만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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