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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대문은 들어봤는데, 왜 북대문은 들어본 적 없을까?

사물궁이 잡학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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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은 많이 들어봤지만, ‘북대문’은 생소할 겁니다. 북대문은 조선 시대 한양도성의 네 개 대문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진 이유가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잊힌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 사물궁이 역사 시리즈 도서가 출간됐습니다. - 1권 근현대사 : https://bit.ly/3CEO3Mz - 2권 조선사 : https://bit.ly/40Y6lSl - 3권 고대·고려사 : https://bit.ly/3WMmBmX - 역사 시리즈 SET : https://bit.ly/3CKF6RN ※ 참고자료·논문자료·자문 등 도움 - 도서 '사소해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역사 이야기-조선' - 섬네일 사진 출처 : Visit Seoul ▪ 배경음악 : Quirk n Twerk - The Soundlings : Digital Memories - Unicorn Heads : Ether Oar - The Whole Other : Eyes of Glory - Aakash Gandhi : Cartoon Bank Heist (Sting) - Doug Maxwell/Media Right Productions : Gunpowder Tea - Mini Vandals ▪ 애니메이션 감독 : Studio S ▪ 음향효과 :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정자료 이용 및 자체제작 ▪ 기타 사진·영상 :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진과 영상 이용 #사물궁이 #궁금증 #호기심 #조선시대 #북대문 #역사 #한양도성 #동대문 #남대문 #숙정문 #근현대 #고대고려 Copyright. 사물궁이 잡학지식.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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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은 사수에서 물어보지 못했지만 궁금했던 역사 이야기 조선편 주제를 발치에 제작했습니다 조선편 외에 고대 고려 편과 근현대 편도 [음악] 출간됐으며 노와 중고 일대를 중심으로 한양 도성이 존재했고 도성의 관문으로네 개의 대문이 동서남북 각각의 방향을 지켰습니다 이중 서대문은 일제 강점기 때 도시 확장으로 사라졌지만 과거 모습을 담은 사진과 누각의 현판이 남아 있어 그 존재는 여전히 사람들 인식 속에 남아 있습니다 동대문과 남대문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오늘날까지 잘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북대문 규모가 작긴 해도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데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이 인식에서 사라진 이유가 뭘까요 조선은 수도를 옮기기 위해 한영 도성을 건립하면서 북쪽 문을 숙청문 동쪽 문을 흥인문 남쪽 문을 숭례문 서쪽 문을 도니 문으로 명명했습니다 북쪽에 위치한 숙정문은 북악산의 가파른 경사와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어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험준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서 다른 분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크기도 다른 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았고 옛날지도 등을 살펴봤을 때 과거에는 성문 위에을 있어야 하는 누각도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숙정문은 조선시대 어느 시점에 이름이 숙정문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에 대한 기록도 없습니다 게다가 숙정문은 문을 자주 닫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태종 실록에 따르면 태종 때의 풍수 지리적인 이유로 숙정문을 항상 닫아두어야 한다는 권위가 올라왔고 왕이이를 수용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지 때부터 험준한 산해 짓고 대부분 두었기에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문이 아니었던 것인데 이런 곳에 문을 지어놓은 이유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중원 국가들은 도성을 지을 때 사대문을 두었습니다 북문을 포함한 강 문의 규모는 상당히 컸고 통행량도 적지 않았습니다이는 대체로 중원 국가들의 수도가 평지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정부도 중원 국가 도성의 전통을 참고하여 수도 성을 건축하고 사대문을지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중국과 달리 을 지을 수 있는 평지가 많지 않았고 조선 정부는 도성을 지을 때 풍수 지리적인 측면을 감안해 산을 북쪽에 두고 강을 남쪽에 두는 배산임수 지형을 따랐기에 북문은 자연스럽게 인적이 등은 산에 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북대문 지리적으로 사람들이 모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기에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지형적인 요인 외에도 북악산 일대가 오랜 기간 초리 금지 구역이었던 영향도 있습니다 추리 금지 구역이 된 배경에는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정부 시절 북한에서 무장 특수 부대를 보내 남한에 침투한 사건의 영향이 있는데 이른바 김신조 사건으로 알려진 내용입니다 당시 청와대 인근까지 북한 부대가 침투했고이 사실이 밝혀지자 한국 정부는 청와대 인근 경기를 강화했습니다이 과정에서 북악산 일대가 초립 금지 구역으로 지정됐고 여기에 숙정문 포함되면서 오랜 기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게 됐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치다 2006년 북악산 개방 계획했다 숙정문이 다시 일반인에게 개방됐는데 오랜 세월 동안 이친 흔적은 쉽게 되돌릴 수 없었고 이에 따라 북문은 지리적 역사적 그리고 정치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겁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음악]
영상 정리

영상 정리

1. 이 영상은 조선 역사 이야기를 다뤄요.

2. 고려와 근현대 이야기들도 출간됐어요.

3. 한양 도성에는 네 개의 대문이 있었어요.

4. 서대문은 일제 강점기 때 사라졌어요.

5. 사진과 누각이 남아 있어 존재는 알려져 있어요.

6. 동대문과 남대문은 오늘날까지 잘 남아 있어요.

7. 북대문은 작아도 아직 남아 있어요.

8. 사람들이 북대문을 잘 모르는 이유는 뭘까요?

9. 조선은 수도를 옮기며 네 문을 지었어요.

10. 북쪽 문은 숙정문, 동쪽은 흥인문, 남쪽은 숭례문, 서쪽은 도니문이에요.

11. 숙정문은 산악지대에 있어 접근이 어려웠어요.

12. 그래서 크기도 작았고, 누각도 없었어요.

13. 숙정문 이름은 조선시대에 바뀌었어요.

14. 이름 바뀐 이유는 기록이 없어요.

15. 숙정문은 자주 닫혔던 것으로 추정돼요.

16. 태종 실록에 따르면 풍수 때문에 닫았대요.

17. 산악지형이 문을 열기 어려웠던 거죠.

18. 조선은 중국 전통을 따라 사대문을 지었어요.

19. 북문은 자연 지형 때문에 작았어요.

20. 북악산이 산악지대여서 사람들이 잘 몰랐어요.

21. 북악산은 오랜 기간 초리 금지구역이었어요.

22. 1968년 북한 특수부대 침투 사건이 있었어요.

23. 이 사건 이후 북악산이 금지 구역이 됐어요.

24. 숙정문도 오랜 기간 사람들 발길이 끊겼어요.

25. 2006년 북악산이 개방되면서 다시 열렸어요.

26. 하지만 흔적이 쉽게 남아있지 않아요.

27. 그래서 북문은 역사와 정치적 이유로 희미해졌어요.

28.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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