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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금 14억 들고 베트남 이민 간 60대 교장 선생님… 통장에 3,700원 남았습니다 "|노후사연|은퇴자금|오디오북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14억 날리고 3,700원 남은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곧 70살 되는 김영호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교장으로 정년 퇴직했는데, 퇴직하고 나니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더라고요. 30년 넘게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가던 생활이 멈추니 허전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은퇴 후 찾아온 불안감

집 팔고 연금 받고 모아둔 돈까지 합쳐서 14억 5천만 원 정도가 있었어요. 돈만 보면 평생 걱정 없겠다 싶었는데, 막상 계산해보니 불안해지더라고요. 한 달에 300만 원씩 써도 10년이면 3억 6천만 원, 20년이면 7억이 넘어가니 병원비나 예상치 못한 지출까지 생각하면 돈이 부족할 것 같았어요.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나 봐요. 마트에서 파 한 단을 4,000원 넘게 주고 사 오는 걸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평생 알뜰하게 살림해 온 아내가 파 한 단 값에 한숨 쉬는 걸 보니 더 그랬죠.

베트남, 새로운 희망을 찾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베트남에서 한 달 100만 원으로 왕처럼 사는 법'이라는 영상을 봤어요. 처음엔 믿기지 않았는데, 실제로 그렇게 사는 한국인들이 나오더라고요. 넓은 집에서 외식하고 마사지도 받고 골프도 치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어요.

더 찾아보니 베트남 물가가 정말 싸더라고요. 한국 돈 5억이면 평생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어요.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모으고,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봤죠. 대부분 만족하며 산다고 하니 용기가 생겼어요.

베트남으로 떠나다

아내에게 베트남 이민 이야기를 꺼냈더니 처음엔 반대했지만, 영상을 보여주고 자료를 보여주니 조금씩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결국 직접 가보자고 해서 5박 6일 단항 패키지여행을 예약했어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바람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오토바이 행렬, 야자수 늘어선 길거리 풍경이 낯설면서도 마음을 들뜨게 했죠. 5성급 호텔도 하루에 10만 원밖에 안 했고, 저녁 식사도 푸짐하게 나왔는데 인당 3만 원이었어요. 한국 같으면 10만 원은 넘었을 거예요.

바나힐, 호이안 고도, 미케 해변 등 관광지도 좋았지만, 저희 부부는 틈틈이 현지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물가를 확인했어요. 쌀국수는 1,500원, 커피는 1,000원, 망고 1kg에 2,000원이었죠. 아내가 신나서 과일을 사는 걸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았어요.

자유 시간에는 부동산도 둘러봤는데, 수영장 딸린 빌라가 월세 50만 원,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가 70만 원이었어요. 가구도 다 갖춰져 있고 관리도 잘 되어 있었죠. 우연히 만난 한국인 은퇴자는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산다고 하더라고요.

꿈에 그리던 베트남 생활, 그리고 함정

단항에서의 5박 6일은 꿈같았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베트남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결국 3개월 후 베트남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했어요.

이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자식들에게 말하는 거였어요. 아들 민혁이는 반대했고, 딸 수진이는 걱정이 많았죠. 하지만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했으니 이제는 우리를 위해 살자고 설득했어요.

베트남에 도착해서는 60만 원에 수영장 딸린 빌라를 얻었어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죠. 생활비도 한 달에 150만 원이면 충분했어요. 아내는 매일 망고, 용과, 패션 프루트를 배불리 먹으며 행복해했어요.

한인회 모임에도 나가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박민준이라는 사람을 만났어요. 부동산 개발로 성공했다는 소문이 있는 사람이었죠. 골프를 배우라고 권해서 같이 연습을 시작했는데, 15살이나 어린 그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며 의지하게 됐어요.

어느 날 아내가 한식당을 해보고 싶다고 해서 박민준에게 이야기했더니, 비자 문제를 도와주겠다며 사무실로 오라고 했어요. 거기서 만난 비서 린은 한국어도 완벽하고 유능했어요.

박민준은 비자 때문에 투자 증명이 필요하다며 땅 투자를 제안했어요. 2년 후면 30억, 많게는 40억까지 벌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어요. 린도 옆에서 정부 승인 문서라며 서류를 보여주며 설득했죠.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내는 린의 친절함과 제 들뜬 목소리를 의심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었죠. 결국 10억을 투자하기로 결심했어요. 아내는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저는 제 결심을 굽히지 않았어요.

모든 것을 잃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날, 제 손은 떨렸어요. 린이 제 손을 감싸며 괜찮다고, 옳은 선택이라고 말해줬어요. 박민준은 최고의 선택이라며 축하해 줬죠.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찜찜한 기운이 남아 있었어요.

투자 후 첫 달은 행복했지만, 둘째 달부터 뭔가 이상했어요. 투자한 땅에 가보니 여전히 아무 변화가 없었죠. 박민준은 인허가 절차가 복잡해서 지연되고 있다고 했어요.

셋째 달에는 박민준의 전화도 뜸해졌어요. 그러다 갑자기 토지 인허가 비용으로 5천만 원, 다음 달에는 환경 영향 평가 비용으로 3천만 원을 더 요구했어요. 이미 10억 5천만 원을 투자한 상태라 거절할 수 없었죠.

네 달쯤 되었을 때부터 박민준과 린의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어요.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고, 건물 경비원은 일주일 전에 야반도주하듯 이사 갔다고 말해줬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였던 거예요. 10억 5천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아 있었어요. 그게 더 무서웠죠. 아내는 제게 얼마나 잃었냐고 물었고, 저는 4억이라고 말했어요. 아내는 제 뺨을 때리며 미쳤다고 소리쳤어요.

통장에 남은 돈은 3,700원뿐이었어요. 아내는 그 말을 듣고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어요. 그 웃음이 더 무서웠어요.

다시 시작하는 삶

결국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갈 곳도 돈도 없었죠. 인천 공항에 도착했지만, 갈 곳이 없어 공항 벤치에서 밤을 지새웠어요.

서울 변두리의 월세 35만 원짜리 달방으로 옮겼어요. 창문도 없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좁은 방이었죠. 아내는 친정 언니에게 돈을 빌려 겨우 월세를 냈어요.

저는 자존심 때문에 돈을 빌리지 못했어요. 아내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저는 새벽에 폐지를 모으러 다녔어요. 40년을 함께 산 부부가 이제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있었죠.

6개월 후,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월세방으로 옮길 수 있었어요. 아내는 다시 한번 잘 살아보자고 말했어요. 화해도 용서도 아니었어요.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마지막 남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 것뿐이었죠.

진짜 파산은 돈을 잃는 게 아니라 사람을 잃는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신뢰를 잃고, 관계를 잃고, 자존심을 잃는 것. 그게 진짜 파산이었어요.

저는 동네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했어요. 월급은 200만 원 정도였지만, 정직하게 버는 돈이라 부끄럽지 않았어요. 아내도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주간으로 바꿨고요.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월세방에 살고 있어요. 작은 페란다도 있고요. 아내는 화분을 놓았고, 주말마다 함께 물을 주는 것이 우리의 소소한 행복이 되었어요.

돌이켜보면 낯선 여자의 관심에 들떠 아내의 신뢰를 저버렸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요.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도 제 곁을 지켜준 아내의 사랑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달았어요. 남은 인생 아내에게 더 잘해 주는 것이 제 가장 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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