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는 아니마 아니무스 제목을 들으면서 여러분들이 벌써 아이 강좌가 어떻게 진행될까 하면서 뭔가 특정한 사항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남성일 경우에 내 안에 아마가 무엇인가? 여성일 경우에 내 안에 아니스가 무엇일까? 벌써 연상되는게 있죠.
그죠? 예는 철학자로서 이니마스 아니무스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 나갈까? 음.
뭔가 전개해야 될 다양한 그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있는데요.
오늘도 예도의 클라스로 풀어내겠습니다.
강의의 가치를 아시는 분은 사막의 철학을 위하여 예도TV 후원에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 사실 칼융적으로 프루스트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풀어낸다고 한다면 되게 자본주의 동물들은 이런 시간을 갖지 않겠죠.
그죠?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자기의 삶의 시간성, 그 잃어버린 시간 그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되찾은 시간으로 바꿀 수 있을까?이 이 프루스트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칼융적으로 자기 시련에 들어가겠죠.
그죠? 그래서 프루스트는 자기 자신의 작품, 마치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제시하는 것과 같은 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해서 직접 삶의 시간성을 수놓아가는 체험하는 자와 그죠.
그것을 거리두기를 통하여 바라보면서 그 체험을 서술해 가는음 삶의 시간성을 계속해서 의미화해 나가는 그 자아를 이중적으로 두고 있죠.
그죠? 사실 현대인들은 이런 삶의 시간을 정리할 시간이 거의 없는 거예요.
어 돈돈 돈돈 하다가 그냥 하늘나라로 가는 거죠.
그죠? 땅속으로 들어가든지 응 아니면 우주로 흩어지든지 자기도 모르게 이런 시간조차도 낼 수 없는 그죠.
그러나 조금 더 부유하고 조금 더 많은 것을 누려서 행복한 것 같지만 사실 행복의 지수는 고대인들보다 못할 수도 있다라는 거 그죠.
어, 권태가 찾아와서 그 현대인의 시간을 잡아먹기 시작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죠.
끊임없는 오락거리와 도파민의 세계를 찾아서 돌아다니지만 결국 자기 자신과 연결시키지 않기 때문에 끝없는 허무 속에서 삶을 허의하다가 가는 현대인의 모습 그죠.
가끔은 이런 잃어버린 시간을 그죠 사유하면서 어 되찾은 시간으로 의미화해 나가는 그런 시간을 갖는다면 그죠 칼융적으로 확실히 그것은 자기의 어 양극적 대극을 합일시킴으로써 뭔가이 우주적 전인격적 정신과 과 이때 보다 더 완성된 자기 자신의 자아의 모습을 볼 수가 있겠죠.
그죠? 이건 중요한 어떤 프로스토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인 거예요.
이 자기라고 하는 것 위에 바로 아니스가 있죠.
그죠? 이것은 자의 페르소나 외적 인격과 맞닿 있는 내적 인격인 거예요.
아래에 개인 무의식을 나타내는 그림자가 있고 그리고 그 아래에 아니가 있고 그 아래에 자아가 있다라고 한다면이 아니무스는 결코 개인의 무의식적 콤플렉스가 아니에요.
이것은 철저히 집단 무의식과 연관되어 있고 그래서 내가 어떤 특정한 남성 사항을 갖고 있다.
내가 어떤 특정한 여성 사항을 갖고 있다.
이런 이상에 비추어서 그죠.
내 안에 무의식을 추론할 수 없는 거예요.
이건 인류 보편의 원형입니다.
여러분 인류 보편이 집단적으로 체험했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체험했거나 남성이 여성에 대한 체험 총체 응 여성이 남성에 대한 체험 총체를 나타내면서 그죠.
이미 선음적으로 태어나면서 인간이 갖게 되는 무의식적인 세계 그 자체를 나타내는 거예요.
사실 이것은 남성일 경우에는 아님하고 여성일 경우에는 아니무스로 나타난다라고 하지만은 이것은 인류 보편의 경험인 거야, 여러분.
그래서 원형인 거예요.
특히 아니무스는 그죠.
칼륨의 전집에 거의 다 나타납니다.
특히 전집 5권부터 18권까지 다 나타나는데 역시 중요한 작품은 국건 1 원형들과 집단 무유식 그리고 국건 2 아이온 그리고 11권 서양 종교와 동양 종교의 심리학에 관하여 이런 작품들이겠죠.
그죠? 그러나 전집 전체에 걸쳐서 유흥은이 아니무스를 계속해서 서술합니다.
아니무스는 어원적으로 라틴원인데요.
아니는 여성형이고 아니무스는 남성형인 거예요.
그래서이 둘은 어떻게 보면 독일로 표현하게 되면은 아니무스는 가이스트 정신이고 여러분들이 정신 현상학할 때 그죠 그런 정신이지 뭐 이걸 불로 번역하면 에스프리 영어는 스피릿 정도가 되겠죠 그죠 그런데 아니은 진례 영혼 그리고 영어로 울 정도가 되겠죠.
그죠? 그러나이 둘은 결국 내적 영혼인 거예요.
어 내 안에 있는 영혼 그게 아니 거예요.
그게 보면은 그래서 아니무스를 어원학적으로 분석해 들어가면 이것은 정신이요 혼이야.
어 그래서 내적 자아를 나타내는 것이고 남성형으로서 나타나는이 아니무스는 용기와 그리고 기분과 때로는 결단력과 그리고 지성 또한 논리적 사고 한마디로 말하면 아버지적 사항이 갖고 있는 로고스와 관계되는 개념이에요.
요 이에 반하여 여성으로 사용되는이 아니는 그 자체로 진 영혼이란 뜻이고 또한 이것은 어학적으로 그죠 바람 호흡 생명 등과 관계된 거예 히브리어의 루아흐 그리고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그죠 프라나 그리스 어로는 분유마 정도가 되겠죠.
서 아니무스의 어떤이 집단 무의식적 원형을 그죠 특정 시점에서 자아가 삶을 살아가면서 개성화 과정을 통하여 의식화 하지 못하게 되면 거기에서 특정 여성에게 자기 자신의 아닌 말을 투사해서 그지 신경증을 일으키고 때로는 도착증을 일으키고 때로는 정신병까지도 일으키는 거야.
적절하게 그죠.
이 아니무스는 개인화 가정을 통하여 그죠.
의식화를 통하여 삶을 풍성하게 할 때 오히려 더 건강한 인간이 되는 거예요.
이것은 이것은 이런 것과도 관계되겠죠.
그죠? 그러니까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갖고 성적 욕망을 그죠이 리비도적 힘을 계속해서 억눌러 온 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래서 계속해서 영성 수련을 통하여 그죠.
어 중세의 수도사들이 그 젖찍을 갖고 자기 몸을 때리면서 고행을 한다고 생각합시다.
그래서 이것을 어릴 때부터 강력한 종교 교육을 통하여 억압했다라고 할 때에 그죠.
이건 성인이 도착증을 일으킬 가능성이 상당히 큰 거예요.
음.
때로는 적절하게이 집단 무의식의 힘을 사드 후작의 소돔의 120일 이런 작품을 통하여 그죠 약간 풀어 놓으면서 인격화할 필요가 있는 거야.
그게 인간이기 때문에.
예.
예를 들면 아이 아니무스가 나오니까 예도가 떠오르는 건 당연히 니체겠죠.
그죠? 아 여도는 니체를 보면 그죠.
아 가끔이 비해감과 비장한 마음 어이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피끓는 마음이 드는게 특히 니처는 정말 고독하게 살았잖아.
응.
루살롬메와의 원치 않는 이별을 통하여 그죠 그 뒤에 스위스에 그죠 그 실스 마리아에서 영원회기에 영감을 받으면서 다시 태어나긴 하지만은 점점 가면서 그에게 아님만은 디오니 소스신이 되는 거야.
여러분 사실 초기니 이체만 해도 응 그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균형을 통하여 그죠 비극의 탄생을 이야기하잖아 그 뒤로 중기 니체 말기 니체로 가면서 이제 마지막 65 노트에는 거의 디오니소스 신밖에 남지 않는 거예요.
니체에게 아많은 디오니소스 여신이었습니다 여러분.
응.
그는 끝까지 그죠.
그 디오니 소스와 더불어이 우주적 힘을 느끼면서 영원 회기 속에서 그죠.
생성 변화 가운데에서 자기의 존재를 각인하면서 힘의 의지를 새기고 그죠.
그 무의 극지점까지 자기의 실존을 밀어붙여서 초인으로서 자기 삶을 살아갔던 자예요.
광기의 경계에서도 그는 그 마지막 노래를 그죠.
디오니 소스에게 바칠 정도로 어 니체에게 있어서 아니는 디오니 소스였던 거예.
이것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가 있는데 특히 아니무스를 억압해서 절제하게 되면은 그죠.
이 음량의 대극을 초월하면서이 자기 실현을 할 때 그죠.
우주적 보편 정신과 만나면서 자기의 인격을 전체 정신과 이떼어 놓을 때 그 내용이 가난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것.
물론 아니무스에도 긍정적인 어떤 특징이 있고 부정적인 특징이 있어.
아이온에 나타나지만은 이건 역시도 어머니 원형으로서의이 안마은 어두운 부정적인 면에서는 악마적 본성을 가진 마녀의 원형을 가질 수도 있고 그죠.
남성일 경우에는 그 어머니의 그죠 독특한 그 원형이 전도되어서 그죠 아주 독특한 파괴적 본성을 가지는 그런 인격으로 갈 수도 있는 거야.
그래서 아니무스는 삶에 엄청난 풍성한 내용을 주기도 하지만은 때로는 공격 본능과 파괴적 본능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거야.
음.
그렇다.
그러면 아마의 특징을 이루는 어머니 원형의 그죠.
어떤 에로스는 무엇일까? 이것은 왜 우주적 에로스로 나타나며 어 여신너의 모습으로도 나타나고 또한 인류 보편이 가지고 있는 원형으로서 그죠 다양한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날까? 어, 여기에는 특히 위대한 예술과 문학 작품에는 이미 표현되어 있는 거예요.
고경의 타이티섬에 그 원주민 여성들 있잖아.
그죠? 작품 속에 나타나는이 여성들 역시도 아니의 원형이 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개태의 파우스티에 나오는 그죠? 그래 이런 인물들 그리고 다양한 문학 작품들 속에 나타나는 그러한 표본이 되는 인물들 역시도 아니의 원형이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러한 아마의 어머니적 에로스의 힘은 뭐예요? 직관적이고 감성적이고 예술가적 파토스를 느끼게 하는 그런 힘인 거예요.
어 남성 안에 있는이 아니 어 그것은 어떻게 보면 집단 무의식의 힘과 연결되어서 끊임없는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내는 힘으로서 나타나겠죠.
그죠? 이에 비하여스는 아버지적 로고스인 거예요.
여성 안에 들어 있는이 아버지적 로고스는 논리적 사고 그리고 마이능 의견을 제시하는 그런 토론에 강한 이성적 힘 논리적 힘 그리고 어떤 사태를 정리하여 제시할 수 있는 힘과 같은 거 의견을 제출하고 용기 있게 결단하는 하는 이런 힘.
그래서 영웅과 같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으로서도 나타나는 거야.
그래서 영웅의 원형은 또한 이니무스의 원형으로서 기속되어 있다라고 하는 그죠.
어 다양한 방식으로 인류 보편은 이미이 집단 무의식으로서의 아니 무쇠를 어 경험했다라고 하는 거의 예술 작품과 문학 작품에는 그죠이 창조적 본능이 이미 표현되어 있고 그죠 아주 강력하게 표현되어 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야 여러분들 내 안에 있는 아니는 무엇일까? 내 안에 있는 아니무스는 무엇일까? 그건 결코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 그죠.
인류 보편의 체험으로서 그죠.
원형으로서 언제나 이미 거기에 있다라고 하는 거.
끊임없는 창조.
내가 일평생 그것을 길어 올려도 나는 그것에 하나의 점도 다 길어 올리지 못하고 세상을 마감하게 될 거라고 하는 거 무진장한이 자하의 내적 힘인 거야 여러분.
응.
내 안에 영혼이 있는 거야.
어 어떻게 보면 내가 어떤 꿈속이나 어떤 신화책을 읽거나 민담을 읽거나 전설이나 아니면 뭐 신화에서 특정 신성을 나의 이상향으로 삼거나 뭐 다양한 것들이 그죠 나의 이상이 될 수가 있는데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아니가 그죠 인격 격화됐다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거예요.
이것은 현실에 나타나는 특정 장면과 결합하여 끊임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겠죠.
그죠? 그래서이 아니무스가 풍성하지 못한 자는 그죠.
이것을 억압한 자는 인간으로서의 삶의 엘랑비따를 제대로 못 느끼는 자 거예요.
어떻게 보면 융적으로 봐도이 에로스의 사랑의 힘은 그죠.
신성과 맞다 있습니다.
응.
20세기에 바다위와 락강이 그죠.
이러한 신성과 에로스의 경험을 함께 둔 것처럼 칼륨 역시도이 아니무스의 체험은 신성과 관련되어 있다라고 그죠.
명백하게 표현하는 곳이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여러분들이 신화에서 발견하는 거죠.
아니면은 정말 다양할 수가 있는데 뭐 비너스와 같은 그런 여신도 아니면 인도의 칼리 여신 그죠 파괴하면서 창조하는 어떻게 보면 어두운 것과 밝은 것을 동시에 갖고 있는 여신이잖아.
그런 것들 다 아니야 원형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심지어 그리스도 교회 성모 말이야 그죠.
이 상 역시도 특정 남성에게 아마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응.
다양한 전사와 영웅들, 신화를 읽다가 아니면 영화를 보다가음 그런 것들은 특정 여성에게 아니가 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이것은 현재 그 자아가 살아가는 특정상과 결합하여 무진장한 어떤 삶의 엘랑비따를 만들어 낼 수가 있는데요.
정말 무진장한 거야.
이것은 응.
때로는 이것이 이것과 결합하여 나만의 그죠.
나만의 내 안에 있는 아니기 들레즈적으로 말하면 가능하겠죠.
그죠? 아니면 이것과 이것이 결합하여 나만의 독특한 아니 되기 나만의 여성되기 러드브니 나만의 남성되기 그죠?이 둘을 합쳐서 나만의 또 다른 대기로도 나갈 수 있는 거야.
아니무서는 반드시 여성의 상이나 남성의 상으로만 나타나는게 아니야.
이것은 동물에게도 적용되고 식물에게도 적용돼서 그죠.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면서 창조적 힘으로 나타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예술 가족 본성을 가진 자는 아무래도 아니무스의이 에너지가 정말 강력하게 쫓죠.
응.
만약에 시인이이 모든 우주의 존재자들이 그죠, 현전할 때 그것에 직접적 건너감을 통하여 되기를 수행하는데 만약에 시인이 이러한 아니 무스를 자기 자신 안에서 그죠 인격화하지 못하는 자라고 한다면 시인이 어떻게 될 수가 있겠어? 그림 그리는 그러한 화가들 역시도 동일한 거예요.
예술 작품을 만드는 그 모든 창조적 힘은 그죠.
아니의 힘에서 나타나는 거거든.
음.
거기서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그 힘을 모아서 그죠.
내가 작품을 창조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이 모든 아니 원형들 역시도 상징들인 거예요.
하나의 개념으로 해석할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 어머니 원형이 얼마나 많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어? 긍정적인 어머니 원형의 모습이 뭐가 있겠어? 보호하고 사랑하고 그죠? 품어주고 그리고 또한 그 모성을 통하여 특정 감정 상태가 풍성해지고 그죠 우주적 생명체와이 되어 있다라고 하는음 그러한 긍정적인 상도 있지만은 어머니 상 안에서 이것이 뒤틀려져서 그림자로 나타나게 될 때는 뭐야? 무시무시한 변덕과 그죠.
때로는 거짓말, 때로는 어떤 교활하고 변덕스러운 그런 모습, 마녀의 모습으로서도 나타나는 거야.
그래서 이러한 양극적인 특징이 아니스에도 그대로 들어 있는 거예요.
응.
아니무스는 밝은 면으로도 나타나지만 어두운 면으로도 나타나며 선한 것으로도 나타나지만 때로는 악한 것으로도 나타나고 그리고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모습으로도 나타나지만은 때로는 파괴적인 모습으로도 나타나는 거예요.
이 양자가 서로 결걸쳐 있는 거야.
여러분, 어느 한 면을 정확하게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거야.
그게 바로 무의식의 힘인 거예요.
응.
이건 역시도 다양한 상징으로서 우리가 해석할 수 있겠죠.
그죠? 응.
그러니까 내가 의식의 세계 안에서 페르소나의 가면을 쓰고이 사회적 관계를 할 때에 아니무스를 엄청 억누른다고 할 때 그건 도착되어서 또 다른 방식으로 그 인간을 신경증적으로 괴롭힐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페르소나는 그죠.
내적 영혼과 완전히 반대일 경우가 많은 거예요.
인격이 겉으로는 아주 훌륭한 사람.
그리고 누가 봐도 아주 어 나물할데 없이 낮에 인간은 그런 모습인데 그의 내면에 밤에 인간은 어떤 식으로 도착되어 있을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적절하게 나의이 내적 영혼을 나만의 되기를 통하여 창조적 모습으로 바꾸어 가면서 그죠.
삶의 주의상수로 포섭할 필요가 있는 이것은이 힘은 정말 무진장합니다.
여러분들이이 문학 작품을 읽고 예술 작품을 이렇게 관람할 때 그죠? 아니면 영극을 볼 때 곳곳에서이 아니무스의 흔적을 볼 수가 있는데요.
작품들 곳곳에 숨어 있는 거예요.
이런 사고는 특히 칼용도 니체를 좋아했잖아.
그죠? 니체의 유고집들뿐만 아니라 니체의 잠엄집들 그죠.
그런 곳에서 곳곳에서이 남성 안에 있는 아니 어 남성 안에 있는 감성적인 것 남성 안에 있는 직관적인 것 남성 안에 있는 디오니소스적 힘 어 그리고 여성 안에 있는 이성적인 것 로고스적인 것 논리적인 것 결정하는 것 그리고 용기를 갖고 그죠.
지성을 활용하는 거.
응.
이 모든 것들 의견을 제시하는 것 그죠?이 모든 것들이 함께 숨어 있다라는 거예요.
왜 무의식을 통하여 남성은 아니를 보충해야 되고 어 무의식을 통하여 여성은 아니 무스를 보충해야 될까? 그것의 기원을 바라보게 되면은 이미 고대 신하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죠.
어 곳곳에서 어떤 그 하나의 신체 안에 여성과 남성이 함께 있다라고 하는이 자동체의 사고가 곳곳에서 나타나잖아.
여러분.
응.
이 이 자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있지만은 대부분의 신화는 이런 출발점을 보이지 않는다라고 하더라도 왜 근친 상관을 통하여 자식들을 낳고이 신성이 그죠 계속해서 번식해 갔을까? 그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 봐.
이 이 신화들의 원형에는 왜 이러한 자동체와 근친상관이 자주 나타날까? 응.
인간 자체는 그 페르소나를 쓴 의식 세계 그죠.
그것만을 갖고는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라는 거예요.
어 그가 감추고 있는 거죠.
우주와 같은 바다와 같은 넓은 면을 같이 봐야 되는데 그것을 보게 될 때는 남성은 여성적인 것을 무의식적으로 보충하고 있고 그죠? 여성은 무의식적으로 남성적인 것을 보충하고 있다라고 봐도 되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결코 나의 페르소나의 인격을 통하여 그 반대극을 찾아나갈 수 없다라는 거예요.
이건 정말 무진장합니다.
응.
이것은 새로운 창조요.
그죠? 새로운 생성인 거예요.
삶의 힘인 것이고 그리고 아니서가 풍성한 자는 끊임없는 창조력을 발휘해서 그죠.
죽을 때까지도 쉬지 않는 응.
그런 무진장한 삶의 엘랑비따를 보여주는 자라고 해도 광언이 아닌가 여러분.
응.
다양한 방식으로 신하와 종교 텍스트와 민당과 전설과 아니면 개인의 이야기와 숨겨진 이야기 속에는 이미 내 안에든 아니 내 안에든 아니가 함께 표현되어 있고 그것은 특정 인간의 이상향으로서 그죠 어 특정 인간의 어떤 백마탄 찬왕자로서 공주로서 나타나고 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는 여신도 포함돼요.
아니무스 안에는 남신도 포함돼.
어 그래서 어떻게 보면이 신성은 에로스의 주의상스와 그죠.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라고 하는이 사고는 그죠.
바다유와 락강 이전에 이미 고대의 다양한 신하들에서 표현되어 있는 거야.
물론 그리스도 교훈은 이것을 그죠.
점점 거세하면서 완전한 순수자 어 순수 존재 순수 정신음 절대 정신 이런 것으로 신성을 표현하게 된 거야.
여러분 이것을 인도철하게 적용하면은요.
비교적 초기 배다 시대에는 신성들이이 아리안 족의 침투를 통하여 그죠.
이 배다 경전이 나타나잖아.
그죠? 그러니까 아리안족은 유목민이었고 유목민들은이 자연 세계의 다양한 어 사물들을 신으로 만들었고 태양신 그리고 바람의 신 폭풍의 신 또한 뭐 그 지지상에는 뭐야? 지상의 신 그리고 각각 모든 자연 세계의 사물들이 그죠? 현상들이 신이 된 거야.
그런데 이게 배다의 시대를 지나서 1500년 경에서 1천년 경으로 보잖아.
800년에서 300년 경로 가게 되면 기원전 우파니샤 시대가 나타나는데요.
이 시대가 되면은 신성이 순수 의식이 돼 버려.
그러니까 철학이 상당히 그죠.
고도화 됐다라는 거야.
이것은.
그래서 이것은 모든 종교의 역사적 발전 단계 안에서 거의 나타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예요.
응.
되게 초기의 신화들은 그죠.
상당히 적나라겠죠.
그죠? 초기의 그리스도교의 헌장 문서인 그죠.
구약 성서 역시도 응.
초기의 야외는 질투하고 화를 내고 어 불과 같이 화를 내서 적들을 죽이기도 하고 마치 전쟁의 신을 연상시키잖아.
그 사막신이.
그러다가 이제 점점 철학적으로 고도화 되는 것처럼 응 우파샤의 브라 역시도 뭐야? 모든 신들의 배후에 있는 우주적 원리가 돼 버리는 거예요.
응.
그게 브라만이에요.
우파니 샤드가 말하는 응.
신들의 배후 어 신들보다도 더 근원적인 거이 우주 만물의 제일 원리가 뭐냐 이래 나가 버린다고 그건 바로 불라만이다.
상당히 고도의 철학적 작업이 수행된 거죠.
그죠? 그러나 원초 신하에서는 남성신이 있고 여성신이 있고 그리고 그것에 의하여 때로는 자동체였다가 갈라져서 근친 상관을 통하여 번식을 하기도 하고 어 별 이야기들이 다 나타나는 거야.
그리스나 뭐 응 배다이 모든 이야기들 그리고 뭐 북유럽 신화부터 해서 곳곳에 그죠 신화들은 이런 것들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
음.
그래서 여성과 남성은 사실 떨어져 있지 않았겠죠.
그죠? 어.
내 안에 있는 여성 대기가 무엇일까? 내 안에 있는 남성되기가 무엇일까? 어, 그것은 내가 의식적으로 상상하는 것 그것이 결코 아니라고 하는 거.
여러분들이 그죠.
어떤 문학 작품을 읽어도 그 작품에서 아니무스가 보이는 경험을 할 거야.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이 칼융적으로 언제나 이미 그죠.
선음적으로 태어나면서 집단 무의식으로 인류 보편의 아니무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죠.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나의 체험처럼 다가올 때도 있는 거예요.
응.
이렇게 된다고 한다면 에로스 역시도 엄청 창조적인 그러한 힘으로서 그죠.
다양한 변화를 통하여 표현될 수 있겠죠.
그죠? 이것은 삶의 힘인 거야.
사실 여러분.
응.
에로스의 다양성.
내가 인류 보편의 집단 무의식으로서의 아니만큼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느냐는 그죠.
그 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예요.
응.
영화를 본다든지 그죠.
예술 작품을 관람한다든지 다양한 어떤 신성의 상황이나 여성의 상이나 어머니의 상이나 소녀의 상이나 그죠.
아버지의 상이나 영웅의 상이나 때로는 사탄의 상까지도 그죠.
이 모든 아니 특정상에 들어가는 거예요.
어 정말 티와 같이 맑은 소년의 상 역시도 아니에 들어 있는 거야 여러분.
응.
그것은 내 안에 있는 나 자신의 나르시시즘적 상과도 연결될 수 있겠죠.
그죠? 어, 독특한 방식으로.
어,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아니, 아니무스의 세계, 칼융이 말하는이 세계는 예술적 창조의 세계인 거야, 여러분.
응.
이것이 풍성해질 때 그 아래에 있는 우주적 힘으로서 그죠.
음양의 대극을 끊임없이 넘어서면서 젤푸스트이 자기를 완성해 가는 그 과정이 풍성해지고 힘을 얻는다는 거예요.
되게 그리스도교에서 훈련을 받은 자들은 조금 충격을 받는게 그죠.
이 이 에로스가 신성과 연결되어 있다라는 것을 그냥 우상이라고 공격해 버리잖아.
그건 뭐 원시 종교에 있었고 원시 종교에서 어떤 신성을 느낄 때 그죠.
디오니 소스적 춤을 치면서 남신과 여신이 서로 어 섹스를 하여서 또 다른 걸 만들어내고 이런 것들은 다 우상숭배가 되는 거잖아.
그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여성 신학이 나오면서 질문했던게 뭐예요? 아니 초기에 그리스도교의 신 역시도 그죠.
유일으로서 남성 지배적이고 가부장적 신의 모습을 띄지 않았던가? 이런 질문이 가능하잖아.
왜 그리스도교 안에는 여신이 없었을까? 나중에 이걸 통합해서 사랑의 신으로 가가게 되는 거야, 여러분.
응.
예수가 바꾸어 놓은음 하느님 개념에는 이게 숨어 있잖아.
그죠? 정말 많은 걸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내 안에 있는 아니 역시도 그죠.
어떤 특정한 개념으로 확정될 수 있는게 아니면 그 모든 건 다 상징으로 나타나옵니다.
어 다양한 방식의 다적 의미를 가진 상징.
어 그래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든 나의 모든 삶을 지배하는 그죠.
무의식적 힘으로서 작동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이 아니마 아니무스의 어떤 체험과 경험 이것의 의식화가 그죠.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의 삶은 뭐예요? 그만큼 힘의 의지가 강한 거야.
니체적으로 쇼페나우적으로 그죠.
삶의 의지가 풍성해지는 거예요.
이 지점에서 불교와 갈라집니다.
여러분 칼륨 역시도 불교보다는 그죠.
특히 니체도이 지점에서 갈라져.
어 그러니까 어떤 이러한 이러한 에로스의 체험을 애욕으로 부를 수도 있고 그죠.
어떤 물론 뭐이 이것이 어떤 욕망으로서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는 거예.
그리고 이것은 때로는 아니 무슨 그리스도 교회 영성의 길을 가는 자뿐만 아니라 불교의 수행의 길을 가는 자에게서도 어떻게 보면 절제되어야 할 대상일 수도 있는 거야.
그죠? 수행의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응.
그러나 이런 경험 자체를 불교는 또 거부하지는 않겠죠.
그죠? 그 이런 거지.
아, 내 안에 내 마음속에 이런 아니 무수가 올라오는구나.
어, 이러면서 수행을 계속해 나가겠지만 결국 결국 깨달음을 통하여 그죠.
해탈을 얻는 과정 그죠.
이 우주의 삼남만상이 연기법이에요.
그죠? 모든 것이 무역 무화라고 한다면 그 깨달음의 길을 가는 길에 있어서 아니 무슨 강력한 체험의 대상이 아니라 벗어나야 할 대상인 거예요.
불교에서도 그래서 니체가 도덕의 개보학 제3 논문에서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싸잡아서 까버리는 거야.
이 지점이 달라지는 거야.
이 지점이 쇼페나워에게서도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니체는 뭐예요? 삶의 의지 자체를 긍정하라는 거고 융도 이렇게 가니다.
그러니까 에로스의 어떤 충동이 일어나면 그 충동 자체를 긍정하라는 거야.
응.
그걸 삶의 에너지로 삼아서 새로운 창조의 힘으로 삼으라는 거야.
응.
그건 피하고 절제해야 할 어떤게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이러한 고행의 길을 가고 수행의 길을 간다는 것 자체는 뭐예요? 어떻게 보면은 이것을 피하는 것과 같이 그죠.
뭔가 이것이 일어나면 이것이 죽을 때까지 그냥 내가 그것을 보고 있다라고 하는 거 그죠.
그것은 언젠가는 닐바의 상태, 불이 꺼진 상태로 가는 응 그 지점에서의 과정에 도와서는 될 수 있겠죠.
그죠? 그러나 그 자체가 어떤 긍정해야 될 에너지는 아닌 거예.
응.
그래서 쇼페나워 역시도이 세계의 물 자체의 세계는 의지의 세계요.
그죠?이 이 자연의 힘, 움직이는 힘은 인간의 신체와 만나서 역동을 일으키고 욕망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것은 나중에 미약적으로 그죠.
뭔가 벗어나야 될 그런 힘으로 쇼펜하워는 규정하잖아.
거기에 불교의 닐바가 들어 있는 거야.
음악의 힘 역시도이 의지의 힘으로서의 욕망을 그죠.
제어하고 억제하는 데에 엄청난 역할을 하는 거예요.
불교의 닐바나.
그러나 니체가이 지점에서 갈라지는 거예요.
응.
니체는 이것 자체를 힘의 의지라고 생각해라.
이것 자체를 긍정해라.
응.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든가간에 그것을 긍정하면서 또 파괴하고 너 자신의 어 초인되기를 향하여 건너편으로 건너가라.
응.
너 자신을 극복해 가는 그 과정에 있어서 이런 것들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다.
니체 일어나가는 거예요.
칼륨 역시도 그래.
자기 자신은 그래서 노자를 약간 더 긍정적으로 본 것도 있는 거예요.
음양의 대극을 끊임없어서 초극해 간다라고 하는 것.
음.
그것은이 자연의 힘.
응.
그리고 아니의 힘, 에로스의 힘 자체를 벗어나는게 아니라이 자체가 신성이요.
이 자체를 긍정하는게 바로 우주적 힘과 이되어 있다라고 하는 거.
음.
칼은 뭐 곳곳에서 한 말은 아니지만 그죠.
응.
이 앞에 가쓴 그 제자가 쓴 작품이 있어.
응.
이 이 앞에에 이너름 계단켄 폰 칼융이라고 하는 칼융의 기억 사고 그리고 또 하나가 더 들어가는데 그 작품에서도 이야기합니다.
어 야페가 편집했겠죠.
그죠? 칼융의 어떤 뭐 개인적인 사담이라든지 아니면 뭐 그 전집에는 나타나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을 그죠 모아 놓은 작품인 거야.
어 이웅을 기억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정신 분석을 하면서 남겨 놓았던 그런 이야기들도 거기에 들어가 있겠죠.
그죠? 거기에서 분명히 말해요.
자기가 자기의 분석 심리학은 불교로부터 배우는 것은 너무나 많지만은 그러나 불교와 다른 길을 가는 건 바로 이지이다.
어 철저한 아니의 긍정을 통하여 그 안에서 신성을 보는 거.
어이 자체가 삶의 에너지요.
그래 니체로부터 영향이 아주 큽니다.
칼용은이 점에서 응 이건 역시도 거의 예도 TV에서만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응 그래서이 자체를 긍정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놓고 보면은 칼융은 뭐예요? 칼융의 아니마 아니가 젤푸스와 연결되어 있다라고 하는 거.
그 아래에 자기와 연결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은 확실히 바다이 락한과 같이 가는 거예요.
이 지점은 어 그러나 칼용은 집단 무의식으로서 그죠.
이 신화 어이 인류학의 원형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 풍성하면 장난이 아니잖아.
그죠? 영적이고 정신적인 거, 종교적인 거 그죠?이 에로스 아니스를 긍정하면서 그 안에서 신성을 보는 거.
아, 이것은 각 대가들마다 생각이 다른 것 같아.
어, 여러분들도 한번 깊이 사유해 보셔.
아니, 아니무스는 또 연결해서 강의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재밌었죠.
그죠? 얘도 물러갑니다.
주스.
영상 정리
영상 정리
1. 존재의 숲과 초여름 냄새가 느껴집니다. 새소리와 자연의 힘이 가득하죠.
2. 이 강의는 칼융의 아니마와 아니무스 주제입니다. 내 안의 남성, 여성 원형을 탐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