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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과 복수, 자식 집 라면 끓이기 비법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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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집에서 라면 끓여먹다가 매몰차게 쫓겨난 할아버지의 복수 노년의 삶의 지혜 행복한 노후생활 부모자식갈등 사연 이야기 오디오북

인생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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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자식 집에서 라면 끓여먹다가 매몰차게 쫓겨난 할아버지의 복수 노년의 삶의 지혜 70대 할머니의 노후생활 부모자식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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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박명철이라고 합니다.

정말 비참했던 제 사연 좀 들어 주세요.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아들 내외가 사는이 번듯한 아파트는 물이라도 뿌린 듯 고요했지요.

거실 창 밖으로는 도시의 불빛들이 별처럼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지만 그 어떤 불빛도이 집 안에 정막함 속으로 들어오지는 못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소파의 등을 기 꺼진 텔레비전 화면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화면에는 제 초라한 그림자만 얼음거릴 뿐이었어요.

이곳에서의 제 삶이란 늘 그런 시기였습니다.

아들의 성공이 제 유일한 자랑이었기에 며느리가 살림을 합치자고 했을 때 기꺼이 평생을 살던 낡은 빌라를 처분하고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제 자리는 어디에도 없더군요.

갓비싼 이탈리아제 소파는 제 몸에 맞지 않게 너무 푹신했고 대리석 바닥은 한 여름에도 선을했으며 벽에 걸린 추상화들은 도무지 정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이 집의 일부가 아니라 그저 어울리지 않게 놓인 낡은 가구 같은 존재였어요.

그날 저녁 며느리가 차린 저녁상은 손바닥만 한 샐러드와 닭가슴살 몇 조각이 전부였습니다.

건강을 생각하셔야죠.

아버님이라는 말과 함께였죠.

평생 밥심으로 살아온 늙그니에게는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군소리 한번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입맛을 이야기하는 것조차이 집에 품격을 해치는 일처럼 여겨졌으니까요.

결국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꼬르륵거리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배고픔은 서러움을 동반하는 법이지요.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몸을 일으켰습니다.

부엌크로 가기로 마음 먹은 겁니다.

제 평생의 위안이자 소울푸드였던 라면 한 그릇이 간절하게 생각났거든요.

아들 내외가 깰까 봐 발소리마저 죽여가며 살금살금 부엌크로 향했습니다.

행연아 마룻바닥이 삐걱거릴까 봐 무게 중심을 발끝에 씻고 조심스럽게 걸었어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찬장을 열었습니다.

다행히 구석에 라면 몇 봉지가 남아 있더군요.

며느리는 이런 정크푸들을 혐오했지만 아들이 가끔 해장용으로 찾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평범한 녀석으로 하나를 집어들었습니다.

찬장에서 냄비를 꺼내는 소리, 갓비싼 정수기에서 물을 받는 소리, 인덕션 전원을 켜는 소리까지.

이 이 집의 모든 소리가 제게는 너무나 크고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마치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도둑놈이라도 된 기분이었어요.

인덕션이 가열되는 소리와 함께 냄비 속에 물이 조용히 끌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면과 수풀을 넣었습니다.

곧디어 구수하면서도 짭짤한 아주 익숙하고도 반가운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어요.

젊은 시절 고된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아내와 함께 나눠먹던 그 라면 냄새 아들이 어렸을 적 시험 공부한다고 밤을 세울 때 끓여주던 바로 그 냄새였습니다.

피어오르는 김너머로 제 인생에 고단했던 그러나 행복했던 순간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듯했습니다.

젓가락으로 면을 살살 풀어 주며 완벽하게만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저는이 집에서 처음으로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라면이 가장 맛있게 익었다고 생각된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안방 문이 소리 없이 아주 천천히 열렸습니다.

쾅하고 열렸다면 차라리 놀라기라도 했을 텐데 그 느리고 불길한 움직임은 제 심장을 더 옥재어 왔어요.

복도의 센서등이 켜지면서 길고 날카로운 그림자가 부어크로 스며들었습니다.

비싼 실크 잠옷 차림의 며느리었습니다.

아버님, 지금 이게 무슨 냄새예요? 첫마디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경멸과 혐오가 가득 담긴 비난이었지요.

며느리는 마치 오물이라도 본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손으로 코를 막았습니다.

아, 그게 저녁을 변변치 않게 먹었더니 출출해서 말이다.

제 변명은 며느리의 귀에 닿기도 전에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세상에 아버님,이 밤중에 라면이라니요? 이 집의 뱃냄새는 어떡하실 거예요? 제가이 인테리어에 얼마나 공을 드렸는지 모르세요? 저 이탈리아제 패브릭 소파랑 저 커튼에 이산티나는 냄새면 책임지실 거냐고요? 며느리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낮았지만 그 안에는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습니다.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며느리가 혐오하는 것은 제 존재 그 자체였어요.

이 품격 있는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냄새 나는 늙으니 저는 그저 끌어오르는 라면 냄비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때 잠결에 뒤척이던 아들까지 부수스한 모습으로 부엌해 나타났습니다.

저는 내심 아들이 제편을 들어 주리라 혹은 최소한 아내를 말려 주리라 기대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산산 조각 났어요.

아버지 제발 좀 유난 떨지 마세요.

수진이 힘든 거 안 보이세요? 아들은 저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아들의 눈에는 제가 아내를 괴롭히는 철없는 늙은 이로 비치는 듯했습니다.

아니 내가 내 집에서 라면 하나 내 맘대로 못 꾸려 먹느냐? 수십년간 쌓아온 아버지로서의 권위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억울함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그러자 아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습니다.

아버지 집이요.

여기 월세 한 푼 보태셨어요.

관리비 한번 내셨어요? 여기는 제 집이고 수진이 집이에요.

제발 여기 방식에 좀 맞추세요.

남들이 알면 뭐라고 하겠어요? 아들 집에 셔터맨처럼 얹혀 사는 늙은 아버지가 밤마다 라면이나 끓여 먹는다고요.

셔터맨.

그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제 가슴에 박혔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제 손에 들린 젓가락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방금 전까지 저를 위로해 주던 라면의 온기는 온데간데 없고 차가운 냉기만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전 그렇게 아버지 방식대로 사실 거면 이런 답답한데 말고 아버지 편한 곳으로 가시든가요? 며느리가 악에 바친 목소리로 쏘아붙였습니다.

그것은 신호탄과도 같았습니다.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 말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게 좋겠네.

서로 불편하게 이렇게 사느니 아버지가 편한 곳으로 가시는게 맞겠어요.

그들의 대화는 마치 미리 짝이라도 한 연극의 대사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제 존재 자체가이 집의 불행의 근원이라는 뜻이 말이에요.

수십년 묵은 서름과 배신감이 한 순간에 폭발했습니다.

제 안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 나간다.

너희들 잘났다.

이 늙은이가 없어져 주면 아주 행복하겠구나.

나가고 말고 확김에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그러자 아들의 얼굴의 순간 안 도하는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 표정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들은 제 사과나 화해를 원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저 제가 사라지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네.

아버님, 그게 저희 모두를 위해 좋은 길이에요.

며느리는 제빨리 안방으로 들어가 제 낡은 겨울 외투를 들고 나왔습니다.

아들은 아무 말 없이 현관으로 가더니 디지털 도어록의 잠금을 해제했습니다.

띠리 하는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한 겨울의 칼바람이 집 안으로 매섭게 몰아쳤습니다.

그 바람은 제 잠옷을 파고 들며 마지막 남은 온기마저 빼앗아 갔어요.

저는 멍한히서 있었습니다.

짐을 챙길 생각도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외투 하나를 잠옷 위에 걸쳤을 뿐이에요.

제 주머니에는 낡은 지갑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아들은 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저 문을 열고서 있었습니다.

서 나가라는 무원의 압박이었죠.

저는 제 발로 집을 나섰습니다.

아들의 얼굴, 며느리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묵묵히 현관을 넘어섰습니다.

등 뒤로 묵직한 방화문이 다치는 소리가 철컥하고 울렸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제 인생의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선고처럼 들렸습니다.

차가운 복도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슬리퍼 차림의 발바닥으로 대리석의 냉기가 고스란이 전해져 왔습니다.

방금 전까지 제가 있던 저 문 너머의 세상은 이제 완벽히 다른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저 70대 늙으니 한 겨울 밤에 라면 한 그릇 끓여 먹다 아들 집에서 쫓겨난 갈 곳 없는 노인일 뿐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 위해 뻗은 손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습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제 심장에는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가 자리잡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문이 다치고 저는 아들이 사는 그 화려한 우주에서 완벽하게 추방되었습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그 짧고도 영원 같던 시간 동안 머릿속은 텅빈 고요함에 잠겼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엘리베이터가 하강하며내는 위잉하는 기계적인 소음만이 제 텅빈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듯했습니다.

1층 로비의 눈부시의 밝은 샹들리의 아래로 나서자 육중한 유리 자동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한 겨울의 밤기를 제게 토해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추위가 아니었습니다.

잠옷 위에 외투 하나만 걸친 제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바늘로 찌르는듯한 폭력적인 냉기였지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제 와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막막함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제 발밑을 핥키고 지나갔습니다.

평생을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그의 성공을 제 삶의 유일한 훈장처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를 위해 제 젊음과 돈, 시간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믿었는데 결국 제게 남은 것은 한 겨울 밤거리에이 냉기뿐이었습니다.

아들의 세상에서 제 존재의 무게는 고장나면 한 봉지만도 못 했던 겁니다.

결국 비틀거리는 제 발걸음이 향한 곳은 24시간 희미한 불빛을 내뿜고 있는 동네 찜질방이었습니다.

아들의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음습한 골목으로 접어들수록 세상의 온도는 급격히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낡은 타일이 군대군데 깨진 건물 입구에서는 퀵키하고 축한 냄새가 세어나오고 있었지요.

저는 잠시 망설렸습니다.

평생 이런 곳에서 잠을 청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카운터에 무표정한 젊은 직원에게 몇 천원을 건네고 소동량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찜질복과 수건 한 장을 받아들었습니다.

남탕의 타리실을지나 수면실로 들어선 순간 저는 거대한 한 숨을 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넓은 홀에는 이미 수십명의 남자들이 제각의 형태로 뒤엉켜 잠들어 있었습니다.

술의 취에 대자로 뻗은 중년 남자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을 보다 잠든 청년 서로의 몸에 기대어 웅크린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그들의 세상과 제세상은 본래 아무런 접점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방에서 들려오는 각양각색의 코꼬리 소리는 마치 불렵음의 교향곡처럼 귀가를 어지럽혔고 땀과 발냄새가 뒤섞인 공기는 숨을 쉴 때마다 비위가 상할 지경이었습니다.

아들 녀석의 집 그 정막할 정도로 고요하고 갓비싼 방향제 냄새가 나던 공간과는 모든 것이 정반되었습니다.

저는 가장 구석진 곳 사람들의 발길이 덜 닿는 곳을 찾아 겨우 몸을 누였습니다.

바닥에깐 얇은 매트리스로는 냉기를 막을 수 없었고 딱딱한 바닥은 제 평생의 고단함이 쌓인 등을 사정 없이 배기게 했습니다.

옆사람이 뒤척일 때마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시큼한 땀 냄새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이 모든 비참함 속에서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습니다.

서러움이라는 감정은 이미 제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더 단단하고 차가운 무언가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노였습니다.

핏물 빠진 고기처럼 차갑고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 같은 분노.

그리고 그 분노의 밑바닥에서는 작은 불씨 같은 오기가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인생을 내 존재를 이대로 부정당한 채 끝낼 수는 없다는 마지막 저항감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퉁퉁 부은 눈과 뻐근한 몸을 이끌고 찜질방을 나섰습니다.

밤새 뒤척인 탓에 온몸이 솜처럼 무거웠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아진 기분이었습니다.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발길이 이끄는 대로 정처 없이 걸었습니다.

화려하고 번쩍이는 신도시를 지나자 점차 낡고 키작은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눈에 익숙한 제 젊음의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 있는 구도심이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어느새 제 발걸음은 제가 세상을 떠난 아내와 함께 작은 국밥집을 운영했던 낡은 시장 골목에 다아 있었습니다.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골목의 구불구불한 형태와 생선 비린내 고소한 기름 냄새가 뒤섞인 공기는 희미하게 남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가게들이 간판을 바꾸고 주인을 바꿨지만 제 기억 속에 풍경과 겹쳐지며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제 발걸음이 마치 자석에 이끌린 쇠조각처럼 허름하기 짝이 없는 2층짜리 상가 건물 앞에서 우뚝 멈춰섰습니다.

1층의 낡은 셔터는 붉은 농물 자국을 눈물처럼 흘리고 있었고 2층의 유리창은 세상의 모든 먼지를 다 뒤집어 쓴 듯 뽀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아내가 제게 남긴 단 하나의 유산 바로 그 건물이었습니다.

국밥집을 하며 억척같이 번 돈으로 미래를 위해 사두었던 작은 재산.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로는 그곳을 볼 때마다 아픈 기억이 떠올라 애써 외면하고 방치해 두었던 공간입니다.

아들에게조차 그 존재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그저 잊지 않고 꼬박꼬박 세금만 내오던 곳 저는 그 녹슨 셔터문에 가만히 손을 대보았습니다.

차갑고 거친 감촉이 손바닥을 통해 심장까지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기억의 조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제 이름으로 된 낡고 푸른색의 통장.

회사에서 정년 퇴직하며 받은 퇴직금의 일부와 아내의 사망 보험금을 합쳐 넣어 두고는 까맣게 입고 지냈던 돈이었습니다.

아들이 결혼할 때 가진 돈 전부를 털어 집을 사줬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제 무의식이 마지막 비상금처럼 남겨두었던 저만의 보루였지요.

아들 내외는 제가 가진 것 없는 빈털털리 노인이라고만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들이 제게 그토록 오만하고 무래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겠지요.

저는 그 상가 건물 앞에 유령처럼 한참을서 있었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분노 그리고 막막한 미래가 머릿속에서 뒤엉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 안에서 하나의 결심이 단단하게 굳어졌습니다.

다시는 그 녀석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용서를 구하느니 차라리이 제더미 위에서 내 힘으로 다시 일어서겠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은 사치였습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저를 한 겨울 밤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바로 그것 라면이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해보자.

이 이 세상 그 누구도 감히 품격 없다거나 싼 난다고 무시할 수 없는 가장 완벽하고 진한 라면 한 그릇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이리라.

저는 주머니 속에 낡은 지갑을 힘주어 움켜지었습니다.

제 심장이 오랜만에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망설림 없이 가장 가까운 은행을 향해 제 인생 이막을 여는 첫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은행 창구 직원은 잠옷 위에 외투만 걸친 제 초라한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노골적으로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하지 않고 품속에서 꼬깃꼬깃한 통장을 꺼내 내밀었습니다.

직원은 반신반해하며 통장을 받아들고는 한참 동안 컴퓨터 화면과 통장을 번갈아보더군요.

그리고 제게 본인 확인을 위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진 뒤 마침내 그 안에 잠들어 있던 금액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수십년 간의 세월이 이자와 함께 쌓여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x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저는 단순한 돈 이상의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제 잃어버린 시간과 아내의 희생과 그리고 앞으로 제가 휘두를 수 있는 무기의 실체였습니다.

저는 곧장 아내의 유산이었던 그 낡은 상가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건물 근처에 허름한 대박 부동산이라는 곳에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기름 머리를 한 중계인은 제 계획을 듣자마자 담배를 입에 문채 혀를 찾습니다.

아이고 어르신 지금 저승은길 가고 싶어서 환장하셨소.

이 골목 상권 죽은지가 언젠데 여기서 장사를 하시겠다고요? 여긴 대낮재도 사람이 안 다녀요.

저 건너편에 의욕 넘치던 젊은 놈이 떡볶이집 차렸다가 3개월 만에 빛만 잔뜩지고 나갔고 그 옆에 치킨집은 6개월 버티다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 놨소.

어르신 제가 사람 열어 살리는 샘 치고 말씀드리는데 그 돈으로 그냥 따뜻한 방 하나 얻어서 편히 사세요.

왜 사서 고생을 하시려고 그럽니까?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제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장사가 아니었습니다.

제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세우고 저를 내쫓은 세상에 저의 존재를 증명해야 할 전쟁터였으니까요.

저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할 거요.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사업자 등록이나 알아봐 주시오.

제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중개인은 결국 투덜거리면서도 필요한 서류와 절차를 안내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저의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수십년간 닫혀 있던 셔터를 온 힘을 다해 들어올리자 갇혀 있던 시간의 먼지들이 햇빛 속에서 춤을 추도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는 페어나 다름 없었습니다.

바닥에는 썩은 나뭇조각과 정체모를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고 벽지는 곰팡이로 검게 얼룩 너덜거렸습니다.

천장 구석에는 비둘기들이 집을 짓고 푸드덕거리고 있었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그야말로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망설리지 않았습니다.

낡은 작업복을 구해 입고 팔을 걷어붙인 채 빗자루부터 들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저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묵묵히 쓸고 닫고 폐기물을 밖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등과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습니다.

손바닥에는 물집이 잡혔다가 터지기를 반복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잠시 허리를 펴고 땀을 닫고 있는데 가게 입구에서 한 청년이 저를 물끄러이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바로 그 청년이었습니다.

헬 낡은 후드티를 입고 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이상하게도 총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경계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자 청년이 먼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저 할아버지 며칠째 지켜봤는데요.

혹시 일손 필요하지 않으세요? 저는 대답 대신 그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청년은 제시선에 주눅이든 듯 말끝을 흐리며 덧붙였습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힘쓰는 건 자신 있는데 큰 돈은 안 주셔도 괜찮아요.

그냥 저녁에 라면이라도 한 그릇 끓여 주시면 그 라면이라는 한마디에 제 마음속에 경계심이 조금 허물어졌습니다.

근처 고시원에서 살며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다는 자신을 이준영이라고 소개한 그 청년의 눈빛에는 절박함과 함께 진솔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저와 준영군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젊고 건강한 청년의 손길이 더해지자 패어갔던 공간은 놀라운 속도로 변해 갔습니다.

우리는 함께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벽에 곰팡이를 긁어내고 삐걱거리는 문을 수리하고 반짝거릴 때까지 바닥을 닦았습니다.

저녁이면 가게 한 구석에 번어를 놓고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땀 흘려 일한 뒤 먼지싸인 바닥에 주저 앉아 먹는 라면은 세상 그 어떤 진수 성찬보다 맛있었습니다.

가게의 기본 골격이 갖춰지자는 제 인생을 건 레시피 개발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라면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한 그릇에 제 인생과 철학 그리고 복수심까지 담아내야 했지요.

제 기억에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아내의 국밥집 육수 비법을 되살려냈습니다.

그녀는 늘 말했습니다.

국물은 정직한 거야.

좋은 재료로 오랜 시간 정성을 드린만큼만 맛을 내주지.

저는 새벽 시장을 돌며 가장 신선한 사골과 잡을 구해 왔습니다.

커다란 소태에 뼈를 넣고 핏물을 빼고 몇 시간에 걸쳐 끓여내며 불순물과 기름을 쉴새 없이 걷어냈습니다.

첫 번째 육수는 너무 기름졌고 두 번째 육수는 깊은 맛이 부족했습니다.

거기에 양파와 대파뿌이 통우추를 넣어 잠내를 잡고 무와 다시마을 넣어 시원한 감칠맛을 더했습니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육수는 점점 제가 원하는 맛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활용 점정은 저만의 비법 양념장이었습니다.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간장 같은 기본적인 재료에 볶은 소고기와 잘게 다진 채소를 넣어 깊이를 더했습니다.

매운 맛, 단맛, 짠맛, 감칠맛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도록 수십번의 배합을 거쳤습니다.

준영군은 제 유일한 시가이자 가장 냉철한 비평가였습니다.

이 녀석은 맛 없는 것 앞에서는 가차 없었지만 그 덕분에 저는 더 완벽한 맛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날밤 새로 완성된 여덟 번째 육수에 가장 이상적인 굵기의 면을 삶아넣고 붉고 진한 비법 양념장과 정성껏 준비한 고명을 올려 준영군에게 내밀었습니다.

그 녀석은 긴장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한 입 맛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 그 맛을 은미하더군요.

이윽고 눈을 뜬 그의 얼굴에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경의로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이거예요.

이건 그냥 라면이 아니에요.

이건 요리예요.

완벽한 요리라고요? 그 한마디에 제 인생을 짓누르던 모든 서름과 분노가 뜨거운 국물에 녹아내리는 듯했습니다.

가게의 이름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할아버지의 심야라면으로 정했습니다.

저를 나락으로 밀어넣었던 그 이름이 이제는 저를 세상으로 다시 일으켜 세울 희망의 깃발이 될 것이었습니다.

테이블네 개가 전부인 작고 초라한 가게였지만 그곳은 제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워 나갈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저의 성이었습니다.

마침내 할아버지의 심야라면이라는 소박한 간판에 불을 밝히는 날이 왔습니다.

저와 준영구는 이른 아침부터 가게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습니다.

같이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경건한 마음으로 밤새 정성껏 우려낸 진한 육수를 커다란 소태 가득 채웠습니다.

반짝거리게 닦아 놓은 스테일리스 주방은 제 새로운 무기들로 가득한 무기처럼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긴장된 마음으로 첫 손님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가게 문은 굳게 다친 채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었지만 후미진 골목 안쪽까지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고 끓고 있는 육수의 구수한 냄새만이 텅빈 가게 안을 외롭게 채우고 있었지요.

저는 애써 태어난 척했지만 속은 까맣게 타 들어갔습니다.

제 오기와 분노가 결국 현실의 벽 앞에서 부서지는 무모한 도전은 아니었을까? 옆에서 저를 지켜보던 준영군의 얼굴에도 조금씩 그늘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고 밤 9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일을 기약해야지요.

제가 소해 불을 끓여던 바로 그 순간 거짓말처럼 딸랑하는 작은 종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렸습니다.

야근에 찌든 기색이 영역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서류 가방을든 중년의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는 가게 안을 한번 쓱 둘러보더니 메뉴판을 볼 것도 없이 라면 하나 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마치 평생 기다려온 손님을 만난 것처럼 반갑게 글을 맞았습니다.

네, 됩니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제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라면 한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면이 가장 쫄깃하게 익는 시간, 국물이 가장 뜨겁게 유지되는 온도, 고명이 가장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위치까지.

모든 과정에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라면 그릇을 손님 앞에 내려놓자 그는 지친 눈으로 잠시 라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입 조심스럽게 떠서 맛을 보았습니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놀라움으로 변하는 미세한 표정 변화를 저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후로 아무 말 없이 정말 고개 한번 들지 않고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국물 한 방울까지 후르륵 마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오더니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잔도는 괜찮습니다.

정말 오늘 하루에 피로가 다 풀리는 기분입니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그는 제게 90도로 허리를 깊숙히 숙여 인사를 하고는 가게를 나섰습니다.

그 진심 어린 인사 한마디와 그가 남기고 간 온기.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였습니다.

제 라면이 제 진심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저는 눈시율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기적은 그 작은 씨앗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직장인이 약속이라도 한 듯 대여섯 명을 이끌고 가게를 다시 찾아온 겁니다.

그들은 모두 재라면 맛에 극찬을 쏟아내며 돌아갔고 그날 이후로 아름아 손님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변화의 기폭제는 준영군의 손에서 터졌습니다.

가게에 몇 안 되는 단골이 된 근처 대학교 학생들을 지켜보던 준영군이 제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요즘 사람들은 맛있는 걸 먹으면 사진부터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요.

우리도 그걸 이용해야 해요.

저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지만 준영군을 믿고 맡기기로 했습니다.

준영군은 가장 먹음직스럽게 끓여낸 라면을 여러 각도에서 사진으로 찍고는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에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흙속의 진주 발견.

후미진 골목 인생 라면 영접 후기라는 조금은 과장된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그래는 먹음직스러운 라면 사진과 함께 은퇴한 할아버지께서 평생의 노하우로 끓여 주시는 단일 메뉴 라면집.

인스턴트와는 차원이 다른 깊은 육수맛에 눈물 흘릴 뻔.

제발 없어지지 않게 다들 한 번씩만가 주세요라는 애정 어린 사연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게시의 파급력은 제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좋아요가 수백개를 넘어개 가까이 달리고 댓글이 폭주하기 시작했어요.

여기 어디냐? 당장 좌표 찍어라.

사진만 봐도 국물맛이 느껴진다.

이건 진짜다.

이런 곳이 우리 학교 근처에 있었다니 등등 젊은 학생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습니다.

다음날 점심 시간 저는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의 문을 열기 전부터 이미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학생들이었습니다.

가의 문을 열자마자네 개의 테이블은 순식간에 만석이 되었고 제 손과 준형군의 발은 쉴틈 없이 움직여야 했습니다.

주문이 밀려들고 라면을 삼고 육수를 붓고 그릇을 내가고 빈 그릇을 치우는 과정이 무한 궤도처럼 반복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점심 장사를 위해 준비했던 육수가 거의 동나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이 지나자 저녁에는 인근 직장인들까지 합세했습니다.

하루 종일 라면을 수백 그릇이나 만들어내느라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팔을 들 힘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텅비었던 가게가 손님들의 활기찬 웃음 소리와 맛있게 라면 먹는 소리로 가득 차는 것을 보며 저는 잊고 있던 삶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치열한 날들이 예고도 없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게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습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시작된 입소문은 직장인 커뮤니티로 그리고 지역 맘카페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이제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맛집을 넘어 일부러 차를 몰고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생겨났지요.

저는 결국 준영군 외에 주방 보조와 홀빙을 담당할 아르바이트생을 두 명 더 고용해야만 했습니다.

주방에서는 쉴새 없이 육수가 끌었고 가게 밖에는 늘 긴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아들 집에 얹혀 살며 눈치밥을 먹던 무기력한 늙은이가 아니었습니다.

손님들은 제게 사장님 정말 맛있습니다.

사장님, 오래오래 장사해 주세요라며 존중을 담아 말해 주었고 저는 그들의 말 한마디에 지난날에 서름을 씻어내는 기분이었습니다.

한편 제가 읽어낸이 작은 성공의 파장은 제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까지 미치고 있었습니다.

며느리 김수진은 그날도 어김없이 백화점 VIP 라운지에서 지인들과 우아하게 애프터는 티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새로산 명품 시계를 은근슬쩍 자랑하고 아들이 곧이 있을 승진 심사에서 가장 유력하다는 허풍을 떨며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고 있었지요.

그때 맞은 편에 앉은 지인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호들갑스럽게 말했습니다.

어머 수진 씨 이거 봐.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제일 핫하다는 라면집이래.

할아버지의 심야 라면이라고.

비주얼이 장난 아니지? 육수가 무슨 프랑스 요리 콩솜에 갔다네.

근데 이름이 좀 촌스럽다 그치? 웬 할아버지? 할아버지 심혈라면 그 두 단어가 며느리의 귀가의 번개처럼 내리꽂혔습니다.

며느리는 순간 티스푼을든 손을 허공해서 멈췄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스쳤지만 애써 미소를 지으며 어머 별개 다 유행이네라고 태어난 척 데구했습니다.

하지만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서 그 이름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도착한 며느리는 참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그 가게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검색 결과가 화면에 나타나는 순간 며느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습니다.

수백개가 넘는 블로그 포스팅과 인스타그램 개시물 그중 한 유명식 블로거가 올린 글에는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상세한 후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겼습니다.

먹음직스러운 라면 사진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사진 소박하지만 정갈 가게 내부 사진 그리고 마지막 사진 주방 안에서 하얀 위생물을 쓴 채 뚝배기에 정성껏 라면을 담고 있는 제 얼굴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땀 흘리며 일하는 제 얼굴에는 아들 집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생기와 자부심이 어려 있었습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이 영감이 지금 여기서.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품격 없고 산티난다고 경멸하며 내쫓았던 시아버지가 지금 온 세상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다는 핫한 맛집의 사장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것은 단순한 배신감을 넘어선 자신의 안목과 가치관 전체가 부정당하는듯한 구욕이자 모욕이었습니다.

며느리는 당장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 지금 어디야? 아버지라는 작자가 지금 밖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지 알기나 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라면집 사장님이 되셨다고.

이게 무슨 망신이야? 퇴근길에 운전을 하고 있던 아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며느리에 겨강된 설명을 듣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한 그는 반신반이 하며 다음날 직접 확인해 나서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오후 아들은 제 가게가 있는 허름한 골목으로 자신의 번쩍이는 외제차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평일 오후에 한산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게 앞에는 여전히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을서 있었습니다.

고급 세단 안에서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바라보는 아들의 표정은 당혹감과 불쾌함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혼란으로 복잡하게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는 차마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한참 동안 가의 주변만 맴돌았습니다.

마침내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차에서 내린 아들은 줄을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가게 문을 열고 성큼 들어왔습니다.

마침 손님 한 팀이 나가 빈 그릇을 치우고 있던 저는 고개를 들었다가 아들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습니다.

가게 안에 소음이 순간 멋는듯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아들은 어색하고 복잡한 표정으로 제게 다가와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투로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이게 다 뭐예요? 여기서 지금 뭐 하고 계신 겁니까? 이제 그만 고집 부리시고 저랑 같이 집으로 가시죠.

저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하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손에든 행주로 테이블을 마저 닫고는 허리를 펴고 아들을 똑바로 마주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 가게를 찾은 다른 모든 손님들에게 그러하듯 지극히 사무적이고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혼자 오셨습니까? 죄송하지만 지금 자리가 꽉 차서요.

주문은 저쪽 기계에서 먼저 해 주시고 밖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순서가 되면 저희 직원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제 입에서 나온 냉랭한 손님이라는 단어에 아들의 얼굴이 순간 불그락푸르락 달아올랐습니다.

그는 무언가 더 말을 하려 했지만 주변 손님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시선에 입을 꾹 다물고 말았습니다.

아들이 아닌 그저라면 한 그릇 먹으러온 한 명의 손님으로 취급당하는이 상황을 그는 견딜 수 없는 듯했습니다.

아들은 결국 라면 한 그릇 주문하지 못하고 분노와 모욕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거칠게 돌아서서 가게를 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새차게 다치는 가게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육수가 담긴 국자를 다시 단단히 움켜지었습니다.

복수의 서막은 이제 막 올랐을 뿐이었습니다.

아들이 핏발선 눈으로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간 그날 이후 제 일상은 기묘한 평온함 속에 잠겼습니다.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에 바다처럼 표면은 잔잔했지만 그 아래에서는 거대한 무언가가 꿈틀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지요.

저는 묵묵히 제일을 계속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시장에서 가장 신선한 재료를 고르고 밤새도록 정성껏 육수를 끓이고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해 라면을내어 드렸습니다.

가게는 연일 인산 인해를 이루었고 제 몸은 쇠를 두드려 맞은 듯 고단했지만 정신만은 펄펄 끓는 육수처럼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그 바쁜 일상 속에서도 제 마음 한 구석의 감각은 늘 깨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다음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무기를 들고 제 앞에 나타날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변화의 첫 번째 파문은 제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부터 잔잔하게 밀려왔습니다.

이른 아침 가에 문을 열기 전 식재료를 확인하기 위해 찾은 동네 재례 시장에서였습니다.

콩나물 한 무더이를 고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저를 부르는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제가 예전에 살던 빌라의 아래층에 살았던 박씨 아주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제 행색과 얼굴을 몇 번이고 확인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이고 형님 맞으시죠? 세상에 텔레비전에 나온 분이 형님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

다들 형님 이야기뿐이에요.

그렇게 고생하시더니 하늘이 도았나 봐요.

그녀는 반가움과 놀라움이 뒤섞인 얼굴로 한참을 제 성공에 대해 축하를 늘어놓더니 이내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형님 이런 말씀드리긴 참 못하지만 아드님 내 요즘 많이 힘든가 봐요.

동네 소문이 흉해서 그녀는 주변을 한번 쓱 둘러보고는 제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준노 씨가 무슨 신생 기술 회사 주식의 퇴직금 중간 정산받은 거랑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돈까지 몽땅 투자했다가 그게 휴지 조각이 됐다는 구먼요.

그래서 그 좋은 아파트도 대출금을 선어 달째 못 갚아서 얼마 전에는 은행에서 10뻘건 딱지가 붙은 독촉장이 날아왔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며느리가 평소 자식처럼 아끼던 명품 가방들을 잔뜩 들고 준고 명품점에 와서 헐값세라도 사 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봤다는 가게 주인의 목격담.

아들이 옛 회사 동료들에게까지 손을 벌리려다 대차게 망신을 당하고 의절까지 당했다는 이야기까지 그들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지키려 애었던 품격 있는 삶이라는 허울 좋은 외벽이 기초부터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들이었습니다.

저는 콩나물 값을 치르며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음속에 통쾌함보다는 뭐랄까 지독한 허무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들의 탐욕과 허영이 결국 스스로를 잡아먹는 괴물이 된 셈이었지요.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손님이 많아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고 나니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준영군과 새로 뽑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마감 정리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가게 문 밖에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서성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직감적으로 그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셔터를 내리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제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한겨울 추위탓신지 아니면 절망 때문인지 그들은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한 눈에 봐도 며칠은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사람들의 몰이었습니다.

아들의 얼굴은 거뭇한 수염으로 뒤덮혀 있었고 며느리의 얼굴에서는 그 좋다는 화장품에 윤기 대신 비참한 개기름이 흐르고 있었지요.

무슨 일로 왔느냐? 제 목소리는 겨울밤에 공기보다 더 차갑게 울렸습니다.

그 한마디에 며느리가 마치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와랑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연급적이어서 가게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헉하고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아버님, 아버님, 저희가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희가 아버님께 무슨 짓을 저희가 눈이 멀어서 돈에 눈이 멀어서 흑 저희가 정말 미쳤었나 봐요.

제발 제발 저희를 용서해 주세요.

아버님.

며느리는 아스팔트 바닥에 이마를 찌을 듯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서럽기 짝이 없는 울음소리는 텅빈 골목 안에 처량하게 울려 퍼졌지만 제 마음의 호수에는 작은 파문 하나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 눈물에서 진심이라는 성부는 단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옆에서 있던 아들도 아내의 연기에 떠밀리듯 어색하게 무릎을 꿇고는 핏끼 없는 입술을 달였습니다.

아버지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저는 자식될 자격도 없는 놈입니다.

아버지께서 쫓겨나시던 그날 밤 저는 저는 악마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아버지가 없는 집은 저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발 제발 저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주세요.

저희가 평생 아버지를 없고 다니라면 없고 다니고 발을 닦으라면 닦겠습니다.

제발 저희를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말없이 그들의 눈물의 쇼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의 대사는 너무나 상투적이었고 그들의 표정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저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전자에 담겨 있던 시원한 보리차 두 잔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무릎 꿇고 있는 앞에 물잔을 조용히 내려 놓았지요.

목이 마를 테니 이거라도 마시고 나서 차근차근 이야기하거라.

제 예상치 못한 행동에 그들의 통곡과 변명은 순간 멈칫했습니다.

그들은 잭에서 터져나올 분노나 욕설 혹은 경멸을 기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그런 감정적인 만족감조차 허락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그들의 연극이 막을 내릴 때까지 가장 무심한 관객이 되어 주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들의 비참한 연기가 일막을 맞췄다고 생각되었을 때 저는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이제 그만들 하거라.

너희들의 삼류 연극은 조금도 감동적이지 않으니.

제나지막한 말 한마디에 며느리의 울음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그쳤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 아래로 감추지 못한 당혹감과 분노가 뱀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저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너희들이 말하는 집이라는게 도대체 무엇이냐? 고급 가구와 비싼 그림으로 치장하고 사람의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그 차가운 시멘트 상자가 너희가 말하는 집이더냐? 저는 천천히 하지만 모든 단어의 힘을 실어 말을 이었습니다.

내게 집은 여기다.

제 손가락은 불이 화나게 켜진 가게 안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가게 안에서는 준영군과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이 하던 일을 멈춘 채 저를 걱정과 응원이 뒤섞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땀과 노력을 존중해 주고 내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내 손으로 끓여낸 뜨거운 라면 한 그릇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는 이곳이 바로 나의 집이다.

너희들이 살던 그 넓은 집에는이 늙은 일을 위한 자리가 단 한 평도 없었지만이 비좁고 기름대에 낀 부어큰 전부가 나의 공간이고 나의 성이다.

저는 무릎 꿇고 있는 아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나를 모실 자격이 없다.

나를 모시겠다는 건 결국 내 통장에 들어 있을 돈을 모시겠다는 뜻이겠지.

그 정도 속셈도 간파하지 못할만큼 내가 어리석어 보이더냐? 제 말은 얼음 손곳처럼 날카롭게 그들의 심장을 파고 들었습니다.

돌아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너희들의 그 구역 진라는 사사로운 일로 이곳에 공기를 흐리지 말거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베푸는 마지막 잡이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내가 너희를 내쫓은 불안당으로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런 변명도 눈물도 쏟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동화줄이 그것도 썩은 동화줄이 끊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듯한 절망적인 표정으로 서로를 부축하며 비틀거리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들의 그림자가 골목의 어둠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서 있었습니다.

셔터를 내리는 제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습니다.

아들 내외가 다녀간 후 가게는 다시금 일상의 평온을 되찾은 듯 보였습니다.

저는 제 삶의 궤도로 돌아와 다시 묵묵히 육수를 끓이고 면을 삶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에 일은 제 안에 무언가를 더욱 단단하고 명확하게 만들었습니다.

제 복수는 단순히 그들을 외면하고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들의 죄를 온 세상에 공표하여 그들이 스스로 쌓아올린 허영과 위선의 성이 기초부터 무너져 내리는 것을 똑똑히 보게 해야만 했습니다.

진정한 복수는 사적인 영역을 넘어 공적인 심판대 위에서 완성되어야 했습니다.

기회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극적인 방식으로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말끔하게 차려 입은 젊은 남자가 가게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지상파 방송국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 PD라고 소개하며 제 가게를 방송에 심도 있게 소개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은퇴 후 제2의 인생라면 하나로 인생 역전에 성공한 장인의 이야기라는 듣기만 해도 민망한 기회관과 함께였지요.

저는 그의 제안을 듣자마자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나는 그런데 나갈 사람도 아니고 내 이야기는 방송에 나올만큼 대단하거나 감동적인 것도 아니요.

장사 방해되니 그만 돌아가시오.

하지만 그는 보통 끈질긴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방문에서 거절당한 그는 다음날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손님들과 똑같이 한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라면을 주문했습니다.

그는 제 라면을 한 젓가락 맛보더니 조용히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사장님, 어제는 제가 신뢰가 많았습니다.

제 기획이 너무 가벼웠다는 걸 라면 맛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이건 그냥 라면이 아닙니다.

사장님의 인생이 담긴 한 그릇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제 할아버지께서도 평생 작은 국수 가게를 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제 마음에 문을 두드렸지만 저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방문하던 날 그는 작은 선물 상자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아내는 질 좋은 천 이렴이 들어 있었습니다.

최고의 육수에는 최고의 소금이 어울릴 것 같아서요.

그는 더 이상 방송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그저 제 라면을 맛있게 먹고는 돌아갔습니다.

그의 집요함과 진심어린 태도에 제 마음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가의 마감을 도우며 모든 것을 지켜보던 준영군이 제게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저 사람이 하는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세상에 알려질 가치가 있어요.

이건 단순히 가게를 홍보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할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고 그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법적 처벌 무서운 심판을 내리는 일이 될 거예요.

무엇보다 할아버지처럼 억울하게 상처받은 다른 어르신들에게는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요.

준영군의 말은 제 가슴 가장 깊은 곳을 찔렀습니다.

제 복수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은 제가 미쳐 헤아리지 못했던 복수의 새로운 국면이었습니다.

저는 긴 고민 끝에 방송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단, 제 이야기를 조금의 꾸임도 없이 있는 그대로 내보낸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며칠 뒤 저는 방송국 작가와 PD를 약속 장소인 가게 근처에 조용한 차집에서 만났습니다.

가 뜻한 차잔의 온기가 손바닥에 전해졌지만 제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 앞에 녹음기를 놓고 감동적인 인생 역전 스토리를 채집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기대를 첫마디부터 철저히 부서 버렸습니다.

나는 자수성가한 사람이 아니요.

나는 그저 자식에게 버림받은 늙은이일 뿐이요.

저는 차잔을 내려놓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아들 내외와 합가하게 된 과정부터 그들의 집에서 투명 인간처럼 살아야 했던 숨막혔던 나날들.

그리고 운명의 그날 밤 라면 한 그릇 때문에 한 겨울에 잠옷 바람으로 길거리에 내쫓겨야 했던 그 비참한 순간까지.

제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그들이 예상했던 희망과 감동과는 거리가 먼 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짓밟혔는가에 대한 처절한 고발이었습니다.

저는 찜질방 바닥에 냉기 아내의 낡은 상가를 발견했을 때 비통함 그리고 오직 복수심 하나로라면 가게를 열기로 결심했던 그 모든 과정을 감정의 동요를 최대한 억제한 채 있는 그대로 털어 놓았습니다.

제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맞은편에 앉은 젊은 작가와 PD의 표정은 놀라움에서 분노로 그리고 깊은 비통함으로 시시 각각 변해 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준비했던 질문지를 조용히 내려놓고 그저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침묵을 깬 것은 피디였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분노와 사명감으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사장님, 저희는이 이야기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내보내야만 하겠습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약속대로 방송 예고편은 자극적이고 직설적이었습니다.

자식에게 내쫓인 아버지라면 한 그릇에 담긴 피눈물의 복수라는 문구와 함께 제 눈물 젖은 얼굴 물론 연출된 것이었지만과 아들 내외가 사는 화려한 아파트가 교차 편집되어 전파를 탔습니다.

예고편은 순식간에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고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당연하게도 벼랑 끝에 몰려 있던 아들 내외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들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 없었을 겁니다.

공포에 질린 아들은 다급하게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담당 PD에게 거의 울부짖다시피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지금 정신이 온전치 못하단 말이요.

나이가 들어서 망령이든 거라고요.

없는 사실을 꾸며내서 우리를 파렴치안으로 만들고 있는데 당장 그 방송 내보내지 않으면 변호사 선임에서 방송국을 상대로 막대한 손해 배상 소송을 걸겠소.

아들의 필사적인 거짓말과 협박은 오히려 PD의 의지에 불을 지혔습니다.

PD는 제게 전화를 걸어 아들과의 통화 내용을 모두 녹음해 두었으며 오히려이 내용까지 방송에 포함시켜 진실 공방의 형태로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조용히 동의했습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되돌릴 수 없는 심판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운명의 방송이 시작되는 날밤 저는 준영군과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마감을 일찍 마친 가게에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가게의 불을 모두 끈 채 오직 텔레비전 화면에서만 빛이 세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제 삶에 가장 아프고 치욕스러웠던 부분이 전 국민에게 공개된다는 사실에 손바닥에 축하게 땀이 베어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폭풍전의 바다처럼 고요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반드시 맨몸으로 통과해야 할 제 인생의 마지막 관문과도 같았습니다.

프로그램은 제 라면을 극찬하는 손님들의 행복한 표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화면은 차집에서의 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텔레비전 속에 저는 생각보다 더 차분하고 담한 목소리로 그날 밤에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고 제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나간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처럼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전할 뿐이었습니다.

제작지는 제 인터뷰와 교차하여 아들 내외가 사는 화려하고 차가운 아파트 내부와 제가 쫓겨나 홀로서 있어야 했던 텅빈복도를 비추었습니다.

제가 끓이다 만나면 냄비와 그들이 마시던 갓비싼 와인잔이 나란히 화면에 잡혔을 때 저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그 극명한 대비는 백마디의 웅변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클라이맥스.

제작지는 약속대로 아들이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우리 아버지는 치매기가 있다.

망령이 들었다고 소리치는 육성 파일을 자막과 함께 그대로 내보냈습니다.

제 차분하고 조리 있는 증언 뒤에 이어진 아들의 겨강되고 비논리적이며 폐륜적인 목소리는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고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를 그 무엇보다 명백하게 증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방송은 저를 일방적인 피해자로 그리거나 그들을 악마로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날 것 그대로의 사실들을 나열하고 그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온전히 시청자들의 몫으로 돌렸지요.

그리고 그 판단은 가혹할 정도로 명확하고 압도적이었습니다.

방송이 책 끝나기도 전부터 제 낡은 휴대폰은 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수십년간 왕내가 끊겼던 먼 친척들, 까맣게 입고 지냈던 옛직장 동료들.

심지어는 제가 기억조차 못하는 초등학교 동창들에게까지 응원과 경려의 전화와 문자가 쉴새 없이 쏟아졌습니다.

준영군이 관리하던 가게의 SNS 계정은 동시 접속자수가 폭주하여 서버가 몇 번이나 다운될 지경이었습니다.

수만 수십만 개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렸습니다.

보는 내내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버님, 부디 힘내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저런 천하의 폐륜 자식들은 신상 공개에서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시켜야 합니다.

방송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잠이 안 옵니다.

내일 당장 연차내고 KTX 타고 아버님 라면 먹으러 갑니다.

혼줄을 내드릴 겁니다.

이 시대에 진정한 어른을 뺍니다.

아버님의 라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종입니다.

다음날 제 작은 가게 아픈 그야말로 인산 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방송을 보고 전국 각지에서 KTX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찾아온 손님들로 인해 골목 전체가 마비될 지경이었습니다.

경찰이 출동해서 교통 정리를 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사람들은 단순히 라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그곳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응원하고 저의 이야기에 함께 분노하고 저의 승리를 함께 축하하기 위해 그곳에 모인 하나의 거대한 연대였습니다.

가게 안에는 손님들이 보내온 꽃과 선물들이 발 뒤틈도 없이 쌓여 갔고 어떤 나이 지긋한 손님은 제 손을 붙잡고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기도 했습니다.

제라면 가게는 단순한 맛집을 넘어이 시대의 상처를 위로하고 붕괴된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의 중심지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거대하고 뜨거운 파도는 한 점에 자비도 없이 고스란이 아들 내외에게로 향했습니다.

아들은 회사에서 국민 페륜나로 낙인찍혔습니다.

그의 얼굴이 방송에 모자이크 처리되어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상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간 후였습니다.

동료들은 그를 벌레 보듯 피했고 회사는 기업 이미지 실을 이후로 그에게 대기 발령을 내렸습니다.

사실상의 해고 통보였지요.

며느리의 상황은 더욱 비참했습니다.

그녀가 속해 있던 모든 고급 사교 모임에서 강제로 탈퇴당했고 그녀가 다니던 필라테스 학원과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는 등록을 거부당했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품격과 체면은 산산 조각, 나 그녀 자신을 공격하는 수천 개의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골목 어기에 한 식당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 방송 봤어? 어떻게 자식이라는 것들이 제 아버지를 그렇게 내쫓을 수가 있냐? 아주 천벌을 받을 놈들이야.

내가 그 아들놈 얼굴 똑똑히 기억하는데 우리 동네 지나가다 눈에 띄기만 해 봐.

아주 그냥 저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를 지나쳤습니다.

그들의 의로운 분노는 제게 통쾌함보다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씁쓸함을 남겼습니다.

저는 그들이 무너지기를 바랐지만 그들의 몰락이 이토록 완벽하고 처참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그들이 받아야 할 스스로 자초한 심판의 일부였습니다.

세상에 요란한 심판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에도 저의 시간은 변함없이 그리고 더욱 바쁘게 흘러갔습니다.

가게는 연일 사상 최고 매출을 경신했고 저는 밀려드는 손님과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 주방과 홀래 직원을 대폭 충원해야 했습니다.

제 라면은 이제 단순한 음식을 넘어 하나에 확고한 브랜드이자 신드롬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브랜드의 상업적 가치를 예리하게 알아본 하이에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가게 앞에 번쩍이는 검은색 세단 여러 대가 줄지어섰습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고급으로 치장한 한 눈에 봐도 일반인과는 다른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국내 굴지의 외식 프랜차이즈 대기업의 M앤드어 팀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제 작은 가게에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제 앞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제안이 담긴 두툼한 서류처를 내놓았습니다.

사장님, 저희 그룹에서 할아버지의 심혈라면 브랜드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사장님의 장인 정신과 철학은 그대로 계승하고 저희의 자본과 시스템을 결합하여 전국 200개, 나아가, 뉴욕과 도쿄 파리까지 진출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내고 싶습니다.

그들은 노트북을 열어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제안한 인수 금액은 제가 평생을 벌어도 결코 만져볼 수 없을.

그야말로 제 인생 자체를 몇 번이고 살 수 있는 천문학적인 엑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브랜드 총괄 고문이라는 직함과 함께 매년 막대한 로열티와 최고급 승용차 개인 비서까지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제 옆에 배석하여 그들의 설명을 듣고 있던 준영군조차 믿을 수 없다는 듯 마른 침을 삼켰습니다.

저는 그들의 달콤한 설명을 묵묵히 들으며 팔팔 끓는 라면 국물처럼 뜨겁고 복잡한 생각에 잠겼습니다.

돈.

그것은 제가 복수를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지만 결코 제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그 거대한 인수 제한 소문은 언론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결국 벼랑 끝에 지푸락이라도 잡고 싶었던 아들 내외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구원의 동화줄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며칠 뒤 그들은 제가 앞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어둡고 은밀한 밤이 아닌 손님들이 가장 많이 분비고 방송 이후에도 여전히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기자들의 카메라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대낮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이전보다 훨씬 더 처절하고 망가져 인간의 존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대기줄과 그들을 발견하고 미친듯이 플래시를 터트리는 기자들 앞에서 한치에 망설림도 없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털썩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의 뼈조각마저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아버지 아버님 저희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저희를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욕하셔도 좋습니다.

제발, 제발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며느리는 더 이상 가짜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절망의 끝에 선 인간이 쏟아내는 진짜 절규였습니다.

그녀는 행인들이 보든 말든 기자들의 카메라가 자신을 찍든 말든 땅바닥에 머리를 찌으며 목놓아 울었습니다.

아들 역시 흑먼지가 묻은 바닥에 이말을 댄 채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아버지, 저희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집도, 직장도, 친구도 사회적으로 저희는 이제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제발, 제발 저희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 매각 대금의 일부라도 저희에게 나누어 주신다면 저희가 그 돈으로 조용한 곳에 가서 평생 속죄하며 살겠습니다.

아버지 발개로 아니 개처럼 살려고 하셔도 살겠습니다.

제발.

그들의 비굴하고 처절한 모습은 대낮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한편의 기계한 서커스가 되었습니다.

구경꾼들은 수긍거렸고 기자들은 그들의 구력적인 모습을 한 컷이라도 더 담기 위해 경쟁했습니다.

저는 끓이던 라면 냄비를 내려놓고 조리복 차림 그대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섰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는 그들에 대한 마지막 남은 연민과 인간의 탐욕에 대한 깊은 경멸 그리고이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는 차가운 분노가 뒤섞여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를 둘러싼 수십대의 카메라와 마이크를 향해 입을 열었습니다.

제 목소리는 가게 앞에 소음을 뚫고 낮직하지만 골목 전체를 울릴만큼 단호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대기업의 브랜드 인수 제한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 최종 결정은 내일 오후 2시이 자리에서 정식으로 모든 분들께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예상치 못한 선언에 장내는 순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아들 내외는 희망과 절망이 뒤섞긴 마치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와도 같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시선을 차갑게 외면한 채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들을 가장 비참하고 가장 애타는 상태로 만들어 하룻밤의 시간을 던져 주는 것.

그것이 제가 그들에게 내리는 가장 잔인하고도 품격 있는 마지막 형벌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음날 오후 제작은 가게 아픈 전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인파로 북적였습니다.

제가 정식 기자 회견을 예고한 탓에 거의 모든 방송사와 신문사의 취재 차량들이 골목을 가득 메워 일대가 완전히 마비될 지경이었습니다.

대기업의 임원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예감한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띈 채 가장 앞자리에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파의 가장자리 가장 초라한 곳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10년은 더 늙어버린듯한 모습의 아들 내외가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 채 불안한 눈으로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약속된 2시에 새로 달린 깨끗한 조리복 차림으로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수백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며 눈앞을 하얗게 만들었지만 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천천히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제 평생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조금도 떨리지 않았습니다.

먼저 부족한 저와 저의이 작은 가게에 이토록 큰 관심을 보여 주신 모든 언론인 여러분과 저를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먼저 저를 찾아와 파격적인 제안을 해 준 대기업 임원들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귀에서 저의 가치를 이토록 높게 평가해 주신 점 한 사람의 요리사로서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 제안은 제게 분에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기업 임원들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더욱 짙게 번졌습니다.

그들의 미소를 흘긋 본회의 얼굴에도 마른 땅에 담비가 내리듯 희미한 희망의 빛이 스며들었습니다.

저는 어젯밤 뜻눈으로 밤을 세우며 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어떻게 장식할 것인지 그 길을 결정했습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제 입을 주목했습니다.

그 짧은 침묵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귀의 인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제 단호한 선언에 장내는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임원들의 얼굴은 미소에서 경악으로 그리고 당혹감으로 굳어졌습니다.

아들 내외의 얼굴은 마지막 희망의 빛이 꺼져 버린 제더미처럼 새아얗게 그리고 공허하게 변해 버렸습니다.

저는 아하지 않고 제 인생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결심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이 가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저의 자존심이자 제 상처이며 제 구원입니다.

제 인생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에 저는이 가게를 팔지 않을 것입니다.

그 대신 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제 인생을 건 마지막 승부수를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저는이 할아버지의 심야라면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소외된 이웃을 위한 비영리 공익 재단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재단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단어에 얼어붙었던 장례는 이번에는 거대한 순렁임으로 가득찼습니다.

심야라면 재단은 두 가지의 큰 줄기를 가지고 우리 사회에 그늘진 곳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고자 합니다.

첫째, 저처럼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세상의 편견과 무관심 때문에 기회를 잃었지만 여전히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과 녹슬지 않은 기술을 가진 어르신들의 작은 창업을 돕겠습니다.

그분들이 세상에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당당하게 증명할 수 있도록 제가 겪었던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고 희망의 씨앗이 될 창업 자금을 무상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둘째,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성실한 젊은이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원하겠습니다.

저는 제 곁에서이 모든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준영군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습니다.

그리고이 영광스러운 장학 사업의 첫 번째 책임자는 캄캄한 절망 속에서 제게 새로운 삶의 의미와 방향을 깨닫게 해준이 고마운 청년 이준영군이 맞게 될 것입니다.

준영군은 눈이 토끼처럼 동그해졌다가 이내 뜨거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 앞에서 엉엉 울며 허리를 숙였습니다.

제 발표가 모두 끝나자 장례는 그 어떤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장보다 더 뜨거운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가득찼습니다.

기자들은 제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고 저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멋지다.

최고다.

를 를 연호했습니다.

제 복수는 단순히 아들 내외를 파멸시키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더 크고 위대한 이야기로 완성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결코 이해할 수도 가질 수도 없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 우뢰와 같은 환호성 속에서 저는 인파 저편에서 유령처럼서 있는 아들 내회를 보았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더 이상 탐욕이나 희망, 분노 같은 인간적인 감정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영혼까지 파괴된 자의 텅빈 공허함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기심과 탐욕이 자신들이 결코 손에 쥐 없는 거대한 선의의 계기가 되었다는이 지독하고도 잔인한 아이러니 앞에서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패배한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이 위대한 이야기의 주인공도 악격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음 속의 배경처럼 조용히 그리고 쓸쓸하게 인파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제가 기억하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날 밤 모든 소돔이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가게에는 다시 저와 준영군 둘만 남았습니다.

저희는 아무 말 없이 마치 지난 수십년간 매일 밤에 왔던 것처럼 묵묵히 라면을 끓였습니다.

마주 앉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라면을 먹는데 문득 저를 내쫓았던 아들 집에서의 그 차갑고 외로웠던 밤이 떠올랐습니다.

그날 밤에 뼈에 사무치는 서러움과 배신감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결코 없었을 겁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이제는 타인보다 더 멀어져 버린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냈습니다.

아들아, 네가 그날 밤 나를 내 쫓아준 덕분에 나는 비로소 진짜 내 인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너를 원망하지는 않으마.

다만 너는 네가 저지른 그 어리석은 행동의 대가를 평생 너의 빈껍데기 같은 삶으로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제 앞에 라면 그릇에서 피어오르는 구수하고 뜨거운 김이 오늘따라 유난히 향긋하고 자유롭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서름과 분노의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읽어낸 따뜻하고 충만한 삶의 냄새였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길고도 처절했던 복수는 마침내 가장 완벽한 형태로 완성되었습니다.

제 앞에 라면 그릇에서 피어오르는 구수한 김을 가만히 들이마셨습니다.

한 때는 저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던이 지독한 냄새가 이제는 제 남은 인생을 지탱해 줄 가장 든든하고 따뜻한 향기가 되었습니다.

맞은 편에서 후르륵 소리를 내며 맛있게 면을 넘기는 민준군의 건강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젊은이에 빛나는 미래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갈 수많은 따뜻한 이야기들이 저 뜨거운 국물 속에 모두 녹아 있는 듯했습니다.

복수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진짜 저의 심야라면은 이제 막문을 연참입니다.

영상 정리

영상 정리

1. 박명철은 힘든 삶과 가족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어요.

2. 그는 낡은 집과 가구, 그리고 배고픔과 외로움을 겪었어요.

3. 밤마다 라면을 끓이며 위로와 기억을 떠올렸어요.

4. 며느리와 아들과의 갈등, 그리고 배신감이 컸어요.

5. 그는 자신이 만든 라면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어요.

6. SNS와 입소문으로 가게가 유명해졌어요.

7. 손님들이 늘어나면서 자신감과 자존심을 찾았어요.

8. 며느리와 아들은 부끄러움과 분노로 찾아왔어요.

9. 그들은 마지막에 진심 어린 울음으로 사과했어요.

10. 박명철은 자신의 가게를 자존심과 자아의 상징으로 삼았어요.

11. 그는 가게를 팔지 않고, 공익 재단 설립을 결심했어요.

12. 재단은 어르신 창업과 젊은이 장학사업을 목표로 했어요.

13. 방송 출연으로 그의 이야기는 전국에 알려졌어요.

14. 국민적 지지와 응원으로 가게는 더욱 유명해졌어요.

15. 아들 내외는 망신과 몰락을 겪었어요.

16. 그들은 마지막에 절망하며 울부짖었어요.

17. 박명철은 그들을 냉정히 내쫓았어요.

18. 그는 자신의 자존심과 인생의 의미를 찾았어요.

19. 인수 제안을 거절하며 자신의 길을 선택했어요.

20. 마지막으로 그는 공익 재단 설립을 선언했어요.

21. 재단은 어르신 창업과 청년 장학을 지원했어요.

22. 준영군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갔어요.

23. 방송과 사회적 관심으로 그의 가게는 대성공이 되었어요.

24. 아들 내외는 인터넷과 언론에 공개돼 망신당했어요.

25.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탐욕과 허영의 대가를 치렀어요.

26. 박명철은 자신의 삶과 가족, 그리고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남겼어요.

27. 그는 마지막에 자신의 자존심과 인간성을 지켰어요.

28. 그의 복수는 결국 세상에 희망과 진실을 알리는 것이었어요.

29. 그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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