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창 밖으로는 도시의 불빛들이 별처럼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지만 그 어떤 불빛도이 집 안에 정막함 속으로 들어오지는 못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소파의 등을 기 꺼진 텔레비전 화면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화면에는 제 초라한 그림자만 얼음거릴 뿐이었어요.
이곳에서의 제 삶이란 늘 그런 시기였습니다.
아들의 성공이 제 유일한 자랑이었기에 며느리가 살림을 합치자고 했을 때 기꺼이 평생을 살던 낡은 빌라를 처분하고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제 자리는 어디에도 없더군요.
갓비싼 이탈리아제 소파는 제 몸에 맞지 않게 너무 푹신했고 대리석 바닥은 한 여름에도 선을했으며 벽에 걸린 추상화들은 도무지 정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이 집의 일부가 아니라 그저 어울리지 않게 놓인 낡은 가구 같은 존재였어요.
그날 저녁 며느리가 차린 저녁상은 손바닥만 한 샐러드와 닭가슴살 몇 조각이 전부였습니다.
건강을 생각하셔야죠.
아버님이라는 말과 함께였죠.
평생 밥심으로 살아온 늙그니에게는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군소리 한번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입맛을 이야기하는 것조차이 집에 품격을 해치는 일처럼 여겨졌으니까요.
결국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꼬르륵거리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배고픔은 서러움을 동반하는 법이지요.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몸을 일으켰습니다.
부엌크로 가기로 마음 먹은 겁니다.
제 평생의 위안이자 소울푸드였던 라면 한 그릇이 간절하게 생각났거든요.
아들 내외가 깰까 봐 발소리마저 죽여가며 살금살금 부엌크로 향했습니다.
행연아 마룻바닥이 삐걱거릴까 봐 무게 중심을 발끝에 씻고 조심스럽게 걸었어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찬장을 열었습니다.
다행히 구석에 라면 몇 봉지가 남아 있더군요.
며느리는 이런 정크푸들을 혐오했지만 아들이 가끔 해장용으로 찾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평범한 녀석으로 하나를 집어들었습니다.
찬장에서 냄비를 꺼내는 소리, 갓비싼 정수기에서 물을 받는 소리, 인덕션 전원을 켜는 소리까지.
이 이 집의 모든 소리가 제게는 너무나 크고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마치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도둑놈이라도 된 기분이었어요.
인덕션이 가열되는 소리와 함께 냄비 속에 물이 조용히 끌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면과 수풀을 넣었습니다.
곧디어 구수하면서도 짭짤한 아주 익숙하고도 반가운 냄새가 부엌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어요.
젊은 시절 고된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아내와 함께 나눠먹던 그 라면 냄새 아들이 어렸을 적 시험 공부한다고 밤을 세울 때 끓여주던 바로 그 냄새였습니다.
피어오르는 김너머로 제 인생에 고단했던 그러나 행복했던 순간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듯했습니다.
젓가락으로 면을 살살 풀어 주며 완벽하게만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저는이 집에서 처음으로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라면이 가장 맛있게 익었다고 생각된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안방 문이 소리 없이 아주 천천히 열렸습니다.
쾅하고 열렸다면 차라리 놀라기라도 했을 텐데 그 느리고 불길한 움직임은 제 심장을 더 옥재어 왔어요.
복도의 센서등이 켜지면서 길고 날카로운 그림자가 부어크로 스며들었습니다.
비싼 실크 잠옷 차림의 며느리었습니다.
아버님, 지금 이게 무슨 냄새예요? 첫마디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경멸과 혐오가 가득 담긴 비난이었지요.
며느리는 마치 오물이라도 본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손으로 코를 막았습니다.
아, 그게 저녁을 변변치 않게 먹었더니 출출해서 말이다.
제 변명은 며느리의 귀에 닿기도 전에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세상에 아버님,이 밤중에 라면이라니요? 이 집의 뱃냄새는 어떡하실 거예요? 제가이 인테리어에 얼마나 공을 드렸는지 모르세요? 저 이탈리아제 패브릭 소파랑 저 커튼에 이산티나는 냄새면 책임지실 거냐고요? 며느리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낮았지만 그 안에는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습니다.
냄새가 아니었습니다.
며느리가 혐오하는 것은 제 존재 그 자체였어요.
이 품격 있는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냄새 나는 늙으니 저는 그저 끌어오르는 라면 냄비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때 잠결에 뒤척이던 아들까지 부수스한 모습으로 부엌해 나타났습니다.
저는 내심 아들이 제편을 들어 주리라 혹은 최소한 아내를 말려 주리라 기대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산산 조각 났어요.
아버지 제발 좀 유난 떨지 마세요.
수진이 힘든 거 안 보이세요? 아들은 저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아들의 눈에는 제가 아내를 괴롭히는 철없는 늙은 이로 비치는 듯했습니다.
아니 내가 내 집에서 라면 하나 내 맘대로 못 꾸려 먹느냐? 수십년간 쌓아온 아버지로서의 권위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억울함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그러자 아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습니다.
아버지 집이요.
여기 월세 한 푼 보태셨어요.
관리비 한번 내셨어요? 여기는 제 집이고 수진이 집이에요.
제발 여기 방식에 좀 맞추세요.
남들이 알면 뭐라고 하겠어요? 아들 집에 셔터맨처럼 얹혀 사는 늙은 아버지가 밤마다 라면이나 끓여 먹는다고요.
셔터맨.
그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제 가슴에 박혔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제 손에 들린 젓가락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방금 전까지 저를 위로해 주던 라면의 온기는 온데간데 없고 차가운 냉기만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전 그렇게 아버지 방식대로 사실 거면 이런 답답한데 말고 아버지 편한 곳으로 가시든가요? 며느리가 악에 바친 목소리로 쏘아붙였습니다.
그것은 신호탄과도 같았습니다.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 말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게 좋겠네.
서로 불편하게 이렇게 사느니 아버지가 편한 곳으로 가시는게 맞겠어요.
그들의 대화는 마치 미리 짝이라도 한 연극의 대사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제 존재 자체가이 집의 불행의 근원이라는 뜻이 말이에요.
수십년 묵은 서름과 배신감이 한 순간에 폭발했습니다.
제 안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 나간다.
너희들 잘났다.
이 늙은이가 없어져 주면 아주 행복하겠구나.
나가고 말고 확김에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그러자 아들의 얼굴의 순간 안 도하는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 표정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들은 제 사과나 화해를 원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저 제가 사라지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네.
아버님, 그게 저희 모두를 위해 좋은 길이에요.
며느리는 제빨리 안방으로 들어가 제 낡은 겨울 외투를 들고 나왔습니다.
아들은 아무 말 없이 현관으로 가더니 디지털 도어록의 잠금을 해제했습니다.
띠리 하는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한 겨울의 칼바람이 집 안으로 매섭게 몰아쳤습니다.
그 바람은 제 잠옷을 파고 들며 마지막 남은 온기마저 빼앗아 갔어요.
저는 멍한히서 있었습니다.
짐을 챙길 생각도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외투 하나를 잠옷 위에 걸쳤을 뿐이에요.
제 주머니에는 낡은 지갑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아들은 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저 문을 열고서 있었습니다.
서 나가라는 무원의 압박이었죠.
저는 제 발로 집을 나섰습니다.
아들의 얼굴, 며느리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묵묵히 현관을 넘어섰습니다.
등 뒤로 묵직한 방화문이 다치는 소리가 철컥하고 울렸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제 인생의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선고처럼 들렸습니다.
차가운 복도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슬리퍼 차림의 발바닥으로 대리석의 냉기가 고스란이 전해져 왔습니다.
방금 전까지 제가 있던 저 문 너머의 세상은 이제 완벽히 다른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저 70대 늙으니 한 겨울 밤에 라면 한 그릇 끓여 먹다 아들 집에서 쫓겨난 갈 곳 없는 노인일 뿐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 위해 뻗은 손이 제 의지와 상관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습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제 심장에는 차갑고 단단한 무언가가 자리잡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문이 다치고 저는 아들이 사는 그 화려한 우주에서 완벽하게 추방되었습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그 짧고도 영원 같던 시간 동안 머릿속은 텅빈 고요함에 잠겼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엘리베이터가 하강하며내는 위잉하는 기계적인 소음만이 제 텅빈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듯했습니다.
1층 로비의 눈부시의 밝은 샹들리의 아래로 나서자 육중한 유리 자동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한 겨울의 밤기를 제게 토해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추위가 아니었습니다.
잠옷 위에 외투 하나만 걸친 제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바늘로 찌르는듯한 폭력적인 냉기였지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제 와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막막함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제 발밑을 핥키고 지나갔습니다.
평생을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그의 성공을 제 삶의 유일한 훈장처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를 위해 제 젊음과 돈, 시간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믿었는데 결국 제게 남은 것은 한 겨울 밤거리에이 냉기뿐이었습니다.
아들의 세상에서 제 존재의 무게는 고장나면 한 봉지만도 못 했던 겁니다.
결국 비틀거리는 제 발걸음이 향한 곳은 24시간 희미한 불빛을 내뿜고 있는 동네 찜질방이었습니다.
아들의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음습한 골목으로 접어들수록 세상의 온도는 급격히 떨어지는 듯했습니다.
낡은 타일이 군대군데 깨진 건물 입구에서는 퀵키하고 축한 냄새가 세어나오고 있었지요.
저는 잠시 망설렸습니다.
평생 이런 곳에서 잠을 청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카운터에 무표정한 젊은 직원에게 몇 천원을 건네고 소동량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찜질복과 수건 한 장을 받아들었습니다.
남탕의 타리실을지나 수면실로 들어선 순간 저는 거대한 한 숨을 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넓은 홀에는 이미 수십명의 남자들이 제각의 형태로 뒤엉켜 잠들어 있었습니다.
술의 취에 대자로 뻗은 중년 남자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을 보다 잠든 청년 서로의 몸에 기대어 웅크린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그들의 세상과 제세상은 본래 아무런 접점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방에서 들려오는 각양각색의 코꼬리 소리는 마치 불렵음의 교향곡처럼 귀가를 어지럽혔고 땀과 발냄새가 뒤섞인 공기는 숨을 쉴 때마다 비위가 상할 지경이었습니다.
아들 녀석의 집 그 정막할 정도로 고요하고 갓비싼 방향제 냄새가 나던 공간과는 모든 것이 정반되었습니다.
저는 가장 구석진 곳 사람들의 발길이 덜 닿는 곳을 찾아 겨우 몸을 누였습니다.
바닥에깐 얇은 매트리스로는 냉기를 막을 수 없었고 딱딱한 바닥은 제 평생의 고단함이 쌓인 등을 사정 없이 배기게 했습니다.
옆사람이 뒤척일 때마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시큼한 땀 냄새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이 모든 비참함 속에서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습니다.
서러움이라는 감정은 이미 제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더 단단하고 차가운 무언가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노였습니다.
핏물 빠진 고기처럼 차갑고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 같은 분노.
그리고 그 분노의 밑바닥에서는 작은 불씨 같은 오기가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내 인생을 내 존재를 이대로 부정당한 채 끝낼 수는 없다는 마지막 저항감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퉁퉁 부은 눈과 뻐근한 몸을 이끌고 찜질방을 나섰습니다.
밤새 뒤척인 탓에 온몸이 솜처럼 무거웠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아진 기분이었습니다.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발길이 이끄는 대로 정처 없이 걸었습니다.
화려하고 번쩍이는 신도시를 지나자 점차 낡고 키작은 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눈에 익숙한 제 젊음의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 있는 구도심이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어느새 제 발걸음은 제가 세상을 떠난 아내와 함께 작은 국밥집을 운영했던 낡은 시장 골목에 다아 있었습니다.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골목의 구불구불한 형태와 생선 비린내 고소한 기름 냄새가 뒤섞인 공기는 희미하게 남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가게들이 간판을 바꾸고 주인을 바꿨지만 제 기억 속에 풍경과 겹쳐지며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제 발걸음이 마치 자석에 이끌린 쇠조각처럼 허름하기 짝이 없는 2층짜리 상가 건물 앞에서 우뚝 멈춰섰습니다.
1층의 낡은 셔터는 붉은 농물 자국을 눈물처럼 흘리고 있었고 2층의 유리창은 세상의 모든 먼지를 다 뒤집어 쓴 듯 뽀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아내가 제게 남긴 단 하나의 유산 바로 그 건물이었습니다.
국밥집을 하며 억척같이 번 돈으로 미래를 위해 사두었던 작은 재산.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로는 그곳을 볼 때마다 아픈 기억이 떠올라 애써 외면하고 방치해 두었던 공간입니다.
아들에게조차 그 존재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그저 잊지 않고 꼬박꼬박 세금만 내오던 곳 저는 그 녹슨 셔터문에 가만히 손을 대보았습니다.
차갑고 거친 감촉이 손바닥을 통해 심장까지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기억의 조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제 이름으로 된 낡고 푸른색의 통장.
회사에서 정년 퇴직하며 받은 퇴직금의 일부와 아내의 사망 보험금을 합쳐 넣어 두고는 까맣게 입고 지냈던 돈이었습니다.
아들이 결혼할 때 가진 돈 전부를 털어 집을 사줬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제 무의식이 마지막 비상금처럼 남겨두었던 저만의 보루였지요.
아들 내외는 제가 가진 것 없는 빈털털리 노인이라고만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들이 제게 그토록 오만하고 무래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겠지요.
저는 그 상가 건물 앞에 유령처럼 한참을서 있었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분노 그리고 막막한 미래가 머릿속에서 뒤엉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 안에서 하나의 결심이 단단하게 굳어졌습니다.
다시는 그 녀석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용서를 구하느니 차라리이 제더미 위에서 내 힘으로 다시 일어서겠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은 사치였습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요.
저를 한 겨울 밤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바로 그것 라면이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해보자.
이 이 세상 그 누구도 감히 품격 없다거나 싼 난다고 무시할 수 없는 가장 완벽하고 진한 라면 한 그릇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이리라.
저는 주머니 속에 낡은 지갑을 힘주어 움켜지었습니다.
제 심장이 오랜만에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망설림 없이 가장 가까운 은행을 향해 제 인생 이막을 여는 첫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은행 창구 직원은 잠옷 위에 외투만 걸친 제 초라한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노골적으로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하지 않고 품속에서 꼬깃꼬깃한 통장을 꺼내 내밀었습니다.
직원은 반신반해하며 통장을 받아들고는 한참 동안 컴퓨터 화면과 통장을 번갈아보더군요.
그리고 제게 본인 확인을 위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진 뒤 마침내 그 안에 잠들어 있던 금액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수십년 간의 세월이 이자와 함께 쌓여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x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저는 단순한 돈 이상의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제 잃어버린 시간과 아내의 희생과 그리고 앞으로 제가 휘두를 수 있는 무기의 실체였습니다.
저는 곧장 아내의 유산이었던 그 낡은 상가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건물 근처에 허름한 대박 부동산이라는 곳에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기름 머리를 한 중계인은 제 계획을 듣자마자 담배를 입에 문채 혀를 찾습니다.
아이고 어르신 지금 저승은길 가고 싶어서 환장하셨소.
이 골목 상권 죽은지가 언젠데 여기서 장사를 하시겠다고요? 여긴 대낮재도 사람이 안 다녀요.
저 건너편에 의욕 넘치던 젊은 놈이 떡볶이집 차렸다가 3개월 만에 빛만 잔뜩지고 나갔고 그 옆에 치킨집은 6개월 버티다 권리금도 못 받고 쫓겨 놨소.
어르신 제가 사람 열어 살리는 샘 치고 말씀드리는데 그 돈으로 그냥 따뜻한 방 하나 얻어서 편히 사세요.
왜 사서 고생을 하시려고 그럽니까?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제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장사가 아니었습니다.
제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세우고 저를 내쫓은 세상에 저의 존재를 증명해야 할 전쟁터였으니까요.
저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할 거요.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사업자 등록이나 알아봐 주시오.
제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중개인은 결국 투덜거리면서도 필요한 서류와 절차를 안내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저의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수십년간 닫혀 있던 셔터를 온 힘을 다해 들어올리자 갇혀 있던 시간의 먼지들이 햇빛 속에서 춤을 추도듯 쏟아져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