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제주 4.3 왜곡' 소설? 역사 전문가는 이 책으로 진실을 밝힙니다!
영화 <귀향> 400만, <태백산맥> 천만 부 발행! 근데 이게 우리 사회를 좌편향되게 만든다고?
영화 <귀향>이 4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소설 <태백산맥>이 천만 부나 팔렸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갑자기 좌편향된 건 아니야. 역사책이라고 해서 오늘날 우리 사회를 좌편향되게 만들겠어? 역사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거고, 이런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태백산맥>, <귀향> 같은 문화 예술 작품들이 나오는 거지.
좌파의 역사관이나 해방 전후사의 역사관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고, 문화 예술계에서 이미지로 딱 각인시켜주는 특징이 있어. 반면에 내가 쓴 책은 우파의 역사관, 혹은 해방 직후부터 4.3 사건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식이 아니라 담담한 이야기로 풀어보려고 했어. 그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정을 표현해보고 싶었지.
왜 우리 사회는 좌편향됐을까? 1979년 <해방 전후사의 인식>의 등장
오늘날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좌편향됐을까? 그 시작점을 나는 1979년에 나온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에서 찾고 있어. 이 책은 총 여섯 권으로 나왔고, 강만길 교수 같은 분들이 참여했지. 책이 좀 딱딱하긴 하지만, 나는 이 책이 오늘날 좌편향된 사회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해.
이 책은 '심판론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어. 심판을 한다는 건 역사나 역사 속 인물, 사건들을 선과 악으로 나누고, 독자들은 선을 지키기 위해 악을 응징해야 한다는 드라마틱한 구도를 가지고 있지.
여기서 '악'은 일본, 친일파, 기득권(재벌, 군부독재)을 말해. 이 악의 서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한국은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다"가 돼. 특히 한국 전쟁을 미국이 다 연출하고 각본을 짰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현대사 공부의 가장 큰 목적이 '성숙한 반미 의식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해. 이런 역사관은 독자들에게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이지.
반면에 '선'은 어지고 지순하고 순수한 우리 민족, 민중, 민주를 말해. 이때 민주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인민주의에 가까워. 반일, 항일, 독립운동가, 반미 이런 것들이 선의 서사를 이루고,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반제국주의, 일본과 미국에 맞서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지킨 것은 북한이다"가 돼. 80년대 운동권에서는 김일성을 우리 민족의 지도자라고 표현하기도 했지.
<태백산맥>이 강화한 '심판론적 역사관'
이런 해방 전후사의 심판론적 역사관이 강화된 데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라는 문학 작품이 큰 역할을 했어.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총 열 권이 나왔고, 천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지.
<태백산맥>도 전형적인 선악 구도를 가지고 있어. 악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친일 지주, 만주 관동군 출신 국군 장교, 우익 청년단을 이끄는 동네 건달 염상구가 나와. 이들은 폭력적이고 잔혹하며 탐욕스러운 인물로 그려져. 반면에 선을 대표하는 인물은 힘없고 약한 민중, 고결한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염상진,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인물들이야. 독자들은 이들을 보면서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지 판단하게 되지.
하지만 <태백산맥>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김범우라는 중도 지식인을 등장시켜. 그는 좌우에 속하지 않았지만, 미군을 따라다니며 미군의 만행(강간, 방화, 약탈, 살인)을 목격하고 미군이 우리 민족을 갈라놓으려 한다고 판단해. 독자들보다 먼저 판단을 내려주는 거지.
<태백산맥>의 서술 방식은 해방 이후의 사건들을 다룰 때도 특징적인데,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좌익 폭력 집단이 먼저 희생당하고 민중들이 저항하면서 시작된 것처럼 그려. 마치 저항의 역사, 민중 항쟁처럼 말이야. 또한, 염상진 같은 인물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순교'처럼 그리면서, 그의 투쟁이 계속될 것처럼 암시하지.
왜 80년대의 낡은 역사관이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90년대 이후 소련이 몰락하고 북한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이러한 역사관은 논리적으로 사라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 그런데 왜 살아남았을까? 나는 두 가지 이유를 꼽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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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성리학적 DNA': 현실보다 명분을 중요시하고, 명분이 곧 도덕이고 정의라는 생각이야. 병자호란 때 항복을 주장한 쪽이 비겁하게 취급받고, 끝까지 싸우자는 쪽이 의인으로 추앙받는 것처럼 말이야. 이런 DNA는 '명분론'에 입각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이승만 정부를 비난하게 만들고, 분단을 시킨 원흉으로 몰아가는 해방 전후사의 역사관을 강화하게 만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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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론적 역사관'이 주는 감정적 카타르시스: 사는 게 힘들고 세상이 불공평해 보일 때, "친일파 때문에 그래", "재벌 기득권 때문에 그래"라고 말해주면 사람들은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로 접근하게 돼. 마치 영화 <서울의 봄>처럼, 전두광을 보면서 우리가 역사를 심판해야 한다는 참여 의식을 느끼게 되는 거지. 이런 감정적 카타르시스는 논리나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게 하고 특정 정당에 투표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해.
'악'은 일본, '선'은 희생자... 수정된 해방 전후사
이런 역사관은 계속해서 수정되고 강화되어 왔어.
- '악': 미국은 점차 비중이 줄고, 일본을 절대 악마화하는 쪽으로 바뀌었어. 친일 기득권, 군부독재의 후예들이 만든 1948년 대한민국 정부는 없어져야 할 정부라는 논리로 이어지면서 '건국 논쟁'이 발생하기도 했지.
- '선':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은 줄고, '민주'의 가치가 비약적으로 올라갔어. 과거 인민주의에 가까웠던 민주가 이제는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모든 선의 개념 중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친일 기득권, 군부독재와 연관된 '희생자'들이야.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5.18 희생자들처럼 말이야. 이들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면 '도착 외구'라는 비난을 받게 되지.
<귀향>과 <태백산맥>은 어떻게 역사를 왜곡하는가?
영화 <귀향>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길거리에서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장면을 보여주며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줬어. 하지만 실제로는 취업 사기나 가족의 빚 때문에 위안부가 된 경우도 많았지.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일본을 악마화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태백산맥> 역시 여순 반란 사건을 '여순 항쟁'으로 만들고 싶어 했지. 실제로는 반란군이 경찰서장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등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지만, 소설에서는 민중들이 억압받다가 저항하는 것처럼 그려. 이런 식으로 실제 역사와는 다른 서사를 만들어내면서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
작가의 책 <49년 6월 어느 날의 일>과 '팩트'의 중요성
나는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 <49년 6월 어느 날의 일>을 썼어. 좌파의 역사관은 드라마틱한 서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우파는 그런 서사가 부족하다고 느껴. 그래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 팩트를 담담하게 서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 소설에서는 김달삼, 이덕구 같은 좌익 인물들과 선우정, 이밀 같은 우익 인물, 그리고 고요순이라는 희생자 캐릭터를 통해 해방 직후의 혼란스러운 남한 사회를 그려내려고 했어. 특히 고요순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위안부로 팔려가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지만, 맑은 영혼으로 이를 견뎌내는 인물로 설정했지. 이는 단순히 희생자를 넘어, 그 고통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야.
'서사' 대신 '현실'을 봐야 할 때
좌파의 역사관은 강력한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에 대항하는 것은 '현실'이라고 생각해. 미국에서 PC주의가 세퇴하고 디즈니도 정신을 차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현실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비합리성을 인지하기 시작했어. 학교에서 축구가 금지되고, 사소한 민원으로 인해 교육 현장이 무너지는 것처럼 말이야.
우파는 이런 현실에서의 목소리를 내야 해. 500명 중 두세 명의 민원에 휘둘리지 않고, 나머지 497명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거지. 물론 '서사'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현실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바꾸려는 노력을 통해 비합리적인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다고 믿어.
내 책 <49년 6월 어느 날의 일>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고 해방 직후의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해주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