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신청사연)바람난 남편과 이혼후 식당차렸더니 전남편이 예비아내와 손님으로 찾아오는데! 예비아내 보며 남편의 비밀을 밝혔더니, 배꼽잡을 광경이ㅋ[신청사연][사이다썰][사연라디오]
거짓말은 언젠가 들통나! 내 인생 역전 드라마
초등학교 들어가는 아이를 키우는 40대 엄마야. 나는 아이한테 항상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치거든. 아무리 작은 거짓말이라도 남을 속이려는 마음은 나쁜 거잖아. 근데 주변에 보면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더라?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꼭 밝혀지기 마련이지. 내가 직접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다가 끝장나는 걸 똑똑히 봤거든. 오늘은 그 황당하고도 속 시원했던 이야기를 해줄게.
씩씩한 엄마와 평범한 아빠
나는 남쪽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 우리 집은 엄마, 아빠, 나, 남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였지. 우리 아빠는 좀 감수성 많고 여린 분이셨고, 엄마는 완전 장군감이었어. 아빠는 평범한 회사원이셨는데, 사람을 너무 잘 믿고 모질지 못해서 사기당하거나 배신당하는 일이 많았어.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도 자기 몫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셨지. 그래서 엄마가 아빠 뒷바라지하느라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
엄마는 어릴 때부터 정말 억척스러우셨어. 도매 시장에서 물건 떼다 팔기도 하고, 작은 식당도 열고, 건물 청소도 하고, 학교 조리사로도 오래 일하셨지. 그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도 정말 꼼꼼하게 일하셔서 어디 가든 인정받으셨어.
엄마의 지혜로운 조언
엄마는 항상 나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 내가 진로 때문에 고민할 때 엄마가 해주신 말이 아직도 생생해.
"민정아, 꿈은 항상 바뀌는 거야.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면 그걸로도 충분해. 꼭 꿈을 쫓아 살 필요는 없어. 다만 여자라고 못할 것도 없고 힘들 것도 없어. 엄마처럼 어디 가든 당당하게 뭐든 열심히 하면 다 인정받을 수 있어. 그러니까 민정아, 너도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모든 열심히 해. 그럼 돼."
흔히 꿈은 커야 한다고들 하잖아? 나도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었지만, 엄마 말씀처럼 어떤 일이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는 항상 현실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며 살았지.
씩씩한 나,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
나는 씩씩하고 야무진 엄마를 닮고 싶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놀았어. 그 결과 수도권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탄탄한 기업에 취업해서 일도 시작했지. 취업 후에도 내 능력을 더 키우기 위해 새벽 회화 학원을 다니며 영어 공부를 했어. 그리고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지.
남편도 나와 같은 수업을 들었는데, 정말 열정적이고 열심히 다니는 학생이었어. 회사도 비슷한 방향에 있어서 끝나고 대화하다가 친해졌고, 자연스럽게 연애를 시작해서 30대 초반에 결혼하게 되었어. 남편은 나보다 두 살 많았고, 흔히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공기업에 다녔지. 그래서 시댁에서는 남편의 스펙을 엄청 자랑스러워했어.
시댁과 남편의 과한 사랑
시댁은 시부모님, 남편, 이렇게 네 식구였는데 평범한 집안이었어. 그런데 시어머니는 유독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셨지. 시댁에 갈 때마다 시어머니는 은근히 남편 자랑을 많이 하셨어.
"민정아, 난 우리 아들 자랑하는 게 아니라, 솔직히 우리 아들 같은 남자 없다고 생각해. 능력 있지, 성격 좋지, 뭐 하나 빠지는 거 없잖니. 넌 참 결혼 잘했다."
나도 결혼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남편도 주변에서 똑같이 듣는다고 하더라고. 우리 둘 다 서로 잘 맞고 결혼 잘했지 뭐.
아기의 탄생과 나의 희생
결혼 후 2년 뒤, 우리는 아들을 낳았어. 그런데 출산 후에 내 인생은 많이 변했지. 양수가 일찍 터져서 아들은 10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8개월이 좀 넘었을 때 태어났어. 그 후로 아들은 자주 열이 나고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 많았지. 1년 동안 나와 남편은 연차와 휴가를 아이 병간호로 다 써버렸어.
너무 힘들고 예민해진 우리는 결국 둘 중 한 명이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기로 결정했어. 양가 부모님께 계속 아이를 맡기는 것도 힘들고, 상황상 그것도 어려웠거든. 그래서 나는 오랜 상의 끝에 일을 그만두기로 했지. 남편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력했는지 알기에 미안해했어. 처음에는 남편도 열심히 일하고 집에 와서 아이도 잘 돌봐주고 집안일도 도와줬지. 나도 전업주부로서 집안일을 열심히 했고.
변해가는 남편
하지만 1년쯤 지났을 때부터 남편이 변하기 시작했어. 집안일도 잘 도와주지 않고 게을러졌지. 아이 육아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 한번은 주말에 청소하려고 남편에게 아이를 봐달라고 했더니, 황당한 말을 하더라.
"아니, 그냥 당신이 아이 없어서 청소하면 안 돼? 쟤 나한테만 오면 자꾸 칭얼거리고 당신만 찾잖아. 나도 쉬는 날인데 좀 쉬자. 평일에 일에 치여 사는데 쉬는 날만큼은 좀 쉬면 안 될까? 나도 좀 쉬고 싶어."
나는 너무 열받았지만, 아이도 있고 남편도 바쁘니까 참았어. 차라리 그때 화를 냈어야 했는데... 결국 아이는 아빠를 어색해하고 피하기 시작했지. 명절에 시댁에 가면 아이가 나한테만 붙어 있으니 시어머니는 또 나를 타박하셨어.
"아이는 아빠한테 맡겨두고 넌 일을 해야지. 지금 뭐 하는 거야? 면일 하나 하는 게 수저 하나를 못 넣었네."
그럴 때마다 시아버지와 시누이는 오히려 시어머니를 타박했지.
"눈으로 보고도 몰라. 저 자식이 자기 자식을 안 보니까 저렇지. 아무리 그래도 눈치가 다 있어. 아빠가 자기한테 관심이 없는데 애가 오죽하면 아빠 피하겠어."
시아버지와 시누이가 내 편이 되어줘서 정말 다행이었어.
자전거 동호회와 배신
그러던 어느 날, 네 살 때 남편이 갑자기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어. 오랜 절친이 자전거 동호회에 들었는데 같이 운동하고 싶다는 거야. 남편은 결혼 전 몸무게까지만 빼면 동호회를 그만두겠다고 약속했지. 남편이 살이 많이 찐 상태라 걱정하고 있었는데, 스스로 운동하겠다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어.
처음에는 두 시간 정도 라이딩하다 들어오더니, 슬슬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어.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자전거 타다가 들어오기도 했고, 급기야 일박 일로 지방 라이딩을 간다고 통보하더라. 나는 반대했지만, 남편이 애걸복걸 부탁해서 결국 허락해줬어.
그런데 6개월쯤 지났을 때, 남편 친구의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어.
"언니, 언니도 모르고 있었지? 우리 남편이랑 언니 남편 지금 그 자전거 동호회에서 여자 만나고 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주저앉고 말았어. 남편 친구의 아내가 보내준 대화 내용을 보니, 남편과 남편 친구가 동호회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거야.
복수의 현장
나는 남편에게 바로 따지지 않고, 퇴근 후 남편이 잠들었을 때 차량 블랙박스와 핸드폰을 확인했어. 거기에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찍혀 있었지. 라이딩 가는 날마다 다른 여자를 태우고 모임으로 향하는 장면, 온갖 애정 행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
다음 날, 남편이 동호회 모임에 가는 날이었어. 나는 아이를 남동생에게 맡기고 남편 친구의 아내와 함께 남편이 모이는 장소로 향했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남편 친구의 아내가 바람핀 상간녀의 머리채를 잡고 소리를 질렀어. 나도 남편의 정강이를 걷어찼지.
"여보, 왜 나한테 그래? 당신도 그렇게 떳떳하지 못하잖아. 나도 당장이라도 저 여자 머리채 잡을 수 있지만 안 잡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 운동하라고 보내 놨더니만 밖에서 헛짓거리 하고 있어.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그 자리에서 난리가 났고, 남편과 남편 친구는 동호회에서 쫓겨났어.
이혼과 새로운 시작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그 여자와 헤어질 수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어. 나는 배신감에 할 말을 잃었지. 결국 재산 분할을 유리하게 하고 아들 양육권과 친권을 모두 가져오는 조건으로 이혼하게 되었어. 남편 친구의 아내도 결국 이혼했지. 시댁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분노했지만, 시어머니는 끝까지 내 탓을 하더라.
"네가 맨날 애만 보느라 남편 신경 안 쓰니까 걔가 마음에 딴 데로 돌지. 네가 좀 참고 남편 설득도 하고 그래야지."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남편에게 경고했어.
"다시는 내 눈앞에 띄지 마. 그때는 소금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이혼 후 나는 친정으로 내려갔어. 부모님은 오히려 나를 격려해주셨지.
"네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잘했다. 네가 그걸 참고 살았으면 오히려 널 혼냈을 거야. 당당하게 기죽지 말고 살아."
부모님의 응원 덕분에 나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어. 엄마는 삼겹살집을 차리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함께 식당을 열었지. 엄마의 뛰어난 음식 솜씨 덕분에 식당은 곧 대박이 났어.
뜻밖의 재회와 통쾌한 복수
이혼하고 1년 반쯤 지났을 때, 전남편이 새로운 여자와 함께 우리 식당에 왔어. 나는 그 여자를 보고 기절할 뻔했지. 전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의자에서 굴러떨어졌어.
"어? 아니, 여길 왜 왔어? 내 친정이 여긴 거 까먹었냐? 잘도 여기까지 와서 돌아다니네."
그때 같이 온 여자가 나를 경계하며 소리쳤어.
"뭐예요? 뭔데 저희 오빠한테 그딴 식으로 얘기하세요? 손님으로 왔으면 손님 대접을 해야지."
나는 그 여자에게 서비스라며 음료수를 건네며 말했지.
"1년 반 만에 살이 다시 쪘네. 요새 뭐 자전거 다시 안 타나 봐."
그때 마침 아들이 식당에 들어왔어. 아들은 전남편을 보고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 전남편이 데리고 온 여자는 충격을 받고 화를 내기 시작했어.
"뭐야? 이혼했다고? 아들도 있어? 대체 뭐냐고? 당장 해명 안 해?"
그때 여자가 갑자기 전남편의 뺨을 때렸어. 알고 보니 그 여자는 권투 선수였던 거야. 우리는 겨우 말렸지만, 여자는 분노하며 나가버렸지. 전남편은 코피를 흘리며 정신을 못 차렸고, 나는 주방에서 가져온 소금으로 전남편에게 뿌려댔어.
"나가! 다시 한번 찾아오기만 해 봐. 그때는 소금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전남편을 내쫓고 나는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몰라. 얼마 전 전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후회한다며 다시 시작하자고 하더라.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지.
"양육비 잘 받았고, 다음 달에도 잘 넣어. 다시 전화하지 마. 네 목소리 소름 돋으니까."
앞으로의 삶
나는 여전히 엄마와 함께 삼겹살집을 운영하고 있어. 아빠도 가끔 와서 도와주시고, 아들 육아도 전담해주고 계시지. 남동생들도 종종 와서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모두 잘 지내고 있어. 이혼은 더 이상 흠이 아니지만, 여전히 걱정되고 두려운 일이지. 하지만 내 삶은 내가 꾸려나가는 게 맞는 것 같아. 어떤 마음으로 결정하든, 그 결정을 믿고 열심히 살면 두려울 것도 힘들 것도 없을 거야.
지금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모두 힘내세요. 모든 일이 잘 될 겁니다. 저도 이 위기를 이겨냈으니, 여러분도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