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특별설교: 이성표 목사와 함께하는 ‘환대’의 진정한 의미
관계, 환대, 그리고 사람됨
5월은 관계를 생각하는 달이야. 우리 모두는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관계 속에서 자라고,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해. 가장 좋은 건 관계 속에서 세상을 떠나는 거지. 우리를 아는 사람, 사랑해 주는 사람, 의지했던 사람, 의지가 되어 주었던 사람들과 함께 말이야.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사람을 관계 속에 존재하도록 지으셨다고 말해. 에덴동산이 천국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단순히 죽지 않거나 부족함이 없어서가 아니야. 가장 중요한 건 하나님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사람 사이의 관계가 온전했기 때문이야.
반대로, 돈이나 건강이 부족한 것보다 더 힘든 건 관계가 파괴되고 단절되는 것이야. 관계가 무너지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답게 살기 어렵거든.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이고, 사랑을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야.
인간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관계'가 필수적이야. 김연경이라는 사람이 쓴 책에서 "인간은 생물학적 실체지만, 사람은 사회적 자격이다"라고 말했어. 이건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어도,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받아주는 사회나 공동체가 있어야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야.
'영접', '대접', '환대' 같은 말들은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걸 넘어서, 우리가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받아들이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고귀한 태도야.
예수님은 제자들과 작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고,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 좋은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서로를 잘 대접하고 환대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거야.
성경은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곧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이고, 나아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라고 강조해.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사람을 환대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환대할 수 없어. 사람을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지.
성경에서는 낯선 사람, 즉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을 환대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해. 아브라함이 낯선 사람 셋을 극진히 대접했던 것처럼 말이야.
환대는 하나님의 태도이고,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 드러나는 방식이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삶을 살면, 그건 단순히 좋지 않은 것을 넘어서 지옥의 삶이고 마귀의 모습과 같아. 환대는 우리를 사람으로 살게 하고, 신자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지만, 소외는 우리를 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하고 마귀적인 삶을 살게 해.
요즘 고독과 소외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어. 육체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내가 '사람'으로서 가치 있고 존재할 필요가 있다는 걸 느끼려면 '다른 사람', 즉 '환대의 사람'이 반드시 필요해.
인간의 타락은 환대가 아닌 소외의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해. 심지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소외시키기도 하지. 우리는 작은 자들을 환대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무지나 약한 본성 때문에 소외시키기 쉬워.
아이들이 다른 아이를 소외시키는 것처럼, 우리도 존재하지만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고, 벌레 보듯 하거나 배설물처럼 대할 수 있어. 침묵, 무시, 모욕, 언어폭력, 행위의 폭력으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해체시키는 거지. "넌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
이런 소외는 도덕적, 영적, 나아가 사회적 범죄가 될 수 있어. 우리가 누군가를 소외시킨다는 것은 "너는 사람이 아니야, 존재할 가치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
반대로, 새로운 사람에게 "반가워요, 여기 앉아요, 같이 식사해요"라고 진심으로 환대하는 것은 우리를 안심시키고 회복시켜줘. 환대는 단순한 친절이나 매너가 아니라, 사람됨에 대한 인정이야. 그래서 우리는 돈을 주고라도 환대를 받고 싶어 하고, 환대를 통해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해.
사람은 타인의 눈 속에 현존한다고 해. 우리를 보는 타인의 눈이 거부와 거절이라면, 우리 역시 소외시킨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돼.
가정에서 배우자나 자녀에게 자기 방식대로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들의 사람됨을 부정하는 거야. 이건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의 내면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야.
우리는 먼저 가정에서 소외의 시선, 말, 행동을 환대로 변화시켜야 해. 환대는 존재를 인정해 주는 행위야.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맛있네요" 같은 말 한마디, 상대방에게 몸을 돌리고 눈을 맞춰주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환대가 될 수 있어.
예수님은 우리에게 조건 없는 환대를 명령하셨어. 십자가는 절대적인 환대였고, 우리도 그렇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누구든, 어떤 모습이든, 낯선 사람에게도 시선을 주고, 말을 걸고, 자리를 마련해주고, 함께 나누는 것이 바로 환대야.
우리가 교회나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우리와 함께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환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
만약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앉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며 새로운 사람을 배제한다면, 우리는 소외시키는 사람이 되는 거야. 성경은 이런 사람들에게 무서운 저주가 임할 수 있다고 경고해.
서로 기다려주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사진을 찍는 것. 이런 작은 배려들이 누군가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거야.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환대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단해야 해.
예수님은 잡수시기 전날 밤,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며 환대를 보여주셨어. 마태복음 7장 12절의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야.
우리는 소외시키는 세상 속에서 환대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해.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것을 '인간관계의 황금률'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환대하는 사람이 결국 행복하고 복된 인생을 산다는 것을 알고 있지.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소외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사람이고, 예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며, 우리의 형제이고 자매입니다"라고 확신시켜 줄 수 있는 환대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