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KOSTA USA 2일차 아침 메시지 | 내면과 세상을 잇는 평화의 힘
욥기, 두려움 대신 희망을 배우다
성경 66권 중에 왠지 모르게 피하고 싶거나 두려운 책이 있을 수 있어. 나도 그랬는데, 바로 '욥기'가 그랬어. 욥기는 고난과 고통을 떠올리게 해서 읽으면 마치 그 고통이 나에게 옮겨올 것만 같았거든.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어. 친구 덕분에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좋았던 기억이 생생해.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1년쯤 지났을 때, 욥기에 대한 설교를 처음 들었어. 그때부터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지. '만약 하나님이 나에게도 욥처럼 고난을 주시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나는 감당할 수 없다고, 욥 같은 고난은 절대 받지 않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어.
그때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 "너는 욥이 아니야." 마치 하나님이 "욥은 당대에 정말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너는 아니잖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지. 하나님께서 욥은 특별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런 고난을 겪지 않을 거라고 확신을 주신 거야. 마치 하나님께 "스펙 미달"이라고 제대로 디스 당한 거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디스 당하고도 행복했어.
그래서 나는 여러분보다 먼저 하나님께 디스 당하고 '샬롬'(평화)을 경험한 선배로서 조심스럽게 여러분에게도 말해주고 싶어. "여러분은 욥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어. 그리고 힘들 때쯤 도움을 주신다고 하셨지. 물론 힘들 때는 그 말이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거짓말하신 적이 없어.
요즘 젊은 세대를 '불안한 세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불안과 두려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감정인 것 같아. 욥 같은 고난은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힘에 부치는 어려움과 절망, 아픔이 있잖아. 특히 빠르게 변하는 기술 때문에 '내 일이 내일도 존재할까?' 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우리를 더 두렵게 만들기도 해.
이런 불안감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해. 누군가의 말이 우리의 두려운 부분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하잖아. SNS를 보면 잘 나가는 사람들은 많아 보이는데, 나는 뒤처지는 것 같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막막하고, 돌아설 용기도 없는 상황에 처할 때도 많지.
더 나아가 요즘 정보 편식 때문에 나와 다른 생각은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고, 내 의견이 곧 나 자신이 되어버려서 나와 다른 의견은 나에 대한 비난이나 공격으로 느껴지기도 해. 이런 두려움과 혼란 속에서 우리는 생각의 차이만으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것 같아.
그래서 올해 코스타 주제인 '샬롬'이 정말 시기적절하다고 생각해. 두려움, 상처, 불안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샬롬이 정말 필요하잖아. 그런데 정작 우리 자신부터 샬롬을 누리지 못할 때가 많지.
우리가 이렇게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 성경은 우리 안에 있는 불안함과 두려움의 근본적인 이유를 '사랑 없음'이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있어. 성경은 분명히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했어. 하나님의 사랑이 비어 있는 자리에 두려움이 파고드는 것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네 마음 안에 두려움이 올라올 때, 그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생각하면 돼.
모두가 바라는 진정한 샬롬, 평강, 관계의 회복, 정의, 풍성함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만 찾을 수 있어. 성경은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고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어. 네가 겪고 있는 어떤 어려움도 하나님 앞에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욥기는 고통의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고통 속에서 '사랑'을 찾아보려고 해. 욥기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아. 오히려 모든 사랑이 떠나버린 듯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보여줄 뿐이지.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욥기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거야. 우리 삶도 쉽지 않은 광야와 같잖아. 지금도 삶의 무게를 안고 있거나, 고난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럴 때 고통을 넘어 회복한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위로를 넘어 '나도 반드시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욥은 마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어. 삶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 직장이나 건강 같은 안정적인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졌지.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을 거야.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무조건 내 잘못이라고 비난했고, 마음의 방어벽이 무너져 누가 쳐다보기만 해도 상처받는 상태가 되었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지만, 믿었던 하나님마저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절망의 자리에 욥이 있었던 거야.
하지만 욥의 이야기는 이렇게 뼈아픈 무너짐으로 시작했지만, 그 끝은 온전한 회복과 사랑하고 사랑받는 놀라운 여정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줘. 고통의 언어를 아는 신앙의 선배 욥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온전한 샬롬을 이룰 수 있는지 배워보자.
욥기는 수많은 질문으로 가득 차 있어. 왜냐하면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왜?'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야. 우리는 고통이 아닌 온전한 삶, 샬롬을 위해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이지. 욥은 고통 속에서 수많은 질문을 던졌고, 결국 응답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샬롬을 누리고 이웃에게 흘려보내게 되었어.
신앙인에게 질문은 마치 컴퓨터의 버그나 바이러스를 잡는 업데이트 도구와 같아. 질문을 통해 우리는 샬롬, 평강, 기쁨을 누리며 신앙을 최적화할 수 있지. 하지만 모든 질문이 좋은 것은 아니야. 창세기 3장의 뱀의 질문처럼 독이 되는 질문도 있어. 질문이 우리를 살리는 '샬롬 백신'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어.
질문할 때 기억해야 할 다섯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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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을 좋아하신다.
욥은 하나님께 거칠고 불경스럽기까지 한 질문을 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그를 야단치지 않으셨어. 오히려 직접 찾아와 말씀하셨지. 하나님은 어떤 질문이든 다 받아주셔. 궁금한 점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계속 가지고 가자. -
질문 자체보다 그 뒤에 숨겨진 진짜 의도를 살펴야 한다.
말은 겉모습일 뿐이고, 그 안에 담긴 의도는 다를 때가 많아. 겉모습만 보고 반응하면 상대의 숨은 진심이나 아픈 마음을 놓치기 쉬워. 욥의 질문은 거칠었지만, 하나님을 떠나려는 반항이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나오는 질문이었어. 신뢰에서 비롯된 질문인 거지. -
질문의 전제가 바른지 살펴야 한다.
잘못된 전제는 부실한 기초와 같아서 불필요한 갈등과 왜곡된 결론을 가져올 수 있어. 예를 들어, '지옥에 가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진짜 믿음일까?'라는 질문은 전제 자체가 잘못된 거야. 하나님이 계신 곳은 지옥이 될 수 없거든. 우리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수는 있지만, 동굴에 갇히지는 않아. 실패를 경험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야. -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에 '사랑'이 전제되었는지 살펴야 한다.
욥의 친구들은 죄를 지으면 고통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는 인과응보의 법칙만 생각했어.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의 법칙 안에 두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도, 친구도 사랑하지 못하게 돼. 사탄의 질문처럼 악한 의도를 가진 질문조차도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 다루는 것이 필요해. 인간은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은 온 세상에 알리고 싶으셨던 거야. -
하나님은 반전의 대가이시다.
하나님은 악한 질문도 사용하셔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주시고, 가장 무너진 자리에 찾아오셔서 샬롬을 회복시켜 주시는 희망을 주셔. 욥의 이야기는 고난 속에서도 다시 사랑받으며 샬롬을 회복할 수 있는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야.
욥의 변화: 샬롬으로 가는 여정
욥의 변화는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어.
- 경청 (Listening): 욥은 하나님의 질문을 통해 창조주의 음성을 듣는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어. 우리의 샬롬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정한 경청으로부터 시작돼.
- 열림 (Openness): 하나님께 따지고 항변하던 욥이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고백하게 되었어. 이는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고 관점이 뒤바뀐 인식의 대전환이었지.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믿는 확신 없이는 진정한 샬롬을 누릴 수 없어.
- 내면의 상처로부터의 승리 (Victory over Darkness): 욥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친구들을 용서함으로써 내면의 상처로부터 승리했어. 용서는 내가 시작해야 하는 것이지만, 화해는 상대방의 회개와 정의가 세워질 때 가능해. 고난이 오면 '또 어떤 큰 선물을 주실까' 기대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누가 망칠 수 없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악을 사용해서 선을 이루시기 때문이야.
-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 욥은 식탁에 초대하고 음식을 나누며 관계를 회복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했어. 용서와 화해는 다르지만, 욥은 화해로 이끄는 사람이 되었지.
한국어에서 '사람'이라는 단어의 'ㅂ'을 빼면 '사랑'이 되는 것처럼, 우리 안에는 이미 사랑의 유전자가 있어. 욥기는 우리에게 질문은 죄가 아니며, 하나님은 솔직한 따짐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보여줘. 겉으로는 흔들리는 듯해도 속으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 결국 샬롬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이야.
사랑은 그저 아름다운 감정이 아니라, 노력으로 쌓아가야 하는 의지적인 선택이야. 욥은 모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것을 보여줬어.
우리의 상처는 하나님 손 안에서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이 될 수 있어. 그래서 우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세상 모든 사람이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과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자. 여러분의 빛나는 여정을 응원하며 기도할게. 사랑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