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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감정을 잘 번역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 황석희 번역가

최성운의 사고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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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안녕하세요, 최성운입니다. 오늘의 게스트분은 '번역'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 중 한 분이죠. 20년차 영화 번역가이자, 최근에 '오역하는 말들'이라는 책을 출간하신 황석희 번역가님을 모셨습니다. 책 '오역하는 말들'과 이 영상에서, 석희님은 비단 직업인으로서의 번역과 오역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주고 받던 의사소통도, 실은 무수히 많은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던 과정이라는 걸 저는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는데요. 그렇다면 소통에서의 오역은 왜 발생하는지,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석희님의 다정한 관점을 인터뷰에 담았습니다. 평소 슬기로운 언어생활에 관심이 많으셨던 분이라면 꼭 이번 영상에서 느끼시는 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모쪼록 재밌게 시청해주시고, 좋아요와 댓글도 많이 부탁드릴게요! #사고실험 #황석희 #오역하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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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사람을 번역할 때는 문장보다 사람을 번역하는게 얼마나 어렵겠어요.

정확히 번역한다는게 사실상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의 말을 번역하고자 할 때 아주 너그럽고 넉넉하게 번역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나중에 내가 오역임을 알게 됐을 때 이불킥을 덜하게 돼요.

그리고 머릿속에서 살짝 꺼내서 다시 수정하시면 되잖아요.

그거 하나만 하셔도 서로에 대한 오역을 정말 높은 퍼센테이지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음악] 네, 안녕하세요.

최성훈의 사고실험입니다.

오늘도 굉장히 특별한 게스트분을 모셨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좋아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엔딩 크레딧에서 이분의 성함을 발견할 때마다 아, 영화를 제대로 받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요.

이제는 번역이라는 일에 대명사와도 같은 분이 되신 그리고 제가 굉장히 닮고 싶은 직업 윤리를 가진 분이십니다.

네.

황석희 번역가님 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혹시 기분은 좀 어떠신가요? 어, 너무 신선해요.

너무 신선하고 저는 사실 시작하기 전에 인트로 들어가기 전에 한 3초 정도 집중하시는 것처럼 이렇게 관청을 하시고 집중하시고 하는 걸 보는게 아, 되게 잘 만들고 싶어 하는구나.

저분이 저 그런 사람 되게 좋아하거든요.

약간 뭐랄까요? 그 아까 직업리 이런 거 말씀하셨잖아요.

근데 일을 집하게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강박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머리털 다 뜯어가면서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실제로 많이 빠집니다.

예, 맞아요.

근데 그런 분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방금 피 님 이렇게 집중하시고 이런 모습 보면서 되게 멋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심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 저희 사고실험 채널은 또 어떻게 이렇게 방문을 해 주시게 됐는지 일단은 되게 관심 있게 보고 있던 채널이었고요.

이동진 평동가님 편을 보고도 되게 재밌었고 그리고 마침 제 책이 지금 저기 있는 그 오역하는 말들이란 책이 나와서 그것에 관해서 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되겠다 싶어서 냉큼 나왔습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사실 말씀해 주신 것처럼이 오역하는 말들이라는 책이 최근에 나오게 됐는데 사실 번역이라는 일은 정확성과 신뢰 이런 것을 덕목으로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아이 오역이라는 단어가 책의 핵심 주제어가 된게 전 되게 신선하고 우선이 제목은 좀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 그 배경을 좀 여쭤봐도 될까요? 일단은 번역가들이 아주 싫어하는 단어죠.

아주 아주 혐오하는 단어고요.

애증의 단어인데 오역이라는 것이 번역에 있어서 정확성과 신뢰 같은 것들이 미덕이다.

이렇게들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려면 사실 번역이라는 행위에 있어서의 정확성은 무엇인가부터 정의하고 넘어가야 돼요.

세관에서 말하는 정확성이라는 거는 영어로는 뭐크랙스 같은 것일 거예요.

그런데 번역가가 말하는 번역에서의 정확성은 가까워요.

음.

음적성 뭐정합성 이렇게 번역할 수 있을 거예요.

뭔가 좀 더 의도라든지 이런 것이 반영된 그렇죠.

그렇죠.

그 맥락에서 어떻게 이것을 전달할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거든요.

바라가 어떤 맥락에서 얘기를 했느냐가.

그러니까 반드시 정확한만이 미덕인 일도 아니에요.

사실 번역이라는 것이.

그리고이 제목 자체는 오늘 같이 오시면 편집자님이 처음에 제한서에 써오신 제목이에요.

이메일로 받았을 때 가제를 보고 눈에 확 들어오는 거예요.

할 말이 있겠다.

오역에 대해서 번역가들은 할 말이 너무 많아요.

사실은 만약에 피드 님한테 편집이라는 거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 보세요.

그면 할 말이 너무 많잖아요.

너무 많죠.

네.

제 번역 작업에서만 이야기하는 오역이 아니고 사람 사이에 소통해서 오는 오역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었고 뭐 너무 감사하죠.

그럼 말씀해 주신 것처럼이 오역이라는 것이 사실 사람들끼리 소통을 하다 보면은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가 있고 서로 이해하는 바가 달라지면서 굉장히 많은 갈등들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그런 일상에서의 오역들은 좀 어떤 이유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시는지 좀 느끼셨던 바가 있을까요? 일상의 오역, 그러니까 소통에서 오는 오역은 크게는 세 가지인 것 같아요.

무지에서 오는 오역이 있을 거고요.

그리고 냉수에서 오는 오역이 있을 거고 선의에서 오는 오역도 있을 거예요.

무지에서 오는 오역은 실제로 이제 모르는 거죠.

상대방의 상태가 어떻고 그 사람 감정이 어떻고 배경이 어떻고를 모르니까 오역을 하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을 거고요.

냉소에서 오는 오역은 정말 요즘에 많이 봐요.

그냥 그 사람이 주는 거 없이 싫은 거예요.

커피 마실래? 그럼 내가 커피도 못 먹고 다니는 사람 같아.

그렇게 냉소에서 오는 오역이 있을 것 같고요.

선의에서 오는 오역 같은 경우는 저 사람을 보호하고 싶을 때 혹은 나를 보호해야 할 때도 쓸 수 있을 거고 의도적으로 오역함으로써 저 사람이 어떻게 상처받지 않게끔 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의도적으로 오역을 하고 또 그걸 보여 주는 예들일 거예요.

그러니까 번역 작업할 때는 사실 무죄 오는 오역이나 아니면은 그런 선입견에 의한 오역들이 가장 많은데 일상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이유에서 오역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이 책에는 어떻게 보면 석키 님께서도 스스로 경험한 타인이 내 말을 오했던 경험도 있을 수 있고 내가 타인의 말을 오했던 경험도 있을 수 있는데 이제 그런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의 일상에서의 언어 생활도 한번 점검을 하는 그런 계기가 됐을까요? 그럼요.

저는 뭐이 책을 쓰기 전부터도 늘 그렇게 생각을 하고요.

이제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내가 주는 원문을 상대방에 따라 다른 수준의 원문을 제공해야 한다라는 생각도 드는 거예요.

최근에 저희 딸이 안경을 쓰게 됐어요.

일곱살인데.

아, 조금 일찍 쓰시게 됐네요.

예.

이게 굉장히 부모들 입장에서 되게 가슴 아픈 일이거든요.

오늘 놀이터에서 이렇게 놀던 아이가 내일부터는 내가 놀이터에 사진을 찍으면 무조건 안경을 쓰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아이와 작별하게 되는 거예요.

심지어 저희 아내는 되게 많이 울었어요.

이제 너무 속상하고 이러니까 엄마가 너무 속상해.

뭐 너 눈이 나빠져서 너무 속상하다.

뭐 이런 말들을 계속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런 얘기도 했어요.

아이 앞에서 속상하다는 말을 하지 마라.

음.

아이는 능숙한 번역가가 아니잖아요.

아이는 굉장히 서은 번역가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상대가 던지는 원문을 해석할 때 상대방의 감정이나 그 맥락들을 파악하는 능력이 어른 같지 않아요.

그 어른이 그런 걸 가지고 속상하다라고 말을 하면 자기가 잘못한 줄 알아요.

아 내가 뭘 잘못했구나.

눈이 나쁜게 내 잘못이구나.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깐 상대방이 어떤 번역가인지도 판단을 해서 원문을 던져야 된다는 거죠.

음 상대가 가능하면 오지 않도록 이번에 그런 걸 딸 아이 이해해서 좀 많이 느끼긴 했어요.

음.

[박수] 어떻게 보면 그 오역의 발생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 것도 이상하게 뭐 나와의 거리에 따라서 또 다르잖아요.

예를 들면 말씀하신 가족 관계에서도 그런 일들이 발생하고 우리가 보통 말로 인해서 상처를 받는 건 중요한 사람들과의 말에서의 오역 때문에 상처를 입게 되는 경우도 많은 거 같은데 그렇다면은이 우리가 오역을 줄이기 위해서 또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일이 어떤게 있을까? 지금 말씀하신 거의 정확한 예가 책에 한 에피소드로 있는데 원더라는 영화가 있어요.

네.

그 장애가 있는 아이의 안면 기형을 타고난 아이 있거든요.

그 아이의데 엄마가 줄리아 로보츠예요.

음네.

그 아이가 안면 기형이 너무 심해서 홈스쿨링만 하다가 처음 학교에 갔다 왔어요.

씩씩하게 힘을 내서 용기에서 갔는데 학교에 갔는데 뭐 예상했던 반응인 거죠.

그 집에 와서 펑펑 울어요.

울면서 엄마한테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어? 이러고 막 따져요.

그니까 엄마가 너 못생기지 않았어.

그러니까이 아이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해요.

내 엄마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잖아.

이렇게 말을 해버려요.

그니까 엄마가 내 말은 엄마 말이라서 안 중요해.

그러니까 안 중요해.

그래요.

그걸 번역하면서 되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줄러버츠가 그래요.

아이한테 내 의견이 엄마니까 가장 중요한 거야.

왜냐면 내가 너를 가장 잘 알고 너를 가장 아끼는 사람이니까 내 의견이 가장 중요한 거야.

너한테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반대로 행동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도 만약에 뭐 어디 악플이 달렸어요.

되게 좋은 댓글이 한 100개 달리고 악플이 한 세 개 달렸어요.

그럼 그 세 개만 막 죽겠거든요.

그죠? 저랑 뭐 생판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제 인생에 지분이 하나도 없고.

그분들도 잊어버렸을 거.

그렇죠.

그런데 그걸 계속 쳐다보고 그걸 해석하려고 애쓰는 거예요.

이 사람 무슨 뜻에서 이렇게 얘기했을까? 혹시이 사람이 말한게 정말 진실일까? 근데 그 와중에 제 아내와 제 어머니나 제 딸은 제 편이니까 저를 서포트하는 말들을 해 줄 거 아니에요.

잘했어.

잘한 거야.

그거 아니고 진짜 잘한 거야.

그러면 저는 흘려들어요.

아 뭐 안 해니까 그렇게 얘기를 해 주는 거지.

그래서 오히려 가까운 사이에서 오역이 더 많이 발생해요.

왜냐면 원문을 존중하지 않아.

어 그렇죠.

번역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원문을 우리가 존중해야 되는 건데.

예.

원중을 존중하고요.

원문 앞에 겸손해야 하고 발화자를 늘 존중해야 제대로 된 번역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발화자를 가장 존중하지 않고 그냥 한귀로 흘려 버리니까 계속 오욕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제대로 된 진실을 말을 하고 있는데 심지어 전혀 관계도 없는 다른 사람의 말을 막 애써서 번역하려고 온갖 에너지를 다 썼고요.

그 이게 뭐 하는 거냐는 거죠.

잘 생각해 보면.

그러니깐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좀 더 애정 있게 친구의 말이든 뭐 어머니의 말이든간에 짜증내지 말고 찬찬히 존중하고 잘 들어주면 좋겠어요.

그게 첫 번째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음.

저는 말씀하신게 방금 탁 머리를 좀 때리는 느낌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저도 영어 인터뷰를 종종 한단 말이죠.

그럼 이제 번역도 제가 하는데 그때는 제 최선을 다해서 어떤 사람의 말보다 이걸 잘 번역하려고 막 근데 그 일을 하듯이 내가 저희 부모님의 언어를 번역하려고 노력을 했더라면은 정말 찔리는 분이 많을걸요.

이거 보시면 아마 그러면 저희가 방금 이제 가까운 사람의 언어를 번역하기 위한 조건 같은 것들을 얘기했잖아요.

그러면 가장 가까운 사람은 사실 자기 자신이잖아요.

터키 님 같은 경우에는 혹시 자기 자신의 그런 말을 오해서 힘들었던 경험이나 이런 경험은 없으셨어요? 저의 말을 오해서 힘들었던 경험은 계속 있죠.

늘 있어요.

제가 무슨 대단한 인격자거나 뭐 해탈에 이잃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제 말을 늘 오역해요.

어디 가서 이렇게 멋진 채널에 나와서 이야기를 할 때도 어느 순간에서는 네가 지금 가식을 떨고 있나? 그런 생각을 엄청 많이 해요.

제 맘속에 있는 어떤 간사한 내가 약삭빠른 내가 되게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내가 나를 종종 오역해서 밖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뭐 지금도 하고 있고요.

본인만 알잖아요.

내가 얼마나 비루한 사람인지를 본인만 알아요.

그래서 나를 오하지 않는 법 같은 건 세상에 없는 거 같고 늘 오하면서 살고 그 과정에서 어떤 순간에는 훨씬 더 진솔해야 하고 어떤 순간에는 그 오역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해야 하는 입장이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복잡하게 사는 것 같아요.

원래 인생이 복잡하죠, 뭐.

네.

지금 조금 그럼 과거로 시계를 한번 돌려보면은 우리가 흔히 이제 번역이라고 했을 때 그 다른 언어를 잘하는 사람, 영어를 잘하는 사람,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 이런 이미지가 있는데 사실 한국어를 되게 잘해야 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조사가 어떻게 바뀌냐, 뭐 소유격기 어떻게 바뀌냐, 뭐 시제가 어떻게 바뀌냐, 이런 거에 따라서 뉘앙스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한국어를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어야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거다 보니까.

그러면 석키 님은 원래부터이 언어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 뒤에 깔려 있는 어떤 맥락이나 의도라는 것에 대해서 좀 예민하신 분이셨나요? 여름으로 예민한 아이였던 건 맞는데 그렇다고 뭐 언어에 대단한 감각이 있거나 언어에 예민한 사람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근데 그런 건 있었겠죠.

좀 굉장히 고압적이고 무서운 아버지 자랐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주눅이 들어 있고 눈치를 보고 이런 생활이 길었던 거 같아요.

그게 번역가로서의 능력지에 도움이 됐나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되게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근데 언어 감각을 타고 났느냐 뭐 후천적인 노력이 중요하느냐를 따졌을 때 저는 뭐 선천적인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번역가로서도 제가 벌써 20년 차잖아요.

그니까 보통 사람들은 아까 맨 처음에 인사 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원문을 정확하게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지만 원문을 이렇게 옮겨오는 것 이건 우리가 사실 학장 시설적 때 평생에 온거든요.

독해.

독해.

네.

그런데 번역가 실제로 하는 일은 사실 원문을 정확하게 옮긴 것을 만드는 일이에요.

이게 번역이에요.

보통은 그니까 저는 여기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되게 세밀하게 만져야 되거든요.

정밀하게.

가령 이런 예를 들어 볼게요.

어떤 엄마가 자식을 여기 두고 내가 어떻게 집에 가요라는 문장이 있어요.

그러면 이거 뭐 영어 문장으로 어렵지 않아요.

한번 보면 아 그 뜻이구나.

음.

그다음 번역과는이 과정에서 뭘 고민하냐면요.

조사를 다 바꿔보고 어미를 다 바꿔 가면서이 캐릭터의 표정과 제수처와 그 분위기와 맞는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으려고 했어요.

내가 어떻게 집에 가요잖아요.

이것만 해도 아마 조합이 한 20몇까지 나올걸요.

내가 어떻게 집에 가요? 어떻게 내가 집에 가요? 집에 내가 어떻게 가요? 그리고 집 애도 애를 쓰느냐 L을 쓰느냐가 달라요.

내가 집에 어떻게 가요? 그 조합을 일일이 다 써 봐요.

그 김은 작가님이 카레노래 첫 문장 쓰실 때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아니면 꽃이 피었다.

약간 이거 이거 고민을 하느라 몇 달 하셨다는 약간 그죠.

그런 것처럼 조합이 너무 많고 그것들을 일일이 다 읽어 보면서 아마 번역가들마다 택하는 문장이 다를 거예요.

누구는 이게 줬고 누구는 이겨줬고 번역관들도 다르니까요.

감성도 다르고 그런데 이렇게 데일 기타하게 만지는 과정을 20년째 하고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일반인들에 비해서는 언어 센스가 민감할 수밖에 없어요.

20년 차 셰프라고 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는 미각이 예민할 거잖아요.

그거랑 마찬가지인 거라고 생각을 해서 제 생각에는 뭐 분명히 선천적인 재능이라는 것도 있을 텐데 후천적으로 쌓이는 경험치가 훨씬 중요하지 않나 이럴 때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음.

좀 민감한 얘기지만 또 이제 직업으로서의 오역에 대한 얘기도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 있고 그 석키 님처럼 이렇게 인지도가 높으실만큼 사실 세금처럼 따라오는게 오역에 대한 시시 미비를 가리는 지적 같은 것들이 따라오는 거잖아요.

근데 저는 석키 님께서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번역을 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시는 분이라는 걸 느끼거든요.

느껴지거든요.

그럼에도 우리는 실수를 하잖아요.

오류를 내고 어떤 마음으로 이분은 자신의 실수와 오류를 받아들이는 걸까? 실수에 대한 회복 탄력성 이런 것도 좀 궁금했었습니다.

사실 저는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편이고요.

그래서 예전에는 만약에 5역비가 걸리거나 누가 뭐라고 해서 소위 요즘 말로 긁히면 덤벼들어 싸웠어요.

댓글로 싸우고 감수자들랑도 싸우고 진짜 막 쌈따이던 시절이 있었어요.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에 낮아서 그래요.

또 그러니까 누가 제 실수에 대해서 지적하는 걸 못 참는 거예요.

자존감이 낮을수록 맨날 싸우고 변명하고 핑계를 대고 그걸 방어할 논리를 찾아내고 하는게 너무 피곤하고 에너지도 많이 들고 구질구질해요.

어느 순간인가 그게 너무 힘드니까 그냥 다 인정을 해 버리기 시작했어요.

너무 좋은 거예요.

그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생각도 못 했어요.

아메리칸 셰프라는 영화일 거예요.

그 샌드위치.

예, 맞아요.

쿠바 샌드위치 나오는 영화인데 진짜 애써서 번역했거든요.

영화도 너무 좋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레이먼 킴 셰프 님한테 막 전화해가지고 달달 볶아 가지고 이럴 때 이런 이런 요리법이면 이걸 뭐라고 하냐? 한국말로 어떻게 옮겨야 자연스럽냐? 달달달 볶아 가지고 낸 자막이에요.

그 자막 자체도 되게 재밌게 잘 나온 편이에요.

그런데 거기서 오역을 하나 했어요.

스위 브레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냥 별 생각 없이 꿀빵이라고 썼어요.

아, 꿀빵.

근데 그게 소해 흉선이라는 거예요.

식재료 중에 하나였던 거죠.

그런데 그 정도까지 세부적으로 챙겼으면 알아냈을 수도 있는데 그 정도까지 생각은 못 했던 거죠.

근데 누가 그걸 지적하니까 속이 너무 상한 거예요.

내 이렇게 애써서 만든 자막이었는데 그것도 자막이 한 2,000개 돼요.

그거 하나 때문에 내 2,000개를 쓴 자막이 모두 편화되는게 너무 속기상하고 막 화가 나는 거예요.

근데 그럼에도 너무나도 뻔한 오역이니까 그냥 인정을 해 버렸어요.

영어 커뮤니티에다가 사과문을 올려고 죄송하다 제 불차리고 제가 정말 몰랐다.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안 하도록 하겠다 이러고 글을 올렸어요.

그때도 댓글이 한 150개, 200개씩 달렸는데 거의 한 99%의 글이 다 막 저를 응원해 주시는 글이었어요.

번역가 이렇게 인정하니까 보기 좋다 이런 글들이었거든요.

그런 것들을 지켜보고 있으면서 아, 되게 홀가몬하더라고요.

그 인정해 버리는게 뭐 틀린 걸 인정하는게 왜 그렇게 어려웠지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 뒤부터는 인정을 꽤 쉽게 해요.

이게 너무 명백한 제 실수일 경우에는.

음.

근데 그렇다고 뭐 실수해 놓고선 아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속게 넘어가지도 못해요.

사실 번역가는 집에서 이불킥을 100번 하고 머리 다 치워 뜯고 내가 왜 그랬을까 이런 족속이거든요.

그리고 뭐 솔직히 냉정하게 말해서 그런게 계속 반복되면 당연히 클라이언트의 신뢰를 잃어버릴 그럼요.

그 굉장히 위험한 거거든요.

직업인으로서 굉장히 가슴 아픈 건데도 일단 그렇게 사과를 하고 나면 거기서 1달락은 돼요.

그 뒤는 제목 신고예요.

같은 실수를 어떻게 반복하지 않을 것인지, 최대한으로 내가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 것인지 블루레이에 실릴 때 자막을 수정한다거나 VOD에 나갈 때 자막을 수정한다거나 그 뒤는 어쨌든 제목씨예요.

그런데 그 자세가 번역만이 아니고 거의 모든 일상에서 정말 크게 도움이 돼요.

음.

쉽게 인정을 하는게 누가 어떤 분들은 되게 작정을 하고 막 옛날 옛날 이야기들을 긁어 와 가지고 저를 소위 긁으려고 이런 흑역사들을 막 그 던져요.

옛날에 왜 이러샀어요? 이러잖아요.

그러면 옛날에는 아예 데고도 안 하거나 대놓고 싸우거나 이랬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말을 해요.

그때는 그게 있어 보이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랬어요.

지금 보니까 멋이 없는데 그때는 그게 멋있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제 마음이 편하고 대응하기도 쉽고 자존감이 되게 올라가요.

어 넌 이런 것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야.

생각보다 넌 좀 멋있는 사람일지도.

이 이런게 되게 의식적으로 그런 자존감이 올라가요.

안 그러면 후질구질하게 싸워야 되고요.

그럴수록 제가 되게 못나지잖아요.

그러니까 여러 분야에서 그냥 쉽게 인정하고 그 뒤에 어떤 노력들을 하는게 본인을 위해서 가장 좋은 길이에요.

진짜 에너지 소모도 단축할 수 있고 그게 저한테는 아주 중요한 회복탈 역성이에요.

시간이 걸리는 거죠.

그 경지까지 가는데 너무 오래 걸렸죠.

저 너무 오래 걸렸고 옛날에 진짜로 별명이 쌈딱이었어요.

고품격 채널에 맞지 않는 말이겠지만 지랄 맞은 번역가라 그랬어요.

그래서 어떤 감수자들이 굉장히 번역가한테 함부로 하거나 어떤 클라이언트가 함부로 하거나 다른 번역가들이 막 당하고 있고 이러면 저 달려들어 싸우고 이런 사람이었거든요.

그 정도로 성격이 진짜 했어요.

근데 지금은 안 그럴 뿐이죠.

음.

근데 저는 아까 그 아메리칸 셰프 얘기해 주셨을 때 아 너무 공감이 되기도 하는 거예요.

이게 저도 댓글 같은게 달리잖아요.

내가 이만큼 잘했는데 진짜 딱 한 번 실수한 것 때문에 매도당한다라고 느껴질 때도 있고.

근데 그게 소비자 입장에서는 너무 치명적이니까 뭐 난 말했는데 그 말이 맞으면서도 그 속상한 마음 그럼요.

늘 늘 겪고 그러니까 어쨌든 그것들을 인정하고 그 뒤에 어떻게 수습하느냐는 제 문제지만 그 반대단에서 봤을 때 어떤 콘텐츠든 어떤 결과물이든 즐기는 사람들의 시선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분들도 이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영화를 평할 때 허술한 어떤 지점이 한계가 발견되면 그 영화를 망작 취급하는 경우도 되게 많거든요.

뭐 완벽한 영화들도 있지만 개헌성이 다소 부족한 영화들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그 영화가 훌륭하지 않은 영화가 되진 않아요.

그런 요소가 하나가 있는 거죠.

이동님, 평동관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영화를 볼 때 너무 그렇게 사소한 흔결에 집착하고 집중하면 더 크고 훌륭한 좋은 것들을 못 보게 된다고 하신 거예요.

너무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뭐 축구 경기를 하나 보는데 메시가 뛰는데 헛발지를 한번 했어요.

와 메시 더럽게 못 하고 경쟁을 나가 버린다구나.

그 뒤에 헤트트릭 했는데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근데 그런 예를 너무 많이 봐요.

인터넷에서.

어, 그러니까 이쪽 끝에 있는 저희 같이 뭘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그런 실수가 있을 경우엔 죽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조금 더 너그럽게 봐주십사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니까 우리가 번역을 한다는 거는 번역가나 그걸 보는 관객 소비자나 같은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라는 대존재 공리에서 시작을 하는 거잖아요.

키 님이 생각하는 한국어가 제가 생각하는 한국어가 동일해야 되는데 요즘 사회가 되게 파편화되고 사람들마다 가치 기준이 너무 많이 달라지면서 사실 그 대전제가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기도 하거든요.

그럼 과연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서로의 말을 슬기롭게 번역할 수 있을까? 너무 거창한 문제입니다만 석희 님의 생각 한번 여우고 싶었습니다.

음.

예.

이거는 다른 분들이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것보다 제가 너무 잘 알고 있는데도 그렇게 못 살고 있기 때문에 늘 반성처럼 하는 생각인데 저한테 제일 가까운 사람의 말을 번역하는 것이든 생판 남의 말을 번역하든간에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는 것 같아요.

가장 좋은 건 애정이 있으면 좋거든요.

그 바라자에 대한 애정이 있으면 귀담아 들으려고 해요.

여유 있게 들으려고 하고요.

그런데 상대한테 애정을 갖기가 굉장히 힘든 사회잖아요.

지금 얼마나 사회가요? 정말 힘들죠.

가까운 사람한테도 애정을 주고선 그 사람의 말을 신중하게 번역하기도 힘든 세상에 남한테 애정을 주고 번역한다.

애정을 주기도 힘들고요.

번역의 시간을 들여서 공을 들여서 하기도 힘든 시대예요.

특히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은 속도를 되게 중시하는 나라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조금만 속도가 느리고 상대의 말을 해석하는게 느린 것 같으면 뒤에서 빵빵된단 말이에요.

그리고 나는 조급해지고 다른 사람한테 뒤쳐질 것 같고 그러니까 막 좁아심이 나 가지고 빨리빨리 번역을 하려고 들어요.

어떤 이슈 같은게 일어났을 때 그 사람에 대한 판단 같은 것도 그렇죠.

섣불리 번역을 하려고 했다가 나중에 일불 킥을 번씩 하는 거예요.

그런 일이 계속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의 말을 번역하고자 할 때 아주 너그럽고 넉넉하게 번역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나중에 내가 오역임을 알게 됐을 때 이불킥을 덜하게 돼요.

그리고 머릿속에서 살짝 꺼내서 다시 수정하시면 되잖아요.

근데 오역이 너무 크면 문장을 처음부터 다 쓰셔야 되잖아요.

그 과정이 굉장히 수치스러울 수도 있어요.

그런 경험을 저도 정말 많이 했죠.

프로번역가들은 실제 작업할 때도 그런게 있어요.

때려 죽여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A의 뜻도 되고 B의 뜻도 되고 C의 뜻도 되고 이런 문장을 만날 때가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이걸 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한테 전화해 가지고 애입니까? 이럴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쓰냐면 경험이 진짜 많은 번역가는 애둘러 써요.

이 A BC의 다리를 하나씩 다 걸치고.

그래서 어떤 관객이 아 이거 A 뜻 아니야? 그러면이 문장이 여기를 보시면 A 뜻이 있습니다.

누가 이거 B 아니에요.

그요 위에를 보시면 여기 B의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애둘러 쓰는데 이것도 굉장히 사실 많은 경험치가 필요한 기술이거든요.

근데 일상에서 사람을 번역할 때는 문장보다 사람을 번역하는게 얼마나 어렵겠어요.

정확히 번역한다는게 사실상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니까 상대방하고 말할 때 가능하면 너그럽게 번역을 해 주셨으면 저 사람의 원문은 뭘까? 역번역을 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뭐 물론 20년차 번역가인 저도 힘들어요.

이거 잘 안 돼요.

근데 알고 있는 것과 아예 모르는 건 또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고요.

각박한 시대일수록 의식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런 태도가 습관이 되게끔 노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밖에 나갔을 때 아 저 사람 말 예쁘게 저 사람 되게 다정해라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중에 하나일 거예요.

요즘에 되게 뾰족한 사회임에도 다정함에 대한 니즈가 되게 커요.

이게 되게 신기한데 그런 것과 마찬가지예요.

뭐 한국이 지금 문회력이 뚝뚝 떨어진다라고 말을 하는데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5하는 안에는 글 쓰기 책이 늘 있는 그거 마찬가지예요.

이게 각박하고 뾰족하고 이렇게 차가운 시대인데 다정암에 대한 니즈는 진짜 커요.

아 다정함을 바라는 니즈도 크지만 내가 다정암을 행하고 싶어 하는 니즈도 되게 커요.

음.

음.

요즘 세상은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말을 예쁘게 하고 싶고 누군가한테도 되게 인상고 상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만약에 그런 니즈가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는 습관을 들리시면 그거 하나만 하셔도 서로에 대한 오역을 정말 높은 퍼센티지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음.

네.

그럼 저희 여기서 1부 마무리하고 2부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예.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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