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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 드디어 깨달았다! 🤫 당신이 사는 이유가 여기에!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왜 사냐고? 이유가 꼭 있어야 할까?

1. '이유'에 대한 생각, 좀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이유'를 묻거나 말할 때, 꼭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예를 들어 "왜 살인하면 안 돼?"라고 물었을 때, "그냥 싫으니까"라고 답하면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잖아. 마치 법이나 규칙 같은 객관적인 근거를 대야 할 것 같지.

2. 이성 vs 감정, 뭐가 더 중요할까?

얼마 전에 감정이 이성보다 더 중요해지는 사회가 문제라는 영상을 올렸는데, 사실 감정이 이성보다 덜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었어. 이성과 감정 모두 중요하지만, 이성이 중요해야 할 곳에 감정이 너무 앞서면 위험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 '결국 이성이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인 것 같아. 이건 내 의도와는 좀 달라.

3. 15년 동안 철학을 공부하며 느낀 '이성의 한계'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15년 가까이 철학을 공부하면서 계속 느낀 건, 이성이라는 게 생각보다 한계가 많다는 거야. 대학원 갈 때도 "이성의 한계를 절감했고, 그래서 이성과 반대된다고 생각되는 감정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고 썼을 정도야. 독일에서 석사 논문 주제도 '하이데거와 본래적인 사랑의 이해 가능성'이었고, 이걸 바탕으로 책도 냈어.

4. 고등학생 때, 삶의 이유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

사실 내가 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때 삶의 이유에 대한 깊은 회의감 때문이었어. '그냥 죽어버려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심각했지. 그래서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역사적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의 생각을 배우면 나도 좋은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

5. 그런데 공부하면 할수록... '삶의 이유'가 꼭 필요한 걸까?

대학교 가서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오히려 '삶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선입견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 사회적 관습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주입된 생각일 수도 있다는 거지.

6. 이성은 '보편적인 틀'에 '개별적인 것'을 끼워 맞추는 능력

우리가 이성을 배우는 건, 마치 부모님이 아기에게 '나무'라는 단어를 가르쳐 줄 때처럼, 개별적인 것을 보편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과정이야. 이렇게 이성 덕분에 우리는 세상을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더 나아가 조작할 수도 있게 돼. 학교에서 배우는 법칙이나 규칙들도 다 이런 이성의 훈련이지.

7. 그런데 '보편적인 틀'에만 익숙해지면...

문제는 이런 훈련을 계속하다 보면, 개별적인 것 자체에 집중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개별적인 것을 그냥 놔두면 불안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지. 고등학생 때 내가 느꼈던 불안감이 바로 이런 거였던 것 같아.

8. '정답 찾기'에만 익숙해진 나, 그리고 삶의 이유

서울대에 가기 위해 공부할 때 가장 중요했던 건 '정답 찾기'였어. 내 생각보다 더 위에 있는 보편적인 정답에 내 생각을 맞춰야 한다는 훈련이었지. 그러다 보니 "나는 왜 살지? 내 삶은 뭐지?"라는 질문이 들었을 때, 거기에 대한 보편적인 정답을 찾지 못하면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마치 시험 문제에서 정답을 못 찾은 것처럼 말이야.

9. 철학 이론, 현실에서는 무력할 때가 많아

대학교에서 철학 이론을 공부하면서, 현실 세계에서 그 이론들이 얼마나 무력한지 느끼게 됐어. 그래서 이성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지. 물론 이성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모든 걸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10. 윤리학 수업,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경험

윤리학 수업을 들을 때도 그랬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배우는데, 각 이론마다 하는 말이 다 다른 거야. 그래서 교수님께 "이론들 중에 뭐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시냐"고 물었더니, "각 이론마다 장단점이 있다"고 하시더라. 그때 정말 허무했어. 그렇게 공부해도 답을 못 얻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

11. '삶의 이유'에 대한 집착, 이성의 선입견 때문이었어

이런 경험들을 통해 깨달은 건, 내가 어린 시절 삶의 이유에 집착했던 건 '이성이 가장 우월하고, 모든 걸 이성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는 거야. 그리고 그 선입견이 꼭 유일하거나 좋은 삶의 태도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됐지.

12. 질문의 각도를 바꿔봤어: '이유가 없는데도 나는 왜 살지?'

그래서 질문의 각도를 바꿨어. "나는 왜 살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지?" 대신, "이성적인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데도 나는 왜 살지? 죽지 않고 계속 사는 이유는 뭐지?"라고 묻기 시작했어.

13. 20대 후반, 내린 결론은 '사랑'이었어

그리고 20대 후반에 내린 결론 중 하나는 바로 '사랑'이었어. 삶의 이유를 이성적으로 찾기 전에도 이미 살아갈 이유를 내 안에 간직하고 있었던 거야. 다만 그 이유가 이성적인 형태가 아니라 감정적인 형태였을 뿐이지. 내가 살아가길 원했던 이유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었어.

14. 할머니를 보살피고 싶었던 마음, 그게 내 삶의 이유였어

어릴 때부터 할머니께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할머니가 아프셨을 때 책임감을 느꼈어.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걸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지. 할머니를 보살피려면 내가 살아야 하잖아. 그 마음 자체가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였던 거야.

15.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유'보다 강력해

누군가는 "왜 그 사람들을 사랑하냐? 왜 잘해줘야 하냐?"고 물을 수 있어. 하지만 내 생각엔 그 '이유'보다 이미 '사랑'이라는 마음 자체가 훨씬 강력해. 그 이유가 나에게는 별로 필요하지 않아.

16. 존재의 근원, 이성 vs 사랑

이성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이유가 가장 근원적인 걸까, 아니면 사랑의 감정이 더 근원적인 걸까? 나는 사랑의 마음이 더 근원적이라고 생각해.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의미를 느끼는 것이 개념을 배우는 것보다 앞서 일어나잖아.

17. 해리 프랭크포트의 '의지적 이성'

미국의 철학자 해리 프랭크포트도 비슷한 주장을 했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성적인 필연성 말고, '의지적 이성'이라는 게 있다는 거야.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아이를 죽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이런 강제력은 이성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지.

18. 궁극적인 이성적 정당화는 불가능할지도 몰라

나치즘이 유대인을 학살한 건 잘못됐다는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왜 잘못됐는지 계속해서 이유를 묻다 보면 결국 끝이 없어. 우리가 제시하는 어떤 설명에도 또 다른 이유를 물을 수 있거든. 그렇다면 우리의 도덕은 궁극적으로 어디에 기초해야 할까?

19. 사랑이라는 '기초적인 필연성'

나와 프랭크포트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건, 우리는 이미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고, 그 자체만으로도 그 대상을 위하고 보호해야 할 필연성을 갖고 있다는 거야. 이런 기초적인 필연성에 근거해서 우리의 복잡한 도덕들이 세워지는 거지, 더 근본적인 이성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거야.

20. 삶의 이유, 알 필요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아

결론적으로 나는 삶의 이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거나, 우리가 알 수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걸 아는 게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아. 오히려 이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삶을 더 잘 살아가는 길은, 세상에 많은 중요한 것들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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