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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평생 선교사 집사님의 감동 요양원 간증 이야기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영우 집사님의 인생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영우 집사라고 해요. 올해 여덟 살이고,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어요. 손이 좀 떨리긴 하지만, 제 인생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신앙의 시작

  • 강원도 산골 마을 출신: 어릴 때 집이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했어요.
  • 서울 상경: 15살 때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서 일했어요. 20살까지 여러 공장을 옮겨 다니며 힘들게 살았죠.
  •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추운 겨울날, 교회 전도사님이 주신 따뜻한 국밥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그냥 주일에만 예배드리는 정도였어요.

인생의 전환점: 사고와 하나님의 부르심

  • 손가락 사고: 23살 때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손가락 두 개를 잃는 사고를 당했어요. 병원비도,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해 절망에 빠졌죠.
  • 목사님의 위로와 성경: 그때 교회 목사님의 위로와 기도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성경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고, "너는 내 것이라"는 이사야서 말씀이 제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어요.

선교사의 꿈을 향해

  • 주변의 만류: 30살에 선교사 훈련을 받겠다고 결심했는데, 학력도 없고 집안도 가난한 제가 선교사가 된다는 건 모두에게 이상한 일이었어요. 친구들은 "시집이나 가라"고 했죠.
  • 불타는 열정: 하지만 제 마음속엔 불같은 열정이 있었어요. 공장에서 모은 돈으로 겨우 학비를 내고, 영어도 부족했지만 매일 새벽 4시에 기도하며 공부했어요.
  • 아프리카 케냐로: 35살에 아프리카 케냐로 떠나 10년간 의료 선교사의 통역과 보조로 일했어요. 의사는 아니었지만 간단한 의료 기술을 배워 현지인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약을 나눠줬어요. 말라리아와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며 하루빨리 돕고 싶었죠.
    • 기억에 남는 순간: 다섯 살배기 소녀가 고열로 실려 왔을 때, 밤새 기도하며 물수건으로 열을 내려줬어요. 아침에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어요.
  •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 깨끗한 물과 전기가 부족하고, 현지 음식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이들의 맑은 눈빛과 웃음 소리가 저를 살게 했어요.

중동에서의 사역과 시련

  • 중동으로 향한 발걸음: 45살에 케냐 사역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중동 지역 선교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모두가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제 마음은 이미 그곳으로 향해 있었죠.
  • 요르단에서의 활동: 47살에 요르단으로 떠나 이슬람 국가에서의 사역은 조심스러웠어요. 남민 학교 교사로 위장 활동하며 아랍어를 배우느라 밤잠을 설쳤죠.
  • 남민촌 아이들과의 만남: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상처를 치료해 주며 지냈어요.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할 순 없었지만,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최고의 복음이라 믿었죠.
    • 감동적인 말: 한 아이가 "선생님이 계신 곳은 항상 평화로워요"라고 말했을 때 밤새 울었어요.
  • 테러 위협과 연행: 60살까지 중동에서 사역하며 테러 위협과 추방 위기를 겪기도 했어요. 한 번은 성경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어 이틀간 조사를 받으며 두려웠지만, 묵묵히 기도하며 주님께 제 목숨을 맡겼어요.
  • 시력 상실이라는 시련: 62살에 갑자기 시력이 흐려지기 시작했어요. 농내장 진단을 받고 완치가 어렵다는 말에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제 약함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어요. 청각이 예민해져 아이들의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게 되었고, 녹음된 성경을 들으며 말씀이 더 깊이 마음에 새겨졌죠. 시력 장애를 겪는 현지인들을 위한 특별 사역도 시작했어요.

한국에서의 새로운 사역

  • 갈 곳 없는 현실: 68살까지 중동에서 사역하다 건강 악화로 한국에 돌아왔지만, 평생 해외에서 살다 보니 한국에는 집도 없고 가족 관계도 다 끊어져 갈 곳이 없었어요. 은퇴 선교사 쉼터에서 몇 년을 지내며 60만 원으로 생활했죠.
  • 요양원에서의 시작: 70살이 넘어서면서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혼자 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요양원에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하나님께 원망하며 방에서 하루 종일 울었지만, 하나님은 이곳에서도 저를 사용하고 계셨어요.
  • 할머니와의 만남: 복도에서 울고 있는 할머니를 찾아가 손을 잡고 기도해 드리고 케냐에서 배운 힐리어로 찬송을 불러드렸어요. 할머니는 "이상한 노래지만 참 위로가 된다"며 웃으셨고, 그 일을 계기로 요양원에서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었어요.
  • 마음으로 듣는 위로: 시력은 없지만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오롯이 들을 수 있게 되었어요. "영호 집사님은 내 얘기를 정말 들어주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치매 환자들과 함께 찬송을 부르거나 전쟁 트라우마를 가진 할아버지 곁에 앉아만 있어도 안정을 주는 사역을 하고 있어요.
  • 하나님 나라는 크기로 측정되지 않아요: 간호사가 "전 세계를 다니셨는데 이런 작은 요양원에서 어떻게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저는 "하나님 나라는 크기로 측정되지 않아요. 한 영혼의 위로가 때로는 천 명의 회심보다 귀할 수 있다"고 답했어요.
  • 작은 예배 인도: 요양원 직원들의 부탁으로 작은 예배를 인도하기 시작했어요. 제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신실하심을 전하며 참석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 마음의 눈물: 오랫동안 말을 거부하던 할머니가 제게 말을 걸고 찬송을 흥얼거렸을 때, 그리고 보호자분이 어머니가 제 대화 후 웃기 시작했다고 말했을 때, 제 마음은 뜨거운 눈물로 가득 찼어요. 하나님은 끝까지 저를 사용하고 계셨어요.

인생의 마지막 장

  • 사명은 변함없이: 아프리카의 뜨거운 사막에서, 중동의 긴장된 도시에서, 그리고 지금 이 작은 요양원에서 장소는 달라졌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명은 같았어요.
  • 후회는 없어요: 평생 고생만 했다는 사람들에게 저는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것, 더 깊이 기도하지 못한 것, 더 담대히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있지만, 선교사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해요.
  • 영원한 아침을 바라보며: 이제 제 인생의 마지막 장이 시작되고 있어요. 의사 선생님은 제게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다고 했지만, 두렵지 않아요. 오히려 평생 섬겨온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뵐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요.
  • 마지막 소원: 이곳 요양원에서 만난 한 분 한 분의 영혼이 모두 구원받는 것을 보고 떠나는 것이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그래서 매일 아침 4시에 깨어 기도하며 중보 기도를 이어가고 있어요.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용하십니다. 시력을 잃어도, 건강을 잃어도, 자유를 잃어도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됩니다. 인생의 가치는 성공이나 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얼마나 깊이 하나님을 신뢰했는지에 달려있어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하나님 손에 붙들리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제 인생의 고백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입니다. 평생을 주님을 따라 걸었고, 마지막 숨까지 그분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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