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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나의 신랑 예수님을 이렇게 사랑한다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사랑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매마른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 찾아보기 너무 어렵습니다. 세상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사랑도 자격과 조건이 되어야 받을 수 있어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모든 것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랑은 사랑이라고 포장은 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이기적인 욕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가장 완전한 사랑으로 알려진이 부모의 사랑마저 왜곡된 경우가 많아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 마저 부모의 방식대로 사랑해요. 자녀는 그런 사랑을 때로 폭력적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 부모의 연약함, 또 자녀의 연약함이기도 하죠. 이렇게 인간의 사랑에는 늘 한계가 있습니다.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제대로 사랑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오늘이 아가서 말씀은 매우매우 귀합니다. 우리가 받은이 말씀 아가서는 완전한 사랑을 소개합니다. 아가서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사랑이 있다고 외치고 있어요. 더 기쁜 소식은이 완전한 사랑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모두이 아가서에 의하면 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또한 사랑받은만큼 사랑하며 살 수 있어요.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을 한없이 받으면 우리도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혹시 사랑받지 못해 받은 상처가 있습니까?이 이 아가서가 여러분의 마음을 치료하는 약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가서 읽어 보면 여러분 읽기 쉽지 않을 때가 있어요. 비록 읽기 쉽지 않지만 오늘이 설교 말씀이 여러분에게 아가서를 어떻게 읽는지에 대한 눈이 눈을 여는 그런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다소 읽기 어려운이 아가서가 쉽게 읽혀지고 아가서만큼 좋은 성경이 없다라고 느껴질만큼 아가서를 많이 읽게 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자 아가서는 무엇입니까?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나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자, 아가서에는 솔로몬이 등장하고 술람미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솔로몬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술람미 여인은 우리를 상징합니다. 모든 사랑을 한 몸에 받는이 솔로몬 왕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이 여인을 너무 사랑해요. 그 여인도 솔로몬의 사랑으로 새롭게 거듭나 감히 왕을 사랑합니다. 왕과 시골 소녀의 사랑 이야기. 이것은이 드라마에서만 나올 것 같은 그런 이야기이죠. 여러분이 아가서에 대해서 감동 안 받는 이유는 이런 종류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받기 때문에 그래요. 대기업을 이어받을 회장 아들이 오랜 해외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회사 일을 밑바닥부터 배우고자 말단 사원으로 몰래 취업합니다. 아버지는 야 그래도 너 부장해라 상무해라 하지만 아들은 또 겸손해서 아 저는 인턴부터 할래요. 이렇게 해서 몰래 취업을 합니다. 회장 아들인지 모르고 항상 이런 사람을 갑질하는 또 부장이 등장해요. 부장이이 회달 회장 아들을 갑질하는데이 회장 아들 옆에는 또 어김없이 백이 없는 계약직 여직원이 등장해요. 그렇게 둘은이 전후회를 키우며 서로 눈이 맞고 티격티격하다가 서로 좋은 감정이 삭트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회장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해요. 특히 회장 아들을 사랑하는 타회사 회장 딸이 나타나 질투에 눈이 멀어서이 여직원을 압박해서 회장하들을 떠나게 합니다. 자 이런 우여극절 끝에이 둘은 어쨌든 결국 부부가 됩니다. 드라마 종료 이렇게여 이런 드라마 뻔이 아는 드라마에 여러분 눈물 흘리고 목숨 걸고 보잖아요 여러분 이런 사랑이 실제로 과연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런 사랑이 좀 존재했으면 하는 인간의 마음으로 드라마나 소설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어쩌면이 땅에서의 완전한 사랑은 오직 소설에서만 나올지 모르겠어요. 자, 그런데 놀라운 것은 완전한 사랑이 소설이 아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이 완전한 사랑의 주인공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이에요. 솔로몬 왕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사랑받고 있는 순란미 여인은 교회와 우리 성도를 상징합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가 보잘 것 없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한 내가 그 사랑으로 거듭나서 왕이신 그리스도를 감히 담대하게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게이 아가서예요. 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정말 감동적인 것은 그가 우리를 사랑하는데 그 어떤 자격이나 조건이 없다는데 있어요. 우리는 사랑받을 만한게 있어서 사랑받은게 아니에요. 흠무할 만한 것이 있어서 청혼받은게 아닙니다. 주님은 내 모습 그대로 심지어 우리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사랑하십니다. 아가서 4장 1절.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내 눈이 비둘기 같고 내 머리털은 길르아산 기스에 누은 염소 때 같구나. 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하는 말이에요, 여러분. 여러분,이 사랑 고백은 신약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12장 7절.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세보다 더 귀하니라. 주님이 날 이렇게 사랑하시니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주님이 왜 나를 사랑하시는가 질문한다면 아가서는 이렇게 답합니다. 너니까 무엇 때문에 사랑하나요? 묻는다면 네가 너무 아름다웠어. 내가 뭐가 그렇게 아름답나요? 말한다면 아가서는 답합니다. 그냥 다 아름다워. 조건과 자격을 초월한 완전한 사랑입니다. 이렇게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완전한 사랑 이야기는 그리스도와 우리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자,이 본문에서 나오는이 솔로몬과 술라미 여인은 그러므로 누구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와 성도입니다. 여러분이 다 아가서의 주인공입니다. 술라이 여인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까요? 여러분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입니다. 자, 그녀는 그의 이름에서도 알다시피 수 지역 시골 출신의 소박한 여인입니다. 그녀는 출신부터 별로 좋지가 않아요. 무명입니다. 자, 그렇다면 분명 그녀의 외모는 매우 빼어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솔로몬이 한 눈에 반할만큼 엄청난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외모는 매우 실망스러워요. 얼굴이 검고 거칠었습니다. 피부가 검은 이유는 반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녀의 출신, 외모, 하는 일, 소유 그 어느 것 하나 솔로몬 왕과 어울리는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왕은 그녀를 너무 사랑해요. 이렇게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로마서 5장 8절을 보세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내가 의인일 때가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리스도가 왜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까? 나의 어떤 부분이 아름다워서 어떤 조건 때문에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날 사랑했대요. 그러니 그 어떤 조건이나 자격 때문에 사랑한게 아닙니다. 흠 많고 죄만은 우리를 그저 사랑해 주셨어요.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셨습니다. 이게 우리의 본 모습이에요. 사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지금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받을 수 없는 사랑을 받아 받기 때문에. 지금 저와 여러분이 완전하고 의인이라면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완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나니 하나님을 감히 사랑합니다.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어요. 원수까지 사랑해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을 담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은 내가 받은 사랑을 닮은 모습이에요. 어떤 사람 얼굴을 보면 정말 사랑 많이 받은 얼굴이 있잖아요. 또 이런 사랑을 받았으면 그 사랑 받은 것을 닮아서 지금 현재의 모습이에요. 사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을 때 무엇을 닮습니까? 그리스도의 어떤 부분을 닮아요?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담는 거예요.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니 나도 조건 없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죠. 자,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성도는 이제부터 남다른 삶을 삽니다. 어떻게 살까요? 첫째로 사랑받은 사람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 조건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은요. 나를 변화시키되 가장 먼저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게 합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사랑받지 못해 생긴 상처. 그럴 때 내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누가 가장 먼저 나를 함부로 대할까요? 나를 모질게 대하는 그 사람이 나를 가장 먼저 함부로 대할까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원수들이 나를 함부로 대할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사랑받지 못하면 나 자신이 나를 가장 먼저 멸시합니다.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해요. 인생을 막 살아요. 어려운 일 당하면 그냥 나를 술독에 빠트려 버려요. 그냥 나도 원치 않는 삶을 그냥 확 살아 버립니다. 가야 되지 않는 곳에 막가 버리고 엉뚱한 것에 시간을 투자하고이 귀한 날을 가지 말아야 될 곳에 막 던져 넣는 것이죠.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으면 그리스도가 나를 존귀하게 여기듯 나도 나를 종귀하게 여깁니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아요. 혹 지금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분들 계십니까? 내 자신이 막 믿고 너는 왜 그래? 나 자신을 질책하는 분들. 그런 분들 계시다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아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받고 있는 사랑을 깨달으면 나는 그 사랑을 담게 되어 있어요. 오늘이 왕의 완전한 사랑을 받은 순람미 여인. 그녀는 자신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왕의 사랑이 그녀를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술라미 여인의 고백을 한번 보실까요? 아가서 1장 5절에서 6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봅니다. 시작.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은 아름다우니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내가 햇볕에 죄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 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아멘. 오늘이 여인은 가정 안에서 한녀 취급을 받고 있어요. 다른 형제의 포도원을 돌보느라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 포도원들 봐주느라 강한 햇볕채 그녀의 피부는 거칠러지고 거무스름해집니다. 자기를 가꿀 여유도 없어요. 주변의 여인들도 그녀를 흘겨보며 무시합니다. 아무도 그녀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함부로 대합니다. 형제에게 왕따와 여인들의 무시와 흘겨보는 시선 그녀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합니다. 그녀의 자존감은 바닥을 쳐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나 놀라운 것. 그녀는 흘겨보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녀를 함부로 대한다고 그녀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평가한다고 나도 나를 그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어떻해요?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솔로몬 왕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 때문에 이것이 사랑을 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녀가 잘한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을 무시하는 자들의 시선과 나를 사랑하는 자의 시선 사이에서 나를 사랑하는 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 거예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자들과 자신을 귀히 여기는 자 사이에서 자신을 종귀히 여기는 자와 같이 나를 종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녀는 선택했습니다. 나를 무시하는 자들의 시선을 선택할 것인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의 자의 시선을 선택할 것인가? 아가서 1장 5절을 보십시오. 너무나 위대한 고백 아닙니까? 내가 비록 검은 아름다우니. 여러분, 이것은 솔로몬의 사랑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검어도 괜찮습니다. 검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솔로몬이 그녀의 애인입니다. 뭐가 부끄럽습니까? 솔로몬의 사랑이 그녀를 돋보이게 합니다. 5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개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가도 같구나. 아, 정말 귀한 말씀이에요. 개달의 장막. 이스마엘의 차남의 이름이 개달인데이 개달의 족속들이 치던 장막입니다. 검은색 염소 가죽으로 만든 장막이 개달의 장막이에요. 그러므로이 개달의 장막이란 검고 거친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그녀의 본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나는 개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나는 솔로몬의 휘장가도 같구나. 이렇게 말해요. 여러분 보이십니까? 이 위대한 영적 자존감이 솔로몬의 휘장 왕이 밖에 나갈 때 치는 왕의 천막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녀는 검지만 솔로몬의 아름다운 사랑이 그녀를 빛나게 합니다. 그녀는 개달의 장막 같지만 그녀는 솔로몬의 사랑으로 옷입어 솔로몬의 휘장 같아요. 엄청난 영적 자존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모습도 이와 같아요. 우리의 겉모습 내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검습니다. 질그릇 같아요. 그러나 그리스도가 날 사랑하셔 내 안에 들어오시니 우리는 보배로 와요. 고린도서 4장 7절. 우리가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했어요.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보배롭습니다. 우리는 검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워요. 왜냐 그리스도가 나를 사랑하시니까. 또한 저와 여러분은 개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그리스도가 나의 의로운 옷이 되시니 나는 솔로몬 왕의 휘장과도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 골로새서 3장 10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합하기 위해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새 사람을 입었으니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아멘. 개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나는 솔로몬의 휘장 같으리로다. 저는 우리 모두가 남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나를 종귀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여러분 그리스도가 나를 대하듯 나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래 그렇게 해도 됩니다. 여러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두 번째 사랑받은 사람은 남을 위해 살지 않고 자기 인생을 삽니다. 내가 사랑받지 못할 때 남들에게 좋게 보이려고 피곤한 인생을 살아요. 이것은 남의 인생을 사는 겁니다. 내 인생이 없어요. 여러분, 이렇게 되는 데는 다 순서가 있습니다. 남의 인생을 살기까지의 순서가 있어요. 그 처음 시작이 뭡니까? 바로 사랑받지 못할 때 생긴 상처 때문에 마음에이 구멍이 하나 있어요. 유년기 시절 받지 못한 사랑은 평생 결핍 상태로 남아 있어요. 왜냐?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가지 못하니까. 그때 텅 비면 잘하면 잘할수록 그게 안 채워져요. 겉은 성장에도 내 안에 사랑받지 못한 어린아이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사춘기 때 받아서야 할 사랑이 없을 때 그 사람은 평생 사춘기로 살아요. 여러분 주변에 보면 어른인데 사춘기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다충기 때 충분히 받아서야 할 사랑을 놓쳤을 확률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른이 되어서도 그 결핍을 채우려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도록 지금 다른 사람의 사랑으로 그 결핍 채우려고 타인이 원하는 내가 되려고 노력해요. 사랑받으려고. 그렇게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내가 아닌 다른 옷을 입고 어색한 삶을 살아요. 남들이 원하는 내가 되고자 남이 정해 준 인생을 삽니다. 내 인생이 없어요. 오늘 술람미 여인은이 솔로몬의 사랑이 없었다면 분명 자신에게 노동을 시킨 형제들을 미워하며 형제들이 심어준 무시당하는 인생을 그냥 살았을 겁니다. 나를 흘겨보는 여인들의 시선에 아무만 하지 못하고 그냥 나 자신을 흘겨보는 그들의 그들의 평가에 맡기며 살았을 겁니다.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에 자신을내어 맡겼을 거예요. 그러나 솔로몬의 사랑이 그녀를 새롭게 거듭나게 했습니다. 흘겨보는 여인들을 향해 술라미 여인은 당당하게 말합니다. 흘겨보지 말라. 이렇게 흘겨보지 말라. 남 눈치 보는 사람 이런 얘기 못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사랑을 구하는 사람은 너 이렇게 하지 마. 이런 말 못 해요.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은 항상 예스만 해요. 노우라고 말할 용기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친절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용기가 없어. 그런 거예요. 노후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이 실망할까 봐. 그가 실망하면 내가 그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할까 봐. 예스맨으로 사는 겁니다. 예스맨은 그래서 피곤합니다. 겉은 웃지만 침대에서 울어요. 사람들 앞에서 극도로 친절하지만 혼자 있을 때 허 남들을 위해 지나친 감정을 다 쏟은 이후에 극도의 피곤함을 느껴요. 사랑에 목말라 그런 것이죠. 주변에 보면 남의 보증을 잘서 주는 사람들도 보면 대부분 예스매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정말 그를 도와주고자 보증서 준다기보다는 그냥 아유 그냥 해 줘야지. 예스 예스 예스맨들이 보증을 많이 씁니다. 여러분 보증 쓰지 마십시오. 예 하지 마시고 노 하셔야 합니다. 오늘 술라미 여인은 노 말했습니다. 남이 말하는 대로 살지 않고 자기 인생 산 거예요. 바로 솔로몬의 사랑을 입고 나니까 노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는 성도님들 이제부터 부질없는 곳에서 사랑을 구하며 남들이 말하는 인생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을 받으시고 그리스도가 말하는 인생을 사십시오. 정말 성경이 말하는 사랑받고 정말 존귀함을 받는 그런 인생을 여러분 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그 인생 살려고 부름받았어요. 그 인생 살려고 주님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부모들도 자녀들을 위해 쏟은 사랑에 대한 대가가 오지 않을 때 지치기 마련입니다. 우리 가운데 정말 자녀로부터 인정받고 내가 잘해 주므로 자녀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녀를 위해 사는 부모들 계십니까? 부모로서 사는게 얼마나 수고가 많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부모로 살면 피곤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도 내가 없어요. 그냥 항상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빠로 하나님 앞에 기도해요. 하나님 앞에 딱 쓰면 내 영혼이 아니라 내 자식부터 하나님 내 자식 내 자식 피곤한 거예요. 하나님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내 앞에서 너는 누구냐? 저요? 저는 우리 아들 아빠입니다. 하나님 그답지 않아요. 하나님은 나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님들 누군가의 부모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로서 피곤한 분들 어서 빨리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돌아오십시오. 부모됨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됨을 충분히 누리시길 바랍니다. 누군가의 배우자로 산다고 그 사람의 시선 때문에 피곤한 인생을 사십니까? 어서 빨리 그리스도의 신부됨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다윗에게 사울 왕이 자신의 군복을 입혔어요. 불편함을 느낀 다윗은 사울 왕이 입혀 준이 왕의 군복을 과감하게 벗었습니다. 다윗은 사울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허락한 고요의 다윗 자신으로 살았어요. 여러분, 이런 다윗은 자유롭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사울의 옷은 벗고 다윗으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지 않으면 후회합니다. 이 교훈을 우리는 오늘 받아요. 때가 있습니다. 때를 놓치면 안 돼요. 오늘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어떻게 부르는지 오늘 본문 2절을 한번 잘 보세요. 참 아름답습니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여러분, 이것은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에요. 그리스도가 선택한 단어들에 집중해 보십시오.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누이라는 것은 아주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비둘기는 순결하고 온순하며 아름답다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나의 완전한 자야. 솔로몬의 눈에 비친 순미 여인은 흠이 없고 완전 무결한 아름다움의 극치였어요. 그리스도가 우리를 이렇게 보는 겁니다.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이것이 여러분의 정체성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검고 개달의 장막 같았지만 그리스도가 나를 이렇게 불러 주시니 나는 완전하고 흠미없고 순결하며 아름다움의 극치에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 이런 분들입니다. 아셨어요? 여러분, 이게 여러분 정체성이에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우리를 흠이 없게 하시고 흠이 없다 불러 주세요. 유다서 1장 24절.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미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이 여러분 바로 이분이 그리스도시죠. 그리스도가 나를 빛나고 흠미없게 하시려고 나의 모든 수치와 흠을 십자가에서 다 제거해 주셨어요.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문을 열어다오. 저는이 좋으신 주님이 언제 오시든 밤중에 오시든 새벽에 오시든 주님께 여러분의 문을 활짝 열어 드리기를 바래요. 오늘 3절에 보니깐 밤이슬을 맞아서 찾아왔어요. 주님이 주님은 밤에도 오시고 새벽에도 오시고 불쑥불쑥 언제든지 오셔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시와 때와 상관없이 언제든 내 마음의 문을 주님께 열기를 바래요.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런 풍성함을 주시려고 주님은 우리에게 밤에도 찾아오십니다. 자, 문제는 이겁니다. 오늘 술라미 여인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밤늦게 찾아온 솔로몬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3절에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 마는 그녀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옷을 벗었어요. 발도 다 씻었습니다. 문을 열어 주기 위해 나가려면 옷을 다시 입어야 되고 또 문을 한번 열어 주고 다시 들어오면 고대 근동에서는 다 발을 씻었거든요. 그러니까 발을 다시 씻어야 돼요. 이 이 귀찮은 겁니다. 익숙함이 만들어낸 영적 권태기를 말하는 겁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는 이런 권태기가 없는지요? 그리스도의 사랑을 너무나 많이 받았는데 주님이 나에게 찾아올 때 나는 잠자고 있고 나의 안락 때문에 나의 편안함 때문에 나의 편의 때문에 주님 지금은 안 돼요. 나중에 찾아오세요. 그렇게 말하는 분 계시지 않은지요? 주님이 나를 지금 필요로 하는데 난 다음에 할게요. 주님. 그렇게 말하는 분들 계십니까? 영적 번택이에요. 술라미 여인은 미적미적하다가 고민 끝에 그래도 뒤늦게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솔로몬이 이미 떠나고 없었어요. 이에 신부는 빨리 문을 열어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실성한 여인처럼 솔로몬을 찾아 나섭니다. 이에 그녀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 야간 경비병들이 심야 통행 규칙을 어긴 그녀를 상하게 했습니다. 자, 상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솔로몬을 찾아 헤니다. 8절에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함으로 병이났다 하려무나. 술람이 여인에게 고통이란 경비 병들로 인한 상함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의 부제가 그녀의 고통이었어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도의 고통이어야 합니다. 인생에서 일이 터지고 저이 터지고 이런 수롱에 빠지고 이런 고난을 당한 당하고 이렇게 해서 상함하고 상하고 여러분 그게 나에게 진짜 고통이 아니라 불러도 대답 없는 하나님 때문에 고통스러워 해야 돼요. 하나님의 부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때 하나님 어디습니까? 이게 우리의 고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뒤늦은 후회를 했어요. 자, 그렇습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지 않으면 후회합니다. 주님이 부를 때 즉각 문을 열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있어요. 여러분, 성도는 다른 것으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을 때 더 사랑하지 못한 일에 후회합니다. 나의 안락을 추구하다가 그리스도를 예배해야 될 때 예배하지 못한 일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은혜 받을 수 있을 때 은혜 받아 놓지 못한 것에 대해서 후회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정말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배해야 될 때 세상의 급한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이 주님께 문을 닫은 적이 있지는 않은지요? 여러분, 그런 모든 공백들이 나중에 후회로 쌓이는 거예요. 여러분의 자녀들도 고3 때가 되면 교회 보내지 않고 학원에 보내는 일 여러분 그런 건 멈추셔야 돼요. 지금 문을 닫은 거예요. 문을 닫은 겁니다. 주님이 녹화할 때 항상 문을 열어 드려야 돼요. 나의 안락함, 나의 바쁨. 이것보다 주님의 청함에 먼저 응하는 것이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에요.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모두 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음껏 사랑받고 마음껏 사랑하실 수 있기 바래요. 은혜 받을 수 있을 때 은혜 많이 받아 놓으십시오. 여러분 시력 겨울 때 말씀 많이 읽고 그리고 외우십시오. 손가락 건강할 때 필사도 좀 많이 하세요. 건강할 때 봉사도 많이 하시고 섬김도 많이 하십시오. 땀 흘릴 수 있는 체력이 있을 때 땀흘려 수고하십시오. 정말 하나님 앞에 내 육신이 허락될 때 주님과 많은 교재를 하십시오. 기도할 수 있을 때 기도하세요. 나중에는 마음껏 기도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와요. 예배당에 걸어나와 예배드릴 수 있을 때 많이 예배드리세요. 좀 지나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때 후회합니다. 아 더 많이 해 놓을 걸. 그때 쌓아 놓은 영적인 양식으로 오늘 살아야 되는데 내가 배고프구나. 배고프구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때를 놓치면 술라미 여인이 경비병에게 상한 것처럼 내 인생에도 야밤에 생각지도 못한 때에 뜻하지 않은 시련이라는 경비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를 놓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고 은혜 받을 수 있을 때 은혜받고 예배드릴 수 있을 때 예배하고 엎드릴 수 있을 때 엎드리고 섬길 수 있을 때 섬기면 경비병 만날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평생 만날 일이 없어요. 오히려 주님의 것으로 넉넉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가서 5장 1절 이거 문 한번 다 같이 한번 읽어 봅니다. 시작.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모약과 향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지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아멘. 이런 부유함을 누리는 거예요. 주님이 노크하고 들어올 때 그때 좀 귀찮아도 그때가 때입니다. 여러분, 그때 주님이 내게 들어오면 넉넉함을 누리고 영적 자유함을 누리고 충만한 사랑으로 새롭게 되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마음의 문을 항상 활짝 열어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높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