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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벨스의 재미있는 한식이야기 (1시간 몰아보기)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한국 음식 탐험기: 내 입맛은 특별해!

나는 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해. 특히 롯데리아 새우버거는 최고라고 생각해! 진라면이나 소고기 토시살보다 더 맛있다고? 사실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건 그 음식이 얼마나 희귀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 희귀할수록 더 맛있게 느껴지도록 우리 뇌가 그렇게 만들어졌거든. 그래서 어쩌면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음식들의 진짜 맛을 놓치고 있을지도 몰라.

만약 라면과 소고기 가격이 똑같고, 둘 중 하나를 마지막으로 먹어야 한다면 나는 무조건 라면을 선택할 거야. 라면 스프 특유의 중독적인 맛은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소고기 풍미를 100이라고 한다면, 라면의 풍미는 6억 5천 정도 되는 것 같아. 가끔은 가격으로만 맛을 평가하느라 옆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잊고 살 때도 있어.

희소성, 난이도, 건강 같은 건 다 빼고 오직 맛으로만 가격을 매긴다면, 롯데리아 새우버거는 적어도 150만 원은 넘는 진미라고 생각해. 맥도날드 새우버거 같은 프리미엄 버거 말하는 거 아니야. 한국 롯데리아에서 파는, 새우랑 명태 섞어서 만든 그 저렴한 버거 말이야.

롯데리아는 라이스 버거, 강정 버거 등 별별 고급 버거를 다 시도했지만 결국 남은 건 새우버거와 불고기 버거뿐이었어. 심지어 새우버거를 업그레이드한 버거들도 실패했고, 경쟁사 맥도날드의 진짜 새우 버거도 사라졌지. 새우버거는 그 자체로 완벽해. 누가 여기에 뭘 더하면 오히려 예술이 깨져버릴 거야.

나는 포장해서 먹는데, 롯데리아 직원이 새우버거 나왔다고 말한 지 5초도 안 돼서 봉지를 건네받고 바로 코를 가까이하면 풍기는 그 새우버거 특유의 꼬릿한 향부터가 기분이 좋아져. 차에 타서 봉지를 열면, 새우 향이 차 안을 가득 채우는데, 이건 해산물 날것의 냄새가 아니라 육지의 기름 맛을 제대로 본 풍미야.

종이 포장을 열어 손에 쥐는 새우버거의 사이즈는 딱 적당해. 너무 크거나 작으면 오히려 맛이 달라질 텐데, 한 손에 들고 먹기 딱 좋은 사이즈가 정말 좋아. 일본 롯데리아 새우버거도 먹어봤는데, 통새우가 너무 많이 박혀 있어서 별로였어. 새우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바다 맛이 강하게 나서 거부감이 들더라고.

나는 새우 패티가 50% 이상 들어가지 않고, 타르타르 소스와 사우전 아일랜드 드레싱에 버무려진 양상추만 들어간 새우버거를 좋아해. 햄버거는 땅의 성질을 가진 요리인데, 랍스터나 게살을 넣으면 물의 성질과 부조화가 심하다고 생각해. 새우 패티는 물의 성질을 가진 걸 다른 생선살로 중화시키고 기름에 튀겨 땅의 성질로 태어난 패티가 바로 롯데리아 새우버거의 매력이야.

새우 패티를 살짝 눌러 입안에 넣고 한입 씹으면, 기대하지 않았던 바삭한 소리가 들리는데, 이건 사실 새우 패티가 아니라 소스에 절여진 양상추가 살아있어서 나는 소리야. 햄버거에서 양상추는 보통 장식에 불과하지만, 여기서는 소스와 패티를 만나 새로운 화학 작용을 일으키며 이상하게 아삭거리는 식감을 만들어내.

새우 패티를 씹으면 열감이 전해지면서 롯데리아 새우버거의 여정이 시작돼. 빵은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마일드해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인데, 새우 패티와 함께 씹으면 고소함만 남기면서 패티의 맛을 해치지 않아. 새우인지 돈가스인지 헷갈릴 정도의 독특한 풍미가 롯데리아 새우버거를 대체 불가능한 위치로 이끌지. 고급과 저급의 경계에 있는 맛의 진미라고 할 수 있어.


피자 스쿨: 가성비 끝판왕!

나는 피자에 크게 환장하는 편은 아니야. 미국에서 유명하다는 피자는 다 먹어봤지만, 맛의 편차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한국에 있을 때는 피자 스쿨에 환장하는 짐승처럼 변해. 솔직히 도미노나 파파존스보다 피자 스쿨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 피자 스쿨이 미국에 있었다면 도미노는 파산했을지도 몰라.

노란 간판만 보면 침이 고이는 피자 스쿨은 밥을 먹었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판을 시키게 돼. 12년 전 처음 피자 스쿨을 만났을 때, 7천 원이라는 가격에 놀랐지. 우리가 먹었던 건 도이치 바 피자였는데, 토핑이 미친 듯이 올라가 있는 모습에 경악했어. 세블락 소시지, 고구마 무스, 바이트 크러스트, 그리고 과도한 소스까지. 이건 피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며 분노했지.

하지만 예쁜 선배가 한 조각을 건네줘서 어쩔 수 없이 먹게 됐는데, 이게 웬걸! 고구마 무스가 내가 생각했던 그런 무른 질이 아니라 살짝 바디감이 느껴지면서도 고구마 풍미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거야. 빵의 고소함과 고구마 무스의 달콤함이 만나 설명하기 힘든 새로운 맛을 만들어냈지. 세블락 소시지도 폭력적인 맛이 아니라 젠틀하게 풍미만 내면서 다른 재료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졌어.

그때부터 나는 피자 스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일반 피자가 격식이나 전통에 얽매여 보수적인 맛만 낼 때, 피자 스쿨은 시원시원한 한국인의 직선적인 맛을 살려냈지. 도미노 피자가 예술 영화라면, 피자 스쿨은 어벤져스와 같은 초상업 영화야. 직설적이고 솔직한 맛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매력적이었어.

그 후로 나는 피자 스쿨 메뉴를 하나하나 섭렵하기 시작했고, 어떤 메뉴도 실망감을 준 적이 없어. 피자 스쿨 특유의 감칠맛 가득한 달달함은 일관성을 유지하며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지. 피자 스쿨이 당기는 날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다른 비싼 피자들이 채울 수 없는 영역을 피자 스쿨이 채워주거든. 이건 한국이 보유한 또 하나의 작품이야.


닭갈비: 춘천 말고 여기!

나는 닭갈비를 정말 좋아해. 특히 철판 닭갈비에 환장하지. 외국인 친구들에게 닭갈비를 전파시켜서 매년 한국에 오게 만들 정도로 외화벌이에 공헌하고 있다고 자부해. 닭갈비 본고장 춘천에서도 아침, 점심, 저녁으로 다른 가게에서 닭갈비를 먹을 정도였으니까.

닭갈비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어. 철판 닭갈비, 숯불 닭갈비, 물 닭갈비. 그리고 내가 이야기할 네 번째는 바로 '육안의 닭갈비'야. 일반 철판 닭갈비는 보통 닭다리살을 쓰는데, 육안에는 브라질산 닭살을 작게 조각내서 써. 잘하면 퍽퍽함까지 느낄 수 있어서 음식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혹평을 듣기도 해. 알바들도 불친절한 경우가 많아서 망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엄청 잘 돼.

욕하면서도 가게 되는 이런 사람들을 '샤이 육아'라고 불러. 자신들도 육안을 까면서도 대체할 닭갈비가 없다는 걸 아는 거지. 브라질산이든, 닭다리살이든, 육안의 양념에 볶아지면 그게 바로 닭갈비 킹이야. 저 양념이 정말 대박인데, 간판처럼 빨갛지만 노랗게 빠지는 느낌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 놨어. 달짝지근한 베이스에 고추장 향이 확 올라오면 정신을 못 차리겠어.

입을 예열하기 위해 닭갈비 양념과 반대되는 하얀 마카로니를 먹고, 드디어 닭갈비를 한 입 베어 물면 1차원적인 단맛 다음에 매콤한 고추장 맛이 뒤따라. 닭살이 퍽퍽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게 조각내서 양념이 고기 속까지 스며들어 있어 육질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아. 닭은 양념을 전달하는 매개체일 뿐, 맛에 기여하는 지분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

이런 면에서 기존 닭갈비와는 다른 독특한 맛이 생겨. 양념 먹으러 가는 거야. 달큰한 양념이 이성적으로는 유치하다고 외치지만, 뉴런을 흔들어 제끼며 말과 행동이 다르게 만드는 마약 같은 존재랄까. 젓가락으로 집으면 푸짐한 일반 닭갈비와 달리 소박해서 허탈함이 나오지만, 혀에 닿는 순간 모든 게 끝나버리는 이상한 별미야. 가끔 닭 껍질만 분리돼서 양념과 뭉쳐 있는 부분은 소고기의 우설이나 참치의 배꼽살 같은 맛이지.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어. 바로 볶음밥! 밥을 볶으면 밥알 하나하나가 양념으로 코팅된 느낌이고, 씹을 때마다 양념 감칠맛이 터져 나와. 눌어붙은 양념들이 가끔 숨어 있어 짠맛을 잡아주고, 양배추가 씹히면서 타지마를 뺨치는 균형감을 보여주지. 육안에서는 볶음밥만 시킬 수 있는 정책도 있는데, 닭갈비를 먹고 볶음밥을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

직접 볶음밥을 시키면 숙성이 덜 된 맛이라 단맛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단순한 맛인데, 닭갈비 먹고 남은 자리에 볶는 볶음밥은 차원이 달라. 참기름 냄새가 사타구니를 조여오는 느낌을 받으며 밥을 볶고, 얇게 펴 바른 후 약불로 해놓고 알바가 가면 중불로 올려 남은 자네들을 섞어 재정립해 버려. 고춧가루 비율이 말도 안 되게 높아 보이는 이 단계에서 5분 정도 기다리면 육안의 시그니처가 완성돼. 바닥을 긁지 않고 약한 압으로 숟가락으로 볶음밥을 맛있게 먹으면 돼.

하얀 접시에 빨간 볶음밥의 대비를 보며 입안에 침이 가득 찼을 때 먹으면, 캡슐 같은 밥알과 양념이 어우러져 눈이 감겨버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어. 진한 콜라 한 모금과 함께라면 살아있는 행복 그 자체지. 누룽지까지 긁어 먹으면 깔끔하게 마무리돼.


미니스톱 넓적다리 치킨: 편의점 치킨의 혁명

나는 편의점 즉석 음식에 관심이 없었어. 위생 관념 없는 알바, 쌓여있는 고기, 똑같이 생긴 조각들까지. 하지만 그날은 달랐지. 넓적다리 하나 사면 콜라까지 준다는 홍보 문구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어.

알바가 데워드릴까요? 라고 묻길래 의아했지만, 사실 그 디스플레이는 온열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그냥 불만 켜놓은 선반이었던 거야. 비위가 상했지만, 데워진 치킨을 받아들고 자취방으로 향했지.

치킨을 꺼내 보니 기름종이가 너덜너덜해져 있었어. 억지로 한 입 베어 물었는데, 퍽퍽퍽퍽 거리면서 엄청난 크리스피 사운드가 울렸고, 기름이 훅훅 흘러 나왔지. 그런데 이 기름이 난생 처음 느껴보는 매콤한 맛이었어. 감칠맛을 농축한 듯한 자극의 꼭대기였지.

살덩이는 편의점 치킨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고, 매콤한 기름이 속속들이 스며들어 천상의 소스를 먹는 듯한 완벽한 바디감을 느낄 수 있었어. 게다가 튀김은 내가 먹어본 모든 치킨을 뛰어넘는 마약 같은 파트였지. 콩알 같은 크기의 튀김을 씹으면 캡슐처럼 풍미가 퍼지는데, 매콤함과 짠맛이 무한 반복되는 자극의 도돌이표였어.

순식간에 뼈만 남은 넓적다리를 보고 당장 다른 미니스톱으로 향했지만, 이미 텅 비어 있거나 알바가 자고 있었지. 세 번째 미니스톱에서 마지막 남은 두 개를 겨우 손에 넣었어. 집으로 돌아와 바로 먹기 아까워 20초간 바라보다가, 겉에 매콤한 텍스처를 혀로 쓸어보니 크리스피가 파괴되지도 않았는데 감칠맛 폭탄을 예고하는 풍미가 느껴졌어.

그날 밤, 넓적다리를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음음 윽윽 소리를 내며 먹었던 기억이 나. 아마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그날 밤을 꼽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미니스톱은 2024년에 세븐일레븐과 합병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 다른 편의점 넓적다리는 그때 그 맛을 느낄 수 없었어.


이삭 토스트: 얇지만 강렬한 맛!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이삭 토스트를 먹지 않았어. 트럭에서 파는 할머니 토스트를 너무 좋아했거든. 단돈 1,000원이면 계란, 야채, 케첩, 설탕이 가득 들어간 푸짐한 토스트를 먹을 수 있었으니까.

어느 토요일, 학원을 가지 않는 날인데 토스트가 당겨서 할머니 토스트 트럭을 찾아갔지만, 토요일은 문을 열지 않았어. 그때 뻔뻔하게 영업 중인 이삭 토스트를 보고 돌아섰지만, 이미 토스트에 맞춰진 입맛은 다른 걸로는 채워지지 않았지. 결국 이삭 토스트 햄 치즈를 사 먹게 됐어.

얇디얇은 햄 치즈 토스트를 보고 허탈했지만, 조심스럽게 빵을 들어 속 내용을 보니 햄, 치즈, 얇은 계란, 투명 소스만 들어 있었어. 그런데 햄 덩어리에서 헤비한 스모크 향이 올라오는 거야. 깜짝 놀라서 한 입 더 먹었는데, 체다 치즈의 텐션이 직선으로 뻗어 나오면서 계란과 합쳐져 참을 수 없는 고소함을 선사했지.

이 아무것도 아닌 재료들이 어떻게 이런 강한 풍미를 내는지 미스터리했는데, 그 비밀은 바로 투명한 소스였어. 극강으로 달달하고 상큼한 키위 소스가 평범한 재료들의 풍미를 30배 이상 끌어올리고 있었던 거야. 얇디얇은 햄 치즈 토스트는 30배 두꺼운 풍미를 내고 있었지.

이삭 토스트를 한번 체험한 친구들이 이삭만 먹는 이유를 알게 됐어. 케첩이 아닌 과일 소스로 감칠맛을 끌어올리는 새로운 방식, 분자 요리에서 볼 수 있는 재료 속성 변화로 마력을 만들어내는 스마트한 레시피에 전율했지. 그날부터 나는 이삭 토스트 메뉴를 하나하나 섭렵하는 재미로 학원에 다녔어. 햄버거를 연상케 하는 다이나믹한 메뉴들도 퀄리티가 대단했고, 이삭만이 가진 일체감은 전체 메뉴를 관통하는 일관성을 보여줬지.

하지만 모든 메뉴를 정복한 후에도 가장 미친 메뉴는 역시 햄 치즈였어. 소박한 외관, 부실한 속재료에도 불구하고 입에 넣는 순간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폭력적인 쾌감은 재간둥이 같은 맛이었지. 이삭 햄 치즈 토스트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어.


만석 닭강정: 차갑게 먹어야 제맛!

한국 치킨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소문이 있지만, 작은 오해가 있다고 생각해. 천조국(미국)의 프라이드 치킨은 이길 방법이 없어. 하지만 한국은 수많은 양념 치킨 덕분에 치킨 강국이 되었지. 처갓집 양념 치킨부터 간장, 마늘, 수원 왕갈비, 뿌링클, 고추 바사삭까지. 한국인이 치킨에 양념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난다고 봐야 해.

하지만 정복하지 못한 산이 있었으니, 바로 속초의 만석 닭강정이었어. 국민들이 '뻑 간다'는 그 치킨을 맛보기 위해 속초로 향했지. 호텔을 예약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휴게소 음식의 유혹까지 뿌리치며 속초에 도착했어.

만석 닭강정 가게에 들어서니 거대한 레일에서 공산품처럼 닭강정이 줄지어 내려오는 모습에 컬처 쇼크를 받았지. 기대 만발한 상태로 두 박스를 주문하고 숙소로 돌아왔어. 박스를 열자 김이 모락 모락 피어올랐고, 적절한 온도와 달큰한 양념 향이 느껴졌지.

뼈 버전 날개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비틀어 돌렸는데, 솔직히 말하면 맛있기는 한데 깜짝 놀랄 만한 맛은 아니었어. 페리카나와 비슷하거나 약간 나은 정도였지. 몇 시간을 달려온 시간 낭비, 숙소값, 휴게소 음식까지.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고, 닭강정 두 박스를 그대로 덮어 구석으로 치워버렸어.

새벽 3시에 눈을 떴는데, 배달 치킨은 영업 종료였고 배는 고팠지. 주변을 둘러보니 원망스러운 만석 닭강정뿐이었어. 자존심을 무릅쓰고 아무 조각이나 집어 입에 넣었는데, 차갑게 식었을 뿐더러 퍽살이었는데도 느낌이 완전히 달랐어. 혀에 닿기도 전에 감칠맛이 터져 나오면서 난생 처음 느껴보는 닭 요리를 먹는 듯한 신선한 테이스트가 느껴졌지.

이게 왜 이렇게 맛이 다른 걸까? 비밀은 바로 온도에 있었어. 낮에는 갓 만든 닭강정의 온기가 맛을 죽이고 있었던 거야. 나는 닭강정을 일반 치킨처럼 평가하려 했던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거지. 이건 무조건 시켜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던 거야. 차갑게 먹으면 더 좋은, 온기가 없을수록 댐핑이 강해지는 기초 요리 이론에 배반하는 새로운 차원이었지.

퍽살, 넓적다리, 날개살 등 어떤 부위를 먹어도 차갑게 식어서 단단해 보이지만, 그 안에 묘하게 감칠맛 소스가 스며들어 기가 막힌 바디감을 내고 있었어. 촉촉한 살이 더 맛있다는 상식을 뒤엎는 전략에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지. 중간중간 씹히는 매콤한 알갱이들은 흰쌀밥에 명란젓을 올려 먹는 듯한 완벽한 조화였어. 정신을 차려보니 한 박스를 다 먹어치웠지.

다음 날 남은 한 박스로 실험해 봤어. 다른 양념 치킨들도 차갑게 먹으면 비슷한 맛이 나는지 확인해 봤는데, 식어도 맛있긴 하지만 만석 닭강정만큼은 아니었어. 식으면 사망하는 프라이드처럼 맛이 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먹을 만한 정도였지. 특히 차가운 닭살은 닭 냄새가 나는 걸 피할 수 없었어.

식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새로운 양념 감칠맛의 경지는 오로지 만석 닭강정만이 가지고 있었어. 정말 미스터리한 경험이었고, 그 후로도 나는 종종 속초에 가거나 수도권에 팝업 스토어가 열리면 가서 쓸어와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고 있어.


깐부 식스팩 치킨: 미국 스타일의 정수

나는 한국 치킨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소문에는 작은 오해가 있다고 생각해. 천조국(미국)의 프라이드 치킨은 이길 방법이 없어. 그들은 가장 위대한 프라이드 공법을 대대로 물려받는 것인지, 그냥 미국 프라이드 풍미를 따라올 자가 없어. 그럼 한국은 왜 치킨 1타 강국이 되었을까? 바로 수많은 양념 치킨들 때문이야.

하지만 나는 한국 치킨의 맛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어서 더 이상 새로운 맛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시즌, 포르투갈 전을 앞두고 치킨 대란이 일어났지. 대부분의 치킨집이 주문을 마감하거나 아예 영업을 안 하고 있었어.

치킨을 구하지 못해 절망하던 중, 유동 인구가 적은 곳에 위치한 교촌 외의 치킨집을 공략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지도 검색 끝에 한 매장에서 오프라인 수령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택시로 20분 거리에 있는 개발 신도시의 깜부 치킨으로 향했지. 평소 관심 없던 브랜드였지만, 월드컵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까다로움을 버릴 수 있었어.

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치킨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어. 축구 시작 시간에 맞춰 바닥에 상을 깔고 치킨 박스를 열었는데, '식스팩 치킨'이라는 이름의 이 치킨은 시꺼멓게 생겼고, 통날개 부분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았어. 사장님이 오버쿡하신 건지 딱딱한 텍스처에 후추나 맛소금을 엎은 듯한 매콤한 냄새가 흘렀지.

통 다리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베어 문 쪽이 아니라 반대편 튀김이 갈라지는 거야. 물결무늬 크리스피 치킨에서 보던 식감이 아니었어. 실망감이 들려는 찰나, 순수한 육즙이 터져 나왔어. 이건 오버쿡이 아니라 겉과 속의 대비를 위한 설계라는 생각이 들었지. 곧이어 후추 짠맛이 훅 올라왔는데, 육즙과 섞여 밸런스를 이루며 기름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짭짤 고소한 맛으로 종결되는 거야. 이건 미국 KFC 오리지널 치킨 맛이었어.

딱딱하다고 오해했던 외부 튀김은 과자처럼 바삭한 텍스처를 가지고 있었고, 부드러운 속살과 대비를 이루며 섞이는 맛이 말초 신경을 제대로 건드렸지. 양념 소스를 찍어 먹으면 달콤함이 짠맛을 가려주다가 뒤늦게 후추 맛이 올라오면서 눈을 감게 만들었어. 한국에서 양념 치킨이 아닌 진짜 후라이드로 이런 맛을 내는 브랜드는 처음이었어. 어떻게 보면 상당히 미국스러운, 단 음식이나 짠 음식의 끝을 찍으면 나오는 궁극의 정수 같은 맛이었지.

깐부 식스팩은 혀가 짜다고 춤추게 하면서도 계속 더 먹고 싶게 만드는 짜릿하고 복합적인 맛이었어. 국내 크리스피 치킨 중 가장 센 경도를 가진 것 같았고, 소금이 치킨으로 환승한 듯한 감칠맛 자체의 퇴폐적인 짭짤 고소한 맛은 반드시 한번은 먹어봐야 할 국내 브랜드 치킨 프라이더 왕이야.


봉추찜닭: 찜닭계의 에르메스

나는 찜닭을 정말 좋아하지만, 가격 때문에 자주 먹지는 못해. 소중대 사이즈가 있지만 어차피 적은 양이고, 가격은 5만 원 중반대를 넘어가니까. 하지만 이 브랜드 하나만큼은 한 달에 한 번, 스스로 참회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먹는 음식이 있어. 바로 나의 소울푸드 봉추찜닭이야.

봉추찜닭은 기본적으로 안동찜닭이지만, 나는 안동찜닭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 원조 안동찜닭 골목에 가서 먹어도 이 맛은 아니거든. 봉추가 정립한 고유의 맛이 있기에 이건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해야 해.

봉추찜닭을 처음 만난 건 27살 무렵이었어. 부모님이 찜닭을 드시고 남은 것을 싸 오셨는데, 닭은 없고 불어터진 당면만 가득했지. 안 먹으려다가 한 입만 먹어보자 싶어서 당면을 먹었는데, 그대로 박스를 닫았어. 심상치 않은 맛이었기에 부모님께 물어보고 시내 봉추찜닭으로 직행했지. 가장 작은 사이즈 소자가 2만 원이 넘는 가격에 경악했어.

불편한 마음으로 소자를 시켰는데, 예상 외로 푸짐한 외관에 흥분했어. 광활하게 큰 접시에 담겨 나온 것에 한번, 자작하면 넘칠 것 같은 소스에 한번 더 흥분했지. 전체를 지배하는 납작 당면에 살짝 혼미해졌지만, 곧 실망감으로 이어졌어. 닭은 몇 조각 없고 당면만 가득했거든.

하지만 당면을 한 젓가락 들어 입으로 당기니 '아 짜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진간장처럼 짠맛이 아니라 달콤함과 매콤함을 동반한 짜임새였지. 셋이서 평안한 균형을 이루는 구도로 느껴져 참 흥미로웠어. 센 자극에 혀가 공격당하니 침이 홍수 상태가 되고, 자동적으로 꿈틀거리게 됐지. 짭짤하니 얼른얼른 넘어가게 되는 중독적인 매력이 있었어.

넓적한 당면은 봉추찜닭이 처음 시도했다고 알고 있는데, 당면에 묻는 소스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아 다른 안동찜닭집보다 작은 극적인 당면 맛을 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인 동글동글한 닭살을 먹었는데, 비록 적게 들어가 있어 실망했지만 닭살의 텍스처가 촉촉하고 양념이 섬세하게 코어까지 스며들어 몇 번 씹지도 않아서 입안에서 사라졌어.

극강의 싸움을 신선 냉장 속살이 방어해주면서 나오는 갈등의 소적 있는 테이스트가 '아 봉추찜닭은 균형을 중시하는구나. 사람을 때려놓고 얼른 안아주는 곳이구나'라고 감탄했지. 그런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퍽살 파트야. 봉추찜닭의 포인트는 퍽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한국 퍽살의 단점을 소스가 장점으로 만들어 버리는 놀라움이 있어. 흰쌀밥에 양념 잘 스며든 봉추 퍽살을 올려 입에 넣으면, 쫄깃한 바디감과 퍽퍽 갈라지면서 올라오는 검은 마성의 양념 때문에 최고의 한입이 돼. 이건 그냥 육지 간장 계장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어.

마지막 주인공은 누룽지야. 빠삭하게 튀겨져 나온 누룽지를 국물에 넣고 숟가락으로 표면에 크랙을 만들어 국물이 스며들게 한 후 4분간 레스팅하면, 국물을 먹음고 먹힐 준비가 완료된 육중한 몸이 되지. 이빨로 씹는 순간 흘러나오는 악념 국물과 누룽지의 고소함, 그리고 바삭함, 기름맛이 겹쳐지며 눈을 감게 만들어. 봉추찜닭의 황홀한 피니쉬라고 할 수 있는 누룽지 단계에서는 언제나 슬픈 사람처럼 찡그리며 떨리는 숨을 뱉어내며 먹게 되는 것 같아.

봉추찜닭의 모든 코스가 끝나면 남은 것은 초라한 당면 조각들과 국물인데, 나는 마지막 남은 건강 양심으로 동치미 리필로 깔끔하게 마무리해. 나에게 사치 중 사치인 봉추찜닭은 돈을 벌고 싶은 욕망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음식 중 하나야.


한끼 통살: 닭가슴살의 신세계

나는 2년 전, 미국에서 불어온 헬창 바람에 휩쓸려 운동을 시작했어. 하지만 운동은 고통스러웠고, 근육을 낭비하는 것은 사형 선고와 같았지. 하루 권장 단백질을 채우기 위해 닭가슴살을 먹기 시작했는데, 정확히 3회 만에 혀가 떨리는 기분을 체험했어. 목으로 넘겨서는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넘기는 고통이었지. 머스타드나 칠리 소스를 뿌려도 2초 후에는 순수 닭가슴살 냄새가 코를 찔렀어.

헬스를 포기할까 생각하던 중, 유튜브에서 '진짜 맛있는 닭가슴살'이라는 간증 영상들을 보게 됐어. 당시 인기 있던 볼케이노 치킨을 벤치마킹한 제품들도 많았지. 유튜버들의 신묘한 모습을 보고 딱 한 번만 더 속아주자 다짐하며 '볼케이노 맛 한끼 통살'을 주문했어.

전자레인지에 돌리면서 흘러나오는 냄새에서 맛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어. 꺼내 놓았을 때 굽네 치킨 같은 스모키 에센스의 풍미가 나서 처음으로 닭가슴살 앞에서 침이 고이는 나답지 않은 행동을 했지. 조심스럽게 나이프로 한 조각을 잘라 올렸는데, 볼케이노 소스에 버무려진 면과 하얀 단면의 대비가 극명했어.

입에 넣고 어금니로 물었을 때, 그간 먹던 퍽퍽하고 맛없는 닭가슴살과는 다른, 닭 스테이크에 가까운 부드러운 텍스처와 진짜 맛있는 매운 불닭 소스가 베어 있었어. 몸통 쪽을 크게 잘라 다시 테스팅했는데, 예민하게 갈라지는 닭 살결, 씹을 때마다 펌핑되는 소스, 그리고 이것들이 합쳐져 마치 파인 다이닝 치킨 스테이크를 구현해 놓은 것 같았어.

전자레인지에 살짝 오버쿡하면 겉면에 검게 그을린 부분이 생기는데, 이 부분을 마지막 피니시로 아껴둘 정도로 최고의 질감과 응집된 짜릿한 테이스트를 제공했어. 그 후로 나는 다른 브랜드 닭가슴살은 쳐다보지도 않았어.

몇 달 후, '그릴드 닭가슴살' 시리즈가 출시되었는데, 통 닭가슴살이 아니라 하나하나 잘라서 그릴드 한 모습에 주문을 안 할 수가 없었지. 에어프라이에 10분 돌린 그릴드 닭가슴살 볼케이노는 완전 굽네 그 자체였어. 한 조각 입에 넣는 순간 '아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었지. 운동하면서 이 맛있는 걸 먹어도 되나 하는 신선한 죄책감이 들었어.

이제 인류는 근육이나 다이어트를 위해 맛없는 것을 먹지 않아도 돼. 심지어 친구에게 치킨 박스에 한끼 통살 그릴을 넣고 먹여보면 눈치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혁신적이고 사기적인 닭가슴살의 신기원을 맛봤지. 한끼 통살 덕분에 나는 헬스를 멈추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고, 15kg 감량이라는 은혜를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어. 정말 감사하게도 한끼 통살에서 광고 제의를 주셨고, 이건 모두 구독자님들의 성원 덕분이야. 닭가슴살이 필요한 모든 분들께 자신있게 한끼 통살을 권해드리고 싶어.


누들 그라탕: 군대 냉동의 반전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겪는 군 생활은 나에게 큰 시련이었어. 훈련부터 음식까지 모든 것이 힘들었지. 딱딱한 밥, 다시마 튀각, 깍두기, 시래기국을 보면 당장 눈앞의 조개에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어. 그런데 빡빡이 동기가 깍두기를 달라고 하는 걸 보고 이 사람은 이게 맛있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 싶었지.

자대 배치 후 가장 기대했던 것은 정상적인 식사였지만, 조기튀김, 미역국, 깍두기, 오징어볶음을 보고 남은 군 생활에 대한 추상화를 보는 듯 아찔한 기분을 느꼈어. 선임이 건네주는 냉동만두를 먹었는데,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만두 속이 느껴져 씹지도 않고 목으로 넘기고 음료수를 마셨지. 만두가 이렇다면 다른 메뉴들도 뻔했어.

다음으로 먹은 냉동 산적, 탕수육 등도 짬밥보다 간신히 나은 정도였지. 그런데 갑자기 코를 스치는 기분 좋은 고소함이 느껴졌어. 그것은 바로 노들 그라탕, 노란 박스의 냉동 면 요리였지. 저게 맛있을 리가 없는데 하며 한 젓가락 더 떠 입에 넣었는데, 글렌 골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연주되는 듯 현기증이 살짝 돌아버렸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고 믿기지 않는 촉촉한 텍스처의 통통한 오동 면발이 쫄깃하고 탱탱하게 살아 있었어. 이빨이 살짝 저항하지만 힘줘서 씹으면 굴복하고 마는 기가 막힌 바디감. 단 한 줄기 면발만으로도 망치로 때리는 듯한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크림 치즈 향이 느껴졌어. 크림 치즈 중에서도 가장 코어한 크림 치즈를 쓴 듯한 강렬한 맛은 입대 이후 처음 느껴보는 파인 다이닝이었지. 치즈의 고소함 사이사이 뿌려진 후추, 크림의 느끼함과 겹쳐져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유지하고, 가끔 씹히는 베이컨 조각의 풍미는 완벽한 짭짤함의 피니시였어.

그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박스에 적힌 '누들 그라탕' 다섯 글자를 외웠고, 선임은 나에게 독점권을 주었지. 그날 처음 '코로 받고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어. 몇 달간 토악질 나오는 짬밥 냄새로 미각이 위기에 처했던 내 입안에 들어온 누들 그라탕은 흐릿해졌던 사회인 유마의 기억을 되찾게 해 주었지. 군대라서 맛있는 건가 의심하면서도 젓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어.

상병 때도 퇴근하면 누들 그라탕 먹을 생각으로 버텼고, 병장 때도 누들 그라탕이 다 팔릴까 봐 뛰어 가서 먹을 정도였지. 누들 그라탕이 다 팔린 날에는 극도의 분노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어.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부대를 둘러보며 가장 선명하게 빛나는 기억은 바로 누들 그라탕이었어. 어쩌면 다시는 먹을 수 없게 되리라는 생각에 속상함을 감출 수 없었고, 말할 수 없는 감정에 격해져 한 시간 동안 서서 감정을 추슬렀지.


해물 비빔 소스: 군대 음식의 최악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그에 맞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내 이론에 가장 좋은 예시는 바로 도시락이야. 나는 한국이 세계 1등인 음식 중에 도시락이 꼭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중에서도 바로 '본도시락'이야.

도시락의 탄생은 뜨거운 밥을 먹지 못하는 환경에서 끼니를 때우기 위한 대체제였지만, 요즘은 엄마가 해준 밥 대신 일부러 도시락을 시켜 먹는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독특한 풍경이지. 중학교 때는 시중에 파는 도시락을 싫어했는데, 뚜껑을 열면 나오는 습기, 점토 같은 밥 식감, 시어 빠진 반찬들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믹스 향이 식욕을 싹 가시게 만들었어.

하지만 몇 번 먹다 보니 이상하게 생각나기 시작했어. 인정하기 싫지만 청국장처럼 습기, 물방울, 점토 같은 식감, 시어 빠진 반찬 풍미에 젖어들기 시작하면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었지. 엄마가 해줬다면 투정 부렸을지도 모를 퀄리티의 반찬들이 도시락으로는 기깔나게 맛있어졌어. 밥은 많고 반찬은 적지만, 그 모습 자체가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 같달까. 귀하게 느껴졌지.

각각의 반찬들은 양은 적어도 간이 세게 되어 있어 밥 한 숟갈에 반찬 조금만 올려도 밸런스가 맞았어. 내가 도시락 중 가장 맛있게 먹은 것은 바로 '본도시락 부추 제육 반상'이야. 본도시락은 도시락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릴 정도로 가격이 비싸지만, 맛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

하얀 밴드로 둘러싸인 포장부터 명품을 입증했고, 그릇 재질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했어. 오밀조밀하고 정갈하게 놓인 흑미밥은 알맞은 온도로 식어 있어 찰기가 탱탱하게 느껴졌지. 입술로 살짝 지탱하고 숨을 세게 들이켜 보면 신선하게 지은 밥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우는 재미가 있었어.

부추가 듬뿍 올려진 제육은 이 도시락의 백미야. 고기를 뒤섞으며 부추를 양념에 적시고 2분간 레스팅 시켜주면 내가 먹은 제육 중 가장 강력한 올타임 넘버 원 제육이 되는 거야. 고기 양념 기름이 찰박하게 젖은 제육 한 조각을 부추와 함께 먹으면, 단 한 조각인데도 다른 제육 15조각을 합친 리치한 풍미가 나 버렸어. 본도시락 특유의 고기 양념 기름 때문일 거야.

밥은 두 숟갈 정도 소비할 수 있어 밥이 모자랄 지경이었지. 특히 고기를 씹을 때마다 함께 씹히는 부추가 양념을 뱉어내며 찢어질 듯 안 찢어지는 질깃한 바디감으로 마지막 쌀알까지 양념 맛을 계속 유지시켜 줬어. 기름 맛으로 입안이 해비해질 때쯤 무말랭이를 먹으면, 귀가 멍멍할 정도로 들리는 오독오독 소리와 맵싸한 중독성의 소스가 입맛을 재정비시켜 줬지. 이때 계란말이를 한 입 끊어 먹으면, 상대적으로 간이 안 된 중립적인 맛의 계란말이가 다시 부추 제육을 먹기 위한 최고의 에피타이저가 돼.

김으로 밥을 싸고 제육 두세 조각을 과감하게 집어 먹으면, 크리스피하게 쪼개지는 김 사이로 침투하는 제육 양념 기름이 고소한 흑미밥과 만나 리치한 맛, 짠맛, 고소한 맛의 삼중주를 이루며 짜릿하고 중독적인 테이스팅을 선사했어. 마지막 밥알을 남겨두고 제육 칸을 통째로 빼서 남은 고기 기름을 남김없이 부어 비벼 먹으면, 거의 느끼함에 가까운 풍미를 내면서도 사치스러운 감칠맛이 침샘을 흔들어 제껴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로 투머치한 피니시를 맛볼 수 있었지. 사이드로 시킨 본도시락 윙은 웬만한 피자집 치킨집 뺨치는 퀄리티에 부드럽고 스모키한 풍미를 자랑했어. 이건 반드시 시켜야 하는 사이드 메뉴야.


군대 해물 비빔 소스: 최악의 고문

군대 음식이 맛없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데, 그중에서도 서로 더 맛없으려고 경쟁하는 라인업이 있어. 나는 그중 베스트로 '해물 비빔 소스'를 꼽고 싶어. 훈련소 때 처음 만났는데, 싱겁고 단조로운 식단에 보기만 해도 짜 보이는 벌건 양념이 나온다는 것은 희소식이었지. 게다가 전투가 있던 날이라 식욕이 위험 수준으로 증폭된 상태였어.

식당에 앉아 처음 마주한 해물 비빔 소스는 외관부터 힘이 있었어. 사회에서 군대 지식을 예습한 적이 거의 없었지만, 군대 소스가 정말 맛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주워들은 적이 있었거든. 새빨간 소스를 흰밥에 비벼 먹으면 두세 그릇은 뚝딱이라는 마성의 소스. 캔을 따지도 않았는데 침이 차오르고 가슴이 벌떡거렸지.

주변 전우들이 캔을 따는 소리가 식당을 울렸고, 나도 동참하며 뚜껑을 깠는데, 처음 마주한 내용물은 기대보다 더 다채롭고 밀도 높게 진해 보였어. 소스 표면이 은은하게 반사되는 모습에서 걸쭉함이 예상되었고, 건더기도 소스 위로 튀어나와 있었지. 은은하게 다가오는 해물 비빔 소스의 향은 중독적인 테이스트를 예상하게 했어.

흰밥 위에 소스를 통째로 붓고 밥을 비빈 뒤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는데, 분명 다른 세계였어. 더럽게 싱거운 사찰 음식에 가까운 짬밥을 먹다가 이런 무자비하게 센 양념 비빔밥을 먹다니. 사회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지. 일단 짠맛이 혀를 춤추게 했고, 그 짠맛 사이사이 은근한 단맛이 있어 단짠단짠의 정석을 제대로 구현했어. 중간중간 씹히는 해물은 쫄깃함을 강조한 것인지 질겅질겅 씹히며 소스를 뱉어내는 바디감을 보였지.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와 전우들에게 밥 맛있었냐고 물으니 다들 질린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야. 전우들에게 들은 진실은 충격적이었어. 내가 사회에서 들은 빨간 마성의 소스는 '맛다시'라는 유료 아이템이었고, 내가 먹은 건 군대 길고양이도 안 먹는 최악의 고문용 음식이었다는 거지. 아니, 그럼 최악이라는 소스가 이 정도로 괜찮으면 맛다시는 얼마나 미친 맛일까? 자대에 가면 반드시 맛다시를 먹어보리라 다짐했지.

다시 단조로운 훈련병 식단으로 돌아가 해물 비빔 소스를 잊을 때쯤 다시 만났어. 캔 디자인은 여전히 입맛을 당기게 하는 매력이 있었지. 꾸미지 않았는데 매력은 몰빵으로 다 갖고 있는 청초하고 진국 같은 느낌. 당당하게 캔을 까서 밥에 붓고 비비기 시작하는데, 창문에서 불어온 바람이 해물 비빔 소스를 때리면서 코로 해물 향이 통째로 들어왔어. 갑자기 뺨을 맞은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지.

숟가락으로 밥에 얹은 비빔 소스를 비비는데, 이상하게 오늘 이것을 다 먹을 자신이 없어졌어.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을 때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어. 단짠단짠했던 첫 경험과 달리 쓰라린 맛이 올라오고, 해물을 씹을 때마다 타이어를 씹는 듯한 질감과 사라지지 않는 형태의 건더기가 불쾌한 비린내를 뱉어냈지. 저번에는 느끼지 못했던 압도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어.

소스를 생으로 떠서 다시 맛보니, 단맛, 짠맛, 쓴맛이 전혀 융합되지 않고 각각 존재하는 복잡한 믹스 테이스트를 냈어. 해물의 질감은 오래된 항구 구석에 방치되었다가 햇빛에 2주 정도 말린 듯한 오묘한 식감이었고, 소스와 섞이며 어제 죽은 생선 국물 같은 맛을 냈지. 목구멍이 자동으로 닫히는 뇌에서 거부하는 단계였어.

겨우 억지로 목으로 넘긴 뒤에는 그 투기에 비릿한 풍미가 폭풍처럼 휘몰아쳤어. 어떤 요리에서도 맛볼 수 없는 가장 강렬한 피니시였지. 그 여운은 사라지지 않았고, 김치나 국물을 먹어도 해물 비빔 소스의 향은 그대로 남아 모든 맛을 압도했어. 그날 이후 전우들과 묘한 동지애를 느끼며 소금 양치까지 했던 기억이 나. 그날 이후 저녁 때까지 해물 비빔 소스를 다시 먹는 일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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