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분의 기적! 일제강점기 핵심 인물·단체, 5가지로 끝장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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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저항 이야기 (1910년대 ~ 1930년대)
1. 1910년대: 억압과 비밀스러운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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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지배 방식: '무단 통치'라고 해서 아주 강압적으로 우리를 다스렸어.
- 치안 유지: 헌병들이 칼 차고 돌아다니면서 마음대로 사람들을 잡아가고 때렸지. 학교에서도 칼 찬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웠겠어.
- 경제 수탈: 우리 땅을 꼼꼼하게 조사해서 세금을 더 많이 걷으려고 '토지 조사 사업'을 했어. 이 때문에 농민들은 땅을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해서 더 힘들어졌지.
- 회사 설립 제한: 회사를 세우려면 일본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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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저항: 대놓고 저항하기 어려워서 비밀리에 움직였어.
- 신민회: 안창호 선생님 같은 분들이 만든 비밀결사야. 오산학교, 대성학교 같은 학교를 세우고, 자기 회사, 태극서관 같은 단체도 만들었지. 나중에는 신흥무관학교도 만들어서 독립군을 키웠어. 공화정을 꿈꿨지만, '105인 사건' 때문에 해체되고 말았지.
- 독립 의금부: 고종을 다시 왕위에 앉히려는 복벽주의를 내세운 단체였어. 김병찬 선생님이 이끌었지.
- 대한 광복회: 박상진 선생님이 이끌었던 단체인데, 공화정을 지향했어. 독립 의금부와는 다르게 복벽주의가 아니라 공화정을 꿈꿨다는 게 중요해.
2. 1920년대: 문화 통치의 이면과 다양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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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지배 방식: '문화 통치'라고 바꿔 불렀지만, 사실은 우리를 더 교묘하게 다스리려는 속셈이었어.
- 경찰력 강화: 겉으로는 부드러워진 척했지만, 경찰 수는 오히려 늘어났고, 무관만 총독이 될 수 있다는 규정만 바꿔놓고 실제로는 문관 총독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어.
-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겉으로는 이런 자유를 주는 척했지만, 신문에는 검열이 심했고, 실질적인 독립 언론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어. 오히려 친일파를 키우려는 목적도 있었지.
- 경제 수탈 심화: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 생산량을 늘렸지만, 정작 우리 농민들은 더 힘들어졌고, 일본 자본가들이 우리나라에 쉽게 들어와서 우리 민족 자본가들이 피해를 봤어. 회사 설립도 쉬워지고 관세도 폐지되면서 일본 물건이 더 많이 들어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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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저항: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했어.
- 물산 장려 운동: 우리 물건을 사자는 운동이 평양에서 시작되었어. (1907년의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된 것과 비교해서 기억해야 해!)
- 민족 교육 운동: 우리 스스로 대학교를 세우려고 '밀립대학 설립 운동'을 했어.
- 문맹 퇴치 운동: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운동도 활발했지.
- 조선어 연구회: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졌어. 나중에 '한글'이라는 이름도 이때 나오게 되었지.
- 민족주의 사학: 신채호 선생님, 박은식 선생님 같은 분들이 우리 역사를 연구하고 알리려고 노력했어.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혁명선언', 박은식 선생님의 '한국통사' 같은 책들을 기억해두면 좋아.)
- 3.1 운동의 영향: 1919년 3.1 운동은 우리 민족에게 큰 영향을 줬어. 이 운동을 계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지.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서울 한성정부, 상하이 임시정부가 합쳐져서 만들어졌어.) 임시정부는 입법, 사법, 행정 기능을 갖춘 최초의 공화정 정부였어.
- 60만세운동: 순종의 죽음을 계기로 일어난 운동인데, 학생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중심이 되어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힘을 합쳤어.
- 신간회: 60만세운동을 계기로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힘을 합쳐 만든 가장 큰 규모의 민족 유일당이었어.
-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신간회의 도움을 받아 전국적인 항쟁으로 번졌지.
- 노동, 농민 운동: 원산부두 노동자 총파업, 암태도 소작쟁의 같은 노동, 농민들의 투쟁도 있었어.
- 의열단: 김원봉 선생님 등이 이끈 단체로, 일본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는 투쟁을 했어. (나석주, 김상호 같은 분들이 활동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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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의 저항:
- 서간도: 신흥무관학교가 세워져 독립군을 양성했어.
- 북간도: 대종교에서 만든 '중광단'이 '대한독립군'을 만들었고, '청산리 대첩' 같은 큰 승리를 거뒀지. (홍범도 장군이 이끌었어.)
- 연해주: '대한국민의회'가 만들어졌고, 이것이 나중에 임시정부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어.
3. 1930년대: 전쟁과 민족 말살 정책, 그리고 더욱 치열해진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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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지배 방식: 세계 대공황 때문에 일본은 더 공격적으로 변했어.
- 민족 말살 정책: 우리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고, 우리말 사용을 금지하는 등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없애려고 했어.
- 경제 수탈 강화: 전쟁을 위해 공장을 늘리고, 우리 자원을 마구 가져갔어. '징용', '징병', '위안부', '공출', '배급' 같은 말들이 이때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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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저항:
- 조선어학회: 우리말을 지키고 '우리말 큰사전'을 편찬하려 했지만,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었어.
- 민족주의 사학, 사회경제 사학: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 계속 발전했어.
- 만주에서의 무장 투쟁:
- 한국독립군: 지청천 장군이 이끌었고, '쌍성보 전투', '대전자령 전투'에서 승리했어. (중국군과 함께 싸우는 '한중 연합 작전'이 특징이야.)
- 조선혁명군: 양세봉 장군이 이끌었고, '영릉가 전투', '흥경성 전투'에서 싸웠어.
- 중국 관내에서의 무장 투쟁:
- 조선의용대: 만리장성 남쪽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야.
- 한국광복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부대로, 미국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어.
- 개별적 투쟁: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같은 분들이 일본의 주요 인물이나 시설을 공격하는 투쟁을 했어. (이런 투쟁 때문에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충칭으로 옮겨가게 되었지.)
이처럼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은 억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저항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