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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한민국을 뒤흔든 깡패 소탕작전의 전말!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1950년대 정치 깡패 이야기

1950년대에는 권력자들 뒤에 숨어서 설치던 깡패들이 있었어. 하지만 이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지.

6.25 전쟁 이후, 이정재와 동대문파의 등장

  • 1953년, 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돼서 이정재라는 사람이 임화수, 조열승 등과 함께 '7인회'를 만들고 '동대문파'라는 깡패 조직을 만들었어.
  • 이정재는 점점 세력을 키워갔는데, 해방 후에 정치권과도 엮이면서 그냥 깡패 수준을 넘어섰지.
  • 특히 당시 권력자였던 이기붕이랑 손을 잡으면서 '정치 깡패'가 되었어.

이기붕과 이정재의 결탁

  • 1954년쯤, 이기붕이라는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의 오른팔이 되었는데, 이 사람은 자기 편이 되어줄 세력이 필요했어.
  • 처음에는 명동에서 활동하던 이 활용이라는 깡패에게 접근했지만 거절당했지.
  • 그래서 이기붕은 동대문파의 이정재에게 손을 내밀었고, 둘은 손을 잡았어.
  • 이기붕과 손을 잡은 이정재는 1954년 '445입 개헌' 때 난동을 부리는 등, 반대파들의 정치 활동을 방해하는 나쁜 짓을 많이 했어.

자유당과 정치 깡패들의 공생 관계

  • 1950년대 후반까지 자유당 정권은 정치 깡패들을 이용했고, 깡패들은 자유당을 등에 업고 힘을 휘둘렀어. 마치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처럼 같이 지낸 거지.
  • 나중에 학자들은 이런 깡패들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방해했다고 말하기도 했어.

이정재의 몰락과 임화수의 등장

  • 1958년, 이정재는 총선에 나가려다가 이기붕에게 지역구를 빼앗기고 힘을 잃게 돼.
  • 이정재가 몰락하면서 정치 깡패 시대가 끝나는 듯했지만, 이기붕은 이정재 대신 임화수라는 새로운 동대문파 두목과 손을 잡았어.
  • 임화수는 이정재만큼이나 자유당을 위해 열심히 활동했어. 연예인들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이고, 1959년에는 '반공 예술인단'도 만들었지.

대한 반공 청년단과 3.15 부정선거

  • 1960년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 당선을 위해 '대한 반공 청년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었어.
  • 이 조직에는 서울의 거의 모든 깡패들이 가입했고, 임화수가 종로구 단장을 맡았어.
  • 이 단체는 전국적으로 엄청난 세력을 갖게 되었고, 1960년 3월 15일 선거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어. 상대방 선거 운동을 방해하고, 포스터를 찢고, 투표 용지를 조작하는 등 아주 나쁜 짓들을 했지.

4.19 혁명과 정치 깡패들의 몰락

  • 국민들은 이런 부정선거에 분노했고,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졌어.
  • 하지만 임화수와 유지광 같은 깡패들은 오히려 시위하던 학생들을 공격하는 만행을 저질렀지.
  • 결국 1960년 4월 19일, 국민들은 4.19 혁명을 일으켰고, 이승만 정권은 무너졌어. 정치 깡패들의 시대도 함께 끝났지.
  • 이정재, 임화수 등 많은 깡패들이 체포되었지만, 부정선거를 주도했던 신도환은 무죄로 풀려나고, 깡패들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

5.16 군사정변과 정치 깡패들의 마지막

  •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어.
  • 새로운 정권은 사회 정화를 명분으로 정치 깡패들을 처벌하기 시작했지.
  • 이전에 풀려났던 신도환, 이정재, 임화수 등 많은 깡패들이 다시 잡혀서 최고형을 선고받았어.
  • 이정재는 1961년 10월, 임화수는 12월에 결국 사형을 당했어.
  • 이렇게 1950년대의 정치 깡패들은 5.16 이후 대부분 정리되었어.

하지만 시간이 흘러 1970년대에는 김태촌, 용팔이 같은 새로운 정치 깡패들이 다시 나타나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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