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관심사 가진 당신! 오히려 세상이 원하는 인재? 🚀
여러 가지에 끌리는 사람,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자꾸 새로운 것에 끌릴까?
새벽 1시가 넘었는데도 본업이랑 상관없는 강의를 보고 있네? 영상 편집, 사진, 코딩… 책상엔 심리학 책, 서랍엔 드로잉 펜, 휴대폰 메모장엔 시작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일곱 개나 있어. 처음엔 '이거다!' 싶어서 몇 날 며칠 밤을 새우고 장비도 알아보고 강의도 결제하고 잘하는 사람들 영상도 보면서 미래를 상상하지.
근데 말이야, 기본기를 반복해야 할 때가 오면 좀 힘들어져. 생각보다 실력이 빨리 안 늘고 결과물이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또 다른 재밌는 게 눈에 들어오고, 전에 열정은 저 구석으로 밀려나 버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스스로를 의심하게 돼. '나는 왜 한 가지를 오래 못 하지? 집중력이 없는 건가? 의지가 약한 건가?' 주변 친구들은 벌써 '나는 회계사', '나는 개발자', '나는 디자이너' 이렇게 딱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누군가 "뭘 하고 싶어?"라고 물으면 대답이 길어져. 글도 쓰고 싶고, 사람 마음도 공부하고 싶고, 영상도 만들고 싶고, 나중엔 작은 사업도 해보고 싶고… 그러면 상대방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면서 "그래도 하나는 골라야지"라는 익숙한 조언이 돌아오지.
정말 그래야 할까? 관심이 많다는 게 아직 덜 익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우리는 한 가지 직함으로만 설명되는 사람에게 한 가지 방식으로만 성공하라고 강요해 온 걸까?
오늘은 여러 분야에 끌리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헤쳐 볼 거야. 근데 시작하기 전에 좀 불편한 진실부터 말해줄게. 관심이 많다고 해서 모두 다재다능한 건 아니야. 새로운 걸 계속 시작한다고 해서 숨은 천재가 되는 것도 아니지.
여러 관심은 엄청난 자산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그럴듯한 핑계가 될 수도 있어. 그 둘을 가르는 건 관심의 개수가 아니라 깊이, 연결, 그리고 완성이야.
'다능인'이란 뭘까?
여러 분야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능력을 발전시키는 사람을 '다능인', '다잠재성 인간', '멀티포텐셜라이트'라고 불러. 학술적으로는 '폴리메시(Polymath)'라는 말도 쓰는데, 이건 의학적인 진단명은 아니야. 온라인 테스트 몇 개로 '나는 다능인!'이라고 판정받는 것도 아니지.
연구자들이 말하는 폴리메시는 단순히 아는 게 많은 거랑은 달라. 핵심은 세 가지야.
- 폭 (Breadth): 서로 다른 여러 분야를 탐색하는 것.
- 깊이 (Depth): 그중 적어도 몇 개는 초보의 흥분을 넘어 실제 기술과 이해가 생길 때까지 파고드는 것.
- 통합 (Integration): 각 분야에서 배운 것을 서로 연결해서 새로운 문제를 풀거나 결과물을 만드는 것.
폭만 있고 깊이가 없으면 그냥 '지식 수집가'가 되기 쉬워. 깊이는 있는데 연결이 없으면 여러 개의 취미가 나란히 놓여 있을 뿐이지. 폭과 깊이, 그리고 연결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다방면성이 하나의 생산적인 능력이 되는 거야.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해. 관심이 몇 개나 있느냐가 아니라, 그 관심들이 내 안에서 서로 대화하고 있느냐는 거지.
노벨상 수상자들도 여러 분야를 넘나들었다고?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미쉘 루트번스타인이라는 연구자들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본업 외 활동'을 분석했어. 놀랍게도 과학, 문학, 경제학, 평화상 수상자들 중에 본업 외 분야를 오랫동안 진지하게 탐구한 사람들이 많았대. 과학자가 악기를 연주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예품을 만들었지. 단순히 주말에 잠깐 즐긴 수준이 아니라 공연하고 전시하고 출판할 정도였다고 해.
이 연구는 이런 활동이 단순히 휴식이나 취미가 아니라, 창의성을 위한 의식적인 전략이었다고 말해. 다른 분야에서 배운 관찰법, 이미지 기술, 사고방식이 본업의 문제를 보는 방식에 영향을 줬다는 거지.
하지만 여기서 '피아노를 배우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고 결론 내리면 안 돼. 이 연구가 다방면성이 성공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증명하는 건 아니거든. 원래 호기심 많고 능력이 뛰어나거나, 교육 기회와 시간이 충분했던 사람이 여러 활동을 할 가능성도 있어.
그럼에도 이 연구가 깨뜨리는 편견은 분명해. 최고 수준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 외에는 보지 않는 외골수였을 것이라는 편견 말이야. 실제로는 좁은 전문성과 넓은 탐색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중요한 건 취미가 많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취미를 통해 얻은 것을 본업의 문제와 연결했다는 사실이야.
카페 사장님과 심리학, 게임을 좋아하는 직원 이야기
매출이 몇 달째 떨어지는 카페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회의에서는 늘 비슷한 말만 나와. "가격 낮추자", "신메뉴 광고하자". 모두 카페 업계에서 배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지.
그런데 팀에 심리학과 게임을 좋아하는 직원이 있었어. 그 직원은 메뉴보다 손님의 행동 순서에 주목했지. 손님이 메뉴판 앞에서 너무 오래 고민하고, 주문을 마치기 전에 필요 없는 걸 산다는 걸 발견했어. 그래서 게임의 '튜토리얼'처럼 첫 방문자의 선택을 세 단계로 줄이고, 심리학에서 배운 '선택 구조'를 활용해 메뉴판을 다시 설계했지.
문제를 해결한 건 카페에 대한 지식 하나가 아니었어. 카페, 게임 디자인, 행동 심리라는 세 개의 지도가 겹친 순간이었지. 이런 사고를 '유추' 또는 '전이'라고 불러. 한 분야에서 본 구조를 다른 분야의 문제에 적용하는 거지.
근데 말이야, 사람 뇌가 이런 연결을 자동으로 하지는 않아.
종양을 치료하는 문제와 요새를 공격하는 장군 이야기처럼, 표면은 다르지만 구조가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있어. 약한 광선을 여러 방향에서 쏘면 종양을 파괴할 수 있다는 문제와, 약한 병력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집중하면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 그 연결을 떠올린 사람은 많지 않았대. 힌트를 줬을 때 해결률이 훨씬 높아졌지. 이게 뭘 말해주냐면, 여러 분야를 경험했다고 아이디어가 저절로 이동하는 건 아니라는 거야. 연결은 기억의 기적이 아니라 의식적인 질문의 결과라는 거지.
- "이 문제와 비슷한 구조를 다른 어디에서 봤지?"
- "음악에서 배운 리듬을 글쓰기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 "운동에서 쓰는 점진적 과부하를 공부 습관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 "영화의 긴장 구조를 제품 설명에 적용할 수 있을까?"
다능인의 장점과 함정
다능인의 장점은 머릿속에 창고가 많다는 거야. 하지만 창고 사이에 도로를 놓지 않으면 물건은 이동하지 않아.
전문가는 초보보다 빨라. 중요한 신호를 바로 알아보고, 필요 없는 정보를 버리고, 수없이 반복한 패턴에서 답을 찾지. 이건 엄청난 능력이야. 하지만 환경이 바뀌면 그 능력이 함정이 되기도 해.
경영학자 에릭 레인은 이걸 '인지적 고착'이라고 설명했어. 한 분야의 지식 구조가 너무 안정되면, 그 지도와 맞지 않는 가능성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거지.
- 오랫동안 성공해 온 광고 전문가는 고객이 광고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휴대전화 안에서 정보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걸 늦게 받아들일 수 있어.
- 수십 년간 대면 수업을 잘해온 강사는 온라인 수업을 단순히 카메라로 찍은 강의라고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집중 시간, 화면 구성, 상호 작용 방식이 전부 달라.
전문가가 어리석어서가 아니야. 오히려 너무 오랫동안 정답이었던 지도가 있기 때문이지.
여러 분야를 오간 사람은 다른 종류의 경험을 해. 처음 배우는 사람의 어색함에 익숙하고,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비교적 빨리 인정하고 새로운 분야의 규칙을 관찰하지. 하나의 지도가 틀렸을 때 꺼내 볼 다른 지도가 있는 거야.
하지만 여기서 전문가를 비하해서는 안 돼. 깊은 전문성은 속도와 정확성, 판단력을 만들어. 문제는 깊이가 아니라, 자신의 지도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순간이야.
다능인의 이상적인 모습은 전문가의 반대가 아니야. 한 영역에서는 충분히 깊고, 필요할 때 다른 영역의 지도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지.
느린 출발이 반드시 실패는 아니다
관심이 많은 사람은 자주 뒤처진 느낌을 받아. 친구는 같은 업계에서 8년 경력을 쌓았는데, 나는 2년 일하고 다른 걸 배웠고 다시 3년 지나 새로운 분야로 옮겼어. 친구의 이력은 한 줄로 올라가는데, 내 이력은 옆으로 퍼져나가지. 그래서 서른 넘으면 불안해져. '나는 아직도 탐색 중인데, 이제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여기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어. 세계 최정상급 운동선수들을 분석했더니, 어린 시절 여러 종목을 더 경험했고, 주 종목을 늦게 시작했으며, 초반에는 더 천천히 발전하는 경향이 있었대. 반대로 청소년 시기의 빠른 성과는 주 종목을 일찍 시작하고 집중적으로 훈련한 선수에게서 더 많이 나타났지.
즉, 어린 시절의 우승을 예측한 경로와 성인이 된 뒤 세계 정상에 오르는 경로는 같지 않았던 거야.
이 연구를 모든 직업에 그대로 적용할 순 없어. 운동 기술과 직업 역량은 다르고, 늦게 시작하면 불리한 종목도 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통찰을 줘. 초기의 빠른 진정과 장기적인 최고 성과는 서로 다른 경로에서 나올 수 있다는 거지.
탐색에는 비용이 들어. 남들이 한 분야의 경력을 쌓는 동안 너는 여러 분야의 기본기를 반복해서 배워야 해. 그래서 초반의 이력선은 느리고 불규칙해 보일 수 있어. 하지만 그 경험들이 나중에 연결된다면, 남들이 복제하기 어려운 조합이 될 거야. 그러니 느린 출발이 반드시 실패라는 뜻은 아니야.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 탐색이 언젠가는 축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 계속 출발점만 옮겨 다니는 것과, 여러 출발점에서 가져온 것을 하나의 길로 합치는 것은 전혀 다르니까.
나의 경쟁력은 '교차점'에 있다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자존감을 잃는 방식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어.
- 자신의 글을 전업 작가와 비교한다.
- 사진을 전업 사진작가와 비교한다.
- 코드를 10년 차 개발자와 비교한다.
- 영상을 매일 제작하는 편집자와 비교한다.
그리고 네 번 모두 진다. 당연하지. 상대는 한 종목의 전문가인데, 너는 자신의 각 능력을 그 종목의 최고 선수와 따로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아무도 '조합의 점수'는 보여주지 않아. 심리학을 이해하고 글을 쓸 줄 알고, 영상의 호흡을 알고, 데이터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각 분야에서 1등이 아닐 수 있어.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분석해 설득력 있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반응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기획을 개선하는 일에서는 매우 드문 사람이 되는 거지.
프로그래밍, 디자인, 발표 능력을 모두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야. 가장 뛰어난 개발자도,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도 아닐 수 있어. 하지만 고객의 말을 듣고 제품 구조를 설계한 뒤, 직접 시제품을 만들고 투자자에게 설명하는 역할에서는 대체하기 어려워지지.
너의 경쟁력은 각 능력의 최고점이 아니라, 능력들이 만나는 '교차점'에 있을 수 있어.
문제는 사회가 교차점보다 '직함'을 더 쉽게 이해한다는 거야. 그래서 '다른 이인'은 실제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설명하는 문장을 아직 만들지 못한 경우가 많아.
"저는 글도 쓰고, 심리학도 보고, 영상도 하고, 데이터도 조금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냥 취미 목록처럼 들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달라져. "저는 사람의 행동을 분석해 복잡한 정보를 몰입도 높은 콘텐츠로 바꾸는 일을 합니다." 관심사를 나열하지 않고, 그 조합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 말하는 거지. 직함이 아니라 '기능'으로 자신을 설명하면, 흩어진 경력이 하나의 이야기로 바뀌어.
호기심인가, 회피인가?
새로운 분야를 시작할 때는 가능성만 보여. 아직 실패하지 않았고, 재능이 없다는 사실도 확인되지 않았지. 미래의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하지만 기본기를 반복하기 시작하면 가능성이 '평가'로 바뀌어. 내 그림이 생각보다 어설프고, 내 발음이 우스꽝스럽고, 내가 만든 프로그램에는 오류가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되지. 바로 그때 새로운 관심사가 나타나면 마음이 편해져. 새 분야로 옮기는 순간 다시 가능성이 무한한 초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야.
이때의 전환은 호기심이 아니라, 자존감을 보호하는 '회피'일 수 있어. 완벽주의자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겨. 완성하면 평가받아야 하니까, 미완성으로 남겨 두면 '제대로 했으면 잘했을 텐데'라는 가능성을 지킬 수 있지. 그래서 강의는 계속 사지만 작품은 내놓지 않고, 기획은 계속하지만 공개는 하지 않는 거야.
이 상태를 낭만적으로 포장해서는 안 돼. 다방면성은 여러 분야에서 실제로 활동하고 배우는 거야. 첫 세 강의만 듣고 떠나는 건 다방면성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에 가까울 수 있어.
스스로에게 네 가지를 물어봐.
- 흥분이 사라진 뒤에도 이 관심으로 돌아오는가?
- 이 분야에서 반복 훈련을 견딘 적이 있는가?
- 배운 것을 다른 분야와 연결해 사용한 적이 있는가?
- 머릿속이 아니라 세상 밖에 존재하는 결과물을 만든 적이 있는가?
내 질문에 계속 '아니요'라고 답한다면, 문제는 관심이 많다는 데 있지 않을 수 있어. 어려워지는 순간 떠나는 습관을 먼저 다뤄야 할지도 몰라. 또한, 잦은 전환이 학업, 업무, 돈 관리, 관계와 수면을 심각하게 무너뜨리거나 어릴 때부터 광범위하게 지속됐다면, 자신을 단순히 '다인'이라고 규정하기보다 전문가와 상담해 ADHD나 불안 같은 다른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도 있어. '다능인'이라는 말은 자기 이해를 돕는 언어이지, 어려움을 감추는 진단명이 아니니까.
모든 것을 할 자유가 아니라, '지금 하지 않을 것'을 정하는 능력
관심이 많다는 것과 모든 관심을 동시에 실행하는 것은 달라. 우리는 복잡한 두 과제를 진정한 의미에서 동시에 처리하기보다 빠르게 전환하는 경우가 많아. 전환할 때마다 이전 과제의 규칙을 내려놓고 새로운 과제의 규칙을 불러와야 하지. 이 과정에는 작지만 반복되는 비용이 생겨. 특히 이전 일이 끝나지 않았을 때는 더 어렵지.
'주의 잔여물'이라는 현상도 있어. 한 과제에서 다른 과제로 넘어간 뒤에도 주의 일부가 이전 과제에 남아 있는 현상이지. 보고서를 쓰다가 중간에 멈추고 영상 편집을 시작하면, 몸은 편집 화면 앞에 있지만 머릿속 한쪽에서는 방금 끝내지 못한 문장이 계속 돌아가. 다시 코딩으로 넘어가면 영상의 장면이 남아. 하루 종일 바빴는데 아무것도 깊게 하지 못한 느낌은 의지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야. 서로 다른 세계를 너무 자주 오가며 매번 입장료를 낸 결과일 수 있지.
다능인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할 자유가 아니라, '지금 하지 않을 것'을 정하는 능력이야. 폭은 인생 전체에 걸쳐 만들 수 있지만, 깊이는 한 번에 한 곳에 머무를 때 생겨.
탐색과 활용의 딜레마
심리학과 의사결정 연구에는 '탐색과 활용의 딜레마'라는 개념이 있어. 이미 잘하는 일을 계속해 확실한 보상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당장의 효율을 포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볼 것인가?
탐색만 하면 지식은 늘지만 성과가 쌓이지 않아. 활용만 하면 효율은 높아지지만, 환경이 바뀌었을 때 새로운 길을 찾기 어렵지. 건강한 삶에는 둘 다 필요해. 문제는 다능인이 탐색을 사랑한 나머지 활용 단계로 넘어가지 못할 때 생겨.
새로운 분야의 초반은 보상이 빨라. 용어를 몇 개만 알아도 세상이 새롭게 보이고, 하루마다 실력이 느는 것 같지. 반면 중간 단계부터는 같은 동작을 수십 번 반복해야 하고, 작은 차이를 고쳐야 하며, 성장 속도도 느려져. 이 지루한 구간을 지나지 않으면 지식은 다른 분야로 옮겨갈 만큼 단단해지지 않아.
피아노 영상을 많이 본 사람과 실제로 곡을 연주해 본 사람은 음악에서 전혀 다른 패턴을 가져와. 코딩 책의 첫 장을 여러 번 읽은 사람과 오류를 해결하며 프로그램 하나를 완성한 사람이 가져오는 사고방식도 다르고. 연결할 수 있는 것은 관심이 아니라 '체화된 경험'이야.
그러니 다능인의 삶은 탐색을 멈추는 일이 아니야. 탐색한 것 중 일부를 선택해 충분히 활용하고 결과물을 만든 뒤, 다시 탐색으로 돌아가는 리듬을 만드는 일이지.
여러 관심을 관리하는 방법
그렇다면 여러 관심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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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다물'을 정하라: 평생 한 직업만 선택하라는 뜻이 아니야. 지금 '계절'에 결과물을 만들 중심 분야를 하나 정하라는 거지. 예를 들어, 앞으로 12주 동안 '심리학 콘텐츠 한 편 완성하기'로 정할 수 있어. 글 쓰기는 대본을 위해, 영상 편집은 표현을 위해, 데이터 분석은 시청자의 반응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거지. 여러 관심을 각각 별도의 프로젝트로 버리는 대신, 하나의 결과물에 복무하게 만드는 거야. 이 순간부터 너는 다섯 가지를 동시에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를 다섯 가지 능력으로 푸는 사람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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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 조건이 있는 프로젝트를 하라: '글쓰기를 공부한다'는 끝이 없어. 하지만 '12주 안에 15분짜리 대본 한 편을 완성해 공개한다'는 목표가 있지. '코딩을 배운다'도 끝이 없어. 하지만 '내 업무 시간을 기록하는 작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동료 세 명에게 사용하게 한다'는 끝이 있어. 관심을 명사가 아니라 결과물로 바꾸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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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하라: 여러 분야의 길을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순환이야. 한 주에 다섯 분야를 모두 조금씩 하는 대신, 일정 기간 하나의 우선권을 줘. 8주나 12주 동안 중심 프로젝트에 시간을 대부분 쓰고, 다른 관심은 유지에 필요한 최소 시간만 두는 거지. 그 기간이 끝나면 결과물을 평가하고, 더 깊게 갈지, 잠시 쉬게 할지, 다른 관심과 결합할지 결정해.
이 방식의 장점은 선택을 영원한 포기로 느끼지 않게 한다는 거야. 관심이 많은 사람이 하나를 고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머지 가능성이 죽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 하지만 '평생 해야 한다'가 아니라 '이번 계절에는 이것을 완성한다'고 생각하면 선택의 공포가 줄어들어. 하지 않는 관심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기'시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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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목록'을 만들어라: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프로젝트를 바꾸지 말고, 제목, 시작하고 싶은 이유, 예상 결과물만 적어두는 거지. 현재 계절이 끝났을 때도 여전히 중요하다면 다음 후보가 돼. 충동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충동과 실행 사이에 시간을 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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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세 가지 질문을 던져라: 지금 배우는 것에 대해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져봐.
- 이 원리는 내 본업에 어떤 문제와 닮았는가?
- 다른 분야에서는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가?
- 두 분야를 결합해 이번 주에 만들 수 있는 작은 실험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음악에서 긴장과 해소를 배웠다면 발표 자료의 순서에 적용해 볼 수 있어. 운동에서 회복도 훈련의 일부라는 원리를 배웠다면 업무 일정의 빈 시간을 설계할 수 있지. 건축에서 사람의 이동 동선을 배웠다면 웹사이트의 메뉴 구조를 다르게 볼 수 있어.
중요한 것은 멋진 비율을 만드는 데서 끝내지 않는 거야. 작은 실험으로 확인해야 해. 아이디어를 적용한 버전과 적용하지 않은 버전을 비교하고, 실제로 더 나은지 보는 거지. 다능인의 직관은 연결해서 시작하지만, 실력은 '검증'에서 완성돼.
나를 소개하는 새로운 문장 만들기
이제 자신을 소개하는 문장을 다시 만들어 보자. 관심사를 모두 나열하지 마. 다음 세 가지를 연결하면 돼.
- 나는 어떤 사람을 돕는가?
-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가?
- 어떤 능력의 조합을 사용하는가?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저는 복잡한 경제와 심리 정보를 일반 시청자가 끝까지 볼 수 있는 이야기로 바꿉니다. 조사, 글쓰기, 시각 연출과 데이터 분석을 함께 사용합니다."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저는 기술팀과 비기술팀 사이에 오해를 줄이는 제품 기획자입니다. 개발 지식, 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을 연결합니다."
이 문장은 직업을 영원히 고정하지 않아. 대신 지금까지 흩어져 보였던 경험에 방향을 줘. 사람들은 네가 몇 가지에 관심 있는지보다, 그 조합으로 자신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해. 다능인의 가치는 복잡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복잡함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가치로 번역하는 능력에 있어.
숲처럼, 복잡함 속에서 가치를 찾다
한 가지 작물만 심은 밭은 관리하기 쉬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하기도 쉽고, 같은 방식으로 빠르게 수확할 수 있지. 하지만 그 작물에 맞는 병이 오면 밭 전체가 위험해져.
숲은 달라. 복잡하고 겉으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지. 키 큰 나무와 낮은 식물, 균류와 보이지 않는 뿌리가 연결되어 있어. 하나가 약해져도 다른 것이 빈자리를 메우고, 서로 다른 생명이 영양분을 주고받지.
관심이 많은 사람의 마음도 숲과 닮았어. 한 분야의 변화가 다른 능력을 쓸모없게 만들지 않아. 서로 다른 경험에서 해결책을 가져오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교차점을 발견할 수 있지.
하지만 씨앗만 무작정 뿌린다고 숲이 되는 건 아니야. 싹이 날 때마다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면 어느 나무도 뿌리 내리지 못해. 네가 특별한 이유는 관심이 많아서가 아니야. 그 관심들 가운데 일부를 오래 돌보고, 뿌리를 내리게 하고, 뿌리끼리 만나게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야.
그러니 '한 가지를 고르라'는 말에 인생 전체를 잘라낼 필요는 없어. 대신 '이번 계절에 무엇을 완성할지'는 골라야 해. 호기심을 버리지 마. 하지만 호기심이 어려운 구간에서 도망치는 문이 되게 두지도 마.
넓게 탐색하고, 한동안 깊이 들어가고, 배운 것을 연결하고, 세상 밖에 결과물을 남겨.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질문이 달라질 거야. '나는 왜 하나를 고르지 못할까?'가 아니라, '이 모든 경험을 이용해 나는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가 되는 거지.
오늘 너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관심사가 아닐지도 몰라. 이미 가지고 있는 관심들 사이에 첫 번째 다리를 놓는 일일 수 있어.
지금까지 배운 것 중 서로 상관없어 보였던 두 가지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둘을 이용해 이번 계절에 완성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결과물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