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 탐낸 이의민, 비둘기 한 마리에 몰락! 씁쓸한 최후 실화 #벌거벗은한국사
이의민과 경대승, 그리고 최충원 형제의 이야기
이의민은 높은 벼슬까지 올라갔지만, 정중부처럼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지는 못했어. 왜냐하면 이의민은 무신정변을 일으킨 주동자도, 최고 권력자도 아니었거든. 그래도 정중부랑 친하게 지내면서 권력을 누리고 싶어 했을 거야.
경대승의 등장
그러던 1179년, 이의민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어. 캄캄한 새벽에 두세 명의 검은 그림자가 담장을 뛰어넘고, 휘파람 소리와 함께 30여 명의 군사들이 들이닥쳤지. 순식간에 궁궐은 난리가 났고, 군사들은 왕 명종의 침소로 달려갔어.
"신들이 사직을 보호하려는 것이니, 두려워 마십시오."
이 말을 한 사람은 바로 26살의 젊은 장군, 경대승이었어. 경대승은 명종에게 정중부를 체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 정중부와 그 가족들이 너무 권세를 부리면서 왕실을 농락했기 때문이야. 특히 정중부의 아들 정균은 불타버린 궁궐 터를 달라고 해서 집을 짓고, 공주와 결혼하려고 왕실을 압박했어. 이건 고려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 공주는 왕족끼리만 결혼했거든.
명종은 경대승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 정중부가 체포되었어. 무신정변의 주역이었던 세 사람의 마지막은 모두 비극으로 끝났지.
경대승의 야심과 이의민의 위기
세상을 바꾸겠다며 등장한 경대승은 집권 축하 연회에서 충격적인 말을 했어.
"임금을 시해한 자가 아직도 살아 있는데, 축하가 무슨 소용인가."
바로 의종을 죽인 이의민을 죽이겠다는 뜻이었지. 이 소식을 들은 이의민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암살당할 것을 대비해 용사들을 모아 사병을 조직하고, 마을 어귀에 큰 문(염문)을 세워 대비했지.
하지만 이의민은 어느 날 개경을 벗어나 군사 훈련을 떠났고, 경대승의 눈을 피해 무사히 피신할 수 있었어. 왜 경대승은 이의민이 개경에 있을 때 잡지 않았을까? 이의민은 무신정변 이후 많은 공을 세워 고위 무신까지 올라갔기 때문에 함부로 죽이기 어려웠던 거야.
경대승이 집권한 지 약 1년 뒤, 이의민에게 경대승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이의민은 "내가 경대승을 죽이고자 했는데, 누가 나보다 먼저 칼을 들었는가"라고 말했지. 하지만 곧 경대승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을 핑계로 고향 경주로 내려갔어.
명종의 변화와 경대승의 죽음
경대승이 집권하면서 왕실은 숨통이 트이고 왕권도 높아졌지만, 명종은 경대승에게 조금씩 불편함을 느꼈어. 경대승은 왕의 비서인 승지로 문신을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버지 경진이 빼앗았던 토지를 모두 돌려주기도 했지. 명종은 경대승의 이상적인 말들이 부담스러웠던 거야.
경대승이 집권한 지 약 4년 뒤인 1193년, 명종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어. 경대승이 갑자기 죽었다는 거야. 꿈에서 정중부를 만난 이후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믿기 힘든 소식이었지. 아마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였을 거야. 젊고 군사 기반도 약했던 경대승은 늘 위협을 느끼고 있었거든.
이의민의 복귀와 권력 장악
경대승이 죽자 명종은 고향 경주에 있던 이의민을 개경으로 불러들였어. 혹시라도 이의민이 경주에서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웠기 때문이지. 명종은 이의민에게 수사공 좌복야라는 관직을 내렸지만, 권력이 크지는 않았어.
시간이 흘러 1191년, 명종은 이의민을 동중서 문화 평장사 판부사라는 높은 벼슬에 임명했어. 이제 이의민은 조정의 핵심 인물이 된 거야.
이의민과 두경승의 갈등
이때 이의민의 눈에 거슬리는 무신이 있었으니, 바로 두경승이었어. 두경승은 이의민보다 높은 관직을 가지고 있었고, 이의민은 자존심이 상했지. 둘은 주먹 자랑을 하며 서로를 견제했고, 이런 시까지 돌았어.
"중서 3, 4년만 있으면 세상 제일가는 권풍 날리겠네."
점점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의민을 보며 사람들은 경대승 때와는 다른 두려움을 느꼈지. 이의민은 인사권을 쥐고 뇌물로 정사를 처리했고, 아들들은 사람들의 토지를 빼앗는 등 탐욕과 포악함을 일삼았어.
김사미와 효심의 난, 그리고 이의민 일가의 횡포
이런 무신 정권의 횡포에 못 이겨 김사미와 효심이 난을 일으켰어. 그런데 진압군 사이에서 반란 세력과 내통하는 무신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 이의민의 아들 이지순이 진압군 장군으로 파견되었지만, 그는 오히려 반란군과 협상을 했어. 하지만 이의민의 눈치를 보며 아무도 이지순을 처벌하지 못했지.
오히려 명종은 이의민을 고려 최고의 관직인 문화 시중에 임명했어. 이제 이의민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이의민의 둘째 아들 이지영과 셋째 아들 이지은은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이는 '쌍칼'이라 불릴 정도로 흉악했어. 이의민의 아내 최씨도 질투심에 사람을 때려 죽이고, 이의민은 아내를 내쫓고 예쁜 여자들을 계속 취했지.
이의민의 왕위 찬탈 꿈과 몰락
이때 거리에는 "용의 자손은 12대로 끝나고, 다시 왕이 나타난다"는 도참설이 퍼졌어. 천민 출신이었던 이의민은 이 소문을 듣고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다는 허황된 꿈을 꾸기 시작했지.
그러던 어느 날, 이의민의 둘째 아들 이지영이 최충수의 비둘기를 빼앗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어. 이에 분노한 최충수는 형 최충원과 함께 이의민 일가를 처단하기로 결심했지.
1196년 4월 9일, 명종이 사찰에 행차하는 날, 이의민은 병을 핑계로 따라가지 않았어. 최충원 형제는 이 소식을 듣고 이의민의 별장으로 달려갔지. 이의민이 말에 오르던 순간, 최충원 형제는 칼을 꺼내 이의민을 베었어. 이의민의 아들들까지 죽이고, 최충원 형제는 권력의 중심으로 올라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