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4억 날린 후 우울증 극복? 꺾이지 않는 몸으로 인생 역전! #유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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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이선호 씨 이야기: 벼랑 끝에서 다시 일어서기
주식으로 4억 날리고 100억 빚더미에 앉았지만, 결국 다시 일어선 이선호 씨 이야기야.
- 시작은 좋았어: 20대 후반, 장학금 받고 모은 돈 4억이 있었대. 근데 집안 빚이 100억까지 불어나니까 이걸로 안 되겠다 싶었지. 주변에서 주식, 코인 열풍이 불어서 1천만 원으로 주식을 시작했는데, 하루 만에 1년 예금 이자만큼 벌리는 걸 보고 신났어.
- 욕심이 화를 불렀어: 1천만 원 넣을 때랑 억 단위 넣을 때랑 마음가짐이 다르잖아. 돈을 빨리 벌고 싶은 마음에 뭔지도 잘 모르고 급등주, 테마주만 쫓아다녔어. 결국 넣은 주식이 하한가를 치고 상장 폐지되면서 4억을 다 날렸지. 뉴스에도 나오고, 여자친구랑도 헤어지고 정말 힘들었대.
- 동생의 따뜻한 마음: 빈털터리가 된 이선호 씨를 보고 25살 동생이 군대 다녀와서 모은 5천만 원을 형에게 보냈어. 돈 다 잃고 울면서 동생에게 전화했는데, 동생은 오히려 괜찮다며 다시 시작하라고 용기를 줬대.
- 아버지의 힘든 시간: 아버지도 힘든 시간을 보내셨대. 부산 태종대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곳에 새벽마다 갔었지만, 엄마와 자식들 생각에 다시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대.
- 우울증과의 싸움: 2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고 병원에 갔더니 중등도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어. 잠을 자다가 깨면 '지옥 같은 현실이 다시 돌아왔구나' 느낄 때가 가장 힘들었대. 세상과 단절하고 고시원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지냈지만, 이걸 이겨내고 싶어서 논문을 찾아봤어.
- 몸부터 바꾸자: 의지는 마음먹는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뇌에서 만들어지는 거라는 걸 알게 됐어. 그래서 내 몸을 바꿔야 뇌도 바뀌고 의지도 생길 거라고 생각했지.
- 체력 끌어올리기: 무기력하게 끼니도 거르고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어. 그래서 운동부터 시작해서 체력을 끌어올렸대.
- 장 건강 챙기기: 우울증 환자 90% 이상이 장에 유익균이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대변 검사를 해봤더니 역시 유해균만 많고 유익균이 없었대. 요거트, 속편한 죽 같은 걸 꾸준히 먹었더니 설거지나 이불 개는 것처럼 사소한 일도 하고 싶어지더래.
- 햇볕 쬐기: 아침에 햇볕을 쬐면 안정감을 주는 세로토닌이 분비된다고 해서, 고시원 안마 커튼을 치우고 매일 5분이라도 밖에 나가서 햇볕을 쬐었대.
- 잘 자기: 잠자는 동안 뇌가 청소되니까 잘 자는 것도 중요했대.
- 말하는 대로 믿기: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 가사처럼, 긍정적인 말을 하면 뇌에서 천사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이 활성화돼서 장기적인 계획을 달성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래서 "좋아 보이는 걸 가려내고 좋아하는 걸 찾자"라고 계속 말했대.
- 꿈을 찾고 다시 일어서다: 과학과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 "과학을 쉽고 재밌게 알려주자"는 꿈을 세웠어. 1년, 2년, 3년 집중해서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도약하는 시기가 왔고, 경제적으로도 뒷받침되면서 100억 빚을 다 갚았대.
- 가족에게 보답: 제일 먼저 어머니께 집을 사드렸고, 월세 집에 살면서도 가족들과 함께 기뻐했대.
- 나에게 집중하니 모든 것이 따라왔다: 자신에게 집중하니 사랑도, 돈도, 건강도 다시 돌아왔고, '나답고 좋아하는 기준'이 생기니 어떤 어려움에도 넘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대.
박인희 선생님 이야기: 국민 자장가 '섬집 아기'와 함께한 삶
'모닥불', '섬집 아기'로 유명한 가수 박인희 선생님 이야기야.
- '모닥불'의 탄생: 1972년, DJ로 활동할 때 팬이 찾아와 고등학교 때 쓴 시와 곡을 솔로로 취입해달라고 했대. 그 시집을 보다가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으라'는 구절에 꽂혀서 멜로디가 떠올라 '모닥불'이 탄생했대. 이 시를 쓴 사람은 나중에 유명 작사가가 된 박건호 씨래.
- '섬집 아기'의 반전: '섬집 아기'는 사실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했대. 당시에는 필수적으로 '건전가요'를 한 곡씩 넣어야 했는데, 박인희 선생님은 부르기 싫어서 평소 좋아했던 '섬집 아기'를 대신 불렀던 거래. 그런데 이 노래가 우리나라에서 자장가처럼 쓰였다는 걸 전혀 모르셨대. 미국 생활을 하다가 개인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많은 사람들이 울면서 공감하더래. 어릴 때는 자장가로 듣던 노래를 이제는 잠이 안 올 때 자신을 위해 부른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고 해.
- 미국 생활과 라디오 코리아: 10년 정도 라디오 DJ로 활동하다가 1981년에 미국으로 떠났어. 미국에서 1989년에 LA 한인방송국 '라디오 코리아'를 만들었대. 당시에는 고국 소식을 듣기 어려웠는데, 라디오 코리아를 통해 한국말이 흘러나오니 교포들이 정말 좋아하고 눈물과 편지를 보내왔다고 해. 교육, 이민 생활 등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고국 소식을 전하며 큰 역할을 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