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파시즘 미학에 빠진 당신의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다!
왜 우리는 '그것'에 멋있다고 느낄까? 파시즘 미학 파헤치기
어떤 작품을 보면서 '이거 좀 이상한데?' 싶으면서도 '근데 왜 이렇게 멋있지?'라고 느낀 적 있지?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못해. 왜냐하면 '이상한 것'을 멋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나도 이상한 사람이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야.
오늘은 바로 이 불편한 질문에 정면으로 답해보려고 해. '파시즘 미학'이라는 걸 알면, 우리가 왜 그런 것에 매료되는지, 그리고 그게 왜 위험한지 알 수 있을 거야.
파시즘 미학, 그게 뭔데?
파시즘 미학은 단순히 파시즘이라는 사상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니야. 파시즘이 사람들을 홀리기 위해 사용하는 시각적, 청각적, 감각적 전략들을 말하는 거지.
- 도열된 병사들: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군인들을 보면 뭔가 웅장하고 강력해 보이잖아?
- 통일된 제복: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라는 소속감이 강해지지.
- 장엄한 음악: 웅장한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벅차게 만들어.
- 거대한 불꽃, 폭발: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장면들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 순고한 자기 희생: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야기는 감동을 줘.
이런 것들이 만들어내는 미학적 경험이 바로 파시즘 미학이야. 그리고 이런 것에 멋있다고 느끼는 건 네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야. 이건 수만 년 동안 진화해 온 우리 뇌의 신경계 때문일 수도 있어.
왜 우리는 '그것'에 끌릴까? 심리학적 이유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파시즘이 사람들에게 '빵'이나 '권리' 대신 '스펙터클'을 준다고 했어. 거대한 퍼레이드, 압도적인 집회, 신화가 된 지도자 이미지 같은 것들 말이야. 사람들은 이런 것에 빠져들면서 현실의 고통을 잊고, 마치 거대한 사건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돼.
이게 왜 무섭냐면, 사람들은 현실에서 정치적 권리를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볼거리와 음악에 취해 자신의 불행을 망각하기 때문이야. 베냐민은 이런 과정의 끝이 결국 전쟁이라고 경고했어.
그럼 우리는 왜 이렇게 파괴적인 미학에 끌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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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함'의 경험: 심리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인간이 자신을 압도하는 거대하고 두려운 것을 볼 때, 그게 자신을 직접 해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강렬한 미적 쾌감으로 변한다고 했어. 예를 들어, 거대한 폭풍우나 절벽, 화산 폭발, 수만 명의 병사가 도열한 광경 같은 것들 말이야.
- 파시즘은 바로 이 심리를 이용해. 병사들이 쫙 도열하고 무기가 번쩍이는 모습은 공포를 자극하지만,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 공포의 일부가 된 사람들에게는 집단적 카타르시스와 자부심으로 변하는 거지. "저 강력한 힘이 내 편이야!"라고 느끼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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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숭고함': 칸트는 숭고함을 두 가지로 나눴어.
- 수학적 숭고함: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나 수만 명의 군중처럼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광대함에서 오는 느낌.
- 역학적 숭고함: 압도적인 군사력이나 화산 폭발처럼 인간을 압도하는 위력에서 오는 느낌.
- 사람들은 이런 거대한 것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작아지는 경험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에 쾌감을 느껴. 이걸 '숭고한 쾌감'이라고 해.
- 파시즘 미학은 이런 숭고한 감정을 지도자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바꿔버리는 거야. 개인의 왜소함을 거대한 전체의 위대함으로 보상받게 만드는 거지.
뇌를 마비시키는 파시즘 미학
파시즘 미학은 우리 뇌를 마비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이야. 우리 뇌는 크게 두 가지 시스템으로 작동한다고 해.
- 시스템 1: 빠르고 감정적인 시스템
- 시스템 2: 느리고 논리적인 시스템
파시즘 미학은 화려한 시각 효과, 웅장한 음악, 군중의 함성 등으로 우리의 시스템 1을 과부하시켜.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면, 느리고 논리적인 시스템 2가 마비되는 거지. 이성적인 판단 필터가 제거된 상태에서 지도자는 아주 단순한 메시지를 던지고, 그 메시지는 무비판적으로 우리의 잠재의식에 각인돼.
또한, 대칭과 반복도 중요한 요소야. 완벽하게 정렬된 군중, 통일된 제복, 반복되는 구호는 우리 뇌가 패턴을 찾고 명확성을 느끼게 해. 그런데 파시즘 미학은 이 명확성을 넘어 인지적 과부하를 일으켜서, 우리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게 되는 거야. 마치 군중 심리에 휩쓸려 개성을 잃고 집단적인 마음이 생겨나는 것처럼 말이야.
'진격의 거인'으로 보는 파시즘 미학
'진격의 거인'의 엘빈 스미스의 연설 장면을 떠올려봐. "개에게 물려 죽든 거인에게 잡아먹히든 죽음은 다 똑같이 의미가 없다." 이 말에 감동받았지?
- 바닥 따지기 효과: 엘빈은 병사들에게 죽음이 무의미하다는 잔혹한 진실을 마주하게 해.
- 의미 부여: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이 그 죽음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라고 말하며, 개인의 유한한 생명을 집단의 영속적인 기억과 연결시켜.
- 공포 관리 이론: 인간은 자신의 죽음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알면 실존적 불안을 느껴. 이걸 해소하기 위해 자신보다 더 거대하고 영속적인 체계(국가, 민족, 역사, 신 등)에 귀속되려고 하지. 엘빈의 연설은 병사들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반항의 유산'이라고 재정의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애줘.
- 자기 희생의 진정성: 결정적으로 엘빈은 자신이 죽음의 대열 맨 앞에 서. 자기 희생의 진정성은 전체주의적인 명령을 자발적인 헌신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
결국, 우리는 민주적 자율성을 내려놓고, 강력한 권위 아래 통합된 집단이 발휘하는 파괴적인 힘에 매료되는 거야. 조사병단의 제복, '심장을 바쳐라'라는 구호, 그리고 자살 돌격까지. 이것들은 모두 파시즘 미학이 말하는 죽음의 낭만화를 보여주는 거야. 개별 병사들의 목숨은 거인을 쓰러뜨리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지만, '인류의 해방'이라는 거대한 서사에 포장되어 순고하게 받아들여지는 거지.
'스타십 트루퍼스'의 경고
1997년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는 파시즘 미학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풍자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어.
- 나치 친위대 디자인의 제복: 영화 속 인류 연합의 제복은 나치 친위대의 디자인을 노골적으로 차용했어.
- 복무가 시민권을 보장한다: 민주주의가 군사주의에 잠식된 사회를 보여주지.
- 선전 뉴스 릴: 미디어 통제와 대중 세뇌를 조롱하는 장치야.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풍자를 놓치고, 그냥 재밌고 화려한 특수 효과와 "좋은 벌레는 죽은 벌레뿐이다" 같은 구호에 열광하며 인류 측의 제국주의적 침공을 정당화했어. 왜 그랬을까? 감정적 몰입이 이성적 판단보다 먼저 작동했기 때문이야. 파시즘 미학은 비판하려는 사람까지 집어삼킬 정도로 강력한 거지.
파시즘 미학의 핵심: 형식 자체가 메시지
파시즘 미학은 단순히 메시지를 예쁘게 포장하는 기술이 아니야. 형식 자체가 메시지가 되도록 만든 시스템이지.
- 느끼고 난 다음에 생각하게 만든다: 장엄한 음악, 도열된 병사들은 우리의 신체에 먼저 도달해. 심장이 뛰고, 등골이 서늘해지고, 눈물이 나. 이런 감각적 반응이 먼저 일어나면 우리는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돼.
- 복종을 욕망으로 변환시킨다: 수잔 손탁은 파시즘을 "폭력을 즐거움으로 만들고 복종을 욕망으로 변환시키는 연금술"이라고 했어. 복종이 욕망으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 내가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걸 원한다고 느끼게 돼.
- 개인의 소멸을 아름답게 포장한다: 도열된 병사들이 멋있어 보이는 이유는 개별 인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야. 수만 명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일 때 순수함을 느끼는데, 이는 개인이 소멸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파시즘 미학은 개인의 불안전함, 취약함, 즉 인간 자체를 미학적 결함으로 치부해.
- 아름다움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게 만든다: "아름다운 것에 어떻게 이의를 제기하냐?"는 생각은 매우 강력해. 감동적인 것에 반박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행위처럼 느껴지게 만들지. 파시즘 미학의 진짜 무기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행위 자체를 불쾌하고 무감각한 것으로 만드는 미학적 방어막이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파시즘 미학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 자체를 수치스러워할 필요는 없어. 그 감정은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무엇을 위해 설계되었는지, 그 순고한 감동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해.
- 이성을 깨워야 해: 감각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순간,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해.
- 예술의 정치화를 막아야 해: 발터 베냐민은 정치의 예술화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술을 다시 이성적 소통과 해방의 도구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했어.
- 비평의 역할을 해야 해: 작품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어떤 세계관을 운반하고 있는지를 따져 묻는 것. 감동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감동의 출처를 해부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매혹적인 괴물'인 파시즘 미학 앞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야.
도열된 병사들의 대열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개인의 주체성을 말살하고 타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마취제로 쓰이고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비판해야 해. 그것이 비판을 하는 이유고, 비평가가 존재하는 이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