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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를 바꾼 한국 기술자 한 마디, 물 대신 희망을 선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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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감동사연] 'UN도 외면한 탄자니아, 한국 기술자 한 마디에 모든 게 바뀌었다' 물 대신 희망을 만든 나라, 주민들이 한글까지 배우는 이유

감동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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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감동 다큐멘터리】"지하 200m에서도 물이 안 나왔습니다… 한국은 땅이 아닌 하늘을 팠습니다" 전 세계가 외면한 탄자니아 가뭄 마을, 그 절망의 땅에 도착한 한국 기술자들은 단 한 마디를 남깁니다. “이제 우리는, 땅이 아니라 하늘을 팝니다.” 물이 아닌 ‘희망’을 만든 한국의 무동력 응결 기술, 그리고 마침내 마을 사람들이 직접 기술을 익혀 케냐, 르완다까지 생명을 나누기 시작한 실화.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식수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존엄, 그리고 ‘사람’을 중심에 둔 한국 기술의 진심을 조명합니다. 📚 이 영상에서 다루는 내용: • 지하 200m까지 파도 물 한 방울 안 나오던 탄자니아 내륙 마을의 절망 • 전기조차 없는 땅에서 하루 300리터 물을 만들어낸 한국 수분 응축 기술 • “하늘에서 물을 만든다”는 말이 현실이 된 기적의 현장 • 주민들이 직접 기술을 배우고 이웃 마을까지 도운 감동적 전환 • 마을 곳곳에 피어난 한글 표지판, 자발적으로 시작된 한국어 교육 • 기술이 아닌 관계, 기계가 아닌 사람이 만든 변화 • UN·국제 언론도 주목한 ‘탄자니아-한국 기술 연대 모델’ •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배웠다”고 말하는 아프리카 청년들의 고백 🔍 이 콘텐츠는 기술의 정의를 다시 묻습니다. 죽어가던 마을을 살린 건 전기가 아닌 바람이었고, 기계보다 앞선 건 사람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한국의 조용한 기술과 조건 없는 나눔은 이제 아프리카 대륙 전체로 번져가며 ‘기술은 관계다’, ‘기술은 존엄이다’라는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영상은 물보다 깊은 신뢰, 기술보다 빠른 진심이 어떻게 세계를 바꿔가는지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해외감동사연 #해외반응 #해외네티즌반응 #해외댓글반응 #외국인반응 #한국해외반응 #해외감동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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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200m를 팠습니다.

그런데 물이 없었습니다.

마을 이장이 망년자시란 얼굴로 그렇게 말하던 순간 모두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아이들은 울지 않았고 어른들은 눈을 감았습니다.

물이 없다는 건 희망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이 마을엔 밥 짓는 연기도 웃음도 노래소리도 사라졌습니다.

절망뿐인 그 땅 위에 한 무리의 낯선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한 마디를 남깁니다.

이제 우리는 땅이 아니라 하늘을 팝니다.

대체 무슨 말이었을까요? 땅이 아니라 하늘을 판다니 그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그전에 잠깐 1초만 투자해서 구독, 좋아요 버튼을 꾹 눌러 주시면 영상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마타요.

다니엘입니다.

탄자니아 중부.

도도마주 음보곤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우리 마을은 해발이 꽤 높은 내륙 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 외부와 왕내도 드물고 언제나 그늘이 부족한 따가운 태양 아래 살아가는 곳입니다.

어릴 적에는 비가 오면 마을의 아이들이 벌거 벗고 흙탕물에서 뒹굴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물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조그마한 우물 하나만 있어도 한 가족이 하루를 버티는 데는 무리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이상한 조짐이 시작됐습니다.

건기와 우기가 예전만 갖지 않았고 기온은 해마다 1도씩 더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한때 비혹했던 땅은 먼지를 일으키는 황토로 변했고 밤에 내리던 이슬조차 매말라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점점 물과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변화의 끝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23년에 어느 건기 마을에서 유일하던 공동 우물이 바닥을 드러낸 것입니다.

물이 줄어들면 깊이를 더 파서 해결하곤 했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파면 팔수록 진흙 쫓아 나오지 않았고 결국 15m 아래는 돌덩이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3km 떨어진 작은 늪으로 향했습니다.

갈색을 뛴 탁한 물을 플라스틱 통에 담아 오지만 그것도 하루 한 통이 전부였습니다.

그 물로 밥을 하고 얼굴을 씻고 동생의 기저기를 행고야 했습니다.

물은 생명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통이 되었고 전쟁이 되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올해로 예순 다섯이 되십니다.

늘 정갈하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 하루에 한 끼만 드시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하지 않으면 설거지를 안 해도 되니까 이유를 묻자 어머니는 웃으며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저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밥보다 무서운 것이 설거지라니 그것은 분명히 물이 부족하다는 절망의 언어였습니다.

저는 마을에서 이장을 도와일하는 청년 대표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을 위한 물개발 사업을 시작하려 했고 실제로 외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유럽의 한 NG오는 해당 지역은 이미 위험 지대로 분류되어 있다며 손을 뗐고 아프리카 연합 차원의 시추 장비는 정치적 우선 순위에 밀려 끝내 우리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각종 서류를 들고 도시로 나갔습니다.

아르샤, 다르에스 살람, 심지어 탄자니아수도 도도마에까지 찾아가 우물 개발 업체들을 만나 계약을 따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모은 작은 기부금 그리고 제가 평생 아껴 놓았던 비상금까지 털어 200m까지 시초할 수 있는 민간 장비 하나를 빌려온 것이죠.

그리고 그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기대감 속에서 보냈습니다.

어르신들은 나뭇가지의 부적을 걸고 아이들은 장비 근처에서 물래를 불렀습니다.

나지 나지 마지 우물이 열려라.

저는 그 아이들의 동그란 눈망우를 보며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작업은 예상보다 길어졌습니다.

20m, 50m, 80m 물기능 커녕 단단한 안반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추 팀장은 제게 말했습니다.

지하 100m 밑엔 무조건 물이 나옵니다.

걱정마세요.

저는 그 말을 믿고 남은 예산을 다 털어 장비 가동 시간을 늘렸습니다.

120m, 150m, 180m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200m를 찍던 날 저희는 모두 숨을 죽이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 들려온 건 물이 없습니다라는 기계음 같은 선언이었습니다.

그 말을들은 순간 저는 그대로 무너졌습니다.

장비를 빌려준 업체는 철수했고 마을엔 거대한 구멍만 남았습니다.

그 구멍은 단순한 땅의 구멍이 아니라 저희 마음의 구멍이었습니다.

희망이란 단어를 말할 수조차 없는 깊이였고 그 누구도 다시 파보자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마을 회관에서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어르신 중 한 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땅은 이제 끝났어.

하늘도 우리를 버렸다.

그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정적 속에서 아이 하나가 울기 시작했고 이내 모두가 울음을 삼켰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말라붙은 땅과 말라붙은 가슴을 안고 고유한 절망 속으로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제 누가이 땅을 살릴 수 있을까? 그날은 유난히 무더운 오후였습니다.

해는 머리 위로 곧게 떠 있었고 바람은 없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무기력에 잠긴 듯 조용했습니다.

아이들은 더는 물을 기르러 가지 않았습니다.

늪이 말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집에도 며칠째 불이 꺼진 화덕만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끓일 물이 없다는 이유로 식사를 포기하셨습니다.

춤이 턱막히는 정적 속에서 저희 마을은 그렇게 생명의 빛을 조금씩 놓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마을 입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덜컹거리는 트럭 바퀴 소리, 낮은 엔진음, 그리고 익숙지 않은 외국어의 목소리.

저는 천각으로 얼굴을 가린 채 걸음을 옮겼습니다.

먼지바람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흰 모자를 쓴 낯선 동양인들이었습니다.

처음엔 아무도 그들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왜 우리 마을에 온 건지 말도 통하지 않았고 소개도 없었습니다.

다만 트럭 뒤편에 실려 있던 묘한 기계 하나가 모두의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전기도 없고 배터리도 없고 돌리는 바퀴도 없는 낯선 기계.

그 기계 위엔 이상한 글자들이 붙어 있었고 중앙에는 국기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붉은 태극 문양 저는 극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상징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물이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조심스에 다가온 한 사람이 단정한 영어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조민교라고 소개했습니다.

한국 국제 기술단 약층 KITS 소속으로 아프리카 전역의 감뭄 지역을 지원하고 있는 기술자라고 했습니다.

그가 내민명함 속원은 물론 하나도 읽히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에서 어떤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우린 정말 물을 만들러 왔습니다라는 확신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긴 지하수도 없어요.

제가 그렇게 말하자 조민교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이 아니라 하늘을 팝니다.

그 말을들은 순간 마을 어르신들은 다소 황당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 역시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하늘을 판단이요.

구름도 없고 비도 안 오는이 건조한 하늘에서 도대체 무엇을 판다는 것일까요? 조민규 씨는 조용히 트럭 뒤편에서 병 하나를 꺼내 저에게 건냈습니다.

그 병엔 투명하고 맑은 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물은이 기계 하나로 오늘 하루 만들어낸 물입니다.

약 300L쯤 됩니다.

그의 설명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이 장비는 공기 중에 수분을 모아 응축시켜 물을 만들어내는 장치로 전기조차 필요 없는 무동력 시스템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공기에서 물을 만든다니 이건 무슨 마법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병속의 물을 손에 들었을 때 그 차갑고 맑은 감촉이 제 온몸에 전율처럼 번졌습니다.

그 물을 어머니께 건네드리자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병을 만지고 냄새를 맞더니 조용히 한 모금 드셨습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말을 잊지 못하셨습니다.

진짜 물이야.

이건 비도 아니고 우물도 아니고 하늘이야.

이튿날부터 마을은 전례없는 분주함에 휩싸였습니다.

기계를 설치할 장소를 마련하고 무거운 금속 구조물을 옮기며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나섰습니다.

처음엔 작은 둔덕 위에 설치했지만 습도를 고려해 마을 회관 지붕 위로 옮겼고 한국 기술자들은 건축 경험도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 구조물 조립부터 응결판 청소법까지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습니다.

작업 도중 기술자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이 이건 기계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학교고 병원이고 내일입니다.

그 말을들은 저는 물이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물이란 삶 전체를 바꾸는 열쇠였던 것입니다.

드디어 설치가 끝나던 날 밤 기계는 조용히 작동을 시작했습니다.

바람을 흡수하고 습기를 응결시켜 서서히 아래의 탱크로 물을 모았습니다.

처음엔 한두 방울 떨어지던 소리가 밤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선명해졌습니다.

투 투 투 그 물소리는 마치 마른 땅을 두드리는 하늘의 노크 같았습니다.

아침이 되자 탱크 안에는 투명한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조민주 씨는 탱크 뚜껑을 열고 한 마디만 했습니다.

이게 여러분의 첫 하늘입니다.

저는 그 말에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이 땅에선 수십년간 비가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비가 아닌 공기에서 물이 태어난 것입니다.

도저히 믿기 힘든 현실 앞에서 우리는 모두 말없이 그 물을 바라보았습니다.

말을 잊은 대신 손을 맞잡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물을 만든게 아니라 희망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첫날 300L.

그것은 숫자로만 보면 결코 많은 양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음보고니 마을에서는 그 300L가 아이들의 웃음 300번, 어머니들의 노래 300구절이 되어 퍼졌습니다.

마을 회관 옆에 설치된 저장 탱크는 이제 매일 새벽 조용히 물로 가득 찹니다.

전기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서 바람과 대기만으로 얻은 물입니다.

마치 하늘이 매일 밤 우리에게 안부를 묻고 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물은 가장 먼저 병약한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기계 설치 직후 마을의 식수분배 시스템은 한국 봉사단의 권유로 공공 우선 가정 순위로 정해졌습니다.

말이 어려웠던 아이에게는 물을 담아갈 작은 용기를 따로 만들어 주었고 눈이 어두운 할머니에겐 자원 봉사자들이 매일 물을 배달했습니다.

그건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조엄이었습니다.

그동안 늪지대에서 기러운 탁한물로 인한 설사와 피부병도 줄었습니다.

우리 마을에선 햄하다 어린아이 34명이 물로 인한 장염으로 숨졌습니다.

그 상처는 지금도 가슴 깊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워든 맑은 물이 흐르기 시작한 이후로 아이들의 얼굴 빛이 달라졌습니다.

눈이 또렷해졌고 피부에선 트러블이 사라졌으며 웃음이 늘었습니다.

말 그대로 피어나는 얼굴이었습니다.

어머니들도 변했습니다.

예전엔 하루 중 절반의 시간을 물을 구하는데 썼습니다.

밥을 하기 전엔 손을 닦을 물 고민해야 했고 설거지 후엔 다시 물을 찾으러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아침 일정량에 물이 주어지고 남은 시간엔 마당을 쓸고 아이들과 손잡고 시장에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처음으로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수줍께 말씀하셨습니다.

물 좀 생기니까 여자가 다시 되도 다시 시작됐습니다.

아주 작은 텃밭밥부터였지만 KITS의 농업 기술자 한 분이 마을에 상조하며 소량물 순환형 수경 재배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용하고 남은 물을 식물에 주고 다시 그 식물의 뿌리로 스며든 물을 재수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희는 처음 보는 생명공학 기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그 시스템 안에서 토마토와 시금치가 자라나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녹색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이것 꿈죠? 진짜죠? 그 말에 조민교 씨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건 하늘이 준 선물이고 여러분이 돌려받은 권리입니다.

점차 마을엔 변화가 퍼졌습니다.

기계 설치 3주 후 저는 조민규 씨에게 부탁해 물급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남성 중심이었던 마을 구조와 달리 여성 대표도 포함되었고 청년들과 노인, 장애인까지 다양한 구성으로 수질 관리와 유지보수를 막기 시작했습니다.

물의 분배는 이제 가장 많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돌아갔습니다.

그 기준은 소득이 아니라 필요였습니다.

그리고 무력했던 청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기계의 작동 원리를 배운 후 여섯 명의 젊은이가 직접 조립법과 청소법을 익히고 인근 내개 마을에 기술 시범을 진행했습니다.

물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된 겁니다.

어느 날 이웃 마을에서 한 어머니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우리 아들한테도 좀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자랑스러움과 책임감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하늘이 준 물은 이제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놀라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신뢰였습니다.

한국인 기술자들을 처음 만났을 때 솔직히 대부분의 주민은 의심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기관들이 와서 사진만 찍고 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이들은 돈도 이름도 보도 자료도 없이 오로지 사람만 보고 왔습니다.

조민주 씨는 마지막 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물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로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어 준 덕분에 생긴 겁니다.

어느 날 밤 회관 앞에서 마을 사람들과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조용히 중얼거렸습니다.

하늘을 믿지 않던 마을에 하늘이 내려왔구먼.

그 말을들은 모두가 가슴에 울림을 느꼈습니다.

이건 단순한 기적이 아닙니다.

하늘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지만 우리가 눈을 감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 저희 마을의 아침은 물소리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물소리는 말합니다.

살 수 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물을 얻기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마을엔 전혀 다른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더는 생존을 위한 싸움을 멈추고 내일을 준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은 바로 기술 교육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계의 청소법, 작동 상태, 점검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KITS에서 파견된 기술자들은 그 이상을 가르치려 했습니다.

이 기술은 누구든 배울 수 있고 누구든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마을에 남긴 첫 번째 원칙이었습니다.

여섯 명의 청년이 선발되었습니다.

저는 마을 청년 대표로이 교육 과정의 전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통역을 맡았습니다.

첫 강의는 물은 어디에서 오는가였습니다.

단순히 하늘에서 비가 오는게 아니라 공기 중 수증기라는 미세한 입자가 어떻게 응결되는지 기압과 기온 바람의 흐름이 물생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하나하나 그림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청년들은 처음엔 머리를 글적이며 어리둥절에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도가 달라졌습니다.

한 친구는 집에서 종이 박수로 장비를 모사했고 다른 친구는 벽에 대고 물음결 경로를 그려가며 공부했습니다.

특히 17살의 무한마드라는 소년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습니다.

한 번은 밤늦게까지 기술자들이 돌아가지 않자 그는 회관에 남아 장비 내부 구조를 혼자 그려 보았습니다.

그 노트는 지금도 제가 갖고 있습니다.

물 한 방울이 어떻게 생명으로 이어지는지를 그 어린 손으로 정성껏 그려낸 노트였습니다.

한 달 후 이들은 마을 기술자로 공식 임명되었습니다.

각자 구역을 나누고 장비의 이상 여부를 체크하며 주민들에게 사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부품이 도착할 경우 직접 설치와 점검까지 수행할 수 있는 영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일이 생기고 책임이 생겼습니다.

더불어 작은 경제 생태계가 탄생했습니다.

기계로 만들어진 물은 식수 외에도 여러 형태로 활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잉여물을 이용한 작은 채소농장이 생겼습니다.

KITS는 물 절약형 스마트 플랜터를 기증했고 플랜터에 심은 작물은 시금치, 토마토, 고추였습니다.

이 작물들은 자가소비는 물론 인근 시장에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저는 청년 두 명과 함께 오토바이에 물통과 작물을 씻고 근처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엔 한 바구니도 채우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예약이 생겼고 단골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건 수익의 20%를 마을 공공 기금으로 환원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기술자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도 함께 돈을 벌 수 있도록 청소 담당, 물급, 작물 수학 등을 역할별로 나눴습니다.

어느 날 예전엔 하루 종일 손바닥을 부여잡고 앉아 있던 한 어르신이 제게 말했습니다.

이제 나도 할 일이 생겼다.

내 손으로 키운 고추가 저기 팔리고 있지 않니? 물의 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교육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전 가뭄이 심해지면서 마을 초등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선생님이 떠났고 학생 수가 줄면서 정부 지원도 끊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 기술자들이 만든 작은 교실 하나가 변화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기술자들이 교육을 하던 회관 한 편을 야간문의 교실로 개방했고 주민 중 글을 아는 어른이 자발적으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이 수업은 단순한 문자 교육이 아니었습니다.

물의 순환, 공기중 습도 측정, 공공 시스템 같은 단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이산화 탄소가 무슨 뜻인지 기온 변화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아이 하나가 제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물은 보이지 않지만 배울 수 있어요.

그 말이 너무 뭉클해서 저는 그날 밤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이들은 물보다 먼저 자라고 있었고 그 자람은 우리 마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주 하던 말이 있습니다.

하늘이 준 물로 땅 위에 학교를 세웠다.

그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배운 기술은 단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자존감과 미래를 위한 씨앗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느꼈습니다.

물이 흐른다는 건 단지 목이 추여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물이 흐르면 사람도 흐르고 배움도 흐르며 사랑도 흐른다는 것을 지금 우리 마을은 매일 새벽마다 하늘의 축복을 받고 있고 그 축복을 서로 나누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방울이 탱크 속에 떨어질 때마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 시절이 지나고 이제 우리 마을은 더는 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물을 만드는 사람들 더 나아가 희망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술자 교육을 수려한 여섯 명의 청년들은 더는 배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손으로 장비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고 한국 기술자들이 가져온 설계도를 하나하나 분해하고 관찰하고 복원에 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어려웠습니다.

현지에서 구할 수 없는 부품도 있었고 습도 센서나 은결판 소재 같은 고급 기술은 아직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두들은 한국 기술자라면 이런 경우 이렇게 대처했을 것이라는 사고 방식을 스스로 익히며 기존 장비를 개선하고 부족한 재료는 주변 자원을 활용해 채워갔습니다.

특히 가장 큰 혁신는 비닐하우스용 페폴리카보네이트 판을 활용한 응결판 대체였습니다.

도마 시내에서 사용이 끝난 온실 폐자재를 모아 판재를 자르고 금속 지지대를 고정해 응결 구조물을 마을에서 직접 조립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제가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말문이 막혔습니다.

허름한 공구로 손바닥에 굳은살이 베워가며 젊은 청년들이 조용히 땀을 흘리며 말하던 그 장면 말입니다.

우린 이제 누가 와 주길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말에 저는 뜨거운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청년들은 더 나아갔습니다.

자체 기술 전수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KITS가 떠난 이후 마을 회관에선 매주 목요일마다 기술 교실이 열렸고 여기엔 남녀 노소 누구나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우리 마을 사람들만 참여했지만 소문이 퍼지자 인근 마을에서도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차로 두 시간 거리에 키둘레 마을에선 이장님이 직접 오셨고이 기계는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우리 무한마드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기계는 못 팔아요.

대신 만드는 법은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상으로 기술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에서 배운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건 없이 주고 조건 없이 돕고 조건 없이 믿는 것.

그것이 한국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마을에도 응결령 장비가 설치되었고 그 장비 옆엔 늘 음보고 제작이라는 작은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글씨를 볼 때마다 마을 어르신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해냈다.

누가 우리를 가르쳤는지도 잊지 말자.

이제 우리는 매달 한 차례.

음보곤이 기술회의를 엽니다.

이 회의엔 다섯 개 마을 대표와 청년 기술자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는 아이들까지 함께 모입니다.

회의의 주제는 간단합니다.

다음엔 어디로 희망을 보낼까? 물론이 모든 변화가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장비가 고장나면 부품이 없어 며칠간 멈추기도 했고 습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날엔 하루 50도 얻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날조차도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배운 것이 있고 기다릴 줄 아는 가슴이 있다.

이런 변화를 지켜본 저는 문득 한국으로 편지를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조민규 기술자와 봉사단에게이 모든 과정을 보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과 함께 긴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들이 떠난 이후 우리는 물을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마을엔 아이들의 웃음이 넘치고 어머니의 노래가 흐르며 장비를 만든 손으로 옆 마을을 도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가르쳐 준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믿는 법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늘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을 한국도 알아주길 바랍니다.

그 편지는 매일로 번역되어 KITS 본부에 전달되었고 한 달 후 조민규 기술자에게서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배운 것입니다.

사람은 기술보다 따뜻해야 한다는 것, 물보다 깊은게 마음이라는 것을 감사합니다.

언젠가 다시 그 마을의 별이 많은 밤하늘을 보러 가겠습니다.

그 답장을 읽은 날 밤 우리는 모두 모닥불 앞에 앉았습니다.

누군가 울었고 누군가는 웃었습니다.

아이들은 또다시 물놀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지나 마지 우물이 열려라.

하지만 이번엔 진짜였습니다.

우물은 열렸고 마음도 열렸고 미래도 열렸습니다.

우리 마을이 처음 한국 기술자들을 맞이했을 때 그들은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지 세 달쯤 되었을 무렵 마을 사람들 스스로가 묻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술을 준 나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왜 이런 걸 우리에게 조건 없이 주었는가? 그때부터 음보고이 마을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배움의 바람, 그리고 한국어의 바람이었습니다.

처음 한국어를 배우자고 말한 사람은 놀랍게도 마을의 최고령자 중 한 분이었습니다.

82세의 말해라 할아버지는 매일 은결기 앞에 앉아 물이 떨어지는 걸 지켜보다가 말했습니다.

이 기계에 써 있는 글자 무슨 뜻이냐? 제가 그때 KITS 커리라고 알려 드리자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도 저 글자 읽을 줄 알아야지.

그 말 한마디는 마치 새벽 공기처럼 조용하지만 강력했습니다.

그 후 청년 몇 명이 스마트폰으로 한글표를 출력해 회관 벽에 붙였습니다.

가장 먼저 배운 단어는 물이었고 그다음은 사람 고맙습니다.

희망이었습니다.

의미도 몰랐던 글자들이 마을 회관 병마다 붙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물통에 붙은 한글 라벨를 보며 무과 우를 찾았고 어른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여러 번 소리내어 읽으며 그 뜻을 이해해 갔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다르살람에 있는 한국문화원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 이야기를들은 담당자는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중고 교재와 한글 포스터, 영상 자료 등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리고이 모든 과정이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물에서 시작된 교육 한글로 이어지다.

하늘을 판 마을 한글을 심다.

도도마 지역 방송국에서 마을을 촬영하러 왔고 기자들은이 말을 연신 반복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교육 모델입니다.

물에서 글자가 나왔다니요.

이후 마을에는 정기적으로 외부 방문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국가 기술청에서는 청년 기술자들을 지방 기술력신 우수 사례로 선정했고 대학 교수들이 공기응결 농업 사례를 직접 관찰하러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그 방문자들 대부분이 마을의 한글 표기를 보고 멈춰섰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이게 왜 여기에 써 있죠? 한 기자가 묻자 무한마드는 화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건 우리가 받은 고마움을 기억하는 방법입니다.

물을 준 나라의 글자를 우리 손으로 써서 우리가 계속 배워 가는 거예요.

그 말은 감동을 넘어선 울림이었습니다.

한국어는 그저 외국어가 아니었습니다.

도움과 신뢰, 관계와 감사의 언어로 마을에 스며든 것이었습니다.

청년들은 스스로 한글 기술 교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기계 조립법을 하나하나 그림으로 그리고 그 옆에 한국어 단어를 붙였습니다.

관이프, 물통 탱크, 하늘하늘 단어 하나하나엔 배운 사람의 손글씨가 담겨 있었고 그 글씨에는 우리가 누구 덕분에 여기까지 왔는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에서도 알려졌습니다.

KBS와 SBS에서 연락이 왔고 특파원이 직접 마을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보통은 한국 기술이 세계로 퍼졌었다고 자랑하는 뉴스가 많은데 여긴 반대네요.

기술을 받은 사람들이 먼저 한국을 알고 싶어 하고 한국어를 자발적으로 배우는 마을이라니 취재 영상이 방송되자 한국 내에서도 큰 반향이 일어났습니다.

한대학교에서는 우리 마을 청년 두 명을 초청의 온라인 기술 세미나에 참여시켰고 어느 고등학교에선 수업 중이 이야기를 다루며 진짜 배움은 감사해 출발한다는 교훈을 나누었다고 들었습니다.

무하마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국에 빚진게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것을 옆마을에 다른 사람에게 미래 세대에게 갚고 있으니까요.

이게 한국이 우리에게 알려준 방식이고 그래서 한국을 존경합니다.

지금 우리 마을 아이들 중 일부는 매일 아침 한글 노래를 부릅니다.

그중에선 이런 노래도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물이 와요.

우리 집 앞마당에 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늘이 와요.

저는 그 아이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우리는 물을 받았지만 그 물을 통해 더 큰 것을 배웠습니다.

언어를 배우고 문화와 마음을 배우고 무엇보다도 사람 사이의 신뢰를 배운 것.

그게 진짜 한국이 남기고 간 선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날 음보곤이 회관의 라디오에서 다급한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케냐 북부 우갈래 지역 4개월째 극심한 감음일 평균 기온 40일도 생존 위기.

그 뉴스는 단 몇 분짜리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무한마드가 저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저기 우리가 옛날 겪었던 그 모습 같아요.

우리도 절했잖아요.

그 말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행동을 부르는 기억, 생존의 연대를 깨우는 울림이었습니다.

음보곤이 청년 기술 자협회는 즉시 비상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우리는 기술을 배웠고 한글까지 배워왔다.

이제 우리가 받은 것을 이웃에게 건낼 때다.

그들은 회의 끝에 한 가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직접 무갈래에 가자.

처음엔 많은 어른들이 반대했습니다.

국경을 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정부의 허가도 교통도 안전도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은 단호했습니다.

한국이 우리에게 아무 조건 없이 왔던 것처럼 우리도 조건 없이가 보겠습니다.

그들은 은결기 소형 모델 1대와 수공구, 태양광 패널, 그리고 한글 설명서가 적힌 조립 설명서를 싣고 떠났습니다.

차로 15시간 국경을 통과해 캐냐 북부 사막지대에 도착한 그들은 우갈래의 마른 땅 위에서 조심스럽게 장비를 꺼냈습니다.

그곳엔 이미 많은 NGO와 국제 기구가 들어와 있었지만 음보곤이 출신 기술자들이 들고 온 장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게 뭐죠? 전기 없이 물을 만든다고요? 진짜 공기에서 물이 나옵니까? 그들은 3일 만에 설치를 완료했고 첫날 저녁 98L의 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한글이 적힌 라벨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기술은 한국에서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우갈래 지역에서이 사례는 곧바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케냐 구경 방송에서 특집으로 다루왔고 탄자니아 청년들이 국경을 넘어 희망을 설치하다는 제목으로 UN의 뉴스레터에도 실렸습니다.

그 뉴스는 아이지리아, 루완다, 말라위로 퍼져나갔고 이후 각국 청년 단체로부터 기술 전수 워크숍을 열어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우리 마을 사람들은 처음으로 외쳤습니다.

우리는 기술 수입국이 아니라 기술 중계국입니다.

이 이 모든 과정은 탄자니아 정부에도 보고되었고 국가 기술력 신청은 음보고니 마을을 국가 주도 지역기 술거점으로 지정했습니다.

작은 회관은 이젠 공식 기술 연수 센터가 되었고 한국문화원과의 협약으로 한글 교실과 기술 교실이 결합된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교실에서 아이들은 이런 표를 써붙였습니다.

하늘에서 물을 받고 땅에서 희망을 나눈다.

저는이 과정을 지켜보며 조민교 씨에게 다시 한번 편지를 썼습니다.

이젠 우리가 다른 나라를 돕고 있습니다.

한국 기술을 가르치고 한국어를 가르치고 무엇보다 신뢰와 존엄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심은 씨앗이 아프리카 전체로 퍼지고 있습니다.

조민주 씨는 짧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진심은 땅보다 깊고 기술보다 빠르게 퍼지는 법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단순한 마을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교사입니다.

지금도 매달 한 번 우리 마을에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청년들이 도착합니다.

그들은 한국의 기술을 우리 손으로 배웁니다.

그리고 돌아갈 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긴 기술을 배우러 온 줄 알았는데 사람을 배우고 갑니다.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입니다.

진짜 중요한 건 기술이 머무는 마음의 태도와 그걸 나누려는 사람의 손길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늘에서 물을 만들고 땅 위에서 관계를 만들며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습니다.

지금도 새벽 3시가 되면 저는 회관 옆결기에 조용한 작동음을 듣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 소리는 아주 작고 귀를 가까이 대야 들립니다.

하지만 그 작은 소리는 마치 새벽 하늘을 두드리는 천상의 망치처럼 제 가슴을 울립니다.

툭 툭 툭 그건 단순한 물방울이 아닙니다.

그건 삶의 소리,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 그리고 끝없이 연결되는 희망의 리듬이기 때문입니다.

그 첫 물방울이 떨어졌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국 기술자들이 마을에 도착하고 우리가 회의감을 품은 채 지켜보던 그 장비가 조용히 숨을 쉬듯 응결을 시작했고 마침내 첫 방울이 탱크 속에 떨어졌습니다.

그 물방울 하나에 저희 마을은 울었습니다.

울지 않던 어머니가 말 없던 아버지가 웃지 않던 아이들이 그 순간 울면서 웃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날이 지난 오늘 우리는 더 이상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기술을 설계하고 타국에 전파하며 지식과 언어를 나누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한때 죽은 땅으로 불리던 음보고니는 이제 하늘을 만든 마을이라 불립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언제나 사람이 있었습니다.

많은 방문자들이 물었습니다.

이 마을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기술이 핵심인가요? 저는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기술은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기술을 믿고 받아준 마음에서 시작됐습니다.

기술은 도착한 것이고 변화는 우리가 선택한 것입니다.

그 변화는 작은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의 방울, 하나의 마음, 하나의 손길.

그리고 이제는 그 하나들이 모여 다른 나라의 생명을 살리고 다른 문화와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한글 수업은 이젠 주 3회로 늘어났고 아이들은 희망 고맙습니다.

하늘 같은 단어를 스스로 써서 노트에 붙입니다.

이 노트는 KITS에 보내지고 한국의 초등학교에 함께 전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이들이 글자로 서로를 안고 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올해 초는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 개발기 술자문위원회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음보고이 마을을 모델로 삼아 기술기반 농촌 자립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산하자는 계획이었습니다.

그 회의에서 제가 가장 먼저 꺼낸 문장은 이랬습니다.

우리는 이제 도움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 도움을 나누는 대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저는 그 박수 속에서 문득 첫날 조민규 기술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이건 물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그 말의 뜻을 이제는 온몸으로 이해합니다.

이제 저는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오늘 어떤 물을 마셨나요?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만들어 냈는지, 그 물에 어떤 믿음과 손길이 담겨 있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우리 마을의 물은 비로온 것이 아닙니다.

땅을 파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사람을 믿어서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이 믿음을 내일로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탄자니아 음보고니 마을.

그 누구도 오지 않을 거라 여겼던 매마른 땅에서 하늘을 파고 물을 만들고 마침내 내일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한국에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영상 정리

영상 정리

1. 마을 사람들이 깊이 땅을 파도 물이 없었어요. 모두 절망했어요.

2. 그 후 낯선 사람들이 와서 하늘을 팔겠다고 했어요.

3. 그들이 말한 '하늘을 판다'는 의미는 공기에서 물을 만든다는 뜻이었어요.

4. 한국 기술자들이 무동력 공기응축 장비를 설치했어요.

5. 그 덕분에 매일 맑은 물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6. 이 물은 아이들 웃음과 어머니 노래를 되찾았어요.

7. 마을 사람들은 물을 통해 희망과 자존감을 배웠어요.

8. 기술자들은 사람과 신뢰를 먼저 가르쳤어요.

9. 마을은 점점 자립하며 기술과 한글을 배웠어요.

10. 아이들은 물과 함께 배움과 문화도 익혔어요.

11. 외부 방문자들이 와서 이 특별한 교육을 봤어요.

12. 한국어와 기술을 함께 배우며 마을이 성장했어요.

13. 마을 사람들은 한국을 알고 싶어했고, 감사했어요.

14. 그들은 한국이 준 기술과 신뢰를 소중히 여겼어요.

15. 이제 마을은 기술을 전파하는 교사로 변했어요.

16. 어려움이 있어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17. 그들은 서로 도우며 희망을 키웠어요.

18. 밤마다 물이 만들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삶을 느껴요.

19. 그들은 기술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20. 마을은 이제 도움받는 곳이 아니라 도움 주는 곳이 되었어요.

21. 한글과 기술, 신뢰가 함께 자라났어요.

22. 이 이야기는 전 세계에 퍼지고 있어요.

23. 기술은 도구, 마음이 진짜 힘이라는 걸 배웠어요.

24. 지금도 새벽마다 물이 만들어지는 소리를 들어요.

25. 이 이야기를 한국에 전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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