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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세 첫 개인전! 한국 추상미술 거장 유영국의 '무한'을 걷는 예술 여정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유영국 작가 이야기 (중학생 눈높이)

1. 첫 개인전 열고 '나만의 길' 선언!

  • 유영국 작가님이 48살에 첫 개인전을 열었어.
  • 이때부터 "이제 다른 모임이나 활동은 그만두고, 내 개인전으로만 내 작품을 보여주겠다!"라고 선언했지.
  • 2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열기로 했는데, 이건 정말 똑똑한 전략이었어. 왜 그랬을까?

2. 왜 갑자기 혼자만의 길을 갔을까?

  • 그전에는 '모더나트', '신상회' 같은 여러 작가 모임에 참여하고 직접 만들기도 했었거든. 일본에서 '자유미술가 협회'를 하면서 배운 것들이 이런 활동을 하게 만든 힘이었나 봐.
  • 아마 이런 활동들을 하면서 "내가 할 만큼은 다 했다. 이제는 내 그림에 더 집중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거야.
  • 게다가 1960년대 초반에 친했던 작가 친구들(한묵, 문신, 김환기)이 다 외국으로 떠났어. 혼자 남겨진 기분이 불안했을 수도 있지.
  • 하지만 유영국 작가님은 흔들리지 않았어. 마치 전략가처럼 말이야.

3. "허황된 꿈은 금물! 내가 제일 잘하는 것만 하자!"

  • 유영국 작가님 아버지는 되게 현실적인 분이었대.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마라. 그렇게 해서는 변두리 화가밖에 못 된다"라고 말씀하셨지.
  • 일본에서 이미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거야.
  • 하지만 해외로 나가봤자 한국에서처럼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도 아셨지. 그래서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만 하자!"라고 생각했어.
  • 아들에게 "사실화를 못 그리겠어요"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산에 올라가는 길은 네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려라"라고 조언했대. 이게 바로 유영국 작가님의 방식이었지.

4. '솔리튜드' (고독)의 힘

  • 유영국 작가님은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어. 이걸 '솔리튜드'라고 하는데, 그냥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이었지.
  • 친구들과 산에 가는 정도 외에는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지 않았어. "사람을 많이 알면 마음이 복잡해진다"라고 생각했거든.
  • 홍익대학교를 그만뒀을 때도 제자들이 찾아오려고 했지만, "내 작업에 방해가 된다"며 거절했어. 10년이라는 시간을 잃어버리고 작품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마치 종교처럼 그림을 생각했지.

5. 일본에서의 충격적인 경험

  • 19살 때 일본 도쿄로 갔는데, 그때 일본은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대.
  • 예술가들을 만나고 작품들을 보면서 '추상', '아방가르드' 같은 새로운 예술에 깊이 빠져들었지.
  • 이 9년간의 일본 경험이 유영국 작가님에게 엄청난 영향을 줬고, 86살까지 이어지는 그의 작품 세계의 밑거름이 되었어.

6. '문화학원'과 '자유미술가 협회'

  • 일본의 '문화학원'은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도록 도와줬대. 억지로 똑같이 그리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예술 사조를 접하게 해줬지.
  • '자유미술가 협회'는 일본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였어. 일본 전역에서 전시를 열면서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퍼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
  • 유영국 작가님의 작품이 이 협회상을 받으면서 회원 자격을 얻었고, 협회 활동의 중심 멤버로 활동했어.

7. 전쟁의 아픔과 '잃어버린 10년'

  • 2차 세계대전이 심해지면서 정부에서 전쟁 그림을 그리라고 했지만, 유영국 작가님은 거부했어.
  • 친한 예술가 친구가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전쟁 때문에 그림에 집중하기 어려운 시기였지.
  •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1943년부터 1955년까지를 스스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그림에 매진하지 못했대.
  •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43년부터 47년까지는 어업에 종사했어. 배를 직접 몰고 고기잡이를 했는데, 동네에서 가장 어획량이 많았다고 해.

8. 다시 붓을 잡다

  • 1948년쯤, 어업을 하고 있을 때 김환기 선생님의 제안으로 서울로 오게 되었어.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치다가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고향으로 피난을 갔지.
  • 피난 생활 동안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양조장을 운영하기도 했어. 돈은 많이 벌었지만, 항상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대.
  • 저녁을 먹으면서 "이렇게 살다가 그림을 못 그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고, 술잔을 보며 "갈 때든 새든 좋은 데로 생각하라"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어.

9. 작은 캔버스에 담은 큰 꿈

  • 유영국 작가님의 화실은 작았지만, 그 안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어.
  •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는 작은 그림을 그려서 팔아야겠다고 생각했지.
  • 겨울에는 추운 화실에서 직접 캔버스 틀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어. 전시를 12월, 1월에 하는 것도 휘발유값을 아끼기 위해서였지.
  • 젊은 시절 전쟁 때문에 그림 그릴 시간을 많이 뺏긴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지만, 하루에 몇 시간은 꼭 그림을 그리겠다고 정해놓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어. 술 마시고 그림을 안 그리는 건 규칙이었지.

10. '추상'의 세계, 그리고 인정받기까지

  • 유영국 작가님의 추상화는 처음에는 잘 팔리지 않았어. 하지만 59살부터 작품이 팔리기 시작했지.
  • 1979년 회고전을 기점으로 '완숙한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혔어.
  •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에게 큰 영광이었지. 그의 작품 세계를 집대성해서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였어.

11. 왜 '산'을 그렸을까?

  • "왜 산을 그리세요?"라는 질문에 유영국 작가님은 이렇게 답했어.
  • "피카소 같은 천재는 뭘 그려도 잘하지만, 나는 그런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원천이 될 수 있는 소재로 '산'을 택했다. 산 안에는 다양한 소재가 있고, 항상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산을 테마로 하면서도 계약적이고 생명력 있는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다."
  • 산은 자연과 우주의 질서를 담을 수 있는 상징적인 존재였던 거야.

12. 건강과 예술혼의 싸움

  • 77년에 심장 쇼크를 겪고 여러 번의 수술을 했지만, 병원에서 퇴원하면 바로 화실로 가서 그림을 그렸어.
  •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감을 되찾기 위해 몇 주씩 걸리기도 했지.
  • 일본 시절에는 직선과 수평선을 강조한 그림을 그렸다면, 50년대 후반부터는 원시적인 형태와 에너지를 표현하는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어.
  • 건강 상태가 작품의 양과 질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는 붓을 놓지 않았어.

13. 후반기 그림,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

  • 70년대 후반부터 유영국 작가님의 그림은 좀 더 평온해졌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관대해진 것 같아.
  •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면서, 화면도 좀 더 열리고 서정적으로 변했지. 마치 우리를 자연 속으로 초대하는 듯한 느낌을 줬어.
  • 휠체어를 타고 전시를 보러 왔을 때, 바다에서 해가 뜨고 지는 그림 앞에서 오래 서 계셨대. 어업을 하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던 걸까?
  • 그림은 작가와 보는 사람을 연결하는 매체라고 했어. 작가의 정신이 담겨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거지.

14. 존경받는 '구도자'

  • 유영국 작가님은 마치 수도자처럼, 구도자처럼 그림을 그린 것 같아.
  • 일제 강점기 때 혼자서 외로운 길을 걸어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수십 년 동안 묵묵히 그림을 그려온 그의 삶은 정말 존경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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