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간에 3일 동안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실 우리 김기성 목사님을 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은 감교 신학대학교 그리고 감대교 신학대학원을 졸업을 하시고 어 창학 교회에서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을 하셨습니다.
중간에 이와여고 교목을 여김을 하셨고 다시 창교회로 돌아오셔서 부목사와 또 청교회 단임 그리고 지금은 은퇴하셔서 이제 창박교회 원로 섬기고 계십니다.
목회 여정의 대부분을 창박 교회와 함께 하셨습니다.
어, CBSO에서 운영하는 잘 믿고 잘 사는 법, 소위 잘법이라고 하는 에, 그 강의를 주차례 하셨고 또 CBS 성서학당에서 많은 성서 강의를 해 오셨던 분이고 아울러서 어, 맑은 언어로 다수의 책들을 지필하셨고 지금도 왕성하게 그 지필 작업을 해 가고 계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제는 많은 한국 교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전하시는 목사님으로 또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고 계십니다.
오늘부터 저녁까지 저에게 귀한 말씀에 나눠 주실 텐데 우리 목사님 나오실 때 큰 박수로 우리 환영하겠습니다.
습니다.
[박수] 어,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어.
이런 뜨거운 박수를 받을 자격은 없고요.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주에 왔더니 나중에 여러분 완하고 장로님들이 질문을 주셨습니다.
딱 두 번째인데요.
첫 번째는 왔다고 얘기할 수 없는게에 해남에 내려가는 길에 어떤 분이 나주로 오면은 아 여기서 픽업을 하겠다고 그렇게 해서 어 나 여기에 내리고 곰탕 한릇 먹고 그리고 이제 해남까지 같은 적이 한번 딱 있고요.
그리고는 어 지금 두 번째입니다.
그러니까 어 나주라고 하는 것이 조선 시대의 매우 중요한 도시라는 사실을 알죠.
그지? 전라도하고 얘기할 때 전주나주라고 하는 거 정도는 제가 장식적으로 알고 있는데 그만큼 여기가 소중한 도시인데 그래서 무심히 살다 보니까 나주 하면 나주 배가 좋은 거로만 알고 곰탕 좋은 줄만 알고 그러고 지냈는데 여기 와서이 나주 교회가 1897년부터 복음의 씨가 뿌려진 교회이고 공식적인 교회의 시작이 1908년이란 말씀을 들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 제가 43년 동안 목회자로 지냈던 정파 교회도 1908년 내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어 서울에 있는 교회 가운데도 꽤 오래된 그런 교회를 제가 섬겼는데 마침 뭐 공식적이긴 합니다만이 교회가 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나이가 동감내기라고 하는 사실이 깊뻤고 또 우리 나종일 목사님하고는 오늘 그 처음으로 대면 합니다만은 어 왠지 그 형제 같은 그런 느낌 어 들기 때문에 아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왔고요.
또 여러분들이 보여 주신 어 그 따뜻한 환대의 박수가 너무나 고맙게 그렇게 여겨져서 오늘부터 내일 모래 사흘 동안 이어지는이 집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게 어떤 걸까이 생각을 나눠 보려고 합니다.
사실은이 짧은 사흘 동안에 복음의 진술를 다 얘기한다고 하는 건 불가능하고 그게 늘 이제 아쉬운 마음이죠.
그래서 어떤 부분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는데 그래도 그 부분 속에 우리의 신앙 여정의 핵심이 되는 어떤 원리들을 붙잡을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까닭이 뭘까에 대한 생각을 해 보는 거고 그다음에 내일은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람들의 생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거고 그다음에는 우리가 세상의 희망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뭔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브라함 이야기를 통해서 함께 해 보려고 합니다.
일부러 이제 제가 아브라함 얘기를 한 것은 이야기 번이 연속적으로 흘러갈 수 있길 바라기 때문에 아 그러합니다.
여러분 인생은음 전부 이제 떠남의 연속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우린 수없심하는 떠남 속에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우리가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서 떠나왔는지 기억나는 분이 계신가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아, 내가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 신비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시편 시인도 얘기했죠.
두 가지의 놀라움을 얘기하는데 내가 있다는 놀라움.
나라고 하는 존재가 없을 수도 있었는데 내가 있다고 하는 것 이게 굉장히 놀랍다 하고 얘기합니다.
가만히 보면 어떤 우연의 연속이 나를이 세상에 존재하게 했어요.
그 우연이 조금만 빛나갔어도 나라고 하는 존재인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 어 산길을 걷다가 그 눈이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하고 내가 만날 일이 없었을 텐데 그죠.
우연히 그 산길 걷다가 누구 만나기도 하고 뭐 기차에서 이렇게 눈을 돌리고 있는데 유난히 눈이 초롱초롱한 사람이 있어서 이렇게 눈인사를 하다 보니까 인연이 돼서 우리가 보로 인연 맺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가 존재하게 되는데 그 한 번의 눈길이 그 수없이 많은 우연들이 나를이 세상에 있게 만들었다라고 하는 얘기죠.
그러니깐 생명 그 자체가 신비입니다.
내가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가 천재 이루의 기회입니다.
그러니까 내가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알 수가 없는데요.
근데 여러분 어 20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자기가이 세상에 있다고 하는게 참 힘들었던 거 같아요.
왜냐면은 우리가 알다시피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또 1939년 이무렵에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이러면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 존재인지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어 끔찍한 일을 저질 수 있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대체 인간이 뭐지?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고 그러다가 일단의 철학자들이 인간을 뭐라고 얘기합니까? 우린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던져졌다라고 하는 거.
던져진다고 하는 건 뭐죠? 나의 의사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 공이 있습니다.
이 공이 던져진 거예요.
내 의사와 상관없어.
던지는 이의입니다.
그런데 그 철학자들은 던지는 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얘기를 안 해.
그리고 우리가이 세상에 던져졌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얼마나 고단해요.
세상에 우리가 올 때 아버지 어머니하고 계약을 맺고 오신 분 혹시 계십니까? 어 아버지 어머니 저는 적어도 이런 대접을 받고 싶어요.
어 어머니 아버지가 내게이 정도 해 주신다면 내가 태어날게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태어날 마음이 없어요.
이런 적이 없잖아요.
내 의사와 아무 관계 없이 나는이 세상에 왔어요.
이게 인생입니다.
그죠? 그러니까 어딘가로부터 떠나왔어요.
여기로.
근데 여러분 어때요? 인생 사는 것도 떠남의 연속입니다.
어머니의 태중에 내가 잉태되었는데 그 태중에 있는 아이들은 어머니의 양수 속에 떠 있으면서 얼마나 따뜻하고 안원합니까? 그 안에 그죠.
잉태한 어머니들은 자기 속에 자리잡은 아이를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정말 많은 애를 쓰죠.
나쁜 약도 먹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내 몸이 아프더라도 태아에게 영향을 끼칠까 봐 참아 약 먹지 못하고 고통을 거슬란히 견지기도 하고 입더나면은 음식 먹기도 너무 어려워서 구토하기도 하고 어려움 겪고 그러니깐이 아이는 안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데 그렇죠.
태동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엄마 아빠가 아이에게 말을 하잖아요.
좋은 말 해 주고 좋은 음악도 들려주려고 그러고.
그러니까 그곳이 천국인데 여러분 인생은 씁쓸한 거죠.
어떤 순간 그렇게 따뜻했던 공간에서 나가라고 하는 거예요.
엄마 배가 이렇게 수축을 해 가면서 너 나가 나가 그러면서 막 밀어내는데 강력한 배신감이 아이의 마음속에 그죠.
왜 나를 버리는 거야? 그래서 탄생하는 그 순간에 얼마나 힘들어요.
죽음의 고통을 겪으며 아이가 태어나지요.
이게 이제 태어남입니다.
근데 여러분 생각해 보면은 어머니의 그 모태가 좋다고 머물러 있으면은 생명이 살 수가 없어요.
살기 위해서는 떠나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탄생입니다.
탄생조차도 떠남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는 어렸을 때 수없이 많은 돌보을 받으면서 살게 됩니다.
정말 많은 돌보을 받게 되는데요.
그러니까 김완하라고 하는 시인이 계신데 그분의 씨 가운데 엄마라고 하는 씨가 있는데 아주 그 어 쉬운 씨입니다.
이렇게 노래를 하고 있는데요.
아이가 이렇게 자면서 말문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근데 맨 먼저 하는 말이 엄마 그죠? 아빠를 먼저 하는 사람도 있나요? 되게는 엄마.
사실 엄마라고 하는게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와 관련이 되기 때문에 엄마 그죠? 엄마 이렇게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소리가 엄마일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근데 이제이 시인은 뭐라고 얘기하냐면 이제 막 말을 시작한 아이가 엄마를 보고도 엄마라고 하고 소를 보고도 엄마라고 하고 산을 보고도 엄마라고 하고 습을 보고도 엄마라고 그러고 구름 보고도 엄마라 그러고 냄물 보고도 엄마라 그러고 왜냐면 아는 말이 그거밖에 없으니까 그죠.
발음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린 그냥 웃을 수 있어요.
근데 시인이 그다음에 뭐라고 얘기하냐면 그 얘기 끝에 그렇지 아이들이 한 생명이 자는데이 모든 것들이 엄마가 돼 주기 때문에 잘 되는 거 아니에요.
그죠?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엄마 아빠인 것처럼 보이지만은 저 구름도 키워 주고 바람도 키우고 산도 키우고 그러는 거죠.
가만히 보면 우리의 생명이라고 하는게 얼마나 신비로운 건지 모릅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를이 세상에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온 우주가 동참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렇죠?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따뜻한 돌봄을 받은 외녀 시절이 지속되지 않고 우리는 또 떠나야 합니다.
요즘은 아기들이 어릴 때부터 어린이 집으로 가잖아요.
떨어지기 싫다는 녀석.
어 저도 선자 소녀가 있습니다마는 얘네들 처음에 어린이 집 보낼 때 얼마나 안 떨어지려고 울고 그러는지 한동안 이제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마는 그죠.
자꾸만 떠나는 거예요.
인생이라는게 그렇죠.
내게 안원하고 즐거웠던 그런 시절로부터 우리는 자꾸만 떠나갑니다.
유년기로부터 떠나가고 또 청소년기 그 시절을 거쳐서 청년기를 거쳐서 작년기 점점 떠나요.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떠남이 예상돼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건 뭐예요? 다 가야 할 때가 있잖아요.
가야 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 운명입니다.
다 가야 하는 거.
그건 죽음이지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얘기할 때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조금 달리 바라보는 사람들이죠.
기독교인들은.
아 20세기에 어느 철학자들은 인간이이 세상에 던져졌다고 얘기하지만은 믿는 우리들은 뭐라고 고백하냐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 이렇게 믿는 거예요.
여러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는 사실을이 세상에 너 한번 가서 살고 와.
하나님 보내셨어요.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나를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하는 말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뭐겠습니까? 그냥 괜히 보내실리는 없잖아요.
뭔가 일이 있어서 보내셨을 거란 말이에요.
이 얘기 할 때마다 떠오르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요.
우리 선배님 한 분이 들려 주신 얘기예요.
이런 얘기입니다.
자기는 삼형제였는데 큰 형님이 굉장히 똑똑하고 그다음에 막내가 아주 똑똑하고 그 둘이 너무 똑똑하니깐 중간에 있는 자기는 약간 좀 덜 똑똑한 사람 취급을 받고 그러다 보니까 주눅ু 잔뜩 지내는데 그러니깐 엄마 아빠가 신부름을 시키려고 그래도 형이나 아우를 시키지 자기를 시키는 법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 어쩌다가 엄마 아버지가 자기 힘부름을 시키면 그렇게 좋았대.
예를 들면 여러분 우리 옛날 시골 살 때는 아궁이에 솥을 이렇게 돌쳐 가지고서는 어 그 구정물 같은 거 받았다가 돼지우리에 쏟아주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아무게야 구정물 좀 돼지우리 갖다 넣어 주고 와라 그러면 귀찮은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내게 일을 시켜 줬다 이게 너무 행복해서 그걸 들고 룰루랄라 하고 이제 가서 돼지 우리에 쏟아보려고 그러면 돼지도 자기를 무시하는지 통을들이 받아 가지고 뒤집어 쓰고 그래서 엄마 아빠한테 야단 맞고 이제 늘 이렇게 이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근데 어느 날 아버지가 얘기하시는 거예요.
아게야 어 너면 사무서 좀 갔다 와라.
이 형이나 동생이 아닌 자기에게 심부름을 시킨 거예요.
그래서 너무나 좋아 가지고 면사무소에 갔습니다.
꽤 거리가 되는데요.
그렇게 갔는데 왜 왔는지 모르겠는 거야.
이렇게 가긴 갔는데 그래서 애구 면사무소만 한 두 바퀴 이렇게 돌다가 앞에 있는 누티나무 아래에서 빙빙 돌고 앉아 있고 그러다가 에이 집에 가자 그러고 갔더니 아버지가 야단을 하는 거야.
너 어디 갔다 왔냐? 그래서 면사무서 갔다 왔는데요.
그래서 아버지가 기가 막히게 되는듯이 말씀하셨어요.
이 아이슬가 아버지가 좀 다녀오라 그러면은 가서 제가 뭘 할까요? 하고 좀 물어봐야지.
오늘 아버지 아파 가지고 면무서 직원이었는데 오늘 출근할 수가 없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하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는데 갔다 와라 그러니까네 그러고 간 거야.
요걸 요걸 뭐라고 얘기하냐면은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 그래 그게 내가 무엇 때문에 보냄을 받았는지를 모르고 가는 것이 바로 그거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란 말이죠.
근데 여러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로 살아요.
우리도 그래요.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이 너이 세상에 좀 다녀와 그래서 왔단 말이에요.
근데 여러분, 내가서 있는 삶의 자리가 때때로 그렇게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게 내 생이에요.
어쩔 수 없이.
여러분,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숲에 들어가서 나무를 보면은 나무들이 자라기 위해 숲이 자라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뭡니까? 햇빛이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물기가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양분이 있어야 되고 공간이 있어야 잘할 수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씨가 떨어진 자리가 해가 안 드는 자리일 수도 있고 또 바위 위에 씨가 떨어질 수도 있고 어디를 봐도 촉박해서 양분이 없는데도 있을 수 있어요.
큰 나무들이 자라기 때문에 자랄 공간이 없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씨가 그렇게 얘기하나요? 아이, 나 안 살래요.
내 삶의 여건이 너무 나빠요.
그러지 않잖아요.
씨앗들은 어떠합니까? 어쨌든 그 악조권 속에서도 어떻게든지 싹을 띄우고 자라기 위해서 몸통을 비틀기도 하고 그러면서 살아나잖아요.
그게 우리들도 그래요.
내게 주어져 있는 인생의 조건이 어떠하든지간에 우리는 살려고 보냄을 받았기 때문에 살아내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늘 던져야 할 질문은 뭐냐면 하나님 저를이 세상에 왜 보내셨나요? 저를 통해 하시려는 일이 무엇입니까라고 여쭤봐야 돼.
이게 믿는 사람들의 삶이란 말이죠.
오늘 우리가 아브라함 얘기를 하는 과근 아브라함의 부르심 속에 우리가 왜 부름받았는지에 대한 힌트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린 끝없이 떠나야 하는데 여러분 그다음에 우리가이 세상의 여정을 다 마친 다음에 주님이 돌아와라 하시면은 우리는 그분께로 가야 합니다.
근데 여러분, 그분 앞에 갔을 때 우리가 영광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어떨 때 영광이 될까요? 우리를 보내신 그분의 뜻을 온전히 수행하고 가면 그게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들에게도 영광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그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이 인생의 때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 그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살아가야 한다는 그런 얘기죠.
아멘.
그래야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는 거예요.
영생을 누리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당신을 누구라고 했냐면 나는 내 뜻을 행하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기 위해 왔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주님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셔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셨을 때 주님은 어떻하셨습니까? 세상에 있는 그의 사람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라고 얘기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의 때는 언제예요? 죽음의 때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입니다.
여러분 믿는 사람들에게 영광의 때도 그러합니다.
그죠? 우리는 계속적인 떠남 속에서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될까? 그 얘긴데요.
여러분 창세기 12장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너는네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서 내가 내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는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자,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땅이 어디냐면 여러분, 아브라함은 애당초에 살고 있던 데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오르라고 하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북쪽으로 이동해가 가지고 하란이라고 하는 곳에 가서 이주하여 살고 있었는데 그 무렵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근데 여러분 보면요.
여기 오르가 있고요.
하란이 있고요.
그리고 이렇게 가다 보면 터키가 나오고 이스라엘이 여기에 있고 이집트가 여기에 있어요.
지형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냐면 요렇게 생겼어요.
요렇게 딱 뭐냐? 그 땅이 굉장히 촉박한 땅인데 금방 얘기했던 갈대아, 우루, 하란, 이스라엘, 이집트요 지역은 비혹한 땅이 있어요.
좁지만은.
그래서 옛날부터 그 지역을 뭐라고 불렀냐면 비혹한 초승딸 지역 그래요.
그러니까 메소포타미아 그에 있는 두 개의 강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이 강이 흐르기 때문에 강변 주변에 비혹한 땅이 있었고 애굽에는 나일강이 있었기 때문에 요렇게 연결되는이 벨트가 지중의 해변 벨트가 비혹한 땅이에요.
그래서 거기를 초승달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비혹한 초승달 지역 그래요.
여러분 제가 지금 초승해라 그랬어요.
초승달이라 그랬어요.
초승달리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지역이 뭘 섬기고 있었냐면 달신을 섬겨요.
거기가 달신 숭배 구역이에요.
달을 신으로 여겨요.
근데 여러분 옛날부터 사람들이 단을 신으로 섬기고 있는 뭐냐면 여러분 애굽은 태양신의 나라고 해서 태양신을 주로 섬겼지만은 달신을 섬기는 문명권이 제법 많이 있었습니다.
달이 어떻습니까? 초승달로부터 점점 점점 차올라서 반달이 되고 반달이 또 보름달이 되고 그죠.
그게 점점 줄어들어 가지고 그몸음달이 되고 이런 변화의 과정이 우리의 인간의 사움과 닮아 있단 말이야.
그니까 달림이 우리의 인생의 붙임을 잘 아실 거야.
그 생각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이 달이 달의 주기가 인간의 생명의 주기하고 상당히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어요.
특히 여성들의 경우에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그니까 옛날부터 달신을 숭배하던 구역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여러분 뭘 또 알 수 있냐면 비혹한이 지역에서 이제 초승딸 지역에서 많은 상인들이 왕내가 있었는데 여기까 낮에는 엄청 뜨거워요.
그러니까 상인들이 주로 이동하는 때가 언제냐면 덜 뜨거운 밤에 이동을 하는데 그 당시에 불빛 같은 것도 별로 없으니까 어떻습니까? 달빛의 의지에 이동할 때가 많아.
그러니깐 달이 우리를 지켜 줘야 한다고 하는 생각이 그들에게 많이 있었고 달신 숭배 구역이란 말이죠.
거기에서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내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래요.
근데 여러분 여기 보면은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이라는 거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뭐냐 여러분 김준태 시인의 고향이라고 하는 시를 보면 이런 시구가 등장합니다.
고향에서는 자빠져도 흙과 풀이 안아준대요.
내가 자빠져도 흙과 풀이 안아준대요.
이게 고향이에요.
근데 여러분 고향을 떠나는 순간 어떻습니까? 객지예요.
떠나간 그 땅이 객지란 말이죠.
여러분, 요즘도 그러하긴 합니다만은 우리 60년대, 70년대 보면은 농천에 살고 있던 꽤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올라가는 경우가 제법 많았잖아요.
그리고 우리 그런 소리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서울이 얼마나 상막한지 어 눈 뜨고도 코배가는 세상이라고 한 말을들을 정도로 도시 살림살리는 너무나 고달팠단 말이죠.
그러니깐 농천 그 향촌 지역에서 그 따뜻한 고향의 돌봄을 받고 살던 사람들이 서울이라고 하는 곳에 가니깐 그 객지에서 얼마나 고달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 뭐 남자나 여자나 공장 노동자가 되어 일하기도 하고 또 많은 우리의 노이들 어 또 어머니들 그런 분들은 서울에가 가지고 식모살리를 하기도 하고 그런 분들이 제법 많았단 말이죠.
그러니까 서로운 일들 정말 많이 겪었죠.
그래서 여러분 70년대, 60년대 60년대 말해서 70년대 사이에 가장 많이 불려졌던 찬송가은가 뭐냐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요즘은 가사가 바뀌어서 주 나를 외면하시면 나오지 하리까 이렇게 하는데 옛날 가사는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뭐 어찌 하리까 이렇게 얘기해 박대라고 하는게 여러분 생선의 종류가 아닙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뭐 어찌하리까 이렇게 노래하는 카게 뭐냐면 서로움의 경험을 너무 많이 겪은 거야.
그건 뭐예요? 고향을 떠나니까 그런 거지.
고향 떠나서 그때 여러분 고향이 되어졌던게 뭐냐면 교회예요.
서울에 있는 교회.
그곳에 가면 울어도 괜찮아.
그곳에 가면은 따뜻하게 권사님들이 안주고 힘들지 그러면서 보살펴줬어요.
이게 한국 교회가 성장하게 된 여인이에요.
그 당시에.
그런데 여러분, 집을 떠나면 고생이라고 어디에 가든지 나를 돌봐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거예요.
떠나고 나면 그러니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이루려고 하시는데 처음부터 그에게 좋은 것들을 잔뜩 주신게 아니라 뭐냐면 고생길로 인도를 한 거예요.
내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서 너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러니깐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났을 때 어디 가든지 다 객지예요.
그 나를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때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내가 살아갈 수가 없어.
그러기 위해서 뭐 해야 돼? 내가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은혜를 주시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분, 며칠 전에 제가 어느 출판사 대표님하고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제 책이 나온 출판사 대표인데 그분이 이제 어 대학을 마치고 어 그분은 대학 교수가 꿈이었기 때문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했는데 그때 마침 IMF 상황이 돼서 아버지 사업도 어려워지고 그래서 명령을 받아서 돌아와라.
그래서 요학 생활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출판사를 하고 계셨거든요.
그래서 아버지 출판사 와서 일해라.
그 왔더니 아버지가 시킨게 뭐냐면은 말단 영업 사원을 시킨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어디가 가지고 영업한다는게 여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공부만 했던 사람이 영업 사원으로 일한다는게 얼마나 서러운 일이겠어요.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하루하루 지내는 게.
근데 어느 날 외국에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선교사님이 이렇게 오더니 아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내게 이런 마음을 주셔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신데 그 얘기를 들었어요.
근데 그분은 생각하는 거예요.
아니 하나님의 복이 뭐 이렇게 와 나를 죽도록 고생시키 그 생각이 들었어요.
복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그분이 엊그지게 나한테 한 고백이 뭐냐? 목사님 바로 그때가 복이었어요.
무슨 뜻이에요? 그랬더니 그 영업부의 밑바닥에서 일하다 보니깐 그렇게 영업하는 사람들 우리 직원들 말단에 있는 직원들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고 그러니깐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자리에서 모든 판단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나중에 대표가 되었을 때 그게 복인지인지 알았어요라고 얘기합니다.
가만히 보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라고 하는게 내가 원하는 완제품을 갖다 주는 복이 아닐 때가 많이 있어요.
때때로 우리를 고생시기도 해요.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고생이 내게 복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요.
여러분 그게 여러 회전입니다만은 제 아내가 등산을 하다가 추락을 해 가지고 아주 그 험한 부상을 입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하고 뭐 수술을 열어 살려 하고 그런 걸 하는데 저는 아내가 헬기로 이성 돼 가지고 산에서부터 헬기로 내려와서 앰불런스 타고 병원으로 이렇게 오는데 어느 날 제가 교회 있는데 우리 교회 관리하는 분이 그때는 무선 전화기도 없을 때니깐 그 휴대 전화 같은 거 없을 땐데 한 8m쯤 거리에서 무선으로 로 되는 전화기가 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안 들린다 그러고 이렇게 나와요.
관리하는 권사님이.
근데 직감이 왠지 좋지 않아 가지고 나한테 줘보라고 그 조라를 이렇게 받아봤더니 그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게 다다다 하는 헬기 소리가 들려와요.
근데 헬기 그 전하기 저편에서 어 당신 아내가 사고를 당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그 내가 첫 질문이 뭐냐면 죽었어요.
그랬더니 안 죽었대요.
두 번째 질문.
머리를 다쳤나요? 아니래요.
그러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 다리를 아주 심하게 심한 골절이 일어나죠.
뼈가 밖으로 나오고 그래서 이제 어느 병원으로 갈까요? 그래서 어느 병원으로 이성을 좀 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왔는데 내가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를 태운 앰불런스가 도착해서 아내가 이렇게 내리는데 아내는 약간 민망해하고 나를 보고 미안해하고 나는 아내를 보고 너무 딱하고 얼마나 아플까 손을 이렇게 잡고 아내에게 얘기했어요.
여보 뭐처럼 아픈 건데 미치지 마.
이 이 아픔을 통해 우리가 뭔가 배워야지.
그리고 이제 제가 마음속에 그런 기도를 해서 하나님 제 안에 살려 주셔서 감사하고 어이 사람이 이런 부상 때문에 불구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내가 끝까지 없고라도이 사람과 살겠습니다.
그런 다짐을 했어요.
아 정말이었어요.
요즘은 가끔이 사람이 너무 힘들어 하면 아이 그때 왜 다쳐 가지고 이렇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쨌든 아내가 이제 수술 그 바로 수술도 못 하고 왜냐면 부기도 빠지고 뭐 이런 것 때문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견뎌내면서 지냈는데 저는 교회일 해야 하고 단임 목사니까 교회일 분주하고 그러니깐 낮 동안에는 교회 와서 일 다 하고 저녁이 되면은 병원으로가 가지고 병원 침상 있잖아요.
그 낮은 거.
거기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그러면 간호사 선생님들은 왜 그렇게 자주 들어오는지 혈압다 그러고 피 뽑아간다 그러고 주사 놓는다 그러고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교인들이 목사님 간병이 드시죠.
간병이 두시죠.
근데 나는 내 아내 의처럼 아픈 거 어 내가 지키고 싶었어요.
어 그래서 그 옆에 있어 주면서 아내의 고통을 봤어요.
그때 내가 느낀게 뭐냐면은 그때 처음 알았어.
저는 그 전에는 목회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병원 신방 가면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주로 기도했어요.
근데 내가 간병을 해 보니깐 아픈 사람보다 더 힘들어.
간병하는 사람이.
그래서 이제는 그다음부터는 전혀 달라요.
기도가.
이 이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만은 간병하는 사람들의 그들을 위한 기도를 더 길게 할 수밖에 없는데 내 아내가 그런 일 겪지 않았으면 나 끝까지 몰랐을 가능성이 있어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은 사람은 겪어 봐야 아는 건데 그러니까 누군가를 우리가 안다고 얘기할 수가 없어.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의 고통을 내가 함께 알아보지 않으면 리얼히 아파하는 거 그를 안다고 할 수가 없어요.
근데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똑같은 얘기 하잖아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고통을 대신 알아 주셨잖아요.
그가 질리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겪는 서로 아픔 이런 것들을 예수님이 다 겪어내셨기 때문에 우리를 아셔.
여기에서 은혜가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러니까 제가이 말씀드린 까닭기 뭐냐면 취약해져 보니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취약해 준 사람들 보면 그 눈이 열려요.
살아 보니까 여러분 내가 내가 하는 일이 다 잘되고 내가 뭐든지 다 성공적으로 이렇게 하게 될 때 난 굉장히 재수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제가 약간 재수 없는 사람일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냐면 저는 수학을 잘했어요.
수학을 좋아했고 그러깐 수학 한 문제를 가지고 밤에 8덟 시간 세는 거 기쁘게 생각했어요.
왜냐면 우리 때는 입학 시험 준비하기 위해서 명문대 들어가려고 그러면은 뭐 어 동경대 입시 문제 이런 거 풀고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수학이 너무너무 재밌는 거야.
논리적이고.
그러니깐 8시간 동안 공부를 하다가 풀지 못했는데 세수를 하는데 갑자기 풀리기도 하고 머릿속에 요게 재밌거든.
그러니까 여러분 저는 시험 볼 때마다 수학을 다 만점 받았어요.
그러니깐 내가 우리 아들 딸 키우는데 애들이 수학을 틀리면 이해가 안 돼.
아니 수학을 어떻게 틀릴 수가 있지? 여러분 이게 얼마나 재수 없는 소리인지 모르는데 그 누가 인간적이냐면 자꾸 실패도 경험하고 넘어져 보고 그래야 넘어지는 사람들의 아픔도 알고 서음도 알고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 살다 보면 인생에서 정말 좋은 환경 속에서 실패를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촉촉 올라간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인간적이지 않아.
그렇게 따뜻하지 않아.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해야지 못해요.
그러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맨 먼저 하셨던 말씀이 떠나라라고 하는 말은 한마디로 얘기가 뭐냐면은 취약해져 봐라.
네가 약해져 봐야 돼.
이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호위에 의지해야 하고 누군가가 내게 허감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그리고 내가 뭔가를 할 수 없으니까 뭘 해야 합니까? 하나님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렇죠.
그래서 떠나라고 하셨어요.
익숙한 세계를 떠나라.
그런데 하나님이 그냥 떠나라고 하지 않고 약속을 몇 가지 해 주셨어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응.
내가 너를 아주 유명하게 해 주겠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지금 하나님이 약속해 주는 거예요.
자, 떠나 그러면은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고 너를 세상 가운데 이름을 알려 주게 할 거다라고 얘기합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서 잠깐 이걸 덮고요.
창세기가 쓰여졌던 때가 언제냐면 조금씩 다르기도 해요.
이제 왜냐면 오랜 기간 동안 쓰어졌기 때문에 그래.
그런데 지금 얘기하는 창세기 12장이 쓰어졌을 때 시대적 배경이 어느 때냐면 다윗과 솔로몬 시대입니다.
그때 비로소 기록됐어요.
이게 성경이 기록된게 그때란 말이에요.
그럼 여러분 다윗과 솔로몬 시대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떤 때요? 자기 민족의 전성기예요.
나중에 후대 사람들도 늘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돌이켜 보면서 그 시대의 영화로움을 회복하기를 원해요.
다윗 솔로몬 시대의 나라가 제일 부강했어요.
그리고 세상 앞에 널리 알려졌어요.
그때가 언제냐면 큰 민족 세상 가운데 유명한 나라예요.
그러니깐 창세기 12장에 기자가 성경 기자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그 당시에 썼던 까닭이 뭐냐면 다윗 솔로몬 시대에 우리가 큰 나라가 되고 세상에 유명한 나라가 되었지만 다윗과 솔로몬이 잘해서가 아니라 뭐 때문임을 얘기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약속을 실현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잊으면 안 된다.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시대 사람들에게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잘 살게 되었다고 우리가 유명한 민족이 되었다고 의시되고 우리 능력 대단하지 자랑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건 뭐예요? 그 옛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주셨던 그 약속이 성취된 거예요.
그러니까 해야 하는 건 뭐예요? 우리가 겸호하게 하나님의 뜻을 여줍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얘기입니다.
그렇죠? 이걸 이걸 이제 성경 기자가 강력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윗과 솔로몬 같은 아주 강력한 왕들에게 지금 하는 얘기가 뭐냐면 당신들이 잘 나 가지고 이런 좋은 나라 만든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던 말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이 자리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면 안 됩니다라고 하는 뜻이 바로 그 구절 속에 담겨 있는 거예요.
이게 이렇게 보면 여러분 성경의 메시지가 굉장히 강력하죠.
현재적인 메시지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복을 주신다고 얘기했어요.
근데 여기에 복이라고 번역되 있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바라크라고 하는 단어인데이 바락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이지만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도 복 좋아하잖아요.
복 복 싫어하세요.
복받는 거 싫어하는 분 아무도 없죠.
복 다 좋잖아요.
근데 여러분 가만히 보면 우리가 복 그러면은 뭘 복이라고 하냐면 대박 이런 걸 복이라고 생각해.
로또복건 됐어.
와 복받았네.
내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면 복받았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여러분이 복이라고 하는 글자를 보면 한일자가 있고 입구자가 있고 바전자가 있어요.
간단하게 얘기하면 옆에는 보일시가 있고 보일시라고 하는 것은 책상 위에다가 음식을 쌓아 놓은 모양을 얘기해요.
이게 하나님 앞에 바치는 거야.
보일 하나님께 보여 드리는 거야.
그리고 뭐냐면 어떤게 복이냐면 한 사람의 입을 먹을 거리를 공급할 수 있는 밭이 있으면 복이야.
그니까 지금이 자리에는 우린 다 복받았어요.
어떻게 보면 먹을 것이 있으니까 오늘.
근데 여러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향적인 전통에서 5복 그러면은 다섯 가지 복이 있죠.
어떤 복들이 있어요?이 이 얘기하면 꼭 이빨 좋은 거 그런 것까지 치아 좋은 것도 오복 가운데 하나라고 얘기하는데 그건 그냥 속설이고 오복은 간단하죠.
수부 수 자기 생명을 충분히 살아내는 거 또 부유한 거 물질적인 복받는 거 강령 건강한 거 그죠? 평안한 거 그다음에 유호덕 저 사람은 참 덕 있는 사람이야.
그런 평가를 듣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에게.
그다음에 뭡니까? 고종명.
그래.
내 생을 한껏 살아내고 편안하게 떠나는 거야.
이게이 다섯 가지 복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복 그러면은 완제품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히브리어로 복을 뜻하는 바라크라고 하는 단어는 완제품이라 하기보다는 가능성.
우리가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셔요.
많은 복을.
지금 여러분들도 많은 복을 받았어요.
그런데 복을 누리는 사람이 많지 않아.
뭐 때문에? 그것을 가능성을 만들어 갈 마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 죄 없어서 맨날 그런 것만 하지 말고 여러분 저희 그 교회에 어떤 권사님 한분 계셨는데 원래 우리 교회 권사님 아니고 다른 교파 다니다가 우리 교회로 오셨는데 이분은 그 다른 교파에서 아주 그 뜨거운 교파에서 신앙생활 하셨기 때문에 어 교회 바로 옆에 있는 우리 사태의 에 종종 오셔요.
어 예고도 없이 예고도 없이 와서 들어오셔요.
막무관내로 그거 굉장히 신뢰되는 일입니다.
근데 오시면 제 아내가 오셨으니 어떻게해요? 사과라도 깎아 가지고 앞에 이렇게 내드려요.
그럼 이분은 어 그냥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근데 뭐라고 기도를 하시냐면 하나님이 부족한 종이 주의 종에 와서 대접을 받는데 갚을 길이 없사오니 천만 배 억만 배로 갚아 주시옵소서.
그렇게 이제 기도를 하시면은 저는 이제 기도하다 말고 사과값을 계산하기 시작하 사과 한날에 요즘은 사과 하나에 뭐 한 3,000원이라 기도합니다만 그 당시에 1,000원이면은 지금 사과 하나이 1,000원인데 천만 베게 얼마냐이 계산하느라고 기도가 안 돼요.
왜 그런 과장을 해요? 근데 그분은 새벽 기도 오시면 제가 다 알아요.
그분 오신 거를 맨 앞에 앉아서 이제 새벽기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있으면은 문 열리는 소리만 들으면 누가 왔는지 대충 아는데 그분은 내 아버지 집이니까 당당하게 오십니다.
문을 확 열고 저벅저벅저벅 그 늘 들어와서 딱 앉는 순간 딱 엉덩이가이 의자에 딱 닿는 순간 나오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소리가 주시 없어서 그 엉덩이가 딱 닿는 순간 조씨 없어서 이게 이제 그분의 기도예요.
언제나 뭐 맨날 달라 그래.
근데 여러분 맨날 달라고 하는데 우린 찬송가 받은 복을 세워 보아라.
내가 받은 복을 좀 세워 봐라.
근데 여러분 우리는 이미 정말 많은 복을 받았어.
아멘.
여러분 제가 요즘 이제 사람들이 제게 이제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좋아하시는 성경 구절이 뭐예요? 성경 구절 좋아하는게 시대마다 달라집니다.
제 나이에 따라서 달라져요.
은퇴자로서의 지금의 제가 좋아하는 구절이 뭐냐고 물으면 시편 116편에 나오는 말씀인데 주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 내가 무엇으로 보다 밝고 아멘 이게 지금은 저한테 가장 크게 다가와요.
왜? 나는 내가 한 것보다 훨씬 큰 사랑을 받으면 살고 있고 훨씬 더 많은 정말 은총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주께서 내게 베푸시는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고이 마음으로 이제 살 수밖에 없는데 이게 이제 제 마음속에 가장 크게 와닿는 것인데 그러니까 복이라고 하는 거 따지고 보면 내가 원하는게 다 이루 이루어지는게 복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꾸만 우리들이 주시옵소서 이것만 하지 말고 나한테 주어져 있는 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살아야 돼요.
그게 그죠.
그걸 헤아려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는 얘기입니다.
근데 여러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 약속을 주셨어요.
어떤 약속이냐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축복하겠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겠다라고 말합니다.
이건 뭐냐면 강력한 보호의 약속입니다.
내가 널 보호할게.
나중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나는 너의 방패다라고 얘기하는데요.
여러분 방패라는게 어떤 것이에요? 하나님이 앞에서 이렇게 방패로 나를 지켜 주신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잘 안 보이잖아요.
이 방패가.
근데 하나님이 나는 너의 방패다라고 하는 말의 의미가 뭘까를 생각해 보면 내 속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을 때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고 때때로 무시당하기도 하고 모멸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러는데 하나님이 내게 뭐라고 얘기하시냐면 난 널 사랑해.
아멘.
난 널 절대로 버리지 않아.
아멘.
그죠?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난다 할지라도 불이 너를 사르지 못할 거야.
내가 물 가운데로 전한다고 할지라도 물이 너를 엄몰하지 못할 거야.
너는 내 것이다.
아멘.
이 확신이 방패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그게 날 지켜 주는 거예요.
아멘.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축복할 거야.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할 거야.
그러니까 여러분 어떤 사람이 내게 못 되게 해도 내가 굳이 그 사람의 보복 안 해.
왜?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 때문에 그래.
아멘.
그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당당하게 자기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셨단 말이죠.
이게 이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주셨던 두 번째 복이에요.
첫 번째 복 뭐라고 얘기했어요? 큰 민족을 이루고 그리고 이름 명성을 날리게 해 주겠다는게 첫 번째 복이었어요.
두 번째 복 복이 지금 얘기한 거예요.
너를 보호해 주겠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축복하고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겠다.
여러분이 약속 믿고 가시길 바랍니다.
이건 아브라함에게만 주신 약속이 아니라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주신 약속이에요.
아멘.
그러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방패가 하나 있어야 돼.
세상이 뭐라 그래든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아멘.
여러분 제가 은퇴했습니다만는 청교회에서 27년 동안 단임 목사를 했는데요.
그 전에 부목사 7년, 소송 목사 몇 년, 전도사 몇 년이 그래서 43년을 한 교회에서 동역을 해 왔습니다.
근데 제가 27년 다임 목사했는데 제 전임자인 목사님도 27년 동안을 단임 목사 중에 계셨습니다.
근데 그 목사님이 개성뿐이에요.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제 막 그 우리 그 삼팔선이 왕내가 있었는데 과거에는 이제 삼팔선이 막 다치려고 그럴 때이 목사님의 그땐 목사가 아니죠.
중학생이었는데 형님이 어머니한테 얘기하세요.
내 동생을 데리고 나무로 내려갔다가이 안정이 되면 데리고 올테니까 어머니 동생 데려가는 걸 허락해 주세요.
일주일이면 될 거예요.
그리고 내려오는 거예요.
근데 어머니 곁을 떠난다고 하는게 영 마음이 내키질 않았는데 그래서 교회 가서 자기 다니던 교회 가서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떠나야 합니까? 떠난다고 한다면 내가 괜찮을까요? 절실히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느껴졌어요.
어떤 말씀이냐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할 거다.
마태복음 28장의 말씀이 들려왔고 그래서 형을 따라 내려왔고 그리고 여러분 우리 민족의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바이지만 그게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이 되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죠.
그런데 그 목사님도 살면서 인생의 어려운 고비를 만날 때마다 떨떠른게 뭐냐면 그때 하나님이 내 면에 들려 주셨던 말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라는 말씀이 항상 자기를 붙들어 줬어.
아멘.
그게 바로 뭐냐면 방패.
아멘.
여러분 마음속에도 그런 방패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그래요.
이렇게 해서 우리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할 거다라고 얘기하고 그다음에 세 번째 복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아멘.
응.
너는 복의 매개자가 되어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이 얘기가 어떤 의미냐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이 뭐냐?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복받는 거예요.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좋아지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우리가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제일 큰 복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어떤 기도냐면 하나님 오늘 저와 만난 사람이 저와 눈을 마주한 사람이 제 눈빛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시고 제 눈빛과 만난 사람이 맑고 따뜻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자라나게 저를 사용해 주세요.
아멘.
아멘.
오늘 내가 누군가를 만나 악수를 할 때 주님 제 손을 통해 그의 손을 붙잡아 주세요.
아멘.
그렇죠? 왜냐면 하나님의 사랑이 저를 통해 흘러가기를 소망하는 거예요.
아멘.
내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조금은 더 맑아지고 깨끗해지고 선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죠.
이게 뭐냐면 복의 매개가 되는 삶인데 어 정현종 시인시 비스트음이라고 하는 거 여러분 나중에 한번 찾아보십시오만은 비스트 의미라고 하는 시인데요.
어디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나요? 그러면서 시인이 얘기합니다.
산다는게 어디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나요? 저 공기를 비슷히 기대고 있는 나무를 보세요.
나무가 공기를 기대고 있답니다.
시적 상상력이죠.
그러나 과학적 진실이기도 합니다.
근데 그다음에 뭐라고 얘기하냐면 우리는 기대하는게 많은데 기대하는게 맑기도 하고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한 것이죠.
자, 이걸 제식대로 얘기하겠습니다.
사람 인자를 머릿속에 그려 보세요.
여러분이 보시게 이렇게 돼 있겠죠? 사람이니 이렇게 돼 있어요.
기대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람이라는게 사람은 누군가를 기대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도 여러분 집에 가면은 제 아내가 있지요.
아내와 저는 비슷히 기대고 있는 관계입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내 영혼이 화창하면 내 아내도 화창해져요.
어느날 내가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굉장히 우울해하고 말도 안 하고 그러면은 기분 좋게 들어갔는데 그러면 나 또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게 뭐야? 내가 기대는게 맑으면 나 또한 맑아지고 내가 기대면 나 또한 내가 기대는게 흐리면 나 또한 흐려지는 거죠.
인생은 그래요.
그럼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에게 복이 된다고 하는 것은 뭘까요? 나를 기대고 있는 사람이 나 때문에 맑아지는 거야.
나를 기대고 있는 사람이 나 때문에 따뜻해지는 거야.
나를 기대는 사람이 나 때문에 그죠.
아주 친절한 사람이 되는데 있어요.
이 소망을 한번 품어 보자고요.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까닭은 바로 그런데 있단 말이죠.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건 그런 거예요.
우리가 흔히 이웃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웃 사랑은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우리가 뭐 어 겨울이 되면 연탄 어 그 에너지 빈곤층들에게 연탄을 배달해 주고 뭐 홀로 살고 있는 도권인의 집에가 가지고 도배도 해 드리고 뭐 이런 거 해 드리는 거 이웃 세랑 맞아요.
그런데 여러분 이웃 사랑은 간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이웃 사랑은 조금 어려운 말 죄송합니다.
우리의 존재 방식이어야 돼.
어떤 얘기냐? 금방 그 얘기예요.
우리는 기대는게 많아요.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나 때문에 맑아지기를 소망해야 돼.
아멘.
이게 정말 이웃 세랑이란 말이죠.
나하고 만나서 기분 좋아서 돌아가야 돼.
나와 만났더니 아 그래 잘 살아야지.
멋있게 살고 싶어.
응.
그 나하고 만나 가지고 아주 그 구정물 뒤집어쓴 것처럼 몸멸감을 느끼고 그러고 돌아가면 안 돼.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신 까닭은 바로 그 일을 하려는 거야.
아멘.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임을 여러분 잊지 말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아멘.
부르신가 뭔가 생각해 보니까 보내신가 뭔가 보니깐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사람들에게 흘러가도록 살라는 거예요.
아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점 사람들을 개별로하고 잘라내고 각자 도생의 세상이 되게 만들고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방패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를 바랍니다.
그죠? 아멘.
그리고 이미 내가 받은 복이 많다고 하는 사실을 늘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아멘.
아멘.
여러분, 내 마음이 우울해지지 않는 비결이 뭔지 아세요? 아, 주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서 내 은혜가 족하다라고 느낄 때 내 마음속에 기쁨이 있어요.
항상 부족한 것만 바라보지 말고 내가 노리고 살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하며 살게 될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갈 줄로 믿고 오늘 나주 교회에 있는 모든 교들이이 세상에 왜와 왜 보냄을 받았는지를 깨닫고 보내신 분의 뜻을 온전히 수행함으로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자비로우신 하나님.
오늘 우리 나주교회 교우들과 함께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은혜를 나누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이 그렇게 부강한 나라가 된 것은 특정한 정치 지도자들이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바를 실현해 주셨고 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백성들의 신실함 때문임을 믿습니다.
아멘.
때로 우리는 하는 일이 다 잘되어 갈 때 그때 우리의 능력으로 이렇게 얻어냈다고 생각할 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살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반석이요 우리의 피난처요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셔서 언제나 시련 가운데 지난다 할지라도 넉넉히 시련을 이겨 고통을 찬미로 바꾸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