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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한마디에 집나간 시아버지 비밀과 감동 해설

원본 제목

"제발 쫌 알아서 하시면 안되요?" 며느리 한마디에 집나간 시아버지의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자 모두 오열하고 마는데..

금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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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따뜻하고 감동적인 금빛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저희 채널은 삶 속의 다양한 순간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며, 감동, 반전, 그리고 잊지 못할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직접 겪은 특별한 경험, 잊을 수 없는 순간, 혹은 가슴 깊이 남은 누군가의 사연이 있다면 언제든지 저희에게 들려주세요. 📌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 및 재구성 되었으며, 일부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해 각색 되었음을 안내 드립니다. ⚠️ 본 영상은 창작자의 정성과 노력이 담긴 소중한 콘텐츠입니다. 무단 복사, 배포, 재편집 등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유튜브 저작권 신고 및 법적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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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알아서 하시면 안 돼요.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 사건 이후 시아버지는 말없이 집을 나갔습니다.

그냥 상처받아서 떠난 줄 알았죠.

하지만 며칠 뒤 낡은 가방 안에서 발견된 편지 한 장.

그 안에 적힌 마지막 문장을 보는 순간 가족들은 오열하며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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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운과 함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사연 시작합니다.

저는 올해 일은 내십니다.

젊은 날부터 줄곧 몫수로 일했고 못하나 삐뚤게 박힌 집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질만큼 손끝에 깃든 정성을 믿고 살았죠.

집이라는 건 말입니다.

단순히 벽돌을 쌓는게 아니고 사람 마음이 기대어 살아갈 수 있도록 온기를 채워주는 그릇이라고 생각했어요.

젊은 시절엔 전국 방방곡을 돌아다니며 집을 지었습니다.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는 한겨울 눈보라를 뚫고 석다를 꼬박 머물며 할머니 혼자 사실 집을 짓기도 했고 부산 해안가에서는 태풍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기둥을 세우기 위해 밤낮 없을 땀을 흘렸죠.

그때마다 집주인들이 절 보며 선생님 덕분에 우리 가족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겠어요라고 말할 때면 제 가슴 한켠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 제가 말려낸 그 온기를 내 손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만든 온기조차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습니다.

평생 집을 짓던 사람이 정작 자신이 머물 자리는 제대로 만들지 못한 채 늙어버린 셈이니까요.

지금은 아들 집에 얹혀 지내고 있습니다.

외동인 우리 아들이 맛벌이 부부랑 사는게 빠듯하다는 거 모르지 않아요.

월급쟁이 둘이서 아이둘 키우고 집 대출금 갚으며 살기가 얼마나 빠듯한지는 제가 봐도 뻔히 보이는 일이었죠.

그래도 괜히 민폐될까 싶어 조심조심 눈치만 보며 살고 있어요.

제 방은 딸린 창고를 개조한 곳인데 겨울엔 바닥이 찬 기운을 그대로 올리고 여름엔 창문을 열어도 바람 한 점이 없어요.

습기도 많이 차서 가끔 벽지가 들뜨기도 하고 밤에 잠들기 전이면 어디선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

몫으로 평생 살아온 제 눈에는 그 모든게 다 보였지만 그렇다고 이것저것 고치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괜히 참겨난다는 소리 들을까 봐서요.

그래도 괜찮다 싶었어요.

아들, 며느리, 손주들 다 같이 사는 것만으로도 외롭지 않을 줄 알았으니까요.

저녁 되면 거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

주말 아침 부엌해서 나는 계란 후라이 지글거리는 소리.

그런 일상의 소음들이 제겐 오히려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 나도이 집에 이런이구나 싶어서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어요.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며느리가 반찬을 해두었다며 아버님 식사 챙기셨어요?라고 라고 묻기에 제가 그날따라 고맙다며 주방으로 가봤는데 식탁 한 구석에 도시락 반찬통이 그대로 덜려 있더군요.

가족들이 먹는 밥상관은 따로 떨어진 곳에 마치 강아지 밥그릇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가슴 한 구석이 뜨끔했지만 그래도 챙겨주는 마음에 감사하다고 생각하려 했어요.

막내 손주가 식탁 맞은 편에서 절 보더니 숟가락을 놓고 엄마한테 조용히 말했죠.

엄마 나 할아버지랑 같이 먹기 싫어 며느리는 당황한 표정으로 손주를 데려갔고 저는 말없이 돌아서 방으로 왔습니다.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한 사람은 없었는데도 그날 밥이 목구멍에 걸려 내려가질 않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아, 내가이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는구나 하는 걸요.

손주에게야 뭘 바라겠습니까? 아이들은 솔직한 법이니까요.

하지만 그 솔직함이 때로는 어른의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일은 그게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어요.

며느리는 항상 예의를 지키려 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눈을 잘 안 마주치더라고요.

제가 거실에 있으면 볼리를 빨리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고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다 제가 나타나면 아버님 편하게 쉬세요 하며 자리를 피하곤 했습니다.

처음엔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엔 그게 배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한번은 손주 운동의 날 같이 가겠다고 했더니 아버님은 힘드실 텐데요.

다음에 천천히요 하고 말끝을 흐렸죠.

그때 재표정을 본 아들이 아버지도 같이 가시죠 했지만 며느리는 차의 자리도 부족하고 아버님 걸으시기도 힘드실 텐데요 하며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무릎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어요.

정말로 짐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말 안 해도 알아요.

불편하다는 거.

쉴 곳이 필요하다는 거.

제가 있으니 그 집엔 여유가 없다는 거요.

아들 부부가 나름대로 배려해 주려고 하는 것도 알고 그들도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다는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마음이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날도 똑같은 하루였습니다.

아들은 회사, 며느리는 병원, 손주는 학교, 집엔 저 혼자 남았죠.

점심 때쯤 주방에서 라면 하나 끓렸는데 간이 안 맞았는지 짠맛이 도드러졌어요.

예전엔 이런 라면도 맛있게 먹었는데 요즘은 뭘 먹어도 싱겁거나 짜거나 둘 중 하나더라고요.

미각도 많이 둔해진 것 같고 손에 힘도 예전 같지 않아서 젓가락질하다 떨어뜨리기도 하고요.

허겁지겁 먹던 라면을 내려놓고 잠시 젓가락을 멈췄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이 집에 살고 있지만이 집엔 내 자리가 없구나.

그 생각이 스치자 제 마음 한 구석이 툭 꺾여 버렸습니다.

마치 오래된 나무가지가 바람에 꺾이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 순간이 참 묘했어요.

사람 마음이란게 문턱 하나를 넘지 못하고 그 문 앞에서만 맴돌다 나오는 느낌이랄까요?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고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그런 답답한 말입니다.

옛날엔 그 문턱을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한창 일하던 시절엔 전국 방방곡을 다니며 여기엔 아이셋이 살 거예요.

여기 창문은 햇빛이 잘 들게 해 주세요.

그런 말들을 들으며 집을 지었죠.

한 번은 강릉 쪽에 있는 현장에서 겨울 눈보라를 뚫고 세개월 넘게 일한 적이 있어요.

그 집에 마지막 날 아직 점먹이었던 아이를 안고 나온 젊은 부부가 절 향해 허리 숙이며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우리 인생 시작하게 해 주셔서요.

그러던 말 아직도 생생해요.

그런 따뜻한 고마움이란 말 요즘은 아무도 하지 않더군요.

심지어 내 가족도요.

물론 며느리도 나름대로는 챙겨 주려고 하는 거 알아요.

빨래도 같이 해 주고 밥도 빼먹지 않게 챙겨 주고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마음에서 울어나온 배려라기보다는 해야 하니까 하는 그런 느낌 말입니다.

손주의 말, 며느리의 무심한 표정, 아들의 모른 척 그 모든게 누적되다 보니 이젠 제 존재 자체가이 집에 짐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저녁도 마찬가지였어요.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웃음 소리, 밥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아이들 깔깔되는 소리 모두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에서 맴돌고 있었죠.

마치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보이지만 만질 수 없고 들리지만 함께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요.

저는 제 방에서 식탁이 아니라 작은 찬장 위에 혼자 밥상을 펴고 앉았습니다.

TV도 안 틀고 휴대폰도 꺼둔 채로요.

그 조용한 방 안에서 제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이 떨렸습니다.

햇살도 바람도 스며들지 않는 그 공간이 그날따라 이상하게 쓸쓸하게 느껴졌어요.

나는 여기서 늙어가고 있는게 아니라 그냥 남아 있는 거구나.

그 생각이 스치자 제 마음 한 구석이 툭 꺾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날 결정적인 말 한마디가 저를 진짜 그 집 밖으로 내물게 되죠.

그날 아침은 유난히 바빴습니다.

아침부터 손주들은 유치원 갈 준비를 하느라 뛰어다녔고 며느리는 머리 질끈 묶고 부엌과 방을 오가며 등하원 가방을 챙기고 있더군요.

평소보다 더 분주해 보였어요.

큰 손주가 감기 기운이 있다며 약도 챙겨야 하고 작은 손주는 오늘 소풍이라며 도시락도 준비해야 한다고 아침부터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한번 툭툭 털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뭔가 도와드리고 싶었거든요.

평생 몫수로 살면서 손으로 하는 일엔 자신이 있었고 설령 요리는 서툴러도 간단한 것쯤은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밥 차릴까? 반찬되어 줄까? 그 한마디는 정말 도와주고 싶어서 그저 뭐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꺼낸 말이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뭔가 기여하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며느리는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젖은 수건을 식탁에 툭 내려놓더니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하더군요.

제발 좀 저한테 물어보지 말고 알아서 좀 하시면 안 돼요.

그 말투, 그 속에 담긴 냉기, 그리고 제게 주지 않은 눈빛 세 가지가 한꺼번에 제 가슴을 훅 꿰뚫었습니다.

마치 겨울바람이 갑자기 방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어요.

그 순간 저는 말을 잃었습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사과를 해야 할지 아니면 설명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조용히 물러서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있는게 민망에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에서 물러나왔죠.

그때 마침 큰 손주가 신발을 신다가 짜증섞인 말투로 외쳤습니다.

엄마, 나 오늘 늦었어.

아침에 할아버지 때문에 내 양말 못 찾았단 말이야.

그 말은 의도한게 아니었겠죠.

어린 마음에 급해서 튀어나온 말이었을 겁니다.

아이가 무슨 잘못이겠어요? 하지만 저는 이상하게 그 말이 더 크게 더 날카롭게 들렸습니다.

아, 내가 진짜 짐이구나.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리에서부터 쭉 내려앉는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쑥 빠져나간 것처럼 귀가 멍먹해졌고 눈앞경이 멀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물속에 들어간 것처럼 모든게 흐릿하고 둔해졌어요.

사실 그전에도 며느리의 불편함은 느끼고 있었어요.

제가 부엌에 들어가면 잠시 멈췄다가 다른 일을 하러 가거나 제가 TV를 보고 있으면 리모컨을 들고 아버님 다른 프로그램 보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하며 자리를 뜨거나 하는 일들이 반복되었거든요.

하지만 그날 아침에 그 말은 달랐어요.

그동안 쌓였던 모든 불편함이 한 번에 터져 나온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날 하루 종일 방에만 있었습니다.

TV도 안 켜고 밖에 나가서 햇빛도 안 째고 그저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 무릎 위에 얹은 손을 멍하이 내려다봤습니다.

손등에 핏줄이 붉어져 나와 있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어져 있는 걸 보니 정말 많이 늙었구나 싶었어요.

이 이 손으로 평생 집을 짓고 가족을 먹여 살렸는데 이제는 그 손이 누군가에겐 방해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되고 또 되내며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갈등했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여긴 더 이상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구나.

그 깨달음이 밀려오자 가슴 한 구석이 텅비는 것 같았어요.

점심대가 되어도 나오라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며느리가 아버님 밥 드세요 하고 한 번은 불렀을 텐데 그날은 아무 소리가 없더라고요.

아마 아침일로 서로 어색해진 것 같았어요.

저도 나가기가 뭔가 민망해서 방에서 과자 몇 개로 떼웠습니다.

해질 해질 무렵이 되자 결심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굳어졌습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이미 마음이 다 식어 버렸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마음이 식은게 아니라 정리가 된 거였어요.

더 이상이 집에서 눈치 보며 살고 싶지 않다는 그리고이 집 사람들도 내가 없으면 더 편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서랍에서 낡은 가방 하나를 꺼냈습니다.

예전에 출장 다닐 때 쓰던 옆구리에 스크래치가 남은 낡은 여행 가방이었죠.

수건 두 장, 속옷 넉장, 속적삼화, 면바지 한 벌, 그리고 안경 닫기 라디오.

그걸 넣고도 가방은 반쯤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더 넣을게 없더군요.

살면서 뭘 그렇게 가지고 살았다고 혼잣 말을 하며 그 빈 공간이 마치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정작 남은 건이 가방 안에 들어갈 만한 것들 뿐이구나 싶어서 씁쓸했어요.

짐을 다 싸고 나니 딱히 어디로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냥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가고 싶었던 겁니다.

혹시나 싶어 손주 책상 서랍에 작은 봉투 하나를 넣었습니다.

예전에 제 월금 모아두었던 적금 통장을 할아버지 이름으로 만들어 놨던 걸 지금은 쓸데도 없으니까 그 아이한테 주기로 마음 먹었죠.

봉투 겉면에 민서야 할아버지가 주는 용돈이야.

나중에 커서 좋은 일에 쓰렴이라고 적었습니다.

지금은 몰라도 나중엔 알게 되겠지.

그런 마음이었어요.

밤이 되자 아들 부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었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 드라마 어제 봤어? 하며 이야기하는데 저는 방 안에서 가방을 다 싸 놓고 앉아 그 소리를 들으며 차분하게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죠.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 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가가 젖었습니다.

이제 저 웃음 소리에서 내가 빠지는 거구나 그 생각을 하니 서글을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했어요.

더 이상 눈치 볼 일도 없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죠.

다음날 새벽 동이 특이 전는 조용히 문을 나섰습니다.

현관 앞에 놓인 슬리퍼를 살금살금 들고 나와 신발장 밑에 슬쩍 넣어두고 신발을 신고 걸어 나왔죠.

그리고 그 집을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제가 그 집을 떠나 시골 어느 마을로 내려간 후에 이야기입니다.

그곳에서 뜻밖에 사람들을 만나고 뜻밖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되죠.

나는 그 집을 떠났고 그 집은 뒤늦게서야 내가 사라진 걸 알아챘습니다.

그날 새벽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집을 나섰습니다.

대문을 닫을 때조차 손잡이를 꼭 붙들고 철컥 소리 하나 세어 나가지 않게 조심했죠.

마치 도둑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훔쳐 나가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 자신을 그 집에서 빼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 순간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담담하게 아주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던 일처럼 조용히 발을 옮겼습니다.

새벽 공기는 차갑고 맑았어요.

길거리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고 가로등만이 희미하게 길을 비춰 주고 있었습니다.

그 고유함 속에서 저는 처음으로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이상 누구 눈치 볼 일도 없고 누구에게 피해를 줄 걱정도 없으니까요.

내가 떠난 후 그 집안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그날 아침 아마 아들은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며 아버지 오늘 날씨 춥다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한마디 했을 겁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죠.

처음엔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직 주무시거나 아니면 못 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했겠죠.

그때쯤 부엌해서는 며느리가 아이 도시락 싸느라 분주했을 테고 큰손주는 그 와중에 신발을 한짝 못 찾아 짜증을 냈을 겁니다.

엄마 또 할아버지가 치워났나 봐.

며느리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그냥 네가 잘 못 찾은 거야 하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또 아버님이 뭘 건드렸나 보다 하고 생각했겠죠.

그게 어제 아침일로 서로 어색해진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날은 이상하게도 내 방문이 굳게 다혀 있었을 겁니다.

며느리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아버님 드실 거 있으세요? 하고 건성으로 말했지만 아무 대답도 없자 찝찝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제 일로 기분이 상하셨나 싶어서 말이에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남편 출근시키느라 바쁜 아침이었으니까 깊게 생각할 여인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다 큰 손주가 부엌적으로 뛰어오며 외쳤겠죠.

엄마, 할아버지 방에 없어요.

그제야 며느리는 수절을 내려놓고 내 방 문을 열어 봤을 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방의 정적에 잠시 숨이 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안은 이상할만큼 말끔했습니다.

이불은 깨끗하게 개어져 있었고 머리맡에 두던 작은 라디오는 사라졌으며 서랍 속에 놓여 있던 가방도 없었습니다.

단 하나 남아 있던 것은 책상 위에 놓인 내 안경 닫기 옷걸리에 걸려 있던 누게 발렌 내 외투 한 벌뿐들마저도 마치 작별 인사처럼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을 거예요.

며느리는 조용히 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오며 중얼거렸을 겁니다.

그냥 어디 바람 세러 나가신 거겠죠? 또 오시겠지 뭐.

그 말투는 별일 아니라는 듯했지만 그 속엔 묘한 불편함과 당혹감이 섞여 있었겠죠.

그녀도 어려풋이 느꼈을 겁니다.

이번엔 정말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점심대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며느리는 처음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했을 겁니다.

평소 아버지는 멀리 나가시더라도 식사 시간은 꼭 집에 계셨거든요.

혹시나 해서 동네 슈퍼나 공원 쪽을 둘러봤지만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저녁 시간이 되어 아들이 퇴근하자 며느리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겁니다.

여보, 아버님이 아침부터 안 계세요? 아들은 처음엔 별거 아니라는 듯 어디 동네들이랑 계시겠지 했지만 방에 가방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표정이 굳어졌을 거예요.

아들은 회사에 전화도 하지 못한 채 핸드폰을 붙들고 연락처를 하나씩 눌러 봤을 겁니다.

고향 친구 작은 아버지 옛 동료 그러다 문득 깨달았겠죠.

내가 평소 연락하던 사람은 없었다는 걸.

은퇴한 후로는 특별히 만나는 사람도 없었고 동네 어르신들과 인사 나누는 정도가 전부였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휴대폰 번호를 눌렀을 때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라는 안내음이 그의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평소 절대 핸드폰을 끄지 않던 제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건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신호였거든요.

그날 밤 식탁은 조용했을 겁니다.

아들은 묵묵히 밥을 뜨다가 몇 번이나 젓가락을 놓았을 테고 며느리는 그런 남편을 힐긋 쳐다보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겠죠.

어제 아침일로 서로 마음이 불편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뭔가 자신들 때문인 것 같아서 말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리고 그 고유한 식탁에서 막내 손주가 조용히 말했을 겁니다.

할아버지 언제 와? 그 한마디에 아들은 젓가락을 멈추었고 며느리는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을 살짝 내려놓았겠죠.

아무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복잡한 심정을 모르니까 그냥 단순하게 궁금해했을 거예요.

할아버지가 왜 안 와? 어디 갔어? 그런 질문들이 어른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날 밤 아들은 내 방을 다시 한번 둘러봤을 겁니다.

이불을 걷고 서랍을 열고 옷장을 살피다가 구두장 아래에 접혀 있던 작은 영수증을 하나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에는 부동산 계약 완료라는 글자와 어렴풋한 서명이 있었겠죠.

그제서야 아들은 내가 단순히 잠깐 나간 것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을 겁니다.

설마 정말로 떠난 거야? 그 말이 입에서 나올 땐 이미 마음속에서는 어떤 후회의 그림자가 천천히 번지고 있었을 거예요.

며느리는 그날 밤 잠들기 전에 혼자 생각이 많았을 겁니다.

어제 아침에 한 말이 너무 심했나? 평소에 아버님을 너무 소홀이 대한 건 아닌가? 그런 자책감이 밀려왔을 거예요.

하지만 동시에 그렇다고 집을 나가실 정도였나 하는 서운함도 있었겠죠.

나는 그 모든 모습을 직접 본 건 아닙니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집안에 공기가 변했을 거라는 것.

내 자리가 비어 있으니 이제서야 그 빈 자리를 느끼고 있을 거라는 것.

그게 조금은 씁쓸하면서도 조금은 후련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들의 불안은 점점 커져 갈 겁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소식이 없고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그제야 정말로 심각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겠죠.

그리고 결국 어느 날 아들은 내가 사라진 뒤 남긴 작은 흔적 하나를 통해 놀라운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말로는 못했지만 내내 고맙고 미안했다.

아들이 내 가방을 발견한 건 내가 떠난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답니다.

현관옆 작은 창고에 무심히 밀어넣어진 낡은 여행 가방.

그 가방을 다시 열게 된 건 아마도 마음 한 구석이 자꾸만 그 시절로 끌려갔기 때문이었겠지요.

아들은 나중에 말하길 그 가방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고 했어요.

왠지 그 안에 중요한 뭔가가 들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지퍼가 뻑뻑하게 올라가는 가방 안에서 아들은 겹겹히 접힌 낡은 수건과 면바지 내 손때 묻은 라디오 그리고 누렇게 바른 편지 한장을 발견했습니다.

흰종이의 푸른 볼펜으로 눌러쓴 글씨 아들은 그 종이를 떼어내듯 조심스럽게 펼쳤답니다.

손끝이 떨린다고 했어요.

아버지의 손글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준노야, 네가이 편지를 읽을 땐 나는 아마 멀리가 있는 중이겠지.

그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아들은 손끝이 절여왔답니다.

눈앞에서 종이를 흔들고 있는 손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었다고 했죠.

편지는 아주 천천히 그의 마음 깊은 곳으로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말 주변이 없어서 늘 무뚝뚝하게 있었던 걸 너는 어떻게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산다는게 그렇게 어렵고 조심스러운 줄 너 키우면서 처음 알았다.

아들은 그 문장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고 해요.

아버지는 정말 말수가 적으셨거든요.

칭찬도 꾸중도 많이 하지 않으셨고 그냥 묵묵히 일하시고 묵묵히 가족을 돌보셨죠.

어린 마음에는 왜 아버지가 그렇게 무뚝뚝하신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했어요.

말로 고맙다는 것도 미안하다는 것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서 늘 가슴속에 묻고만 살았다.

너를 키우면서 매일매일이 걱정이었다.

잘못 키우면 어떡하나 다른 아버지들처럼 다정하게 해 주지 못해서 상처받으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들로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아들은 한 글자 한 글자를 배엄물 듯 읽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문장에선 도저히 더는 읽을 수 없어 숨을 깊게 들셨었죠.

며느리한텐 고맙다고 전해다오.

내 성미 까다로운 아버지랑 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아침 저녁 밥 한끼 안 빼놓고 챙겨주고 손주들도 잘 키워 줘서 말은 안 했지만 늘 마음속으론 고마웠다.

가끔 짜증을내는 것도 이해한다.

나도 젊었을 때는 그랬으니까.

아들은 그 문장에서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눈물이 나려다 참는 것도 아니고 화를 내고 싶다가도 고개가 숙여지는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뚝심 있고 자존심 강한 분이었는데도 그 편지 속 문장 하나하나엔 기여이 꺾인 마음의 온기가 담겨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다음 문장에서 아들은 조용히 울었습니다.

요즘은 눈도 침침하고 젓가락 잡는 손에도 힘이 안 들어간다.

손주 젓가락 챙겨 주는 것도 헷갈리고 설거지하다 그릇도 깨뜨렸다.

살면서 그렇게 무기력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내가 도움이 되기는 커녕 방해만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 문장을 읽으면서 아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말없이 작은 냄비 하나 들고 부엌 한켠에서 국을 데오던 모습.

가끔씩 젓가락을 놓치고 혼자 말없이 쩔쩔 매던 순간들.

그땐 그냥 아버지도 나이 드셨구나라고만 생각했지만 그속엔 그렇게 큰 허무와 자책이 들어 있었던 걸 몰랐던 겁니다.

특히 며느리가 힘들어 하는 걸 보면서도 뭘 어떻게 도와들여야 할지 몰라서 더 답답했다.

괜히 나서면 더 방해될까 봐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불편하게 만든 것 같다.

그때 아들의 곁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며느리가 문득 눈을 들어 편지를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눈빛이 흔들렸답니다.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이 앉아 있었고 딱히 미안하다는 표정도 아니었지만 그 눈빛 하나에서 조금은 아주 조금은 달라진 공기가 흘렀다고 했죠.

그때 손주가 다가와 물었습니다.

아빠 뭐 읽어? 왜 울어? 아들은 그 말을 듣고 얼른 편지를 가슴에 껴 듯 접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품에 안고 말했답니다.

할아버지가 우리한테 써 준 편지야.

정말 멋진 편지야.

편지에는 더 많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민서랑 지우가 잘할 때마다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할아버지 없이 잘한 내가 과연 좋은 할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늘 걱정했다.

아이들이 나를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재미 없어 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래도 가끔 민서가 와서 할아버지라고 부를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지유가 내 무릎에 앉아서 책을 읽어 달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들이 내 말련에 가장 큰 행복이었다.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그 집의 공기를 한동안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이젠 내가 없어도 너희는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내 자리가 점점 사라져 가는 걸 느꼈지만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맙다.

내가 말로 다 못했지만 내내 고맙고 미안했다.

너희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날 저녁 그 집은 조용했습니다.

아들은 편지를 품에 넣고 아버지 방 침대에 앉았습니다.

낡은 베개를 가만히 쓸어내리고 이불을 한번 펴봤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입에서 혼잣 말처럼 이런 말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왜 그땐 말씀 안 하셨어요? 그 목소리는 그의 속을 파고들던 후회의 파문이었고 그동안 미쳐 알아채지 못한 아버지의 무원의 사랑에 대한 뒤늦은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 가방은 다시 참고에 넣지 않았답니다.

아들은 그 가방을 거실한 편에 고이 모셔두고 그 위에 아버지의 외투를 살며이 덮었습니다.

그건 마치 떠나간 이의 빈자리를 조심스럽게 안고 사는 그들만의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편지를 읽은 후 며칠은 아무 일도 없던 듯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들은 출근을 했고 며느리는 아이들 챙기며 일상을 이어갔죠.

하지만 그들 마음속엔 말 못할 허전함과 묘한 찝찝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남긴 편지는 따뜻했지만 어딘가 작별을 예고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아들은 편지를 읽고 난 후 계속 마음이 무거웠다고 해요.

출근길에도 회사에서 일할 때도 자꾸만 아버지 생각이 났다고 하더군요.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면서도 우리 아버지가 하는 말이 목끝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삼키기를 반복했답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게 정확히 뭔지 알 수 없어서 더 답답했다고 해요.

며느리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아이들 유치원에 데려다 주면서도 장 보러 마트에 가면서도 계속 아버지 생각이 났을 거예요.

어제까지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는게 이렇게 허전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고 나중에 말하더군요.

그날 오후 큰 손주 준노가 내 방을 기웃거리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봉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아빠 이거 뭐야? 노란 종이봉투 안에는 뭔가 빳빳한 서류들이 들어 있었고 아들은 무심코 꺼내 펼쳤다가 그만 손에서 서류를 놓칠 뻔했죠.

금빛 유양 센터 입소 상담 확인서 진료 기록지 넥과 고혈안함 및 막막변성 소견 개인 시설 입소동이서 보호자 미동반 바로 그가 떠나기 이틀 전 날짜였습니다.

이게 뭐지? 아들은 혼잣 말을 했습니다.

그 서류엔 분명히 아버지의 이름과 주민 번호가 적혀 있었고 하단엔 난익은 서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 서명을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해요.

틀림없는 아버지 그씨였거든요.

그냥 마음이 상해서 떠나신 줄 알았는데 요양원이라니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졌습니다.

가슴이 답답해져 숨을 고르며 노트북을 열고 금빛 유양 센터 주소를 검색했습니다.

서울 외각 조용한 산자락에 위치한 그 시설의 사진이 화면에 떠오르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마우스를 준 손에 힘이 들어갔죠.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꽤 괜찮은 시설처럼 보였어요.

1인실도 있고 의료진도 상주하고 무엇보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편안한 노를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들은 그 문구를 보면서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고 해요.

아버지가 정말로 이런 곳을 원하셨던 걸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걸까? 다급한 마음에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호음 몇 번 뒤 상냥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네.

금빛 요양 센터입니다.

예.

여기에 이만섭 어르신 이름으로 상담 내역이 있는데요.

아, 네.

며칠 전 혼자 직접 오셔서 시설 상태 보시고는 생각보다 좋다며 미소 지으셨는데요.

혹시 입소 날짜 정하러 오신 건가요? 그 말을들은 순간 아들의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혼자 다녀가셨다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시설까지 찾아가 상담을 받고 계약까지 한 사람이 그 아버지란 말입니까? 혹시 언제쯤 오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저희 기록으로는 지난주 목요일 오후 2시쯤이었어요.

버스 타고 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시설 구석구석 다 둘러보시고는 여기서 조용히 지내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들은 그 날짜를 계산해 봤어요.

지난주 목요일이면 며느리와 말다툼이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이미 그 전부터 이런 계획을 세우고 계셨던 거예요.

단순히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떠난게 아니라 미리미리 준비하고 계셨던 거였습니다.

그날 밤 아들은 식탁 앞에서 손에 턱을 개고 가만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무슨 일 있어요? 며느리의 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아버지가 이미 요양원까지 알아보고 계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게 자신들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준우가 그 옆에 앉아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진짜 어디 갔어? 그 물음에 아들은 눈을 감고 작게 속삭이듯 대답했습니다.

주노야 할아버지는 아마 네가 모르는 곳에서 혼자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아.

그다음날 그는 마을 슈퍼옆 의자에 앉아 있던 동네 어르신에게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혹시 아버지 못 보셨어요? 그 어르신은 커피를 마시던 손을 멈추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며칠 전 음내 가신다던데 뭐 요양원 시설 보러 간다나 어쨌다나 그 말에 아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습니다.

요양원요? 응.

혼자 계시면 집에서 뭐라도 잘못될까 싶어서 그냥 조용히 들어가시겠다고 하더라고.

자식들한테는 말 안 하셨다면서 괜히 걱정 끼치기 싫다고 하시던데 그때 아들의 귀가에 며느리가 했던 그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제발 좀 저한테 물어보지 말고 알아서 좀 하시면 안 돼요.

아버지는 그 말을 정말 알아서 받아들이셨던 겁니다.

그저 상처만 받아서 떠난 줄 알았는데 그건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그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조용히 자리를 비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급하게 모든 걸 정리하려고 하셨을까요? 아들은 허탈하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살아온 아버지가 자신조차 모르게 요양원까지 알아보고 모든 걸 준비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그 말 없는 얼굴 뒤에 그렇게 많은 걸 감추고 계셨단 말인가? 그제야 아들은 편지속 마지막 문장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이젠 내가 없어도 되겠지 잘 살 거라.

그 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었습니다.

자리를 비워 주는 결단.

방해되지 않으려는 결단.

하지만 그 결단 뒤에는 또 다른 이유가 숨어 있을 것 같았어요.

단순히 눈치만으로 요양원까지 알아볼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그날 밤 아들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방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너무 몰랐네요.

말 좀 해 주시지.

대답 없는 어둠 속에서 그는 조용히 울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알았습니다.

이 일은 단순한 가도 일시적인 상처도 아닌가 준비한 삶의 마지막 배려였다는 걸.

하지만 정말 마지막 배려였을까요? 그 뒤에는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떠난지 보름쯤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집안은 늘 정돈돼 있었지만 그 이상하게도 살아 있는 느낌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비워진듯한 공간, 허전한 냄새, 말수가 줄어든 가족들.

아침이면 여전히네 사람이 식탁에 앉았지만 예전과는 확실히 달랐어요.

아버지가 계실 때는 다섯 명이 앉아도 북적거렸는데 이제는네 명이 앉아도 왠지 횡안이 비어 보였습니다.

그 빈자리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었어요.

식탁 위엔 여전히 밥과 국이 놓였고 손주들은 젓가락질을 했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끔 아이들이 엄마 이거 뭐야? 아빠 오늘 뭐 해? 같은 질문을 하면 어른들이 대답은 했지만 그 대답들도 어딘가 성이 없고 건성인 느낌이었어요.

아빠 할아버지 방은 왜 계속 열어나? 초등학교 2학년인 작은 손주민서가 밥을 먹다 말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순간 아들은 숟가락을 멈췄고 며느리는 고개를 숙인 채 국만 휘적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잠시 말을 못 했어요.

사실 본인도 왜 그 방을 열어두고 있는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냥 닫아버리기엔 뭔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정리하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그런 애매한 상태였습니다.

그냥 좀 두자.

아들이 조용히 말했죠.

근데 할아버지 안 돌아오면 어떡해? 민서의 말에 아들은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본인도 아버지가 돌아오실지 안 오실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며느리가 그 말을 받았습니다.

아빠는 지금쯤 조용한 데서 편하게 계실 거야.

그치? 그 말엔 이상하게도 살짝 가시 같은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가시인지 진심인지 아들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며느리도 복잡한 심정이었을 거예요.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확실히 편해진 면이 있었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서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아이들 밥 먹이면서 조심할 것도 없고 청소할 때도 한 방 덜 신경 쓰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갖는 자신이 나쁜 사람 같아서 죄책감도 들었을 겁니다.

며칠 뒤 며느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아버지 방 정리 좀 할까요? 뭐라고? 아들은 그 말에 놀란 듯 고개를 들었습니다.

계속 열어두면 애들도 헷갈리고 낡은 옷이나 이불 같은 거는 정리하는게 나을 것 같아서요.

혹시 나중에 돌아오시더라도 깨끗하게 정리해 놓으면 좋잖아요.

아들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구더니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대로 더 하지만 그냥 두라고 정리하지 마.

그 목소리에 며느리는 더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방안엔 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정리하는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아들 입장에서는 아직 그럴 수 없었던 거죠.

그날 저녁 아들은 홀로 아버지 방에 들어가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 보았습니다.

면독이 낡은 안경 아버지가 매일 쓰던 손거울 어느 것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낡은 베개를 가만히 쓸어내리며 속삭였습니다.

아버지 이방은 아직도 아버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정말 그랬어요.

아버지만 그 특유한 냄새, 비누양과 섞인 약간 오래된 옷 냄새 그리고 어떻게 설명하기 어려운 아버지만 채치가 아직도 그 방에 남아 있었거든요.

며느리는 거실에서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평소처럼 담한 얼굴이었지만 아들이 방에서 한참을 나오지 않자 슬며이 아버지 방을 힐끔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작게 한 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그 말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어요.

혼잣 말일 수도 있고 남편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었죠.

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도이 상황이 불편하다는 거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들은 출근을 하지 않고 아버지 가방이 있던 창고를 정리하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작은 쪽지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마지막 물건이라는 이름으로 붙은 낡은 종이봉투 하나.

그 안엔 약봉지 하나와 메모가 들어 있었습니다.

눈이 잘 안 보이니 약을 헷갈리지 말자.

바깥에 나가게 되면 이건 꼭 챙기자.

며느이 아플까 봐 요즘 말수 줄여야겠어.

그 메모를 읽은 아들은 입술을 꾹 깨물었습니다.

그 모든 말들이 가슴속에 맴돌았습니다.

아버지는 정말 세심하게 모든 걸 준비하고 계셨던 거였어요.

심지어 며느리가 스트레스 받을까 봐 말수까지 줄이고 계셨다니.

그날 밤 식탁 앞에서 결국 아들은 며느리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랬어? 뭐가요? 그날 그말 알아서 좀 하세요.

그 말이야.

그 한마디가 아버지 마음을 꺾었어.

며느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그걸 왜 지금 내 탓으로 돌리죠? 내 탓도 있어.

근데 그 말이 너무 컸어.

정말 내 말 때문이에요.

그 말 한마디로 그렇게까지 떠나실 뿐이었어요? 그럼 그동안 얼마나 불편하게 지내셨던 거예요? 그 말에 아들은 할 말이 없었어요.

사실 며느리 말도 틀린 건 아니었거든요.

한마디로 집을 떠날 정도라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걸 참고 계셨던 건지 자신들이 얼마나 무신경했던 건지 생각하니 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 대화는 정확한 결론 없이 끝났습니다.

두 사람 사이엔 길고 깊은 침묵만이 남았고 식탁은 더더욱 말라갔습니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분위기를 느꼈는지 평소보다 조용히 밥을 먹었어요.

그날 밤 며느리는 혼자 조용히 세탁기에서 아버지의 옷을 꺼내 작은 수건 하나를 개어 설랍장 안에 넣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줄 알았지만 아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도 나름대로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다음날 아침 손주가 색종이로 접은 종이 비행기를 아버지 방에 날렸습니다.

비행기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어디 계세요? 우리 집은 요즘 너무 조용해요.

다시 오시면 안 돼요.

아들은 그걸 주어들고 한참 동안 꼼짝 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오히려 더 가슴을 아프게 했어요.

어른들은 복잡하게 생각하는데 아이는 그냥 할아버지가 보고 싶고 집이 조용해서 싫다는 단순한 마음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들이 아직 모르는게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진실을 알려줄 열쇠를 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아버지가 떠난지 두어달 계절은 어느덧 봄 끝자락으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벚꽃은 다 떨어졌고 텃박 가장자리엔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습니다.

집안은 여전히 조용했습니다.

아버지의 방은 문을 닫은 채 그저 머물렀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동안 아들은 몇 번이나 아버지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동네 경찰서에도 신고해 봤고 옛날 아버지 일터 동료들에게도 연락해 봤지만 아무도 아버지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어요.

그날은 평소처럼 아들이 토요일이라 일찍 퇴근에 집 안청소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며느리와의 관계도 여전히 어색했고 아이들도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된지 오래였어요.

모두가 조심스럽게 그 주제를 피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문득 다락방 한쪽에서 발견한 낡은 골무 상자.

그 안엔 작은 메모지와 함께 몇 장에 오래된 영수증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엔 통장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국은행 2만선명의 거래 내역 확인 기간 최근 1년 조심스에 펼쳐본 통장엔 매달 일정한 금액이 빠져나간 흔적이 있었습니다.

송금처 김명자 금액 15만 원 주기 매월 1회 전기 이체 김명자 아들은 그 이름을 본 순간 알 수 없는 찝찝함과 묘한 긴장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가족 중에 그런 이름은 없었고 주변 지인 중에도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었습니다.

더 자세히 보니 이체 내역이 1년 넘게 이어져 있었어요.

매달 1일 정확히 15만 원씩 김영자라는 사람에게 송금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혹시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빚이라도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다가 곧장 노트북을 켜고 이름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주소록 구청 연계 서비스, 심지어 동창의 카페까지.

하지만 딱 떨어지는 정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아버지와 가장 가까웠던 마을 슈퍼 어르신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혹시 아버지랑 친하게 지내던 여자분이나 외부인 보신 적 있으세요? 어르신은 고개를 갸옷하다가 문득 기억이 났다는 듯 말했습니다.

아 지난 가을쯤엔가 한중년 여자분이 몇 번 왔다 갔지? 검은색 모자 쓰고 말수도 별로 없고 꼭 아버지로만 들렀다 갔어.

아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혹시 이름은 모르세요? 글쎄, 영자라고 누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는 그 즉시 통장에서 적힌 계좌 번호를 따라 지점을 추적했고 고객 정보 연람은 막혀 있었지만 은행 직원의 암시적인 말에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 그 계좌요? 노량동에 거주 중인 고객인데 어르신께서 직접 다니셨어요.

잊지 않고 매달 입금하셔서 저희도 인상 깊었죠.

한 번은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도 직접 오셔서 이것만은 꼭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들은 그 말을 들으며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어요.

도대체 아버지와 그 김명자라는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왜 가족들에게는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던 걸까요? 집에 돌아온 그는 이야기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며느리에게 조심슬의 입을 열었습니다.

혹시 김영자라는 이름 들어본 적 있어? 김영자요? 글쎄요.

왜요? 아버지 통장에서 그 이름으로 송금된 내역이 있어 며느리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분명 마음이 불편해진 듯 작게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그녀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혹시 시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 1년 넘게 매달 15만 원씩 보내셨어.

전기 이체로 그게 얼마예요? 거의 200만 원 가까이 될 거야.

며느리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어요.

적지 않은 금액이었거든요.

그날 밤 작은 손주민서가 혼잣 말을 하듯 말했습니다.

아, 할아버지 마지막 날에 전화받는 거 봤는데 아들과 며느리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뭐라고? 전화.

응.

검은 오디은 어떤 이모가 전화했는지 몰라도 할아버지가 영자야라고 말하더라.

그 말에 아들은 순간 온몸에 털이 쭈는 것 같았습니다.

민서의 기억은 아주 단순했지만 그 안엔 강력한 단서가 숨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영자라는 사람과 마지막 통화를 했고 그 뒤로 홀련이 떠났습니다.

그때 할아버지 표정이 어땠어? 아들이 물었습니다.

응.

심각해 보였어? 그리고 뭔가 슬퍼 보이기도 하고 전화 끊고 나서 한참 멍이 계시더라.

아들은 머릿속에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말없이 요양원을 알아봤던 이유.

매달 일정 금액을 누군가에게 보냈던 이유.

그리고 누군가와 마지막 전화를 하고 떠났던 이유.

혹시 아버지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사정을 가지고 계셨던 건 아닐까? 그 말에 며느리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거실에 걸린 가족 사진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깜빡일 뿐이었습니다.

그 사진 속에서 아버지는 화나게 웃고 계셨어요.

손주들을 양쪽에 끼고 앉아서 정말 행복해 보이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왜 그렇게 조용히 떠나셔야 했을까요? 다음날 아들은 아버지 통장에서 김영자라는 이름의 주소지를 적어두고 혼자 나설 준비를 했습니다.

어딘가 마음 한편이 불안하면서도 뜨겁게 뛰었습니다.

그 사람을 찾아야겠어.

그래야 아버지가 왜 그렇게 조용히 떠나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며느리는 남편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정이었어요.

한편으로는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날까 봐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흔적을 따라 문을 나섰습니다.

김영자라는 사람을 만나면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들 가족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까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아들은 계속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오랫동안 감춰온 비밀이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 비밀이 아버지가 떠나신 이유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마음 한 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지만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날 나는 영자의 집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도어배를 누를까 말까 손끝이 살짝 떨리더군요.

누군가에게 아버지를 묻는다는 건 그 자체로 낯설고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혹시 정말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문이 열렸고 검정 리트를 입은 중년 여성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얼굴엔 익숙한 기색은 없었지만 내가 이름을 말하자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습니다.

이만섭 씨 아드님이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녀는 나를 거실로 안내하며 작은 차잔에 따뜻한 보리차를 따라주었습니다.

집안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벽에는 가족 사진들이 걸려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아니에요.

사실 올 줄 알았어요.

그녀는 조용히 차잔을 들어 입과에 가져다 댔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후 언젠가는 아드님이 오실 거라 생각했어요.

혹시 아버지와 어떤 관계셨는지 그리고 왜 매달 송금을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영자 씨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더니 거실 서랍에서 작은 종이 상자를 꺼내 왔습니다.

여기 이게 당신 아버지가 남기고 간 물건이에요.

저한테 맡기면서 혹시나 아드님이 오면 꼭 전해 달라고 하셨죠.

나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 안엔 작은 수첩 하나와 노랗게 바른 편지봉투 두 장.

그리고 병원에서 받은 의료 소견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의료 소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환자명 이만석, 진단명 간남삼기, 전이 우려 치료 권장 2번 및 항암 진행 환자 거부 가정 요양 선택.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단지 상처받아 우리 곁을 떠난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기 위해 며느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는 조용히 모든 걸 정리해 나가고 있었던 겁니다.

언제부터 아셨어요? 내가 물었습니다.

작년 가을쯤이었어요.

아버님이 건강 검진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됐죠.

처음엔 혼자 감당하려고 하셨는데 워낙 충격이 커서 누군가한테 말하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영자 씨는 차를 한 모음 마시고 계속 말했습니다.

저는 그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어요.

아버님이 진단 받으시던 날 복도에서 혼자 오시고 계시는 걸 봤죠.

그래서 말을 걸게 됐고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됐어요.

그 수첩엔 아버지의 손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영자야, 다음 주에도 병원 데려다 줘.

민서가 요즘 기운이 없어 보이더라.

며느리 말투가 날카로웠지만 그게 다 내 탓이다.

고맙다.

모두 고맙다.

한 장한 장 넘기며 나는 눈시율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분은 마지막까지 누구 하나 원망하지 않았고 모든 걸 자신의 몫으로 감쳤습니다.

아버님은 처음부터 치료를 거부하셨어요.

나이도 많은데 괜히 자식들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요.

대신 통증 완화 치료만 받으시겠다고 하셨죠.

영자 씨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어요.

그래서 제가 매주 한 번씩 아버님을 병원에 모셔다들였어요.

아드님들은 모르시게 하고 싶다고 하셔서 저도 조심스럽게 도와드렸죠.

병원비며 약값이며 그런 것들을 제가 먼저 내드리면 아버님이 나중에 갚아 주시는 방식이었어요.

그제야 매달 15만 원의 의미를 알 것 같았어요.

그건 다른 여자에게 보내는 돈이 아니라 자신의 병원비를 대신 내준 사람에게 갚는 돈이었던 거예요.

영자 씨는 수첩 옆에 있던 작은 편지 봉투를 건냈습니다.

봉투한면 며느리에게 나는 순간 망설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편지를 집으로 가져와 아내와 함께 조용히 펼쳐 보았습니다.

우리 며느리에게 말로는 못했지만 항상 고마웠다.

민서랑 지우 잘 키워 줘서 성격이 좀 날카로워도 내가 속이 좁아서 이해 못 한 것도 많다.

사실 내가 몸이 안 좋아져서 조금씩 정리하려고 했던 거야.

혹시라도 나 때문에 불편하거나 힘든 일 생길까 봐 내가 먼저 비워야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무뚝뚝해서 말을 못 해서 마음만 커져서 늘 미안했어.

건강 잘 챙기고 아이들한테는 할아버지가 항상 고마웠다고 전해 줘.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먼저 떠나 미안하다.

그 순간 아내는 조용히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오해했던 거지 내가 혼잣 말처럼 중어리자 아내가 처음으로 내 손을 조용히 잡았습니다.

우리 아버지 참 따뜻한 분이셨네.

영자 씨는 마지막에 이런 말도 해 주었어요.

아버님이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있어요.

내 가족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야.

나 때문에 힘들어 했을 텐데 그래도 끝까지 잘 돌봐 줬어.

고맙다고 꼭 전해 주라고 하셨어요.

그날 밤 나는 아버지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인 그의 안경, 그의 베개, 그리고 살짝 빛이 바른 사진 한 장.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오래도록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제야 알았어요.

왜 그렇게 조용히 떠나셨는지 왜 끝까지 말을 아끼셨는지 이제라도 고맙단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우리 가족은 아버지에 대해 진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해와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에 대해서요.

아버지가 떠난 후 처음으로 지안 곳곳을 천천히 둘러봤습니다.

그분의 손길이 남아 있던 것들이 이제는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창틀 아래 놓여 있던 작은 쪽과위 양말을 말리던 빨래 건조대 그리고 부엌 구석에 노인 찬장 속 절대 아무도 안 건드리던 묵은 된장 항아리까지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였어요.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정리해 두신 흔적들이었거든요.

병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가족을 생각하셨던 그 마음이 곳곳에 스며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는 동안 우린 처음으로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건 버리지 말자.

아버지가 아끼던 거니까 여기 아버님 수첩도 함께 두면 좋을 것 같아요.

아내와 내가 서로에게 의견을 내고 그걸 조심스럽게 받아주는 그 모습.

그건 분명 예전과는 달라진 태도였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 난 후 우리는 서로에게 좀 더 솔직해질 수 있게 된 것 같았어요.

여보, 그동안 정말 미안했어요.

아내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아버님한테도 당신한테도 뭐가 미안해? 나도 몰랐는 걸.

아니에요.

알려고 노력했어야 했는데 그냥 불편하다는 생각만 했어요.

그날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는 조용히 국을 떠 먹었습니다.

민서가 국을 한입 먹더니 갑자기 웃으며 말했죠.

엄마, 이거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맛이다.

응.

된장국이야.

예전에 할아버지가 늘이 맛이 좋다고 하셨지.

그럼 내일은 할아버지 좋아하던 계란쯤 해 줄까? 순간 나는 멈춰서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내를 바라봤습니다.

그녀는 미소를 먹음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내일은 계란찜 하자.

그 순간 우리 집 식탁에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 같았어요.

식사를 마친 뒤 민서가 작은 그림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할아버지 얼굴을 크게 그려 놓고 그 옆에 별과 구름 그리고 가족 모두를 그려 넣은 그림이었습니다.

그 아래엔 서툰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죠.

할아버지 별에서 잘 지내세요.

민서가 잘할게요.

아빠랑 엄마랑도 사이 좋게 지낼게요.

고마워요.

나는 그 글을 보는 순간 무언가 안쪽에서 울컥 올라왔습니다.

말로는 설명 못할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 따뜻함.

아버지가 보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밤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 단둘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동안 서로 피했던 하지만 꼭 나눴어야 할 이야기들.

그때 알아서 좀 하세요라고 말한 거 지금도 미안해요.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당신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조금 알 것 같아.

당신도 많이 힘들었겠지.

나도 몰랐어요.

아버님이 그렇게까지 준비하고 계셨다는 거.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게 지금 와서 너무 죄송해요.

내가 말이 없어서 오해만 남겼다고.

그러니까 더 미안해요.

말 안 해도 되는 줄 알았어요.

그냥 알아주길 바랐거든요.

그 말에 나는 살며이 아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녀는 놀란 듯 잠시 멈췄지만 이내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 이젠 조금씩 말하면서 살자.

응.

그래하겠어요.

그 조용한 다짐이 그날의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아버지가 남기신 사랑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어요.

다음날 우리는 작은 제사상을 차렸습니다.

병식 차림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좋아하던 된장국과 계란찜 그리고 평소 아끼던 막걸리 한 병을 올려두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민서가 작은 국화 한송이를 들고 와 사진 앞에 올려 놨습니다.

할아버지 이거 민서가 땄어요.

꽃 좋아하셨죠? 아내는 민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우리 민서 할아버지 마음 꼭 닮았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순간 내 눈엔 아버지가 웃고 계신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것 같은 그런 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날 이후 우리 집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어?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저녁에 집에 오면 오늘 어땠어? 하고 하루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작은 변화들이었지만 그 작은 변화들이 우리 가족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우리는 진정한 가족이 되어 가고 있었어요.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그분의 마지막 사랑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준 셈이었습니다.

계절이 한번 바뀌었습니다.

추위가 가시고 따스한 바람이 들기 시작한 봄.

작은 텃밭에 고랑에도 초록빛이 소리 없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떠나고 맞는 첫 번째 봄이었습니다.

여전히 아버지의 방은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정리하자고 마음 먹은 날도 있었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상하게도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 방엔 아직도 그분의 기척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책상 서랍 늘 같은 자리에 있던 메모지, 스탠드 옆에 놓인 동그란 돋보기 그리고 침대 만벽에 붙여 두신 손주 사진들.

그중에서도 민서가 첫돌 때 찍은 사진을 참 오래 바라보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소중한 유산처럼 느껴져요.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들이 고스란이 담겨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그대로 두고 싶어요.

민서는 요즘도 밤마다 베란다 창가의 기대별을 봅니다.

할아버지 지금쯤 별쯤에 계시려나? 어느 날은 작은 손으로 생년피를 꺼내 할아버지에게 쓸 편지를 또 쓰더군요.

할아버지, 오늘도 아빠랑 엄마랑 안 싸웠어요.

저희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아프셨다는 거 이제 알았어요.

많이 아프셨죠? 그래도 우리한테는 웃어 주셔서 고마워요.

아이의 그 한마디가 참 여러 감정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아버지라면 그런 민서 모습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바라보셨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뿌듯해 하셨을까요? 나는 종종 아버지의 수첩을 꺼내 읽습니다.

언젠가부터 그 글씨들이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편지처럼 느껴졌습니다.

민서 좋아하는 과자 사야겠다.

며느리가 피곤해 보여.

혹시 내가 방해되나? 오늘은 조용히 있어야겠다.

이제서야 그 침묵이 얼마나 깊은 배려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병을 숨기면서까지 우리를 편하게 해 주려고 하셨던 거예요.

그 모든 조심스러움과 말없음 뒤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아버지 사진앞 국화를 아무 말 없이 갈아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엔 제가 그랬고 그다음은 아내였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민서가 스스로 꽃병 물을 갈아주더군요.

누구 시킨 것도 아닌데 자기 할 일처럼 익숙하게 움직이는 모습.

그걸 보면서 가족이라는게 말보다 오래 남는 것이 있다는 걸 세삼 느끼게 됩니다.

혈육의 끈이라고 하나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을 잊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가장 크게 변한 건 말을 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나는 가장은 묵묵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감정을 드러내는 걸 어색해 했었습니다.

아버지처럼 말수가 적은 편이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아내에게도 아이에게도 가끔은 내 친구들에게도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요즘 민서가 학교에서 뭘 배우는지 궁금해.

고생했어.

오늘 하루도.

미안해.

내가 좀 예민했나 봐.

그 짧은 말들이 내 삶을 훨씬 부드럽게 만들어 주더군요.

아버지가 못다 하신 말들을 제가 대신 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아버지가 보신다면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씀해 주실 것 같아요.

아내와의 관계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서로 오해하고 삐걱되는 순간이 많았지만 지금은 속상한 일이 있어도 그 자리에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때 그런 말 나한테는 좀 서운했어.

미안해.

내가 좀 예민했나 봐.

다음엔 미리 말해 줘.

나도 모르는게 많으니까.

그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풀어 주는지 이제는 저희 둘 다 알게 되었죠.

아버지의 빈자리는 여전히 큽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이제 아픔보다 감사와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분이 남긴 편지, 그분이 남긴 침묵, 그분이 남긴 눈빛 하나하나가 우리 가족을 다시 잇는 실이 되어 주었거든요.

영자 씨와도 가끔 연락을 주고 봤습니다.

아버지 병원비를 정산해 드리고 그분이 들려 주시는 아버지의 마지막 날들 이야기를 듣곤 해요.

아버님이 마지막까지 가족 걱정만 하셨어요.

내가 없으면 그 집이 더 평화로울 거야라고 하시는데 정작 얼굴엔 그리움이 가득하셨어요.

그 말을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버지는 정말 마지막까지 우리를 사랑하고 계셨던 거예요.

그 사랑이 너무 깊어서 자신을 지우는 방식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으셨던 거고요.

가끔은 혼자 아버지 사진을 보며 말을 겁니다.

아버지, 저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이젠 저도 민서를 키우며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부모라는게 이렇게 조심스럽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식을 바라보는 거였군요.

그리고 아내와도 이제 말하면서 살고 있어요.

아버지가 못다 하신 말들을 제가 대신하고 있어요.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들이요.

그 말에 대답은 없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편해집니다.

아버지가 어딘가에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실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이야기를 마무리하며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지금 당신 곁에 말없이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그 마음을 들여다 보셨으면 합니다.

꼭 말로 다하지 않아도 사랑은 존재하고 그 사랑은 어느 날 당신을 지탱해 줄 깊은 뿌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남기신 마지막 가르침은 이런 것이었어요.

사랑은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으로도 전해질 수 있지만 그보다는 작은 말 한 마디라도 건내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

그래서 저는 이제 매일매일 가족들에게 말합니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말이 없어도 사랑은 있었다.

이 말을 저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되네입니다.

아버지가 그리 가르쳐 주셨고 이제 저는 그 사랑을 말로 눈빛으로 행동으로 내 가족에게 전해 주려 합니다.

때로는 서툴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있어요.

아버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그 사랑을 소리내어 표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배웠거든요.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셨던 그 말을 다시 한번 되네이며 이야기를 마치려 합니다.

고맙다.

내가 말로 다 못했지만 내내 고맙고 미안했다.

아버지 저희도 같은 마음이에요.

말로 다 못 했지만 내내 고맙고 사랑했어요.

우리 주변에도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뚝뚝한 말투, 낡은 수첩 하나, 조용히 바꿔진 꽃 한송이 속에 마음이 숨어 있진 않을까요? 말은 없었지만 사랑은 있었다.

그 한마디 여러분 마음에도 따뜻하게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도 여러분의 마음을 얼음앉을 수 있길 바라며 따뜻한 금빛 이야기 구독과 좋아요로 함께 해 주세요.

여러분의 하루가 오늘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영상 정리

영상 정리

1. 가족들은 아버지의 떠남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2. 아버지는 말없이 떠나기 전 마지막 편지를 남겼어요.

3. 그는 평생 집을 지으며 가족을 위해 헌신했어요.

4. 하지만 자신은 정작 집에서 쉴 자리를 만들지 못했어요.

5. 집에서 함께 살던 동안 가족들은 서운함과 불편함을 느꼈어요.

6. 아버지는 자신이 부담이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7. 결국 아버지는 조용히 떠나기로 결심했어요.

8. 떠나기 전, 아버지는 마지막 편지에 감사와 미안함을 적었어요.

9. 가족들은 아버지의 편지를 읽으며 많은 감정을 느꼈어요.

10. 아버지는 병을 숨기고 조용히 떠날 준비를 했던 거였어요.

11. 그 뒤, 가족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흔적들을 발견했어요.

12. 아버지는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도 숨기고 계셨던 거죠.

13. 가족들은 아버지의 사랑과 배려를 다시 깨달았어요.

14. 그들은 서로 솔직하게 말하며 더 가까워졌어요.

15.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는 가족에게 큰 의미가 되었어요.

16. 그 후, 가족들은 아버지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갔어요.

17. 아버지의 방과 물건들은 그의 사랑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이 되었어요.

18. 가족들은 서로에게 말로 사랑을 전하며 마음을 열었어요.

19. 민서와 아내는 아버지에게 편지와 그림으로 그리움을 표현했어요.

20. 그들은 아버지의 사랑이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음을 느꼈어요.

21. 결국, 가족은 아버지의 마지막 배려와 사랑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22. 말없이 지켜준 사랑이 오히려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되었어요.

23. 이야기를 통해, 말하지 않아도 사랑은 전해진다는 걸 배웠어요.

24. 여러분도 주변의 말없이 지켜주는 사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25. 사랑은 말보다 행동과 마음으로 전하는 것임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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