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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과 우주를 짝을 맞춰 움직이는 창조주 | 왓칭 원데이 클래스 강연오디오북

김상운의 왓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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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2025년 5월 17일 원데이클래스 강연의 일부분입니다. 왓칭 원데이클래스 강연 신청 - https://www.matkim.co.kr/88 왓칭 네이버카페 - https://cafe.naver.com/watching0 감사합니다. - 편집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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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린이 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제가 원장으로 운영하는 곳은 아이들이 100% 차 있고 대기자가 40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건물주가 다른 지역 어린이 집도 맡아서 해 보라고 해서 흔쾌히 받아들였고 1억 정도 들여서 시설도 깨끗하게 고쳤습니다.

처음 맡았을 때 아이들이 50%도 안 차였던 상황이었지만 곧 채워지겠지 했습니다.

하지만 인연이 다 되도록 채워지기는 커녕 아이들 수가 줄어서 적자 운영에 제가 모은 돈을 다 쓰고 더 채워 놓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년 3월엔 오해를 받아서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고 고생을 하다가 무혐의를 받았습니다.

저는 적장은 나지 않았다면 제게 수입이 생기지 않더라도 새로 맡은 어린이 집도 잘 운영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돈을 벌 만하면 일이 생겨 돈이 더 들어가는 일이 반복되고 돈이 부족한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괜히 또 다른 어린 집도 맞게 되어 사서 고생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네.

그니까 우리는 몸을 나와 동시하면서 살잖아요.

몸이 나라고 착각하면 살아요.

근데 몸이 나라고 착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몸은 내가 내 생각대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 몸이 아닌 다른 것들은 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해요.

더구나 내 몸이 아닌이 세상 더구나 우주 전체를 내 생각대로 마음대로 움직 수 있다.

이렇게 도저히 상상 육차 못해요.

근데 알고 보면 그게 인생 사리가 고통스러운 가장 큰 이유예요.

현실은 나와 동시하는 생각대로 펼쳐집니다.

이건 예외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나는 문 밖에 나간다라는 생각을 나와 동시하면 내 몸은 문 밖에 나가기 위해서 스스로 움직여요.

그리고 나는 물을 마신다는 생각을 나와 동시하면 내 몸은 물을 마시기 위해 스스로 움직여요.

그리고 나는 지금 자리에서 일어선다는 생각을 나와 동시하면 내 몸은 일어서기 위해서 스스로 움직여요.

나는 등산을 한다는 생각을 나와시하면 나는 내 몸은 등산을 하기 위해 스스로 움직여요.

그러니까 아, 나는 내 몸은 내 마음대로 움비일 수 있는 거구나.

그런데 내 몸이 아닌 것은 내가 움직일 수 있는게 아니구나.

이렇게 내 몸이 아닌 것은 나와 분리다고 믿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교가 나타나냐? 다른 사람들은 나플 때 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의견이 맞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감정이 응어를 가지고 그 응어진 감정이 몸에 질병을 얽히고 또 부정적 감정이 억눌려 있으면 무식에 억눌려 있으면 무식에 억눌린 그 부정적 감정이 부정적인 시원실을 창조해요.

그러다 보니 인생 소리가 고통의 바다가 안 될 수가 없죠.

근데 여기서 한놈 더 나가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나와 동이시하는 생각이 정말 내 몸만 움직는 것인가? 아니면은 우주 전체를 통째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인가? 제가 예를 들어서 물을 마신다는 생각을 나와 동시한다고 가정을 해 보죠.

그럼 저는 이제 제 몸은 물을 마시기 위해서 스스로 움직여야 되죠.

내 몸은 항상 나와 동시하는 생각대로 자동적으로 움직이도록 설교가 됐어요.

내 몸은 원래 스스로 움직여요.

내 심장이 뛰는 거, 피가 도는 거, 머리카락이 자라는 거, 눈물이 나오는 거, 배가 고픈 거 이건 다 무식적으로 움직이잖아요.

또 동물의 몸도 무식적으로 움직이고 식물도 무식적으로 움직이고 해와 달, 우주, 운행도 무식적으로 움직이죠.

왜? 창조주가 무식에 자신이 생각한 대로 우주를 창조해서 저장을 해 놨기 때문에 그래서 무식 속에 우주가 들어 있어요.

그래서 뭔 옛날을 되돌아볼 수가 없죠, 우리는.

하지만 최면을 걸어서이어서 500년 전년 전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면 1천년 전 500년 전에 시현실이 무의식 속에서 떠오르잖아요.

왜 그럴까요? 무식이 현실을 창조하기 때문에 우주 전체가 무식 속에서 흘러가는 생각이기 때문에 최면을 걸어서 무식속을 들여다보게 하면 뭐 5,년 전에 시원실이 떠올 수도 있어요.

아주 깊이 치면 걸면.

심지어 유학기.

유학이도 우리는 모르잖아요.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내가 어땠는지도 모르잖아요.

무식 속에 들어 있으니까.

하지만 깊은 처면을 걸면 유하기에 태하기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죠.

그러니까 현실은 무식 속에 저장되 있는 거야.

몸은 내가 입력하는 생각대로 나와 동시하는 생각대로 자동적으로 돌아가도록 설교가 됐어요.

그래서 내가 물을 마신다고 가정하면 내가 물을 마셔야지라는 생각을 나와 동시하면 나는 내 몸은 물을 마시기 위해서 자동적으로 무식적으로 움직여야 되죠.

그런데 물을 내가 들어서 입에 넣는다고 해서 물이 내 몸이 물을 마시기 위해서 자동적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물을 마실 수 있는 건 아니죠.

물이 움직여야 돼.

물이 입안에서 뱃속으로 흘러 들어와서 움직여야 돼.

그럼 내가 마시는 물이 흘러가도록 하려면 움직이도록 하려면 강물에 물도 흘러가야 돼요.

강물이 흘러가라면 지우가 움직여야 돼.

지가 만약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강물이 흘러나오는 그 지구 깊숙한 곳에서 강물이 흘 흘러나올 텐데 샘물도 흘러나오고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강물도 흘러나올 수 없는 거예요.

그럼 지구가 움직인다고 해서 지유가 움직이려면 우주 전체가 움직여야 되죠.

그죠? 그러니까 우주 전체가 통째로 움직여야지 내가 물을 마실 수 있어요.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주 전체가 움직이면 우주 속에 들어 있는 지구도 움직이고 지구가 움직이면 지구 속에 들어 있는 세상도 움직이고 세상이 움직이면 세상 속에 들어 있는 나도 움직이고 내 몸도 움직이고 그죠? 그러니까 서로 분리될 수가 없는 거예요.

내 몸이 움직임과 동시에 우주 전체가 통째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죠.

이 사실을 알면 여러분의 시야가 어마하게 어마 어마하게 넓어져요.

우주 전체를 바라보게 돼.

내 몸만 바라본게 아니라 우주 전체가 나와 내 몸과 짝을 맞춰서 움직이는구나 하고 우주 전체를 창조주의 눈으로 창조주의 눈으로 이렇게 바라보게 되고 나는 사라져요.

어디로 사라지냐? 우주 속의 존재로 사라져요.

우주 전체를 내가 바라보기 때문에 내 몸은 우주 속에 존재로 사라져요.

나는 우주 전체를 바라보는 텅빈 마음인 창조주가 돼요.

그럼 내가 자동차를 운전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자동차를 운전해야지라는 생각을 나와 동시에요.

그럼 나와 동시하는 그 생각대로 내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여요.

무식적으로.

내가 핸들에 손 올려 놓으면 손은 무식적으로 움직여져요.

왼쪽으로 얼만큼, 오른쪽으로 얼만큼, 왼쪽으로 몇 cm, 오른쪽으로 몇 cm 이렇게 핸들을 틀어야 될지 이거를 그냥 무식적으로 알게 돼.

내가 일일일이 아, 여기서 저기까지 갈 때는 1cm만큼 핸들 움직여야 하지.

여기서 저기까지 갈 때는 뭐 5cm만큼 왼쪽으로 움직여야지.

이렇게 계산을 하다가는 나는 사고를 당해야 되겠죠.

되겠죠? 브레이크도 마찬가지고 악셀도 마찬가지고 내 발이 무식적으로 움직여.

내가이 일이 어떻게 발을 움직여야 될지 계산을 하지 않고 운전합니다.

그러니까 내 몸에 움직임과 짝을 맞춰서 자동차가 스스로 움직이죠.

자동차가 움직이면 움직이려면 자동차가 아닌 도로도 스스로 움직여야 돼요.

도로가 어떻게 스스로 움직이냐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도로가 움직여서 내게 다가오지 않으면 풍경도 고정돼 버려요.

고정된 풍경 속에서 내가 차를 달릴 수 있습니까? 못 달리죠.

내가 헬스 클럽에 가서 러닝 머신을 한다고 가정할 때 러닝 머신 위에서 내가 뛰면은 앞으로 뛰면 러닝 머신 밑에 깔려 있는 그 트랙 트랙이 계속 나를 향해서 돌아오잖아요.

나를 향해서 오죠.

트랙이 나한테 다가올 때 나는 앞으로 뛰죠.

그러니까 트랙이 나와 정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러닝 머신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도로만 도로가 움직이려면은 지우가 움직여야죠.

지유가 움직이려면 우주선 전체가 통째로 움직여야 돼요.

그러니까 내가 자동차 운전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나와 동시해서 내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이면 내 몸과 짝을 맞춰서 자동차도 스스로 움직이고 도로도 스스로 움직이고 지구도 스스로 움직이고 우주 전체가 통째로 움직여야 됩니다.

그러니까 내 나와 동시에 하는 생각 즉 자동차 운전을 해야지라는 생각이 내 몸만 움직는게 아니라 내 몸을 움직임으로써 우주 전체가 짝을 맞춰서 움직이도록 해 줍니다.

그렇다면 우주 전체를 움직여 주는게 누구예요?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 텅빈 마음 근원에 나죠.

그렇다면 창조주가 나란 얘기 아닙니까? 내가 나와 동시하는 생각, 운전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나와 동시해서 내 몸만 움직는게 아니라 우주 전체가 통째로 짝을 맞춰서 움직인다면 나 자신이 우주 전체를 통째로 움직이는 창조주라는 말이에요.

자동차 운전하는 나와.

우주를 꿈이라 그러면 꿈속에 들어온 나와 꿈 전체를 움직여 주는 창조주는 하나라는 거 아시죠? 나는 꿈속에 들어온 창조주예요.

창조주가 수많은 나들로 쪼개져서 꿈속에 들어와서 혼자서 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러니까 몸을 나라고 착하고 살면 나는 나를 몸에 가둬놓게 되고 가짜 나로 살게 돼.

몸 우주 삼남만이 모든 것들이 나와 동유시하는 생각대로 움직이는 빛의 떨림.

홀로그램에 그래서 나와 동시하는 생각대로 일제히 순식간에 내 눈앞에 펼쳐집니다.

아까 이제 이해를 드는데 나와 동시하는 생각대로이 모든 홀로그램들이 내 앞에 순식간에 펼쳐인다.

이거를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서 앞에 들었던 간단한 예.

그래서 나는 일어선다는 생각을 나와 동시하면 나는 일어선다.

내 몸은 일어서게 되고 내 몸이 일어서는 움직임을 보임과 동시에 우주 전체가 통째로 움직인다.

또 내가 물을 마신다는 생각을 나와 동시해서 붙들고 있으면 우주 전체가 내 몸의 움직임과 잘 맞춰 통째로 움직인다.

그러니까 우리는 큰 착각에 빠져 있다.

몸을 나라고 착각해서 많은 감정들 부정적인 감정들 무시에 억놓고이 감정들이 인격화돼서 부정적인 나라는 자들이 돼 버리고이 부정적인 자들이 부정적인 현실을 창조해서 인생 사리가 그토록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이 이 고통스러운 현실은 대화를 이어가면서 지난 수천년간 계속되어왔고 몸이 나란 착해서 깨나지 않는 한이 고통은 앞으로도 수천년간 대를 이어가면서 계속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뺏긴다는 생각을 나와 동시해서 무식에 억눌러 버리면 어떨까요? 나는 뺏긴다는 생각을 내가 붙들고 있으면 나는 뺏는다는 생각을 붙들고 있는 누군가가 우주 속에서 나타나서 나로부터 뺏어 가겠죠.

왜냐면 나와 우주는 짝이니까.

또 나는 버림받는다는 생각을 나와 동시해서 붙들고 있으면 내 몸은 무식적으로 버림받는 행동을 하게 돼.

그러면 우주 속에서 나는 버린다는 생각을 붙들고 있는 누군가가 나타나서 나를 버리게 돼요.

그럼 나는 돈을 자꾸 잃는다는 생각을 내가 붙들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내 몸은 돈을 잃는 움직임을 자동적으로 하게 되죠.

그럼 내 몸에 움직임과 짝을 맞춰서 우주 속에서는 돈을 잃게 해 주는 누군가가 나타나서 돈을 잃게 해 줘요.

그렇지 않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나 혼자 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현실은 나와 나가 아닌 것 즉 나와 우주가 서로 짝을 맞춰서 펼치는 텅빈 마음속의 놀이다라는 사실을 아실다.

무엇으로 하는 놀이냐? 나와 동시에 하는 생각.

그로 형상화되는 홀로그램으로 형상화되는 놀이.

그래서 홀로그램 영화가 창조주인 더황빈빌 마음속에서 펼쳐지는데 우리는 각기 나라는 몸을 붙들고 창조주가 꾸는 우주라는 꿈속에 들어와서 한평생 살다가 다시 텅빈 마음인 창조주의 마음속으로 돌아주죠.

근데 문제는 나는 뺏긴다는 생각을 나와 동시하면 내 몸이 뺏기는 움직임을 자동적으로 하게 되는데 거기에 짝을 맞춰서 우주 속에서 뺏는다는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나타나서 뺏겨야 되는데 뺏기는 현실이 펼쳐지 때 나는 뺏기는게 두렵거든요.

두려움이 올라올 때 나는 꿈속에 들어온 창조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두려움을 그냥 느껴 주게 돼요.

그럼 뺏긴다는 생각이 두려움과 함께 흘러가 버리죠.

그러면 뺏기지 않는 현실이 자동적으로 펼쳐야 됩니다.

근데 현실이 진짜라고 착각하면 몸도 나와 나라고 착각하게 되고 난 뺏긴다는 생각을 두려움과 함께 몸에 억눌러 버게 돼요.

몸에 억눌린 난 뺏기는게 두렵다.

는 생각이 뺏기는게 두려운 나라는 몸뚱이가 돼 버려요.

그래서 늘 뺏기는 그런 존재로 몸을 갖고 평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 여기서 어떻게 회어할 수 있을까? 원래 설계된 대로 원래 창조주가 설계한 대로 돌아가면 돼요.

나는 창조주가 구는 꿈 속에서 살고 있다.

근데 창조주는 어떻게 꿈을 만들어냅니까? 나와 동시하는 생각으로 꿈을 만들어내죠.

그러니까 나는 나와 동시하는 생각 속에서 살아간다.

곧 사악하거나 나는 나와 동시하는 생각으로 부는 꿈 속에서 살아간다.

곧 정확해도 나는 생각으로 사라지거나 꿈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와 동시에 하는 생각 속에 살아간다고 자각하면 나는 생각 속으로 사라지잖아요.

생각 속으로 사라진 나는 진짜가 아니라 생각이에요.

생각이 홀로그램으로 형상화 된 것이죠.

그럼 나는 창조주가 꾸는 꿈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꿈속으로 사라져요.

꿈속에 홀로그램 이미지로 사라져요.

그리고 나는 텅빈 마음인 창조주가 됩니다.

텅빈 마음이 창조주와 창조주가 나와 동시해서 홀로그램으로 형상화시킨 인생 영화 딱 두 가지밖에 없어요.

나와 동시하는 생각으로 홀로그램 영화를 만든 창조주.

그리고 홀로그램 영화.

그런데 창조주가 수많은 나들을 만들어서 그 홀로그램 영화 속에 들어와 있어요.

근데 그 사실을 반각하면 내가 홀로그램 영화 속에 몸을 진짜다라고 착각해지죠.

착각하는 이유는 나와 동시하는 생각이 내 몸만 움직인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착각에서 깨달리면 나와 동시에 하는 생각이 내 몸만 움직이는게 아니라 우주와 짝을 맞춰서 움직이도록 창조주가 해 준다.

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나는 나와 우주를 짝을 맞춰서 움직이는 창조주가 됩니다.

더황미함이 나와 동시하는 생각을 홀로그램 영화로 형상화시켜서 바라보는 창조주.

그리고 홀로그램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나는 내가 영화 속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더황빈 마음 속에서 느껴지게 되죠.

내가 영화 속에서 느껴 주는 그런 감정들은 영화를 지켜보는 텅황빈 마음이 무조건 받아들여야 됩니다.

왜 창조주가 나를 만들어서 영화 속에 들어왔기 때문에 영화 속에 들어온 나와 창조주는 하나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영화 속에서 영화를 볼 때 경험하는 모든 감정들을 내가 몸으로 느껴지면 창조주는 무조건 그대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근데 내가 몸을 나라고 착각해서 지난 수백년 수천년 동안 조상 대대로 무시에 억눌러 놓은 응어진 감정들은 어떻게 풀어 줄까 그것도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풀어 주면 돼요.

아, 나는 빼앗기는 두려운 영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빼앗기는 두려운 꿈 속에서 살아가겠구나.

빼앗긴다는 생각이 꾸면은 그 오감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나는 꿈속으로 사라지든지 생각 속으로 사라지든지 영화 속으로 사라지든지 나가 사라지죠.

그리고 꿈을 바라보는 영화를 바라보는 생각을 바라보는 텅빈 마음인 창조주만 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텅빈 마음속에서 모든 감정을 느껴 주게 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가 꿈속에 들어와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은 창조주가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창조주가 몸을 빌려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걸 억눌러서는 안 돼요.

그거는 굉장히 오만한 행위에 무지하고 오만한 행위예요.

창조주가 나를 만들어서 인생 영화 속에 들어와서 꿈 속에 들어와서 감정을 느껴 보려고 하는데 영화 속에 내가 꿈속에 내가 창조주가 그 감정을 못 늦게 억눌러 버리면 그 영화는 꿈은 계속 고통스럽게 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창조임을 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껴주면 돼요.

만일 내가 돈을 몽땅 날릴 그럴 위기에 그런 상황에 처 있다면 몸을 나라고 착각하고 있으면 도저히 그 상황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나는 돈을 몽땅 날릴 두려운 상황 속에 들어 있다.

두려운 상황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그 상황을 바라보는 더빈 마음이요.

그리고 나는 상황 속에 등장인물이 돼 버리고 그러니까 나는 살아야죠.

나는 상황을 바라보는 더빌만 나는 돈을 몽땅 날리는 날릴 수 있는 그런 두려운 꿈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해도 나는 꿈속으로 사라져요.

꿈속에 나 나가 진짜 할 일리는 없잖아요.

꿈속에 나는 홀로그램 이미지죠.

꿈속에 나를 바라보는 꿈 전체를 통째로 바라보는 텅황빈 마음인 창조주만 존재합니다.

나 자신이 바로 창조주라는 사실을 망각하지만 않으면 나는 그 꿈속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더 빈 마음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괴롭지가 않아요.

느껴줄 때.

예를 들어서 나는 두려운 꿈 속에서 살아간다.

돈을 몽땅 날릴 수도 있는 두려운 꿈속에서 살아간다.

이 이 사실을 아침에 밥을 밥을 먹으면서도 자악하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자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자악하고 시장에 가면서도 자악하고 그 내가 꿈속에서 살고 있음을 계속 자악하고서 두려움을 느껴주면 두려움은 아무 괴로움도 없이 스스로 사라지게 됩니다.

왜? 나는 두려운 꿈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몸으로 된 나는 꿈속에 등장인물로 살아잖아요.

그리고 나는 꿈속을 들여다보는 텅황빈 마음이 되죠.

텅빈 마음 속에 두려움만 있어요.

그 두려움 속에서 나는 밥도 먹고 세탁도 하고 시장도 가고 직장도 다니고 밖에 나와서 놀기도 하고 외식도 하고 이렇게 일상 생활을 정상적으로 해도 두려움은 스스로 사라져요.

왜? 내 몸이 꿈속에 있기 때문에 나는 꿈속의 허상이거든요.

내 몸은 나가 없어요.

나가 없으면 나한테 달라붙어 있던 응어진 감정들은 그냥 꿈속에 풍떠 걸어지겠죠.

그래서 스스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아까 상대가 왜 내 모습이냐 이런 질문을 하신 분이 계신데요.

꿈속에 들어와 있을 때는 나도 진짜처럼 보이고 상대도 진짜처럼 보여요.

서로가 분리된 것처럼 인식돼요.

근데 꿈은 뭐로 꾸어지느냐? 나와 동시하는 생각으로 꿈이 펼쳐져요.

우리가 잠을 잘 때 꿈을 꾸지만 잠에서 깨어나면은 아 내가 나를 붙들고 꿈속에 들어갔다 나왔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죠.

내가 없으면 꿈을 구을 수도 없는 거구나.

내가 나를 붙들고 꿈속에 들어가면 내가 생각하는 우주도 동시에 생기는구나.

내가 꿈속에서 사라지면 내가 생각하는 우주도 동시에 꿈속에서 사라지는구나.

나와 우주는 항상 짝이구나.

이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현실한 꿈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상대를 바라볼 땐 상대만 보이고 나는 안 보이죠.

왜 그럴까요? 내가 난 상대를 바라본다는 생각을 나와 동시하면 상대는 보이지만 나는 안 보입니다.

그 이후의 것도 안 보여요.

다 마음속의 생각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다가 내가 나는 나를 바라본다는 생각을 나와 동시하면 나는 내가 지금 생각하는 나를 바라보게 돼.

하지만 상대는 보이잖아요.

그 밖에 것들도 보이잖아요.

나는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 지금이 순간 생각하는 것.

나와 동시하는 것.

나와 동시한 그 생각만 형상화시켜서 바라봐요.

그러니까 상대와 나는 진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홀로그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빛의 움직임.

내가 상대를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상대가 보이고 내가 나를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나가 보이고 근데 내가 바라본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상대도 사라지고 나도 사라지고 그러니까 이것은 시간을 따라서 흘가는 생각이 내가 그 생각을 나와 동시에 할 때만 보이는 거예요.

보였다 안 보였다.

그 상대가 실제로 존재하는게 아니고 내가 생각할 때만 보이는 빛의 환영 홀로그램이죠.

나도 나라는 몸도 나와 동시할 때 내가 나를 바라본다는 생각을 나와 동시할 때만 보이는 빛의 환영인 홀로그램입니다.

홀로그램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나를 자세히 보면 내가 바라볼 때는 내가 존재하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면 나는 늘 한쪽 면만 둬요.

내가 생각하는 한쪽면 나라는 생각이 시간을 따라 계속 올라가는데 내가 생각하는 지금이 순간 생각하는 나만 보여요.

내가 앞쪽 면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앞쪽 면만 보이고 뒤쪽 면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뒤쪽 면을 보이는데 앞쪽 면은 사라지고 또 뒤쪽 면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뒤쪽 면을 바라보는데 보이는데 앞쪽 면은 사라지고 상대도 마찬가지고 내가 상대 앞쪽면을 바라온다고 생각하면 앞쪽 면이 지금이 순간에 보이죠.

근데 뒤쪽 면은이 순간에 안 보여요.

내가 뒤쪽 면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상대 뒤쪽 면은 보이지만 앞쪽 면은 사라져요.

생각으로.

생각으로 사라졌다가 내가 바라본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형상화돼서 내눈 앞에 보입니다.

그니까 우주 삼나 만상이 항상 내가 생각할 때만 형성화돼서 나타나는데 우리는 그걸 물질로 인식해요.

왜? 내 눈 앞에 형상화 돼서 보이는 순간 다른 오감도 동시에 작동하거든요.

하지만 내가 눈을 감고 뭔가를 만져보면 그게 좆가마돼서 나는 물병 만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눈을 감고 물병을 만지면 물병은 만져지죠.

물병을 만진다는 생각이 촉감화돼서 물병이 만져지는 거예요.

하지만 내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내가 물병을 바라본다는 생각은 형상화돼서 내 눈 앞에 나타나지 않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시각화돼서 내 눈앞에 펼쳐지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촉감화돼서 내 손에 만져주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음성화돼서 내 귀에 들고 우리는 생각으로 창조된 된 꿈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러는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다 가짜라는 얘기죠.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텅 있다.

텅빈 마음속에서 펼쳐지는 홀로그램 영화를 텅빈 마음인 창조주는 아주 재밌게 보고 있는데 그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나는 그게 진짜인 줄 알고 원치 않는 생각을 자꾸 무시에 눌러서 원치않는 나를 창조내고 원치 않는 나들이 원치 않는 생각을 형상화시켜서 원치 않는 고통스러운 물질화된 물질화된 현실로 이렇게 창조를 하죠.

그래서 고통스러운 겁니다.

그래서 제가 거듭 강조 하는 것은 현실은 진짜가 아니라 나와 동일시하는 생각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생각이 형상화 된 것, 오감화 된 것, 물질화 된 것이다.

물질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는게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붙들고 있는 지금 붙들고 있는 그 생각이 눈에 보이고 촉감화돼서 손에 만져지면 그걸 물질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유수산도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고 100년 전에 말을 했었죠.

근데 어느 과학자가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시원시를 잘 번함으로써 아 다 가짜구나 하는 사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울 명상 하시는 분들은 특히나 거울 명상할 때 나는 내 방에 앉아서 나는 방안에서 거울 명사를 한다는 생각을 나와 동일시에서 붙들고 있죠.

그 생각이 형상화돼서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 동시하는 그 생각을 형상화시켜서 바라보는 진짜 나 창조주는 보이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아요.

텅빈 마음입니다.

텅빈 마음이 꿈속에 현실인 방 안에 들어와서 나로 들어와서 거울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꿈속에 들어와 거울 명사하 거울 명사하는 나는 거울 명사를 하면서 감정들을 느껴 볼 수 있죠.

꿈속에 들어와서 감정을 느껴보는 나는 꿈속에 들어와 있구나라는 사실을 자하고 거울 명상을 해야 돼요.

그럼 나는 꿈속으로 사라져요.

꿈속에 있는 내가 진짜 일는 없잖아요.

아 나는 꿈속에 들어와서 거명사 하고 있구나.

그럼 나는 꿈속으로 사라지고 내가 느껴야 할 감정만 붕뜨게 돼요.

꿈속에 내가 그 감정을 느껴보는 순간 텅빈 마음인 창조주는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왜 통황빈 마음은 무한한 선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선이기 때문에 그 응어진 감정들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픔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무조건 정신입니다.

몸이 아픔을 받아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몸 자체가 아픈데 아픈 몸이 아픔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몸을 벗어나야 몸의 아픔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렇다면 거울명산할 때 몸이 거울 속으로 사라졌는데 어떻게 내가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 이렇게 반문하신 반문하실 분들도 계실 겁니다.

몸이 사라진다고 해서 내가 감정을 못 느끼는 건 아니에요.

몸은 그냥 에너지 덩어리에요.

에너지 진동체.

에너지 진동체가 역시 에너지 진동체인 감정을 느껴 줄 수 있습니까? 느껴줄 수는 있죠.

에너지 진동 주파수가 서로 다르니까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그 감정을 느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아무 감정도 없는 텅빈 무한한 무한한 마음 무한한 사랑이죠.

그리고 감정을 느껴 주는 몸.

영어로는 링바디 느끼는 몸.

감정을 느끼는 소프트웨어는 몸이 사라져도 그대로 존재해요.

내 몸이 죽어도 감정을 느끼는 소프트웨어는 존재예요.

내 조상들이 수백년 전에 수천년에 죽었어도 조상들의 응어리진 감정은 그대로 존재해요.

왜? 느끼는 몸속에 그대로 저장이 돼 있거든요.

그래서 그걸 느껴 줘야 풀잖아요.

그래서 나와 공명하는 조상들의 응어진 감정도 내가 그 감정들을 느껴주면 함께 공명이 돼서 풀려납니다.

내 가족들의 응어리진 감정도 마찬가지고 내가 응어진 감정을 내 감정을 느껴주면 가족들의 응신 감정도 동시에 푸전합니다.

입니다.

영상 정리

영상 정리

1. 저는 어린이집 원장인데 대기자가 400명 넘어요. 아이들이 100% 차 있어요.

2. 다른 지역 어린이집도 맡아서 1억 들여 시설을 고쳤어요.

3. 처음에는 아이들이 절반도 안 차서 걱정했어요.

4. 하지만 아이들이 줄어 적자가 계속됐어요.

5. 작년 아동학대 신고도 받았지만 무혐의였어요.

6. 저는 돈이 없더라도 어린이집이 잘 되길 바래요.

7. 일이 생기면 돈이 더 들어가서 힘들어요.

8. 또 다른 어린이집도 맡게 되어 고생이 많아요.

9. 몸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다고 착각해요.

10. 몸은 내 생각과 무관하게 무식적으로 움직여요.

11. 우주 전체도 내 생각대로 움직인다고 상상해보세요.

12. 현실은 내 생각과 동시에 펼쳐지는 홀로그램이에요.

13. 나는 생각하는 대로 문 밖에 나가거나 마실 수 있어요.

14. 몸은 내 생각대로 무식적으로 움직여요.

15. 우주 전체도 함께 움직여야만 가능해요.

16. 우주 전체가 움직이면 내 몸도 움직여요.

17. 내 몸과 우주는 서로 분리되지 않아요.

18. 우주 전체를 창조하는 창조주가 바로 나예요.

19. 나는 꿈속에 들어온 창조주이기도 해요.

20. 몸을 나라고 착각하면 고통이 계속돼요.

21. 나는 몸이 아니라 텅빈 마음인 창조주예요.

22. 내 생각과 감정이 현실을 만들어내요.

23. 원치 않는 감정을 억누르면 현실도 고통스러워져요.

24. 두려움도 내가 만든 꿈속 감정이에요.

25. 두려움을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게 사라져요.

26. 현실이 진짜라고 착각하면 고통이 계속돼요.

27. 나는 창조주가 만든 꿈속에 살고 있어요.

28. 꿈속에서 사라지고 텅빈 마음이 진짜예요.

29. 내가 느끼는 감정은 창조주가 느끼는 것이에요.

30. 감정을 억누르면 고통이 계속돼요.

31. 몸은 감정을 받아줄 수 없어요.

32. 감정을 느끼려면 몸이 사라져야 해요.

33. 우주 전체가 움직이면 내 몸도 움직여요.

34. 내 생각과 우주가 함께 움직이게 돼요.

35. 나는 우주 전체를 움직이는 창조주가 될 수 있어요.

36. 나는 꿈속의 창조주이기도 해요.

37. 꿈속에 수많은 나들이 있어요.

38. 나는 그 꿈속에서 깨어나야 해요.

39. 현실은 내가 만든 홀로그램이에요.

40. 나는 내 생각과 감정으로 현실을 창조해요.

41. 몸을 나라고 착각하면 고통이 계속돼요.

42. 현실은 내 생각이 형상화된 것뿐이에요.

43. 물질은 내 생각이 만들어낸 환상이에요.

44. 과학자도 물질이 가짜라고 말했어요.

45. 나는 생각으로 꿈을 꾸고 있어요.

46. 거울 명상도 내 생각이 형상화된 거예요.

47. 몸이 사라져도 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48. 감정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느껴요.

49. 조상, 가족의 감정도 내가 느끼면 풀려나요.

50. 감정을 느끼면 응어리도 풀어져요.

51. 결국 현실은 내 생각과 감정이 만든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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