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유튜브 영상의 자막과 AI요약을 추출해보세요

AI 요약 제목

지성소 해설과 성막 비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방법

원본 제목

지성소에 거하는 삶 [히브리서 32] - 고성준 목사 설교 수원하나교회 : 갓피플TV [공식제휴]

갓피플TV

조회수 조회수 1.9K 좋아요 좋아요 75 게시일 게시일

설명

▶ 개척교회 사역지원금 후원하기 국민 787237-04-000974 예금주 : (주)갓피플 https://cnts.godpeople.com/p/6761 -------------------- ❤️ 갓피플성경 쿠폰을 선물해보세요! 81%할인중 https://gpbible.godpeople.com/groupon -------------------- 설교본문 : 히9:3-9 ▷말씀읽기 가장 좋은 갓피플성경 ▷https://gpbible.godpeople.com ▷지금 무료 설치 후 바로 이용해보세요. ---------------------------------------- 매일 업로드 되는 설교 말씀으로 내 영혼을 충전하는 갓피플TV ---------------------------------------- ○ 갓피플TV 의 모든 설교 및 영상의 저작권은 해당 교회에 있으며, 갓피플TV는 각 교회와 정식 허락을 받아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 업로드된 모든 설교 및 영상은 사전 허락 없이 무단 복제 및 배포, 공중송신 등의 이용을 금지합니다. ○ 무단으로 이용하는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유튜브에 신고하며, 저작권법 및 관계법령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자막

자막

전체 자막 보기
히브리서 9장 3절부터 9절입니다.

히브리서 9장 3절부터 9절입니다.

다 같이 한 목소리로 3절부터 읽습니다.

시작.

둘째 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읽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황아리와 아론의 쌍란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이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1년에 한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성령이 이로서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아멘 지난 시간에이어서 성막에 대해서 계속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막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요.

성막들이 있고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니까 무슨 말이냐면 그것은 어떤 영적인 것들, 하늘에 있는 것들을 상징하고 있는 거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이제 어 성막들과 성소에 대한 것을 살펴봤고요.

그 오늘은 이제 마지막으로 지성소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 지성소는에 성소하는 휘장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그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상징합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상징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었지요.

오직 대제사당만 1년에 딱 하루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지성소 안에는 두 가지 기구가 있는데 하나는 금향로고 그리고 하나는 언약교입니다.

근데이 금향로라고 하는 건 지난번에도 살펴봤지만 지송소 안에 그냥 상조하고 있는 기구가 아니라 대제사장이 들고서 성소와 지송소 사이를 왕내하는 거예요.

예.

그래서 거기다 불을 피우고 향을 내서 지송소로 가지고 들어가지요.

자, 그러니까 지송소 안에서 그냥 창조하고 있는 것은 언약 하나가 있는 겁니다.

지성소 안에 언약가 있는 거예요.

자, 우리가 언약 또는 속재소 이렇게 여러 개로 얘기하긴 하지만 언약교라고 하고 또 속재소도 있고 그룹들도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사실은 어 속재소라고 하는 건 뭐냐면 언약교의 뚜껑입니다.

언약뼈가 있으면 그 위에 뚜껑으로 덮어 놓는 걸 속재소라고 부르는 거고요.

그다음에이 그룹 천사들은 어 표현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그냥 뚜껑잡이 같은 겁니다.

그냥 네.

그니까 뚜껑 위에다가 이렇게 그 그룹들을 조각상을 만들어서 그게 그냥 붙여 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뚜껑에 그냥 일부라는 거예요.

뚜껑 손잡이라고 표현하면 조금 어 뭐좀 그러긴 한데 하간 그 모양만 놓고 보면 그런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이 결국 언약비 하나가 있는 거지요.

언약계 위에 뚜껑이 있고 그 위에 뭐가 이렇게 붙어 있는에 이게 이제 지성소 안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이것을 따로따로 언약의 속재소 뭐 그룹들 이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또 어떨 때는 언약계라고 하면이 그냥 통째로 하나를 언약교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래서 뭐 구약 성경에 보면 뭐 전쟁 때 언약계를 매고 간다든지 이럴 때는 뭐 뚜껑 빼놓고 이렇게 언약계만 가져고 가는게 아니고요.

그거 전체를 그냥지고 가면서 언약다 이렇게 부르는 거거든요.

그니까 엄밀하게 얘기하면 언약가 있고요.

그 위에서 속재 죄사를 드리지요.

피를 부어서 제사를 드리기 때문에 위에다 이렇게 부니까 그 뚜껑 부분을 속재가 드려지는 곳이다 해서 속재소라고 따로 이름을 붙인 것이지 엄밀하게 얘기하면 그냥 언약교에 한한 일부라고 생각해도 뭐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자 그래서 언약교가 이간 지성소에 있는 거예요.

자이 언약교회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예요.

하나님이 여기 계시다 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언약입니다.

그래서 구약에도 보면이 언약계는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했어요.

그러니까 전쟁 때 언약계를지고 가지요.

의미가 뭡니까? 하나님이이 전쟁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와 함께 있다 하는 뜻이었고요.

또 다윗이 그 어 언약회를 오베데돔의 집에서부터 다윗성으로 가져오지요.

그 의미도 뭐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다윗성으로 모셔온다.

이런 뜻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언약계는 항상 그 성경 성경 전체에서 언약계가 상징하는 것은 일관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예요.

자, 그렇기 때문에이 언약교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있죠.

뭐 세 가지가 들어 있는데이 들어 있는 것은 뭐예요? 하나님 안에 있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상징하겠지요.

그래서 언약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어떤 속성,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께 속한 것 그런 것들을 영적으로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런 걸 상징하고 있다는 거예요.

자, 구체적으로 세 가지가 들어 있죠.

만나가 들어 있고 아론의 쌍난 지팡이가 들어 있고 언약을 새긴 돌판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이 세 가지는 하나님께 속한 것, 하나님 안에 있는 것, 하나님께 속한 것, 하나님의 속성 그런 것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이 세 가지 어 그 언약 안에 있는 세 가지를 중심으로 오늘 지성수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 첫째 언에는 만나가 들어 있어요.

자, 만나가 뭔지는 다 아시겠죠? 그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늘에서 매일 먹을 것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니까 만나는 뭐냐하면 아무것도 없던 척박한 광야에서 그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공급하심을 상징합니다.

아멘.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는 항상 두 가지가 함께 따라오는데 그것은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입니다.

아멘.

그러니까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면 당신 앞으로 나오는 자들에게 항상 공급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시라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께 내제되어 있는 하나님의 내제된 속성이라는 거예요.

그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면 당신 앞에 나오는 자들이 있으면 항상 공급하시고 보호하시는 그런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멘.

자,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를 피난처라고 했고요.

또 히브리서 저자도 히브리서 6장에서 여호와를 피난처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 역시 동일하게 묘사합니다.

다음 부자 같이 한번 볼까요? 시작.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공한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당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 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 같이 주께서 이방인의 소란을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린 같이 포악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애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 하실 것이며 예 아멘 이게 하나님의 변치하는 속성이라는 거예요.

누구든지 예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오는 자는 그곳에서 피난처를 찾게 됩니다.

아 혹시 여러분들이 환난 가운데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호와께 피하십시오.

그분이 피난처이십니다.

아멘.

포악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 피하십시오.

그분이 피난처이십니다.

아멘.

험악한 인생의 폭풍 가운데 계십니까? 여호와께 피하십시오.

그가 피난처이십니다.

아멘.

빈공하고 가난한 가운데 있습니까? 여호와께 피하십시오.

그가 피난처이십니다.

광야의 포감 폭염 가운데 있습니까? 질병의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경제적인 위기 가운데 있습니까? 여호와께 피하십시오.

그가 피난처이십니다.

그는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십니다.

아멘.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에게 피하는 자는 누구든지 누구든지 보호하시고 공급하는 분이세요.

당신에게 피하는 자에게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애를 베푸시는 분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아멘.

여호와의 임는 금아리 안에 담긴 만나가 있어요.

하늘에서 매일매일 내려 주시는 만나의 은혜가 있습니다.

척박한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피난처가 되셨고 공급자가 되셨고 지금도 그러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인생의 모든 황량함과 척박함을 안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가요.

왜냐하면 그곳이 피난처니까.

내가 의지할 일은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시며 나를 도우실 일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고 내가 피할 것 역시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아멘.

아멘.

이것이 우리가 지성소로 들어가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성소에서 항아리에 담긴 만나 우리를 향한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멘.

자, 두 번째 두 번째 언약 교환에는 아론의 쌍난 지팡이가 있어요.

자,이 아론의 쌍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상징합니다.

자, 아론의 쌍난 지팡이는 구약 성경에 보면 민수기 16장과 17장에 고라의 반역 사건이 일어났을 때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어, 그 민수기 16장 보지요.

자, 시작.

레위의 증손 고아의 손자 이스의 아들 고라와 르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바단과 아비람과 벨레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위간 250년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군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예.

자, 고라의 무리들이요.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반란을 일으켰는데이 반역에 많은 지파들이 흔들렸던 거 같아요.

여기 보면 총회에서 인정받는 자 250명의 지위자가 함께했다고 해죠.

그러니까 250명이 함께했다는게 아니라 그 각 어 뭐 가문이라 그럴까 문파라 그럴까 하여간 거기에 250 가문 이상이 함께했다는 거예요.

굉장히 큰 숫자였던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이 모세하고 아론이 곤란해졌지요.

뭐 그냥 몇 명 반역하는 거 가지고 곤란해질리는 없잖아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뭐 그랬던 거 같아요.

자,이 많은 사람들이 동조했다고 하는 건 뭐냐면 고라가 주장했던게 굉장히 그럴 듯하게 들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동조하지 뭐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데 동조하겠습니까? 굉장히 그럴 듯하게 맞는 말처럼 들렸다는 것입니다.

고라가 뭐라 그랬냐면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계신데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너희만 특별하다고 스스로 높이느냐? 그러니까 뭐냐하면 그 모세와 아론한테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데 다 같이 공평하고 평등하게 해야지 왜 너희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느냐 그거예요.

예.

그러니까 이들의 주장은 뭐냐면 차별롭고 민주적으로 하자 이겁니다.

차별롭고 민주적으로 차별 금지법 폐지하자 아니야.

폐제하는게 아니지.

만든자 뭐 이거죠.

예.

예.

차별롭고 민주적으로 아니 너희는 뭐 투표한 것도 아니고 또 보면은 어 많은 백성들이 광야에 나와 보니까 고생이잖아요.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뭐라 그랬습니까? 돌아가자 그랬습니다.

예.

이제 예.

예.

돌아가자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랬는데 아마 많은 백성들이 그랬을 90% 이상이 그랬던 거 같은데 그러면 백성이 그렇게 요구를 하면 뭐 하다 못해 듣는 척이라도 하든지 아니면 국민 투표를 해 가지고서 정말 여론이 그러면 그거 들어 줘야죠.

올바른 리더십이지.

너는 도대체 뭔데 백성이 뭐라 그러든지 꿈쩍도 하지 않고 그냥 네가 할 길 가냐.

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이냐 이거죠.

그러니까이 고라가 주장했던 게요.

상당히 합리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차별 없이 하자.

차별금 지법 만들자.

그 뭐예요? 민주적으로 하자.

왜? 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데 너는 그냥 어 네가 그렇게 독선적으로 하냐? 뭐 그런 거였어요.

자,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뭐냐면 이게 궁극적으로 또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라는 거예요.

궁극적으로.

예.

뭐 이제 백성들이 원한다고 전부 다 들어 주는 거 이게 옳다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이 뭐예요?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도 계신데 이게 사실 종교 개혁이잖아요.

사실 이게 종교 개혁의 이슈였잖아요.

예.

이 뭐 사제들만 또는 특별히 헌신된 어떤 그런 사람들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많은 제사장이 돼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 하는게 종교 개혁이었잖아요.

그러니까 고라는 여러분 시대를 앞서간 사람입니다.

시대 구약 시대 때 이미 종교 개혁을 주장했던 그런 사람이라는 거죠.

자, 그러니까 이게 궁극적으로 그렇게 틀린 말은 또 아니에요.

요씨만 놓고 보면.

근데 문제가 뭐죠? 타이밍이 안 맞는 거죠.

여러분, 영적인 일에 있어서 내용만큼이나 내용보다도 더 중요한게 타이밍입니다.

타이밍.

자, 문제가 뭐냐면 이때는 아직 성령께서 임하시기 전이었다는 거예요.

자, 여러분, 만인 제사장주의가 나오는게 뭡니까? 이게 새 언약으로부터 나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구약 시대가 지나고 복음은 뭐냐면 예수께서 피흘리심으로 새 언약을 맺으셨는데 새언약의 내용은 지송소로 들어가는 길을 여셨다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들어갈 수 없었는데 이제는 누구든지 지송소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뭐예요? 선택된 특별한 사람 대자사장 그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새롭고 산기를 여셨다는 거잖아요.

그게 새 언약인데이 새언약으로 인하여 이제는 대제사장 한 명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똑같이 동등하게 차별없이 하나님 앞에 들어갈 수 있다 하는 것이 새 언약의 내용이고 그게 종교 개혁이죠.

그런데 문제는 아직 성령께서 오신 시대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게 성령께서 임하셔서 이제 우리 안에 거하시기 시작하면서 이런 시대가 열렸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아직 구약 시대라는 거예요.

음.

이 이 성령이 임하시기 전이라고 하는게 왜 중요하냐 하면 영적인 리더십의 본질은 성령의 기름부심이기 때문에 그래요.

뭐 세상 리더십은 우리가 있지만 영적인 리더십의 본질은 분명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심이에요.

그래서 구약 시대 때 보면 왕이라든지 선지자라든지 제사장이라든지 이런 영적인 리더들은 어떻게 해요? 기름을 부어서 세우죠.

이게 뭐에 대한 예표겠어요? 예.

그러니까 십자가 이후에 다가올 성령의 기름부심에 대한 예표를 미리 행하는 거지요.

그니까 구약의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것을 계속 영적인 것들을 예표하듯이이 기름부심도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영적인 리더십의 본질은 뭐냐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라는 거예요.

성령의 임재 속에 거하는 사람.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고 함께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그러니까 이게 뭐냐하면 모세 보세요 여러분 모세는요 어 성령의 임자가 함께했어요.

하나님의 임자가 함께해서 신에서 내려오니까 보였어다.

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그 성령이 함께하심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존중하고 리더십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이게 성령께서 주시는 영적인 리더십이라는 거예요.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를 쫓아서 다스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 담대함으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 이게 영적인 리더십이지요.

그런데 구약 시대 때는 뭐냐면이 성령의 기름부심이 특별한 몇 명에게만 임했던 시대라는 거예요.

모세, 다윗, 선지자들 뭐 이런 사람들 외에는 성령의 기름부심이 임한 적이 없어요.

그런 시대라는 거지요.

그런데이 고라가 너희나 나나 우리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럼 이건 도대체 무슨 리더십을 의미하는 걸까? 성령이 성령이 자기에겐 없는데 그니까이 사람들이 모든 백성들이 다 압니다.

모세는요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보니까 와 저건 사람의 얼굴이 아니야.

하나님이 함께 하셔.

모세의 능력을 보니까 거기 함께 하신 하나님이 그냥 보여.

그런데 우리랑은 달러.

이걸 알거든요.

나도 알고 모세도 알고 다 알아요.

그런데 나도 모세하고 똑같이 할 수 있다라고 하면 도대체 이게 무슨 무슨 리더십을 의미하는 건가? 분명히 모세에겐 성령의 임재가 있고 성령의 기름부심이고 우리에겐 없는데 그런데도 우리나 모세나 똑같이 똑같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얘기한다면 한번 생각해 봐야 돼.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리더십은 도대체 뭐지?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리더십은 도대체 뭐지? 그러니까 이거는 성령의 임재하심 때문에 온 리더십이 아닌 거예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뭔가? 인간의 지혜로 할 수 있는 뭔가? 그것을 리더십이라고 생각한 거지요.

음.

그래, 여러분, 그래서 고라의 무리가 생각했던 리더십은 인본주의적인 리더십입니다.

성령의 권위 때문에 오는 리더십이 아니라 그냥 인간의 지혜, 인간의 능력, 뭐 좀 똑똑해서 사람들 잘 자리에 잘 이렇게 이끌 수 있는 어떤 제주, 탤런트 뭐 이런 거 그런 것들을 생각한 리더십이라는 거죠.

인본주의적인 리더십이었습니다.

자, 인본주의 리더십의 본질이 뭡니까? 그것은 백성들이 억울하지 않게 공평하게 평등하게 잘해주고 백성들이 요구하는 것 그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든 진노하시던 상관없이 하간 백성들이 요구하는 것을 잘 들어 주는 거지요.

이게 인권주의 기준에서 민주적이고 좋은 리더십입니다.

음.

그리고 여러분 고라가 주장했던게 정확히 두 가지 아니었어요.

첫째 회중 전체가 다 똑같은 사람인데 왜 모세와 아론만 스스로 높여서 우리 군림하느냐? 그니까 뭐예요? 왜 너희만 권력을 다 독점하고 있느냐? 차별이다.

평등하지 않다.

어, 그 이야기였고.

둘째, 사람들이 광야에서 힘들어한다.

왜 우리를 광야로 데고 나서이 고생을 시키냐? 백성들의 요구가 있는데 이게 절반비만의 요구라면 뭐 오케이.

그런데 70%, 80%, 90%가 이렇게 원하면 좋은 리더라면 그 들어 줘야 되는 거 아니냐.

왜네 마음대로 하냐? 90%의 사람이 이거 하자 너 혼자 이거 한다고 이거 하면 그게 민주적인 리더십이냐? 그건 나쁜 리더십이다.

예.

그게 고라가 주장했던 주장이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뭐예요? 인본주의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본주의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 줘요.

백성들의 불만이 없도록 인률적으로 평등하게 대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건 모르겠고 하간 백성들이 원하는게 있다면 다 줄어 줘.

이게 인본주일이다시피에요.

이게 여러분 상당히 민주적으로 들릴 수도 있고 좋게 들릴 수도 있는데 문제는 뭐냐면 하나님의 뜻이 개입될 수 있는 룸이 없어요.

하나님의 뜻이 개입될 수 있는 틈이 없어요.

모세가 여러분 90%의 백성들이 부르짖는데도 그렇게 안 한 이유가 뭐예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 그러신 거잖아.

그러니까 모세는 사람들 앞에 무릎 꿇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무릎 꿇은 사람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모세의 리더십이 시작되거든요.

영적인 권위가 거기서부터 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간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걸 따라가는게 무세입니다.

그런데이 인본주의 리더십에는요.

이 틈이 없어요.

그냥 그냥 많은 사람들이 원하면 그냥 그거 해야 되는 거야.

이게에 예.

음.

그래서 인본주의 리더십은 성령과는 무관한 리더십입니다.

뭐 세상에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적인 리더십은 이렇게 발휘되면 안 되는 거죠.

적어도 영적인 리더십은 이렇게 발휘되면 안 되는 거예요.

자, 그래서 이들이 생각했던 리더십은 사람의 욕구와 생각을 만족시키는 인본주의 리더십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눈에는 그런 것밖에 안 보였던 거예요.

왜? 영이 없으니까.

성령께서 임하시기 전이라며 영이 없어요.

영이 없는 사람에게는 육적인 것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영적인 것은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고 때로는 극단적으로 보이고 때로는 또라이처럼 보이고 뭐 이런다는 거예요.

왜? 영이 없으니까.

성경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다음 절 읽어 볼까요? 시작.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며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성경이 여러분 명확하게 얘기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 영이 없는 사람은 성령이 내주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인 일을 분별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상하게 보인다는 거예요.

어리석게 보인다는 거예요.

이해도 안 되고 어리석고 어 예 극단적으로 보이고 또라이처럼 보이고 뭐 이런다는 거예요.

제 얘기가 아니 그냥 성경이 한 얘기입니다.

성경 고린도 전사에서 하는 얘기예요.

예.

육에 속한 사람은 성 어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는 그것이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며 알 수도 없나니 그것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게 뭐냐면 지성소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에요.

고라가 대표하고 있는 고라로 대표되는 지성소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음.

자,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개입해서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17장입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 중에서 각 조상의 가문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되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위관에게서 지팡의 열도를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에 쓰되 레위의 지팡 위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각 수령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 앞에 두라.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아멘.

예.

아론의 지팡에 싹이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누구를 지지하는지를 보여 주시는 거예요.

누구를 지지하는지.

이게 아론의 쌍난 지팡이의 영적인 의미입니다.

네.

너희 눈에 이상하게 보인다고 어리석게 보인다고 극단적으로 보인다고 또라이처럼 보인다고 아니야.

나는 너희가 그렇게 보고 있는 모세와 아론을 지지해.

얘기하시는 거잖아요.

너희는 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 그러고 너희는 그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하고 너희는 그 사람들이 뭐 어쩌고 저쩌고 얘기를 해도 나는 그 모세와 아론을 지지해.

아멘.

이 하나님의 지지하심 이게 바로 여러분 영적 권위의 근거라는 거예요.

아멘.

하나님이 지지하시는 것이 모든 영적 권위의 근거입니다.

아멘.

예.

예.

영적인 권위가 어디서부터 옵니까? 사람들의 환호.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정책, 뭐 지혜로운 판단, 공평한 분배, 민주적인 절차 아 비밀적으로 하자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하여간 뭐 이런 것들에서 그 그니까 영적인 리더십이 오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 데서 영적인 리더십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리더십은요.

뭐 사람들은 이런 데서 리더십의 근거를 찾을지 몰라요.

사람들은 이런 데서 리더십의 근거를 찾을지 몰라도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영적인 권위는 그 근거는 아론의 쌍난 지팡이라는 거예요.

아멘.

아론의 쌍난 지팡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지지하시는 거라는 거예요.

네가 옳다 나는 너를 지지한다.

나는 내 편이다.

내가 가는 곳에 나도 갈 것이고 내가 멈춘 것에 나도 멈출 것이다.

이거이 하나님의 지지하심이 모든 영적인 권위의 근거입니다.

아멘.

아멘.

그리고요.

이 권위는 지성소에 나가는 자들에게만 주어져요.

왜? 아론의 쌍난 지팡이는 지성소에만 있거든.

예.

그 여러분 두 종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지하심을 얻고 사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요.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 인생이 있습니다.

당당하게 뭐 내가 뭔 말을 하든 무슨 선택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하나님이 나를 지지하셔.

내가 어디 가든지 하나님이 그곳에 함께 가시고 내가 무엇든지 하나님께서 그 일에 지지하셔 이런 인생이 있는가 하면 눈치 보는 인생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지지하실 것 같지 않은데 별로 기뻐하실 것 같지 않은데 그래도 한번 찔러 보는 거야.

그래도 혹시 이렇게 쿡 찔러 봤더니 어 괜찮네 뭐어나 이렇게 하면 천벌 떨어질 줄 알았더니 벼락 떨어져 안 떨어지네.

이게 조금 더 찔러 볼까? 오 이것도 괜찮네.

조금 더 찔러 봐.

이 인생이 있다는 거예요.

응.

계속 하나님 찔러 보는 인생.

이렇게 하면 진노하시나? 어, 요까진 괜찮네.

그러면 요만큼.

아니, 하나님이 지지하지 않으시는 거 같으면 하나님이 노하시든 벌하시든 상관없이 그만 둬야지.

그래서 하나님의 지지하심을 받는 인생이 돼야지.

아멘.

어떻게 하나님이 지지하심이 아니라 진노하심을 간신히 피하면 괜찮은 인생.

그게 여러분 인생이 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든 무슨 말을 하든 하나님이 우리 말 위에 지지하여 주시고 네가 뭐라고 말할 때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를 해도네 말을 내가 지지해.

아 인생이 돼야지.

아멘.

아 하나님이 요만큼 찔러 보면 어 여기까진 괜찮네.

아직은 저라 안 내리셨어.

조금 더 찔러.

여기도 괜찮네.

이게 여러분 얼마나 구한 인생입니까? 예.

면피 인생이잖아.

면피 인생.

응.

죄만 아니면 다 하겠다는.

어 이런 인생 되시면 안 돼요.

아멘.

진짜 복되고 진짜 충만한 인생은 뭐냐면 하나님 지지하시는 거예요.

내가 뭔 얘기를 하든지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지간에 하나님이 지지하시는 그 인생이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멘.

물론 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에 하나님 지지하신다는 얘기 아닙니다.

우리 뭐 실수도 하고요.

죄도 짓고요.

다 하죠.

그런데이 뭐 뭐 넘어지고 실수하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건 우리 마음의 중심 보시는 거예요.

비록 우리가 육신이 연약해서 뭐 실수도 하고 어떨 땐 잘못하고 말실수할 때도 있고 이렇지만 그 마음의 중심에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자야.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자야.

아멘.

예.

이 마음의 중심이 있는 사람은요.

하나님께서 지지하시는 거예요.

아멘.

뭐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말 실수도 하고 뭐 잘못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이 지지하신다고 하는 건 뭐냐면이 모든 실수의 뒷당 하나님이 해 주신다는 거예요.

아멘.

아멘.

아멘.

완벽하기 때문에 우리를 지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실수까지도 다 가쳐 주신다는 거야.

아멘.

이게 하나님이 지지하시는 인생입니다.

아멘.

이런 인생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자,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아론의 쌍난 지팡이.

아론의 쌍난 지팡이를 획득하셔야 돼요.

아멘.

어디서 아론의 쌍난 지팡이가 어디 있습니까? 지성소.

아멘.

아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지성소에 들어가는 자에게 아론의 쌍난 지팡이가 주어지는 거예요.

아멘.

아멘.

아멘.

이 2011년 8월이었던 거 같아요.

예.

제가 아침 일찍 이재완 선교사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근데 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하용조 목사님이 아침에 소천하셨다고 8월 2일이었을 거예요.

아마 소천하셨다고 이제 그 말씀을 전해 주셔서 어 제가 아침에 그 갑자기 소천하셨죠.

그 전날까지 설교하시고 다 하시다가 갑자기 이제 뇌출혈료이 오셔서 밤 사이에 이렇게 소천하셨는데 좀 놀란 마음을 이렇게 진정시키면서 어 기도의 자리로 나갔습니다.

서 하나님 앞에 어이 땅에 영적인 거의 이제 소천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어떻게 합니까? 뭐 이런에 한국 교회를 위한 이제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예.

근데 하나님이 뭐라 그러시냐면 내가 다음 리더십을 세울 텐데 어떤 사람이 있을 쓸 거냐면 하나님의 임재를 가지고 있는 사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는 사람을 내가 세울 거다.

성령께서 명확히 말씀하시더라고.

예.

아론의 쌍난 지팡이가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지송소에 들어간 사람.

아멘.

똑똑한 사람이 아니에요.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임재 지성소로 들어가는 사람.

그 사람에게 뭐가 주어지는 거예요? 아론의 쌍난 지팡이가 주어지는 거예요.

아멘.

아멘.

음.

아론의 쌍난 지팡이를 획득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영적인 권위와 하나님의 지지하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아멘.

자, 세 번째.

세 번째.

어,이 언약교 안에는 언약을 새긴 돌판이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았던 돌판이죠요.

이 돌판에는 10개명이 기록되 있다고 하는데 뭐 십계명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대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예.

그래서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과 법이 있으면 하나님의 통치가 있습니다.

네.

그 통치라고 하는 건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그대로 다스리시겠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말씀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냥 우리의 지식을 더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다는 거예요.

이 말씀에 순종할 건지 말 건지 하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거예요.

그래서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지성소에 나가면 항상 말씀의 무게가 있습니다.

그니까이 말씀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지성소에 들어가 있지 않다는 거예요.

지성소에 들어간 사람은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펼치면 그 말씀은요 무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나는 선택해야 되는 거예요.

이 말씀 앞에이 통치 앞에 무릎을 꿇을 건지 아니면 내 맘대로 할 건지.

그 무게가 있는 거예요.

항상 그 무게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송소는 하나님의 말씀의 무게가 있는 곳입니다.

창조주의 질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마땅히 해야 될 바와 하지 말아야 될 규범, 지성소는이 말씀을 대면하고 그 말씀의 무게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성소예요.

자, 율법에는 율법 또는 말씀에는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니까 부정적이면은 뭐냐면 정죄가 있고 심판이 있는 거지요.

왜? 통치가 임하니까.

정죄가 있고 심판이 있습니다.

뭐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있는 육체는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게 율법의 부정적인 면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연악함 때문에 그렇죠.

지키면 좋지만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이 정제와 심판을 언약를 덮고 있는 속죄소에서 다 처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이 정제와 심판을 다 제거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성소에는 뭐가 있냐면 은혜가 있어요.

은혜가 있어요.

자,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지성소에서 은혜 그 그 자 속재소의 은혜가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폐기 처분한 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폐기 처분한게 아니라 율법이 주는 정죄와 심판을 폐기 처분한 거죠.

이해가 되세요? 율법은요.

율법은 예, 그냥 언에 그대로 있다는 거예요.

만약에 율법을 폐기 처분하는 거면 그걸 빼서 언약계 밖으로 버려야죠.

그래야 상징적으로 맞는 의미죠.

율법이 폐기 됐어.

그럴 거면 그걸 빼서 버려야 되는데 그러는게 아니라 그 돌파는 그대로 언약기 안에 있어요.

살아 있다는 거야.

그런데 그것에 의해서 주어지는 정죄와 심판을 하나님이 폐기 처분하셨다는 거예요.

율법을 폐기 처분한 것이 아닙니다.

음.

돌판에 의한 정제와 심판이 없어진 거죠.

돌판은 그 자리에 지성소 안에 여전히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작.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패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1.

1핵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아멘.

율법은 없어지지 않는데요.

폐기 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율법의 결과 정죄와 심판을 폐기 처분한 거지요.

율법은 율법 자체는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율법은 1점 위력도 없어지지 않아요.

왜? 율법은 단순히 우리를 정죄하는 나쁜 것이 아니라 율법은이 온 창조 세계의 기초기 때문에 그래요.

예.

예.

그래서 성경에 보면 히브리서 1장에 보면 말씀으로 만물을 붙잡고 계시대요.

그러니까 말씀이 모든 피조 세계의 근간을 이룬다는 거예요.

근간 기초를 이루고 있는게 말씀인데 이게 팩이 돼 버리면 그냥 피조 세계가 무너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은 절대로 팩이 되지 않습니다.

예.

긍정적인 면들이 있기 때문에 뭐 긍정적인 면이란 표현 자체가 어폐가 있는데 하간 율법의 부정적인 면은 우리의 죄 때문에 나중에 생긴 어떤 부수적인 것이고 율법의 본래 역할은 하나님의 나라 창조 세계를 세우는 거예요.

우리의 삶을 세우고 우리를 영적으로 살리고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고 그게 말씀이라는 거예요.

예.

자,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다음절 시작.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예.

유익하다는 거예요.

말씀은 율법은 정죄를 주는 악한 것이 아니라 유익한 거예요.

자, 어떻게 유익하냐면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대요.

의에 해당하는 히브리 말 중에 하나는 체대크라고 하는 단어인데 이건 창조주의 질서란 뜻입니다.

창조주의 질서.

그래서 말씀 앞에 설 때 우리는 창조주의 질서를 대면하게 돼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의, 나를 향한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말씀 앞에 쓸 때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말씀 앞에 설 때 우리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예.

지성소는 나를 향한 세상을 향한 또 우리가 속한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의 그분의 계획과 뜻을 대면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아멘.

성령의 임재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성령께서 우리가 마땅히 향해야 될 의에 대해서 격려하시고 의에서 벗어나면 책망하시고 의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교훈하십니다.

저런데 말씀은 단순히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을 넘어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 돼요.

자, 말씀을 대면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살아 계신 성령님의 역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게 지성소에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지성소.

그러니까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갈 때 우리는 말씀이 살아서 능력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거예요.

단순히 어떤 교훈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온전하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고 지혜를 주고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자, 반대로 여러분 지성수에서 말씀을 대하지 않고 육체로 말씀을 읽는 사람들은 어떨까요?이 성경에 보면 여러분 돌판을 어디다 두셨어요? 지송소 안 해 두셨어요.

그 얘기는 뭐예요? 돌판이 돌판이 상징하는 건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그 얘기는 뭐예요? 말씀은 지성소에서 돼야 된다는 거지.

지성소에서 돼야 돼.

그러니까 성령의 임재 가운데 말씀을 대야 되는 거지.

이거를 성막 뜰로 끌고 나서 막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예.

예.

그러니까이 돌파를 말이에요.

성막 뚫로 긁고 나서 들고 나서 거기서 보고 거기서 말씀을 읽고 이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말씀은 어디서 대하는 거예요? 지성소에서 대하라고 하나님이 그곳에 딱 두셨다는 거예요.

자, 그런데 지성소에서 말씀을 대하지 않고 성막 뜰로 끌고 나서 대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육체로 말씀을 육체로 말씀을 읽으면 첫째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에 회의가 들어요.

정말일까? 아이 말씀이 진짜일까? 천지를 창조하신게 진짜일까? 7일 동안 창조하셨다는데 아니 이상하다.

어 7일이라고 했을 때 그 하루가 지금의 24시간까? 아니 지구도 만들어지기 전인데 하루라고 하는 건 어디서부터 왔지? 과연간 온갖 생각이 다 듭니다.

음 뭐 예 그 나사로는 정말로 부활했을까? 아니면 예수께서 무리를 걸으셨다는데 예수님 발은 오리발인가 뭐 별 생각이 다 드는 거죠.

또 노아의 홍수를 읽다 보면 아니 노아의 홍수 때 홍수가 났으면 민물고기 민물고기든지 바닷곡기든지 하나는 멸종했어야 되는데 왜 두 가지가 지금도 다 있느냐? 제가 성령 받기 전에 실제로 고민했던 내용들이에 이런 거 가지고 막 이제 고민하면서 이게 정말일까 이런 거 이제 고민하는 거지요.

여러분 어이 지성소 밖에서 성경을 읽으면요.

생각이 많아집니다.

머리가 복잡해져요.

회의가 됩니다.

왜? 지성소 밖에 있거든.

성경을 믿어지게 하는 분은 성령님이세요.

아멘.

내가 믿는게 아니라 성경을 믿어지게 하는 분은 성령님이세요.

아멘.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섰을 때 그리고 그곳에서 말씀을 대하면 그 말씀은 그냥 아 단순하게 믿어집니다.

그냥 아멘.

예.

7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아멘.

예.

그냥 믿어지는 거.

왜? 저자가 앞에 계시니까.

저자가 앞에 계세요.

어.

그리고 그분의 말씀이야.

내가 천지를 7일 만에 창조했어.

그 말씀 자체는 우리가 다 풀리 이해는 안 돼요.

그래도이고 지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아이고 저분이 말씀하시면 내가 다 이해 못하는 뭔가가 있겠지 그냥.

아멘.

아멘.

왜? 저자가 지금 앞에서 얘기하고 그 저자가 상상할 수 없는 능력과 권위를 가지신 존경하는 분인데 그 앞에 서서 내가 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딴 생각 들겠습니까? 여러분도 그러시잖아요.

저자가 없는데 그냥 그 사람이 쓴 글을 어디 멀리 가서 친구들이랑 막 얘기하다 보면 에이 이게 정말일까 굴랄지도 몰라 이렇게 얘기하지만 저자가 바로 앞에서 가지고서 내가 그렇게 만들었고 내가 직접 그렇게 했어라고 얘기하는데 그 앞에서 에이 구라야 이런 생각 안 들잖아요.

예.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러니까 성경은 어디서 어디서 봐야 되는 거냐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펼쳐 읽어야 되는 거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성령님의 도심 앞에서 펼쳐 읽을 때 그 말씀이 진리로 믿어지는 할렐루야.

아멘.

네.

제가 성령 받기 전에도 성경을 읽고요.

성령 받고 나서도 성경을 읽었는데 성령 받기 전에는 예.

그 그 아까 했던 온갖 종류의 질문들이 다 제 머릿속에서 복잡했습니다.

왜 제가 증명을 해야 되는 사람이잖아요.

수학과 출신 아닙니까? 증명을 해야 되는데 이게 증명도 안 되는 건데 이걸 믿어도 되는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성령 받고 나니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이요 바보가 됐어요.

그냥 그냥 아멘.

그렇지 그렇지 당연하지.

하나님이신데 이거 여러분 제가 믿는게 아니에요.

그냥 믿어지는 거예요.

아멘.

믿어지는 거예요.

이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아멘.

그래서 성경은요 돌판을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돌판을 지성소에 두셨어요.

끌고 나와서 아무데 막 보게 하지 않으시고 지성소에 두셨어요.

그곳에 들어와서 말씀을 들으라는 거예요.

아멘.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와서 그분의 말씀을 펼치라는 거예요.

아멘.

그러면 여러분 믿어집니다.

아멘.

아멘.

그런데 이걸 자기 마음대로 끌어다가 성전 뜰에 가가가지고 성막 뜰에 가가지고서 막펼쳐서 읽으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지요.

온갖 잡담을 다합니다.

정말 이랬을까? 이게 맞을까? 아, 이거 과장된 거 아니야? 별 생각이 다 들어요.

왜? 저자가 안 보이니까.

저자가 안 보이니까.

예.

둘째, 육체로 성경을 읽으면 육체로 말씀을 대게 되면 인본주의 기독교에 빠지게 됩니다.

인본주의 기독교 평등과 민주적 절차를 얘기했던 고라처럼 인본주의 함정에 빠지게 돼요.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는 이상해 보이는 성경 구절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음.

예.

그래서 아까 고린도 전서에도 어리석게 보인다고 했잖아요.

자, 예를 들어서 아나니와 삽삐라는 왜 죽이셨대요? 이게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아니,이 사람들이 뭐 배교한 것도 아니고 뭐 뒤로 찔러 가지고서이 로마 정부에 고발한 것도 아니고 아, 재산 절도 안 받쳤는데 왜 죽이셔요? 이게 설명도 안 나와 있단 말이에요.

설명도 안 나와 있고 이유도 예, 그리고 또 예수께서 12두제자 뽑으실 때도 선발 기준은 뭐였지? 예.

평가는 어떻게 하셨고 각 사람의 곡과 점수는 한 번도 알려 주신 적이 없어요.

하나도 밝히신 것이 없고요.

그냥 밀실에서 혼자 기도하다 정하십니다.

세상에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니다.

그 12명에서 탈락한 13 번째 사람은 얼마나 오 그랬겠어요? 그렇잖아요.

어 제자 뽑으시는데 자 지금부터 내가 12명 선발할 거야.

기준은 이렇게 할 거고 내가 투명하게 해 가지고서 딱 12명 자를 거야.

이렇게 해야지 우리는 그것이 건전하고 좋은 리더십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전혀 그 기준을 안 따르세요.

전혀.

무슨 기준이 뭔지 말씀도 안 해 주시고.

예.

그리고 나중에 내가 왜 떨어졌는지 설명도 안 해 주세요.

그냥 밀실해서 혼자 기도하시고 그냥 정해 버리셨단 말이에요.

불편하죠.

이게 여러분 이게 인본주의적인 입장에서 보면은 불편합니다.

음 뭐 어 서로 사랑해라, 용서해라 뭐 이런 건 좋지요.

예 그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도 별 문제 없습니다.

좋아요.

그런데 앞서 얘기한 이런 것들은 불편해요.

그러다 보니까 지성소에서 말씀을 대하지 않는 사람은 성경의 이런 불편한 부분들을 인간의 논리로 수정하려고 합니다.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수용할 수 있는 거.

뭐 예를 들면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 평화, 화해 뭐 이런 부분만 강조하고요.

예.

뭐 아 그게 성경에 없는 내용은 아니죠.

물론 성경에 있는 내용이야.

하지만 그 부분만 강조한다는 거예요.

그 부분만 크게 강조하고 예 인본주의제 관점에서 불편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다른 실천적 대안들을 만들어 수정하려고 합니다.

아 뭐 아무리 성경에서 그랬어도 아 그건 그때 당시 문화가 어쩌고 저쩌고 저쩌고 지금 상황에서 그렇하면 안 되고 공평하고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이렇게 해야지 예 수정하려고 하는 거지요.

없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성경에 보면 뭐 가난한 자들 고화 과부를 돌봐라고 하셨고 그들을 배려하라고 하셨고 평화가 중요하고 화해가 중요하고 다 중요하지요.

하지만 침소봉대에서 그것만 받아들여서 그게 전부인 것처럼 얘기하고 그 나머지 하나님의 성령의 강권적이고 주권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아니면 수정하려고 하는 거야.

그건 그 당시에 그랬던 건데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 돼.

뭐 이런 거.

음.

왜 그럴까요? 지성소 밖에 있으니까 하나님의 임재 그 앞에 있지 않으니까 그러니 그냥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겁니다.

저자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못 합니다.

저작가 앞에 딱 속개세요.

그러고 말씀하신다면 그럼 내가 이해가 다 안 돼도 아유 하나님 뭔 뭔 생각이 있으시겠지? 아 내가 다 모르는게 있겠지.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 정상인 건데 하나님의 임재가 보이지 않아요.

예.

저기 성전 성막 들어가서 그냥 자기들끼리 자기들끼리 말씀 펼쳐서 토론하고 있어.

그러면 여러분 아무말 잔치가 되는 겁니다.

아무말잔치.

이 말씀은 여러분 말씀하신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딱 서서 그 하나님의 권위와 무게를 가진 말씀을들을 때 우리가 다 이해되지 않아도 아멘.

하나님이 오르십니다.

이렇게 하게 되는 거지.

아멘.

아니 그렇게 하지 않고 저 밖에 나가서 성전 성막 들려가가지고 자기들끼리 얘기하면 저자는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고 그러면 자기 입맛에 맞는 대로 말하지 않겠어요?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고 저건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거고 아이고 그럼 자기가 성경 쓰지.

그럴 거면 자기가 성경 쓰지.

하나님의 임재가 보이지 않으면요.

인간은 자기가 하나님 된 줄 압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지 않으면 인간은 자기가 하나님 된 줄 알아요.

하나님의 말씀조차 마음대로 그냥음 자기 마음대로 그냥 예고 저건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거고 물론 성경 가운데는 문화를 고려해서 해석해야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

예.

그런 걸 다 무시하는 건 아닌데 인본주의 기독교는요.

그 선을 한참 넘어요.

그 선을 한참 넘어요.

음.

그렇게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왜 그렇게 됩니까? 지성소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분명히 하나님은 말씀을 지성소 안에 두셨는데 인본주의 기독교는 그걸 빼다가 성막들에서 읽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임지 앞에 들어가지 않을 때 우리는 인본주의 기독교로 흐르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해야 될 것은 성막들이 아니라 지성소입니다.

아멘.

율법이 기록된 돌파는 거기에 두셨기 때문에 그래요.

아멘.

아멘.

우리 예배팀 앞으로 나오십시오.

자, 그래서 우리가 지성소로 들어갈 때 우리는 율법의 정주로부터 자유케 되는 은혜를 경험함과 동시에 그분의 말씀 앞에 엎드리는 경외함을 갖게 됩니다.

이게 지성소의 부예요.

그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시다.

매일매일 지성소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음 복음은 뭐냐하면 새 언약의 내용은 뭐냐하면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을 여셨다는 거예요.

아멘.

예.

지송소로 들어가는 문을 여셨다는 거예요.

예.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도 뭐라 그랬어요?에이 구약 시대 때는 어 첫 장막이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그랬어요.

예.

그랬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과하시면서 휘장을 찢으시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새로운 길, 살길을 여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매일매일 그 안으로 들어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대제사장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그 안에 들어갈 수 있고요.

아멘.

지금은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수시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아멘.

지금은 꼭 그곳까지 가지 않아도 모든 곳에 하나님께서 성전을 두셔서 누구든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여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매일매일 그 안으로 들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매일매일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그 골방이 지성소가 되게 하시고 매일매일 여러분들이 예배하는이 교회가이 본당이 지성소가 되게 하시고 매일매일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직장이 지성소가 되게 하시고 하여간 어디든지 우리가 무릎 꿇고 들어가는 그곳이 지성소가 되게 하세요.

어떻게? 성령님의 임재.

아멘.

성령님의 임재.

아멘.

우리 안에 성령께서 내주 아시잖아요.

우리 안에 성령께서 내주 아시잖아요.

성령님 오늘이 장소가 하나님을 대면하는 장소가 되게 하시고 오늘이 장소가 성전 성막 뜰이 아니라 지성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을 대면하는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만나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을 경험하는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아론의 쌍난 지팡이를 받는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고 아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하는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이렇게 기도하셔야 돼요.

그리고 그곳을 지성소로 삼으시고 지성소로 만드시고 지성소로 들어가시는이 은혜의 역사가 날마다 날마다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지송서로 들어가지 않으면요.

여러분 우리는 그냥 종교인이 됩니다.

지송서로 들어가지 않으면 종교인이 돼요.

예.

구약에서 그 열심이 있었던 바리새인들도 그 놀라운 열심을 가지고도 종교인 이상은 넘지 못했잖아요.

지성소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렇게 돼요.

인본주의 기독교 휩쓸리게 됩니다.

고라의 얘기가 맞는 얘기처럼 들립니다.

고라의 얘기 잘 들어 보세요.

여러분 틀린 말 하나도 없어요.

지정소 밖에서 들으면 틀린 말 하나도 없어요.

고라의 얘기가 맞는 말처럼 들려요.

그런데 하나님 그렇게 말씀 안 하시거든요.

나는 고라를 지지하지 않아.

세상 90%의 사람이 그게 맞다고 얘기해도 아니야.

나는 모세와 아론을 지지해.

지송소에서이 말씀을 들으셔야 돼요.

아멘.

지성소에서이 말씀을 들으셔야 돼요.

아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눈치 보는 인생됩니다.

이 사람이 뭐라 그럼 이렇게 휘돌리고 저 사람이 뭐라 그럼 저렇게 휘돌리고 평생을 사람 눈치 보는 사람들이 되는 거예요.

아니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지 사람 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멘.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 꿇는 세상이 뭐라고 얘기하든 사람들이 뭐라고 평가하던 나를 평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아멘 나를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아멘 이걸 붙잡으셔야 돼요.

아멘 그거 붙잡고 살아가셔야 돼요.

아멘 아멘 아멘 지성소의 삶을 사시는 그런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자리에서 나서 [음악] [음악] 기도합시다.

아, 우리 다 함께 기도합시다.

예.

하나님, 우리가 지성소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곳이 지성소가 되게 하여 주시고 여호와 하나님을 깊게 만나는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아멘.

오늘들은 말씀들이 지성소의 말씀이 되게 하여 주셔서 내 삶에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매일매일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면하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십시오.

이 아멘.

이 마음 가지고 우리 주 한번 부어짖고 다 잡시면서 기도하시겠습니다.

[박수] [음악] [박수] [음악] 경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 [음악] 하나님게 하여 주시옵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 [박수] [음악] [박수] 하 [박수] [음악] [박수] [음악] [음악] [음악] [박수] [음악] [박수] 들 [박수] [음악] [박수] [박수] [박수] [음악] [박수] 하여 내가 주를 [음악] 거게하으로 주님 앞에 올랐습니다.

[음악] 받으신이 [음악] 거룩하신 주님께 내가 주를 [음악] 경외하으로 주님 앞에 올로서이라 [음악] 찬양신 귀한 거룩하신 주님 주의 아름다움 주의 아름다음을 갈로다.

[음악] 할 수 없고 주님의 놀라우심을 교회야 할 수가 없네.

[음악] [박수] 누가 지혜를 깨닫고 누가 깊은 사랑 심할 도에 앉으신 주의 [음악] 위 나를 받으신 주님 내가 주를 [음악] 가게하 주님 앞에 올섭니다.

[음악] 바르신 우리 하 [음악] 거룩하신 주님 내가 주를 내가 주를 거하으로 주님 앞에 올렸다.

[음악] [박수] 찬양시한 거룩하신 주님 하나님 우리의 매일매일이 지성소에 관한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주의 임재를 사모하며 성령의 임재 가운데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여 주시고 아멘 하늘에서 주시는 아론의 쌍난 지팡이 그 영적인 권위와 지지하심으로 살아가는 복된 인생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사람의 눈치를 보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지하심을 받는 인생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고 아멘.

그곳에서 어 날마다 공급하시는 주의 만나를 경험하며 주의 말씀에 살아 있는 역사를 경험하는 복되고 풍성한 인생들 다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성막들에서 살아가는 종교인이 아니라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는 정말 참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e
영상 정리

영상 정리

1. 히브리서 9장 3-9절을 함께 읽으며 성막과 지성소를 설명합니다.

2. 성막은 하늘의 모형으로, 세 부분인 성막, 성소, 지성소로 나뉩니다.

3.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상징하며, 오직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습니다.

4. 지성소 안에는 금향로와 언약계가 있는데, 금향로는 향을 피우는 기구입니다.

5. 언약계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세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만나, 아론의 쌍난 지팡이, 돌판.

6. 만나를 통해 하나님의 공급과 보호, 임재를 상징합니다.

7. 아론의 쌍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보여줍니다.

8. 돌판은 하나님의 말씀과 법, 통치를 상징하며, 율법 전체를 대표합니다.

9.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 권위와 연결됩니다.

10. 말씀은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를 의미하며, 성령의 도심으로 믿어집니다.

11. 율법은 정죄와 심판이 있지만, 예수님의 피로 그 정죄가 사라졌습니다.

1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역사 안에서 믿어야 진리로 받아들여집니다.

13. 지성소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보호와 공급, 권위와 말씀을 경험합니다.

14. 오늘날 예수님은 십자가로 지성소의 문을 열어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15. 매일 지성소에 들어가는 삶, 즉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 앞에 서는 삶이 중요합니다.

16. 인본주의적 리더십은 성령의 권위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임을 경계해야 합니다.

17. 성령의 임재와 하나님의 지지하심이 영적 권위의 근거입니다.

18. 하나님이 지지하시는 삶, 즉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서는 인생이 복된 삶입니다.

19. 지성소는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 권위가 함께하는 곳임을 기억합시다.

20. 매일매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소망합시다.

최근 검색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