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없이 탄생한 대박 브랜드, 그라미치의 놀라운 비밀!
그라미치: 바지 하나로 40년을 버틴 혼종의 이야기
리바이스 청자켓, 카라트 워크 자켓, 미군 MA1처럼 시대를 대표하는 디자인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수많은 브랜드에서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지. 오늘 이야기할 브랜드도 마찬가지야.
아웃도어 브랜드는 끊임없이 발전해야 해. 더 가볍게, 더 강력하게. 기술력이 곧 경쟁력이지.
그런데 오늘 주인공은 아웃도어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딱 하나 만든 걸로 40년 동안 발전 없이 살아남았어. 험난한 아웃도어 시장에서 어떻게 버틴 걸까? 그 여정은 생각보다 험난하기보다 좀 어지러워. 어느 나라 브랜드 같아 보여? 끔찍한 혼종이지만 혼종이라 살아남은 브랜드, 그라미치 이야기 시작해 볼게.
1970년대, 캘리포니아 클라이밍 문화와 그라미치의 탄생
지금도 러닝은 핫하지? 멋지게 입고 경쟁하고 기록 측정하는 문화. 50년 전에도 그랬어.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바위를 오르는 클라이밍이 유행이었지.
당시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가장 힙한 장소였어.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왔지. 안정적이고 전통적인 클라이밍이 아니라, 빠르고 자유로우면서 멋을 내는 젊은이들의 문화였어. 마치 지금의 러닝처럼 말이야.
그 동네에는 스톤 마스터라는 클라이밍 크루가 있었어. 이름이 좀 촌스럽지만, 당시엔 클라이밍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크루였지. 그 크루 멤버 중 한 명인 마이크 그레이엄이 오늘의 주인공이야. 고등학교 때부터 클라이밍을 했던 그는 당시 요세미티 클라이머들의 분위기를 좋아했어.
대충 입은 것 같지만 은근히 멋을 부렸지. 페이즐리 셔츠, 페인터 팬츠, 오래된 청바지, 군복 같은 것들을 입고 자유롭고 위험한 것을 즐겼어. 포털 엣지 같은 것도 좋아했지. 그레이엄은 그런 문화를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만들기도 했어. 포털 엣지나 가방 같은 걸 만들었지.
장비에 관심이 많았던 그레이엄은 클라이밍과 등산을 즐겼어. 그러던 어느 날 알프스 등반 중 한 청년을 만났지. 그 청년은 그레이엄에게 옷 만들 일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고, 그레이엄은 함께 작업실로 향했어.
그곳에서 그레이엄은 배낭, 스웨셔츠, 티셔츠 등을 만들었는데, 그냥 만들지 않았어. 겨드랑이에 독특한 패턴을 넣어 움직임을 편하게 해줬지. 이게 생각보다 괜찮았어. 몇 년 후, 그레이엄은 제봉틀과 옷의 구조를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자신만의 경험과 아이디어로 또 다른 테스트를 시작했어. 바로 클라이머들을 위한 편한 바지였지.
그레이엄은 작업에 쓰일 법한 뻑뻑한 캔버스 원단을 사용했어. 클라이밍은 돌에 자주 부딪히니까 튼튼한 원단이 필요했지. 여기에 딱 두 가지 기능만 넣었어.
- 가랑이 부분의 거싯(Gusset): 스웨셔츠 겨드랑이에 썼던 것과 같은 목적이야. 활동성을 높여줘서 다리를 쫙 벌려도 편했고, 클라이머들에게 딱이었지.
- 한 손으로 조절 가능한 허리 버클: 클라이밍할 때는 한 손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반바지가 탄생하려는데, 허리 벨트 끝부분이 좀 아쉬웠는지 바느질로 모양을 새겨 넣었어. 요세미티 클라이머답게 은근히 멋을 내는 것도 좋아했지.
브랜드 이름도 고민하다가 스톤 마스터 시절을 떠올렸어. 크루원들은 재미 삼아 멤버들 이름을 이탈리아식으로 부르기도 했거든. 그레이엄의 이탈리아식 별명을 브랜드 이름으로 쓰기로 했지. 그렇게 그라미치 반바지가 탄생했어.
그레이엄은 반바지를 요세미티에 가져갔고, 거기서 그레이엄은 여전히 영향력이 있었기에 반바지도 팔리기 시작했어. 클라이머들은 모두 똑같은 반응이었지. "이건 물건이다!" 보기보다 훨씬 편했고, 한 손으로 벨트를 조절하는 것이 매력적이었어. 순식간에 요세미티 클라이머들의 유행템이 되었고, 그라미치도 함께 퍼졌지.
그레이엄은 새로운 옷을 기획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바지를 원했어. 6년 후, 똑같은 디자인의 긴바지 버전이 출시되었고, 반바지보다 더 빠르게 퍼졌어. 클라이머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좋아했지. 편한 핏에 착용감, 위트 있는 로고까지.
스트릿 문화와 일본의 영향
한편, 캘리포니아 옆 동네에서는 존 스투시라는 서퍼가 브랜드를 만들었어. 그의 브랜드 스투시는 순식간에 캘리포니아, 나아가 미국 전역의 문화를 만들었지. 바로 스트릿 문화였어.
서퍼, 스케이트보더, 댄서 등 멋을 즐기는 사람들이 스트릿을 즐겼고, 그들이 선택한 브랜드는 스투시뿐만 아니라 디키즈, 카라트, 그리고 작지만 분명히 그라미치도 있었지. 그라미치는 운 좋게 미국 스트릿 버스에 탑승했어.
이런 미국 문화에 열광하는 나라가 있지? 바로 일본이야. 일본은 기가 막히게 그라미치를 수입해 왔어. 일본에서 그라미치는 미국인들이 입는 힙한 바지 브랜드가 되었지.
옷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재료를 줘도 멋지게 소화하잖아? 그라미치의 편한 핏은 기능성을 위해서였지만, 그 문화가 멋있다고 느낀 사람들은 이걸 기깔나게 소화했어. 그 모습은 또 유행이 되었지. 그라미치 반바지에 워크 부츠를 매치하는 스타일. 일본에서 이 바지는 빠르게 퍼졌어. 편하면서도 와이드하지도 슬림하지도 않은 그 오묘한 핏이 매력적이었지.
1998년, 그라미치는 약 2,900만 달러 (350억 원)의 매출을 올렸어. 자신감이었을까? 허리 벨트의 깔끔한 로고를 지우고 브랜드 이름을 박았지. 하지만 이때가 최고점이었다는 걸 몰랐을 거야.
위기와 재기, 그리고 일본의 품으로
한편, 진짜 아웃도어 업계는 어땠을까? 고어텍스가 나온 지 30년이 넘었고, 방수 원단, 경량 나일론, 방풍 소재 등 그라미치 바지에 쓰이는 면 캔버스는 더 이상 기능성 소재로 취급받지 못했어. 그래도 그라미치는 잘 팔렸지. 편하고 예뻤으니까.
하지만 창업자 마이크 그레이엄이 그라미치를 떠나면서 그라미치도 빠르게 추락했어. 겉으로는 인기가 많아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문제가 많았지. 제조도 게을렀고, 납기일도 지연되고, 기술 개발은커녕 신상품도 별로 없었어. 바뀐 거라곤 허리 벨트 레터링을 G 로고로 바꾼 정도였지. 열받은 소매점들은 점점 그라미치를 빼기 시작했어.
창업자도 떠난 그라미치는 결국 파산했어. 충격적인 결과는 아니었지. 아웃도어처럼 기능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 패션 브랜드처럼 디자인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전문 사업가들도 아니었어. 그저 이 바지 하나로 운 좋게 살아남은 혼종이었지.
하지만 여기선 달콤한 냄새가 났어. "이거 잘만 손대면 괜찮을 것 같은데?" 달달한 냄새를 참지 못한 기업 중 하나가 그라미치를 인수했어. 그리고 내부 청소부터 시작했지. 공급망을 정비하고 납기 준수도 철저히 했어. 미국 생산이었던 것도 전부 인도와 중국으로 돌렸지. 옷쟁이들에게는 슬픈 소식이지만, 심폐 소생술은 성공이었어. 인수한 지 겨우 2년 만에 주문량이 60%가 늘어났지.
하지만 그건 회복이었지, 성장은 아니었어. 아웃도어 브랜드로서 기능을 개발해 봤지만 늦었어. 노스페이스, 파타고니아, 아크테릭스처럼 기능에 최선을 다하는 브랜드와는 비빌 수조차 없었지.
하지만 여기 그라미치를 반기는 곳이 있었어. 바로 스트릿이었지. 여기는 문화야, 기술의 발전이 아니지. 다행히 그쪽 신에서는 퇴보한 브랜드가 아니라 그냥 클래식이 되어 있었어. 그라미치는 스트릿에 더 집중했지. 다양한 협업도 하고 그래픽도 개발하며, 그지 같은 로고도 스트릿스럽게 바꿨어. 스투시의 트라이브맨처럼 말이야.
그라미치는 진짜 스트릿 문화에 감사해야 했어. 근데 감사할 곳이 하나 더 있었지. 바로 일본이었어. 여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꾸준히 인기였고, 사실상 일본 시장이 그라미치를 먹여 살릴 정도였지.
일본의 거대 유통 기업인 이토추 종합상사는 그라미치의 일본 마스터 라이센스를 사 왔어. 즉, 생산도 하겠다는 거지. 2010년부터 그라미치는 일본에서도 생산되기 시작했어. 이제는 심폐 소생술이 아닌 벌크업, 아웃도어 느낌이 나는 완전한 패션 브랜드로서 수많은 디자인을 출시했지.
슬림한 바지, 초창기 복각 바지 등 다양한 바지를 출시했지만, 전부 편한 핏, 가랑이 거싯, 한 손으로 풀 수 있는 벨트와 끝에 로고를 지켰어. 이 세 가지 모두 일상에서 정말 편리했지.
잘 나가는 일본 그라미치에 바람이 붙었어. 고프코어라고, 아웃도어 느낌을 내는 게 유행이라고. 그라미치가 딱이었지. 아웃도어도 아닌 게 아웃도어 느낌이 나는 바지. 기가 막히게 잘 나갔어. 미국 그라미치와 달리 성실한 이토추의 그라미치는 계속해서 신상품을 출시했어. 2015년에는 새로운 명작 루즈 테이퍼드도 출시하고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도 술술 진행했지. 물론 전부 일본에서 말이야.
이 정도면 완전 일본 브랜드 아니냐고? 맞아. 이토추가 아예 인수해 버렸어. 진짜로 일본 브랜드가 된 거지. 오히려 잘됐어. 신상품도 잘 안 내고 생산 관리도 안 되는 이전보다는 잘하는 곳에서 나오는 게 나왔으니까. 이토추는 더 공격적으로 새로운 제품, 그중에서도 바지를 집중적으로 출시했어.
이토추 종합상사는 150년 전부터 원단을 유통해 온 회사야. 그라미치의 다양한 바지에 수많은 원단을 적용했지. 앞으로 바지 하나만 디자인해도 다채롭게 낼 수 있겠지. 이토추는 분명히 알았을 거야. 그라미치의 정체성은 바지라는 것을.
그렇게 그라미치는 긴 생명을 얻게 되었어. 미국 시절 그라미치는 사실 망하는 게 당연했어. 아웃도어 브랜드가 발전을 멈춘다는 건 수명이 다한 거나 마찬가지지. 하지만 원했든 원치 않았든 수명은 늘어났어. 그건 스트릿이라는 문화 덕분이었지.
문화의 생명은 무궁무진해. 단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고 몇백 년을 이어갈 수도 있지. 디자인의 생명 역시 마찬가지야. 한 손으로 조절하는 벨트와 끝부분의 로고, 가랑이의 거싯. 비록 40년 전이지만 지금도 많은 브랜드에서 볼 수 있지. 그 디자인의 수명을 결정하는 건 바로 너의 취향이야.
나는 지금도 등산할 때 그라미치를 입어. 통풍이 잘돼서? 아니. 가벼워서? 아니. 그냥 좋아해서. 기능은 죽어도 패션은 쉽게 죽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