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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가정부와 사랑에 빠진 70대 회장님 황혼연애 | 사연 | 오디오북 | 오디오 드라마 | 인생이야기 | 노후사연 | 노후지혜 l 감동사연 l 실화사연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7월의 어느 날,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시작은 떨림과 다짐

회장님, 지금이에요. 처음 느껴보는 떨림에 나도 오늘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지. 7월의 무더위, 먹구름 가득한 하늘, 그리고 쏟아지는 비 속에서 처음 만난 그분 얼굴이 떠올랐어. 모든 건 그날 오후부터 시작됐어.

첫 만남: 비 오는 날의 낯선 집

7월의 숨 막히는 더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장대비가 쏟아졌어. 우산도 없이 뛰어갔지만 금세 온몸이 젖어버렸지. 낡은 가방과 보온병을 꼭 쥐고 김여사님이 알려준 주소를 찾아 헤맸어. 드디어 찾은 집은 생각보다 큰 2층 양옥집이었고, 잘 가꿔진 정원이 보였지.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누르자 낮고 무게감 있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어.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김여사님 소개로 온 윤혜진입니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키 크고 반백의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70대 남성분이 서 계셨어. 깔끔한 셔츠를 입고 계셨지만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눈빛이었지.

"아, 그 가사 도움이 아이고. 비에 다 젖으셨네요. 어서 들어오세요."

감사 인사를 하고 현관에 서자 뚝뚝 떨어지는 물에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어. 그분이 수건을 가져다주시며 말씀하셨지.

"저는 박영수입니다. 김여사님께 많이 들었어요. 우선 젖은 옷부터 말리시고 차 한 잔 드세요."

"고맙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천천히 하세요. 오늘은 그냥 서로 인사나 하고 집 구조 좀 보시고 가세요."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박 회장님을 만났어. 그 장대비와 어색했던 첫 만남이 내 인생을 바꿀 줄은 그때는 몰랐지.

텅 빈 집, 텅 빈 마음

집안은 너무 깔끔했지만, 오히려 상막해 보일 정도였어. 거실 한쪽 벽면은 온통 책으로 가득했고, 식탁 위에는 컵라면 용기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

"평소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대충 간단하게 해 먹어요. 혼자 사니까 굳이 거창하게 할 필요가 없어서."

그 말씀 속에서 깊은 외로움이 느껴졌어. 이 큰 집에서 혼자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내일부터 오전 10시에 와서 점심 준비해 드리고 오후에 저녁 준비해 드리면 되는 거죠?"

"네. 무리하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해 주시면 됩니다."

비가 그치자 나는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섰어.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지. 남편을 잃고 혼자 지내는 외로움을 아는데, 저분도 분명 그런 마음이실 거라고.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내일 뭘 해 드릴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 끼니만 때우시는 것 같아 건강한 식사를 해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 보온병에 시원한 식혜를 끓여가야겠다고 생각했어.

과거의 그림자: 남편과 빚

집으로 돌아와 뒤척이며 생각해 봤어. 3년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은 완전히 달랐거든. 20년 동안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나름 안정된 생활을 했었는데, 3년 전 봄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어. 심장마비였지. 의사 선생님의 "조금만 더 빨리 오셨으면 목숨은 건지셨을 텐데"라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 간호조무사였던 내가 정작 남편의 전조 증상은 놓쳤던 거야.

장례를 치르고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남편 친구가 찾아왔어. "재수 씨, 영수가 저한테 빌려 준 돈이 좀 있어요. 근데 지금 사업이 좀 안 돼서..." 그 친구 사업이 망하면서 남편이 저 몰래 전세금까지 뺏긴 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어. 결국 전세가 끝나자 더 작은 원룸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지.

김여사님이 박 회장님 일자리를 소개해 주신 건 정말 다행이었어. 임대료도 밀린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거든. 김여사님 말씀대로 박 회장님은 혼자 사시는데 참 딱해 보였어.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영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말씀이 맞았지. 어제 박 회장님 눈빛에서 깊은 외로움이 느껴졌거든.

따뜻한 식혜, 그리고 함께하는 시간

다음 날 아침, 보온병에 시원한 식혜를 끓여 박 회장님 댁으로 향했어. 10시 정각에 초인종을 누르자 "아, 오셨구나. 들어오세요." 집안은 여전히 깔끔했지만 생기가 없어 보였어.

"식사 좀 차려 드리려고 하는데 뭘 좋아하세요?"

"모든 좋아요. 워낙 아무거나 먹고 살아서 입맛도 별로 없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우유 하나, 김치 조금, 계란 몇 개가 전부였어.

"장 좀 봐야겠네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그냥 간단한 걸로요. 부담 갖지 마세요."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생각했어. 혼자 사는 남자가 이렇게 대충 먹고 있다니, 건강해도 안 좋을 텐데. 돌아와 된장찌개를 끓이고 계란말이를 부쳤어. 그리고 보온병에서 식혜를 따라 내놓았지.

"이게 뭐예요?"

"식혜예요. 집에서 끓여왔어요. 더운데 시원할 거예요."

박 회장님이 한 모금 마시더니 표정이 확 밝아지셨어. "어, 이 맛이네.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던 그 맛이에요."

"맛있어요?"

"네, 정말 맛있어요. 요즘엔 이런 집에서 끓인 식혜 먹기 쉽지 않은데."

그날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알게 된 게 있었어. 박 회장님도 나처럼 5년 전에 배우자를 잃으셨다는 것, 두 아들이 해외에 살아서 거의 연락도 안 된다는 것.

"아들들이 미국, 호주에 있어요. 가끔 안부 전화는 하는데 뭐 각자 살기 바쁘죠."

"외로우시겠어요."

"그렇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때 문득 깨달았어. 이 집도 내가 살던 집처럼 정막하구나. 크기만 다를 뿐 혼자 사는 외로움은 똑같구나.

오후에 저녁 준비를 하면서 슬쩍 보니 박 회장님이 약을 드시는 모습이 보였어.

"혈압약이에요?"

"네. 혈압하고 당뇨 좀 뭐. 근데 요즘 자주 깜빡해서 안 먹을 때가 많아요."

"그러면 안 되죠. 제가 올 때마다 챙겨 드릴게요."

"아,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아니에요."

간호조무사 할 때 그런 거 많이 봤거든요. 그렇게 첫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어. 뭔가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보람을 느꼈달까.

일상의 변화: 식혜와 대화

일주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졌어. 매일 오전 10시에 가서 점심을 준비하고 오후 4시에 저녁을 준비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 처음엔 박 회장님도 나도 서먹했어. 인사만 간단히 하고 나는 부엌에서 일하고 회장님은 거실에서 책을 읽으시거나 서재에 계셨지. 그런데 식혜 때문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

"해진 씨, 오늘도 식혜 가져오셨어요?"

"네. 어제 저녁에 끓여뒀어요."

"정말 감사해요. 이거 마시면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처음엔 그냥 받아서 드시기만 하시던 분이 어느 날부터 내가 식혜를 따라 드릴 때까지 기다리시더라고. 그리고는 천천히 향을 맡으시면서 말씀하셨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벌써 40년이 넘었는데 이 맛만큼은 잊을 수가 없네요."

"어머니가 자주 끓여 주셨나 봐요?"

"여름이면 매일 끓여 주셨죠.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직접 끓여 주시는 걸 받아먹어 보니 얼마나 정성스러운 일인지 알겠어요."

그 말씀을 들으니 왠지 뿌듯했어. 그 이후부터 점심 시간이 조금 달라졌어. 처음엔 내가 차려 드리고 혼자 드시게 하고 설거지를 했는데, 어느 날 회장님이 말씀하셨지.

"해진 씨도 같이 드세요. 혼자 먹으니까 반맛이 없네요."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아니야. 같이 먹어요. 어차피 저 혼자 먹기엔 양이 많아요."

그렇게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어. 처음엔 어색해서 조용히 먹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도 하게 됐지.

"해진 씨는 요리를 어디서 배우셨어요? 정말 맛있게 하세요."

"그냥 남편이랑 살면서 해온 거예요. 특별히 배운 건 없고요."

"남편분이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

"네.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었는데 그래도 제가 해 주는 건 잘 먹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끔 마음이 아팠지만, 박 회장님이 조심스럽게 들어 주셔서 괜찮았어. 회장님도 조금씩 본인 이야기를 해 주셨지.

"아내가 아플 때 제가 요리는 못 해도 죽이라도 끓여 줄 걸 그랬나 봐요. 맨날 배달 음식만 시켜줬는데."

"그래도 곁에 계셨잖아요. 그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그런가요?"

"네. 혼자 아프면 정말 무서워요.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거든요."

한 달이 지날 무렵, 회장님이 내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시더라고.

"회장님, 약 드실 시간이에요."

내가 시계를 보고 말씀드리면 처음엔 깜짝 놀라셨어.

"아, 맞네. 어떻게 시간을 이렇게 정확히 알아요?"

"간호조무사 할 때 습관이에요. 환자분들 투약 시간 챙기는 거."

"그렇구나. 고마워요. 요즘 깜빡깜빡해서."

그날부터 매일 약 먹을 시간을 알려 드렸더니 회장님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지셨어. 얼굴색도 밝아지시고 식욕도 늘어나셨지.

"해진 씨 덕분에 요즘 몸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규칙적으로 드시니까 그런 거예요."

"혼자 있으면 귀찮아서 아파도 대충 넘어가고 그랬거든요."

어느 날은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회장님이 다가오셨어.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니야. 같이 해요. 설거지 정도는 할 줄 알아요."

그렇게 함께 설거지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꼈어. 마치 가족 같은 느낌이었달까.

"해진 씨, 내일은 뭐 해 주실 거예요?"

"음. 날씨가 더우니까 시원한 콩수는 어때요?"

"좋네요. 그런데 식혜는 또 가져오시죠?"

"당연하죠. 제가 식혜는 절대 안 빼먹죠."

회장님이 웃으시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어. 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웃은 것 같았어. 어느새 이 집이, 이 일상이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회장님이 내가 올 때마다 기다리고 계신다는 게 느껴졌어. 나도 마찬가지였고. 이 집에 오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 됐거든.

위기의 순간: 쓰러진 회장님

8월의 어느 날,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더운 날이었어. 에어컨을 틀어도 밖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어. 점심 도시락을 싸서 서점으로 가려고 했거든. 회장님이 서점 일이 있어서 점심을 못 드시겠다고 하셨었지.

서점에 도착해 보니 문이 잠겨 있었어. 이상하다 싶어서 뒤쪽 창고 쪽으로 돌아갔는데, 창고 문이 활짝 열려 있고 안에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어. 급히 들어가 보니 회장님이 바닥에 주저앉아 계셨어. 옆에는 무거운 책상자들이 흩어져 있었지.

"회장님, 괜찮으세요?"

"아, 해진 씨. 어떻게 여길?"

얼굴이 창백하시고 식은땀을 흘리고 계셨어. "아, 이거 위험하다 싶었어요. 간호조무사로 일할 때 이런 분들 많이 봤거든요. 일단 여기 앉아 계세요. 움직이지 마시고."

손목을 잡고 맥박을 재어 봤더니 너무 빨랐어. 가방에서 물을 꺼내 조금씩 마시게 했지.

"어지러우세요? 가슴은 어때요?"

"어지럽긴 한데 가슴은 괜찮아요."

"언제부터 이러셨어요?"

"아침부터 좀."

"아이고, 왜 말씀 안 하셨어요? 이런 더위에 무거운 거 혼자 옮기시면 어떡해요?"

부축해서 의자에 앉히고 손수건에 차가운 물을 적셔서 이마와 목 뒤를 닦아드렸어. 그리고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로 모셔다놨지.

"병원 가야 해요."

"아니야. 괜찮아요. 그냥 더워서 그런 거예요."

"안 돼요. 혈압약 드시는 분이 이러시면 안 돼요. 지금 당장 가요."

내가 강하게 말하니까 회장님이 놀라셨어. 아마 내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걸 처음 보셨을 거야.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니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어. 다만 혈압이 많이 올라가 있어서 며칠 더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

"무리하시면 안 돼요. 특히 혼자서 무거운 걸 들면 이렇게 갑자기 쓰러지실 수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회장님이 나를 힐끗 보셨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회장님이 말씀하셨지.

"해진 씨, 고마워요. 혼자였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뭐요? 당연한 거죠."

"당연한 게 아니에요. 그냥 가사만 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해 주지 않았을 거예요."

집에 도착해서 회장님을 침실에서 쉬게 하고 나는 부엌에서 소화가 잘되는 죽을 끓였어. 미역 계란죽에 식혜도 시원하게 준비했지. 저녁 시간이 되어서 죽을 가져다드리려는데 회장님이 거실로 나오셨어.

"침대에서 드세요."

"아니야. 식탁에서 먹을게요. 그런데 해진 씨, 오늘은 그냥 가지 말아요."

깜짝 놀랐어. 두 달 넘게 일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거든.

"네, 같이 저녁 먹어요. 집이 너무 조용해서 오늘 같은 일이 또 생길까 걱정도 되고요."

머쓱 웃으며 하신 그 말씀 속에서 뭔가 다른 감정을 느꼈어. 단순히 건강에 대한 걱정만이 아닌 외로움 같은 거였지.

"그럼 죽 좀 더 끓일게요."

식탁에 마주앉아 함께 죽을 먹었어. 평소보다 훨씬 조용했지만 왠지 마음이 편했어.

"해진 씨는 간호일 할 때 이런 일이 많았어요?"

"네. 응급 상황은 자주 있었죠. 그래서 몸에 배인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해진 씨가 아니었으면."

"아니에요. 이제 무리하지 마세요."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는데 회장님이 옆에서 말씀하셨어.

"해진 씨, 정말 고마워요."

오랜만에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 마음도 이상해졌어. 단순히 일하러 오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이분이 걱정되고 아프시면 안 될 것 같고. 나도 회장님이 아프시면 안 될 것 같았어.

그날 밤 평소보다 늦게 집에 돌아갔어. 그리고 잠자리에 누워서 생각했지. 언제부터 박 회장님이 그냥 일하는 곳의 주인이 아니라 걱정되고 소중한 사람이 되었을까?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

그날 이후로 뭔가 달라졌어. 회장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나 역시 회장님을 바라보는 마음도. 일주일 후 회장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셨을 때였어. 평소처럼 점심을 준비하고 함께 앉아 있는데 회장님이 말씀하셨지.

"해진 씨, 제 얘기 좀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사실 그동안 정말 힘들었어요."

처음 들어보는 진솔한 톤이었어.

"아내가 아프기 시작한 게 7년 전이었어요. 처음엔 그냥 몸이 좀 안 좋다 하더니 나중에 암이라고 하더라고요."

"힘드셨겠어요."

"2년 동안 병원 다니면서 저는 뭘 해 줬는지 모르겠어요. 회사 일에만 신경 쓰고 간병은 간병인한테 맡기고 정작 제가 해 준 건 별로 없었어요."

회장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어.

"마지막에 아내가 제 손을 잡고 그러더라고요. '당신은 아프지 말고 잘 살아' 하면서. 그때서야 깨달았어요. 제가 얼마나 못된 남편이었는지."

"그렇지 않으실 거예요. 곁에 계셨잖아요."

"아니에요. 진짜 곁에 있는 건 해진 씨처럼 하는 거더라고요. 약 시간 챙기고 몸 상태 살피고 아플 때 바로 달려와 주고."

그 말씀을 들으니 내 마음도 복잡해졌어.

"저도 비슷해요."

"예?"

"제가 간호 조무사였잖아요. 그런데 정작 남편한테는 제대로 못 해줬어요."

회장님이 조용히 들어 주셨어.

"남편이 가슴 아프다고 할 때 그냥 채했나 보다, 피곤하나 보다 했어요. 간호사면서 왜 그랬을까요? 전조 증상을 놓쳤어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살았을 거라고요.' 그 말이 아직도 맴돌아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고개를 숙였어. 그런데 회장님이 조용히 말씀하셨어.

"우리 둘 다 뭔가를 놓치고 살았나 봐요."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해진 씨, 그래도 늦지 않을 수도 있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해진 씨가 저한테 해 주시는 것들. 그게 바로 제가 아내한테 못 해 준 것들이에요. 그래서 더 고마운 거예요."

그때 문득 깨달았어. 회장님도 나처럼 후회하며 살고 계셨구나. 자책하며 지내셨구나. 나도 회장님 덕분에 다시 누군가를 돌볼 수 있게 됐어. 남편한테 못 해 준 걸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럼 우리 서로 도움이 되는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그날 저녁에도 함께 식사를 했어. 이제는 자연스러웠어.

"해진 씨는 외롭지 않아요?"

"외롭죠. 특히 저녁에 집에 혼자 있으면 정말 조용해요."

"저도 그래요. 이 큰 집에서 혼자 텔레비전 소리만 들리고."

"그래서 더 이곳이 좋은가 봐요. 누군가랑 얘기할 수 있고 같이 밥도 먹고."

"저도 요즘 해진 씨 오는 시간만 기다려요.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은 뭘 해 주실까 생각하면서."

그 말씀을 들으니 가슴이 따뜻해졌어.

"저도 그래요. 회장님이 좋아하실 반찬 생각하고 건강에 좋은 걸 만들어 드리고 싶고."

"정말요?"

"네. 솔직히 이 일이 그냥 돈 벌려고 시작한 건데 이제는 아니에요."

"저도 해진 씨가 그냥 가사도움이라고 생각 안 해요."

그러면서 회장님이 조심스럽게 물으셨어.

"그럼 우리가 뭐라고 해야 할까요?"

"글쎄요. 가족은 아니고 친구?"

"친구 좀 이상하네요."

"나이도 다르고. 그럼 뭐지?"

잠시 생각해보다가 내가 말했어.

"그냥 서로 필요한 사람."

"맞네요. 서로 필요한 사람."

그날 밤 집에 돌아가면서 생각했어. 정말로 박 회장님이 내게 필요한 사람이 되었구나. 그리고 나도 회장님께 그런 사람이 되었구나. 남편을 잃고 3년 동안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 같았는데, 이제 다시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뻤어.

소문의 그림자, 그리고 진심의 확인

행복한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어. 8월 말쯤부터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어. 처음엔 마트에서였어. 장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거든.

"저 여자 박 회장 댁에서 일한다며?"

"응. 그런데 요즘 너무 자주 보이지 않아?"

"아침 저녁으로.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한 50대 초반."

"회장님이랑은 20살 차이 나지 않나?"

그때는 그냥 동네 아줌마들 수다려니 했어. 그런데 며칠 후 회장님 댁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찾아왔어.

"삼촌, 안녕하세요."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분이었는데 회장님이 소개해 주셨지.

"아, 해진 씨. 제 조카 박민수예요."

인사를 했는데 그 조카분이 나를 훑어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어.

"삼촌,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왔는데. 혹시 저기서 얘기할까요?"

나를 의식하면서 회장님을 서재로 이끌고 가더라고. 문은 닫았지만 목소리가 들렸어.

"삼촌, 요즘 동네에서 소문이 많이 나요."

"무슨 소문?"

"삼촌이 그 가정부랑 뭔가 있다고. 나이도 그렇고 너무 자주 오가는 것 같다고 하네요. 혹시 재산 목적으로 접근하는 건 아닌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어.

"그런 소리 하지 마라. 해진 씨는 그런 사람 아니야."

"삼촌, 요즘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특히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노리는 사기 엄청 많아요."

"민수야, 그만해."

"알겠어요. 하지만 조심하세요. 저도 삼촌 걱정돼서 하는 말이에요."

조카분이 나간 후 회장님이 나오셨는데 표정이 어두우셨어.

"해진 씨, 신경 쓰지 마세요. 사람들이 하는 소리예요."

하지만 나는 이미 마음이 무거워져 있었어. 그날 집에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 봤지. 정말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거든. 다음 날부터 조심스러워졌어. 평소보다 일찍 가고 일찍 나오려고 했지. 회장님이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하셔도 거절했어.

"아니에요. 오늘은 집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고."

회장님도 눈치 채셨겠지만 아무 말씀 안 하셨어. 일주일 후 더 충격적인 일이 있었어. 김여사님이 연락을 주셨거든.

"해진아, 너 괜찮니?"

"네. 왜요?"

"혹시 박 회장님이랑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무슨 소리예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너희들이 너무 가깝다고. 혹시 딴 마음 있는 거 아니냐고."

김여사님도 걱정스러운 목소리였어.

"그냥 일하는 사이에요."

"해진아, 그 양반 돈 많잖아. 혹시 오해받을 일은 하지 마라. 너만 손해야."

전화를 끊고 나니 정말 우울했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냥 성실하게 일하고 아픈 분 돌봐드린 것뿐인데.

그다음 주 월요일, 회장님이 물으셨어.

"해진 씨, 요즘 왜 이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에요."

"아니긴요? 예전 같지 않아요. 말도 별로 안 하고 일찍 가려고 하고."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서요."

"오해요."

"저 때문에 회장님이 안 좋은 소리 들으시는 것 같아서요."

회장님이 한숨을 쉬셨어.

"그래서 거리 두는 거예요. 죄송해요."

"해진 씨, 저는 상관없어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하지만 저는 이상해요. 회장님은 좋으실지 몰라도 저는 그냥 가정부잖아요."

그 말을 하고 나니 회장님 표정이 확 어두워지셨어.

"가정부라고 생각하세요?"

"아직도 그게 사실이잖아요."

"그럼 지난 몇 달은 뭐였어요? 제가 착각한 거예요?"

회장님이 상처받은 표정이었어. 나도 마음이 아팠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회장님, 저는 오해받기 싫어요. 다른 속셈이 있다고 의심받기 싫어요."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어.

"잠깐 좀 쉬었으면 좋겠어요. 소문이 잠잠해질 때까지."

"해진 씨, 죄송해요. 하지만 이게 나을 것 같아요."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서 짐을 쌌어. 며칠만 쉬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정말 단순히 일하러 간 거라면 이렇게 아프지 않을 텐데. 내 마음도 모르게 회장님이 너무 소중한 사람이 되어 버렸나 봐.

다시 시작: 병원에서의 고백

일주일 동안 회장님 댁에 가지 않았어. 처음 며칠은 좀 홀가분한 기분도 들었어. 사람들 시선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복잡한 감정에 휘둘릴 일도 없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생각이 났어. 회장님이 약은 제대로 드시고 계실까? 식사는 제대로 하실까? 혹시 또 무리하고 계시는 건 아닐까?

목요일 저녁, 김여사님한테서 전화가 왔어.

"해진아, 너 요즘 박 회장님 댁에 안 나간다며?"

"네. 잠깐 쉬고 있어요."

"왜?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좀 쉬고 싶어서요."

"이상하네. 그 양반이 어제 나한테 전화했거든. 네 연락처 물어보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

"뭐라고 하셨어요?"

"안부 묻고 싶다고. 목소리가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던지."

그날 밤 잠이 안 왔어. 회장님 생각만 계속 났어.

금요일 오후 3시쯤이었어. 휴대폰이 울렸는데 모르는 번호였어.

"여보세요?"

"해진 씨예요. 저 박 회장님 조카입니다. 그때 잠깐 뵙었는데 기억하시죠?"

그 조카분이었어. 목소리가 다급했어.

"삼촌이 서점에서 쓰러지셨어요."

"뭐라고요?"

"지금 119 불러서 병원 가는 중이에요. 혹시 와 주실 수 있어요?"

머리가 하얘졌어.

"어느 병원이요?"

"성모 병원 응급실이요."

전화를 끊자마자 뛰어나갔어. 택시를 잡고 병원으로 달려갔지. 응급실에 도착하니 조카분이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어.

"어떻게 된 거예요?"

"서점에서 책을 정리하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대요. 혈압이 많이 올라가 있다고."

"지금은 어떠세요?"

"의식은 있는데 계속 해진 씨만 찾으세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날 것 같았어.

"들어가 봐도 될까요?"

"네. 가족 아니어도 괜찮다고 하네요."

응급실 침대에 누워 계신 회장님을 보는 순간 정말 가슴이 아팠어. 얼굴이 창백하시고 산소 마스크를 끼고 계셨거든.

"회장님."

회장님이 나를 보시더니 마스크를 벗으려고 하셨어.

"벗지 마시고 그대로 계세요."

"해진 씨, 정말 온 거예요?"

"네. 왔어요."

"미안해요. 갑자기 이렇게 돼서."

"무슨 말씀이세요? 괜찮으세요?"

회장님이 내 손을 잡으셨어. 손이 차갑고 떨리고 있었어.

"해진 씨가 없으니까 정말 안 되더라고요. 약도 깜빡깜빡하고 밥도 대충 먹고 그래서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니에요. 해진 씨 잘못이 아니야."

그때 회장님이 힘겹게 말씀하셨어.

"해진 씨, 그동안 생각해 봤어요. 제가 지키고 싶었던 건 재산도 명예도 아니었어요. 해진 씨가 웃는 얼굴, 해진 씨가 끓여준 식혜 한 잔, 해진 씨가 '약 드세요' 하고 챙겨주는 그 마음이었어요.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전 해진 씨가 필요해요. 정말로. 돌아와 주겠어요? 제가 혼자서는 안 되나 봐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어.

"저도 회장님 없으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정말요?"

"네. 회장님 생각만 계속 났어요. 약은 드시나 밥은 드시나? 아프시면 어떡하나? 저도 회장님이 필요해요. 회장님 때문에 다시 살아갈 용기가 생겼거든요."

회장님이 내 손을 더 꽉 잡으셨어.

"그럼 다시 함께할 수 있을까요?"

"네. 하지만 사람들이 신경 쓰지 말아요. 우리가 서로 필요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진짜라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때 조카분이 들어오셨어.

"삼촌, 괜찮으세요?"

"민수야, 이제 괜찮아."

조카분이 나를 보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셨어.

"해진 씨,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씀 드린 것 같아요."

그날 밤 회장님이 입원하셨는데 나는 병원에 남아서 밤새 지켰어. 이제 확실히 알았어. 내게 박 회장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 그리고 나 역시 회장님께 그런 존재라는 걸 말이야.

함께하는 삶, 그리고 새로운 시작

회장님이 3일 만에 퇴원하셨어. 혈압이 안정되고 컨디션도 많이 좋아지셨거든. 퇴원하는 날 조카분이 말씀하셨어.

"삼촌, 앞으로 해진 씨가 계속 돌봐드리는 게 좋겠어요. 정말로."

"정말로?"

"네. 병원에서 보니까 해진 씨가 삼촌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돌보시는지 알겠더라고요."

조카분이 나를 보시며 고개를 숙이셨어.

"해진 씨, 정말 죄송했어요. 제가 너무 성급했네요."

"괜찮아요."

"삼촌이 혼자 계실 때와 해진 씨가 돌봐드릴 때가 이렇게 다른 줄 몰랐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집으로 돌아온 첫날, 회장님이 말씀하셨어.

"해진 씨, 아들들한테도 얘기해야겠어요."

"꼭 그래야 할까요?"

"네. 숨길 이유가 없잖아요. 해진 씨는 제게 정말 소중한 분이니까."

그날 저녁, 회장님이 미국에 있는 큰아들한테 화상 통화를 걸었어.

"아버지, 안녕하세요. 옆에 계신 분은 누구세요?"

내가 옆에 있는 걸 보고 큰아들이 놀라더라고.

"아들아, 소개할 사람이 있어. 윤혜진 씨라고 아버지 돌봐 주시는 분이야."

"아, 안녕하세요. 아버지 가사도우미 분이세요?"

"가사도우미보다 훨씬 더 소중한 분이야. 아버지가 아플 때 병원까지 데려가 주시고 약도 챙겨 주시고 정말 고마운 분이야."

큰아들이 화면을 자세히 보더니 말했어.

"아버지, 얼굴이 많이 밝아지셨네요."

"그래. 네. 예전에 통화할 때보다 훨씬 좋아 보이세요."

"해진 씨 덕분인가 봐요."

"맞아. 해진 씨가 없었으면 아버지 큰일 날 뻔했어."

"해진 씨, 아버지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해요. 저희가 멀리 있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회장님께 많이 배우고 있어요."

일주일 후에는 호주에 있는 둘째 아들과도 통화했어.

"아버지, 정말 건강해 보이세요. 해진 씨가 잘 챙겨 주시나 봐요?"

"그럼. 해진 씨 덕분에 혈압도 안정되고 식사도 규칙적으로 하고 있어."

"다행이에요. 사실 아버지가 혼자 계시는 게 항상 걱정이었거든요."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해진 씨가 있으니까."

둘째 아들도 나에게 말했어.

"해진 씨, 정말 감사해요. 아버지 표정이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어요. 오랜만에 보는 밝은 얼굴이에요."

한 달 후, 조카분이 또 오셨어. 이번엔 아내분과 함께였지.

"삼촌, 안녕하세요. 해진 씨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조카 며느리 분이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셨어.

"어머, 남편이 얘기 많이 해 주셨어요. 해진 씨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돌봐 주시는지."

"아니에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아니에요. 요즘 이런 분 만나기 힘들어요. 진짜 가족처럼 돌봐 주시잖아요."

조카분도 말씀하셨어.

"삼촌, 해진 씨랑 계속 함께 지내세요. 저희도 마음 놓이고 좋아요."

김여사님도 달라지셨어.

"해진아, 네가 맞았구나. 네."

"박 회장님 쓰러지셨을 때 병원 가는 거 봤는데 그렇게 급하게 뛰어가는 걸 보니까 알겠더라. 너 진심이구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서로 진심으로 아끼는 게 보여. 그럼 된 거야."

동네 사람들도 조금씩 인식이 바뀌었어. 특히 회장님이 아프셨을 때 내가 병원에서 며칠 밤을 세우며 간병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저 가정부 정말 성실하네. 가족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해 주나?"

"박 회장님도 복 많으시네. 요즘 저렇게 좋은 사람 만나기 쉽지 않은데."

어느 날 회장님이 말씀하셨어.

"해진 씨, 이제 사람들 눈치 안 봐도 될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다들 우리를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네, 정말 다행이에요."

"그럼 이제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될까요? 같이 산책도 하고 시장도 같이 가고 그런 일상적인 것들 말이에요."

나도 웃으며 대답했어.

"좋아요. 이제는 당당하게 해요."

정말로 주변 사람들의 이해를 얻는다는 게 이렇게 중요한 일인지 몰랐어. 이제야 마음 편히 회장님을 돌볼 수 있게 됐거든.

함께 사는 삶, 그리고 새로운 가족

10월에 들어서면서 회장님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셨어.

"해진 씨, 우리 이제 어떻게 할까요?"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처럼 계속 지낼 건지 아니면."

회장님이 말끝을 흐리셨어. 나도 사실 그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히 해진 씨가 매일 집에 돌아가시는 게 아쉬워요. 저녁 먹고 나면 또 혼자가 되잖아요."

"저도 그런 생각해 봤어요."

"정말요?"

"네. 회장님, 혼자 계시는 게 걱정돼서 밤에 잠이 안 올 때가 있어요."

그날 저녁 진지하게 얘기를 나눴어.

"해진 씨, 결혼은 어떻게 생각해요?"

"글쎄요. 나이도 이렇고."

"나이가 뭐가 중요해요? 서로 아끼고 필요로 하는데."

"사람들이 또 뭐라고 할까요?"

"이제 상관없어요. 우리 마음이 중요하지."

하지만 나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어.

"회장님, 결혼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다른 방법?"

"그냥 함께 사는 거요. 가족처럼."

회장님이 생각해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어.

"그것도 좋네요. 굳이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죠."

"네. 서로 의지하고 돌보면서 살면 되잖아요."

"그럼 해진 씨 집은 어떻게 해요?"

"정리하고 이사 올게요. 어차피 원룸이라 짐도 별로 없어요."

일주일 후, 내 짐을 회장님 댁으로 옮겼어. 많지 않은 옷가지와 생활용품들, 그리고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몇 장.

"여기가 해진 씨 방이에요."

회장님이 2층 방 하나를 정리해 주셨어. 햇볕이 잘 들고 조용한 방이었지.

"고맙습니다."

"정말 깨끗하네요."

"마음에 드세요?"

"네. 너무 좋아요."

그렇게 함께 살기 시작했어.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금세 익숙해졌어. 아침에 일어나면 회장님 약부터 챙기고 함께 아침 식사를 해. 그리고 함께 서점에 가서 일을 도와드리지.

"해진 씨, 이 코너는 어떻게 꾸미는 게 좋을까요?"

"음. 작은 테이블 놓고 차 마실 수 있게 하면 어때요?"

"좋은 생각이네요."

서점 한켠에 작은 카페 공간을 만들었어. 내가 직접 그린 식혜와 차를 손님들에게 대접하기 시작했지.

"어머, 이 식혜 정말 맛있네요. 집에서 직접 끓인 거예요?"

"요즘 이런 맛 보기 힘든데. 자주 올게요."

한 달 만에 단골 손님들이 생겼어. 특히 동네 어르신들이 많이 오셔서 차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가셨지.

"해진 씨 덕분에 서점이 활기를 찾았네요."

"저도 보람 있어요. 사람들이 좋아하시니까."

어느 날은 회장님이 손님들에게 나를 소개하시더라고.

"이분이 제가 늘 말씀드린 해진 씨예요."

"아, 그 유명한 식혜 만드시는 분."

"네, 맞아요. 이분이 저희 서점의 보물이에요."

손님이 물으셨어.

"두 분이 부부세요?"

잠깐 당황했지만 회장님이 자연스럽게 대답하셨어.

"가족이에요. 서로 의지하며 사는."

"아, 그러시구나. 보기 좋네요."

그 말이 참 마음에 와닿았어. 가족, 정말 우리가 가족이 된 것 같았거든. 저녁에는 함께 요리를 해. 회장님이 설거지를 도와주시고 나는 다음날 식 재료를 준비하고.

"해진 씨, 이런 생활 어때요?"

"정말 좋아요. 외롭지도 않고."

"저도 정말 행복해요. 집이 이렇게 따뜻할 수 있구나 싶어요."

몇 달 후, 서점에 '어머니 식혜집'이라는 작은 간판을 달았어. 동네 명소가 되어 가더라고.

"어머니, 오늘도 식혜 한 잔 주세요."

동네분들이 나를 그렇게 불러 주셨어.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제는 정말 좋았어.

"회장님, 우리 잘하고 있는 것 같죠?"

"네, 정말 잘하고 있어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큰아들이 전화해서 그러더라고.

"아버지, 목소리가 정말 젊어지셨어요. 두 분이 정말 잘 지내시나 봐요."

"그럼. 정말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에요. 저희도 마음이고."

이제는 정말 확신해. 우리가 함께하는 이 생활이 두 사람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걸.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며 매일 웃으며 살아가는 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매일 느끼고 있어.

가족의 의미, 그리고 새로운 희망

그렇게 인연이 흘렀어. 어느새 내가 회장님과 함께 산 지도 벌써 2년이야. 오늘은 특별한 날이야. 미국에 있던 큰아들 부부가 한국에 놀러 온다고 했거든. 아이들도 데리고 와서 일주일 동안 머물 예정이었어.

"해진 씨, 긴장되세요?"

회장님이 웃으시며 물으셨어.

"조금. 손자들은 처음 보는 거잖아요."

"괜찮아요. 해진 씨가 얼마나 좋은 분인지 금방 알 거예요."

공항에서 가족들을 맞이하는 순간이 정말 감동적이었어.

"할아버지."

손자들이 회장님께 달려왔어. 회장님이 아이들을 안으시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어.

"해진 어머니죠. 안녕하세요."

큰 며느리가 나에게 정중하게 인사했어.

"네, 안녕하세요. 멀리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아니에요. 아버님 덕분에 한국 구경도 하고 정말 감사해요."

집으로 돌아와서 며칠 동안 정말 즐거웠어. 아이들이 서점에서 뛰어다니고 내가 만든 식혜를 맛있게 마셨지.

"할머니, 이거 정말 맛있어요. 그래, 더 먹을까?"

"네."

아이들이 나를 할머니라고 부를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졌어. 큰아들이 나에게 따로 말했어.

"해진 어머니, 정말 감사해요. 아버지가 이렇게 건강하고 행복해 하시는 거 어머니 덕분이에요. 저희가 멀리 있어서 못 해 드린 걸 다 해 주시고."

"아니에요. 저도 회장님 덕분에 행복해요. 정말 오래 전부터 같이 산 가족 같아요. 아이들도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정말 좋아해요."

며느리도 말했어.

"어머니, 저희가 안심이 돼요. 아버님이 혼자 계시는 게 항상 걱정이었는데."

"저도 회장님이 제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떠나는 날 정말 아쉬워했어.

"할아버지, 할머니, 또 올게요."

"그래, 자주 와라."

"할머니 식혜 또 마시러 올게요."

"그래, 할머니가 많이 끓여 놓을게."

가족들을 배웅하고 돌아와서 회장님이 말씀하셨어.

"해진 씨, 정말 고마워요."

"뭐요."

"저도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 오랜만이에요."

"저도 좋았어요. 이런 게 가족이구나 싶었어요."

어느 날 서점에 특별한 손님이 오셨어. 동네 신문사 기자분이었지.

"혹시 인터뷰 가능할까요?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해서요. 어머니 식혜집 때문에 서점이 명소가 됐다고."

"인터뷰요?"

"네.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서요. 두 분이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어떻게 이런 따뜻한 공간을 만들게 되셨는지."

회장님이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셨어.

"해 보는 거 어때요?"

기사가 나간 후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어.

"어머니, 신문에서 봤어요.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두 분 보면서 희망을 얻었어요."

"저희 부모님도 혼자 계시는데 그런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서점 한편에는 작은 전시 공간이 있어. 나와 회장님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사진들, 첫날 가져왔던 보온병, 지금도 매일 사용하는 식혜 잔들이 전시되어 있지.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보온병이구나."

"어머니가 첫날 식혜 가져오신 거죠?"

"네, 맞아요.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매일 오시는 단골 손님들도 계셔. 저녁에 집에서 회장님과 차를 마시며 얘기해.

"회장님, 우리 정말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요. 이보다 더 바랄게 뭐가 있겠어요?"

처음에 이 집 문을 두드릴 때는 정말 몰랐어.

"저도요. 그냥 가사도움이 한 분 오시는 줄 알았는데."

"인생이 참 신기해요.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잖아요."

"맞아요. 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서 다행이에요."

요즘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 있어. 사랑이라는 게 꼭 나이가 어릴 때만 하는 게 아니구나. 50대, 70대가 되어서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필요로 하고 함께하고 싶어 할 수 있구나. 그리고 그런 마음이 있으면 매일이 새롭고 희망적이구나.

사람들이 가끔 물어봐. "후회 없으세요?" 하고. 난 항상 이렇게 대답해. "사랑은 나이가 아니라 함께 있을 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회장님과 함께하는 매일이 나에겐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야. 그리고 회장님도 나 때문에 다시 웃게 되셨다고 하시거든. 정말로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해. 50이 넘어서도 이런 따뜻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게요.

오늘 윤혜진 씨와 박영수 회장님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정말로 사랑 앞에서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따뜻한 이야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돌보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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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또 어떤 감동적인 이야기로 찾아뵐지 기대해 주시고,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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