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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팩트폭행? 광주 학생들의 충격적 외침!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배제고 학생들의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발언, 그게 왜 문제야?

얼마 전에 고교 야구 경기에서 배제고 학생들이 광주고 선수들한테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고 외치면서, 스타벅스 마케팅을 떠올리는 구호를 외쳤대. 이게 왜 이렇게 큰 문제가 된 걸까? 간단해. "이제 좀 깨어나라!"는 외침인 거야.

1.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

이 발언은 요즘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 특히 과거 운동권 출신들의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중잣대에 대해 느끼는 분노를 보여주는 거야.

  • "너희들은 이렇게 해야 돼, 저렇게 해야 돼" 라고 훈계하는 거.
  • "이 카페 가라", "저 카페 가지 마라" 라고 강요하는 거.
  • 역사 해석을 자기들 마음대로 강요하는 거.

이런 것들에 대해 젊은 세대들은 "이제 우리한테 강요하지 마! 우리는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우리 스스로 보고, 우리 스스로 해석할 거야!" 라고 말하고 있는 거지.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말라는 외침이야.

2. "학생들 인생 망치려고 해?"

만약에 이런 발언이 문제가 된다고 해도, 그냥 구두 경고 정도로 끝나야 하는 거 아니야? 야구 경기에 집중하고, 감독한테 주의 주는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이게 너무 불필요하게 커져서 학생들의 인생을 끝장내려고 하는 것 같아.

생각해 봐. 과거에 너희들이 어렸을 때 화염병 던지고, 시민들 때리고 했던 건 괜찮고, 학생들이 이런 말 한 건 안 된다는 거야? 이게 말이 돼? 그런데 대한 야구 소프트볼 협회 스포츠 공정위는 이걸로 배제고 학생들에게 6개월 전국 대회 참가 불가라는 징계를 내리고, 대회 성적까지 몰수 처리했어.

3. "왜 이렇게 난리야? 학생들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이 사태를 이렇게까지 키우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 "왜 이렇게 난리야?"

학생들에게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물어보면, 답은 간단해. "야구 경기장에서 '내로남불' 하는 운동권 꼰대들이 역사 해석을 강요하니까 화가 나는 거야. 다른 관점으로 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왜 다른 관점으로 보면 '깜방'에 가야 해?"

그리고 청소년과 청년들은 진실을 알기 때문이야. 그런데 최교진 같은 사람이 장관까지 나서서 "5.18을 비난한 배제고 야구 선수들은 자격 미달"이라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

최교진 당신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탕탕절"이라고 했잖아. 그런 당신이 학생들한테 선수 자격까지 따질 자격이 있어? 게다가 2003년에 음주운전으로 면허 취소 기준의 세 배나 되는 0.187%의 혈중알코올농도를 기록한 당신이 학생들한테 뭘 말할 자격이 있냐고.

4. "스타벅스 탱크는 되고, 배제고 탱크는 안 돼?"

이 문제는 단순히 5.18에 국한된 게 아니야. 이건 운동권의 '내로남불'과 포괄적인 지배에 대한 분노인 거야. 10대, 20대들이 전반적으로 화가 나 있어.

이재명 지지율이 왜 그렇게 나오겠어? 10대, 20대, 30대들이 "너희들은 더러운 말 다 하고, 반칙도 다 하고, 부정 다 하면서 왜 우리한테만 깨끗함을 요구하냐"는 거야.

오늘 나는 이 '좌파'들의 '내로남불'을 좀 파헤쳐 볼 거야.

  • 최우 씨의 '탱크'는 되고, '스타벅스 탱크'는 안 된다는 거야?
  • 최우 씨는 "이놈들 어디서 꼰대같이 10대, 20대 학생들이 전두환 좋아하잖아. 온라인에서 탱크로 밀어버려야 돼"라고 했어.
  • 그런데 스타벅스한테는 "탱크"라고 표현하면 안 되고, 배제고 학생들의 "탱크" 표현은 더 구체적으로 밀어버려야 한다고?

그렇다면 상대방을 탱크로 밀어서 죽여도 되는 게 '광주 정신'이야? 스타벅스한테는 폭력적이라고 사과해야 한다고 하면서, 최우 씨의 '탱크'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안 해?

그러니까 배제고 학생들한테 뭐라고 할 자격이 있는 '좌파'들은 없다고 봐. 이재명 씨가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스타벅스한테 그렇게 말했잖아.

청년들은 다 알아. 형소한테 엄청난 욕을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걸. 그러니까 너희들이 하지 말라고 할수록 더 하고 싶은 거야. 너희들이 금기라고 말하는 순간 더 꺼내고 싶은 거라고.

5. 5.18의 진실, 제대로 알아야 해.

여러분, 5.18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해. 5.18의 진실은 1979년 11월 박정희 대통령 서거부터 5.18까지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가를 알아내는 거야.

  •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잘 죽었다"고 하는 순간, 김대중, 김재규, 정승화 만세가 되는 거지. 왜냐하면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쐈고, 정승화는 그걸 은폐하려 했고, 그 정치적 공백 속에서 김대중이가 정권을 날로 먹으려 했으니까.
  • 반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쏜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모든 걸 다 받아먹었는데, 자신의 손을 들어주지 않자 패륜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어. 정승화도 육군참모총장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 범죄 내란에 가담했다는 게 역사적 진실이야.
  • 그렇기 때문에 전두환 대통령의 등장은 내란을 잡은 것이야. 1차 내란을 잡은 거지.

1980년 5월까지 계엄령이 쭉 유지됐는데, 극단적인 정치 선동을 일삼은 김대중이가 북한 돈을 받은 김대중이가 내란 선동을 일삼으면서 정치 활동이 금지됐어. 그걸 저들은 '전두환의 내란'이라고 부르지. 저들은 그걸 '보수 세력의 내란'이라고 불러. 정반대야. 김대중의 내란이야.

진짜 역사의 진실은 1979년 10월 박 대통령 시해 이후 1980년 초반까지 대한민국이 멸망할 뻔했다는 거야. 진짜로.

그 상황 속에서 당시 유지됐던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자동적으로 계엄령이 선포됐고, 최규화 대통령이 권한대행으로 통치했어. 전두환 대통령이 보안사령관으로서 정승화 관련 수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던 상황이 1980년 5월이고, 이희성 계엄군 사령관이 전국 동시 다발적인 소요 사태 때문에 전국 계엄을 선포하게 된 거야.

여기서 중요한 건, 5.18 이전의 상황을 다 빼놓고 계엄군이 광주에 들어가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주장은 역사를 기만하는 거야. 전체적인 맥락을 봐야 해.

그럼 역사적 진실은 뭐냐? 김대중의 내란 시도야. 11월 6일부터 봐야 해. 1979년 11월부터 1980년 5.18까지는 하나의 묶음이야. 그런데 역사를 기만하는 자들은 5.18만 딱 떼어내서 피해받은 사람만 빼내서 전두환을 학살자로 만들지.

웃긴 건, 전두환 대통령은 광주랑 관계가 없어. 반란군은 따로 있고, 보안사령관이 월권해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작전을 주도했다는 건 말이 안 돼.

시대적 배경을 보자고. 12.6 (박정희 대통령 시해)부터 12.12 (전두환 대통령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 날)까지. 5월 17일에 전국 계엄 선포, 5월 18일 5.18이 일어나는 거야.

더 중요한 건 5월 15일 서울역 시위야. 김대중이가 학생들에게 돈을 뿌려서 선동하고 국가 전복을 꾀했던 게 바로 5월 15일이야.

1980년 4월에 일어났던 사북 사태도 마찬가지야. 강원도에서 광부들이 경제가 너무 안 좋으니까 경찰서를 습격하고 경찰관들을 폭행해서 수천 명이 부상당하고 한 명이 사망했어. 노조 지부장 아내까지 폭행하는 만행을 저질렀지.

그러니까 1979년부터 1980년 5월까지는 무질서의 연속이었어. 왜 중요하냐면, 1979년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뿐만 아니라 미국이 금리를 엄청나게 올려서 우리나라에 초인플레이션이 온 거야.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달러 가치가 올라갔지. 2차로는 이란 혁명으로 유가가 폭등했어. 미국발 금융 쇼크, 우리나라 기업들 줄도산.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이라는 정치 선동가가 들고 나온 게 '공동 부유론', '노조가 기업을 지배해야 한다', '북한과 평화 통일' 같은 논리였어.

이게 왜 위험하냐면, 일본에서 조총련이라는 북한을 섬기는 단체를 통해 불법 자금을 수수한 게 김대중이야. 한민통이라는 단체의 초대 의장이 김대중이었어. 도망 다니면서 북한과 연계가 된 거지. 누가 이런 얘기를 해줬냐고? 검찰 수사를 받던 김대중의 아내 이희호 씨가 다 잡혔어. 그래서 김대중에 대한 1심, 2심 전부 다 한민통 관련 사건으로 유죄가 나왔어.

이게 바로 1980년 5월에 일어났던 전체적인 배경이야.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들고 일어나야 한다. 이게 김대중 파의 논리였지. 그 결과 서울에서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들고나서 도시가 마비됐고, 광주까지 그 움직임이 간 거야.

그럼 5월 18일 광주의 아픔은 누가 1차로 비판받아야 할까? 엄청난 권력 공백기에서 무질서한 대한민국을 노리고 국가 전복을 꾀하고 북한과 연결된 내란 시도를 한 김대중이 1차 비판을 받아야 해.

그다음 2차로 진압 들어갔던 계엄군 중에 과격하게 반응한 사람들도 비판받아야겠지.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봤을 때 전국적인 계엄령은 피할 수 없었어. 왜냐하면 만약 사회주의 좌파 김대중이 정권 찬탈에 성공했으면, 우리나라는 그냥 끝나는 거였어. 당시 분위기로 보면 이런 엄중한 분위기를 알아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11월 6일부터 5.18까지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아야 해.

6. 누가 진짜 혼란을 만들었나?

진짜 비판의 화살은 누구에게로 가야 할까? 누가 과연 1980년대에 혼란을 만들었는가? 전두환 대통령이 아니고, 책임 없는 쾌락을 추구했던 김대중, 김영삼류의 3류 정치인들이 비판받아야 해.

안 그래도 대통령이 서거해서 어지러운 나라에서 대통령 놀이 해보겠다고 선동하고, 국가 전복시켜야 된다고 주장하고, 북한이 38선 넘어와서 미군이랑 교전하는데도 "몰라, 그냥 해보자, 정치 혁명 하자"라고 하는 인간들. 노동운동 일어나서 경찰들 구타당하고 난리인데도 말이야. 이런 인간들이야말로 전국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광주에서 그 사태가 일어나게 만든 진짜 원형들이야.

지들이 죄를 아니까 전두환을 악마로 만드는 거고.

7. 1979년~1981년의 위기, 제대로 보자.

  • 이란 혁명: 79년 친미 정권이었던 왕정이 무너졌어.
  • 베트남 패망: 75년 미국이 지원했던 남베트남이 패망했지. 국제적 위기가 발생한 거야.
  • 오일 쇼크: 이란 혁명 이후 중동에서 유가가 폭등했어.
  • 미국 금리 인상: 79년 후반부터 미국이 금리를 급격하게 올려서 우리나라에도 금융 위기가 전이됐어.
  • 북한 도발: 북한의 도발이 있었고.
  • 미중 대탕트: 미국과 소련이 싸우는데 중국을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게 닉슨의 기조였고, 이게 70년대 후반까지 갔어. 지미 카터도 그런 방식으로 갔기 때문에 주한미군 철수를 계속 시도했지.

주한미군은 나간다 만다 하고, 북한은 쳐들어오고, 월남은 패망하고, 우리가 다음 타겟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어. 경제는 무너지고, 기업은 줄도산하고, 기름도 없어. 이런 상황에서 계엄령 선포 안 해? 정치 혁명 하자, 국가 전복 시키자, 이게 내란 아니야? 이런 상황에서 광주에서의 비극이 일어나는 거야. 이런 맥락을 알아야 해.

8. 김대중, 왜 내란 음모죄를 선고받았나?

김대중은 1980년 5월 17일, 급진적인 주장과 내란 음모를 기도했다는 혐의로 체포됐어. 당시 재판부는 김대중이 11억 이후 국가 권력 공백기를 악용해서 북한 불순분자들과 연합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려 했다고 판단했지.

김대중은 1심, 2심에서 전부 유죄가 나왔어. 당시 재판부는 김대중이 반국가 단체인 한민통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북한의 지령을 받는 공산주의자로부터 자금을 수수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어.

  • 한민통: 일본에 있는 북한을 섬기는 단체로, 대법원에서 이미 반국가 단체로 판시됐어. 김대중은 이 단체의 초대 의장이었지.
  • 자금 수수: 김대중으로부터 압수한 돈에서 엔화와 달러가 나왔는데, 이건 바로 일본에서 북한의 돈을 받았다는 걸 강력하게 시사하는 거야.

김대중의 아들 김홍일 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대중은 학생들을 선동하고 자금을 댔어. 당시 큰 돈이었던 50만 원을 학생들에게 주고, 대정부 투쟁 경험이 풍부한 복학생이나 학생 시위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포섭했지. 심재철, 이해찬 같은 사람들이 당시 김대중의 자금을 받고 학생들을 포섭했다는 거야.

이 규모는 서울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이었어. 김홍일 씨는 나중에 국회의장이 되는 문희상 씨와 함께 '연청'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게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옹립하기 위한 전국 단체였지.

이런 철없고 무모한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시 이해찬 씨의 진술서에 따르면, 서울 각 대학과 지방 대학이 일제히 시위하도록 지시하고, 경찰 저지선 돌파를 위해 강목, 화염병, 돌멩이를 준비하라고 지시했어. 충돌 과정에서 부상자가 생기면 일반 시민이 합세해서 4.19와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지. 유혈 사태를 준비하는 거야.

정부 전복을 시도하라고 했다는 거야. 국민 연합과 학교 시위 공동 투쟁으로 발전되기 시작했고. 당시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나섰다고 주장하지만, 역사적 기록물과 국제 정치, 경제사를 보면 이게 과연 민주화인가, 아니면 난동인가? 전복이라는 표현이 나오잖아.

풍전등화와 같은 대한민국 정부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고, 북한이 노리고 있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게 당시 지미 카터의 논조였고, 베트남과 이란 친미 정권이 붕괴됐고, 기업이 줄도산하고, 기름도 없어. 이런 상황에서 국가를 전복시키자? 이거 자체가 내란이야.

그런데 그 전복시키려는 주체가 김대중이고, 김대중은 북한 돈을 받았고, 김대중의 주장은 대한민국의 기업을 사실상 해체하는 주장이고, 북한과 평화 통일을 주장한다.

묻겠어. 그럼 여기서 행정부 수반은 어떤 선택을 해야 국가의 주권과 자유를 지키는 행위일까?

최규하에 대한 평가는 갈려. 비겁하다는 평가도 있지. 하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서 계엄령을 유지했다는 것만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한 거야. 이성 계엄군 사령관이 5.18 진압 작전에 대해 비판받지만, 당시 전국적인 계엄령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왜 끼우는데? 5.18이랑 상관없어. 도대체 5.18의 아픔과 비극은 누구에게 먼저 따져야 되는 거야? 김대중이야.

5.18 이후 일어났던 전두환 대통령 시기는 다 부정되어야 하는가? 아니. 전두환 대통령은 보안사령관으로서, 합수부 본부장으로서 일단 1차 내란을 막은 사람이야. 김재규와 정승화의 내란을 막았어. 이걸 심판 안 했으면 2차, 3차 쿠데타가 일어나는 거야. 네가 하는데 나도 왜 하면 안 되나? 개판 나는 거지. 남미처럼 대한민국은 사회주의 독재 국가로 전락하고 끝나는 거야.

사회주의 독재냐? 연속 쿠데타의 비극이냐? 그걸 막아서는 용단을 내린 거야. 그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 본인이 올라탔다는 걸 인정하고 그냥 간 거야. 아무리 욕을 많이 먹어도. 이게 바로 대한민국 역사 진실이야.

9. 배제고 학생들, 고개를 들어!

마지막으로 배제고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어. 고개를 들어! 너희들은 아무런 잘못한 게 없어.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어. 쟤네들은 10대, 99구, 1배 이런 편으로 가겠지만, 내가 바로 보면 관점이 달라. 우리한테 강요를 그만하라는 외침으로 보이더라고. 너희들의 위선을 그만 보고 싶다는 거야.

물론 그 대상이 학생 대 학생이라서 약간의 논란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인생을 파멸시켜야 할 이슈는 아니야. 오히려 왜 이러한 발언이 나오게 되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는 거야. 돌아봐야 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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