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엿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체할세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붙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줄가 유다가 말하되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를 고기 넣는 것을 훔쳐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할 나를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이라 하시니라.
이 시간 목사님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목사님 환영하는 마음으로 뜨겁게 박수로 맞이하겠습니다.
[박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이렇게 한번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12장 말씀을 읽었습니다.
잘 아시는 스토리일 것입니다.
어 마리아라는 한 명의 여인이 예수님께 귀한 향유를 올려드렸다는 그런 말씀이지요.
어, 교회를 조금 다녀 보신 분들이라면 예수님께 향유 옥합을 드려 헌신했던 향기로운 마리아의 스토리에 감동 받으시고 또 은혜 받으셔서 하나님 저도 마리아처럼 향기나는 인생 주님께 헌신하는 의미 있고 갑진 인생 살기 원합니다.
불같이 결심 결단 해보신 기억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참 주님 앞에 우리가 드려야 할 어 헌신의 가치를 보여 주는 어 귀한 말씀이라 할 수 있겠지요.
여러분.
그런데 오늘 저는 어 조금 더 한 걸음 앞으로 더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제가 질문을 한 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어 질문을 준비했다고 하니까 저 사람이 학교에서 나온 것이 맞나 보다.
우리를 테스트하려는가? 이렇게 걱정하실 것 같은데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선한 사람으로 있다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북치고 장그치고 제가 다 할 테니까요.
여러분들께서는 그냥 말씀 들으시면서 마리아에게 주셨던 그 은혜를 오늘 저에게도 주시기 원합니다.
이런 말씀으로 들어 말씀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자, 본문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서 한 가지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그 질문은 이겁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마리아는 왜 그랬을까? 우리 청년들이랑 학생들 표현대로 해 보자면 그녀는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리아가 예수님께 귀한 향유를 드린 그 마리아의 마음이 이해가 되고 그 마음이 내 마음에 와서 닿아야 나도 마리아처럼 예수님께 귀한 향유를 드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 그래서 오늘 질문이 뭐라고요? 마리아는 왜 그랬을까 질문이 되겠습니다.
자, 오늘 본문 요한복음 12장 1절에서 8절 말씀인데요.
그중에 1, 2, 3절에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 1절과 2절, 두 절을 같이 한번 읽어 보면서 시작했으면 합니다.
같이 한번 읽어 주실까요? 시작.
유월절 세에니 아멘.
유월절 엿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 유월절이 되면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고난 사건이 벌어지는 어 그때가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십자가 직전이니까요.
이제 지셔야 할 그 고난의 잔으로 어 생각이 가득차 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타이밍에 예수님께서 배단이라는 마을에 초대를 받아 방문하게 되셨다는 거지요.
이 이 베다니에는 3남매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자, 누구냐 하면 첫 번째는 오늘 주인공인 마리아이고요.
두 번째는 그녀의 누이였던 마르다이고요.
세 번째는 오랍이었던 나사로입니다.
자,이 나사로가 누구냐? 오늘 우리가 12장을 읽었는데요.
바로 앞장인 11장에 보면 나사로가 주인공이 된 사건이 하나 나옵니다.
자, 이름이 제목을 붙여 보면 나사로 부활 사건 이렇게 붙여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이 이 영원한 부활을 했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죽은지 며칠 만에 4일 만에 다시 살아난 그 나사로 육체의 부활을 한 나사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저는이 목사님 가정에서 태어나서 목회자녀로 성장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녀서요.
성경의 주요한 스토리들이 제 안에 옛날 교회 노래 버전으로 저장되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혹시 예수님이 말씀하시니라는 노래 혹시 아세요? 1절에 이렇게 되죠.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됐네.
물처럼 살 것입니까? 포도주처럼 살 것입니까?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이 1절이고요.
2절은 어떻게 되죠?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네.
나사로야 나오노라.
우리 예수님 말씀하시자.
죽은지 며칠이요? 4일이나 했던 나사로가 벌떡 일어나서 주님 충성하겠습니다.
뭐 이러지 않았을까? 성경에 그런 말은 없어요.
나오라 하니까 나사로가 죽음을 이기고 다시 부활해서 살아나왔다는 스토리가 바로 앞장인 11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다시 한번 방문하신 것이 12장 오늘 본문 말씀인 거지요.
본문에 자세히 기록되 있지는 않습니다만 정황으로 추측해 볼 때 아마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을 것이다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로를 다시 살려 주신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예수님 뵙고 싶어 했겠습니까? 자, 저 같으면 이렇게 했을 것 같아요.
예수님이 주빈이시니까 가운데 앉으시기 하고 옆에 누구 앉혀야죠? 이럴 때 나사로 앉혀야죠.
우리 한국식으로 얘기하자면 예수님 봤다.
나사로 봤다.
와, 다시 살리신 거 맞구나.
이거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자, 그런데 바로 그때 저 뒤에 한 명의 여인이 향유를 들고 나타난 거예요.
누굽니까? 오늘 주인공인 마리아입니다.
여러분, 제가 2,년 전 그 현장에 있었더라면 저 같으면 이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우와, 마리야 예수님께 향위를 드릴 거라면서요.
어, 제가 다 알아요.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유튜브 생중계 나갑니다.
언론 기자들 다 불렀어요.
막 이러면서 막 환영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2000년 전 사건 현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마리아에게는 관심이 없었고요.
지금 뭐 하느라고 바빠요? 예수님 봤다.
나사로 봤다.
와 다시 살리셨구나 하느라고 바쁘던 거죠.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가운데 마리아는 향위를 들고 예수님께 가까이 왔고 그 향위를 예수님께 자 어떻게 했다고요? 부어 드렸습니다.
그윽한 향기가 사람들의 코 끝에 가서 닿기를 시작을 했고요.
그제서야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 이럴 때는요.
우리 무슨 만화나 카툰이나 뭐 이런데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 머리 위에다가 말풍선을 하나씩 이렇게 그려 가지고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지 한번 적어 보세요 하면 재미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에 연배가 좀 있으신 어르신들이라면 이렇게 말씀 길게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도대체이 처자가 무슨 행위를 한 것인지 즉시 고하도록 하라.
이렇게 하셨을 것 같고요.
우리 젊은이들과 학생들은 한 글자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헐 점점점 이렇게 했겠죠? 자, 만세대 공룡 표현으로 바꿔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생각한 거죠? 마리아는 왜 그랬을까? 지금 무슨 행동을 한 것일까? 사람들은 동시 나발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자, 여러분, 오늘 그래서 우리가 찾아보려는 것이 마리야가 예수님께 향유를 드린 까닭을 살펴보는 것인데요.
이것을 찾으려면 한 가지 중요한 핵심 정보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핵심 정보일까요? 목인 예수님께 드린 향유가 도대체 얼마짜리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죠.
만 원짜리 향수 드렸습니다.
잘하셨어요.
이렇게 할 거고요.
100만 원짜리 향수 드렸습니다.
아, 그래요? 귀한 일입니다.
이렇게 할 거고요.
천만 원짜리 향수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무슨 일 있으셨어요? 이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자, 오늘 본문을 읽어 가다 보면은요.
이 향유를 시장에 내다가 교환을 했더라면 그 가격이 약 300대날 이온 되었을 것이다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 맞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단위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지요.
자, 좀 쉽도록 바꿔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데나리온이란 노동자가 나가서 하루 일해서 벌어들이는 하루 품싹이다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말로 얘기하면 하루 일당이다 할 수 있겠죠.
자, 그럼 생각해 보시죠.
300대나리오는 며칠일해야 되는 거예요? 300일요.
자, 1년이 365일이고요.
주일이 쉰 두 번이어서 빼고 뭐 명절 빼고 뭐 이렇게 되면 약 300일이다 생각하면 300대날 리온은 요즘 말로 얘기하면 1년 연봉 정도 되는구나 생각이 되죠.
아무도 놀라지를 않으시는데요.
1년 연봉은 오늘도 헌금할 수 있습니다.
뭐 이러시는 걸까요? 와 믿음이 좋으신 분이 큰 금액이거든요.
아직도 와닿지 않으시는 분들이 계신 거 같아 가지고요.
제 맘대로 계산을 해 보겠습니다.
이 물론 고대 사회랑 현대 사회는 이게 비교가 사실 안 되는 것인데요.
순전히 제 맘대로 계산하기 편하게 하루에 10만 원 번다 해 보겠습니다.
자, 계산 들어갑니다.
300대나리온은 300 * 10만 원이니까 얼마죠? 3천만 원입니다.
아직도 놀라지를 하셔 가지고요.
여러분이 3천만 원이라는 말이 3천만 원이지요.
고대 사회에 마리아가 여자잖아요.
고대 사회의 여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회 경제적인 지위 상황을 고려한다면 3천만 원이란 어쩌면 마리아가 가지고 있었던 전재산일 수도 있습니다.
자, 쉽게 갑니다.
마리아는 싹 다 팔아서 다 받쳤다라는 얘기가 되는 거죠.
이때부터 마리아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한국 초대 교회, 한국 교회 옛날 옛날 우리 신앙의 어르신들 이야기 저도 목회자 가정에서 이제 훈훈한 감동적인 스토리를 많이 듣고 자라지 않았겠습니까? 예전에는 어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께서 어 교회 건축과 또 복음 사역을 위해서 진짜 다 팔아서 헌금했더라는 얘기를 어렸을 때들은 적이 있어요.
요즘은 쉽게 듣게 되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 노후도 생각해야 되고 자녀도 양육해야 되고 또 여러 가지 생각해야 되고 하니까 그죠 남겨 놓고 아 물론 11조 드리시고 귀하게 힘내어 이제 드리시는 건 너무 감사하고 귀한 일입니다.
아, 그런데 다 바쳤다는 얘기를 요즘 듣기는 쉽지는 않은 거 같아요.
근데 마리아는 다 받쳤다는 것입니다.
여기부터 마리아가 무슨 마음으로 그런 것인지가 잘 이해가 되지 않기를 시작합니다.
자, 가설을 하나 세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행동한 것이 아닐까예요.
자, 마리아가 드린이 300대나리온짜리 헌금에 제목을 붙여 보겠습니다.
오라비 부활 감사 헌금.
지난주에 여러분 이건 이건 죽은 오빠가 다시 살아난 것에 감사의 헌금 지난주에 들리신 부활 헌금 예수님 다시 살아나신 거 얘기하는 거고요.
이거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다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호라비를 다시 살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만약에 우리 가족 중에 너무 젊어서 일찍 갑자기 돌아가신 분이 계신데 얼마 내면 살려 준다? 3천만 원 내면 살려주고 노래도 만들어 줘요.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네.
예수님 옆에서 부하고 사진 찍게 해주고 막 그러면 3천만 원 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안 하신다고요.
돈이 중요하죠.
가족보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확실합니까? 확실합니까? 가 확실하다 그러면 어떻게 어려워도 어떻게든 마련해서 하려고 하시겠지요.
아 그래서 오라비가 다시 살아난 것 감사해서 드린 것인가 생각을 해 볼 수 있는데요.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아니에요.
이것도 또 맞지는 않는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보세요.
지금 3천만 원짜리 300나리온의 가격이 어디로 갔어요? 땅바닥으로 갔습니다.
그죠?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려면 그걸 땅바닥으로 가서 더 이상 쓸 수 없게 돼 버리는 이런 행동을 꼭 했어야 하냐는 거죠.
만약에 제가 그런 마음으로 주님께 뭔가를 드리고 싶었다면 저는 은행으로 갔을 겁니다.
물론 계좌치 할 수도 있는데요.
아, 그거보다 좀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거예요.
그래서 은행 딱가 가지고 직원분 나오세요.
신권으로 아무도 안 쓴 것으로 1년 번호 뭐 맞춰 가지고 빳빳한 애들로 이렇게 해서 딱 주세요.
그래서 딱 이렇게 하고요.
그래서 깨끗하고 이쁜 봉투에다가 놓고 손편짓을 거예요.
사랑하는 예수님 오라비 다시 살려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저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해서 드리니 받아 주시고 저의 귀한 것이니 있는 곳에 실제로 잘 사용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주님 사랑해요.
그리고 가끔씩 만난 것도 사드세요.
뭐 이렇게 해 가지고 이렇게 탁 드리면 마음도 표현할 수 있고 나의 귀한 것이 실제로 유익한 일에 쓰일 수가 있단 말입니다.
근데 그렇게 안 하고 마리아는 어떻게 했어요? 자기 맘대로 막가 가지고 와 향수를 샀어요.
그러더니 예수님하고 이런 방고 산기도 안 하고 막 와 가지고 예수님의 몸에 그거를 막 붙더니 막 울더니 막 머리카락고 닦더니 막 이랬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마리아의 마음은 어떤 거였을까요? 왜 이런 방식의 행동을 한 것이었겠습니까? 너무 궁금해지기만 합니다.
자, 여기까지가 오늘 12장 1절, 2절, 3절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마리아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 않고 멈추어요.
그러더니 4절, 5절, 6절에 또 다른 인무를 한 명 등장시켜서 그다음 이야기를 이어십니다.
자, 4절, 5절, 6절에 나오는 인물은 누구냐 하면은요.
만약 우리 성도님들께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가장 싫은 사람 하나만 골라봐라 그러면 아마이 사람 고르실 것 같습니다.
자, 이름이네 글자인데 뒤에 두 글자가 유다예요.
누구죠? 가론 유다.
가론 유다인 거죠.
이제 며칠 지나지 않아 예수님 돌아가시도록 배반하여 팔아 넘길 그 사람입니다.
자, 그가이 향유값 사건 현장에 있다가요.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드리는 것을 목격을 하더니 마리아를 야단을 쳤다는 것입니다.
자, 그 내용이 오늘 12장 5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유다가 한 말입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대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한국말인데 길어요.
그렇죠? 자, 쉽게 줄여 보겠습니다.
뭐라고 한 거죠? 아깝도다.
어, 이렇게 한 거예요.
그죠? 아니, 이렇게 해 가지고 현금으로 이렇게 들렸더라면 좋은 일을 쓸 수가 있었을 것인데 자, 그 돈이 어디로 갔다? 땅바닥으로 가서 못 쓰게 돼 버렸으니까 왜 허의하였는가? 이렇게 표현을 한 거죠.
어, 유다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요 내용 들어 보니까 이거는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합리적인 시각에서의 해석과 완전히 합치하는 내용인 거 같아요.
어, 유다가 괜찮은 사람인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으나 그의 속내는 시콤해 가지고 전혀 달랐다는 점을 오늘 4절 말씀과 6절 말씀이 고스란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4절 보니까요.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줄 가론 유다였다라고 말씀해 주시고요.
자, 6절.
유다의 행동을 설명하십니다.
같이 한번 읽을까요? 시작.
이렇게 말하면 자, 무슨 말씀입니까? 유다는 도둑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팀에서 유다는 재정 집행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었죠.
그럼 재정이 들어오면 주님 보시기 합당하게 바르고 공정하게 이렇게 집행해야 하는데 유다는 어떻게 했다는 겁니까? 들어오면 그중에 일부를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는 것이 뭔지 모르시죠? 목사님 그 포즈가 뭐예요? 난생 처음 보는 저는 이해가 안 되는데 이러셔야지 어 그게 뭔지 저는 잘 알겠습니다.
이러시면 큰일납니다.
그잖아요.
유다는 그런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거죠.
저기까지 들으시면 그럴 줄 알았어요.
유다가 나쁜 놈인 줄 제가 진작게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실 것 같은데요.
여러분 그렇게 쉽게 속단하시면 안 됩니다.
왜죠? 유다가 지금 비록 현재 이런 망가진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은요.
3년 전 처음 제자로 부름받았을 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공생이 시작하시면서 부르셨을 때 그 제자들이 어떻게 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요? 그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으니라라고 되어 있지요.
유다는 헌신자 중에 헌신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바치고 주님을 따라나섰던 헌신자 중에 한 명이었어요.
3년 전에는요.
그런데 지금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유다가 변했습니다.
마음이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없어졌어요.
요즘 교회 말로 표현을 해 보면 이런 거겠지요.
교회 구조 안에 잘 들어와 있어요.
주일 예배에도 와 있습니다.
심지어는 봉사하는 직분까지 맡아서 중요한 교회 일들을 감당을 하고 있어요.
몸은 예수님 옆에 딱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웬 일입니까? 마음이 없어졌어요.
마음이 없어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두 인물을 대비 대조시키는 거죠.
1, 2, 3절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만큼 놀라운 헌신의 사랑을 주님께 드린 마리아를 보여주고요.
4, 5, 6절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넘어짐을 보여주는 유다의 모습을 보여주고요.
이 두 그림을 비교하여 대조하며 우리에게 질문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모습은 지금 마리아의 모습과 같습니까? 아니면 나의 모습은 혹시 유다의 모습과 같지는 않습니까?라고 라고 물으시고 계시는 거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지금 신앙의 상태는 마리아와 같습니까? 아니면 유다와 같습니까? 자, 답을 찾아야 되지요.
어떻게 하면 마리아처럼 될 수 있는지 답을 찾아야 합니다.
답은 항상 어디에 있지요? 성경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자, 7절 8절 말씀 예수님이 해 주신 말씀에서 답을 찾아보지요.
같이 한번 읽습니다.
7절 8절입니다.
시작.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 여기 보니까 마리아의 행동을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무슨 날을 위하여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장례할 날.
예수님의 장례할 날이 무엇입니까? 초두에 말씀드린 대로 이제 며칠 지나지 않아 유월절이 될 것인데 그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는 일이 있게 되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를 느린 까닭은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그녀 마리아 자신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임을 알게 되어 그 예수님의 죽으시는 그 육체에 감사드리고 기념해 드리기를 원했다는 거죠.
향유란 물론 향기를내는 용도로 쓰이는 물품인데요.
고대 사회에서이 물품은 또한 장례 용품으로 시신을 기리고 기념하는 용도로 쓰였다는 것이지요.
왜 현금으로 바꾸어 주님께 드리지 않고 향유로 부어드렸다는 것입니까? 왜 꼭 몸에 부어 드렸어야 했다는 거죠? 예수님께서 그 육체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사 고난 당하실 것이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육체에 감사드리고 기념드리기 위하여 향를 부어 드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실이 마리아의 마음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요한복음 11장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그 사건부터 12장까지를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상 다 할 수가 없어요.
돌아가셔서 시간 내셔서 11장 12장을 한번 쭉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중요한 포인트만 연결해서 말씀을 드릴게요.
자,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삼남매 가족이 베다니에 살고 있었는데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있었거든요.
근데 어느 날 나사로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마리아 마르다가 그래서 예수님께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수님 오빠가 아파요 했어요.
무슨 뜻이죠? 예수님 빨리 오셔서 고쳐 주세요라는 뜻이었을 거예요.
근데 주님은 오시지를 않으셨습니다.
바쁘시면 안 오셔도 돼요.
말씀만 하셔도 나을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것조차 해 주지 않으셔서 오라비가 죽었습니다.
이 마리아 마르다의 마음이 어떻게 되는 거죠? 뒤틀리는 거죠.
상하는 거죠.
쭉 가라는 것입니다.
주님 분명히 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고 이렇게 어려움을 당게 하십니까? 사랑하시는 거 맞습니까? 기억하시는 거 맞습니까? 온갖게 올라오면서 마음이 어려워지는 거지요.
근데 주님께서는 죽은지 4일 만에 오셨어요.
오시려면 일찍 오셔야지.
4일 만에 오셨어요.
자, 예수님 오셨다는 말을 듣고이 마리아가 반응한 모습과 마르다가 반응한 모습이 서로 반대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자, 마르다는 어떻게 반응했냐 하면요.
예수님 오셨다.
그러니까 그 마을 입고 어기까지 막 뛰어갔어요.
막 갔어요.
뭐 하려고 간 걸까요? 뭐 하긴요? 와다 이거 하라고 한 거겠죠? 그렇잖아요.
어떤 분들은 그죠? 어, 생각하고 있는게 있으면 바로 표현하고 말해야 되시는 그런 성격의 분들도 계신 거죠.
근데 마리아는 반대였던 거 같습니다.
11장 읽어 보면 마리아는 그때 집에 앉아 있었다.
예수님 보러 안 나가고 집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 분들도 있잖아요.
어려움 한번 당하면 못 봐요.
안 봐요.
볼 수가 없어.
이런 분들도 또 계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마르다는 마을까지 막 갔어요.
예수님 딱 만나 만 만나자마자 왜 그렇게 하셨다? 왜 이제 오셨단 말입니까? 막 했어요.
그랬더니 예수님께서는 마치 기다리셨다는 듯이 마르다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셨는데 그 대답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정수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사로 왜 죽지 죽게 내버려듣다가 지금 살리는지 왜 그렇게 하셨는지를 말씀하시는 건데 그 안에 십자가 복음이 담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 말씀인데요.
오늘 우리가 읽은 마지막 성경 구절이기도 합니다.
자, 힘내셔서 25절 26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멘.
여기 나는 무엇 무엇이다라는 형태가 나타나는데요.
이것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 공식이다라고 부릅니다.
나는 무엇무엇이다라는 표현 가운데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표현 설명해 주신 그 포뮬러와 같은 그런 틀입니다.
자, 첫 번째 예수님 자신이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나는 부활이다 하셨습니다.
자, 무슨 뜻이냐? 하반절에 설명되어 있죠.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것은 육체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죠.
나사로가 지금 죽었다고 너희가 힘들어 하고 있느냐? 죽은 나사로의 육체를 내가 지금 다시 살리겠다.
이 말씀인 거죠.
자,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 두 번째 하나가 더 있습니다.
나는 생명이니라는 말씀이 있는 거지요.
26절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영원한 생명, 영생을 준다라는 말씀이시지요.
자, 죽은 나사로를 지금 다시 살리시는 그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께서 우리에게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부활과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려 주고 계신 겁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뜻일까요? 단순히 그냥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만 말씀하시는 걸까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제 며칠 지나지 않으면 예수님 자신께서 죽으세요.
그죠? 근데 죽으시고서는 끝이 아니라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 하십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의 십자가의 그 권세와 그 능력으로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도 부활과 영생을 허락해 주신다는는 것을 보여 주시는 거죠.
그것을 미리 알려 주시기 위해서 나사로가 죽도록 놓아두셨다가 다시 살리시는 일을 지금 하고 계신다 하신 거예요.
그런데이 말씀을 누가 들었다고요? 마르다가 들었고 마리아는 어디에 있었다고요? 집에 앉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 이다음을 읽어 보면요.
이제 예수님께서 마르다를 보내셔서 마리아를 챙기신 것 같아요.
마리아 예수님께 데려오라 하신 거죠.
그래서 예수님 앞에 왔어요.
그러면 나는 부활이요 나는 생명이다.
이렇게 한 번 더 해 주셨으면 좋았을 법한데요.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오자 예수님 왜 이제 오셨어요? 오라비가 이렇게 하면서 그냥 눈물이 월칵 쏟아졌어요.
그 말 못 하시는 이런 분들은 또 한번 말하게 되면 그냥 다 쏟아져 나오기도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니까 마리아가 우는 거 예수님께서 보시고 자 가자 하고 가셔 가지고 동굴 앞으로 가셔 가지고 나사로야 나오라 하셔 가지고 나사로가 충성 그러면서 다시 살아나오고 사건은 급 마무리되고 예수님은 마을을 떠나서 출발해서 가셨다 이렇게 사건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마리아는 나는 부활이요 나는 생명이다.
이것 때문에 내가 나사로를 노아두었다가 다시 살린다라는 예수님의이 복음 설명 말씀을 마리아가 들었어요? 못 들었어요? 못들은 채로 사건이 종료가 되었다는 거지요.
생각해 보시죠.
예수님 떠나신 후에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부활 생명 말씀을 전달해 주었을까요? 전달 안 했을까요? 저는 전달했을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죠? 마리아가 예수님 마음을 아직도 오해하고 있었으니까요.
알려 줘야 될 거 아니겠습니까? 틀림없이 알려 주었을 거예요.
무슨 말이지요?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그 은혜 이야기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는는 것입니다.
아, 예수님께서이 행동을 하신 것은 예수님은 그냥 오라비 나사로 살 다시 살리시는 정도 하신 것이 아니시구나.
예수님은 이제 나를 위하여이 부족하고 죄 연약한이 죄인인 나를 위하여 십자가로 가셔서 죽으시고 나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말씀이시구나.
그 사랑을 그 은혜를 내가 이제 알겠구나.
지늦게 알았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지요? 예수님한테 그냥 함부로 막 했거든요.
이 마리아가 오해 가지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죠? 가서 이제 알았다고 말씀을 드려야 돼요.
근데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떠나시고 안 계세요.
근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다음에 12장 사건이 생긴 거죠.
예수님께서 마을에 다시 방문을 하신 거예요.
그럼 가서 말씀을 드려야죠.
아니요.
그런데 가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왜냐면 또 가서 얘기하려면 또이 마리아는 눈물이 왈칵 이렇게 될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말을 해야죠.
그래서 말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떻게요? 가서 예수님께서 보시면 아시는 것을 다 가실 것을 준비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향유를 준비하여 주님께 부어 드린 거지요.
말씀드린 거예요.
예수님 저 이제 알겠어요.
저를 사랑해 주신 그 십자가의 은혜 그 사건을 이제 감당하신다는 거 알겠어요.
주님 감사 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말씀드렸던 것이었습니다.
단원데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드린 까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그 십자가의 은혜가 마리아의 마음에 부어져서 그녀의 내면의 영혼에 가득 가득 넘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렸을 때부터 교회 생활을 했어요.
이 이 향함 이야기 참 많이 듣고 묵상도 많이 했었습니다.
저는 제가 부족하고 연약해서 그런지 다 이해를 못 됐던 거 같아요.
이 향의욕함 이야기가 뭔지요? 저는 향의역함 이야기가 이런 건 줄 알았습니다.
잠시 쉽게 표현해 볼게요.
바칩시다.
바칩시다.
그런지 알았어요.
마리아가 향위로 주님께 헌신했듯이 우리도 헌신합시다.
시간으로 헌신하십시오.
재정으로 헌신하십시오.
달란트로 헌신하십시오.
기도로 헌신하십시오.
마리아는 모든 걸 바쳤는데 당신은 지금까지 얼마를 바쳤습니까? 바칩시다.
바칩시다.
인 줄 알았어요.
맞아요.
오늘 저도 결론은 그렇게는 될 거예요.
근데 그게 핵심은 아니더라고요.
우리를 움직이는 그 동력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더란 말입니다.
여러분, 제가요 오늘이 본문 스토리를 한 줄로 요약해서 제목을 한번 붙여 보겠습니다.
자, 한번 들어 보세요.
한 줄 요약입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리신 예수님.
자, 다시요.
향의 옥합을 깨뜨리신 누구요? 예수님.
어우, 목사님이 신학교 교수님이 성경을 그렇게 몰라서 어떠 쓰었어요? 향욕을 깨뜨린게 누구죠? 마리아인데 무슨 예수님이 향욕합을 깨뜨렸다고 그러세요라고 말씀하신다면 오늘이 사건을 하나도 이해를 못 하신 겁니다.
오늘 사건에서 가장 큰 희생을 하신 분이 누구이시죠? 나이요.
3천만 원 했다고요.
가장 큰 이생을 하신 분은 예수님 아니신가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기가 되셔서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너무 익숙해 가지고요.
와 예수님 당연히 사람이 되셔야 되는 분 아닙니까? 막 이러는데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 따위가 되실 뿐이 아니세요.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피조물이 되실 뿐이 아니세요.
교집합이 없어요.
개념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하도 많이 들어 가지고 그거 하러 온 거 아니야.
그분은 완전 고맙지.
이렇게 생각.
아닙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따위를 지실 뿐이 아니세요.
그분은 재판장이세요.
피고의 자리에 서실 뿐이 아니시란 말입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데 그분이 내가서야 할 나의 자리에 피고석에 서셔서 나를 대신해서 사형을 언도받으시고 사행을 실제로 집행당하셨단 말입니다.
오늘의 사건에서 여러분 깨어진 진짜 옥합이 무엇일까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바뀌신 예수님의 육신 이야말로 깨어진 참 옥합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사건에서 흘려진 진짜 향유란 무엇일까요? 나를 위하여 흘려 주신 종귀하신 예수님의 보혈 이야말로 흘려진 하늘의 참 향유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그래서요.
저는 마리아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돼요.
한번 들어 보세요.
마리아의 마음이에요.
마리아는요.
그러니까 바친게 아니었어요.
어떻게 받쳐요? 바친다 생각하면 좀 남겨 놓고 이렇게 해야죠.
그러니까 이거는 바친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럼 뭘까요? 마리아는요 반대예요.
마리아는요 받았던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을만큼 놀라우신 그 하늘의 은혜를 마리아는 받았던 거지요.
그래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하면서 희생하고 헌신하고 주님께 드리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많이 헌신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막 모아요.
내가 주님을 위해서 한 거 이렇게 막 모아요.
우와 많아 가지고이 태산보다 높을 거 같아요.
너무 많아.
그런데 눈을 들어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하신 일들에 비교해 보니 내가 한 모든 것들은 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것들에 비할 수 없어.
비길 수 없어.
주님 감사드립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고백하게 되는 것.
그것이 신앙이고 그것이 헌신 그것이 사역인 것이지요.
이렇게 말씀드리면요.
예배 끝나고 이제 돌아가시면서 성도님들 중에 어떤 분들이 저를 찾아오실 것만 같습니다.
목사님 일 좀 와 봐요.
제 딱 붙잡고 골방으로 이렇게 끌고 들어와 가지고요.
그 말은 잘하시더만 한번 물어봅시다.
당신은 그게 되시요? 이렇게 저한테 물어오실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드리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얼마나 어려운 얘기 하고 있는지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나의 것을 주님께 드리면서도 그것이 감사하다라고 생각하자 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잘 안 되지요.
잘 안 되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늘 저를 깨우쳐 주시고 훈련시켜 주시고 다시 빚어 주시고 하십니다.
많은 일들이 있는데요.
그중에 한 가지 경험 여러분께 잠깐 나누고 어 설교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신학교 어 교수 일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저도 어 신학교에 가기로 결정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목회자 자녀로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뭐 넉넉하게 자라지는 못한 거 같아요.
금수저 은수저 정도는 못 되었고 흑수저 정도.
물론 신앙의 유산이 자랑스럽고 좋긴 했는데요.
뭐 부요한 형편은 못 됐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밥은 먹었으니 흑수저 정도는 숟가 무수조도 있다면서요.
그래 저는네 저는 숟가락은 뭐 좋은 건 아니지만 밥을 먹는 숟가락은 있었던 거 같습니다.
자랑할 만한게 별로 없었던 거지요.
그렇지만 신학교 가기 전에 저한테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서 좋아라 하는 것들 중에 하나 자랑할 만한 거 하나가 있었습니다.
물론 교회 안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아니고 우리 새로운남 교회에는 또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만은 부끄럽지만은 또 인간적으로이 대한민국 사회에 자랑할 만한 거 남들이 생각해 주는 거 그냥 저한테 신학교 가기 전에 하나 있었습니다.
뭐냐하면 대학교 학벌인데요.
저는 서울 상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신학교 가기로 결정을 했거든요.
그때 저희 아버님께서는 물론 좋아하셨지만 친척분들과 가까운 분들 중에 신학교 간대니까 이렇게 저한테 얘기하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뭐라고 하셨을 것 같으세요? 아깝도다.
그러셨어요.
그게 무슨 말이었을까? 근데 저는 아깝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제 부르심이고 제 길이었거든요.
그렇잖아요.
너는 목회자가 되라 하시면 목회자가 되는 것이 있고요.
선교사가 되라 하시면 선교사가 되는 것이고 저는 사역자가 아니지만 이런 이런 일들을 하면서 주님을 교회에서 섬기고 제자된 삶에 살아라 하시면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부르심이니까 갔어요.
그런데 몇 년 지나서요.
제 안에 못된 생각이 또아리를 틀게 된 것을 나중에 발견하게 됐습니다.
자, 제가 신학생이 돼서 어떤 교회에 교육 전도사로 파트타임 사역자로 봉사를 하러 사역 부임하게 됐습니다.
어떤 교회 갔어요.
그런데 우연치 않게도 그 교회 다임 목사님께서 저의 서울대학교 한참 선배님이셨습니다.
전공은 다른 분인데요.
저는 모태 신앙인데 그분은 안 믿다가 대학원 다닐 때 예수님을 믿게 되셔서 목회까지 하시게 된 분이셨어요.
자, 여러분, 지금부터는 제 얘기가 아니라 그 목사님 얘기입니다.
저는 나쁜 놈이고 그분은 훌륭하신 분이세요.
자, 그 목사님이 그때 우연치 않게 어디를 가셨다가 안 믿던 시절에 대학원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셔서 넘마디 얘기 나누신 것을 교회 다시 돌아오셔서 설교 시간에 지나가듯이 얘기를 하셨는데요.
제가 그때 설교 시간에 여기 앉아 있다가 그 말씀 듣고 되게 큰 도전을 받았던 그런 얘기입니다.
자, 그분 얘기입니다.
그분이 안미터 시절에 친구들을 만났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이 목사님한테 이렇게 얘기를 했답니다.
아무게야, 너 아직도 교회에서 썩고 있냐? 어, 그랬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안 믿는 분들이 목사님 이렇게 모명 교회에서 뭐 제자 훈련하고 기도하고 신방 가고 뭐 나오지도 않고 뭐 이렇게 하고 뭐 하는지 모르겠고 저 밥은 먹고 사는지 모르겠고 뭐 뭐 이러니까 아직도 썩고 있냐 이랬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그 친구들한테 이렇게 대답을 하셨답니다.
얘들아, 나 썩고 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내가 예수님 위해서 썩을 수 있다면 그건 영광이지.
그건 영광이지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제가요 앞에서 이제 듣고 있다가 말씀 듣는데 와 하나님께서 저한테 이놈아 정신 차려라 이렇게 하시는 거 같았어요.
여러분 지금부터는 제 얘기입니다.
그분 얘기해요.
그분 훌륭하시고 저는 나쁜 놈이에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를 저도 그때 이제 발견하게 된 거 지금은 저예요.
제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저예요.
나는 이렙배도 괜찮은 거를 주님을 위해서 바친 사람이다.
나는 이배도 괜찮은 거를 드릴 만한 거를 주님께 바친 사람이다.
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주님께서 이놈아 그거 아니야.
이렇게 하신 거죠.
생각해 보았어요.
여러분, 저는 바친 인생이 아니라 받은 인생이더라고요.
이해할 수 없을만큼 놀랍고 갑옷이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이렇게 받은 받은 사람이더라고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존귀한 교회를 주님의 성도들을 섬기고 목양할 수 있는이야 특권을 받은 저는 받은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나는 받은 사람이다.
그다음에 잘 됐을까요? 잘 안 돼요.
잘 안 돼요.
그죠? 우리 새로남 교회는 건강한 교회여서 안 그렇거나 덜할 것입니다만는 그냥 교회들 평균적으로 얘기를 해 보면요.
교회에서는 은혜 받고 훈련받고 더 열심히 일을 더 시켜요.
막 더 시키고 당신의 은혜 더 와닿았으니까 말씀 더 먼저 배웠으니까 한 번 더 양보하고 한 번 더 기도하고 한 번 더 헌신하고 시간 한 번 더 내고 그래 가지고 교회를 위해서 주님이 한 거 보니까 100만 23번을 한 거예요.
옆에 보니까 23번밖에 아는 사람들이 수두룩수록한데 나보고 자꾸 더 하래요.
그래 가지고 이게 100만 40번이 되고 이러다가 140만 개가 되는게 아닐까 막 이렇게 생각이 돼 가지고 이러다 보니까이야 내가이 동네에서 제일 헌신한 사람이다.
내가 제일 많이 바쳤다.
이렇게라고 제가 생각 하고 있더라고.
주님이 그럴 때마다 이놈아 그거 아니야.
너는 받은 인생이다.
받은 인생이다.
이 옆에 와서 이렇게 보시면 제 뒤통수가 좀 납작하거든요.
이렇게 아야 이렇게 하도 해 가지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이란 헌신이란요.
주님께서 하신 일이 보여서 내가 주님께 한 일과 그 주님이 나를 위해 하신 것은 비할 수 없어.
비길 수 없어.
주님 감사드립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향유를 주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헌신의 인생 살아야 돼요.
그런데요.
여러분, 내가 가진 향유를 이렇게 모아 가지고 이렇게 그걸로 향기를 내보려고 하면은요.
안 되실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가진 향해가 별로 없어요.
그까 막 억지로 하다 보면 내가 제일 많이 바쳤다.
내가 많이 바쳤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머어지게 될 겁니다.
그러면 안 돼요.
어떻게 해야 되죠? 이렇게 하시면 돼요.
향유는요.
하늘에서 받아서 드리고 나누는 것입니다.
향유는요.
하늘의 향유를 받아서 드리고 나누는 것입니다.
딱 하나예요.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너무 커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백하는 그런 향기나는 향위옥합 인생 우리 모든 성도들께서 살아내실 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