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당신! 2025년 인생의 의미를 찾다: 신광섭 목사 설교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 그리고 숲의 비밀
내가 아저씨/아줌마가 되었다고 느낄 때가 언제야?
나는 42살인데, 얼마 전에 TV를 켰는데 '동물의 왕국'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어. 어릴 때는 아빠가 '동물의 왕국' 보는 게 너무 싫어서 채널을 몰래 지우기까지 했는데 말이야. 이제는 집에 오면 뉴스를 틀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느꼈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관심 많은 나
다큐멘터리를 보면 정말 재미있어. 특히 나는 목회를 하고 있어서 교회 안에서만 생활하잖아. 그래서 바깥세상 이야기가 더 궁금해. (시험에 들지 말고 그냥 들어줘!) 신촌에서 10년 동안 사역하면서 친구들이 클럽 갔다 온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는데,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길래 그렇게 자주 갈까 너무 궁금했거든.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서 다큐멘터리를 가리지 않고 봐. 지금 세상은 어떤지, 자연은 어떤지, 다른 종교는 어떻게 사는지 등등 남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세상을 배우는 거지.
숲길 산책과 '수관 거리 현상'
이런 것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게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숲길을 걷는 거야. 높은 산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남산이나 북산 같은 곳을 혼자 걸으면 참 좋아.
그런데 숲길을 걷다가 날씨 좋은 날 하늘을 올려다본 적 있어?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거야. 나무들이 겹쳐 있지 않고, 마치 나무들 사이에 길이 있는 것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거든. 이걸 어려운 말로 '수관 거리 현상'이라고 해.
과학이 많이 발전했는데도 나무들이 왜 이렇게 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어. 두 가지 가설이 있는데, 하나는 나무들이 서로 양보해서 그렇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나무들이 지혜로워서 그렇다는 거야. 여기서 지혜는 나무들이 성장하면서 서로 부딪히면 안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깨달았다는 뜻이지.
'소리 없는 전쟁', 숲의 생존 방식
숲에 관한 다큐멘터리 중에 '소리 없는 전쟁'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어. 우리는 숲을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숲에서 식물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하는지 보여줬어.
나무들은 자라면서 뿌리, 잎, 줄기에서 서로 치열하게 싸워. 뿌리가 만나면 서로 간을 보다가, 자신에게 해가 된다 싶으면 상대방 뿌리를 휘감아 말라죽게 만들어 버린대.
우리가 숲에서 맡는 피톤치드라는 향도 사실은 '식물을 죽이는 향'이라는 뜻이야. 나무가 자신만 살기 위해 다른 식물들을 죽이는 독가스 같은 걸 뿜어내는 거지. 얼마나 이기적이야?
특히 소나무는 주변에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는 '타감 작용'을 해. 뿌리부터 줄기까지 화학 물질을 뿜어서 어린 새싹들이 자라기 전에 말라 죽게 만들어 버리는 거야. 그래서 "밑에 잔솔 못 자란다"는 속담도 생긴 거지.
고난을 이겨낸 아름다움
우리가 숲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가 뭘까? 그건 나무들이 치열한 싸움과 고난,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남았기 때문이야. 그냥 심겨져서 자란 게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살아남은 결과물인 거지.
'아름답다'는 말은 '나답다'는 뜻이야. 나무가 나무답게 가지를 뻗고 성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야. 그들에게 주어진 고난과 어려움을 피해가지 않고 맞서 싸워 이겼기 때문에 아름다운 존재로 서 있는 거지.
인공 숲 vs 자연 숲
우리나라는 산불 때문에 인공 숲을 많이 만들잖아.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해서 말이야. 그런데 사람들이 아무리 지혜를 쓰고 능력을 발휘해도, 자연이 만들어 놓은 숲에 비하면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치열한 싸움과 고난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거지.
교회의 역사와 고난
교회의 역사도 희망과 기쁨, 평화의 역사만은 아니야.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박해와 고난의 역사지.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 걸까?" 하고 생각할 수 있어.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면 우리를 평안하게 만들어 주실 수도 있잖아.
베드로의 편지와 '염려를 맡기라'
AD 62년, 예수님의 형제였던 야고보가 유대인들에게 순교당하는 사건이 있었어. 예수님의 형제마저 지키지 못하는 신이라면, 우리가 믿는 신이 무엇이냐는 회의감이 퍼지기 시작했지.
그때 베드로가 편지를 썼어. "너희의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여기서 '맡기라'는 말은 '내 손에서 던져 버리라'는 뜻이야. 내 짐이나 염려를 하나님께 완전히 넘겨버리는 거지.
우리가 염려를 꽉 쥐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어렵대. 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로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염려를 자신의 염려로 바꾸고 우리를 돌봐주시겠다는 약속이야.
하나님의 돌보심은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
하나님의 돌보심은 우리의 상황을 바꾸거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야.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지. 염려를 맡기고 나면 그 빈자리에 믿음이 들어와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깊어지는 거야.
고난을 이겨내는 굳건한 믿음
우리는 살면서 병에 걸리거나, 자녀 문제, 직장 문제 등 다양한 고난과 환난을 겪을 수밖에 없어. 약해 있을 때는 이런 고난이 우리를 넘어뜨리지만, 굳건한 믿음은 우리를 이겨내게 해.
요즘 청년 세대가 무너지는 이유도 고난을 이겨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야. 고난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맞서 싸워 이겨내야 해. 초기 기독교 성도들처럼 말이야.
하나님의 계획과 '중앙교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와 찬양만 원하시는 게 아니야. 우리의 신앙이 깊어져서 세상과 맞서 싸우고 승리하기를 원하셔. 다윗이 골리앗과 싸웠듯이, 우리에게도 믿음을 시험하는 장면이 있을 거야. 믿음이 준비된 사람은 승리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넘어질 수밖에 없어.
우리 '중앙교회'는 119년 동안 살아남은 교회야. 한국 교회가 많이 무너지고 사라지는 시대에, 우리는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리스도의 병사'가 되는 거야. 염려를 맡기고 고난과 환난 가운데 싸울 수 있는 사람 말이야.
하나님의 '친히' 함께 하심
하나님은 우리를 '친히' 온전하게, 굳건하게, 강하게, 그리고 털을 견고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 '친히'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일대일로 관계 맺어주시겠다는 뜻이야. 내가 힘들고 아플 때,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시고 만져주시고 계획하고 계신다는 거지.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 사랑하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계획과 사랑은 더 클 수 있어. 하나님의 그 '친히' 함께 하시는 사랑을 온전히 느끼기를 바라.
마지막 순간에 "내가 정말 예수 잘 믿고 간다"는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가정과 삶이 믿음의 신앙을 물려주는 복된 가정이 되기를 축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