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 심화 필살기! 1910년대 일제강점기 저항, 단 1강으로 완벽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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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저항 운동: 3.1 운동을 향한 뜨거운 에너지
1. 왜 저항 운동을 공부해야 할까?
- 저항 운동이 많다고 해서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자! 오히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싸웠기 때문에 우리 역사가 빛나는 거야.
- 단순히 이름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그분들이 꿈꿨던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걸 기억하며 공부하자.
2. 1910년대, 3.1 운동 이전의 저항
- 국외: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고 미래의 독립 전쟁과 정부 수립을 준비했어.
- 국내: 헌병 경찰의 무단 통치 때문에 비밀결사 형태로 활동했지.
3.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 (1910년대)
- 만주 (간도):
- 서간도:
- 후원 단체: 신민회 회원들이 만든 경학사 (이회영 형제들이 재산을 팔아 지원)
- 학교: 신흥강습소 → 신흥무관학교 (군인 양성)
- 군대: 서로군정서 등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기반)
- 북간도:
- 후원 단체: 중광단 (대종교와 관련)
- 학교: 서전서숙 → 명동학교 (이상설, 윤동주, 송몽규 배출)
- 군대: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주력)
- 서간도:
- 연해주:
- 단체: 권업회 (최재형이 후원, 안중근 의사 지원)
- 정부: 대한광복군정부 (최초의 임시정부 형태)
- 미국 (미주):
- 단체: 대한인국민회 (도산 안창호)
- 군대: 대조선국민군단 (박용만)
- 중국 (상하이):
- 단체: 신한청년당 (김규식 파견)
4. 국내 비밀결사 활동 (1910년대)
- 신민회: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해체.
- 독립의금부 (전라도): 임병찬 주도, 고종 중심의 복벽주의 주장.
- 대한광복회 (경상도 대구): 박상진 주도, 공화정 지향, 친일파 처단, 만주 사관학교 설립 시도. (판사 출신 박상진의 숭고한 희생)
5. 3.1 운동 (1919년)
- 배경:
- 국외: 1차 세계대전 후 파리 강화 회의, 민족자결주의 (미국 윌슨 대통령 제안), 2.8 독립선언 (일본 도쿄 유학생).
- 국내: 고종 인산일 (장례식)을 기회로 삼아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 낭독.
- 전개:
- 비폭력 만세 시위로 시작, 일제의 잔혹한 탄압으로 폭력 시위로 전환.
- 제암리 학살 사건 (실제로는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
- 결과 및 영향:
-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탄생 (1919년 4월 11일).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4월 11일).
- 일제의 문화 통치로 전환.
- 중국 5.4 운동 등 세계 민족 해방 운동에 영향.
6. 대한민국 임시정부 (1919년 ~ 1945년)
- 의의:
- 최초의 삼권분립에 기초한 공화정 정부.
- 국내외 연결을 위한 연통제, 교통국 운영.
- 독립신문 발행, 임시사료편찬위원회 설치.
- 구미위원부 등 외교 활동.
- 위기:
- 연통제, 교통국 와해.
- 이승만의 국제연맹 청원 사건으로 인한 저항.
- 국민대표회의 (1923년) 개최, 창조파(신채호) vs 개조파(안창호) 갈등, 많은 독립운동가 이탈.
- 극복 노력:
- 1925년: 이승만 대통령 탄핵, 박은식 대통령 취임, 국무령 중심제(의원내각제)로 개헌.
- 1927년: 집단지도체제로 개헌 (위기 극복 노력).
- 1931년: 한인애국단 결성 (이봉창, 윤봉길 의거).
- 1932년: 윤봉길 의거 성공 후 중국 국민당의 전폭적 지지 확보.
- 1932년 ~ 1940년: 8년간 6000km 대장정 (상하이 → 충칭 이동).
- 재정비 및 발전:
- 1940년: 주석제로 전환 (김구 주석), 한국독립당 창당, 한국광복군 창설 (지청천).
- 1944년: 건국강령 발표 (삼균주의 - 조소앙), 대일항전 선전포고.
- 1945년: 김원봉의 조선 의용대 합류, 한국광복군의 인도·미얀마 전선 투입 (영국 요청).
- 1944년: 주석·부주석제 개헌 (김구, 김규식).
- 1945년: 한국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 계획 (미국 OSS와 협력).
결론:
1910년대의 뜨거운 저항 운동은 3.1 운동이라는 거대한 불꽃으로 타올랐고,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져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임시정부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끈질긴 노력과 희생으로 독립을 향한 염원을 이어갔고, 이는 오늘날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