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지혜! 얄미운 사람에게 절대 휘둘리지 않는 꿀팁 3가지
미운 사람, 어떻게 대해야 마음이 편할까?
살다 보면 진짜 짜증 나는 사람 꼭 있지?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쁘고, 얼굴만 떠올라도 속이 뒤틀리는 사람 말이야. 유배지에서 그런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봤어. 미운 사람 피하려고 애쓰다가 지치거나, 맞서 싸우다가 오히려 더 상처받는 사람들을 말이야.
근데 신기한 건 뭔지 알아? 미운 사람은 멀쩡한데, 그 사람을 미워한 사람이 먼저 무너진다는 거야.
오늘은 미운 사람을 어떻게 '바꿀까'가 아니라, 그 사람 앞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 살면서 꼭 만나게 되는 그런 사람 있잖아. 말 한마디가 유독 거슬리거나, 이유 없이 나를 깎아내리거나, 같이 있으면 기운 빠지는 사람.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어. 매일 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더 힘들겠지.
너는 그런 사람 앞에서 어떻게 해왔어? 못 본 척 지나쳤어? 자리를 피했어? 아니면 속으로 꾹 참았어?
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어. 유배 가기 전에 조정에서 일할 때, 나를 시기하는 사람, 내 말을 이상하게 퍼뜨리는 사람, 겉으로는 웃으면서 뒤에서는 흉보는 사람들이 있었지. 처음에는 '피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어. 마주치지 않으면 마음도 편해질 거라고.
근데 피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더라고. 오히려 피할수록 그 사람은 내 안에서 더 커졌어. 잠들기 전에도 그 얼굴이 떠오르고, 밥 먹다가도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지. 내가 피한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 마주하는 '나 자신'이었던 거야.
그럼 맞서 싸우는 건 어떨까? 그런 사람들도 봤어.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목소리 높인 사람, 상대의 잘못을 따진 사람. 그 순간은 속이 시원했을지 몰라도, 싸움이 끝난 뒤에도 편안해 보이지 않았어. 이겼어도 찜찜하고, 졌으면 더 쓰렸겠지. 무엇보다 싸우고 난 뒤에도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관계는 더 꼬여버렸지.
나는 유배지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봤어. 강진 땅의 백성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지. 미운 이웃 때문에 밤잠 못 이루는 노인, 형제간의 감정 때문에 수십 년 등지고 사는 형제, 윗사람의 냉대 때문에 몸까지 상한 젊은이들.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어. '그 사람만 없으면 편할 텐데', '그 사람이 달라지면 나도 달라질 수 있을 텐데'.
그 마음이 틀린 건 아니야. 미운 사람 앞에서 흔들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어.
하지만 나는 그들을 보면서 분명히 알게 된 게 있어. 그 사람이 달라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 사람을 피하거나 맞서 싸우는 데 힘을 쏟는 동안, 정작 지쳐가는 건 언제나 미워하는 쪽이었다는 거야.
미운 사람은 무심해. 네가 밤새 그 사람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동안,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자. 이게 미움의 본질이야. 미움은 상대를 향하는 것 같지만, 실은 나를 향해 타오르는 불이라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피하는 것도, 맞서는 것도 아니라면 대체 어떤 태도로 그 사람을 대해야 할까?
나는 그 답을 오랜 시간 끝에 찾았어. 그리고 그 답은 생각보다 단순한 곳에 있었지.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생각해. '저 사람만 달라지면 나도 편해질 텐데', '저 사람이 잘못을 알면 관계가 나아질 텐데'. 그 생각이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그 생각이 얼마나 사람을 오래 붙잡아 두는지 봤어.
유배지에서 글을 쓰면서 살았는데, 하루에도 수백 자를 쓰다 보면 붓을 멈추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있었어. 나를 이곳으로 몰아넣은 자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였지. '그들이 먼저 잘못을 인정했더라면', '그들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어. 그 생각을 할수록 붓은 더 무거워지고, 글은 나아가지 않았고, 마음은 더 좁아졌지. 그때 나는 깨달았어. 상대를 바꾸려는 마음은, 싫은 상대에게 나의 평온을 맡겨 두는 일이라는 것을.
'그 사람이 달라져야 내가 편해진다'는 말은, '그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 한 나는 편해질 수 없다'는 말과 같아. 이게 문제의 본질이야. 미운 사람을 바꾸려 할수록 나의 평온은 그 사람의 손 안에 들어가게 되는 거지.
강진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어. '저 사람이 끝내 달라지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 물음 앞에 오래 앉아 있었지. 그리고 천천히 알게 되었어. 사람은 좀처럼 바뀌지 않아. 더구나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더욱 그래. 그 사람이 스스로 깨닫지 않는 한, 밖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달라지는 건 없어.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야. 내가 달라지는 것. 그 사람을 향한 시선을,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거지. 이건 저주하는 게 아니야. 이건 나의 평온을 내가 되찾는 일이야.
미운 사람을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나는 그 사람에게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어.
유배지에서 나는 한 사람을 오래 지켜봤어. 같은 마을에 사는 중년의 남자였는데, 이웃 중에 유독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가 있었어. 틈만 나면 그의 흠을 들추고 그의 말을 비웃었지.
처음에는 그 남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봤어. 그는 맞서지 않았어. 그렇다고 비굴하게 굽히지도 않았지. 다만 조용히 하던 일을 계속했어. 상대가 비웃어도 흔들리지 않았고, 험담을 늘어놓아도 자리를 지켰지.
처음에는 그냥 성품이 좋은 사람처럼 보였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묘한 일이 생겼어. 그를 괴롭히던 자가 점점 기세를 잃어갔지. 반응이 없으니 흥이 사라진 거야. 걸어도 돌아오는 것이 없으니 혼자 소란을 피우는 꼴이 되었지. 마을 사람들도 서서히 달라졌어. 처음에는 구경하던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그 남자의 편에 서기 시작했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태도가 스스로를 말해주고 있었던 거야.
나는 그것을 보며 오래 생각했어. 사람은 흔히 침묵을 약함으로 여겨. 맞서지 않으면 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달랐어. 그 남자의 침묵은 약함이 아니었어. 그것은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단단한 결심이었지. 상대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오히려 가장 단호한 태도였던 거야.
걸어오는 자는 반응을 먹고 자라. 분노든, 혹이든, 해명이든 상대가 흔들리는 것을 보아야 힘을 얻지.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불은 탈 것이 없으면 꺼져. 미움도 마찬가지야. 받아주지 않으면 결국 되돌아가지.
나는 그 남자에게서 이치를 배웠어. 미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어. 그저 흔들리지 않는 것.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나의 중심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말 한마디 없이, 싸움 한 번 없이. 그것이 관계의 공기를 바꿨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무감각한 것이 아니야. 그 남자가 침묵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무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었을 거야. 그도 분명 속이 쓰렸을 거고, 억울했을 거고, 답답했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 감정을 상대에게 내보이지 않았지. 감정을 느끼는 것과 감정에 끌려가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야.
나는 유배 생활을 하며 이것을 몸으로 배웠어. 처음에는 억울함이 나를 지배했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고, 글을 쓰다가도 손이 떨렸지. 나는 그 감정들을 억누르려 했어. 억누르면 사라질 거라고 여겼지. 하지만 억누른다고 감정이 없어지지는 않았어. 오히려 억누를수록 더 자주, 더 크게 올라왔지.
그때 나는 방향을 바꿨어.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기로 했지.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토록 흔들리는가? 이 감정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었어. 나를 흔드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 아니었어. 그 말이 나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이었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억울함을 풀고 싶은 마음, 내가 옳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었어. 그 사람은 그것을 건드렸고, 나는 흔들렸지.
이것을 알게 된 순간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어. 미운 사람이 나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다면 진짜 싸움은 어디에 있는가? 상대와의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거야.
나는 그 뒤로 미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어. '지금 흔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사람의 말인가? 아니면 내 안에 무언가인가?' 그 물음이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지.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기준이 없을 때 쉽게 흔들려. 남의 말 한마디에 하루가 달라지고, 남의 시선 하나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지. 하지만 내 안에 기준이 서 있으면 달라져.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어. 그 앎이 흔들림을 막아주지. 이게 내가 말하려는 태도의 본질이야.
미운 사람을 대하는 힘은 상대를 이기는 데서 오지 않아. 내가 나를 잃지 않는 데서 와. 유배지에서 나는 모든 것을 잃었어. 벼슬도, 명예도,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도. 하지만 나는 한 가지만큼은 지키려 했어.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있었기에 나는 버틸 수 있었고, 그것이 있었기에 나는 미운 자들 앞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았어.
미운 사람은 그대의 태도를 시험해. 그 시험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대 안에 그대만의 기준이 있어야 해. 그 기준은 거창한 것이 아니야.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지키며 살고 싶은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아. 미운 사람의 말이 그 기준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까? 미운 사람을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갑작스러워. 예고 없이 찾아오고, 준비할 틈을 주지 않지. 그 순간 흔들리지 않으려면 미리 기준을 세워 두어야 해.
나는 유배지에서 스스로에게 몇 가지를 다짐했어.
첫째, 상대의 말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 것. 말이 가슴에 꽂히는 순간 사람은 본능적으로 맞서거나 움츠러들어. 그 두 가지 모두 상대에게 나의 중심을 내어주는 일이야. 한 호흡 늦추는 것. 그것이 시작이야. 나는 유배 초기에 관리한 명과 자주 부딪혔어. 그는 나를 죄인 취급하며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시를 달았지. 처음에는 나도 즉각 받아쳤어.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기세를 올렸고, 나는 더 지쳐갔지. 어느 날 나는 그의 말을 듣고도 그냥 고개만 끄덕였어. 그날 저녁 나는 처음으로 그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잠들었지.
둘째, 그 사람의 말을 나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미운 사람의 말은 대개 그 사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거야. 시기하는 자는 시기하는 마음으로 말하고, 얕보는 자는 얕보는 눈으로 말하지. 그 말은 나를 정의하지 않아. 사람들은 흔히 남의 말을 거울로 삼아. 누군가 나를 못났다 하면 정말 못난 것인지 의심하고, 누군가 나를 틀렸다 하면 정말 틀린 것인지 흔들리지. 하지만 그 말이 나온 자리를 보아야 해. 맑은 물에서 나온 말인지, 흐린 물에서 나온 말인지를. 흐린 곳에서 나온 말로 나를 재단할 필요는 없어.
셋째,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알고 있는 것. 남이 뭐라 해도 내가 나를 알면 흔들리지 않아. 그 앎이 단단할수록 미운 사람의 말은 힘을 잃지. 나는 유배지에서 날마다 글을 썼어. 그 글들은 누가 읽어 주기를 바라서 쓴 것이 아니었어.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썼지. 그 작업이 나를 붙들어 주었어. 남이 나를 흔들려 해도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지.
나는 이 세 가지를 지키려 했어. 물론 언제나 잘되었던 것은 아니야. 때로는 감정이 앞서기도 했고, 때로는 억울함을 참지 못하기도 했지. 억울함이 북받쳐 오르는 밤이 있었어. 그날은 붓을 들어도 글이 써지지 않았지. 나는 그냥 그 감정을 내버려 두었어. 억누르지도, 쫓아내지도 않고 그저 옆에 두었지.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감정은 스스로 가라앉았어. 감정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도록 두는 것이었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돌아왔어. 흔들렸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 자체가 이미 돌아오는 길이었지. 미운 사람 앞에서 완벽하게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것을 목표로 삼으면 오히려 더 지쳐.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린 뒤에 다시 중심을 찾는 것이야. 그 연습이 쌓이면 달라져. 같은 사람 앞에서도 전보다 덜 흔들리게 되지. 그 사람이 달라진 것이 아니야. 내가 달라진 거야.
나는 유배지 생활이 끝날 무렵, 한때 나를 그토록 흔들었던 자들을 떠올렸어. 그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지.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들 때문에 잠을 설치지 않았어. 그것이 내가 얻은 것이었지. 그들을 이긴 것이 아니었어. 그들로부터 나를 되찾은 것이었지.
미운 사람은 사라지지 않아. 살아가는 한 반드시 또 만나게 되지. 하지만 그 사람이 내 하루를 지배하게 둘 것인지 아닌지는 내가 정하는 거야. 그 선택이 태도에서 시작되고, 그 태도는 지금 이 순간부터 가질 수 있어.
마음이 편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미운 사람이 없는 사람이 아니야. 상처받지 않는 사람도 아니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지. 마음이 편한 사람은 흔들리면서도 다시 돌아올 줄 아는 사람이야.
나는 유배지에서 20여 년을 살았어. 그 세월 동안 나를 미워한 자도 있었고, 나를 무시한 자도 있었고, 나를 잊어버린 자도 있었지. 그들을 모두 용서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워. 억울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고. 용서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야.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었지.
나는 오랫동안 용서하려 했었고, 그 애씀 자체가 또 다른 짐이 되기도 했어.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지. 용서는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든 아니든, 그것과 무관하게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을. 용서는 상대를 놓아주는 것이 아니야. 그 사람에게 묶인 나를 풀어주는 것이지. 그 사람을 내 마음 안에서 더 이상 크게 키우지 않겠다는 결심이야. 그것을 알고 나서야 나는 조금 가벼워졌어. 완전히 내려놓지 못해도 괜찮았어. 다만 그 무게를 조금씩 줄여가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지.
나는 강진 땅에서 수백 권의 글을 썼어. 그 글들이 나를 살게 했지. 처음에는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붓을 들었어. 하지만 쓰다 보니 알게 되었지.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미운 자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졌어. 억울함도, 분노도 그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지. 북 끝에 집중하는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나만 있었어. 그것이 내가 찾은 방식이었지. 미운 사람에게 쏟을 힘을 나에게 쏟는 것. 그 사람을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살고 싶은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였어. 그리고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나는 그들보다 훨씬 먼 곳에 와 있었지. 그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었어. 나는 달라져 있었지. 그것이 미운 사람을 올바르게 대한 결과였어.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었어. 흔들리지 않으면서 나아간 것이었지.
그대들의 삶 속에도 미운 사람이 있을 거야. 그 사람은 아마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대는 달라질 수 있어.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 하나가 그대의 하루를 바꾸고, 그 하루들이 쌓여 그대의 삶을 바꾸는 거야.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미운 사람을 만난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그 사람이 내 삶의 중심을 차지하게 둘 것인지 아닌지는 전혀 다른 문제야. 삶은 생각보다 짧아. 미운 사람을 붙들고 있기에는 너무 짧지. 그 힘을 아껴 그대가 사랑하는 것에 쏟는 것. 그것이 결국 마음이 편한 삶으로 가는 길이었어.
그대들이여,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다만 흔들린 뒤에 돌아올 자리를 마음 안에 두어라. 그것이 있는 한, 미운 사람은 그대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나는 그것을 유배지에서 배웠고, 그것이 내가 살아남은 방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