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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한국 조선산업 발전의 숨겨진 이야기 🚢✨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한국 조선산업, 어떻게 시작됐을까? (중학생 눈높이 설명)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은 아니고, 19세기쯤 이야기야. 그때 서양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막 넘보고 있었거든. 그러면서 배에다가 엔진을 달아서 혼자서도 막 움직이는 '기선'이라는 게 등장했어. 이걸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우리도 저런 배를 만들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

흥선대원군도 기선에 관심 있었다고?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 기선 만드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이 꽤 일찍부터 있었어. 바로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이 누구냐면, 고종 임금님이 왕이 됐을 때 아빠로서 나라를 실질적으로 다스렸던 사람이야.

1866년에 미국 배인 '제너럴셔먼호'가 우리나라 대동강으로 들어왔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격해서 침몰시켰거든. 이때 흥선대원군이 그 배의 잔해를 건져서 서울로 가져오게 했어. 왜냐하면 그걸 보고 서양식 기선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거지!

근데 더 신기한 건, 그 제너럴셔먼호를 침몰시킨 사람이 바로 '박규수'라는 사람이야. 이 사람은 나중에 우리나라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앞장섰던 '개화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지. 박규수는 제너럴셔먼호 사건이 일어나기 5개월 전에 평안도 관찰사로 있었는데, 침몰한 배에서 기계 부품이랑 증기선 장치, 무기 같은 것들을 싹 건져서 서울로 보냈어.

흥선대원군은 이걸 받아서 '김기두'라는 기술자한테 서양 증기선을 만들어보라고 시켰어. 서양 배를 본떠서 쇠로 만든 배를 만들고, 숯으로 증기기관을 돌려서 군함 같은 걸 만들어 실험도 했지. 이때 참고한 책이 바로 '해국도지'라는 중국 책이었는데, 이 책에는 서양식 전함 만드는 법이랑 증기기관 설계도까지 들어있었대.

하지만 이 시도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어. 고종실록에 배를 만들었다는 기록 정도만 남아있고, 제대로 된 배가 만들어졌는지,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가 없거든. 아마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많았거나, 아니면 곧바로 '병인양요'라는 전쟁이 터져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안 좋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어.

왜 기선이 중요했을까?

나라 입장에서는 당연히 군함 같은 무기를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을 거야. 그래야 나라를 지킬 수 있으니까. 그래서 쇄국을 주장했던 흥선대원군이 서양 기선에 관심을 가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리고 일반 사람들에게는 '해운업'이 중요했어. 옛날 배는 바람에 의존해야 해서 날씨가 안 좋으면 배를 띄우기 힘들었잖아. 그런데 기선은 엔진이 있으니까 날씨 영향을 덜 받고, 더 많은 짐을 실어서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었지. 하지만 당시에는 배를 만드는 데 돈도 엄청 많이 들고 기술도 필요해서 일반 사람들이 감당하기는 어려웠어. 그래서 나라에서 나서서 해야 가능한 일이었지.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하면서 나라에서 직접 조선소를 만들어서 나중에 '미쓰비시중공업' 같은 큰 회사가 된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당시 조선 정부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거의 없었어. 흥선대원군이 시도했던 게 그나마 시작이었지만, 아쉽게도 이어지지 못했지.

보통 다른 나라들이 기선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먼저 선진국에서 쓰던 낡은 배를 사서 쓰다가, 나중에 해운업이 발전하고 나라에서 지원해주면서 자체적으로 배를 만들게 되는 식이야. 물론 이 과정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지.

그래서 개항 전에 흥선대원군이 나라에서 기선을 만들려고 했던 건 좀 현실성이 떨어지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개항 전부터 나라에서 근대식 배 만드는 데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는, 나중에 해운업을 발전시키고 조선산업이 커질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어.

개항 후, 해운업의 시작

우리나라는 1876년에 개항을 하고 나서부터 서양 중고 기선을 사서 해운업을 발전시키려고 했어. 왜냐하면 개항하자마자 일본이랑 중국 배들이 우리나라 항구나 연안을 장악해버렸거든. 처음에는 일본의 작은 배들이 많이 다녔는데, 나중에는 일본의 큰 회사까지 우리나라 항로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더 어려워졌지.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고 나라에서도 해운업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일반 사람들도 해운업에 뛰어들었어.

  • 나라에서 지원: 1883년에는 해운업을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고, 나라에서 직접 배를 운영하기도 했어. 이때 필요한 배들은 당연히 외국에서 중고 기선을 사거나 빌려왔지. 1886년부터 1893년까지 여러 척의 배를 사들였어.
  • 민간의 노력: 1886년에는 '대흥상회'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해운 회사가 생겼어. 몇몇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일본에서 중고 기선을 한 척 사서 국내 항구에서 곡식 같은 걸 운반했지. 하지만 돈이 부족하고 경영이 어려워서 1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어. 그래도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해운업에 뛰어들었어. 회사 형태로 하거나, 배 한두 척을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지.

이때 해운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옛날 배를 몰던 사람들, 나라에서 운영하는 배에서 일했던 관리들, 그리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양반 출신들까지 다양했어. 하지만 이 사람들도 필요한 배는 전부 외국에서 사거나 빌려와야 했지.

나라와 민간에서 이렇게 해운업을 키우려고 노력했던 것은, '동력으로 움직이는 기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였어. 당시에는 중고 기선을 사서 쓰는 게 당연한 과정이었고, 조선 정부도 그걸 알고 있었지. 나라에서 직접 조선소를 짓는 건 어려우니까, 일단 외국 배를 들여와서 운영하는 방식으로 해운업을 발전시키려고 했던 거야.

그래서 당시 해운업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보면, 나중에 조선산업이 발전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볼 수 있어.

아쉬운 기회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어. 1910년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스스로 해운업을 발전시킬 기회를 잃어버렸지. 그래서 기선을 만들거나 큰 철강선을 만드는 근대적인 조선산업은 시작도 못 해보고 좌절되고 말았어.

일제강점기 때 해운업에 종사했던 한국인 중에, 개항 전부터 이 일을 했던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보면, 그때 우리가 스스로 해운업을 발전시키려던 노력은 거의 단절되었다고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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