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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1억 5천만원, 6개월 만에 바닥난 충격적 사연 공개!

게시일: 작성자: 자청의 유튜브 추출기

40년 일한 퇴직금 1억 5천만 원, 1년 만에 사라진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64살 된 김태수라고 해요. 40년 동안 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직했는데, 퇴직금으로 1억 5천만 원을 받았어요. 와, 정말 큰 돈이죠? 그런데 이 돈을 딱 6개월 만에 다 써버렸어요. 도박이나 사업 투자, 술이나 여자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억 5천만 원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지금 제 통장에는 23만 원밖에 없어요. 국민 연금 120만 원으로 아내와 저, 두 사람이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상황이에요.

아마 여러분은 "말도 안 돼! 1억 5천만 원을 6개월 만에 어떻게 다 써?"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저도 6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돈이 얼마나 빨리 사라질 수 있는지, 인생이 얼마나 갑자기 바뀔 수 있는지 말이에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딱 하나예요. 저처럼 40년 동안 성실하게 일한 분들, 그리고 퇴직을 앞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예요. 돈의 소중함을 안다고 생각했던 제가 어떻게 1억 5천만 원을 6개월 만에 다 잃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솔직하게 들려드릴게요.

40년의 성실함, 그리고 시작된 시련

이야기는 작년 3월부터 시작돼요. 저는 1981년, 24살 때 대한제철이라는 회사에 입사했어요. 그때는 우리나라가 막 산업화를 시작하던 때였죠. 저는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에서 생산 라인 품질 관리를 담당했어요. 아침 6시에 출근해서 밤 9시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고, 주말에도 일하는 날이 많았어요. 그렇게 10년을 일했죠.

1991년, 34살 때 지금의 아내 순자를 만났어요. 회사 근처 은행에서 일하는 텔러였는데, 월급 받으러 오면서 자연스럽게 인사하다가 1년 뒤인 1992년에 결혼했어요. 결혼식은 소박했지만 저희에겐 충분했어요. 신혼집은 경기도 부천의 작은 아파트였고요.

1994년에는 첫째 아들 민수가, 1997년에는 둘째 딸 은영이가 태어났어요. IMF 외환 위기가 터졌던 해였죠. 회사에서 명예 퇴직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다행히 저는 살아남았고, 생산 관리 경험을 인정받아 과장으로 승진했어요.

2000년대 들어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저도 생산 관리 팀장을 맡고 월급도 올랐지만, 여전히 가정은 빠듯했어요. 아이들 교육비, 아파트 관리비, 생활비를 빼면 남는 돈이 별로 없었거든요. 아내는 결혼과 함께 은행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고, 저는 회사 일에만 매달렸어요. 주말에도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지 못했죠. 그렇게 10년, 20년이 흘렀어요.

아이들은 2013년과 2015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갔어요. 2017년에는 민수가 결혼하면서 결혼 비용으로 3천만 원을 지원했고, 2019년에는 은영이도 결혼하면서 똑같이 3천만 원을 지원했어요. 이때쯤 적금 통장은 거의 비어 있었지만, 아이들의 새 출발을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았어요.

퇴직금 1억 5천만 원, 그리고 행복했던 3개월

2021년, 저는 만 60세로 정년 퇴직을 맞았어요. 40년간의 직장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죠. 퇴직금 통지서에는 1억 5천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40년 동안 성실히 일한 저에게는 정말 엄청난 돈이었죠. 그날 밤, 아내와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계획을 세웠어요. "이제 우리도 여유롭게 살 수 있겠어." 아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죠. "40년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네. 이제 정말 우리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어."

퇴직금 1억 5천만 원을 은행 정기 예금에 넣었어요. 연 2.5% 이자로 연 375만 원의 이자 수입이 생겼고, 국민 연금 120만 원과 합치면 월 15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있었죠. "이 정도면 충분히 살 수 있겠어." 저는 안도했어요.

첫 달은 정말 행복했어요. 40년 만에 처음으로 출근하지 않는 월요일 아침,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아내와 함께 가고 싶었던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고, 동네 복지관 탁구 교실에도 등록했어요. 아내는 문화센터 요가 수업을 들으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 시작했죠.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흘렀어요. 퇴직 후 3개월, 저희는 정말 행복했어요.

갑작스러운 시련, 그리고 돈의 무서움

하지만 작년 6월,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아내가 갑자기 허리 통증을 호소한 거예요. 처음에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어요.

동네 정형외과에 갔더니 허리뼈에 이상이 있다고 해서 대학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기로 했어요. 그런데 예약을 잡는 데만 2주가 걸렸고, 그동안 아내는 계속 아파했어요. 대학 병원에서 MRI 촬영 결과, 척추에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악성인지 양성인지 확인하기 위해 조직 검사를 해야 했고, 검사비와 입원비로 200만 원이 나왔어요.

다음 날 아내는 입원했고, 저는 밤새 아내 곁을 지켰어요. 조직 검사 결과, 다행히 악성 종양은 아니었지만 양성 종양이라도 크기가 커서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고 했어요. 수술비는 건강 보험이 적용되어도 800만 원 정도 예상해야 했고, 입원비까지 합치면 1천만 원 정도가 들었어요. 퇴직금의 15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이었지만, 아내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낼 수 있었어요.

수술 날짜를 잡고 추가 검사를 받는데 검사비만 300만 원이 나왔어요. 정기 예금에서 1천만 원을 찾았고, 퇴직금은 1억 4천만 원이 되었어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회복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중환자실에서 사흘, 일반 병실에서 2주를 더 입원해야 했고, 간병인을 쓰지 않고 제가 직접 간병했어요. 퇴원할 때까지 병원비로 총 1,200만 원이 들었고, 예상보다 200만 원이 더 나왔어요.

퇴원 후에도 물리 치료와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한 달에 150만 원이 나갔어요. 의사 선생님께 치료를 줄일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 최소 6개월은 꾸준히 치료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6개월이면 900만 원이었죠. 정기 예금에서 또 1천만 원을 찾았고, 퇴직금은 1억 3천만 원이 되었어요.

그런데 8월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아내의 수술 부위에서 염증이 발생해서 재수술을 해야 했어요. 재수술 비용으로 800만 원이 들었고,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 약물 치료에도 900만 원이 추가로 들었어요. 이때 정기 예금 잔액이 1억 원 밑으로 떨어졌어요. 5개월 만에 6천만 원을 쓴 거죠.

밤에 잠이 오지 않았어요. 이대로 돈이 나가는 속도라면 1년도 못 버틸 것 같았죠. 아내도 눈치를 채고 치료를 줄이자고 했지만, 의사는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며 계속 치료받는 게 좋다고 했어요. 결국 치료를 계속하기로 했고, 9월부터는 집 근처 재활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한 달에 100만 원이 나갔죠.

그런데 10월에 또 다른 악재가 생겼어요. 아내가 치료 과정에서 당뇨병 진단을 받은 거예요. 당뇨 치료를 위해 내분비 내과에도 다녀야 했고, 인슐린 주사, 혈당 측정기, 약물 비용 등으로 한 달에 80만 원이 추가로 나갔어요. 재활 치료비 100만 원과 합치면 매월 180만 원이 나갔죠. 이때부터 정말 위기감을 느꼈어요. 남은 9천만 원도 금세 바닥날 것 같았거든요.

절망 속에서 찾은 희망, 그리고 깨달음

그런데 11월에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어요. 아내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로 이송되었는데, 뇌출혈이라는 진단을 받은 거예요.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뇌출혈이라 즉시 수술해야 했어요. 응급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보냈는데, 중환자실 하루 비용이 200만 원이었고 보험 적용 후에도 본인 부담금만 2천만 원이 나왔어요. 정기 예금 잔액이 7천만 원밖에 남지 않았는데, 2천만 원을 또 써야 했죠.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저는 하루도 집에 가지 못했어요. 병원 로비에서 잠을 자고, 아내 곁을 지키며 말을 걸었어요. 다행히 아내가 의식을 되찾았지만, 말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오른쪽 팔다리에 마비가 왔어요. 다시 재활 치료가 시작되었는데, 언어 치료, 물리 치료, 작업 치료를 받으며 한 달에 350만 원이 나갔어요. 기존 당뇨 치료비 80만 원과 합치면 430만 원이었죠. 12월 한 달 만에 정기 예금에서 500만 원을 더 찾았고, 잔액은 4,500만 원으로 줄어들었어요.

연말이 되니 6월부터 12월까지 7개월 동안 병원비로 1억 원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퇴직금 1억 5천만 원 중 5천만 원만 남은 셈이었죠. 새해가 밝았지만 마음은 무거웠어요. 아내의 상태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집중적인 재활 치료가 필요했어요. 1월에도 400만 원, 2월에도 350만 원이 나갔고, 정기 예금 잔액은 3,500만 원까지 줄어들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아들 민수와 딸 은영이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두 아이 모두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대출을 받은 상황이라 손을 벌릴 수 없었어요.

그런데 3월에 담당 의사가 바뀌면서 희망이 생겼어요. 새로운 의사는 재활 치료 강도를 조금 줄여도 될 것 같다고 했고, 치료비를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다는 말에 안도했어요. 3월부터 재활 치료를 주 5일에서 주 3일로 줄였고, 한 달 치료비가 200만 원으로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죠. 국민 연금 120만 원으로는 생활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매월 200만 원을 추가로 써야 했으니까요.

4월 말, 정기 예금 잔액은 2천만 원까지 줄어들었어요. 1년 전만 해도 1억 5천만 원이었던 돈이 이제 2천만 원밖에 남지 않았죠. 밤에 잠이 오지 않았어요. 이 돈마저 떨어지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죠.

5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솔직하게 말했어요. "여보, 우리 돈이 거의 다 떨어져 간다." 아내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았어요. "얼마나 남았어?" "2천만 원 정도." 아내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저는 아내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마음은 복잡했어요. 40년 동안 모은 돈이 1년도 안 되어서 거의 바닥났으니까요.

그날 밤, 저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어요. 재활 치료를 중단하기로 한 거예요. 다음 날 병원에 가서 담당 의사에게 더 이상 치료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어요. 의사는 아쉬워했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법을 알려주었고 한 달에 한 번씩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어요.

5월부터 아내는 집에서 재활 운동을 시작했고, 저도 함께 도왔어요. 병원비는 한 달에 50만 원으로 줄어들었지만, 국민 연금 120만 원에서 생활비 100만 원을 빼면 20만 원밖에 남지 않는데 병원비로 50만 원이 나갔으니 매월 30만 원씩 적자가 나는 구조였어요. 정기 예금에서 계속 돈을 찾아야 했고, 6월 말 잔액은 800만 원까지 줄어들었어요.

그때부터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매일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고, 하루하루 줄어가는 돈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어요. 어느 날 아침, 동네 마트에서 계산하는데 카드가 거절당했어요. 잔액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나왔죠. 그 순간 정말 부끄러웠어요. 40년 동안 성실하게 일한 사람이 고작 5만 원어치 장보기조차 힘든 신세가 되다니. 집에 와서 인터넷 뱅킹으로 확인해 보니 정기 예금 잔액이 23만 원이었어요. 1억 5천만 원이 23만 원이 된 거죠. 정확히 11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그날 밤, 저는 아내와 함께 앉아 이야기했어요. "우리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내가 물었어요. "글쎄, 일단 국민 연금 120만 원으로 최대한 절약해서 살아야지." 저는 아내에게 "당신은 치료나 잘 받아"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막막했어요. 120만 원으로 두 사람이 한 달을 살기에는 너무 부족했거든요.

그다음 날부터 진짜 절약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휴대폰 요금제를 가장 저렴한 것으로 바꾸고, 인터넷도 해지했어요. 장보는 방식도 완전히 바꾸어 할인하는 상품만 골라 샀고, 외식은 완전히 끊었어요. 커피도 집에서 믹스 커피만 마셨죠. 아내의 약값도 아껴야 해서 꼭 필요한 약만 처방받았어요.

그렇게 한 달을 버텨봤어요. 7월 한 달 지출이 110만 원이었고, 국민 연금 120만 원에서 110만 원을 쓰니 10만 원이 남았어요. 처음으로 적자를 면했지만, 너무 빠듯한 생활이었어요. 매일 계산기를 들고 다니며 하나하나 계산하고 또 계산했죠.

그런데 8월에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겼어요. 아파트 관리비에서 수도관 교체 비용으로 30만 원이 추가로 나왔고, 그 달에는 다시 적자가 났어요. 정기 예금 잔액이 완전히 바닥난 거죠. 그다음 달부터는 정말 위기였어요. 국민 연금 120만 원만으로 살아야 했는데, 아무리 절약해도 130만 원은 들어갔어요. 매월 10만 원씩 부족했죠.

그때부터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일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64세에 별다른 기술도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어요. 경비원, 청소원, 택배 분류 작업, 주차장 관리원 같은 일들이 전부였죠. 고민 끝에 아파트 단지 주차장 관리원 일을 시작했어요. 하루 6시간, 주 5일 근무에 월급 80만 원이었죠.

처음 일하는 날, 40년 동안 회사에서 과장으로 일했던 제가 이제는 주차장에서 차량 출입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주차장 관리원 월급 80만 원과 국민 연금 120만 원을 합치면 월 200만 원의 수입이 생겼어요.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고, 아내의 병원비도 제대로 낼 수 있었으며 생활비도 부족하지 않았어요.

소중한 것을 얻은 삶

지금은 주차장 관리원으로 일한 지 3개월째예요.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오후 1시에 퇴근하는데,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적응했어요. 오히려 집에만 있을 때보다 건강해진 것 같아요. 아내도 많이 좋아졌어요.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집안 일을 할 정도는 되고, 말도 처음보다 훨씬 또렷해졌어요.

어제 아내가 저에게 말했어요. "여보,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저는 아내의 손을 잡고 말했어요. "무슨 말이야? 우리 부부잖아. 함께 아프고 함께 회복하는 거지." 정말 그랬어요. 돈은 다 없어졌지만, 더 소중한 것을 얻었어요. 건강의 소중함, 가족의 소중함,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돈이라는 것이 정말 무상하다는 것도 알았죠. 40년 동안 모은 1억 5천만 원이 1년도 안 되어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요.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요. 아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쓴 돈이니까요. 만약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똑같이 할 거예요. 다만 아쉬운 것은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의료 보험이나 안 보험 같은 것을 들어두었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거예요.

퇴직을 앞둔 분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퇴직금이 아무리 많아도 질병이 찾아오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어요. 미리미리 의료 보험을 준비하시고 비상 자금도 따로 마련해 두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을 챙기세요. 건강이 최고의 재산이에요.

저는 지금 주차장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인생 이막을 살고 있어요. 비록 1억 5천만 원은 잃었지만, 소중한 아내는 지켰어요. 그리고 일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있어서 감사해요. 64세에도 일할 수 있다는 것, 매월 200만 원의 수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몰라요. 앞으로 몇 년 더 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아내와 함께 소박하지만 행복한 노후를 보낼 거예요. 돈 많이 벌어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보다 건강하게 함께 있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어제 아내와 함께 동네 공원을 산책하며 벤치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이야기했어요. "우리 정말 많은 일을 겪었네." 아내가 말했어요. "그래도 함께 이겨냈잖아." 저는 대답했어요. "이제 남은 시간은 정말 행복하게 살아요."

1억 5천만 원은 잃었지만, 더 소중한 것들을 얻었어요. 건강의 소중함,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요. 지금 제 통장 잔고는 여전히 23만 원이지만, 절망하지 않아요. 매월 200만 원의 수입이 있고, 사랑하는 아내가 옆에 있고, 건강한 몸이 있으니까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퇴직금 1억 5천만 원을 여섯 개월 만에 다 써 버린 이유.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리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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